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 성(聖)과 속(俗)-4

화분이 아닌 땅에 뿌리를 내린 화초나 나무 한 그루 찾기 힘든 돌의 도시 피렌체. 레오나르도 다 빈치. 미켈란젤로, 라파엘로, 갈릴레오의 도시이며 마키아벨리의 도시이기도 했던 피렌체. 피렌체는 돌의 도시이자 ‘거대한 돈과 권력의 도시’, 그 돈과 권력에 항거하는 ‘풍자의 도시’로 내게 다가 왔다.

우피치 미술관(Uffizi Gallery, Galleria degli Uffizi)을 안내해 준 RaFael은 그야말로 뛰어난 이야기꾼이었다. 단지 우리 일행 네 명을 위해 그는 정성껏 피렌체와 우피치와 메디치 가문과 르네상스와 신이 된 종교와 돈과 권력 나아가 그것들을 풍자하는 예술에 대한 설명에 온 열정을 다했었다. 그는 피렌체를 휴머니티(humanity)와 휴머니즘(humanism)의 도시로 소개하려고 많은 애를 썻다.  나는 그런 그의 노고 덕에 종교와 돈과 권력의 역사 그리고 그에 항거하는 사람 사랑 곧 진정한 신의 역사를 이루고자 한 옛 사람들의 노고를 맛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참 재밌었던 사내 RaFael을 만난 것은 이번 여행에서 맛 본 은총 중 하나다.

미술관에서 내려다 보이는 베키오 다리(Ponte Vecchio)를 설명하던 RaFael의 말이었다. “저기 가면 금, 은, 다이아몬드 등 보석상들과 유명 시계점들이 저 다리를 차지하고 있는 걸 보실거예요. 근데요. 처음에 저 다리엔 정육점 등 서민들이 찾는 음식점들이 많았다고 해요. 그런데 어느 날인가 그런 가게들이 모두 문닫고 보석상과 시계상으로 바뀌었데요. 왜냐하면요. 도시의 돈을 다 움켜잡고 있는 메디치 가문에서 그랬데요. ‘돈 많은 우리 가문 사람들만 이용할 수 있는 가게만 장사하게 하자’고요.” 물론 우스개 소리였겠다만 나는 사람사는 세태를 풍자한 그의 우스개가 단지 우스개로만 들리지 않았었다.

미술관과 베키오 다리 등을 구경 한 후 저녁식사를 위해 어느 골목의 그럴싸한 식당문을 두드렸었다. 바깥에서 보기에 작지만 잘 꾸며진 식당이었다. 분명 영업시간 중이었는데 가게문은 굳게 잠겨 있었다. 문을 흔드니 종업원이 문을 열며 물었다. “예약 하셨나요?” ‘아니’라는 우리들의 응답에 잠시 난색을 표하는 듯 하더니, “몇 분이지요?”라고 물었다. ‘넷’이라는 응답에 또 잠시 멈칫 하더니만 “들어 오시지요.”했다.

그렇게 들어 간 식당엔 우리들이 첫 손님인 듯 했다. 재미있는 것은 그 이후의 일이었다. 들어오는 손님들 마다 우리와 똑 같은 대화와 종업원의 표정과 몸짓이 똑같이 반복되는 것이었다. 작은 가게 안은 이내 만석이 되었는데 내가 들은 한, 딱 한 팀만 예약 손님이었을 뿐, 나머지 모두는 우리처럼 지나가다 들어 온 손님들이었다. 참으로 뻔뻔한 상술이었늗데, 면벌부(또는 면죄부) 상술로 도시를 이룬 후예들 답다는 생각으로 그냥 많이 웃었다. 그 날 저녁 음식도 참 맛있었다.

여행의 참 맛은 밤거리에 있다던가. 그 날 피렌체의 밤거리에서 우리 일행은 잠시 청춘이었다. 거리의 악사들 연주에 맞추어 무리 지어 춤을 추던 한 떼의 젊은이들을 보며 몸에 시동을 걸던 아내가 그 무리에 섞여 춤을 추고 악사들과 함께 북을 두드렸고 우리는 한껏 즐거웠었다.  

허나 참 바보같기도 하지. 기껏 사진을 찍다가 흥에 취한 아내 모습을 담을 생각 못하고 그냥 서있기만 했으니. 쯔쯔…본래 바보였는지도.

하여 잊지 못할 피렌체의 밤.

여행 – 성(聖)과 속(俗)-3

여행을 떠나며 날씨 때문에 걱정이 많은 최권사에게 내가 한 말이었다. “뭐 어때 비오면 비오는 대로. 구경 못하면 못하는 대로. 그냥 천천히…. 맛있는 거 먹다 옵시다. 그게 여행이지 뭐.” 나이 들어 좋은 점 하나 꼽자면 무언가 움켜쥐려 하는 욕심이 나날이 줄어든다는 것 아닐까? 편하게 주어진 시간 천천히 즐기는 여행이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한 말이었다.

