어떤 광고

아주 아주 어렸을 때 기억이다. 계집아이들(요즘 세상엔 이런 말이 가능한 것인지 모르겠다. 세상이 하도 바뀌어서)이 고무줄 놀이 하며 부르던 노래다. ‘고마우신 이대통령 우리 대통령….’ 그런 노랫말인데 그 이대통령은 이승만이다.

그로부터 이어진 내 기억 속 한국 대통령이나 수반들을 꼽아 본다. 허정, 윤보선, 박정희, 최규하,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박근혜, 문재인, 윤석열 등이다.

내 손으로 뽑아 본 이는 단 사람도 없다. 내가 살았던 시절 대한민국엔 국민들에게 대통령 투표권을 부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니 내가 살았던 시절이 아니라 내가 성인이 되어 참정권을 갖고 있던 시절 이야기가 맞겠다. 내가 성인이 되어 투표권을 가졌을 때 치룬 선거는 이른바 유신시절이었고, 직선제를 이룬 무렵엔 나는 이미 그 땅을 떠났으므로.

그래도 대충 그 때 그 사람들과 그 시절의 대한민국은 내 나름대로의 기억을 정리하며 산다.

이제 윤석열.

생각할수록 참 생뚱맞은 인물이고 엉뚱하고 참담한 시절 같다.(이다.)

분명 그와 그의 세력들은 내 체질상 시작과 함께 타도의 대상이어야 마땅했다. 이제야 그런 소리들이 들린다.

같은 생각을 하며 사는 가까이 사는 이들을 만날 수 있음은 내게 그저 축복이고 기쁨이다.

하여 그들과 함께 오늘을 걷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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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수(雨水)

이즈음 틈나는 대로 이런저런 잡동사니들을 정리하며 산다. 가진 것 별로 없는 삶이건만 둘러보면 온통 버릴 것 투성이다.

십 수년 동안 일기장처럼 사용하던 블로그를 이젠 접어도 좋지 않을까 하는 맘으로 정리하며 보낸 하루다.

지난 일기들을 뒤적이다 보니 내 부모님들의 마지막 모습들을 적기 시작한 일이 딱 십년이 되었다.

시작은 장모님 이었다. 십년 전 장모님은 담낭암 판정을 받았고, 삼년 동안 그 병과 씨름하시다가 마지막 한 달여 호스피스 돌봄 속에 떠나셨다. 그 다음은 장인 어른이셨다. 장모 떠나시고 난 뒤 장인은 모든 것을 놓으셨었다. 한 일년 혼자 잘 버티시다가 쓰러지신 후 장기 요양시설에서 마지막 일년을 보내셨던 장인은 그 시설에서 조용히 삶을 접으셨다.

그리고 몇 달 후 내 어머님이 가셨다. 치매증상 속 호스피스 돌봄을 받으며 떠나셨다. 그로부터 약 삼 년 세월이 흐른 지금, 내 아버지는 장기 요양시설에서 일 년 넘게 누워 지내신다.

이미 떠나신 세 분과 이제 마지막 시간들과 씨름하시는 아버지, 그렇게 네 분 내 부모님들은 내게 삶과 죽음에 대한 여러 가르침을 주셨고 또 주신다.

며칠 전 이런저런 투정으로 얼굴을 찌푸리시던 아버지가 잠이 드신 얼마 후, 아버지의 얼굴은 세상 편하게 흡족한 웃음을 가득 담은 모습으로 변했다. 하도 신기해서 큰소리로 물었었다. “아버지! 뭔 좋은 일이 그리 생기셨나?”

눈도 뜨지 않으신 채 환한 얼굴로 아버지는 중얼거리셨다. “어… 니 엄마 생각….”

오늘은 우수(雨水). 내 뜰에서 새 봄 소식을 전해주는 생명들과 지난 십 년 동안의 이야기를 나누다.

눈 감고 떠올리는 얼굴마다 환한 웃음 짓는 사람살이 살 일이다.

우수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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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

“잊지 말아라!’, “적어 놓아라!”, “꼭 인사 전하거라!” 거듭 되뇌이시는 아버지의 당부였다. “그게…. 그게… 쉬운 일 아니야! 섣달 그믐날… 나같은 사람 찾아 주는 거… 인사 꼭 전해라!”

