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으로

오늘로 열흘째 어머님께서 지내시는 곳은 노인병동입니다. 2 1실인데 그 사이 어머님 옆 침대는 세 분이 들어왔다가 나가셨습니다.

어제 집으로 돌아가신 백인 할머님은 연세가89이셨는데 참 곱게 늙으셨답니다. 다만 치매기가 좀 있으셨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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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께 오후에 병실에 들렸을 때 할머님이 저를 보자 환하게 웃으시며 말씀하셨지요. “Hey baby! I’ll go home tomorrow!” 정말 세상 부러울 것 없는 얼굴이셨답니다.

잠시 후, “내가 집으로 가기 전에 이거 다 부셔버리고 갈거다갑자기 화난 얼굴로 할머님께서 소리치셨답니다.(소리라고 해보았자 모기소리지만….) 환자들이 모두 노인들이다보니 행여 의자나 침대에서 떨어지거나 넘어질까보아 환자가 움직여 침대나 의자바닥과 몸이 밀착되지 않으면 요란한 소리를 내는 방석을 가르키며 하신 말씀이었지요.

집에 돌아가셔보았자 특별히 하실 일도 없을 것이고, 간호할 누군가가 옆에 붙어있지 않으면 안되는 상태이시고, 차라리 병원에계시는 것이 낫지 않을까 하는 상태이셨지만 집으로 가시는 것이 그리 소원이셨던 모양입니다.

오늘, 어머님의 옆침대에는 말씀조차 못하는 거구의 백인 할머님이 새로 들어오셨습니다.

그리고 어머님께서 하신 말씀이었지요.“얘야, 집에 가고 싶다.”

바로 일상이지요. 일상에 대한 감사오늘 어머님이 제게 주신 가르침이랍니다.

봄햇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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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을 건강하고 평온하게 그리고 만족스럽게 만들어줄 묘약은 무엇일까? 나의 만병통치약은 아침 공기를 흠뻑 들이마시는 것. 아, 아침 공기! 만약 사람들이 하루의 원천인 이 새벽에 아침 공기를 마시려 들지 않는다면, 우리는 아침 공기를 병에 담아 가게에서 팔기라도 해야 하리라. 아침으로 가는 예매표를 잃어버린 이 세계의 모든 이들을 위하여>

 

<어떤 대변혁이 아무리 세상을 들쑤셔놓을지라도, 황혼 무렵의 서쪽 하늘과 같이 그렇게 순수하고 고요한 것을 매일 바라볼 수 있는 사람은 축복받은 사람이리라>

 

<아침과 봄에 얼마나 공명하는가에 따라 그대의 건강을 가늠해 보라. 자연의 깨어남을 보고도 그대 속에 아무 반응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이른 아침 산책을 해도 잠이 달아나지 않는다면…., 이른 아침 가장 먼저 귓가를 두드리는 새의 노랫소리에도 전율을 일으키지 않는다면…. 깨달으라. 그대 인생의 봄과 아침은 이미 지나가 버렸음을. 비록 맥박은 느낄 수 있을지 몰라도>

 

<천국은 우리 머리 위뿐만 아니라 우리 발 아래에도 있는 것을…>

 

<그대의 삶이 아무리 가난하다 해도 맞부딪혀 살아나가라. 회피하거나 욕하지 말라. 그대가 나쁜 사람이 아니듯 삶도 그렇게 나쁘진 않다. 그대가 가장 풍요로울 때에는 삶은 가장 초라하게만 보인다. 불평쟁이는 낙원에서도 불평만 늘어놓을 것이다. 자신의 삶을 사랑하라. 삶이 아무리 가난하다 해도. 그렇게만 한다면 그대가 비록 형편없이 가난한 집에 있다고 하여도 즐겁고 가슴 떨리게 멋진 시간들을 보낼 수 있으리라. 황혼의 빛은 부자집 창문뿐 아니라 가난한 자들의 집 창문도 밝게 비춘다. 또한 초봄에는 가난한 자들의 집앞에 쌓인 눈도 녹는다. 그대가 평온한 마음을 가지기만 한다면, 거기서도 궁전에서처럼 즐겁고 만족스런 삶을 살 수 있으리라>

 

메사츄세스 콩코드강변의 철인(哲人)이자 미국의 정신인 헨리 데이빗 소로우(Henry David Thoreau)는 살아생전 딱 두 권의 책을 내었지만 읽어주는 이들이 없었다. 첫 번째 책은 겨우 200여권이 팔렸을 뿐이고 두 번째 책인 <월든>이 그나마 이천부정도가 팔렸지만 그러기에는 5년이 걸렸다.