꽤나 쏘다니던 젊었던 한 때가 있었다. 쏘다닌다 한들 비행기는 언감생심 꿈도 꾸어 보지 못했던 시절이었으니 고작 기차나 버스 타고 반도의 남쪽을 헤맬 뿐이었다. 쌀 두어 됫박과 고추장 된장 김치 소금 등속과 모포 한 장, 버너와 취사도구들을 바리바리 꾸린 배낭 짊어지고 산을 찾아 바다를 찾아 떠돌았던 그 시절엔 잡아야 할 무언가가 꼭 있는 듯 했었다.

거의 반 백 년이 흐른 오늘도 호기심은 여전하다만, 무언가 잡으려고 하는 욕심은 없다. 그저 주어진 시간을 감사히 즐길 수 있다면, 누리는 그 여유에 감사할 뿐.

맛을 탐하는 편은 아니다만, 그래도 이젠 적당히 즐길 수 있는 나이엔 이른 것 아닌가하는 생각으로 산다. 이번 여행은 그런 내 생각을 거의 완벽에 가깝게 충족시킨 시간들이었다. 단 한 곳이 기대를 저버렸지만, 그 식당에서 바라 본 멋진 바깥 풍경이 준 만족함이 그 덜한 맛을 메꾸어 주었으니 맛 여행이라는 면에서는 거의 완벽에 가까웠다.

아직 음식 사진 찍는 일엔 서툴어 음식 사진들은 하나 엄마(미세스 최권사)와  한나 엄마(아내) 몫이었다.

기차 – 내 어린 시절 바람기는 기차소리 때문이었다. 고등학교 이학년 여름 중앙선 열차, 그 해 가을 경부선을 타고 떠돌던 바람기가 먼춘 것은 서른즈음이었다. 그 무렵 남도를 두루 가르던 모든 열차는 다 타 보았을게다. 지금도 기차를 보면 설레기는 그 때와 마찬가지다만, 마음만 탈 뿐 쉽게 몸을 싣지는 않는다.

베네치아에서 피렌체까지 두 시간여 기차 여행은 내 긴 삶의 여정을 짧게 되돌아 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그리고 완전한 우연이었다. 여행을 떠나기 전 책 한권을 꾸려 넣었었는데, 정말 아무 생각없이 손에 잡았던 책이었다. 이미 두 번을 읽었던 책이어서 비행기에서 가볍게 책장을 넘길 수 있겠다는 생각으로 넣어 온 책이었다. 하비 콕스(Harvey Cox)의 ‘신이 된 시장(The Market As God)’인데 뉴욕에서 리스본, 리스본에서 베네치아까지  여덟시간 조금 넘는 비행 시간은 콕스의 생각을 정리하는데 안성맞춤이었다. 게다가 최권사 내외와 아내가 함께 한 열과는 멀리 떨어져 앉은 내 자리는 독서 조건에 최적이었다.

그 책에 나오는 한 문장이다. <악명 높은 메디치 가문 출신 교황 레오 10세는 동생에게 말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교황자리를 주셨다. 이제 그 자리를 즐기자.”>

돌의 도시 피렌체는 바로 콕스가 말한 ‘신이 된 시장(The Market As God)’ 의 시초였으며, 신의 자리에 오른 자본주의의 전형이었다.  허나 관광지로써는 최상이었다.

성(聖) 속에서 속(俗)을, 속(俗)에서 성(聖)을 발견할 수 있는 도시, 피렌체. 돌 속에서 돌을 밟으며 많이 걸었다.

여행 – 성(聖)과 속(俗)-2

여행을 떠나기 전날 급하게 준비한 물건들은 우산과 우비와 방수 처리된 옷들이었다. 우리들의 여행코스 내내 비가 함께 할 것이라는 일기예보 때문이었다. 그것도 약간의 비, 간혹 비 정도의 예보가 아닌 온종일 비였다.

날씨는 예보대로 였다. 경유지인 리스본만 하여도 화창한 날씨였건만 첫 도착지 베니스에 이르니 그야말로 우중(雨中)이었다. 허나 거기까지 였을 뿐, 이후 여행 내내 비는 이따금 오락가락 했지만 줄곧 우리들을 피해 다녔다. 나는 “운이 좋았다”며 친구들에게 카톡으로 전했는데, 친구 하나가 이르길 “야! 그걸 은총이라고 하는거야!”라며 나무랐다. 나는 흔쾌히 그 말을 수긍했다. 예보와 달랐던 날씨는 여행중 우리들이 누린 은총이었다.  

