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권– 갈릴리 7

<하나님 나라 – 구원의 확신으로 성서 읽는 법> – 23 

너희는 지난 사십 년간 광야에서 너희 하느님 야훼께서 어떻게 너희를 인도해 주셨던가 더듬어 생각해 보아라. 하느님께서 너희를 고생시킨 것은 너희가 당신의 계명을 지킬 것인지 아닌지 시련을 주어 시험해 보려고 하신 것이다.  하느님께서는 너희를 고생시키시고 굶기시다가 너희가 일찌기 몰랐고 너희 선조들도 몰랐던 만나를 먹여 주셨다. 이는 사람이 빵만으로는 살지 못하고 야훼의 입에서 떨어지는 말씀을 따라야 산다는 것을 너희에게 가르쳐 주시려는 것이었다. – 신명기 8 : 2 – 3 

모세가 야훼께 부르짖었다. “이 백성을 어떻게 하면 좋겠읍니까? 당장 저를 돌로 쳐 죽일 것만 같습니다.”   야훼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이스라엘 장로들을 데리고 이 백성보다 앞서 오너라. 나일강을 치던 너의 지팡이를 손에 들고 오너라.   내가 호렙의 바위 옆에서 네 앞에 나타나리라. 네가 그 바위를 치면, 물이 터져 나와 이 백성이 마시게 되리라.” 모세는 이스라엘 장로들이 지켜 보는 앞에서 그대로 하였다.   여기에서 이스라엘 백성이 대들었다고 해서 이 고장 이름을 므리바라고도 하고 “야훼께서 우리 가운데 계신가 안 계신가?” 하며 야훼를 시험했다고 해서 마싸아라고도 부르게 되었다. – 출애굽기 17 : 4 – 7 

그리 되더라도 너희는 에집트 땅 종살이하던 집에서 너희를 이끌어 내신 너희 하느님 야훼를 잊지 않도록 하여라.  너희 하느님 야훼를 경외하여 그를 섬기며 맹세할 일이 있으면 그의 이름으로만 맹세하여라. 주위에 있는 백성들이 섬기는 신들 가운데서 어떤 신이든지 그 신을 따라 가면 안 된다. – 신명기 6 : 12 – 14 

야훼께서 계속 말씀하셨다. “나는 내 백성이 에집트에서 고생하는 것을 똑똑히 보았고 억압을 받으며 괴로와 울부짖는 소리를 들었다. 그들이 얼마나 고생하는지 나는 잘 알고 있다.  나 이제 내려 가서 그들을 에집트인들의 손아귀에서 빼내어 그 땅에서 이끌고 젖과 꿀이 흐르는 아름답고 넓은 땅, 가나안족과 헷족과 아모리족과 브리즈족과 히위족과 여부스족이 사는 땅으로 데려 가고자 한다.  지금도 이스라엘 백성의 아우성 소리가 들려 온다. 또한 에집트인들이 그들을 못살게 구는 모습도 보인다.  내가 이제 너를 파라오에게 보낼 터이니 너는 가서 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을 에집트에서 건져 내어라.” – 출애굽기 3 : 7 – 10 

예수의 종교적 핵심은 토라가 전혀 배제된 것도 아니고 내적 영성을 촉진시킬 수 있음에도 토라 자체를 지키는 것이 아니다. 또한 에식상의 그리고 도덕적인 순결을 추구함도 아니다. 성전이나 회당에서의 예배와 기도생활의 형식으로 나타나는 자기 성화도 아니다. 또한 자신의 유익을 위해 하나님을 축구하는 것도 아닌 듯하다. 오히려 그의 형제들을 향한 헌신을 통해 자비로우신 하늘의 아버지를 닮아 가는 것이다. – 게자 버미스(Geza Vermes)의 유대인 예수의 종교(The Religion of Jesus the Jew)에서 

이제 광야에서 있었던 마귀의 시험에 대한 예수의 응답과 뜻을 새겨보고자 합니다. 

우선 제가 위에서 인용한 성서(구약) 구절들과 게자 버미스가 한 말들을 찬찬히 음미하며 읽어 보시기를 권합니다. 인용된 성서의 전반적인 분위기도 한번 생각해 보시면 좋겠습니다. 

먼저 한 가지 예를 들어 보도록 합니다. 혹시 복권을 사보신 경험이 있으신지요? 아니면 복권 한번 사봐야지 하는 생각을 해 보신 적 있으신지요? 미국에서 팔리는 Powerball에 대한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답니다. “파워볼에 당첨될 확율이란 벼락맞아 죽을 확율보다 낮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벼락맞아 죽은 사람들 이야기를 들어 본 적이 있듯이 거액의 복권 당첨자에 대한 뉴스를 종종 볼 수 있답니다. 셀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이 복권을 사거나 사려는 마음을 지니고 있고, 실제 그 누군가는 당첨이 되곤 한다는 것이지요. 

powerball billboard

파워볼을 사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아주 작은 돈을 투자해서 한순간에 수 억, 수십 억배를 얻는 요행을 바라는 마음 때문이지요. 이런 마음을 셀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가지고 있다는 것이고요. 그리고 그 누군가에게는 요행이 일어나기도 한다는 것이지요. 

지난 글에서 마귀가 예수에게 던진 질문들에 대해 “그래 내가 하지”라고 응답하는 사람들은 언제 어디서건 넘쳐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또 그렇게 마귀에게 응답하는 이들에게 수많은 사람들이 모이고 꾀는 경우도 숱하게 많은 법입니다. 때론 복권이 당첨되듯 실제 돌을 떡으로 만들거나 성전 꼭대기에서 떨어져 내리거나, 온 세상을 쥐고 흔드는 사람들이 나오기도 합니다. 

마치 요행수가 맞아 복권이 당첨된 사람들의 끝이 좋지 않을 확율이 높듯이 어쩌다 수많은 가짜들 중에 진짜인듯한 ‘능력자들’ 역시 역사적 경험으로 본다면 일시적인 현상일 뿐입니다. 