딱히 식사량이라고 말할 수가 없을 정도로 줄어든 끼니처럼 아버지의 몸은 하루가 다르게 작아들고 있다. 물 몇 모금으로 점심 끼니를 채우신 아버지는 연신 어제 당신을 찾아 주셨던 배목사님께 감사 인사를 드리라는 당부를 이으셨다.

오늘이 설날이라고 짚으실 만큼 정신은 아직 맑고 또렷하시다.

어제 섣달 그믐날, 아내와 함께 이런저런 밑반찬 만들어 싸들고 딸네 집을 찾았었다. 결혼 후 장만한 첫 집, 정리도 대충 끝났다 하여 나선 길이었다.

고마움, 기특하고 대견함 그리고 함께하는 이런 저런 염려들을 꾹꾹 눌러 숨기고 딸과 사위와 함께 꼭 기억할 만한 좋은 시간들을 보냈다.

멋진 저녁식사 자리에서 며칠 전 생일을 보낸 사위가 내게 건넨 부탁이었다. “제 나이에 걸맞는 좋은 말씀 하나 해주세요.”

나는 사위에게 변변한 도움말을 건네지는 못하였다. 다만 그 순간 내 머리 속을 스쳐간 것들 두가지. 아이들 거실 벽에 걸려있는 바깥사돈이 지금의 사위 나이 즈음에 그리셨다는 그림들과, 내가 지금의 사위 나이 때 아버지와 단 둘이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전망대에서 이런저런 사는 이야기들을 나누었던 시간이었다.

그 생각들이 딸과 사위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이 되어 내가 건넨 말이었다. “이제껏 지내 온 건실하고 건강한 맘과 몸을 이어 갔으면 좋겠네. 늘 감사함으로.”

곰곰 따져 생각해 보니 어제 음력 2022년 섣달 그믐날, 아버지와 나는 꽤나 행복하였다.

설날 저녁, 떡국 한 그릇 나누고 돌아간 아들 내외에게 딸네 집에 싸들고 간 똑같은 밑반찬 전해주며 드린 내 속 기도.

바라기는 올 한 해도 지금 누리는 행복을 잊지 않고 살 수 있기를…

행복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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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력 그리고 기도

어느해 부터인가 내 책상 가까이에 자리잡고 있는 달력 하나, 4.16재단에서 만든 세월호 달력이다.

“이 달력은 세월호 희생자를 기억하고 세월호 가족들과 함께하기 위해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달력 속에 글 내용은 이들을 떠올리며 한 줄 한 줄 담았습니다.” – 달력을 소개하는 글이 담긴 달력 첫 장을 넘기면 <존엄과 안전에 대한 4.16인권 선언>이 펼쳐진다. 지난 해에 이어 다시 한번 꼼꼼히 새기며 읽어 본다.

선언문을 맺는 말이다.

“또한 우리는 다짐한다. 이 세계에서 벌어지는 각종 재난과 참사, 그리고 비참에 관심을 기울이고 연대할 것임을. 우리는 존엄과 안전을 해치는 구조와 권력에 맞서 가려진 것을 들추어 내고 목소리를 내는데 주저하지 않겠다. 이 선언은 선언문으로 완결되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우리가 다시 말하고 외치고 행동하는 과정 속에서 완성되어 갈 것이다. 함께 손을 잡자. 함께 행동하자.”

그렇게 넘긴 달력, 정월의 선언 <우리는 4월 16일을 잊지 않았습니다.>이다.

이 달력이 내 책상 가까이에 놓이기 까지 여러 손들을 거쳐왔을 것이다. 그 손길들 가운데 내게 가장 가까이 곳에서 <존엄과 안전에 대한 4.16인권 선언>에 함께 하는 ‘수많은 우리’중 하나가 된 ‘필라 세사모’ 벗들이 있다.

“상실과 애통, 그리고 들끓는 분노로 존엄과 안전에 관한 권리”를 위한 선언을 함께 외치더라도 결코 날카롭지 않게 삶의 넉넉한 감사를 공유하며 함께하는 ‘필라세사모’ 벗들이다.

벗들 하나 하나 얼굴들을 떠올리며 새해 기도를 드린다.