베니스가 베네치아로 다가오면서 내 상상 속 베니스는 힘없이 무너졌다. 사실 베니스에 대해 아는 것은 별로 없었다. ‘베니스의 상인’의 무대라는 것, 아름다운 물의 도시라는 막연한 상상이 모두였다.

이번 여행을 알차게 만든 이들은 곳곳의 박물관 안내자들이었다. 그들과의 예약은 모두 최권사 몫이었다. 안내자들은 모두 매우 뛰어난 이야기꾼들이었다. 그들의 이야기 화법에 혹한 까닭은 그들이 전달자가 아닌 소개하는 작품이나 유물, 기념물 속 주인공이 되어 말하기 때문이었다.

첫번 째 안내자를 만난 곳은 ‘도제의 궁전(Doge’s Palace)’으로 알려진 Palazzo Ducale(두칼레 궁전) 앞 날개 달린 사자상 앞이었다. 안내자는 ‘유럽을 걷다(Walks in Europe)’이라는 팻말을 들고 있었다. 그렇게 우리들의 걷기 여행은 시작되었다.

숙소에서 그곳에 도착하기 까지 버스를 타고 로마광장을 거쳐 수상버스로 갈아 타야 했는데, 그 모든 과정들이 우리 일행에겐 도전이었고, 제법 흥미로운 일이었다.

그렇게 우리는 안내자를 따라 두칼레 궁전(Palazzo Ducale)과 마가복음의 저자인 마가의 유골이 안치 되어 있다는 산마르코 대성당(Basilica di San Marco)을 돌아 보았다. 안내자는 궁전에 입장하기전 꽤 오랜 시간 동안 역사 강의를 시전하였다. 궁전과 성당을 보기 위해서는 마땅히 베네치아의 역사 곧 이탈리아가 아닌 베네치아 공화국의 역사를 알아야만 한다는 열정을 다한 강의였다. 그녀의 독특한 억양으로 그 날 수없이 들었던 ‘originally’라는 말이 아직도 귀에 맴맴 돈다. 그녀는 위대한 베네치아 공화국의 시민이었다.

궁전과 황금빛 성전 구경을 마치고 산마르코 광장(Piazza San Marco)과 뒷골목 풍경들을 두루 눈에 담은 뒤 광장 맞은 편 코레르 박물관(Museo Correr)을 섭렵하니 한나절이 휙 지나갔다.

골목 – 비단 곤돌라가 다니는 베네치아 뿐만 아니라 여행 내내 도시의 골목들은 박물관 못지않게 그곳을 살다 간 사람들의 어제와 지금 살고 있는 사람들의 오늘을 들여다 볼 수 있는 거울이었다.

베네치아 섬 속에도 성(聖)과 속(俗)은 그렇게 어우러져 예부터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었다.

저녁엔 산마르코 대성당(Basilica di San Marco)의 바이올린 연주자의 아들로 이 곳에서 태어났다는 비발디(Antonio Lucio Vivaldi)를 기념하여 열린다는 음악회를 즐겼다. 비발디 교회(Vivaldi Church)로 알려진 피에타 성당(Maria della Pietà)에서 있었던 사계 연주회(Four Seasons Concert)였다.

내가 음악에 대해 뭘 알까마는 때론 이런 사치와 허영 정도는 누려도 과하지는 않을 터. 그 피곤함에도 졸지 않고 즐겼으니 비발디에게 미안함은 없었고.

사족 – 여행 내내 느낀 것이지만(몇 해 전 파리에서도 마찬가지였고) 도대체 화장실에 대해선 끔직히도 베니스 상인 샤일록만큼이나 구두쇠적인 문화는 도대체 이해를 못하겠다는…. 연주회를 마치고 주체할 수 없어 화장실을 찾는 내가 들었던 말. “교회내 화장실은 사용할 수 없습니다.”

할 수 없이 가까운 카페에서 싸고 다시 채우느냐고 맥주 한 잔! 며칠 후 로마에서는 거금 일 유로를 주고…. 여행은 때론 참 불편해! …. 그 구두쇠 문화의 끝판을 확인한 것은 며칠 후 로마에서.

여행 – 성(聖)과 속(俗)-1

한 두어 주 전 일이다. 까닭 없이 왼쪽 발바닥이 아파 걸음걸이가 불편할 정도였다. 한 이틀 심하게 이어지던 통증이 조금은 가라 앉기 시작했지만 여전히 발 앞꿈치로 바닥을 밟긴 불편했다. 계속 통증이 멎지 않으면 의사를 찾아 보면 될 일이었지만, 문제는 오래 전에 계획한 걷기 여행이 코 앞으로 다가 온 것이었다.

