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분만 시간을…

오늘 엉뚱한 일로 엄청난 시간을 허비하였답니다. 그걸 허비라고 할런지 좋은 경험이라고 할런지는 아직 판단할 일이 아니지만 아무튼 예상치 않은 일로 하루 해가 저물었답니다.

 

사건은 오늘 아침에 일어나 평소처럼 이메일함을 체크하면서 일어난 듯합니다. 평소와 달리 아침 출근  전에 처리해야 할 일이 있어서 건성으로 메일함을 쭉 훑다가 낯익은 이름과 주소에서 보낸 메일이라 무심코  열었는데 아마 그게 화근이었던 거 같습니다.

 

상대방 메일 주소를 이용한 스팸메일이었습니다.  평소같았으면 열어보지 않고 그냥 스팸처리를 했을 것인데… 아뿔사….

 

일을 나가서 이런 저런 일들을 처리하고는 컴앞에 앉았더니만 글쎄 제 메일 계정 중 스팸 메일을 열었던 계정에서 누군가가 마구 스팸메일을 뿌린 것이었습니다. 단지 서너시간 사이에 거의 천 여통의 스팸 메일이 제 이름으로 뿌려진 것입니다.

 

부랴부랴 그 회사에 신고를 하고 패스워드를 비롯한 정보를 바꾸었답니다. 해놓고보니 찜찜한 구석이 있어 제가 쓰는 모든 온라인상 계정의 정보들을 다 바꾸었답니다. 엉뚱하게 생각지도 않은 시간을 보내고나니 머리속이 멍하였답니다.

 

그리고 저녁 무렵 National Clothesline 2월호  편집자의 글을 읽게 되었답니다. 마침 제목이 “Got a minute?”이었답니다.

 

1분이 그렇게 아깝고 많은 일을 아니 결정적인 일을 할 수 있는 시간인데, 단지 급한 마음으로 1초를 잘못써서 열지 말아야 할 것을 열어서 소비한 시간들이 생각난 것이지요.

 

아무튼 편집인의 글을 소개 드립니다.

 

 

1분만 시간낼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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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즈음  사람들은 더 많은 것을 원하고 기대할 뿐 아니라, 좀 더 빠르게 아니면 즉석에서 그 바램이 이루어지기를 원한다. 우리가 걷잡을 수 없이 빠르게 움직이는 세상에 살고 있다고 말하는 것은 결코 과장된 표현이 아니다.

 

보통 컴퓨터는 초당 100 million(1억), 다르게 말하면 분당 6 billion(60억)의 명령을 쉽게 처리할 수 있다. 매 1분 동안에,  570개 이상의 웹싸이트가 새로 만들어지고, 약 47,000회의 애플 ‘app’의 다운로드가 이루어지고 있으며, 트위터 사용자들은 100,000개 이상의 트윗을 보내고 있다. 또한 매 1분 동안에, 구글에 2백만 이상의 서치 요구가 이루어지고 있고, 페이스북 사용자들은 684,000개 이상의 콘텐트를 공유하고 있으며, 이메일 이용자들은 204 million 이상의 메세지를 전송하고, 소비자들은 온라인 쇼핑으로 $272,000 이상을 지출하고 있다. 단지 1분 동안에.

 

인터넷에서만 빠르게 움직이는 것은 아니다.  60초 라는 시간은 다른 유형의 세계에서도 차이를 나을 수 있다. 매 1분 동안, 미국인들은 총 21,000개의 피자를 먹고 있어서, 곳곳의 피자집 주인들을 수입을 올려 기쁘게 만든다. 물론, 당신도 피자로 끼니를 때울 지도 모르겠다. 다행히도, 당신은 건강을 유지하기 위한  60초 동안의 복근 운동 ‘abs’를 다운받을 수 있다. 정말로 더 이상 무엇이든지 오래 기다릴 필요가 없게 되었다. 통증 해소, 빨리 마르는 네일 폴리시, 스프레이 선탠, 밥과 달걀 식사 등을 치과의사가 통상 식사후 양치질 하라는 시간 2분의 절반의 시간으로 할 수 있다.

