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과 쉼

‘노동’과 ‘근로’ – 말 하나 어찌 쓸까로 여전히 다투고 있다. 새삼스럽지 않은 오랜 다툼이다.

그런 다툼을 일찌감치 세계 노동자의 날인 May Day를 버리고 9월 첫 월요일을 Labor Day로 정리한 미국은 영악스럽다 할까?

아무려나 부지런히 일한다는 근로 보다야 먹고 살기 위해 들여야만하는 정신적 육체적 노력으로써의 노동이 썩 적합하지 않겠나? 그래야만 ‘쉼’의 뜻이 깊어지는 법. 그게 성서가 쓰여진 까닭이기도 할 터이고.

어찌 부르고, 어떤 날을 기념하던 앞서 고민했던 이들 덕에 연휴를 즐겼다.0903171913a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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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친구들과 밤바람 맞으며 맛난 것으로 배를 채우고, 그저 일상의 이야기로 편안함을 나누며 쉼을 만끽했다. 때로 쉼에 있어 아내의 흥은 필요충분조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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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이 아들 내외는 홀로이신 제 외할버지와 잠시 시간을 함께 했노라 했고, 예비사위는 딸아이를 위해 깜작쇼를 펼치며 즐겁게 했노라는 소식을 전해 왔다.

연휴 쉼을 정리하는 시간, 알량한 찹쌀떡과 아이들의 대견한 소식으로 노부모와 장인에게 건강하심에 감사를 드리며…. 아직은 노동이 필요한 내일을 위해!

쉼 그리고 즐거움

사흘 연휴, 아이들과 함께 산길을 걸으며 시간을 함께 하기로 계획한 것은 달포 전이다. 아이들은 흔쾌히 내 의견에 동조해 주었다. 운전하기에 피곤치 않을 적당한 거리 쯤에 놓여있는 곳들을 물색하다가 결정한 곳은 뉴욕 주 중심에 있는 Ithaca였다.  Cornell 대학교로 유명한 곳이지만, 곳곳에 이 땅의 원주민 부족 가운데 하나인 Cayuga 부족의 흔적이 살아있는 곳이라는 Wikipedia의 설명에 혹하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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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 내내 아내와 아들 내외 그리고 딸아이 모두 흡족해 내가 마냥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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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녀석이 지금보다 조금 나은 조건의 직장으로 옮기련다는 계획과 며늘아이가 새 학기에 맡게 될 학교 아이들의 이야기들을 들으며 나는 지혜로운 인디언 아버지 흉내를 내보기도 했다.

딸아이와 어깨를 닿게 걸으며 아이의 직장 이야기와 설계 중인 결혼 프로젝트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며 세대의 차이, 생각의 차이를 확인해야 했다. 우리 내외의 건강과 은퇴 계획 등을 묻는 딸아이가 고마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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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그렇듯, 여행 내내 아내는 우리 가족의 윤활유였다.DSC02743

함께 모여 먹고 마시는 즐거움 역시 멋진 쉼 이었다. 우리 내외와 아이들이 적당히 타협할 만한 생음악이 연주되는 여행지의 저녁상도 넉넉했다.

무엇보다 어제와 내일 그리고 오늘을 잇는 내 쉼이 참 좋았다.20170703_121911

어느 인디언이 ‘당신’인 내게 남긴 말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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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리에서 일어나면 아침 햇빛에 감사하라.
당신이 가진 생명과 힘에 대해 당신이 먹는 음식, 생활의 즐거움에 대해 감사하라.
만일 당신이 감사해야 할 아무런 이유를 알지 못한다면 그것은 어디까지나 당신 잘못이다.

주일아침, 희년(禧年)을 꿈꾸며

주일아침에 성서 레위기 한 장을 읽는다.

여호와께서 시내 산에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이르라.