그렇다고 걸음을 전혀 걷지 못할 정도는 아니어서 여행을 취소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걱정은 함께하는 친구 내외와 아내에게 행여 부담이 되지나 않을까 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여드레  걷기여행을 마치고 돌아왔다. 참 신기한 일이었다. 마치 내가 여행 전 며칠 동안 엄살을 떨었던 듯이, 떠나던 날까지 이어졌던 통증이 비행기를 타며 슬금슬금 사라지더니만 여행을 마치고 돌아올 땐 말끔히 가신 것이었다.

그렇게 걷다 온 곳들이 물의 도시 베네치아, 돌의 도시 피렌체, 이야기의 도시 로마였다. 그 짧은 시간 동안 걸어 다녔던 곳들은 여섯 곳의 박물관과 미술관, 음악회 한 곳, 몇 곳의 성당들과 시장 그리고 맛집들과 숱한 유적들이었다.

사진 인화비 염려 없는 디지털 세상덕에 마구 셔터를 눌러 찍은 사진들이 거의 천 장에 이르렀으니 걷긴 참 많이도 걸었다. 그 걷기 운동 덕에 내 발바닥 통증이 절로 사라진 듯 하다.

지나온 이야기들을 일컬어 ‘족적(足跡)’이라 하는 걸 보면 걷는다는 게 곧 사람살이 일 터이다.

그렇게 걸으며 옛 사람들이 걸어 온 이야기들을 보고 들었다. 그 이야기 속에는 사람들의 이야기 뿐만 아니라 자연의 이야기, 사람과 자연을 품은 신의 이야기들이 넘쳐 났다. 그 모든 이야기들을 안고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만나는 즐거움은 그저 덤이었다.

짧은 걷기 여행 동안, 순간 순간 내 속 깊은 곳에서 차오르던 감사의 기도가 있었다. 나 혼자 걷지 않고 함께 하는 이들이 있음에 대한 감사였다. 바로 최권사 내외와 아내에 대한 감사 그리고 집을 나서서는 좀처럼 디지털 대화는 커녕 전화조차 하지 않던 내가 카톡 대화를 나누던 옛 친구들에 대한 감사….

어찌 이번 여행 뿐이랴! 때론 성급한 걸음으로 어느 땐 누구보다 뒤처진 걸음으로 걸어 온 내 인생살이 모든 걸음걸음 마다 함께 했던 이들에 대한 감사, 끝내 신에 대한 감사에 이르기 까지…

그 맘으로 이어보는 사진 정리와 여행 이야기. 이름하여 “여행 – 성(聖)과 속(俗)”

아침 그리고 저녁

종종 신비로운 경험을 할 때가 있다. 오늘 같은 날이다.

1.

아침 눈을 뜨고 제일 먼저 마주친 것은 호주에 계신 홍길복목사님께서 보내주신 설교문이었다. 은퇴후 그가 행한 <죽음 – 제 3의 이민>라는 주제로 이어지는 설교문 중 하나로 <끝이 좋아야 합니다>라는 제목을 달고 있었다.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의 양 옆에서 함께 십자가에 달린 두 강도 이야기를 주제로 한 설교였다. 설교문의 마지막 문단 중 몇 개의 문장들이다.

<인생의 마무리는 죽음입니다. 잘 죽어야합니다. 우리 모두 다 잘 죽기를 바랍니다. 끝내기를 잘해야 합니다. ……. <유종의 미>를 영어로는 Crowning glory, <면류관을 쓰는 기쁨>이라고 표현합니다. 맨 나중에 웃는 사람이 가장 행복한 사람입니다. …..인생의 최고 정점, 최대의 peak time은 죽음입니다. 죽을 때 잘못 죽으면 일생을 망치게 되고, 죽을 때 아름답게 마무리 하면  그의 인생은 아름답습니다. 끝이 좋으면 모든 것이 좋지만 끝이 나쁘면 모든 것이 한순간에 무너집니다. …….우리는 이제 점점 죽음의 순간을 가까이 대할 나이가 되었습니다. 우리 모두 …..<천부여 의지 없어서 손들고 갑니다. 주 나를 외면하시면 나 어디 가리까, 곧 회개하는 맘으로 주 앞에 갑니다> 찬송하면서 이 땅에서의 삶을 가장 아름답게 마무리 할 수 있기를 기도 드립니다.>

2.

오전엔 아내가 읽어 보라고 권한 노르웨이 작가 욘 포세가 쓴 장편소설 <아침 그리고 저녁>을 손에 들었다. 2023년 노벨문학상 수상자라며 아내가 건네 주었던 책인데 그 이유 때문에 차일피일 내 독서목록에서 밀려 있던 책이었다. 무슨 수상자나 수상작품이라는 치장이 달린 글들은 내게 썩 다가오지를 않는다.