“함께 살고 함께 나누는 세상을 향해 나아가”는 벗들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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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개 속 바램

온 종일 안개가 내 눈이 닿는 세상을 덮고 있다. 이른 아침 눈을 뜰 때부터 밤이 깊어 가는 무렵까지 거두어 지지 않는 안개 속 세밑 하루를 보낸 것은 내 생애 처음이다. 하여 삶은 늘 경이롭다.

이렇게 안개 속에 2022년 한 해를 보낸다. 돌이켜 아쉬움 없이 접은 달력은 없었다. 그러나 언제나 그랬듯 나는 감사함으로 그 아쉬움을 덮는다. 신이 내게 허락한 믿음 덕이다.

나 자신만의 일로 뒤돌아 보자면 그저 감사만이 차고 넘친 한 해였다. 코로나로 며칠 고생했던 기억도 있다만, 나나 아내나 큰병치레 없이 건강하게 보낸 시간에 대한 감사가 크다. 이젠 많이 쇠하시긴 하였으나 아직은 비교적 맑은 정신을 유지하고 계시는 아버지가 만 아흔 일곱을 세고 계시다는 감사도 크다.

아들 며느리, 딸 사위 모두 언제나 밝은 모습으로 내게 다가오는 즐거움에 대한 감사는 어디에 비하리. 그 나이에 어미 아비에게 말 못할 아쉬움과 아픔들이 어찌 없겠느냐만, 늘 밝은 내 아이들에게 그저 감사 뿐.

무엇보다 우리 내외 아침에 나가 저녁에 돌아오는 일터와 그 일터에서 만나는 사람들과의 즐거움을 이어온 한해에 대한 큰 감사는 곱씹어 마땅하다.

다만 아쉬움을 넘어 분노로 이어지던 한국뉴스들이 넘쳐난 한해에 대한 기억을 그대로 품고 새해를 맞는 답답함이 있다만…. 한국뉴스는 여기 아주 작고 좁은 한인사회 이웃관계에 그대로 영향을 미치곤 하기에 결코 먼 뉴스들이 아니므로.

아무튼 신이 허락해 주신 2023년 새해를 맞는다. 하여 이젠 돌이킬 수 없는 노년의 길로 들어선다. 길은 여전히 안개 속일 수도 있을게다.

바라기는 새해에도 아쉬움이 아무리 클지라도 그를 덮을 수 있는 감사를 찾을 수 있는 믿음을 허락하시길. 새해, 전해오는 한국뉴스들을 지금 여기 내 이웃들에게 자랑스럽게 이야기할 수 있게 되길.

삶은 늘 경이로움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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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탄 연휴

성탄 연휴, 아이들이 찾아와 사흘을 아무 생각없이 쉬었다. 갑자기 다가온 매서운 추위 때문이기도 하였고 사위와 딸이 애지중지하는 애완견과 함께 갈 수 있는 마땅한 곳도 없어 집에서 그저 편히 쉬었다.

늦은 나이에 음식 만드는 일을 즐거워 하게 된 내가 그저 대견 스럽고 감사한 연휴였다. 먹성 좋은 아들과 조금은 섬세하게 준비해야하는 며느리와 내가 결코 큰 소리치지 못하는 딸아이와 사위 입성까지 생각하며 마련한 밥상을 차려 놓고 흐믓해 하는 내 즐거움이라니!

가족들이 모이면 늘 부엌에서 하루를 보내셨던 어머니께 내가 역정을 내며 물었었다. “아니 뭘 힘들게 혼자 다 할려고 해요? 나누어 하든가 조금씩만 하든가!” 그럴 때면 하셨던 어머니의 대답, “이 눔아! 내 몸 놀려서 많은 식구들이 잘 먹는 거…. 그게 얼마나 좋은 지 넌 아직 몰라서 그래.”

그 어머니 흉내 낸 사흘이었다.

돌아보면 모두 흉내 짓으로 이어온 내 삶이지만 흉내의 대상이 결코 부끄럽지만은 않다.

그래  감사다.

아이들을 즐겁게 하는 것은 언제나 그렇듯 아내 몫이었다.

그게 또 감사다.

또 한 해를 내려놓는 즈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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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비

온 종일 쏟아져 내리는 비 탓에 가게가 한산한 날이었다. 겨울철 이런 날이면 어머니는 늘 이렇게 말씀하셨었다. ‘아이고 그저 감사하거라! 이 비가 눈이 되어 이렇게 내렸어 봐라, 여러 날 장사 망치지 않았겠니?’