 

또한 취직 면접에서 첫 60초 동안 좋은 인상을 심어주지 못하면, 그 직장을 얻지 못할 것이라고 말들 한다. 세탁소 손님들의 경우도 마찬가지일 수 있다. 손님이 옷을 찾아갈 때, 품질에 좋은 인상을 받고 만족하여 충성고객으로 될 지를 결정짓는 것은 종종 바로 대충 살피는 그 첫 번째 눈길이다. >

 

젊게 삽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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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mortality”라는 말을 들어보셨는지요? 아마 영어권 사람들에게도 낯선 말일겝니다. 몇 년 전만해도 이런 말을 쓰지 않았고, 지금도 그렇게 널리 퍼진 말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2009년에 타임즈의Catherine Mayer기자가 만들어 낸 말인데죽을 때까지 나이를 잊고 살아가는 현상을일컫는 뜻이랍니다.

 

세상이 이미 나이를 잊고 사는 시대가 되었다는 말입니다.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발전하는 의학과 과학기술에 힘입어 장수시대가 열렸고, 나이의 경계없이 하려고만 하면 나이를 이겨내는 시대가 되었다는 말입니다. 오늘자 trendwatching의 커버스토리에도 다룬 “Virgin Consumers”  곧 새 것을 바라고 소비하는 소비문화에도 나이는 이미 경계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바이아그라’로 대변되는 노인 성해방의 역사도 이런 흐름을 만든 요인 가운데 하나일 것입니다.

 

이렇게 나이를 잊고 살게 된 세대들이 출현하므로 인해 전통적인 결혼, 가족, 사랑, 종교, 소비 등등의 개념들이 바뀌어 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Catherine Mayer는 <어모털리티는 우리의 삶을 저 깊숙한 곳까지 바꿔놓고 있다. 일, 여가, 가족, 사랑, 젊은 나이와 늙은 나이, 그리고 그 사이에 있는 모든 것들에 접근하는 방식을 바꾸는 것이다. >라고 주장합니다.

 

amortality현상에 동조하는 옥스포드 대학교 ‘인류 미래 연구소 (Future of Humanity Institute)’ 은 “중요한 것은 태어난지 몇년이 흘렀느냐가 아니라, 생의 어디에 위치해 있으며, 자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고, 무엇을 할 수 있으며, 하고자 하느냐 하는 것이다.( The important thing is not how many years have passed since you were born, but where you are in your life, how you think about yourself and what you are able and willing to do.)라고 말합니다.

 

죽음까지 두려워하지 않는 나이를 뛰어넘는 세상이 되었고 그것은 바로 당신의 생각에 달려 있다는 주장까지 합니다.

 

자! 이제 나이 6,70에 노인티 낼 일이 아닌 것 같습니다.

 

그런데 amortality라는 신조어도 만들어 설명하며 세상이 엄청 바뀐듯한 글들과 주장을 들으며 든 제 머리속 생각이랍니다.

 

쯔쯔쯔, 서양인들의 사고의한계라니… 이미 이천 수백년 전에 장자(莊子) 선생이 이리 말씀하신 것을 알기나 하고들 하는 말들인지….

뭐 그런 생각이 들더란 말씀입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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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자(莊子) 내편(內篇)  제물론(齊物論)에 이런 말이 있답니다.

“망년망의진어무경(忘年忘義振於無竟)”  나이와 옳고 (그름)을 잊고 무한한 경지로 뻗어 나간다는 말입니다. 어떻게 바로 무위의 경지로 나아가면 그리된다는말입니다. 무위의 경지란 바로 제 맘에서 시작되는 것이고요.

 

나이란 바로 제 마음 속에 있다는 생각으로 살면 뭐 한번 못할 일이 있겠습니까?

우리 모두 나이를 넘어 젊게 삽시다.

 

신앙의 이름으로

어느 동네 양반이 전화로 전해준 소식을 듣고 혼자 혀를 끌끌 차다가, 문득 예전에 긁적여 놓은 글이 생각나 찾아보니 삼년 전 딱 오늘인 2010년 2월 4일에 낙서처럼 남긴 것이더군요. 그런데 그게 오늘도 딱 유효한 것을 보면 앞으로도 안 바뀔 모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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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재밌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살고 있는 곳의 넓이가 얼마나 될까?하는 생각이 든 것입니다.

스물 네해 째 살고 있는 곳인데 한번도 그런 생각을 안해 보았던 것입니다.

 

델라웨어주 New Castle County라는 곳입니다.

County 면적이 1,278 km²랍니다.

 

이게 어느 정도될까?

그래 서울시와 한번 비교해 보는 것이지요.

서울시 면적이 605.41㎢이라고 하니 약 두 배 정도입니다.