너희는 내가 너희에게 주는 땅에 들어간 후에 그 땅으로 여호와 앞에 안식하게 하라. 너는 육 년 동안 그 밭에 파종하며 육 년 동안 그 포도원을 가꾸어 그 소출을 거둘 것이나 일곱째 해에는 그 땅이 쉬어 안식하게 할지니 여호와께 대한 안식이라. 너는 그 밭에 파종하거나 포도원을 가꾸지 말며 네가 거둔 후에 자라난 것을 거두지 말고 가꾸지 아니한 포도나무가 맺은 열매를 거두지 말라 이는 땅의 안식년임이니라..안식년의 소출은 너희가 먹을 것이니 너와 네 남종과 네 여종과 네 품꾼과 너와 함께 거류하는 자들과 네 가축과 네 땅에 있는 들짐승들이 다 그 소출로 먹을 것을 삼을지니라.

너는 일곱 안식년을 계수할지니, 이는 칠 년이 일곱 번인즉 안식년 일곱 번 동안 곧 사십구 년이라. 일곱째 달 열흘날은 속죄일이니 너는 뿔나팔 소리를 내되 전국에서 뿔나팔을 크게 불지며 너희는 오십 년째 해를 거룩하게 하여 그 땅에 있는 모든 주민을 위하여 자유를 공포하라. 이 해는 너희에게 희년이니 너희는 각각 자기의 소유지로 돌아가며 각각 자기의 가족에게로 돌아갈지며  그 오십 년째 해는 너희의 희년이니 너희는 파종하지 말며 스스로 난 것을 거두지 말며 가꾸지 아니한 포도를 거두지 말라. 이는 희년이니 너희에게 거룩함이니라 너희는 밭의 소출을 먹으리라. – 레위기 25장 1-12절, (개역개정본 성서에서)

이즈음 사회보장이나 복지정책에 대한 뉴스나 의견, 주장들을 많이 볼 수 있다만, 솔직히 나는 이 분야에 대해 밝지 않다. 내가 살았던 시대의 한국사회에선 ‘사회보장이나 복지’라는 말은 불온하였다. Social security라는 말에 내가 친숙하게 된 것은 이민 후 세금을 납부하면서 내기 시작한 social security tax 때문이다. 그러나 그 뿐, 사회보장이니 복지라는 문제에 대해 깊이 생각하며 살아오지는 않았다. 근래에 내 집에 많이 배달되는 광고물로는 은퇴연금이나 은퇴 후 자산관리에 대한 것이 으뜸이다. 아마 내 나이 탓일게다. 그러나 그도 그 뿐, 내 개인적인 일로 받아드릴 뿐이지, 사회적 문제로 생각이 나아간 적은 거의 없다. 한마디로 사회보장이나 복지 문제에 대해 무지하다.

이렇게 무지, 무식한 내 식견으로도 성서에서 말하는 안식년과 희년의 선포는 가히 혁명적이다. 혁명이란 이루어 질 수도 있는 일이므로, 혁명이라기보다는 부질없는 망상에 가깝다고 하는 게 나을 듯 하다.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으니 만일 네 오른 눈이 너로 실족케 하거든 빼어 내버리라’는 예수의 말을 실천한 사내가 없듯이, 희년법이란 사람사는 세상에서는 실현 불가능한 헛된 꿈일 수도 있겠다.

레위기를 기록했던 시대에 이미 희년법은 기억과 신앙속에 남아있었을 뿐, 이스라엘 역사나 그 이후 인류사에서 실천되었던 적도 없다. 물론 이즈음 교회 또는 대학, 공무원 사회에서 안식년이니 안식 휴가니 하는 말과 휴가제도를 시행하고는 하지만, 엄밀한 뜻에서 성서에서 선포하는 안식법과는 거리가 멀다. 희년에 이르면 여전히 성서속에만 남아있는 사어(死語)에 불과하다.

이쯤 머리 속에 남아있던 신문기사 한 토막을 떠올린다. 한국 문재인 정부가 소액, 장기연체 채무 를 탕감하겠다는 기사이다.