그 말씀 생각나 비 탓 아닌 비 덕으로 한 해를 돌아보는 여유를 누렸다.

이즈음 내가 자주 듣는 질문이다. ‘언제 은퇴하시나?, ‘언제까지 일 하시려나?’. 그럴 때마다 내가 하는 대답이다. ‘계획 없고요.’ 또는 ‘글쎄… 그저 일할 수 있을 때 까지…’

한 해가 다 가고 이젠 일반적인 통념으로도 꽉 찬 은퇴 나이를 맞이하는 때에 이런저런 생각들이 왜 없겠느냐만, 머리를 절레절레 흔든다. ‘아직은…’

가게 한 켠엔 딸아이가 엄마 생일에 보내 준 꽃들이 아직 화사하고, 그 꽃을 보며 이야기 꽃 피우는 손님들이 있고, 내리는 겨울 비 바라보며 삶의 여유를 누릴 수 있는 일터에 아직은 그저 감사 뿐.

온종일 겨울비 내리는 날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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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그리고 사랑에

  1. 멀리 캘리포니아 사돈께서 잘 키워 거두신 대추 한 상자를 보내주셨다. 호두알 만큼 큼직한 대추가 마치 설탕처럼 달았다.  누이들에게 크게 한 움큼씩 나누어 주고, 대추를 이용한 음식에 대해 알아본다.

성탄절에 찾아 오겠다는 아들, 사위, 딸, 며느리들을 생각하며 대추       넉넉히 들어간 갈비찜과 약식을 해 보아야겠다. 우리 내외를 위해         대추고를 좀 만들어 놓아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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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아내 생일을 맞아 아내의 사촌동생이 자신이 부른 노래를 보내왔다.  내가 그를 본지도 족히 사십년은 되었을 터. 그가 부른 ‘겨울아이’와 ‘Holiday’다.  ‘Holiday’는 아내가 어렸을 적 흥얼거렸던 게 기억나 불러 보았단다. 그도 이젠 환갑나이란다.

 

3. 어제 필라델피아 아주 낮은 곳에서 목회 하시는 이태후목사님께서 준비하신 지역사회 성탄잔치에 내가 참 좋아라 하는 필라세사모 친구들이 선물상자를 마련해 함께 했단다.

내  아들  며느리가  짝을  맺은 지가 어느새 육 년 전 일이 되었다. 당시 나는 아이들 결혼에 극심하게 반대 했었다. 그런 내게 아이들이 제안을 해 왔다. ‘우리 목사님을 한 번만 만나 주시라.’고. 나는 단칼에 아이들의 제안을 거절 했었다. “이 눔들아! 이건 목사가 해결해 줄 문제가 아니야! 이건 내가 내 스스로 해결해야 하는 문제야!”라고.

그렇게 시간은 내 부끄러움을 깨닫게 해 주었고, 이젠 까만 얼굴의 며느리가 얼마나 고맙고 사랑스러운지 말해야만 할 지경이다. 그 때 아이들이 나를 만나게 하려고 했던 목사가 바로 이태후 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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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대추상자와 함께 보내 온 캘리포니아 사돈의 카드인사.  “우리 서로 멀리 있어도, 있다는 것에 감사합니다.”

사람 그리고 사랑에.

  • 올겨울엔 불을 많이지 펴야겠다.  두루두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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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음 또는 명령에

“이것이 과연 인간인가?”

어제 천주교 정의구현 전국 사제단이 10.29 참사에 대해 발표한 선언문의 시작은 바로 이렇게 시작된다. “이건이 과연 인간인가? 라는 물음으로.

선언문 끝 무렵에 이어지는 주문이자 명령이었다. “울어라, 울어야 한다! 사람을 위해.”

이 선언문은 오늘을 살아가는 한국인들에게 올바른 시민의 길을 찾아 나아갈 것을 차분하지만 단호한 어조로 명하고 있다.

성서에게 삶을 묻는 신앙인들에겐 바른 신앙인의 길을 걷도록 촉구하는 선언이다.

그 신앙인의 바른 길에 대한 본 회퍼 목사의 가르침.