인구는 약 60만명정도이고요. 한적한 시골입지요.

한인인수는 고무줄 통계이지만 약 4천 정도로 추산하고 있지요.

 

교회 수는 캐톨릭교회 한 곳을 포함하여 8곳이지요.

8곳의 등록교인 수 얼추 천 오백여명.

 

재미있는 것은 신앙의 이름으로 늘 싸우고 있다는 것…

신앙의 이름으로…

늘 신앙의 이름으로…

 

이 너른 이민의 땅에서…

오직 신앙의 이름으로…

 

오늘도…

봄햇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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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을 건강하고 평온하게 그리고 만족스럽게 만들어줄 묘약은 무엇일까? 나의 만병통치약은 아침 공기를 흠뻑 들이마시는 것. 아, 아침 공기! 만약 사람들이 하루의 원천인 이 새벽에 아침 공기를 마시려 들지 않는다면, 우리는 아침 공기를 병에 담아 가게에서 팔기라도 해야 하리라. 아침으로 가는 예매표를 잃어버린 이 세계의 모든 이들을 위하여>

 

<어떤 대변혁이 아무리 세상을 들쑤셔놓을지라도, 황혼 무렵의 서쪽 하늘과 같이 그렇게 순수하고 고요한 것을 매일 바라볼 수 있는 사람은 축복받은 사람이리라>

 

<아침과 봄에 얼마나 공명하는가에 따라 그대의 건강을 가늠해 보라. 자연의 깨어남을 보고도 그대 속에 아무 반응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이른 아침 산책을 해도 잠이 달아나지 않는다면…., 이른 아침 가장 먼저 귓가를 두드리는 새의 노랫소리에도 전율을 일으키지 않는다면…. 깨달으라. 그대 인생의 봄과 아침은 이미 지나가 버렸음을. 비록 맥박은 느낄 수 있을지 몰라도>

 

<천국은 우리 머리 위뿐만 아니라 우리 발 아래에도 있는 것을…>

 

<그대의 삶이 아무리 가난하다 해도 맞부딪혀 살아나가라. 회피하거나 욕하지 말라. 그대가 나쁜 사람이 아니듯 삶도 그렇게 나쁘진 않다. 그대가 가장 풍요로울 때에는 삶은 가장 초라하게만 보인다. 불평쟁이는 낙원에서도 불평만 늘어놓을 것이다. 자신의 삶을 사랑하라. 삶이 아무리 가난하다 해도. 그렇게만 한다면 그대가 비록 형편없이 가난한 집에 있다고 하여도 즐겁고 가슴 떨리게 멋진 시간들을 보낼 수 있으리라. 황혼의 빛은 부자집 창문뿐 아니라 가난한 자들의 집 창문도 밝게 비춘다. 또한 초봄에는 가난한 자들의 집앞에 쌓인 눈도 녹는다. 그대가 평온한 마음을 가지기만 한다면, 거기서도 궁전에서처럼 즐겁고 만족스런 삶을 살 수 있으리라>

 

메사츄세스 콩코드강변의 철인(哲人)이자 미국의 정신인 헨리 데이빗 소로우(Henry David Thoreau)는 살아생전 딱 두 권의 책을 내었지만 읽어주는 이들이 없었다. 첫 번째 책은 겨우 200여권이 팔렸을 뿐이고 두 번째 책인 <월든>이 그나마 이천부정도가 팔렸지만 그러기에는 5년이 걸렸다.

 

삶은 가난하였으나 그는 삶을 사랑하였다.

 

사람들이 성공적이라고 칭찬하고 그렇게 생각하는 삶은 단지 한 종류이다. 우리는 왜 다른 것들을 희생시키고 한 가지만을 과대평가해야 하는가?” 살아있을 때 그가 던진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죽은 뒤 그에게 돌아갔다. <소로우의 삶은 도덕적 영웅주의의 표본이자 정신적 차원의 삶을 끈질기게 추구한 표본으로서 미국인의 삶에 깊고 넓게 영향을 끼쳤다>는 평()으로.

 

일에 쫓기고 빌(bill)에 쫓기며 살아가는 이민(移民)들에게도 봄 햇살은 다습게 다가온다. 비록 쫓기며 살아가는 삶이 힘에 겨워도, 가난한 삶이 못내 버겁더라도 하늘을 쳐다볼 수 있는 한 삶은 살만한 것이다.

