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위로하는 시 하나

2016년 새해 달력을 건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한장을 넘깁니다. ‘왜 이렇게 빠를까’라는 생각을 하며 시집 몇권을 들었던 것은 엊저녁의 일입니다.

선사(禪師)들이 던진 도(道) 통한 시편들인 임종게(臨終偈)와 이 세상 아픔조차 놀이로 읊었던 천상 시인 천상병의 시편들 그리고 오늘 제 가게 손님 한 분이 “Oh Boy!  Gee Whiz!  Wow!  Golly!  Outta’ sight!  Brilliant!”라며 찬사를 보낸 수녀 이해인님의 시편들이었습니다.

그리고 오늘 아침에 제 가게 손님들에게 보냈던 편지입니다.

2월을 맞는 우리 모두가 스스로를 다독거리며 조금만 더 예쁜 삶을 살기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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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이면 벌써  2월입니다.

일월 마지막 주일 아침에 제가 정말 좋아하는 시인과 시 하나를 소개해 드립니다. 이미 이 편지를 통해 몇차례 그녀의 시를 소개해 드린 적이 있답니다.

시인의 이름은 이해인이고  1945년생인 그녀는 천주교 수녀입니다.

1950년 한국전쟁이 일어났을 때 그녀의 아버지는 북으로 납치되었습니다. 그녀는 고등학교 1학년 때 수녀가 되기로 결심하였답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곧 수녀의 길로 들어선 그녀는 그 때부터 많은 시를 쓰기 시작했답니다.

그후 공부도 계속해서 영문학과 종교학을 전공하면서 동양과 서양의 생각들, 천주교와 다른 종교들의 생각들을 두루 익히며 시를 써왔답니다.

그러던 그녀가 직장암 3기 판정을 받은 것은 2008년이고, 오늘까지 병과 싸우며 계속 시를 쓰고 있답니다.

제가 그녀의 시를 좋아하는 것은 이런 그녀의 삶에 대한 관심 때문이 아니라, 그녀의 시들을 읽으면 마음이 편안해지고 깨끗해지면서 새로운 힘이 솟기 때문입니다.

2016년 두번째 달력을 넘기면서 읽는 그녀의 시랍니다.

2016년 1월의 마지막 주일 아침에 당신과 함께 나누고 싶어 소개해 드린답니다.

나를 위로하는 날

가끔은 아주 가끔은/ 내가 나를 위로할 필요가 있네

큰일 아닌데도/ 세상이 끝난 것 같은/ 죽음을 맛볼 때

남에겐 채 드러나지 않은/ 나의 허물과 약점들이/ 나를 잠 못 들게 하고

누구에게도/ 얼굴을 보이고 싶지 않은 부끄러움에/ 문 닫고 숨고 싶을 때

괜찮아 괜찮아/ 힘을 내라구/ 이제부터 잘하면 되잖아

조금은 계면쩍지만/ 내가 나를 위로하며/ 조용히 거울 앞에 설 때가 있네

내가 나에게 조금 더/ 따뜻하고 너그러워지는/ 동그란 마음/ 활짝 웃어주는 마음

남에게 주기 전에/ 내가 나에게 먼저 주는/ 위로의 선물이라네

나를 위로하는 마음으로 맞는 2월의 하루 하루가 멋진 시간들이 되시기 빌며…


Tomorrow, it will be February already.

For this last Sunday morning of January, I would like to introduce my favorite poet and a poem of hers. I have introduced some of her poems before through this weekly letter.

The poet’s name is Hae-in Lee. She was born in 1945 and she is a Catholic nun.

During the Korea War, her father was kidnapped and taken to North Korea. When she was a freshman in high school, she decided to become a nun. Since she followed her dream to become a nun after graduating from high school, she has been writing poems.

She also continued studying, and majored in English literature in college and the science of religion in graduate school. She kept writing poems while learning and studying Eastern and Western thoughts and Catholic and other religions.