말이 장편이지 고작 135쪽일 뿐인 중편으로도 짧은 축이었다. 그저 잠시 훑을 요량으로 들었던 책인데 책장을 덮을 때까지 엉덩이를 떼지 못하고 단숨에 읽어 내린 마치 단편 같은 소설이다.

소설은 주인공 요한네스가 태어나던 날 몇 시간과 그가 죽던 날 하루에 대한 기록인데 그의 할아버지부터 손자에 이르기까지 오대에 걸친 이야기들이 녹아있다. 하여 단편인 동시에 장편이다.

생명의 탄생에 대한 두려움과 신비로움으로 시작하는 소설은 죽음의 일상성이랄까 죽음이란 마치 평범한 삶들이 평범한 일상 속에서 겪는 일 가운데 하나의 과정인 듯 이야기한다.

요한네스를 다음세상으로 데려가기 위해 잠시 이 세상으로 돌아온 먼저 죽은 그의 절친 페테르가 전하는 다음세상을 설명하는 말이다. <자네가 사랑하는 것은 거기 다 있다네. 사랑하지 않는 건 없고 말이야>

3.

오후에 누워 계시는 아버지를 찾아뵙다. 나를 보자마자 하시던 말씀.

“아이구, 내가 너를 기다렸어요. 이제 내가 떠날 준비를 해야되요. 내 장례식때 말이야… 니 엄마가 해 준 한복을 입고 가려고 했는데…. 그게 아무래도 오줌 눌 때 아주 불편할 거 같애서… 그냥 양복하고 …여름철 거든 겨울철 거든 철은 따질 거 없어요…. 그거 입히고 니 엄마가 해준 반코트 있어… 그거 좀 입혀 줘.”

이즈음 들어 많이 오락가락하시는 아버지의 부탁이었다.

날은 여전히 쌀쌀한데 햇볕은 아주 따스한 날이다. 내 뜰에는 어느새 수선화 튜립  등이 싹을 틔어 오르고 크로커스는 이미 활짝 웃고 있다. 보라색 크로커스의 꽃말이란다. ‘누군가를 후회없이 사랑한다’라던가….

살아가는 날까지 끊임없이 사랑하고 볼 일이다. 그게 가는 날까지 천국에서 사는 일이고, 떠나서 만나는 이들은 어차피 모두가 사랑하는 사람들 뿐이기에.

죽음을 논하는 아침에서 삶을 노래하는 저녁까지…

오! 이 신비한 하루에 감사.

홍목사님을 비롯한 모든 내 사랑하는 사람들을 더욱 사랑하며 살아가는 내일을 위하여….

내 쉬는 날 일상의 하나… 오늘은 달콤한 사과빵을 만들어 아내에게 맛보이다.

겨울 하루

아무 계획도 없이 하루를 보내는 맛도 괜찮다. 좀 걷자고 공원을 찾아 나서기엔 너무 춥고, 아직 눈도 녹지 않았다.

시간의 흐름 조차 느끼지 않고 그저 마음 가는 대로 하루 해를 보냈다. 집안 정리도 하고, 도토리 국수 삶아 동치미 국물에 말아 먹은 후 눈이 감겨 낮잠 한 숨 달게 잤다.

이런 날엔 마음 다스리는 글 한 귀 찾아 나서는 맛이 괜찮을 듯해서 손에 들었다. 1961년생. 스물 여섯에 다국적 기업 임원이 되었다가 홀연히 태국 밀림 속 사원을 찾아가 스님이 된 스웨덴 사람. 2022년 루게릭 병으로 예순 하나에 입적한 사람. 비욘 나티코블란드가 쓴 책 <내가 틀릴 수도 있습니다. I may be wrong>

읽으며 마음은 차오르는데 배속이 허전해 고구마 감자 구워 헛헛한 속을 채우며 읽었다. 책 속 이야기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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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관심을 기울이고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귀를 기울이는 사람에게 마음을 터놓을 땐 얼마나 좋은지요. 잠시라도 제 입장에서 생각하고 뒤를 받쳐주는 사람이 있다는 건 참으로 든든합니다. 그와 같은 경청은 그 자체로 치유효과가 있습니다. 그렇게 들어줄 수 있는 사람을 만났을 때 자신의 모습을 새롭게 발견하게 되지요.>

<아잔 스님은 영국인이었지만 어느 나라 말을 사용해도 언변이 뛰어난 분이었지요. 그날 밤에도 뜻밖의 말로 우리 마음을 사로잡았습니다.

“오늘 밤엔 여러분에게 마법의 주문을 알려드리고자 합니다. 갈등의 싹이 트려고 할 때, 누군가와 맞서게 될 때, 이 주문을 마음 속으로 세 번만 반복하세요. 어떤 언어로든 진심으로 세 번만 되뇐다면, 여러분의 근심은 여름날 아침 풀밭에 맺힌 이슬처럼 사라질 것입니다.