 

탓과 덕분

tree탓과 덕분이라는 말이 제대로만 쓰이는 세상이면 좋겠습니다. 아마 세상이 많이 달라질 것입니다.

<네 탓>과 <내 덕분>뿐이 아니라 <내 탓>과 <네 덕분>이 먼저인 세상 말입니다.

그게 사람사는 세상이 아닐까요? 탓과 덕분이라는 말이 제대로만 쓰이는 세상이면 좋겠습니다.

 

Alice May Douglas의 시 한편을 되뇌이며…

 

 

Who Loves the Trees Best? 

  – Alice May Douglas

 

 Who loves the trees best? “I,” said the Spring.

 “Their leaves so beautiful to them I bring.”

 Who loves the trees best? “I,” Summer said.

 “I give them blossoms, white, yellow, red.”

 Who loves the trees best? “I,” said the Fall.

 “I give luscious fruits, bright tints to all.”

 Who loves the trees best? “I love them best,”

 Harsh Winter answered, “I give them rest.”

 

나무를 제일 사랑한 사람은?

 

나무를 제일 사랑한 사람은? “나!” 봄이 말했다.

 예쁜 옷을 입혀 주는 것은 바로 나니까.”

 나무를 제일 사랑한 사람은? “나!” 여름이 말했다.

 “나무에게 희고. 빨갛고 노란 꽃들을 주는 것은 바로 나니까”

 나무를 제일 사랑한 사람은? “나!” 가을이 말했다.

 “맛있는 과일과 화사한 단풍은 내가 주는 걸…. .”

 나무를 제일 사랑한 사람은? “내 사랑이 제일 클 걸…”

 추운 겨울이 대답했다, “난 나무들에게 쉼을 주지.”

 

이 아름다운 날들

“강둑 위를 눈부시게 비추는 햇볕의 따뜻함을 느낄 때, 노란 모래 밑에 숨어 있는 검붉은 흙을 바라보고, 마른 잎의 살랑거리는 소리와 강가에서 눈이 녹아 떨어지는 소리를 들을 때, 나는 내가 영원의 상속자임을 느낀다. 자연 속에서 느끼는 영원성은 나에게 그대로 계승된다. 봄이면 봄마다 나는 얼마나 많이 이런 경험을 했던가! 나는 점점 자신이 생긴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자연의 영속성과 회복성이 바로 나 자신에게서 느껴지기 때문에.”<쏘로우가 1856년 3월 23일에 쓴 글>

쏘로우의 글을 처음 만난 것이 벌써 사십여년 전 일이다. 우스운 기억이지만 그의 글 “시민 불복종(Civil Disobedience)”은 당시 한국에서는 읽을 수 없었던 판금도서였다. 알음알음으로 그 복사판을 구해 만났던 쏘로우에 대한 나의 기억은 사회운동가이었다. 그리고 이제 이순(耳順)에 이르는 나이에 다시 만난 그는 명상가이자 시인 나아가 노장(老莊)에 가까운 자연주의 사상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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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7년 매사추세스주 콩코드에서 태어난 쏘로우는 하버드대학을 졸업한 수재였다. 졸업 후 고향 콩코드로 돌아와 교사로 취직하지만 며칠 후 학생들에 대한 체벌을 거부하고 사직한다. 아버지가 경영하던 연필공장에서 잠시 일하던 그는 28살 되던 1845년 초봄 월든 호숫가로 들어간다.

그 곳에 한 칸짜리 통나무 집을 짓고, 단 하나의 침대와 세 개의 의자를 놓고 홀로 문명을 등진 숲속에서 외롭게 살다, 마흔 다섯의 이른 나이에 간 기인(奇人)이었다. 그러나 그는 결코 그 의자에 멍하니 앉아 있다가 간 것이 아니다. 그는 그 의자에 앉아 깊이 사색하면서 매일 글을 썼다. 비록 그의 생전에 그가 쓴 글들이 주목받지 못했고 경제적으로 아무런 성공을 이루지 못했지만 이제 그의 책 <월든>은 19세기에 쓰여진 가장 중요한 책으로 평가받고 있다.

작가 E. B. White는 “만약 우리 대학들이 현명하다면 졸업장 대신 <월든>을 한 권 씩 주어 내보낼 일이다”라고 극찬하였다.