Then, she was diagnosed with colorectal cancer in 2008. Since then, she has been fighting against the cancer, but she keeps writing poems even now.

The reason why I like her poems very much is not because of her life. It is because her poems always set my mind at ease, and I feel both calm and reinvigorated.

It is her poem which I’m reading while tearing off the first page of the 2016 calendar.

I would like to share it with you in this last Sunday morning of January, 2016.

A Day When I Comfort Myself

Occasionally, really occasionally/ I need to comfort myself.

Though not a big thing,/ As if the world had ended,/ When I taste death,

Though undiscovered by others yet,/ When my flaws and weaknesses/ Make me stay awake,

Because of shame/ Not to show my face to anyone,/ When I want to hide behind the door.

That’s OK. That’s OK./ Cheer up./ You can do better from now on.

Though a little embarrassed,/ While I’m comforting myself,/ Quietly/ There are times to stand in front of a mirror.

In which I become to myself/A little bit warmer and more generous/ A full mind,/ A broadly smiling mind.

Before giving to others,/ Which I give to myself first,/ It is a gift of comfort.

I wish that you’ll have a royal time every day in February which you’ll greet with a mind to comfort yourself.

삶은…

뭐 고령 사회이니 아직 애 취급 받을 때도 종종 있지만 제 나이도 만만찮답니다. 이따금 죽음에 대한 준비를 해야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쓸데없다고 말할 나이가 아니랍니다. 평균 연령이 높다고 그게 제 껏은 아니니까요.

그렇게 2015년이 저물어가고, 오늘은 성탄전야입니다.

아기예수가 2000번 넘게 태어나 기리는 날입니다. 제가 말과 글을 배울 때 2000년이던 세월이 제 나이 예순 몇에도 이천년입니다.

예수는 여전히 태어나고, 살고, 죽고, 다시…

오늘의 뜻일겝니다.

돌아볼수록 올 한해가 그저 감사입니다.

감사 이전에, 늘 부글거리는 용암처럼 끓어오르는 화가 제 맘속에 가득했었답니다.

개인적으로는 연초에 계획했던 일들, 세상사로는 제 뜻과 어긋난 일들을 생각하면 그저 분이 차오를 뿐이랍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사뿐이랍니다.

허구한날 태어나 죽임을 당한 사람 같은 신, 신 같은 사람.

짧게 흥으로 살다간 끝내 신이 된 예수의 생일 전야이기 때문입니다.

90대, 80대에 이른 부모 앞에서 재롱 피어야하는 60대이어도 흥입니다.

무릇 삶이란…

자기가 옳다고 하는 것에 흥을 잃으면 뜻이 없기에.

그리고 역사란  그 뜻있는 사람들이 이어가는 것임으로.

이 밤은 그저 흥으로.

2015년 성탄에 …

엊저녁에 딸아이가 밥상에서 저의 부부에게 물어본 말이랍니다. “한국식 반찬을 어떻게하면 빠르고 쉽게 만들어 먹을 수 있지?” 아내와 저는 순간적으로 나름 아는 지식을 총동원해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해주었답니다. 그러나 우리 부부의 응답이 아이에게는 닿지 않는 분위기였답니다.

아무렴 쉽게 살자면야 뉴욕인데, 한국마켓에 가서 사먹으면 간단히 해결될 문제겠지만 그래도 아이가 제 먹거리를 스스로 만들어 먹는 일로 생각하고 묻는게 고마웠답니다.

그래 오늘 아침부터 부산을 좀 떨었답니다. 아이가 먹을 밑반찬을 만들어 보내노라고 말입니다. 콩자반, 장조림, 오징어젓갈을 만들어 조금씩 싸서 넣어주었답니다.

내친김에 농사짓는 친구가 보내준 무우로 석박이와 물김치도 좀 담구었구요.