<부활 신앙은 죽음의 문제를  해결하는 길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피안’은 우리 인식 능력의 피안이 아닙니다! 인식론적 초월은 하나님의 초월과 아무런 관계도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삶의 한복판에서 피안적입니다. 교회는 인간적 능력이 실패하는 곳, 한계선상에 있는 것이 아니라, 마을 한가운데 있습니다.> – 본 회퍼의 옥중서간에서

“이것이 과연 인간인가?”라는 오늘의 물음은 곧 오늘 우리들(인간들)이 처한 현실에서 신이 어떻게 일할 것인가를 묻는 일.

선언문은 “모든 일이 다 잘 될 것입니다.” 거듭되는 약속으로 마무리를 짓는다. 바른 신앙의 길, 깨우친 시민의 길을 걸어 갈 사람들(인간)과 신에 대한 믿음에서 우러나오는 희망일게다.

나도 그 희망을 믿는다.

작게는 내가 살고 있는 지금 여기에서 참 인간, 참 신앙인으로 살아가는 이들과 함께 하는 일이요, 멀리 참사를 겪고 아파하는 내 모국에서 인간의 길을 역행하고 있는 윤석열과 그 일파들을 타도하는 이들과 함께 하는 일에서 그 희망이 시작될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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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이

시간이 바뀐 첫 하루는 꽤나 길다. 한 시간이 주는 여유를 만끽하며 놀이에 빠진 하루였다. 일과 놀이가 잘 어우러진 삶은 그야말로 축복이다.

-오전-

어제와 똑같이 눈을 뜨니 아직 새벽 시간이었다. 시간이 바뀐 까닭이다. 그대로 자리에서 일어나 계획했던 놀이를 시작했다.

막 이민을 왔던 무렵이었으니 우리 내외가 아직 풋풋했던 시절이었다. 어느 날 아내가 김치를 담아 보겠노라고 했었다. 아내는 열심히 긴 시간을 부엌에서 보냈다. 그 날이었던가 이튿날이었던가? 내가 아내에게 건넨 말이었다. “앞으로 김치는 사 먹는 것으로…”

그 날 이후 오랜 동안 집에서 김치를 담아 본 적이 없었다. 그러다 세월 흘러 내가 놀이 삼아 김치를 만들어 보곤 했었는데 번번히 실패를 거듭하곤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틈나면 김치를 담곤했다. 어차피 놀이였으므로. 이왕 즐기는 놀이라면 즐거워야 하는 법, 김치 깍두기 총각김치 물김치 갓김치 동치미 등등 흉내 낼 수 있는 일들을 즐겼다. 그러다 보니 어쩌다  제법 그럴듯한 김치를 만드는 일도 일어나곤 했다.

오늘 오전 내 놀이는 조청을 만들고 고추장을 담는 일이었다. 밖에는 추적추적 가을을 밀어내는 비가 추적이고 있어, 내가 놀이를 즐기기엔 마치 주어진 듯 딱 좋은 날이었다.

그렇게 고추장도 담고, 내친김에 거둔 후 어찌할지 모르고 돌보지 않았던 늙은 호박으로 호박조청도 만들고, 덤으로 식혜까지 얻는 즐거움을 누렸다.

이 즐거움을 얻기까지 내가 내 놓아야 했던 대가가 있었으니 점점 가늘게 높아만 가는  내 목소리, 바로 세월.

-오후-

추적이던 비 그치고 가을걷이 끝난 밭들조차 아직은 풍요로와 보이는 가을 오후, 벗의 농장을 찾아 가 한 나절 또 다른 놀이를 즐겼다.

이 나이에 만나서 좋은 친구와 함께 한 잔 술에 좋은 먹거리 더하여 계절을 즐기며 이야기하며 노는 즐거움에 더 할 게 무엇이 있을까?

벗이 잘 키워 넉넉히 넣은 매실로 담근 매실주에 먹거리는 그야말로 우리네 입맛에 달라붙는 내 어릴 적 어머니 맛, 눈으로 즐기는 농장의 가을 정겨운 풍경은 덤으로 누렸던 놀이의 즐거움이라니!

뭐 이야기라야 별게 있어야 하나? 그저 덤덤히 늙어가는 우리들 이야기.

친구 내외와 우리 내외 모두 아직은 일과 놀이를 즐길 수 있어 아직은 청춘. 암만!

세월을 타고 즐기는 놀이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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