1846년 멕시코전쟁이 일어나자 그 전쟁과 노예제도에 반대하여 인두세(人頭稅) 납부를 거부하던 쏘로우는 감옥에 수감된다. 이 때 쓴 연설문이 바로 ‘시민불복종’이었다. 인도의 성자 간디가 “나는 쏘로우에게서 한 분의 스승을 발견했으며 ‘시민불복종’에서 내가 추진하는 운동의 이름을 땃다.”고 한 글이 바로 이것이다.

“내가 영원의 상속자임을 느낀다.” – 신이였던 예수말고 누가 감히 이런 말을 할까? 말의 아름다움이여! 자연과 함께했던 그 아름다운 날들의 쏘로우가 오늘 여기에 살아있음 아닌가!

이른 봄날 늦저녁, 노을에 반달 걸리고 이름모를 새들 지저귀는 이 아름다운 날들의 소중함이여.

비록 미룬 일 태산이고 내일이면 또 다시 아둥바둥 땀 흘릴 이민일지라도…

신이 내게 허락한 세상과 내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하는 이 아름다운 날들이여!

개에게 길을 묻다

당(唐)나라 고승(高僧) 조주선사(趙州禪師: AD:778-897)의 일화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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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학승(學僧) 하나가 선사에게 물었답니다.

“개(犬)에게도 불성(佛性)이 있습니까?” 개도 깨달으면 부처가 될 수 있느냐는 물음이었지요.

선사 왈. “없다”

그런데 어느 날 다른 제자가 와서 똑같이 물었답니다.

“개에게도 불성이 있습니까?” 이번엔 선사 왈. “있다”

제자가 다시 물었답니다.

“아니 그럼 부처는 그만 두고 사람이 되지 왜 개로 그냥 있습니까?”

조주선사 호통을 치시며 “얌마! 그건 개한테 가서 물어 봐!”

뭐 당나라 때 뿐이겠습니까?

제 맘 하나 다스리지 못하고, 제 안에 있는 부처 하나 느끼지 못하는 처지에 남이 무얼 하건, 개새끼가 무얼하건 그게 도(道)닦는 것과는 뭔 상관이냐는 조주선사의 가르침은 오늘에도 그대로 유효한 것이지죠.

순례자든 방랑자든 아님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저 같은 사람이든

진리가 뭐 별거 있겠어요.

때론 화살이 되기도 하고 과녁이 되기도 하고

그게 삶이지요.

눈 뜨면 일어나 세탁소로 나가 보일러를 켜고, 일하며 배고프면 먹고,

집에 들어와 아내와 함께 가요무대 보며 세월도 한탄하고 흥얼거리기도 하고, 그러다 자고…

그 일상적인 바로 나의 삶에 도(道)가 있는 것이지요.

따지고 보면

심심하면 제가 글질하는 이 짓도 다 저를 위한 것이고요.

그게 때로는 누군가에겐 화살이 되기도 하고

누군가에겐 따듯한 모포 한 장이 될 수도 있고…

과녁이 된 그가 하지 말란다고 아니 할 수도 없고

모포 한 장 더 달란다고 줄 여유도 없고

나도 때론 과녁이 되고

내미는 손도 되고…

그렇지 아니한가요?

무릇 도(道)라는 놈이….

그러다 다투기도 하고 표표히 떠나기도 하는.

다시

화살이 되고

과녁이 되는.

죽 한 그릇

조선조 말기 사람 김병연(金炳淵:1807-1863)은 일명 김삿갓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홍경래가 일으킨 난리가 나자 당시 선천부사로 있던 병연의 할아버지 김익순(金益淳)은 홍경래에게 항복한다. 이 죄로 김익순은 죽고 그 후손들은 벼슬 길이 막히는 폐족(廢族)을 당한다.

벼슬길도 막히고 심한 차별을 느낀 김병연은 스무 살 무렵부터 큰 삿갓으로 얼굴을 가리고 전국을 떠돌다가 그가 방랑생활을 하며 읊었던 시(詩)들을 모은 ‘김립시집(金立詩集)’ 한 권을 남긴 채 쉰 여섯 나이에 그답게 객사(客死)하고 만다. 민중들의 애환을 노래하고 권력자들을 풍자하며 조롱하는 그의 시들로 인해 오늘날 그를 조선시대 민중시인이라 부른다.