아마 엊저녁에 제가 “징검다리”를 떠올려 생각한 것은 모두 제 딸아이 덕이랍니다. 그 맘으로 오늘 제 가게 손님들에게 보낸 편지랍니다. 그리고 오늘 저녁 우리 부부의 밥상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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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조촐한 밥상을 함께 나누려 애쓰는 이들을 생각하며…>

예전에는 아주 흔히 볼 수 있었던 것들인데 지금은 거의 찾아볼 수 없는 것들이 있지요. 그런데  비록 볼 수는 없더라도 그 이름만은 남아서 사람들이 오늘날에도 흔히 사용하는 말들이 있지요. 어떤 것들이 있을까 한번 생각해 보는 일도 재미있지 않나요?

제가 어릴 적에만 해도 한국에서 흔히 볼 수 있었지만 지금은 한국에서없어진 것들 중에  징검다리라는 것이 있답니다. 징검다리라는 것은 거의 없어졌지만 한국사람들은 이 말을 아직도 사용한답니다.

예전 한국의 전형적인 마을 구조를 보면 작은 산 밑에 집들이 몇채 있어 마을을 이루고 마을 앞에 농사를 짓는 논과 밭이 있고, 그 논과 밭 끝에는 작은 개울이 있답니다. 그 개울을 건너면 또 다른 마을이 시작되는 것이고요.

그 개울에는 다리가 놓여져 있었답니다. 지금 “다리”라는 말에 당신이 상상하고 있는 그런 모습의 다리가 아니랍니다.

바로 이 사진과 같은 모습의 다리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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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울 위에 큰돌들을 사람들의 보폭만큼의 간격으로 이어놓은 다리랍니다. 이런 징검다리를 거의 볼 수 없지만 예전에는 어느 동네에서건 아주 흔히 볼 수 있었답니다.

그런데 비록 징검다리의 모습은 볼 수없지만 “징검다리”라는 말은 아직도 아주 자주 사용하는 말 가운데 하나랍니다.

‘징검다리’라는 말은 이쪽과 저쪽을 이어주는 것이라는 뜻으로 쓰이기도 하거니와,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는 역할을 한다라는 뜻으로도 쓰인답니다.

자! 11월 마지막 일요일이고 이틀 후면 12월입니다.

12월은 2015년의 마지막 달이자 2016년을 이어주는 징검다리입니다.

올 한해동안 함께했던 기쁨과 즐거움을 내년에도 이어주는 동시에  누군가에게 힘과 희망을 심어주는 징검다리 같은 올 한해 남은 시간들이 되시길 빕니다.


 

 

There are many things that could commonly be seen in the old days, but that have almost disappeared nowadays. But, even though they cannot be found easily, their names still remain to be used so often. Don’t you think that it is interesting to think about those things?

Among those things that could commonly be seen when I was young, but that have almost completely disappeared in Korea, one thing came to my mind. It is “Jing-Gum Dah-ri.” “Dah-ri” means “a bridge.” Though it is very difficult to find any of these now, people in Korea are still using the words.

In the old days in Korea, a typical village in the countryside was located at the foot of a small mountain, and had rice paddies and farming fields in front. And at the end of the farming area was a small creek. If you crossed the creek, you would step in a different village. In a word, the creek made a border between two villages.

A bridge traversed the creek. Even though I said a “bridge,” it was not the kind of bridge you might have imagined.

It was a kind of bridge as shown in this picture.

It was a bridge which was made by putting big rocks at the intervals of a person’s stride in the creek. Nowadays, this kind of “Jing-Gum Dah-ri” is very difficult to find, but in the old days, it could be seen in any village.

Even though they have almost disappeared completely, the word, “Jing-Gum Dah-ri,” is still one of the frequently used words.

As its function indicates, it is being used to mean what connects this and that, and also what plays a role to help someone.

There, There! It is the last Sunday of November and December will start in just two days.

December is the last month of 2015 and a “Jing-Gum Dah-ri” to connect 2015 to 2016.

I wish that all of you will have the remaining days of 2015 like a “Jing-Gum Dah-ri” which connects and extends all the joys and happiness in this year to next year and which inspires someone with hope and strength.