이제 예수의 응답을 보도록 하지요. 예수의 응답을 요약하자면 첫째 시대를 넘나들어도 언제나 동일한 사람들의 요구와 한계에 대한 응답이요, 둘째 신 곧 하나님과 사람의 영역을 명확히 구분짓는 응답이요, 마지막으로 철저히 성서적(구약, 유대전통적)인 응답이었다는 것입니다. 

첫째 질문에 대한 응답은 “성서에 ‘사람이 빵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리라’고 하지 않았느냐?”는 것이었습니다. 

이 응답은 신명기 8장에 나와있는 성서 구절을 인용한 응답입니다. 그런데 신명기의 내용을 잘 보시면 이미 야훼 하나님은 먼저 돌로 떡을 만드신 기적을 보이신 후에 그 기적을 보여주신 뜻이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아야 한다는 내용입니다. 광야에서 배고픔에 굶주려 아우성치던 히브리 백성들에게 광야 들판을 만나로 뒤덮히게 하셨던 기적의 의미를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가 가르쳐준 주기도문에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라는 기도와 맥이 닿아 있는 것입니다. 

바로 “빵으로만…”이라는 말과 “하나님의 말씀…”의 위치는 동등하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사람으로써 생존해야하는 기본 양식은 준비되어 있는 세상이 예수가 생각한 야훼 하나님 세상이었습니다. 그 기본에서 물질에 대한 욕망으로 꿈꾸고 이루고자 하는 세상보다 먼저인 것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이 점이 예수가 내린 첫번 째 응답의 핵심입니다. 

광야 40년 동안 히브리족의 먹을거리였던 만나의 의미는 “누구나 동등하게 똑같이 하루의 양식을 나누어 먹는 사회”였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만들어 준 기적이요, 인간들이 어느 사회이건 준수해야 마땅한 신명기 정신이었습니다. 바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예수에게 있어 마귀의 시험은 이 기본을 넘어서는 물질에 대한 욕심을 이루어 보라는 요구였던 것이고, 예수의 응답은 “기본에 대한 해결이 먼저이고 그것이 이루어진 사회에서는 하나님의 말씀 이 공용화되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복권이 통용되는 사회가 아니라, 사회 구성원들 누구나가 하루 일용할 양식에 대해 걱정하지 않는 세상이 먼저인데, 여기까지는 신의 영역이라는 말입니다. 바로 정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나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사는 사람들의 응답이 요구된다는 것입니다. 바로 인간의 선택이라는 말씀입니다. 

인간들을 위해 마땅히 우선하는 신의 영역을 먼저 정의하는 예수를 제가 구세주로 믿는 까닭입니다. 

두번째 질문과 응답으로 넘어갑니다. 

시험문제 – 갈릴리 6

<하나님 나라 – 구원의 확신으로 성서 읽는 법> – 22 

그 때에 악마는 예수를 그 거룩한 도성으로 데리고 가서,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 말하였다.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거든, 여기에서 뛰어내려 보아라. 성경에 기록하기를 ‘하나님이 너를 위하여 자기 천사들에게 명하실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손으로 너를 떠받쳐서, 너의 발이 돌에 부딪치지 않게 할 것이다’ 하였다.” – 마태복음 4장 5 – 6 

그와 같이, 대제사장들도 율법학자들과 장로들과 함께 조롱하면서 말하였다. “그가 남은 구원하였으나, 자기는 구원하지 못하는가 보다! 그가 이스라엘 왕이시니, 지금 십자가에서 내려오시라지! 그러면 우리가 그를 믿을 터인데! 그가 하나님을 의지하였으니, 하나님이 원하시면, 이제 그를 구원하시라지. 그가 말하기를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다’ 하였으니 말이다.” – 마태복음 27 : 42 

이민생활이 오래되면서 점점 잊혀지고 제 생활과는 거리가 먼 일이 되어가는 것들 가운데 하나가 한국 전통명절입니다. 설날이나 한가위같은 명절들 말입니다. 특별한 일이 아니면 한인들끼리 마주치는 경우조차 흔치않은 시골에서 사는 저같은 경우에는 한국 명절은 그저 평범한 하루가 되기 십상이랍니다. 

그렇게 2014년 설날이 다가온답니다. 갑오년(甲午年)이 시작되는 것이지요. 갑오 동학혁명이 일어난 지 120년이 되는 해입니다. 

이쯤 아주 엉뚱한 상상을 하나 해보기로 하지요. 120년 전에 전라도 고부나 충청도 보은에 살앗던 사람들이, 아니 그 당시 한반도 어디서 살았건 그 때 살았던 사람들이 2014년 오늘의 세상을 다시 살아서 본다면 그들의 반응은 어떤 것일까요? 

좀 더 올라가 보기로 할까요. 이천 년 전에 팔레스타인에서 예수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이 다시 살아서 오늘날의 모습을 본다면 그들의 반응은 어떤 것일까요? 

온통 기적과 이적들이 넘쳐나는 세상으로 보지 않을까요. 아마 처음에는 너무 놀라서 기절해 다시 죽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그러나 그 때 살던 사람이나 지금 사람이나 사람이긴 다 마찬가지이므로 시간이 지나면서 이즈음 풍습에 맞추어 살수도 있겠지요. 

그렇게 살다가 이번에는 그 때나 지금이나 전혀 변하지 않은 사람들의 모습에 또 다시 놀라 자빠질 수도 있겠다는 상상을 해본답니다. 

그날 그날 먹고사는 걱정에서부터, 더 좋은 것 더 많이 먹으려는 욕심, 크기와 상관없이 권력을 갖기 위해 안달들을 하며 사는 모습들, 그런 욕심과 욕망을 채우려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서 “어쩜 이렇게 안변했을까?”하고 놀라 자빠질 수도 있다는 말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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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가 광야에서 마귀에게 받은 시험 세가지는 바로 천지창조 이래 사람사는 모습들이 엄청나게 바뀌어 왔지만 결코 변하지 않은, 그리고 앞으로도 변하지 않을 사람들의 모습에 대한 시험이었습니다. 

“이 돌들로 떡덩이가 되게 하라”,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뛰어내리라.”, “만일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는 마.귀의 이 세가지 시험이야말로 결코 변하지 않을 사람들의 모습에 대해 응답하라는 물음이었습니다. 