 

삶은 가난하였으나 그는 삶을 사랑하였다.

 

사람들이 성공적이라고 칭찬하고 그렇게 생각하는 삶은 단지 한 종류이다. 우리는 왜 다른 것들을 희생시키고 한 가지만을 과대평가해야 하는가?” 살아있을 때 그가 던진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죽은 뒤 그에게 돌아갔다. <소로우의 삶은 도덕적 영웅주의의 표본이자 정신적 차원의 삶을 끈질기게 추구한 표본으로서 미국인의 삶에 깊고 넓게 영향을 끼쳤다>는 평()으로.

 

일에 쫓기고 빌(bill)에 쫓기며 살아가는 이민(移民)들에게도 봄 햇살은 다습게 다가온다. 비록 쫓기며 살아가는 삶이 힘에 겨워도, 가난한 삶이 못내 버겁더라도 하늘을 쳐다볼 수 있는 한 삶은 살만한 것이다.

 

탓과 덕분

tree탓과 덕분이라는 말이 제대로만 쓰이는 세상이면 좋겠습니다. 아마 세상이 많이 달라질 것입니다.

<네 탓>과 <내 덕분>뿐이 아니라 <내 탓>과 <네 덕분>이 먼저인 세상 말입니다.

그게 사람사는 세상이 아닐까요? 탓과 덕분이라는 말이 제대로만 쓰이는 세상이면 좋겠습니다.

 

Alice May Douglas의 시 한편을 되뇌이며…

 

 

Who Loves the Trees Best? 

  – Alice May Douglas

 

 Who loves the trees best? “I,” said the Spring.

 “Their leaves so beautiful to them I bring.”

 Who loves the trees best? “I,” Summer said.

 “I give them blossoms, white, yellow, red.”

 Who loves the trees best? “I,” said the Fall.

 “I give luscious fruits, bright tints to all.”

 Who loves the trees best? “I love them best,”

 Harsh Winter answered, “I give them rest.”

 

나무를 제일 사랑한 사람은?

 

나무를 제일 사랑한 사람은? “나!” 봄이 말했다.

 예쁜 옷을 입혀 주는 것은 바로 나니까.”

 나무를 제일 사랑한 사람은? “나!” 여름이 말했다.

 “나무에게 희고. 빨갛고 노란 꽃들을 주는 것은 바로 나니까”

 나무를 제일 사랑한 사람은? “나!” 가을이 말했다.

 “맛있는 과일과 화사한 단풍은 내가 주는 걸…. .”

 나무를 제일 사랑한 사람은? “내 사랑이 제일 클 걸…”

 추운 겨울이 대답했다, “난 나무들에게 쉼을 주지.”

 

이 아름다운 날들

“강둑 위를 눈부시게 비추는 햇볕의 따뜻함을 느낄 때, 노란 모래 밑에 숨어 있는 검붉은 흙을 바라보고, 마른 잎의 살랑거리는 소리와 강가에서 눈이 녹아 떨어지는 소리를 들을 때, 나는 내가 영원의 상속자임을 느낀다. 자연 속에서 느끼는 영원성은 나에게 그대로 계승된다. 봄이면 봄마다 나는 얼마나 많이 이런 경험을 했던가! 나는 점점 자신이 생긴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자연의 영속성과 회복성이 바로 나 자신에게서 느껴지기 때문에.”<쏘로우가 1856년 3월 23일에 쓴 글>