자, 다들 주문이 뭔지 궁금하시죠? 바로 알려드리겠습니다.

내가 틀릴 수 있습니다.

내가 틀릴 수 있습니다.

내가 틀릴 수 있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이 책의 저자 비욘이 어느 강연해서 한 말.

<예전에 한 강연에서 이 마법 주문에 얽힌 이야기를 들려 주었습니다. 그 강연엔 마침 제 아내인 엘리사베트도 참석했었지요.

다음 날 아침, 우리 내외는 아침 식사를 하면서 가볍게 언쟁을 벌였습니다. 그 때 아내가 한 말이었지요. “비욘, 당신이 어제 강연에서 말했던 그 주문 말인데… 지금이 그 주문을  사용할 적기 아닐까?”

그러자 제가 한 대답이었습니다. “아니, 난 지금 다른 주문을 사용할거야. 당신이 틀릴 수 있습니다.”>

  • 비욘 나티코 린데블라드가 지은 <내가 틀릴 수도 있습니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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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지는 깨달은 자 또는 앞서 가는 이가 전하는 해답을 옮기는 일은 멈출란다. 내겐 여기까지가 적당함으로.

어느 새 밤이다. 이런 날엔 와인 맛 깊게 느껴도 좋을 듯.

잘 쉰 하루

며칠 전부터 4인치 정도 눈이 더 내린다는 예보는 어제 오후부터 호들갑을 더해 6인치 정도를 예상한다는 문자로 전해졌다. “에이, 핑계 김에 우리도 하루 쉬어 갑시다.”

그렇게 하루 가게 문 닫기로 하고, 조금은 게으르게 맞이한 아침은 참 고요했다. 어쩜 이 고요함은 늘 이어 왔을게다. 다만 아침 분주한 소리를 만들어 이 고요함을 느끼지 못한 것은 분명 내 탓일 터였다.

눈 내리는 소리에 귀 기울여본 게으른 아침에 감사를!

쉰다고 아직 늘어질 나이는 아니어서 이 땅에 살기 위해 최소한 해야만 하는 서류 정리들도 좀 하다가, 아내와 내 입을 위하여 손품 파는 재미도 누려본다.

꾸준한 놈 당할 재간 없다더니 쌀가루 뿌리듯 내리는 눈이 온종일 내려 족히 6인치를 채울 모양이었다.

눈은 그치지 않았지만, 더 쌓이기 전에 좀 치워 놓아야 내일이 좀 편할 터. 이젠 삽질도 쉬엄 쉬엄 그냥 즐기듯 해야 할 나이.

건너 건너 집 snow blower로 눈 폭포 만들며 눈 치우는 사내를 보며 혼자 중얼 거려 보는 소리, ‘에이, 이사람아. 눈 치우는 건 그냥 운동인데. 암만 그냥 삽질이지. 뭔 snow blower람!’

근데 이건 또 뭐람! 이웃 집 나이 들어 장가 안 간 아들 걱정 들을 때면 함께 안타까워 했던 나였는데, 오늘 아버지와 아들이 함께 눈 치우는 것이 그렇게 부러웠다는.

머리 흔들며 정신 차릴 때마다 혼자 해보는 소리다만 내 맘은 왜 이리 간사한 것인지? 왈 종심(從心) 나이라 했거늘, 정신적 자람이 아직 내 맘 따라 갈 나이엔 이르지 못했나 보다.

그런데 몸은 이미 나이를 다 쫓아가, 아니 어쩜 더 나아 간 지경에 이른 것인지 몰라 그저 천천히 땀 식혀가며, 어둠 찾아 들기 전 쉴 곳 찾아 빠른 날개 짓 하는 새들에게 응원도 보내면서 천천히 천천히 눈을 치웠다. 눈은 이내 그 치운 자리를 또 다시 덮었지만.

저녁에 이즈음 몇 장씩 넘기던 책을 마무리해 읽었다. 역사학자 나타샤 티드가 쓴 <세계사를 바꾼 50가지 거짓말>이다.

이 책에 나오는 역사적 거짓말들을 만든 주체들은 대개 당대의 권력자들이다. 정치, 경제, 군사, 종교, 문화의 권력자들, 19세기 이후로 그보다 더 큰 권력자로 등장하는 언론까지.

이 거짓말들이 낳은 후과(後果)는 슬프게도 사람들의 죽음이었다. 그것도 한 두명의 죽음이 아니라 작게는 수백, 수천에서 많게는 수 백만, 수 천만에 이르는 당대 사람들이 겪은 이른 죽음이었다.