<문재인 정부가 추진하는 탕감 대상 채권은 1000만원 미만의 10년 이상 연체된 채권이다. 사실상 소멸시효가 완성된 회수 불능 채권으로 볼 수 있다. 그 규모는 약 11조원으로 추산된다. 이미 문재인 정부는 내각이 구성된 이후 국민행복기금이 보유한 회수 불능 채권 1조9000억원을 소각하기로 했다. 대상자는 43만7000여명이며 1인당 435만원 정도의 부채가 사라지게 된다.>

지난 달 조선일보 기사 일부이다. 이 기사에는 <선진국 사례에서도 정부가 나서서 일반 서민들의 부채를 일괄적으로 탕감하는 사례는 거의 없다>는 전문가 의견도 달려 있다.  ‘국가가 나서서 빚을 없애주면 혜택받는 이들은 좋겠지만, 그럼 그 동안 열심히 빚을 갚아 온 사람들은 바보냐?’,  ‘그럼 이제 누가 빚을 갚으려 하겠느냐?’며 사회 전반에 퍼질 도덕적 해이를 염려하는 이들의 의견들도 있다.

“가난으로부터의 해방, 철저한 쉼, 모든 빚의 원상회복, 이자없는 대부, 되무를 수 있는 법” 등등을 선언하고 있는 성서의 희년법은 아주 깊은 전제를 달고 있다. 바로 참회와 자유 정신이다.

<속죄일이니 너는 뿔나팔 소리를 내되 전국에서 뿔나팔을 크게 불지며…> 희년을 선포하는 첫날에 해야 할 일은 바로 희년에 함께하는 모든 이들이 참회하며 뿔나팔을 부는 것이다. 희년(禧年) 곧 기쁨의 해는 히브리말로는 ‘쥬빌리(Jubilee)의 해’이다. 쥬빌리란 ‘수양의 뿔’을 의미하는데, 이것은 희년을 선포할 때 수양의 뿔로 된 나팔을 분데서 유래한다.

개인이나 사회 공동체가 옛 빚을 벗어 던지고 새로운 출발을 할 때 전제되어야 하는 것들이 바로 참회와 속죄, 그리고 서로가 서로를 용납하는 기쁨과 자유의 나팔이다.

하여 현실세계에서 불가능한 유토피아적 발상이라 할 수도 있겠다만, 신앙의 세계에서는 가능하다는 것이 성서의 선포이며, 이를 믿는 이들에게는 역사속에서 이루어 질 수 있는 나아가 현실에서 이루어져 가고 있는 일이 된다.

현실에서 희년이 선포되지 못하는 까닭은 그 뜻이 사람 사는 세상에서 비현실적이기 때문이 아니라 사람들이 실천할 의지가 없기 때문이다. 못가진 자, 빚을 탕감 받은 자들의 참회와 가진 자, 빚의 탕감을 실천할 수 있는 권력자들의 의지가 함께 힘을 모아 희년 곧 쥬빌리의 뿔나팔을 불어 제낄 때 희년은 유토피아가 아닌 오늘의 일로 다가설 수도 있다고 믿는다.

사회보장과 복지 정책의 문외한인 내가 살았고 살고 있는 한국과 미국은 이 분야에선 후진국이라 하겠다. 아마 나 같은 문외한들이 많이 살고 있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그나마 퇴임 이후에도 많은 신뢰를 얻고 있는 오바마나 이제 막 시험대 위에 오른 문재인처럼 ‘사회 정의’에 대한 고뇌 깊은 권력자들과 참회와 속죄를 전제로 서로를 용납하는 시민들이 함께 불어 제끼는 뿔나팔 소리로 세상은 조금씩 희년을 향해 나아가는 것은 아닐까?

아버지날에

아이 사는 모습을 보노라고 모처럼 뉴욕에 다녀왔다. 달포 전에 잡은 계획인데 오늘이 Father’s Day인줄은 그땐 몰랐었다. 하여 엊그제는 아버지와, 어제는 장인과 잠시 시간을 가졌었다. 아침에 집을 나서는데 하늘이 잔뜩 찌푸렸다. 비가 오락가락할 것이라는 예보였다.