또한 창조 이래, 또는 인간이라는 종(種)이 생긴 이래 이런 물음과 시험에 대해 “내가 정답을 가지고 있다.”거나 “바로 내가 그 모든 시험을 잘 풀 수 있는 사람이다.”라고 주장하던 사람들은 차고 넘쳤거니와 오늘날도 도처에 널려 있답니다. 

첫번 째 시험인 ‘돌로 떡을 만들라’는 것은 배고픔의 문제로 부터 시작해서 더 많이 더 잘 먹고 살고자하는 사람들의 모습에 대한 물음이었습니다. 두번 째 시험인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 내려 보아라’라는 것은 절대자인 하나님으로부터 어떤 권력을 부여 받았느냐는 질문으로 권력에 대한 욕구와 두려움 앞에 선 사람들의 모습을 향한 물음이었습니다. 세번 째 시험인 ‘내게 절하면 내가 너에게 주겠다’는 것은 잘 먹고 잘 사는 일과 나아가 자기가 속한 작은 집단에서부터 크게는 국가나 세계의 권력을 쥐는 주체가 되기위한 방법을 알려줄테니 나를 따르라는 물음이었습니다. 

예수시대뿐만 아니라 그 이전 또는 그 이후 오늘날까지 예수가 받았던 이 세가지 시험문제에 “예! 내가 합니다.”라고 선언하고 사람들 앞에 선 이른바 영웅호걸, 황제, 대왕, 왕, 메시야에서부터 오늘날 숱한 정치가들, 종교인들, 경제인들 차고 넘쳐난다는 이야기랍니다. 

지난 글에서 제가 인용했던 요세푸스의 기록에 나오는 숱한 가짜 예언자들, 거짓 메시야들이 예수시대에 넘쳐 났지만 결국 그들을 쫓던 사람들(백성, 민중, 무리) 모두를 죽음의 길로 인도했을 뿐이었지요. 

그 숱한 가짜들의 공통점들은 “내가 (신처럼) 모든 것을 보여주고 해결해 줄 수 있다.”는 선전을 한다는 것이고 그 가짜들에게 언제 어느 곳에서나 쉽게 속아 넘어가는 사람들의 속성이 있다는 것인데 이 두가지는 세상 끝나는 날까지 결단코 변하지 않을 사람사는 세상 모습이라는 믿음이 바로 예수를 구세주로 믿는 첫걸음입니다.(이것은 델라웨어 촌구석에 사는 보잘 것 없는 사람의 소리이므로 믿거나 말거나, 뜻을 같이 하거나 말거나…그저 제 주장이랍니다.) 

이제 하나하나 짚어보기로 하지요. 

“돌로 떡을 만들어 보라.”는 물음은 두가지 뜻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는 실제 당시 그 시점에서 배가 고팟을(금식중이었으므로) 예수 자신을 향한 것, 두번 째는 당시 사람들의 정말 절실한 배고픔의 문제에 대한 해답을 요구하는 물음이었다는 것입니다. 예수가 광야에서 40일 금식을 했다는 사실은 믿음의 영역을 넘어서라도 실제적인 배고픔의 고통이 있었으리라는 생각은 정말 평범하게 동의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 당시(성서의 첫 자료들이 만들어졌을 당시)의 상황을 누가는 이렇게 전하고 있답니다.

“그 때에 선지자들이 예루살렘에서 안디옥에 이르니 그 중에 아가보라 하는 한 사람이 일어나 성령으로 말하되 천하에 큰 흉년이 들리라 하더니 글라우디오 때에 그렇게 되니라. 제자들이 각각 그 힘대로 유대에 사는 형제들에게 부조를 보내기로 작정하고 이를 실행하여 바나바와 사울의 손으로 장로들에게 보내니라.- 사도행전 11 : 27 – 30” 

이런 흉년으로 인한 배고픔 뿐만 아니라 당시 팔레스타인에 살던 이들 가운데 많은 이들이 일상적인 굶주림과 싸워야 했다는 것은 나중에 우리들이 이야기할 주기도문에도 잘 나타나 있는 것입니다. 

또한 돌을 떡으로 만들 수 있는 힘은 백성, 군중, 무리, 민중들을 규합하고 움직일 수 있는 힘의 근원이 되는 것입니다. 바로 기적을 보여주는 일입니다. 당시 숱한 가짜들이 내건 기적 행위들이었고, 오늘날에도 이런 기적들을 이야기합니다. 

두번 째 성전 꼭대기에서 떨어져 보아라라는 시험문제는 예수가 십자가에서 못박혀 죽을 때 거의 똑같이 받았던 시험문제이었습니다. 한계가 있는 사람에게 모든 족쇄를 채워 놓고 결과가 빤한 일에 도전해 볼 것을 요구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도전이 성공하면 신이 존재를 믿겠다는 이야기입니다. 

이것 역시 두가지로 생각해 봅니다. 권력은 모든 것을 이루어주는 만능 요술주머니라는 생각입니다. 역사이래 권력을 누리려는 사람들의 공통적인 생각입니다. 백날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의 교훈을 이야기해 보았지만 오늘날에도 여전히 “이 놈들아! 나는 진시황이다.”라는 이들이 넘쳐나는 현상을 보면 쉽게 알 수 있는 일입니다. 두번 째는 만일 그 권력을 신이 주신 것이라면 권력으로 뭔 짓을 하던 신이 알아서 돌보아 줄 것이라는 이야기입니다. 실제 역사 이래 이렇게 착각하다가 목이 잘려 나간 권력자들의 이름들을 대자면 한이 없답니다. 

마지막 세번 째 시험문제는 정말 구체적인 방법론에 대한 물음입니다. 배고픔에 대한 해결, 권력을 가질 수 있는 해답은 바로 이것이다는 마귀의 선언이고 그 선언을 쫓으면 된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어떤 의미에서는 아주 간단한 해결책이랍니다. 힘있는 자에게 고게 숙이고 언제나 자기 생각없이 딸랑 딸란 쫓아가면 된다는 것입니다. 