가을 주일아침

Daylight savings time  해제로 간밤에 시간이 바뀌자 아침시간이 사뭇 길어졌습니다. 주일아침 습관으로 일어나 성서 한쪽 읽고, 뉴스 검색 좀 하다가 집안을 서성거려도 아내를 깨우기는 아직 이른 시간입니다. 밖은 이미 훤하지만 행여 모처럼 되찾은 한시간을 잠속에서 즐기려는 아내가 깰까봐 조심스레 집을 나섭니다. 평소처럼 왼쪽으로 꺽어 동네 한바퀴를 돌까하다가 오른쪽으로 꺽어 동네 밖으로 나서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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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앞에 작은 개천이 있습니다. White Clay Creek입니다. 봄이면 동네 낚시꾼들이 꼬이는 곳이기도 합니다. 민물 송어를 낚기위해서지요. 봄 낚시철이면 주정부에서 낚시꾼들을 위해 송어를 방사한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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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아침엔 실개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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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가Halloween day였음을 알려주는 장식을 한 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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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식한 집과 이웃집 뒤뜰을 지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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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여년 전후에 이 동네에 새로운 마을들이 들어서기 전에 있었던 옛 집입니다. 지붕에는 파란 이끼가 가득하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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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옛집 앞마당에 놓인 의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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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집앞에 선 고목에 경고문이 붙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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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곳은 개인소유이므로 여기서 사냥, 낚시, 덫 놓는 일 , 무단침입을 금한다는 경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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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차길입니다. 동네 관광용 기차가 다닙니다. 이 동네에서 근 이십년 살면서 실제 기차를 본 적은 한번도 없습니다. 아내는 아이들과 몇번 기차를 타본 적이 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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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시가지를 관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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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길 너머 하얀 건물들은 버섯공장입니다. 녹색팻말은 동네 야구장 안내판이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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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ckessin 시의 구시가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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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교회당이 하나 있습니다. 아마 이 동네에서 제일 작은 교회당일겝니다. 동네에 있는 한인교회와 중국인교회에 비한다하여도 규모가 1/10, 1/20 수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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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ippey 교회당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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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의 연혁입니다. African – American 교회입니다. 흔히들 말하는 흑인교회지요. 미국내African – American 교회형성 과정과 Chippey 교회당의 연혁이 새겨져 있습니다. 현재 이 교회당 건물은 1972년에 지어졌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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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당 옆에 쇠락한 건물이 몇 년째 주인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한때 동네 마을회관(community center)으로 쓰였던 곳입니다. 한인회에서 몇차례 노인잔치할 때 빌려 쓰기도 했던 곳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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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개천이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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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독립기념일이면 불꽃놀이 축포를 쏘아 올리는 옛 체육공원입니다. 야구장과 football(미식축구)장이 있는 곳입니다. 보이는 축구꼴대 뒤로 크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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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은 새로생긴 축구(soccer)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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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규규격 축구장 네곳이 붙어있습니다. 최근 미국 기호 스포츠로 급부상한 축구열기를 느낄 수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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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있는 외길 다리입니다. 이쪽 차 한대 가면 저쪽 차 한대가 지나갈 수 있는 외길 다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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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길다리 아래 개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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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천에 핀 빨간 열매를 보며 옛날 앵두나 까마중 생각을 해본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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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주라도 있는 집인 모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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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땐 입술 까맣게 까마중  따먹던 어린애였는데 어느새 손주 생각할 나이가 되었습니다.

그 때나 지금이나 똑같이 주일아침이라고 부르던 시간인데….

노동절과 중산층

월요일이지만 아침을 느긋하게 맞습니다. 늦잠의 여유도 누려봅니다. 노동절(Labor Day)아침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자영업자 주제에 누리는 혜택이야 전혀 없지만, 월요일 아침을 여유롭게 맞는 즐거움을 누릴 수 있어 감사랍니다.