올라가는 길에 딸아이에게 만일 비가오면 Metropolitan Museum을, 날이 좋으면 Central Park에 가자고 메시지를 보냈다. 날씨는 걷기에 딱 좋았다. 걷자면 배가 든든해야 하는 법, 좀 늦은 아침 북어 콩나물 해장국으로 배를 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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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tropolitan Museum – 딱 30년 전에 이곳을 왔었다. 그 때는 아버지와 함께 였었다. 아내와 딸과 함께 온 오늘은 나는 그저 쫓아다니면 족했다. 묻고 길을 찾고 안내하는 것은 딸아이가, 돈내는 일은 아내와 딸의 일이 되어 내가 할 일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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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많이 바뀌었다. 우선 그땐 딸아이가 아직 세상에 없었다. 아내는 갓 서른 청춘이었다. 그때만해도 아버지 걸음은 빨랐다. 박물관엔 중국 진나라와 한나라 특별전이 열리고 있었는데 마침 그 전시관을 돌고 있을 때 전화가 왔다. 아들과 며느리가 Happy Father’s Day 문안을 전하는 전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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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드셋을 이용해 전시작품 설명을 들을 수 있는 Audio Guide랄지, 아주 작은 방일지라도 한국관이 따로 설치되어 있는 것 등도 30년 전과 다른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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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무엇보다 놀란 뉴욕 지하철이다. 새로 연장된 구간의 지하철은 서울만큼 깨끗해 놀라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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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요커가 다 된 딸아이는 제법 맛있는 빵집 위치를 꿰차고 있었다. 우리는 빵과 커피를 들고 Central Park의 느긋한 오후를 함께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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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의 춤 – 그 점 하나.

토요일 저녁, 서울 시청 앞 광장에서 열린 6.10 항쟁 30주년 기념 행사 녹화 영상을 보며 세월을 뒤돌아 보았다. 그 때 그 수많은 인파 속에 나도 점 하나로 서 있었다. 그 무더위를 뒤로 하고 그 땅을 떠났다.

그리고 이 땅에서 이민 30년. 참 많이 변했다. 내가 느끼는 그 세월의 모든 변화들을 감사로 받아 드리고 싶다.

환갑 나이가 된 아내가 느닷없이 ‘진도 북춤’을 배워야겠다고 선언한 것은 올 초의 일이었다. 난 ‘저러다 말겠거니’했다. 아침에 일어나 계단을 내려오며 무릎이 시큰거린다는 아내가 그 일을 저지르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30년 전 아내는 한풀이 춤도 탈춤도 추곤했다. 그러나 그건 30년 전의 일일 뿐.

그러다 오늘 나는 왕복 300마일 ‘진도 북춤’을 배우러 가는 아내의 운전기사였다.

두 시간 춤을 배우고 난 뒤 아내가 물었다. “내가 할 수 있을까?”

지난 30년 동안 너나없이 모두가 그 물음으로 살아오지 않았을까?

30년 전 한풀이 춤을 추었던 아내는 이제 어느 날엔가 진도 북춤을 출 것이다.

그랬다. 30년이란 그저 시간의 흐름 가운데 하나의 점일 뿐.

그 점 하나에 대한 감사가 이어지는 밤에.

여유(餘裕)

모처럼 맞은 연휴, 습관으로 이른 아침에 일어나 서성이다가 창문을 여니 새소리와 풍경소리, 후두둑 떨어지는 비소리로 집안에 여유가 가득찬다.

무릇 신앙이란 치열해야 마땅한 일이지만 그 역시 삶의 한 부분일 뿐이니, 때론 소소한 감사에 취해도 족하다. 아침 뉴스 속 세상사가 온통 옳고 그름의 싸움처럼 다루어지지만, 사람살이가 매양 그렇게 치열한 것만은 아니다.

오늘 아침 내가 누리는 이 여유는 아마 엊저녁에 함께 시간을 보낸 벗들에게서 비롯 되었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삶에서 누리는 소소한 감사들에 대한 이야기들을 나누었다. 그 이야기 속에서 신을 확인하고 고백했다. 한 주간 부딪혔던 일상의 치열함은 각자의 몫일 뿐, 서로가 털어놓은 아주 작은 감사에 모두가 여유로웠다.