예의 그 방랑길의 김삿갓, 끼니조차 제대로 챙기지 못하고 여러 날 산길을 걸어 기진한 삿갓의 눈에 외딴 오두막집이 들어온다. 지친 걸음을 재촉해 오두막 집에 다다른 김삿갓이 끼니 구걸을 해 보지만 그 집 주인 역시 이 떠돌이 삿갓만큼이나 찢어지게 궁기든 사람인지라 변변히 나그네를 대접할 처지가 아니었다. 그래도 다리 뻗을 오두막집이라도 가진 이 집 주인은 나그네를 대접할 요량으로 소반 위에 멀건 죽 그릇을 내밀고는 어쩔 줄을 몰라한다. 말이 죽이지 하늘에 떠있는 구름이 비칠 지경이니 낟알 하나 제대로 찾을 수 없는 맹물같은 죽이었다.

이 맹물죽 한 그릇 대접받은 김삿갓 그냥 있을 수 없어 시 한 수 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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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반 위엔 머얼건 죽이 한 그릇/ 뜬구름 그림자가 함께 오가네/ 주인은 미안해서 쩔쩔매나니/ 나야 본시 풍류객 상관이 있오> < 四脚松盤粥一器/ 天光雲影共徘徊/ 主人莫道無顔色/ 吾愛靑山倒水來>

이름하여 ‘죽 한그릇(粥一器)’이라는 시이다.

이 얼마나 멋들어진 정경인가? 이 얼마나 사는 맛 나는 장면인가? 내 입 풀칠하기도 바쁜 형편에 지친 나그네 그냥 보낼 수 없어 낟알 몇 알 두고 끓인 멀건 죽 한 그릇 내 놓고 미안해 쩔쩔매는 주인의 훈훈한 마음, 그 죽사발을 하늘로 받고 감사하며 또 다시 하늘을 담아 주인에게 바치는 김삿갓의 시 한 수.

풍류하면 제 밥벌이 걱정없이 펑펑 돈 깨나 뿌리며 주지육림에 빠져 음풍농월(吟風弄月)하는 것으로나 아는 사람들에겐 이런 풍류의 맛이 시원치 않겠다만 이것이 진짜 세상 살아가는 풍류이다.

주린 배 참다 참다 기진한 채 오두막 등불 하나 만나길 고대하며 발길 옮기는 사람들이 어디 김삿갓 뿐이겠나? 결코 수월치 않은 삶의 길목들, 더하여 때론 산길을 헤매는 듯한 이민(移民)을 살아가는 우리들의 모습 속에도 그 지친 삿갓의 모습들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어디 경제의 궁핍뿐이랴! 겨우 몸과 마음의 다리 뻗을 오두막 한 채 가졌으나 여전히 궁기에 빠져 있는 모습 또한 우리들의 모습일 수 있다. 이런 모습들로 어우러져 살아가는 것이 바로 우리가 사는 세상이다.

주인과 나그네가 멀건 죽 한 그릇 사이에 두고 하늘을 나누어 갖는 정겨운 모습에서 사는 맛을 느낄 수 있듯 오늘 여기 우리 한인 이민 사회가 서로의 하늘을 나누어 갖는 맛과 멋이 어우러진 사회가 되길 꿈꾸어 본다.

그것이 비록 멀건 ‘죽 한그릇’일지라도…

*** 오늘의 사족

나는 오늘도 죽 한그릇은 나누었다. 좋다.

골프와 장치기(杖球)

지나간 십 수년  동안 이 곳 지방 신문인 The News Journal지에 한국관계 기사나 한국인을 다룬 기사가 1면이나 2면을 장식한 일은 손에 꼽을 정도이다. 기억하기로는 전두환, 노태우씨의 구속기사, V자로 꺽였던 성수대교 붕괴사건과 삼풍백화점 붕괴사건 기사,  “정부 수립 후 첫 정권 교체”라는 제목을 단 김대중대통령 당선 기사와 그의 노벨상 소식 그리고 이 곳 DuPont Country Club에서 있은 맥도날드 컵 대회에서 우승한 박세리선수에 대한 기사가 전부이다.  그리고 지난 일요일판 스포츠면에 박세리의 사진과 함께 그녀에 대한 기사가 대문짝만하게 실렸다.

골프채를 잡아 보기는 커녕 “골프는 이민(移民)을 망치게 한다”는 생각으로 사는 내가 골프 이야기를 한다는 것이 좀 우습기도 하다. 이젠 많이 숙련되어 어떤 모임이건 의례 나오는 골프 화제에 입 꼭 다물고 들을 수 있게까지 되었지만 한 때는 어떤 모임이건 화제가 골프로 옮겨지면 슬그머니 자리를 뜨곤하였다.  어쨋거나 남한(the South Korean)의 박세리”로 소개 되었지만 그녀로 하여 가게 손님들과의 화제거리가 되니 반가운 일이다.