커피 한잔과 함께 훑어본 뉴스에 눈에 띄는 기사가 하나 있답니다. 저희 동네 신문인 The News Journal에 실린 소상인 전문 리포터Scott Goss 의 “델라웨어주 노동조합원 숫자 줄다”라는 기사입니다.

지난해 델라웨어주 고용노동자 10명 가운데 1명 정도가 노동조합 가입자인데, 이 수치는 지난 25년 이래 최저치이고 10% 미만으로 떨어진 첫번째 사례랍니다. 전체 수치로보면 델라웨어주내에는 38,000명에 조금 못미치는 조합원 숫자인데 이 역시 1989년이래 최저수치랍니다.

오늘 오후에 윌밍턴 시내에서 벌어질 노동절기념 퍼레이드를 이끌 노동조합 리더인Samuel E. Lathem이 하는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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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노동조합이 필요한) 블루칼라의 정의는 새롭게 내려져야한다. 주지사를 비롯한 정치행정관료들은 그들이 수많은 일자리를 창출했다고 말하지만, 그 일자리들의 대부분은 아마존이나 월마트 등의 저임금 서비스업에 치중되어있고, 그 일자리들은 불만족스럽고 블안정한 것들이다.”

Samuel E. Lathem의 말은 노동조합을 이끌었던 전통적 개념의 일자리들이 변화하고 있음을 말합니다.

이런 문제들은 비단 델라웨어주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미국 전국에 해당된다고 합니다. 실제 미국 전체 노동조합 가입자 비율은 11.1%로 최고 정점을 찍었던 1950년대의 30%와 그리고 20%대를 유지했던 1980년대에 비하면 크게 위축된 상황이라는 것입니다.

한때 건강한 미국의 중추 역할을 했던 중산층들은 바로 노동조합을 이끌었던 생산직 노동자들이었다고 합니다. 그들은 비교적 안정적인  임금을 바탕으로  일일 8시간 노동, 주말휴무, 아동노동법, 최저임금제, 고용 의료보험 등 이루어내며 오늘에 이르렀지만, 지금의 변화는 노동조합이 할 일들이 축소되었다는 것입니다.

특히 젊은 세대들이 종사하는 일자리들에서 전통적인 노동조합이 할 일이란 그리 많지 않다는 것입니다.

비록 현재 노동조합 지도자들이 “이즈음 젊은 세대들은 이전 세대들이 오늘날의 노동조건을 이루기 위해 얼마나 많은 투쟁을 했는지 이해하지 못한다”거나, “젊은이들은 노동현장에서 일어나는 착취, 그들이 공정한 임금을 누리지 못하는 현상, 그들이 만드는 노동의 가치 등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라고 푸념하지만 이즈음 젊은 세대들에게는 공염불일 뿐라는 점입니다.

실제 델라웨어주내 노동 일자리의 변화를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1990년 이래 지난 25년 사이에 자동차 생산라인과  Dupont회사의 나이론 제조업체 생산라인의 약 10만개가 넘는 일자리가 사라져버린 것입니다.(델라웨어 주 전체 인구가 100만이 안된다는 점에 미루어 보면 이 수치는 엄청난 것입니다.)

그런데 모든 노동조합들이 침체 상태에 빠진 것은 아니라고 합니다. 공무원노조, 교원노조 등 공공노조들의 조직력과 확장력은 더욱 커져가고 있답니다.

그 까닭을 설명하는 대학교수의 말이 재밌습니다. “자동차업 같은 노동집약적인 산업들은 보따리 싸서 타주나 다른 국가로 이동하면 되지만, 주정부나 학교 등은 이주 불가능하기 때문에….”

철밥통을 위한 결속력을 에둘러 표현한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이랍니다.

이 기사에서 가장 눈에 들어온 대목은New Castle County Executive(뉴캐슬 군청장) Tom Gordon의 말입니다.

“노동조합이 미국의 중산층을 형성했지만, 더 이상 미국의 중산층은 없다. The union built the middle class in the country, but that middle class doesn’t exist anymore.”