이 역시 역사이래 차고 넘쳐나는 예들이 있는 사람살이 모습입니다. 또한 오늘날에도 그대로 적용되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들에게 “아니오!”라고 선언한 것이 바로 예수의 응답입니다. 

이제 그의 응답의 뜻을 알아보려 합니다. 그를 구세주로 믿는 다음 단계의 고백입니다.

준비 – 갈릴리 5

<하나님 나라 – 구원의 확신으로 성서 읽는 법> – 21 

비록 기독교의 기원이 갈릴리에 있었다고 할지라도 운동의 중심은 곧 예루살렘으로 옮겨졌다. 그리고 보다 후대에 속한 신약 성서 책들은 실제적으로 갈릴리에서의 기독교의 존재와 그 운명을 무시하고 있다. 이러한 무시는 초기 기독교 안에서도 계속되었으며 실로 최근까지도 계속되었다. – 엘리옷 빈즈(Elliott- Binns)의 갈릴리 기독교(Galilean Christianity)에서 

세례요한의 세례를 받은 후(세례요한과 결별한 후) 갈릴리 사람들을 향해 나가시기 전에 예수는 광야로 나갔습니다. 이러한 예수의 행보를 마태, 마가, 누가는 한목소리로 전하고 있습니다. 

마가는 비교적 짧게 이 사실을 기록합니다. 

그 뒤에 곧 성령이 예수를 광야로 내보내셨다.  예수께서는 사십 일 동안 그 곳에 계시면서 사탄에게 유혹을 받으셨다. 그 동안 예수께서는 들짐승들과 함께 지내셨는데 천사들이 그분의 시중을 들었다. – 마가복음 1 : 12 – 13 

반면 마태와 누가는 광야에서 예수에게 일어났던 일들을 비교적 소상히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른바 마귀의 세가지 유혹 곧 시험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광야의 예수

세 복음서가 똑같이 전하는 사실은 예수가 40일 동안 광야에 머물렀다는 것입니다. 성서에는 40일에 대한 이야기들이 몇군데 등장합니다. 인생을 40년 단위로 살았던(왕자 40년, 유목생활 40년, 히브리 지도자 40년) 모세가 히브리백성들과 애굽을 탈출한 후 광야에서 지낸 세월이 40년입니다. 또한 모세는 40일 동안 금식으로 지내기도 하였습니다.(출애굽기 34 : 28) 

엘리야 역시 광야에서 40일을 보냈던 적이 있습니다.(열왕기상 19 : 1 – 8) 그리고 교회사시대에 이르러 지키게 되는 사순절기의 40일이 있고,  오늘 우리들이 이야기하는 예수의 광야 생활 40일이 있습니다. 

이상의 모든 40일에 얽힌 이야기들을 살펴보면  전(前)과 후(後)의 상황이 완전히 변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모세의 40년 단위 인생은 그 때마다 매번 그의 삶의 방향과 목적, 의미 등이 완전히 바뀌는 전환점이었습니다. 특히 모세의 40일 금식 사건의 전과 후 사이에는 야훼 하나님과 히브리 백성 간에 계약이 이루어집니다. 바로 십계명을 부여받는 시기였습니다. 히브리백성의 40년 전후 상황은 노예상태로 부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서 누리는 자유와 평등을 누리는 상태로의 전환이었습니다. 

엘리야의 40일은 도망자 신세에서 야훼 하나님의 명을 받고 용맹스럽게 앞으로 전진하는 예언자의 모습으로 바뀌는 시간이었습니다. 

사순절은 고난과 수난, 처절한 패배인 듯한 상황에서 부활의 기적이 이루어지는 시간입니다. 

예수의 광야 40일 준비기간은 옛 세상이 새 세상으로 바뀌는 시간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40이라는 상징적 숫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전과 후가 완전히 뒤바뀌는, 노예에서 누구나 신 앞에서 홀로 서서 자유와 평등을 누리는 독립된 인격으로, 절망적인 도망자 신세에서 삶의 충만한 의미와 의욕으로 넘쳐나는 활기찬 삶으로, 생노병사(生老病死)의 아픔과 한계에서 신음하고 고통받는 삶에서 죽음까지도 이기고 부활하는 기적을 맛보는 그 뒤바뀜 현장의 의미를 되새김이 중요한 것입니다. 

예수가 광야에서 굶주린 가운데 마귀에게 받은 세가지 시험에 대해 이야기 하기 전 요세푸스가 전하는 1세기 곧 예수 전후 시대의 팔레스타인에서 일어났던 사건들 몇 가지 소개해 드립니다. 

“파두스(Fadus)가 유대총독으로 있을 때(기원 후 45-46년 경) 튜다스(Theudas)라는 한 마법사가 수많은 군중들을 미혹하고 있었다. 튜타스는 자신이 선지자라고 무리들을 속이면서 명령 한 마디로 요단강을 갈라 걸어서 강을 건너게 해줕테니까 모두 요단강으로 모이라고 떠들고 다녔다. 이에 많은 무리들이 그의 말에 현혹되어 요단강으로 모여 들었다.  – 요세푸스 유대고대사 20권 5장 1” 

“한편 유대인이 처한 상황은 계속해서 악화 일로를 걷고 있었다. 유대 전체가 강도와 사기가 들끓는 범죄의 소굴이 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이에 벨릭스 총독은 매일 수많은 강도들과 사기꾼들을 체포하여 처형하기에 이르렀다. – 요세푸스 유대고대사 20권 8장 3” 

“이 강도들로 인해 예루살렘은 온갖 악과 불의로 가득차게  되었다. 게다가 사기꾼들과 협잡꾼들은 자기들이 직접 이적과 표적을 행할 터이니 광야로 나가자고 백성들을 현혹하기 시작하였다. 하나님의 섭리로 이적이 나타난다는 것이었다.  – 요세푸스 유대고대사 20권 8장 6” 

요세푸스가 예루살렘과 유대 전역에 강도떼들과 사기꾼들이 들끓고, 각종 기적과 이적들을 행한다는 가짜 예언자난 거짓 메시야들이 넘쳐 났다고 기록하고 있는 시대는 바로 신약성서들 곧 바울서신들을 필두로 하여 복음서들이 막 쓰여지던 때였습니다. 