그 여유로 우리는 이웃 마을 필라델피아로 진출하여 식도락을 즐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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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3년에 개업해 4대 째, 거의 백 년에 가까운 역사를 자랑하는 deli sandwich 식당의 sandwich 크기는 어마무시해서 허리띠를 풀고 즐겨야만 했다. 음식 뿐만 아니라 주인이나 종원업, 인테리어 까지 지나온 세월만큼 여유로웠다.

느긋한 포만을 즐기며 가는 비 내리는 도시의 밤거리를 걷는 재미를 누려본 적이 언제였던지 가물거렸다.

엊저녁 포만이 이어져 여유로운 아침에 장자 한편을 읽다.

무릇 눈과 귀를 밖이 아닌 안으로 통하게 하고 마음의 작용을 안이 아닌 밖으로 쏠리게 하면 귀신마저도 머무는데, 하물며 사람에 있어서는 두말 할 나위도 없지 않은가!

夫徇耳目內通(부순이목내통) 而外於心知(이외어심지) 鬼神將來舍(귀신장래사) 而況人乎(이황인호)

 

봄눈(春雪)에 춘정(春情)을…

봄눈이 사방을 덮은 날, 장자를 읽다. 장자(莊子) 외편(外編) – 추수편(秋水篇)에 있는 이른바 호량지변(濠梁之辯) 이야기.

어느 날 장자와 혜시가 호(濠)라는 강의 다리 위에서 물고기를 구경하고 있었다.

장자가 말했다.  “피라미가 물에서 자연스럽게 유유히 헤엄치고 있는데, 저것이 피라미의 즐거움이라네” 그러자 혜자가 말했다. “자네는 물고기가 아닌데, 어떻게 물고기의 즐거움을 아는가?”

장자가 대답했다. “자네 또한 내가 아닌데, 어떻게 내가 물고기의 즐거움을 모르는지 안단 말인가?” 혜자가 말했다. “나는 자네가 아니니까, 물론 자네의 마음을 모르지. 하지만 마찬가지로 자네도 물고기는 아니니까, 자네가 물고기의 즐거움을 모르는 것도, 확실하지 않은가”

그러자 장자가 말했다. “그럼 처음부터 차례대로 알아보세. 자네가 방금 내게 ‘어떻게 물고기의 즐거움을 알겠는가’라고 물었네. 지금 그 물음에 대답하지. 자네는 내가 이미 알고 있음을 알고서 나에게 물었던 것일세. 그렇다면 물고기가 아닌 내가 물고기의 마음을 알았다고 해도 이상할 것은 없지. 나는 다리 위에서 물고기의 마음을 알았던 것일세”

이 이야기에 대한 자오스린의 해석이다.(자오수린저 허유영번역, 사람답게 산다는 것에서)

논리상으로 보면 이 변론의 승자는 혜시다. 장자는 “물고기가 아닌데 어떻게 물고기의 즐거움을 안단 말인가? 라는 혜시의 논리적인 질문을 회피했다. 불교에서는 “물이 차가운지 뜨거운지는 마셔 본 사람만  알 수 있다”고 했다. 감정이란 온전히 개인적인 것이며 남은 알 수 없다는 뜻이다. 감정이란 온전히 개인적인 것이며 남은 알 수가 없다는 뜻이다. 사람도 그런데 하물며 물고기는 어떻겠는가?

그러나 미학적으로보면 장자가 이겼다. 장자는 자신이 느끼는 자유로움과 즐거움을  꼬리를 흔들며 헤엄치는 물고기에게 투사시켜 물고기가 즐거울 것이라고 미루어 짐작했다.

시인 신기질(辛棄疾; 1140년- 1207년, 중국 남송의 시인)은 “내가 청산을 보며 매우 아름답다고 여기니 청산도 나를 보면 똑같이 느끼겠지”라고 했다. 장자는 큰 덕을 가슴에 품고 세상 만물에게  봄처럼 따뜻한 정을 느꼈다. 그에게는 천지간이 모두 따뜻한 우주였다.