바로 이 지점에서 갖는 질문 하나랍니다.

모든 정치인들은 “중산층을 위하여!”라고 말한다는…

세월

“벌써 일년이 지났나?”

오늘 오후 John네 집으로 향하며 아내에게 던진 말이랍니다. 해마다 이 맘때 즈음에 열리는 John네 가든파티에 갔던게 바로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일년 전 일이 되고 말았답니다.

거의 스무 해 가까이에 이르는 연례행사인데 해마다 그 모습은 힘이 빠져 간답니다. John 부부도 어느새 칠순을 넘겼고, 참석자들 대부분이 그 또래 연령대이다보니 해마다 숫자도 줄어든답니다.

0726151504햄과 소시지를 굽고 potluck 음식(손님들이 한 접시씩 해온 음식)들과 맥주를 나누며 이야기를 즐기는 파티인데  참석자들의 평균연령이 높아지다보니 웬지 모르게 해마다 분위기가 쳐져가는 느낌이 드는 것인데, 오늘은 조락한 종가집 잔치처럼 그 느낌이 더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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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호스트 노릇을 하느랴고 분주한 John 내외의 모습을 바라보며 파티가 몇 년은 더 이어졌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보았답니다.

그나마 제게 큰 웃음을 안겨준 할아버지(?) 한 분과의 대화는 큰 기쁨(?)이었답니다.

할아버지 : “어디서 왔니?”

나 : Hockessin  Delaware(제가 사는 동네 이름인데 델라웨어주이고, John네 집은 메릴랜드주에 있기에)

할아버지 : 아니, 니 모국?

나 : 한국

할아버지 : 여기(미국에) 언제 왔는데?

나 : 한 삼십년 됐나?

할아버지 : 그럼 한 열살 때?

나 : 나 지금 예순 넘었거든….

할아버지 : Are you kidding me?!

크크거리며 좋아하는 내게 아내가 던진 말이랍니다.

“그 할아버지 사람보는 눈이 진짜 할아버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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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복(初伏)과 감사

내일이 초복이랍니다. 여름 한철 복더위가 시작되는 것이지요. 제가 사는 델라웨어 날씨는 얼추 서울과 비슷하답니다. 겨울은 춥고 여름은 덥고 봄, 가을은 짧고, 바다가 가까워서 여름철 습도도 높은 편이랍니다.

이즈음은 찌는 날씨의 연속이랍니다.

cats그래도 복이 시작되었다는 말은 가을이 이미 오기 시작했다는 전주이기도 합니다. 초복은 하지를 기준으로 한 것이니 이미 낮은 밤에게 쫓기기 시작했다는 말이고요, 말복이 지나면 입추이니 여름의 기승도 얼마 남지 않았다는 말이지요.

해마다 이맘 때쯤이면 몸보신용 음식들을 챙기는 오랜 관습들이 있지요. 삼계탕에서 시작해서 보신탕에 이르기까지 사람에 따라 기호에 맞는 여름 보양식들을 찾기 마련인 때입니다.

제가 사는 곳에도 사람들이 이맘때면 즐겨찾는 음식이 있답니다. 바로Maryland Crabs 또는Blue Crabs이라고 부르는 게찜요리랍니다.

요리방법이라야 별게 없답니다. 살아 꿈틀거리는 게들을 찜판에 올리고 그 위에old bay seasoning이라는 양념을 듬북 뿌려 찜통에 쪄낸 것입니다.

마침 모처럼 아들 딸과 함께 식사를 나눌 시간이 있어(이젠 아이들이 큰 맘 먹고 동시에 이렇게 시간을 내어 주는 일은 매우 드물답니다)  부모님을 모시고 게찜과 함께 식사를 할 수 있었답니다.

또 한해의 복날들을 건강하게 보내시는 아버님과 어머니께서 저희 부부와 아이들에게 주신 말씀이랍니다.

“그저 감사하며 살아라.”