요세푸스가 강도나 도둑이라고 적시한 사람들은 거의 열심당(젤롯당)을 중심으로 한 유대독립운동을 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요세푸스는 로마로 귀화한 유대인입니다.) 특별히 주시해야 할 것은 가짜 예언자들, 거짓 메시야들이었습니다. 이들은 각종 기적과 이적들을 미끼로 하여 메시야를 기다리며 유대의 독립을 갈망하던 백성들을 광야로 모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결과는 늘 참혹한 죽음 뿐이었습니다. 

로마군들은 위에 튜다스의 말에 속아 요단강가로 모여든 유대백성들을 반역을 도모한다고 하여 몰살을 시켰습니다. 뿐만 아니라 튜다스를 전후해서 등장했던 여러 가짜 예언자들과 거짓 메시야를 중심으로 모였던 유대인들은 결국 죽음을 면치 못했다고 요세푸스는 전하고 있습니다. 

많은 가짜 예언자들과 거짓 메시야들은 당시 백성들의 절실한 요구와 바램을 자신들이 들어주고 해결해 줄 수 있다며 기적과 이적을 팔았습니다. 그러나 백성들은 번번히 속았고, 그들의 삶은 점점 나락으로 치닫고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가 광야에서 마귀에게 받은 세 가지 시험들은 바로 당시 유대인들에게 절실했던 문제에 대한 시험이었습니다. 

이 시험에 대한 예수의 응답은 바로 새로운 세계가 도래하고 있다는 예언이었으며, 그 예언의 성취자가 자신이라고 하는 자기확신의 과정이었습니다. 

이제 그 시험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갈릴리 – 갈릴리 4

<하나님 나라 – 구원의 확신으로 성서 읽는 법> – 20 

그 동안 베드로는 바깥 뜰에 앉아 있었는데 여종 하나가 그에게 다가 와 “당신도 저 갈릴리 사람 예수와 함께 다니던 사람이군요” 하고 말하였다.  베드로는 여러 사람 앞에서 “무슨 소린지 나는 모르겠소” 하고 부인하였다. – 마태 복음 26 : 69 – 70 

그러나 베드로는 이 말을 또다시 부인하였다. 얼마 뒤에 옆에 서 있던 사람들이 베드로에게 다시 “당신은 갈릴리 사람이니 틀림없이 예수와 한 패일 거요” 하고 말하였다. – 마가복음 14 : 70 

예수께서 하늘로 올라 가시는 동안 그들은 하늘만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 때 흰 옷을 입은 사람 둘이 갑자기 그들 앞에 나타나서  이렇게 말했다. “갈릴리 사람들아, 왜 너희는 여기에 서서 하늘만 쳐다보고 있느냐? 너희 곁을 떠나 승천하신 저 예수께서는 너희가 보는 앞에서 하늘로 올라 가시던 그 모양으로 다시 오실 것이다.” – 사도행전 1 : 11 

이것은 여러분도 알다시피 요한이 세례를 선포한 이래 갈릴리에서 비롯하여 온 유다 지방에 걸쳐서 일어났던  나자렛 예수에 관한 일들입니다. – 사도행전 10 : 37 – 38 

예수와 그를 따르던 무리들을 일컬어 “갈릴리 사람”들이라고 했다는 기록들은 성서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누가의 기록에 따르면 예수가 부활승천한 이후 예수를 따르던 무리들을 일컬어 “그리스도인”이라고 부르게 된 시기와 장소를 이렇게 적시하고 있습니다. “바나바가 사울을 찾으러 다소에 가서  만나매 안디옥에 데리고 와서 둘이 교회에 일 년간 모여 있어 큰 무리를 가르쳤고 제자들이 안디옥에서 비로소 그리스도인이라 일컬음을 받게 되었더라. – 사도행전 11 : 25 – 26

그러므로 예수와 그를 따르던 사람들, 예수가 떠난 후 믿음으로 함께했던 무리들은  한동안 “갈릴리 사람들”이라고 불리었던 것 같습니다. 

기독교인이라는 명칭의 최초 이름이 바로 “갈릴리 사람들”이라는 말도 성립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그렇다면 당시의 갈릴리는 어떤 곳이었고, 어떤 사람들이 살고 있었으며, 그들의  삶은 어떤 모습이었을까요. 

Map-Galilee-Northern-Palestine

요세푸스는 갈릴리땅이 너무나 비옥해서 게으름뱅이들까지도 그 땅에서 농사를 짓기 위해 그 곳으로 이주할 정도였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요세푸스의 말에 좀 과장이 섞여있다 하더라도 갈릴리일대는 남부 유대지방에 비해 비옥했습니다. 

그러나 그 땅에서 농사짓고 사는 사람들은 곧 갈릴리 거주인들은 대부분 소작농이었습니다. 자기 농토를 경작한다고 하여도  영세농이  대부분이었고  그나마 로마와 예루살렘 종교권력에게 내는 과다한 세금으로 인해 힘든 삶을 살았다고 합니다. 대부분 농지의 실소유주는 예루살렘에 있고, 갈릴리 거주민들은 부재지주의 땅을 일구는 소작농이 주를 이루었다는 것입니다. 

또한 갈릴리 호수를 중심으로 발달했던 어업은 갈릴리 사람들의 주요 직종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당시 갈릴리호수에서 낚은 고기들은 염장처리되어 예루살렘은 물론이거니와 멀리 로마까지 수출되었다고 합니다. 

역사적으로 본다면 갈릴리일대는 우리나라로 친다면 함경도나 만주의 간도 일대쯤을 생각해 본다면 쉽게 이해가 갈 수 있을 듯 싶습니다. 역사적 환경 변화에 따라 우리나라 땅도 되었다가 중국을 비롯한 오랑캐의 땅도 되었다가 했던 지역이었다는 말입니다. 

