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과 축복

노동절 연휴가 끝나간다. 여느 해 같았다면 세탁소가 활기를 띄는 계절을 맞아 마음이 분주해지는 시기이지만 올해는 그럴 기미가 전혀 없다. 가게 일은 그저 강태공이 되어 세월을 기다릴 뿐이다.

연휴 사흘 동안 빡센 몸 노동을 즐겼다. 나 혼자 들기 버거운 나무 목재들과 자갈과 모래 그리고 돌덩어리들과 땀 흘리며  씨름하며 보냈다.

지난 한달 동안 틈 나는 대로 땅을 파고 고른 땅에 지주를 세워 deck을 만들고, 자갈과 모래를 다진 땅 위에 pavestone을 깔아 patio 를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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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휴 계획대로 정말 잘 쉬었다.

삼시 세끼와 간간히 특식까지 내 쉼의 원천이 되어준 아내에게 감사다. 한국학교 동료가 주었다는 포도는 쉼의 농도를 더해주는 설탕물이었다.

체질에 맞지 않아 잘 입에 대지 않던 맥주의 시원한 참 맛도 많이 즐겼다.

노동이 곧 쉼이고 창조이자 사랑이어야 한다고 외쳤던 이가 있었다. 신학자 도로테 죌레 (Dorothee Soelle)다.

신과 내가 노동을 통해 하나가 된다는 것은 뭔 크고 엄청난 일들이 아니다. 신과 나 사이에 중간자 없이 일에서 쉼을 맛보고 그 일을 통해 사람살이 기쁨을 맛본다면 그게 바로 천국이다.

쉼이든 일이든 신 앞에서(또는 신 앞에 선 내 모습에서) 하루의 즐거움을 느낄 수만 있다면 삶은 축복이다.

들길에서

오랜만에 길을 걷다. 들새 소리에 빠져 걷는 길에도 마스크 착용은 필수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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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엔 이미 여름이 내려 앉았다. 겨울도 봄도 없이 맞는 초여름길을 걸으며 땀을 훔친다.

아침에 꽃모종을 옮겨 심으며 매사 얼뜨기인 내 모습을 보았다. 자연은 그저 시간을 타고 함께 노는 것인데 내 하루 일과와 고작 알량한 귀동냥 알음알이에 빠져 꽃모종을 다루고 있는 내 모습이 우스었다.

들꽃들도 나를 보고 웃는다.

모처럼 땀 흘려 들길 걸으며  시간 타고 노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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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타의 집

부부가 모두 은퇴한 이후 내 가게 출입이 아주 뜸해진 Gaskin씨가 자기 집에서 여는 성탄 파티에 초대한 것은 몇 주 전 일이었다. 그리고 어제 오후 그는 일부러 내 가게를 찾아와 저녁에 있을 파티 참여를 확인했다. 사실 그 몇 주 사이에 같은 시간에 열리는 다른 송년모임이 생겨 망설이고 있던 터였다.

예전에 비해 거의 발길 끊긴 손님이 파티 준비로 여러모로 바쁠 시간에 구태여 찾아와 함께 하자는 말에 미안함과 고마움이 겹쳐 우리 부부의 발길은  Gaskin씨네로 향했다.

해마다 이맘 때 벌어지는 Gaskin씨네 파티는 동네 사람들은 물론이거니와 두 부부의 직장 동료 및 동호회 모임 식구들에 이르기 까지 많은 이들이 함께 하는 제법 큰 성탄 잔치이다. 우리 부부는 Gaskin씨 부부가 애용하는 세탁소 주인이로서 이 잔치에 여러 해 동안 함께 했었는데, 지난 해는 건너 뛰었다.

부부 모두 이미 은퇴한 후 시간이 흘렀건만 많은 전 직장 동료들을 비롯해 동네 사람들 까지 족히 백여명이 넘는 이들이 엊저녁에도 함께 했다.DSC09270 DSC09289

부부는 현관에서 일일이 손님들을 맞았다. 그리고 먹고 마시고 맘껏 떠들고 노래하고 춤추며 흥겨운 저녁 시간을 함께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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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르간 주자이자 싱어인 산타의 추임새에 따라 신나게 두드리는 드럼 주자, 이어지는 색스폰 주자의 소리와 기타를 이빨로 튕기는 신공을 보여준 기타리스트까지 잔치자리 흥의 중심은 단연코 밴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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밴드 멤버들 가운데 가장 분주한 이는 이 밴드의 트럼펫 주자인Gaskin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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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흥겨운 잔치자리에서 내가 찾아낸 파티의 주인공은 산타들이었다.