봄눈(春雪)에 춘정(春情)을 느끼던 날에.

莊子與惠子遊於濠梁之上(장자여혜자유어호량지상) 莊子曰(장자왈) 儵魚出遊從容(숙어출유종용) 是魚之樂也(시어지락야) 惠子曰(혜자왈) 子非魚(자비어) 安知魚之樂(안지어지락) 莊子曰(장자왈) 子非我(자비아) 安知我不知魚之樂(안지아부지어지락) 惠子曰(혜자왈) 我非子(아비자) 固不知子矣(고부지자의) 子固非魚也(자고비어야) 子之不知魚之樂(자지부지어지락) 全矣(전의) 莊子曰(장자왈) 請循其本(청순기본) 子曰(자왈) 汝安知魚樂(여안지어락) 云者(운자) 旣已知吾知之而問我(기이지오지지이문아) 我知之濠上也(아지지호상야)

춘설(春雪)

올 겨울은 눈없이 지나가나 했더니, 우수 경칩도 다가고 춘분이 코앞인데 온동네가 하얀 눈으로 덮였다. 눈속에 갇혀 하루를 쉰다. 부지런한 앞집 주인은 벌써 눈을 치우고 있다만, 나는 정지용의 춘설이나 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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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설(春雪)

– 정지용

문 열자 선뜻!/ 먼 산이 이마에 차라.

우수절(雨水節) 들어/ 바로 초하루 아침,

새삼스레 눈이 덮인 뫼뿌리와/ 서늘옵고 빛난 이마받이하다.

얼음 금가고 바람 새로 따르거니/ 흰 옷고름 절로 향기로워라.

옹송그리고 살아난 양이/ 아아 꿈 같기에 설어라.

미나리 파릇한 새 순 돋고/ 옴짓 아니기던 고기 입이 오물거리는,

꽃 피기 전 철 아닌 눈에/  핫옷 벗고 도로 춥고 싶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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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호, 이 즐거움이라니!

2016년은 벌써 지난해가 되었다. 그래, 지난해 일이다. 이제 두 내외가 사는 삶에 거추장스러운 물건들은 좀 정리하고 살자는 생각으로 집안 정리를 했었다.

그 물건들 가운데 버릴까 말까 고민하다가 상자에 넣어 창고방에 밀어넣어둔 것들이 있었다.카세트 테이프, 비디오 테이프, LP 레코드판 등이다.

오래 전 기억들을 담아 둔 물건들이지만, 그것들을 재생해 주는 기기들이 집안엔 남아있지 않았으므로 쓸모가 없었기 때문인데, 그렇다고 버리자니 웬지 마음이 내키지 않았던  탓이다.

그 중 LP 레코트판들은 오래 전 이민 짐 속에 있었던 물건들인데, 이민 이후 정작 전축이라고 부르던 물건을 사본 적이 없으니 그냥 잊혀진 것들이었다.  그것들 대부분은 60, 70년대 노래들 이거나  당시의 영화음악들인데, 곁에 있다는 것이 신기하기도해서 차마 버리지 못했던 것이다.

그러다 며칠 전, Amazon에 들어가 어떤 물건을 찾다가 눈에 뜨인 것이 Nostalgic Entertainment Center라는 축음기였다.

오호, 이런 물건이 있다니! LP 레코드 플레이어는 물론이거니와 카세트 테이프 재생과 CD플레이어, FM, AM 라디오 방송을 들을 수 있는 물건이었던 것이다. 반가운 마음에 아내와 상의도 없이 주문을 했고, 오늘 나는 30년 넘게 짐속에 물건이었을 뿐인 LP 레코트판을 돌려 노래를 듣는다.

오호! 이 즐거움이라니.

소리에 대하여

계절이 깊어가는 늦저녁, 소리에 귀가 열리다.