예루살렘 중심 유대인들이 이방인들의 땅 갈릴리라고 불렀던 까닭입니다. 갈릴리는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한 남부 유대에 비해 다른 나라들의 문화를 많이 받아 들인 곳입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사실은 갈릴리 사람들은 예루살렘 못지 않게 야훼 하나님 신앙을 간직하고 있었다는 점입니다. 갈릴리가 유대 독립 봉기의 진원지가 된 것은 바로 그런 신앙 전통을 수호코자 하는 정신이 그 주민들 가운데 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요세푸스의 기록에 따르면 유대 독립운동의 주축이었던 열심당(젤롯당)의 본거지가 바로 갈릴리라고 했을 만큼 예루살렘보다 더 유대적이기더 했던 곳입니다. 

이방인들의 땅이자 유태의 전통을 이어가려는 반란의 땅이라는 이중성이 공존한 곳이 바로 갈릴리였던 것입니다. 

이쯤 갈릴리에 대한 요세푸스의 기록을 소개드립니다. 

“갈릴리는 광활한 지역이며 수많은 이방 나라들로 둘러 싸여 있었기 때문에 언제 전쟁이 일어난다 하더라도 강력하게 저항을 할 수 있었다. 게다가 갈릴리인들은 어려서부터 전쟁에 익숙해졌으며 인구도 수없이 많았다. 갈릴리에는 용맹한 자들이 끊어진 적이 없었으며 땅은 전체가 비옥하고 풍요하였으며 온갖 종류의 나무들로 가득차 있었다. 

어찌난 소출이 풍부하였던지 천하의 게으름꾼들도 갈릴리에 오면 부지런히 경작하고 싶은 마음이 들 정도였다. 따라서 갈릴리 지역은 노는 땅이 없었으며 그 주민들도 빈둥거리며 노는 자가 없었다. 

더우기 갈릴리 지역은 마을들이 수없이 많아 어딜 가든지 사람들로 가득하였다. 이는 다 땅이 비옥한 덕분인데 가장 작은 마을도 15,000여면 이상의 주민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그렇게 사람들이 부대끼며 사는 곳, 시대의 고통과 고민들이 넘쳐 나던 곳, 삶의 활력과 고통들이 뒤섞여 있던 곳, 바로 갈릴리였습니다.

동정녀 – 갈릴리 3

<하나님 나라 – 구원의 확신으로 성서 읽는 법> – 19 

그런즉, 주께서 몸소 징조를 보여 주시리니,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고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 이사야 7 :14 

이 말을 듣고 마리아가 “이 몸은 처녀입니다.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겠읍니까?” 하자  천사는 이렇게 대답하였다. “성령이 너에게 내려 오시고 지극히 높으신 분의 힘이 감싸 주실 것이다. 그러므로 태어나실 그 거룩한 아기를 하느님의 아들이라 부르게 될 것이다. – 누가복음 1 : 34 – 35 

성서에 기록된 대로 첫 사람 아담은 생명있는 존재가 되었지만 나중 아담은 생명을 주는 영적 존재가 되셨읍니다. 그러나 영적인 것이 먼저 있었던 것이 아니라 육체적인 것이 먼저 있었고 그 다음에 영적인 것이 왔읍니다. 첫째 인간은 흙으로 만들어진 땅의 존재이지만 둘째 인간은 하늘에서 왔읍니다.  흙의 인간들은 흙으로 된 그 사람과 같고 하늘의 인간들은 하늘에 속한 그분과 같습니다.  우리가 흙으로 된 그 사람의 형상을 지녔듯이 하늘에 속한 그분의 형상을 또한 지니게 될 것입니다. – 고린도전서 15 : 45 – 49 

갈릴리로 향하는 예수의 발걸음을 뒤쫓기 전에 “예수의 탄생과 어린시절” 이야기를 잠시 짚고 넘어가야 할 것 같습니다. 

예수의 탄생과 어린시절에 관한 기록은 성서 마태복음과 누가복음 두 곳에 남아 있습니다. 물론 도마의 유년기 복음이나 야보고의 유년기 복음과 같은 성서외적인 기록들이 있지만 여기서는 참조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마가복음은 세례요한의 세례를 받으시고, 요한이 잡히자 바로 갈릴리 예수의 갈릴리 사역이 시작됩니다. 당연히 예수 탄생이나 어린 시절의 이야기는 단 한 줄도 남기지 않습니다. 요한복음은 “말씀이 사람이 되셔서 우리와 함께 계셨는데 우리는 그분의 영광을 보았다. 그것은 외아들이 아버지에게서 받은 영광이었다. 그분에게는 은총과 진리가 충만하였다. 요한복음 1 : 14)”고 기록하므로써 예수는 태초부터 하나님과 함께 있었다는 선언으로 시작합니다. 이른바 선재설(先在說)이라고 합니다. 물론 요한복음도 그 이외에 어떤 탄생 이야기나 어릴 적 이야기를 전하지 않습니다. 

마태와 누가에 나타난 예수 탄생이야기에도 같은 점과 다른 점들이 있습니다. 우선 같은 점은 예수가 헤롯대왕 때 탄생했다는 것, 탄생지가 베들레헴이라는 것, 고향은 나사렛이었다는 것, 아버지는 요셉이었는데 다윗의 후손이었다는 것, 천사들이 탄생을 미리 알렸다는 것, 예수가 후에 구세주가 된다는 것, 무엇보다도 두 복음서의 일치되게 전하는 것은 마리아는 동정녀였다는 것 등입니다. 

반면에 서로 다른 점을 꼽자면 누가복음에 나오는 예수의 어린 시절 이야기들이 마태복음에는 없다는 것, 동방박사 이야기는누가복음에는 없다는 것, 세레요한의 출생과 천사의 알림 등등의 이야기는 누가복음에만 있다는 것 등입니다. 

그러나 보통 예수 탄생을 기리는 성탄절 즈음에 우리들이 생각하고 나누는 이야기들을 떠올려 보면 이 두 복음서 이야기를 합친 것이 됩니다. 

숫처녀 마리아가 예수를  낳았다는 동정녀 탄생을 믿느냐 안믿느냐를 기독교 신자냐 아니냐를 구분하는 잣대로 사용하는 교회의 힘은 여전히 막강합니다. 학문적으로는 성서가 쓰여지던 당시 고대에 유행하던 영웅탄생 설화를 기반으로 한, 복음서 기록자들의 신학적 상상력으로 나온 결과라는 학설이 오래전에 이른바 종교사학파라는 사람들에 의해 주장되어 왔습니다. 