남녀노소와 인종을 불문한 수많은 산타들이 어제 잔치 자리에 주인공이 되어 함께 했다.  산타들을 초대한  Mrs. Gaskin에 따르면 그 산타들 역시 하나하나 일일이 초대했다고 한다. 그녀는 알라스카, 플로리다 등지에서  부부가 여행 중에 만난 산타들을 하나하나 모셔 왔다고 친절한 설명을 곁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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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녀에게 말했다. ‘여기는 가히 산타들의 집’이라고.

그리고 오늘, 이즈음 읽고 있던 책 한 권 마무리하며 덮기 직전에 만난 글에서 Gaskin씨 성탄 잔치의 뜻을 곱씹어 보다.

<성서가 말하는 영원한 생명은 죽지 않고 끝없이 연장되는 삶의 시간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믿음과 희망과 사랑 안에서 이루어지는 새로운 삶을 가리킨다. 그것은 시간의 끝없는 연장이 아니라 하나님 안에서 이웃과 교통하며 하나님의 의와 사랑을 세우는 삶의 깊이 내지 ‘삶의 질’을 말한다. …. 이 세상의 연약한 피조물에 대한 사랑 안에서 영원한 생명이 현재적으로 경험된다.>

Gaskin씨 부부와 그들과 늘 함께 사는 산타들이 머무는 집에서 맛 본 사랑을 생각하며.

2019년 성탄의 계절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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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풍놀이

알고 싶은 것을 알려주는 선생이 있다는 게 얼마나 기쁜 일인지! 게다가 알고  난 후, 맛 본 기쁨이 가늠 못 할 정도로 클 때 이어지는 감사는 또 얼마나 큰지!

몇 주 전 ‘이 맘 때 가을을 즐길 만한 가까운 곳 추천 좀 해 주세요.’라는 내 부탁에 이길영 선생님은 흔쾌히 주저없이 몇 군데를 소개해 주셨다. 그 중엔  세 시간 정도 운전해야 하지만 으뜸으로 치신 뉴욕주에 있는 Minnewaska State Park가 있었다.

이선생께서는 세 시간이라고 하셨지만 내가 사는 곳과 내 운전 실력으로 따져보니 네 시간에서 네 시간 반은 족히 걸릴 거리였다.

구글링을 통해 살펴보니 여간 매력적인 곳이 아니었다. 게다가 딸아이와 함께 가을 길을 걸어 볼 생각을 하니 딱 안성맞춤인 곳이었다. 맨하턴 도시 생활을 하는 아이에게 좋은 선물이 되겠다는 뜻이었는데,  문제는 그게 나 혼자만의 생각이었을 뿐.

아내는 즉답을 했고 이틀을 기다려 얻은 딸아이의 응답 역시 ‘허락하마!’였다.

어제 어머니는 ‘그래, 먼 길 다녀 온다고…’하시며 노자돈 백불을 내미셨다.

그렇게 다녀 온 일박 이일 가을 단풍놀이.

두어 시간 눈이 닿는 곳마다 가득 찬 가을 길을 달려 이르른 공원에서 세 시간여 아내와 딸과 함께 걷던 가을 길은 그저 아름답고 황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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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나이 또래에 겪을 수 있는 아픔을 잘 이겨낸 딸아이와 이제 사십 년을 바라보는 함께 한 세월 그 숱한 지긋지긋한 이야기들을 낙엽에 묻고 언제나 밝은 아내와 함께 걸은 가을 길, 그저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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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다녀왔다는 내 전화 인사에 어머니는 ‘일찍 집에 들어 와서 좋구나!’ 하셨다.

그래 이길영 선생님께 특별히 드리는 감사이다.

나를 지탱해주는 세 여자, 어머니 아내 그리고 딸을 뒤쫓아 걷는 가을길에서 느낀 그 아름답고 황홀한 시간들에 대하여.