그 거짓이 거짓으로 드러나는데 걸린 시간은 길게는 이천 년에서 수 백 수십년 또는 오늘도 이어지는 일이란다.

단, 이 책의 허점 한가지. 바로 그 거짓을 드러내기 위해 몸부림치며 삶을 바쳤던 사람들이 이끌어 온 역사에 대한 이야기가 없다는 것.

오늘도 세상 곳곳에서 쓰여지고 있는 이야기들, 거짓말과 그에 대항하여 싸우는사람들을 생각하며 읽어야 좋은 책 한 권.

잘 쉰 하루. 오늘을 허락해 주신 신께 감사하는 밤에.

*** <이제 신문사는 자신들의 편견을 뒷받침하는 선정적인 기사를 만들기 위해 사실을 왜곡할 뿐이다.>  – 이 책 ‘제4장 19세기’를 여는 글.

아직은

‘이젠 푸근한 겨울이 좋다.’고 내심 겨울답지 않은 겨울에 감사하며 지냈더니, ‘요놈아! 내가 어디 네 놈만 아는 줄 아느냐!’며 겨울다운 겨울이 매섭게 다가온 어제 오늘이었다.

한 4인치(10센티) 정도 내린 눈이야 그렇다 쳐도 갑자기 9도(섭씨 영하 10도)까지 내려간 매서운 추위에 몸이 한껏 움추러 들었다. 모레는 눈이 4인치 정도 또 내린단다.

‘눈 치우는 일이야 운동 삼아…’하며 한 해 두 해 미루며 살았는데, 추위에 눈 치우는 일도 이젠 좀 되다.

한 서너 해 전 겨울이었나 보다. 눈을 치우는데 앞 집 사는 사십 대  Nathan이 성큼 성큼 내게 다가오더니만 ‘제가 도와 드릴게요.’하며 빠르게 눈을 치워 주었다. 내가 ‘고맙다’ 했더니 그가 맞받은 말, ‘에이고, 뭘요! 아들처럼 생각하세요.’

난 그때 속으로 깜작 놀랐었다.  그 전 해인가 앞집으로 이사 온 Nathan이 젊다는 것은 알았지만, 미국애들 특유의 겉늙은 모습 탓이었지는 나는 그를 친구처럼 생각했었는데, 그는 나를 아버지 뻘로 대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 날 이후 나는 가급적 그와 같은 시간대에 눈을 치우지 않는다.

그런데 오늘 은근히 녀석이 나오지 않을까? 기대했었다는….

이젠 우리 두 내외에게 적당한 작은 아파트로 이사할 때나 되었나? 하는 생각도 들고… 그래도 손녀딸이 걷기 시작하면 함꼐 놀아야 하는데… 아직은…

아이고, 이 촐랑거림이라니. 아직은 매섭게 춥고 눈 내리는 겨울 견딜만한 가 보다.

시 한 편

새해 들어 첫 주문한 책들을 받았다. 예상보다 빠르게 받았다. 손 글씨 엽서들이 동봉된 정경심 시인의 책 <나 혼자 슬퍼하겠습니다>를 먼저 집어 들었다.

첫 번째 시 <고난의 지금을 견딘다>로부터 마지막 시 <나를 울린 영치금>까지 터질 듯 터질 듯 울컥이는 맘 꾹꾹 눌러가며 책을 덮을 즈음, <당신들의 조건 없는 위로와 격려를 생각하며 반드시 살아야겠다고 아니 살아 내고 싶어서 쓴 글입니다>라는 글쓴이의 말에 기어이 눈물, 콧물.

이리 쉽게 책장을 넘기고 책을 덮을 일은 아니다. 가까이 두고 조국, 정경심 두 분과 그들의 가족들 그리고 그들 곁에서 함께 하는 사람들 소식 들을 때 마다 한 편 한 편 곱씹어 읽어야겠다.

그녀의 시 한 편.


<결국, 사람이다>

죽음의 길을 가지 않은 것은

사람 때문이다

결국 그 길을 가지 않으리라고 확신했던

그가 버티고 있었고

나를 그 길로 보내 버릴 수 있었던 아이들이

집요하게 내 죽음의 멱살을 붙잡고 싸워 주었다

자신도 버티기 힘든 각자의 무게 위에 서로의 무게까지

우리는 어깨와 어깨를 맞대어

무게를 떠안고 분산 시켰다

그리고 그곳에 이름 모를 수많은 분들이 어깨를

들이밀고 우리의 어깨가 흐트러지는 것을 막아 주었다

우리를 지탱시킨 것은 우리를 살린 것은

결국, 사람이다.