쏘로우의 글을 처음 만난 것이 벌써 사십여년 전 일이다. 우스운 기억이지만 그의 글 “시민 불복종(Civil Disobedience)”은 당시 한국에서는 읽을 수 없었던 판금도서였다. 알음알음으로 그 복사판을 구해 만났던 쏘로우에 대한 나의 기억은 사회운동가이었다. 그리고 이제 이순(耳順)에 이르는 나이에 다시 만난 그는 명상가이자 시인 나아가 노장(老莊)에 가까운 자연주의 사상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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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7년 매사추세스주 콩코드에서 태어난 쏘로우는 하버드대학을 졸업한 수재였다. 졸업 후 고향 콩코드로 돌아와 교사로 취직하지만 며칠 후 학생들에 대한 체벌을 거부하고 사직한다. 아버지가 경영하던 연필공장에서 잠시 일하던 그는 28살 되던 1845년 초봄 월든 호숫가로 들어간다.

그 곳에 한 칸짜리 통나무 집을 짓고, 단 하나의 침대와 세 개의 의자를 놓고 홀로 문명을 등진 숲속에서 외롭게 살다, 마흔 다섯의 이른 나이에 간 기인(奇人)이었다. 그러나 그는 결코 그 의자에 멍하니 앉아 있다가 간 것이 아니다. 그는 그 의자에 앉아 깊이 사색하면서 매일 글을 썼다. 비록 그의 생전에 그가 쓴 글들이 주목받지 못했고 경제적으로 아무런 성공을 이루지 못했지만 이제 그의 책 <월든>은 19세기에 쓰여진 가장 중요한 책으로 평가받고 있다.

작가 E. B. White는 “만약 우리 대학들이 현명하다면 졸업장 대신 <월든>을 한 권 씩 주어 내보낼 일이다”라고 극찬하였다.

1846년 멕시코전쟁이 일어나자 그 전쟁과 노예제도에 반대하여 인두세(人頭稅) 납부를 거부하던 쏘로우는 감옥에 수감된다. 이 때 쓴 연설문이 바로 ‘시민불복종’이었다. 인도의 성자 간디가 “나는 쏘로우에게서 한 분의 스승을 발견했으며 ‘시민불복종’에서 내가 추진하는 운동의 이름을 땃다.”고 한 글이 바로 이것이다.

“내가 영원의 상속자임을 느낀다.” – 신이였던 예수말고 누가 감히 이런 말을 할까? 말의 아름다움이여! 자연과 함께했던 그 아름다운 날들의 쏘로우가 오늘 여기에 살아있음 아닌가!

이른 봄날 늦저녁, 노을에 반달 걸리고 이름모를 새들 지저귀는 이 아름다운 날들의 소중함이여.

비록 미룬 일 태산이고 내일이면 또 다시 아둥바둥 땀 흘릴 이민일지라도…

신이 내게 허락한 세상과 내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하는 이 아름다운 날들이여!

여유(餘裕)

입춘도 지나고 내일 모레면 대동강물도 녹는다는 우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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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한 번의 겨울이 이렇게 지나간다. 세월이 참 빠르기도 하여라. 주(週)단위의 이 곳 생활이 시간의 빠름을 더욱 재촉한다. 엊그제가 일요일이었던 것 같은데 벌써 한 주일이 지났다. 그 빠른 시간에 쫓기며 살다보면 무엇 하나 제대로 마무리 짓지 못하고 엄벙덤벙 생활의 켜만 늘어간다. 한참 일할 나이에 삶의 여유 운운은 자못 사치일 수도 있지만 때론 조금은 쉬었다 갔으면 하는 생각 간절하다.

업종에 따라 생활양식과 시간 씀씀이가 다르겠지만 영세 소규모 업종이 주를 이루는 많은 동포들의 삶은 큰 차이없이 엇비슷 할 것이다. 세탁소 10년은 초등학교 시절 생활계획표보다 더욱 단순하게 하루를 묶고 생활에 틈을 주지 않는다.