번잡한 아울렛 상가에서 아내와 딸을 뒤쫓으며 맛 본 흡족함은 덤으로 얻은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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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

숲길만 찾아 다니지 말고 꽃길도 좀 걸어 보란 뜻이었는지 모를 일이다만, 아내가 Longwood gardens membership card를 선사했다.

이젠 Longwood garden은 마음만 먹으면 일년 동안 공짜로 드나들 수 있는 내 정원이 된 셈이다.

아내가 교회 가는 시간에 맞추어 나는 내 정원을 걸었다. 집에서 20여분 거리, 드라이브만으로도 쉼을 만끽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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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긋하게 천천히 느린 걸음으로 쉼을 느끼며 걷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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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렴, 걷기엔 잘 가꾸어진 꽃길보다 들길과 숲길이 제 격이다. 단풍나무 숲길에 빠지다. 이 길을 아내와 내 아이들과 함께 걸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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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기 맥주와 protein bar로 땀을 식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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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정원을 노니는 산책객들 중 젊은이들 보다 노부부들에게 자꾸 눈길이 가는 까닭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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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다 내 연식 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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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얄석에 앉아 즐긴 분수쇼는 정원 주인이 누리는 덤일 뿐.

 

어느 하루

‘오늘 교회하고 예배 어땠어?’ 엊그제 딸아이가 던진 물음이다.

어제 낮에 내 일터로 전화를 한 장인은 말했다. ‘외출하고 돌아오니 뭔가 좀 이상해. 여기 반란이 일어난 거 같아!.’ 장인이 장기 요양원에서 꼼작 않고 누워 계신지는 이미 몇 달이 지났다.

엊저녁엔 일을 마치고 돌아와 귀가 전화 인사를 드리는 내게 어머니가 물었다. ‘너 오늘 일 안나갔었니? 아까 너희 집에 들렸더니 네 차가 집 앞에 있더라.’ 어머니 역시 누군가의 도움없이 집을 나서지 못하신지 여러 달 째이다.

장인이나 어머니나 이즈음 정신이 많이 오락가락 하신다. 때 되어 겪는 수순이다. 아직 정신이 맑으신 아버지도 기분이 크게 오락가락 하시기는 마찬가지다.

이런 저런 연유로 딸 아이에게 한 번 간다 간다 하면서 미루다 큰 맘 먹고 길을 나선 게 엊그제였다. 모처럼 나선 길에 아들 내외가 함께 했다. ‘올라 가마!’라는 내 말에 딸아이가 ‘어디 가고 싶은데 있느냐?’고 물었었다. 나는 아이가 다니는 교회엘 한번 가보고 싶었다.

아들 내외가 다니는 교회엔 가본 적이 있지만 딸아이가 다니는 교회에 대핸 그저 아이의 이야기만 들었을 뿐이었다.

멋진 brunch에 이어진 교회 안내, 예배 후 Brooklyn Bridge 걷기와  인근 상가와 강변 안내 그리고 풍성한 저녁 식탁, 오가는 교통편 까지 딸아이의 준비와 배려는  매우 세심하고 고왔다.

서울내기인 내게 도시는 어느새 낯선 곳이 되었다. 높고 복잡하고 소란스러움 속에서 졸음이 자꾸 밀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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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사는 곳엔 어디나 사람들의 일상이 있고, 그 일상에 녹아 있는 아름다움도 있을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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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복잡한 도시에서 우리 가족이 저녁상을 함께 나눈 곳은 ‘초당골’이었다. 딸아이는 그 ‘초당골’에서 내게 물었었다. ‘오늘 교회하고 예배 어땠어?’

소주 한 잔에 풀어진 나는 아이들에게 말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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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빠 내외가 다니는 교회나 네가 다니는 교회 예배 형식과 분위기는 솔직히 아빠 취향은 아니란다. 그런데 그게 옳고 그름의 문제도 아니고 중요하지도 않다고 생각해. 믿음을 표현하는 방식엔 정말 여러가지 많은 것들이 있겠지. 그 여러가지들을 인정하면서 자유로워지는게 진짜 믿음이라고 아빠는 생각해. 주일 하루 예배가 일주일 동안 너희들이 사는 일에 기쁨이 된다면 좋겠어. 그런 뜻에서 오늘 참 좋았어.’