또한 기독교 교파에 따라서 동정녀 탄생 이야기는 그것이 어떤 생물학적인 기적이나 진실을 다투는 문제가 아니라 초대 교회 사람들의 신앙적 고백이라고 믿기도 합니다. 

이야기를 하자면 길지만 오늘날 기독교 장로회와 한국신학대학교가 설립된 배경을 보면, 당시(1947년에서 1953년 사이) 한국 기독교의 보수세력들이 장공 김재준목사를 이단으로 몰고 목사직을 박탈하면서 이루어진 일인데, 장공 김재준목사를 공격한 보수세력들이 내세웠던 무기가 바로 성서무오설이었습니다. 그 가운데 하나가 동정녀 탄생에 대한 교리 해석차였답니다. 물론 보수세력들이 내세운 논리가 그럴 뿐이고 뒷 이야기는 길답니다. 나중 한국교회사 이야기로 다룰 수 있다면 또 이야기할 수도 있겠지요. 

퓨 리서치 - 동정녀

이쯤 아주 최근에 있었던 동정녀 탄생에 대한 조사결과를 하나 소개 드립니다. 지난해 년말 크리스마스를 앞둔 12월 18일에 Pew Research Center에서 성탄절 풍습, 어제와 오늘(Celebrating Christmas and the Holidays, Then and Now) 이라는 조사결과를 발표했답니다. 

그 조사 항목 가운데 “예수 동정녀 탄생을 믿는가?”라는 것이 있었고 그에 대한 미국인들의 응답 결과랍니다.(옆에 도표 참조) 

약 ¾인 73%의 미국인들은 동정녀 탄생을 믿는다고 답을 했답니다. 그 가운데 남성은 69%가 여성은 78%가 그렇게 믿는다고 답했답니다. 백인의 경우는 71%, 흑인의 경우는 90%가 그렇게 믿는다고 답했습니다. 재미있는 사실은 천주교와 개신교 신자들 가운데 87%가 그렇게 믿고 있다는 것은 크게 놀랄 것은 없는데, 개신교나 천주교인이 아닌 사람들 가운데도 약 1/3가 그렇게 믿는다고 대답했다는 것입니다. 

동정녀 탄생에 대한 이야기를 잇는다고 하자면 꽤 길게 이을 수 있을 것입니다. 또 죽자고 이 문제에 매달려 있는 분들도 정말 많답니다. 

우리들을 하나님 나라에 이르게 하는 많은 이정표 가운데 하나임에는 틀림없지만 저는 이 문제에 크게 믿음의 에너지를 쓸 이유는 없다고 생각한답니다. 이것은 바로 신앙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교리의 문제이기도 하고요. 

천주교를 비롯한 많은 개신교 교회가 이즈음까지 주요한 신앙고백문 가운데 하나로 여기는 사도신경을 보도록 하지요.(사도신경은 기원 후 400년을 전후한 시대에 이루어 진 것입니다.) 

“….이는 성령으로 잉태하사 동정녀 마리아에게 나시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장사한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시며…” 

우리들이 하나님 나라에 가기위해 정말 중요한 과정이 이 사도신경에는 빠져 있습니다. 바로”성령으로 잉태하사 동정녀 마리아에게 나시고”와 “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사이에 있는 예수가 하신 말씀들과 행위들입니다. 

무슨 말씀인고 하니 예수 탄생에 대한 이야기는 신앙의 영역에 속하는 부분이라는 말씀입니다. 특히 교리에 대한 부분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예수는 완전한 신(하나님)인 동시에 완전한 사람(인간 예수)임을 고백하는 아주 중요한 교리 가운데 하나로 초대교회가 고백했던 신앙이 바로 동정녀 사건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를 믿는 신앙생활에 있어 신자와 아니냐를 가르는 잣대로 사용하는 것도 미련한 일일 뿐더러, 이 신앙고백이 신앙생활에 걸림돌이 되어 넘어지는 일도 미련한 일이 됩니다. 

이제부터 우리들이 함께 할 갈릴리 예수의 말씀과 행적 그리고 그에 대한 믿음으로 충분히 이런 잣대나 걸림돌은 넘어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왔다 – 갈릴리 2

<하나님 나라 – 구원의 확신으로 성서 읽는 법> – 18 

세례자 요한이 광야에 나타나  “회개하고 세례를 받아라. 그러면 죄를 용서받을 것이다” 하고 선포하였다. – 마가복음 1 : 4 

이 때부터 예수께서는 전도를 시작하시며 “회개하라. 하늘 나라가 다가 왔다” 하고 말씀하셨다. – 마태복음 4 : 17 

“때가 다 되어 하느님의 나라가 다가 왔다. 회개하고 이 복음을 믿어라” 하셨다. – 마가복음 1 : 15 

예수가 세례요한에게 세례를 받았다는 사실은 공관복음서가 모두 기록하고 있습니다. 다만 그 느낌들은 조금씩 다르기는 하지만 말입니다. 

세례요한도 제자들을 두고 있었고, 예수도 제자들과 함께 였습니다. 서로 무리를 지어서 지낸 사람들이 있었다는 말이지요.  얼핏 두 무리들 간에 경쟁이 있었던 것 같은 성서의 기록들도 있습니다. 이미 우리들이 이야기했던 주기도문이 나오게 된 배경은 그런 것입니다. 

또한 요한복음 3장 과 4장에는 세례에 두고 두 무리들 간에 경쟁하는 듯한 기록이 있습니다. 

“그 뒤에 예수께서는 제자들과 함께 유다 지방으로 가셔서 그 곳에 머무르시면서 세례를 베푸셨다.    한편 살림에서 가까운 애논이라는 곳에 물이 많아서 요한은 거기에서 세례를 베풀었는데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세례를 받았다.  이것은 요한이 감옥에 갇히기 전의 일이었다. – 요한복음 3 : 22- 24” 

그리고 요한은 이런 기록도 남겼습니다. “예수께서 요한보다 더 많은 제자를 얻으시고 세례를 베푸신다는 소문이 바리사이파 사람들의 귀에 들어 갔다. – 요한복음 4 : 1” 

동시에 서로 다른 곳에서 사람들에게 세례를 주었는데 세례요한에게도 사람들이 많이 갔지만 예수에게 더 많이 몰렸다는 이 기록의 상황은  우리들의 삶 가운데서도 경쟁 관계에 있는 집단간에 흔히 볼 수 있는 광경일 것입니다. 