급한 성정(性情) 탓도 한 몫이지만 눈뜨기 무섭게 고양이 세수하고 가게로 나가 보일러를 켠다. 빨래를 하고 뒷 일 처리하다 이따금 아내가 자리를 비우면 손님들과 싱갱이도 하다가 옷배달 하다보면 어느덧 하루가 맥없이 끝나 버린다. 게다가 동네 일 한답시고 이렇게 저렇게 나선 일에 짬을 내다 보면 그야말로 하루 해가 눈 깜작할 사이다. 하여 이렇게 짬 내는 일조차 내겐 공연한 사치가 아닐까하는 생각도 해 보는 것이다.

가까이 계시는 부모님들께 얼굴 한 번 제대로 비추지 못하고 매일 전화 인사드리는 것으로 자위하고, 결혼 15주년 때 아내에게 약속한 여행계획은 20주년으로 미루었건만 눈 앞에 다가 온 20주년도  무망할 것이라는 예감이고, 아이들 내 품 떠나기 전 함께 해야 할 일들도 그냥 늘 계획일 뿐 하루 해, 일주일과 함께 또 내일로 미루어지기 일쑤이다.

수녀 이해인 시집을 들척이다가 두 아이들을 부른 것은 달포 전 주일 저녁이었다. 그녀의 영역시 몇 편을 골라 아이들에게 타자를 부탁하였다. 잠시 후 아들 녀석은 제 애비 부탁이라 마다치 못하고 억지로 건성건성 타자한 시편들을 건냈으며, 딸아이는 제법 맵시있는 활자체까지 선택하여 예쁘게 일을 마치었다.

딸아이와 마주 앉아 포스터용지에 시편들을 오려 붙이고 지난 가을 앞뜰에서 주어 온 잘 마른 낙엽 두어장과 아내가 벽단장한 마른 장미 두 가지를 가지런히 붙여 근사한 시화지를 만들어 이튿날 가게 카운터 옆 빈 벽에 딸아이와 함께 만든 작품(?)을 전시했던 것이다. 간혹 손님들이 ‘누가 쓴 시냐?’, ‘참 좋다’며 복사해 달라고 하며 관심을 보일 땐 내가 제법 대견한 생각을 하였군 하며 자족하기까지 하였던 것이다.

토요일 아침, 아내는 한국학교 교사 일로 자리를 비우고 빨래하랴, 손님 맞으랴 반은 얼 빠져 일하는데 손님 한 분이 기다리는 사이 그 시편들을 읽다가 <내 혼에 불을 놓아/ Kindle my spirit>라는 시를 가르키며 눈물까지 글썽이면서 “어쩜 이렇게 맑은 영혼이 있을까? 이 시를 함께 나눌 수 있게 한 너에게 감사한다. 그리고 네가 누리는 여유가 부럽다.”고 한 마디하고 떠난 후 그 여유(餘裕)란 말이 머리 속에 오래 남아 떠나지 않는다.

늘 정신없이 어지럽게 쳇바퀴 돌듯 살아가는 내 삶 속에도 이웃이 보기에 ‘여유’가 있다는데야?

그렇다. 스스로 눈치 채지 못하였을 뿐 내가 얼마나 많은 여유를 누리며 사는가. 정신없이 바쁘다는 핑계로 신이 내게 주신 ‘여유의 은총’을 느끼지 못하고 살아 온 것이다.

구걸할 힘만 있어도 은총이라는데 신이 주신 이런저런 작은 여유들을 찾아 감사해 보는 일도 바쁘고 바쁜 이민 생활을 이겨내는 삶의 한 지혜일 듯 싶다.

*** 오늘의 사족

내가 윗글을 쓴 것은 2001년 2월 15일이었다. 그로부터 만 12년 일개월이 흘렀다.

우리 부부는 여전히 변함없는 세탁소의 하루를 보내고 있다. 두 아이들은 이미 장성하였고, 연로하신 부모님들은 병원출입이 잦으시다.

아내는 토요일이면 여전히 한국학교를 나가고… 교장을 맡고 있는데 이제 임기만료가 다 되어간다.

나는 여전히 손님들에게 편지를 보내고 시를 보낸다. 마치 삶의 여유가 있는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