기록에 의하면 골프는 15세기 무렵에 네델란드에서 시작되어 스코들란드로 전래되어 퍼졌다고 한다. 경기의 규칙이 성문화되기는 1754년의 일이고, 오늘날과 같은 기구와 규칙이 적용되기는 19세기 중엽부터라고 한다.

오늘날의 골프와 아주 흡사한 경기가  한국에 있었다. 조선조(朝鮮朝) 초기 역사기록인 <태종실록: 13년(서기 141년)>, <세종실록 : 3년(서기 1421년)>, 세조실록: 1년(서기 1455년)>등에는 뚜렷한 경기법칙 아래 행해졌던 장구(杖球)경기에 대한 기록이 남아 있다.

이 기록에 의하면 장구는 몇 사람이 좌우 두 편으로 갈라서서 승부를 겨루게 되는데,  공을 치는 막대기는 숟가락과 같으며, 공을 치는 끝은 손바닥처럼 넓적한데 이것은 물소의 가죽으로 만든다. 가죽이 얇으면 공이 높이 솟아 오르고, 가죽이 두터우면 공은 멀리 가지 않는다. 또한 곤봉(袞俸)도 사용하는데 공같이 둥그런 것이 달려있는 이 곤봉으로 공을 치면 공이 뱅글뱅글 돌면서 뛰어 오르지 않고 자리만 이동한다. 이 모두 두텁고 얇은 정도와 크고 작은 모양에 따라 명칭이 달랐다 한다.

공은 나무로 만들거나 차돌을 사용했고 그 크기는 계란만 했다 한다. 땅을 파서 주발 모양같은 구멍을 만드는데 이것을 와아(窩兒)라 불렀다. 이 와아는 전각(殿閣)을 사이에 두고 파 놓기도 하고, 층층대 위에 파 놓기도 하며 또는 평평한 땅에 얼마만큼 동떨어지게 파 놓아 공이 들어 갈 자리를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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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 쳐서 구멍에 들어 가면 2점을 얻는다. 한 번 쳐서 들어가지 못했으면 공이 멈춘 곳에서 다시 쳐 들어가면 1점을 얻는 방법으로 경기가 진행된다. 세종 때와 세조 때와 약간의 차이는 있으나 대체로 엇비슷한 방법으로 경기가 진행되었는데 주로 궁궐 안에서 임금과 종친들이 즐기던 것이었다. 일반 서민층에서도 이와 유사한 경기가 유행하였는데 이를 얼레공치기라 하였다.

이 얼레공치기는 최근세까지 전래되어 지난 세기 초까지만 하여도 그 그림자가 남아 있었다.

1931년 2월 5일자 동아일보에는 “장구 얼레공 대회 개최”라는 제하의 기사를 사진과 함께 보도하고 있다. 그 장구경기, 얼레공치기의 기술이 살아나 박세리, 김미현등의 별들이 한국의 이름을 빛내는 것은 아닐런지.

***오늘의 사족

당시의 박세리는 오늘날 김연아였다.

아니 적어도 내가 사는 동네에서는 오늘의 김연아 이상이었다.

한반도나 한인들의 긍정적 뉴스를 듣거나 이야기를 전해 듣는 날은 참 기분 좋다. 이민 이후 줄곧….

 

 

(2001. 4. 26)

부자 대물림

김우중 전 대우회장의 몰락과 정주영 현대 명예회장의 죽음으로 숨가쁘게 한국의 개발경제시대를 이끌어 온 한 세대가 끝났다. 정주영 – 그에 대한 평가가 어떠하든 그는 일세를 풍미한 입지전적 인물임에 틀림없다.

늙으막 소떼와 막걸리통을 싣고 북행하였던 그의 모습에서 고향에 대한 강한 귀소본능을 엿보았듯, 수 많은 조문객들과 검소를 강조한  그의 마지막 길 떠난 모습에서 현대차가 이 땅 미국에 이리도 많이 굴러다니는 까닭을 알 수 있을 듯하다.

“부자 삼대 없다”는 속담은 대물려 부를 유지하기가 썩 수월치 않음을 말한다. 정주영회장이 이룩한 현대왕국도 오늘날 한국경제가 짊어진  짐들 가운데 하나인 것으로 보아 그 앞날이 썩 순탄해 보이지만은 않는다.