내 업종 탓인지 더는 듣고 볼 수 없는 소리를 종종 떠올린곤 한다. 어머님이 두드리던 다듬이 소리다. 기억컨대 어머니의 젊은 시절은 노동의 연속이었다. 청석 다듬잇돌을 두드리는 박달나무 두 방망이 소리에 내가 아련하게 잠에 빠져들던 그 순간도 어머니에겐 노동이었다. 직업상 매일 돌아가는 세탁기를 보며 때로 떠올려보는 어머니의 다듬이 소리인데, 솔직히 어머니의 노동보다는 내가 즐겼던 아련한 잠이 먼저 잡히곤한다.

그리고 엊저녁, 모처럼 나선 필라델피아 나들이에서 들었던 소리들이 오래 잊고 있었던 생각들을 깨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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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잊고 있었지만 들을 귀를 열어 담아드린 우리 가락, 우리 소리에는 한(恨)을 풀어내는 영험함이 있었다. 비단 노동이나 일에 지쳐 윤기없고 무력하고 재미없는 삶 뿐만 아니라, 맺힌 한에 억눌려 망가져 피폐해진 삶까지도 다시 일으켜 세우는 흥과 신명의 소리, 바로 우리 소리요 우리 가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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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 찌든 순간만 이어지는 삶이 있으랴! 반짝반짝 빛나는 플릇, 클라리넷이 빚어낸 소리와 떠받치는 피아노 소리에는 일상과 축제, 위로와 감사가 담겨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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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황(苼簧)이 만들어내는 소리는 새로운 세상이었다. 들숨과 날숨으로 뽑아내는 소리는 하늘의 소리, 땅의 소리, 사람의 소리가 한데 어우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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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리소리를 들으며 이즈음 들리는 흉흉한 소리들과 한맺힌 모든 소리들을 잠재우는 만파식적(萬波息笛)이었으면 바램도 가져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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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6기억저장소에서 세월호 유가족이 보내온 영상을 통해 나의 소리, 너의 소리, 우리의 소리가 어우러지는 판은 마땅히 난장(亂場)이어야 했고 태평소와 사물놀이패들은 그렇게 판을 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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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 희생자 가족들이 세월호를 기억하기 위해 운영하는 416기억저장소 후원을 위해 필라세사모가 펼쳤던 소리마당은 잊고 살았던 것들을 그렇게 깨우쳐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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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소리의 여운이 가시지 않은 가을 아침에 우리세대의 시인 김정환이 노래했던 사랑을 읊조리며.

(행사를 위해 수고한 모든 이들에게 다시 큰 박수를 보내며)

가을에

– 김정환

우리가 고향의 목마른 황토길을 그리워 하듯이/ 내가 그대를 사랑하는 것은/ 그대가 내게 오래오래 간직해준/ 그대의 어떤 순결스러움 때문 아니라/ 다만 그대 삶의 전체를 이루는,/ 아주 작은 그대의 몸짓 때문일 뿐/ 이제 초라히 부서져 내리는 늦가을 뜨락에서/ 나무들의 헐벗은 자세와 낙엽 구르는 소리와/ 내 앞에서 다시 한번 세계가 사라져가는 모습을/ 내가 버리지 못하듯이/ 내 또한 그대를 사랑하는 것은/ 그대가 하찮게 여겼던 그대의 먼지, 상처, 그리고 그대의 생활 때문일 뿐/ 그대의 절망과 그대의 피와/ 어느날 갑자기 그대의 머리카락은 하얗게 새어져 버리고/ 그대가 세상에서 빼앗긴 것이 또 그만큼 많음을 알아차린다해도/ 그대는 내 앞에서 행여/ 몸둘바 몰라 하지 말라/ 내가 그대를 사랑하는 것은/ 그대의 치유될수 없는 어떤 생애때문일 뿐/ 그대의 진귀함 때문은 아닐지니/ 우리가 다만 업수임 받고 갈가리 찢겨진/ 우리의 조국을 사랑하듯이/ 조국의 사지를 사랑하듯이/ 내가 그대의 몸한 부분, 사랑받을 수 없는 곳까지/ 사랑하는 것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