흔쾌히 하루를 함께 한 아들과 며느리, 딸아이가 고개를 끄덕여 주어서 얼마나 고마웠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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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그렇듯 웃음은 아내로 부터 이루어졌던 하루를 새기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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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5월 19일

펜주 Kennett Square에 있는 Anson B. Nixon 공원 길을 걷다.

오월 햇살 가득한 숲속 색깔은 참 고았다. 빛과 함께 속삭이는 새소리, 물소리, 이따금 마주하는 얼굴들이 건네는 밝은 목소리에 한 주간 노동의 피로를 씻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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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가에서 만난 가족들의 모습은 모두가 정겹다. 이따금 홀로 이고 싶은 충동은 어린 오리에게도 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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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외극장에서는 성당 식구들이 드리는 미사가 한창이었다. 야외 행사 안전을 위해 경찰들이 배치되고 구급차도 대기하고 있다. 미사가 진행되는 동안 누군가는 신자들을 위한 먹을 거리와 아이들을 위한 놀이를 준비하고 있었다. 무릇 모든 신앙은 지금을 벗어날 수 없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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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나절엔 필라에서 있은 ‘제 39주년 5.18 민주화 운동 기념식 및 강연회’에 참석하다. 가까이에 이런 행사를 준비하는 이들과 참여하는 이들이 있어 고맙다.

때때로 학자 또는 전문가들의 이야기는 목사님들의 설교 만큼이나 공허할 때가 있다. 허나 그 역시 숲 속 색 고운 빛깔의 하나 일수도 있을 터.

오늘 하루에 감사.

게으른 하루

얼마 만일까? 이 게으름은.

창밖 풍경을 내다 본 일 말고는 한 일이 없다.

낮잠을 탐하거나 먹고자 손을 놀리지도 않은 게으른 하루였다.

늦은 저녁 안부를 묻는 딸아이에게 한 말.

“아빠가 정말 아무 것도 안하고 하루 해를 보냈네.”

딸아이의 응답.

“ Oh So Good!”

숲길

봄과 여름 사이의 빛깔. 오늘 숲길이 입고 있던 옷 색깔이다. 비록 한 시간 남짓 짧은 시간이지만 아무도 마주치지 않고 홀로 걷는 숲길에서 맛보는 기쁨은 참 크다.

한 주간 쌓인 내 삶의 피로 위에 세상 뉴스들이 얹혀주는 무게를 이고 걷다가 숲의 여린 빛깔과 고목에 깊게 패인 주름이 주는 위안에 내 걸음은 경쾌해 진다.

솔직히 교회에 가거나 내 방에 앉아 기도를 드리는 것보다 숲길을 걸을 때 나는 신에게 더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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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하늘

일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병원에 계신 장인, 재활원에 계신 어머니, 노인 아파트에서 어머니를 기다리시는 아버님 두루 얼굴 뵙고 오는 게 이 번 주 일과이다.

그렇게 집으로 돌아 오던 길, 쉼터를 찾아가는 거위 떼들과 오늘 할 일 마치고 지는 해를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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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 되면 가야 하는데…’를 입에 달고 사시는 세 노인들과 지내는 이즈음 내 생활을 위하여 멀리 호주에 계시는 홍목사님이 보내주신 60여권의 도서 목록을 받다.

도서목록의 이름은 <죽음 앞에서의 삶에 대한 참고 문헌>.

목사님께서 도서목록을 만든 까닭을 설명하는 말이다.

< 이 참고 문헌들은 ‘시드니 은퇴 목회자 모임’에서 하고 있는 ‘죽음 – 제 3의 이민 ’이라는 주제로 진행하는 ‘성서에 나타난 인물들의 죽음’에 관한 설교 자료를 준비하기 위하여 만든 도서목록…>

‘죽음 – 제 3의 이민 ’이라는 말을 곱씹다.

저녁 하늘 지는 해와 쉼터를 찾아가는 거위 떼들이 주는 푸근한 안식처럼 죽음을 바라볼 수 있다면… 삶은 마지막 순간까지 아름다운 것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