새해 기도

해마다 연초 며칠은 분주하게 시간에 쫓긴다. 늘 시간이 빠듯한 구멍가게 주인들이 모두 겪는 일 아닐까? 아님 단지 이어지는 내 게으름 탓 일런지도 모르겠다. 지난 한 해 쌓인 이런저런 서류 및 문서 정리와 함께 새해를 준비하는 계획들로 새해 첫 주가 훅 지나갔다.

내친 김에 맞을 거 다 맞고 가라는 것인지, 아내와 내 자동차 등록갱신은 물론 내 운전면허 갱신 더하여 가게 리스 갱신까지 모두 올 일월에 처리하게 되어 있어 마음이 두루 바빴는데 생각해보니 그 또한 감사였다. 무릇 맞을 매란 한꺼번에 맞으면 좋은 법 아닐까?

개인적인 일들을 그러하되, 뉴스들은 지난 해나 새해나 그저 답답하다. 아니 답답함이 새해들어 더해졌다는 표현이 적합할 듯.

그 답답한 마음으로 다시 꺼낸 든 책, 스티븐 핑커( Steven Pinker)가 쓴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이다.

“내가 이 책에서 이해하려는 주제는 가정에서, 이웃에서, 부족 간에, 무장 세력 간에, 민족과 국가 간에, 그야말로 온갖 차원에서 진행되어 온 폭력 감소 현상이다.”라는 저자의 말처럼 뉴스로 답답해진 마음을 풀어주는 책이다.

어제 오늘, 이 책의 진수라 할 8장(내면의 악마들)과 9장(선한 천사들)을 꼼꼼히 음미하며 정독했다.

읽으며 되씹고 싶은 대목 중 일부이다.

<인간의 폭력은 대부분 비겁하다.>

<양측(가해자와 피해자)은 경쟁적인 시점에서 정보를 왜곡할 뿐만 아니라, 역사를 측정하는 달력도 서로 다르고 역사적 기억에 부여하는 중요성도 서로 다르다. 피해자는 근면한 역사가이자 기억의 육성자이다. 가해자는 실용주의자이고 현재에 굳게 뿌리 내린다. 우리는 보통 역사적 기억을 좋은 것으로 여긴다. 그러나 기억되는 사건이 채 아물지 않은 상처라면, 그래서 시정이 요구되는 일이라면, 기억은 폭력에의 호소가 될 수 있다.(이 때 폭력은 대개 가해자에 의해 발생) >

<폭력의 첫 번째 종류는 실용적, 도구적, 착취적, 포식적 폭력이라고 불러도 좋다. 두 번째는 우세 충동(제 잘 남에서 일어나는) 세 번째는 복수심, 네 번째는 가학성, 다섯 번째이자 가장 중요한 폭력의 원인은 이데올로기이다.>

<연쇄살인을 저지르는 사람들 보다 그들을 연구하는 학자가 더 많을지도 모른다.>

<가해자들은 늘 자신의 행동을 남에게 자극 받은 것, 정당한 것, 비자발적인 것, 중요하지 않은 것으로 포장하는데 쓸 갖가지 변명의 술책들을 갖고 있다. 그 중 하나는 완곡어법이다.(이른바 말장난… )>

<도덕감각을 못 쓰게 만드는 방법 중 하나는 피해자를 헐뜯는 것이다. 어떤 집단을 악마화하고 비인간화하면 그 구성원들을 쉽게 해치게 된다.>

<이데올로기에는 치료약이 없다.>

<온 나라가 유해한 이데올로기에 전염되는 현상을 확실히 막을 방법은 없지만, 예방책은 하나 있다. 바로 열린 사회다.>

<정치 지도자와 정부 관료가 감정 이입에 따라 행동한다면, 그래서 친척과 벗에게만 다정하게 특권을 나눠 준다면, 낯선 사람들에게 냉정하게 분배할 때보다 사회에는 큰 해가 된다.>

<자신이 최대의 이득을 얻고자 남들을 해치는 일은 아무리 작은 피해라도 추한 짓이라는 것을, 바로 그가(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 이성, 원칙, 양심, 짐승 속에 거하는 존재. 내면의 인간. 자신의 행동에 대한 위대한 재판관이자 결정권자) 우리에게 알려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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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가게 리스를 연장한다고 해도 몇 년을 더 일할 수 있을런지는 모르겠다. 제 아무리 백세시대를 노래한들 그게 내 노래는 결코 아닐테고, 이제부터는 신의 은총에 기댈 나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깊어지므로.

다만 내 내면의 악마들과 싸워 이기고 내 마음 속 선한 천사들의 힘에 기대어 세상을 바라볼 수만 있다면, 그렇게 사람들이 더불어 함께 사는 좋은 세상을 위해 기도라도 할 수 있다면…그 때까진 살아도 좋지 않을까?

기도처럼 조금이라도 흉내 내며 사는 한 해가 되었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