게으른 연휴

연휴를 맞아 하루 푹 쉽니다.

쉰다는 게 별거인가요? 그저 천천히 시간을 맞는 것이지요.

0704152113d저녁상을 물리고 앉아있노라니 밖에서 폭죽 터지는 소리가 들립니다.

“시작했네!”하는 아내의 소리에 창밖을 내다 봅니다. 동네 4th July 불꽃놀이가 시작되었답니다.

집 바로 뒤에 있는 공원에서 해마다 오늘이면 하는 연례행사이랍니다.

미국 어디서건 낮에는 퍼레이드, 밤에는 불꽃놀이로 독립기념일을 기리는 동네 행사지요.

아이들이 어렸을 때에는 함께 나가 퍼레이드도 보고, 불꽃놀이도 좀 더 가까운 곳에서 구경하곤 했답니다. 그러다 아이들이 커서 그 퍼레이드에 직접 참여하는 것을 보러 달려 나가곤 했었는데….

이젠 다들 컷다고…

아내와 둘이 밥먹고 앉았다가 폭죽소리에 놀라, “아~ 오늘이구나!”한 것입니다.

창문밖을 바라보다가 앞뜰로 나가 사진 몇 장 찍고는 “아이고, 모기 달려드네…”하며 들어왔답니다.

쉬는 방법도 이젠 게을러집니다.

좋게 표현하여 느긋함이랄지…

뉴스를 보니 Lewis Beach라고 델라웨어에서 제법 유명한 해변 도시에서 있었던 오늘 행사 영상이 있어 여기에 덧붙인답니다.

맑은 바람 한 점

21950_15985_3323성서는 삶에 활력을 불어넣어 무언가에 도전하게 하고 희망을 갖게 하는 힘이 있지만, 내 삶의 실체를 파악하고 깊게 침잠하여 나를 찾고자 할 때는 불경(佛經)이 때론 그 도구가 되곤 합니다.

특히 선가(禪家)에서 애지중지하며 선의 진수라 일컫는 벽암록에 기록된 위대한 선사(禪師)들의 법어(法語)들과 게송들을 읽노라면 삶의 자질구레한 걱정들을 건듯 부는 바람에 실려 훅 날려보내는 지경까지도 이르는 것이지요.

성서와 함께 벽암록(碧巖錄)이 제 집 해우소(解憂所)에 놓여 있는 까닭입니다.

거기에 있는 가르침이랍니다.

풍혈(風穴) 연소화상(延沼和尙:896-973)의 화두(話頭)에 설두선사(雪頭禪師)가 달아 낸 노래입니다.

<시골노인 이맛살 찌푸린 것은 그대로 내어 두고/ 삶에 찌든 중생을 위해 나라나 튼튼히 하시게/ 나라를 위해 꾀를 내고 싸우던 장수들은 다 어디 갔는고/ 만리를 떠도는 맑은 바람은 알고 있으리>

수만년 이래 맑은 바람 한 점은 늘 불고 있었답니다.

어떤 하루

스무해 가까이 사는 동네인데도 낯선 곳들이 많답니다. 다람쥐 쳇바퀴 돌 듯 늘 다니던 길로만 다니는 습관 때문이지요.

0618152019집에서 채 3분도 안걸리는 곳에 seafood restaurant 있다는 것을 오늘에야 알았답니다. 평소 거의 드나들지 않는 길목에 위치하고 있거니와, 이따금 오가며 간판을 보면서 fish market인줄만 알았지 음식점을 겸하고 있는 줄은 몰랐었답니다.

오늘 일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아내와 함께 들려 보았답니다.

생굴을 비롯한 각종 찐 해산물이 주종인 선술집 같은 분위기였답니다.

손바닥처럼 환하게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동네에서 전혀 생각치 못했던 분위기를 만났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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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서른 두해를 함께하며 속속들이 환하게 안다고 생각했던 아내와 모처럼 낯선 분위기에서 맥주 한잔으로 조촐하게 하루의 기억을 쌓았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