화신백화점을 비롯한 해방 이후 부자 첫세대들은 당대에 깃발을 내렸고 박정희 개발독재시대에 부를 이루었던 부자들도 대부분은 당대에, 더러는 다음대에 부의 명성을 잃었으며 어쩌다 삼대 째 내리 그 부를 누리는 집안도 있지만 선대에 비하면 초라한 듯하다. 왜 부자 삼대가 그리 힘들까?

“어기여라 톱질이야, 당겨주소 톱질이야” 흥부와 그의 아내가 신나게 톱질을 한다.

첫째 박을 타서 나온 쌀로 밥을 지어 남산만큼 쌓아 놓고 아들 스물 다섯을 불러낸다.(째지게 가난했어도 엄청나게 새끼 욕심은 많았나보다) 궁기에 찌들었던 놈들은 총알처럼 밥더미를 파고들어 아그적 아그적 그 많은 밥을 먹어 치운다.

여기까지는 좋다. 착한 성정의 흥부 일가네가 일차적 빈곤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큰 축복은 그 착함에 따른 당연한 응보일 수 있다.

문제는 두 번째 박을 타면서 시작된다. 없는 것이 없게 다 나오는 둘째 박에 이어 셋째 박을 타면서 흥부는 졸부가 된다. 치부(致富)한 흥부는 넓고 큰 누각과 창문만도 천 개가 되는 거대한 호화 주택을 짓고 별당엔 천하절색 양귀비를 첩으로 들여 앉힌다. 겉치장으로 부를 한껏 과시한 흥부는 일자무식인 자신과는 격에 맞지않게 큰 책방을 짓고 시경, 서경, 사서삼경에 고문진보등 책으로 그 방을 꽉 채운다. 무식을 감추려는 허세를 부려 본 것이다.

졸부가 된 이후의 흥부의 놀아나는 꼴로 보아 스물 다섯이나 되는 아들들에게  부를 물리기는커녕 당대에 거덜이 났을 듯 싶다.

겉으로 부를 과시하고 치장해야만 직성이 풀리는 성질이 한국에 대물린 부자가 드문 현상을 만들어 낸 것은 아닐까?

십년이 넘도록 도처에 전쟁의 상흔이 남아있던 시절, 보릿고개가 해 마다 찾아 와 입에 풀칠하기도 힘들었던 세월,  인천항에 구호미가 산더미처럼 입항했다는 기사가 신문의 머릿기사이던 그 60년대를 지나 “잘 살아 보자”는 깃발 아래 모여 허리띠 조이고 땀 흘린 댓가로 70년대을 넘어서며 절대 빈곤이라는 일차적 가난을 이겨 내었다. 거기까진 좋았다.

그 뒤 더 잘 먹고 더 잘 입고 더 좋은 집을 갖고 마침내 더 좋은 외제 차를 타야 직성이 풀리는, 겉보기에 높아지려는 사회적 분위기는 마침내 파국을 맞았다.  그 뿐인가? 바탕이나 기초도 없이 인격적인 치장을 하자니 온통 허세 뿐이지 않았나? 이 다리 허전하게 바탕없는 외형 치장 성향이 부가 붕괴되는 사회현상, 부자가 삼대 못가는 현상이 생기도록 한 것은 아닐런지.

잘 사는 것은 결코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분수에 맞게 살고 그 남은 부나 재물을 사회에 되돌리는 풍토가 정착된 사회에선 부의 대물림이 몇 대인들 내려 가지 않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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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가장 길게 부를 대물림 했던 가문은 경주 최진사댁이라고 한다. 최진사댁은 해마다 1만 석 이상의 남는 재물을 주변의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 주는 가통(가통)이 있었다.  그 가통 때문에 십대 만석꾼, 십대 진사의 유례없는 부를 누릴 수 있었다고 한다.

고 정주영회장의 남은 후대들 뿐만 아니라 오늘 부를 누리고 사는 모든 집안들이 그 부를 대물림 할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를 만들 수 있다면 한국의 미래는 진정 밝을 것이다.

***오늘의 사족

2001년 3월 29일의 일기였다. 그로부터 12년 후인 오늘.

최진사댁이 세운 대학을 가로챘다는 의심을 받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따님께서 권력을 대물림하였다.

딱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