그런데 사실 예수가 세례를 준 사실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나머지 세 개의 복음서 어디에도 예수가 세례를 주었다는 기록이 없거니와 요한복음도 4장 2절에 바로 이런 기록을 남기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은 예수께서 세례를 베푸신 것이 아니라 제자들이 베푼 것이었다. 요한복음 4 : 2”라고 말입니다. 

성경의 기록들을 통해서, 또는 학자들의 연구를 통해서 우리가 확실히 알수 있는 사실은 요한이 예수보다 조금 먼저였고, 예수는 요한에게 세례를 받았고, 예수는 공생애를 시작하기 전 얼마간 요한에게서  영향을 받았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회개하고 세례를 받아라. 그러면 죄를 용서받을 것이다. –마가복음 1 : 4” 라는 선포는 광야의 세례요한의 것입니다. 그리고  “때가 다 되어 하느님의 나라가 다가 왔다. 회개하고 이 복음을 믿어라– 마가복음 1 : 15” 는 선포는 갈릴리에서 행한 예수의 선포입니다. 

얼핏 비슷한 것 같지만 전혀 다른 이 두 메세지야말로 세례요한과 예수의 비슷한 점과 다른 점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선포인  것입니다. 

세례요한의 “회개”는 만일 “회개하지 않으면”, “도끼가 이미 나무 뿌리에 닿았으니 좋은 열매를 맺지 않은 나무는 다 찍혀 불 속에 던져질- 마태복음 3 : 10” 운명에 처할 심판을 받게되는 조건이었습니다. 그리고 회개하고  나(요한)에게 물로 세례를 받으면 죄를 용서 받겠지만, 이제 오실 그 분은 성령과 불로 세례를 주시는데(마태복음 3 : 11), 회개하지 않은 사람들(쭉정이)은 “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 마태복음 3 :12”는 심판을 하실 것 이라고 경고였습니다. 

세례요한의 회개는 무서운 심판이 따르는 두려움과 불안이 전제되는 것이었습니다. 

예수의 “회개”는 세례요한의 그것과는 전혀 다른 것이었습니다. 예수의 “회개”는 심판 우선이 아니라 “기쁨”과  “구원” 이 우선하는 회개였습니다. 

 이 차이는 요한과 예수가 살았던 모습에서 명확하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요한이 나타나서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않으니까 ‘저 사람은 미쳤다’ 고 하더니 사람의 아들이 와서 먹기도 하고 마시기도 하니까 ‘보아라, 저 사람은 즐겨 먹고 마시며 세리와 죄인하고만 어울리는구나’ 하고 말한다. 그러나 하느님의 지혜가 옳다는 것은 이미 나타난 결과로 알 수 있다.- 마태복음 11 : 18 – 19” 

세례요한과 예수는 인간적으로 보자면 둘 다 똑같이 젊은 나이에 비참한 죽음을 맞이합니다. 세례요한은 목이 잘리고, 예수는 십자가에서 온 몸에 피를 다 빼고 죽습니다. 한 사람은 그저 사람이었지만 또 한 사람은 저나 믿는 이들에게는 신이 됩니다. 그 둘의 명확한 차이는 삶의 태도였습니다. 

두번 째 차이는 세례요한에게 있어서 심판은 “오실 이”가 행하실 미래의 일이었지만, 예수의 하나님 나라는 “왔다”라는 지금 오늘 여기에서 이루어 진 일입니다.( 이런 예수의 가르침은 이어지는 이야기들을 통해 확인해 나갈 것입니다. 

시장

마지막 결정적인 차이는 세례요한이 서 있던 삶의 자리는 “광야”였지만, 예수의 삶의 자리는 “갈릴리”였다는 것입니다. 광야는 사람들이 일상적인 삶을 사는 자리가 아니였습니다. 어떤 목적, 일테면 반역이든 혁명이든 같은 생각으로 뭉치기 위한 곳이었기도 하고, 일상을 떠나 기도로 신을 만나기 위한 장소였기도 합니다. 아니면 도피의 장소이기도 합니다. 사람들이 세례요한을 만나러 가려면 목적을 가지고 찾아 가야만 하는 곳에 요한은 서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는 갈릴리로 갔습니다. 갈릴리는 사람들이 일상적인 삶을 사는 곳이었습니다. 예수는 먼저 사람들이 하루 하루 살아가는 곳으로 걸어 나간 것입니다. 그의 제자들은 제자들이 예수를 찾았던 것이 아니라 예수가 먼저 제자들의 삶의 현장으로 다가가 만난 사람들이었습니다.(가롯유다에 대해서는 따로 이야기 합니다.) 

이제 갈릴리 예수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과정 – 갈릴리 1

<하나님 나라 – 구원의 확신으로 성서 읽는 법> – 17 

그런데 요한은 그리스도께서 하신 일을 감옥에서 전해 듣고 제자들을 예수께 보내어  “오시기로 되어 있는 분이 바로 선생님이십니까? 그렇지 않으면 우리가 다른 분을 기다려야 하겠읍니까?” 하고 묻게 하였다.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이렇게 대답하셨다. “너희가 듣고 본 대로 요한에게 가서 알려라. 소경이 보고 절름발이가 제대로 걸으며 나병환자가 깨끗해지고 귀머거리가 들으며 죽은 사람이 살아나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복음이 전하여진다. 나에게 의심을 품지 않는 사람은 행복하다.” –마태복음 11 :  2 – 6 

이제 예수 이야기로 넘어가기 전에 예수와 세례요한의 관계와 그 두 사람간 비슷한 점과 다른 점은 무엇인지를 알아보려고 합니다. 

그런데 그보다 먼저 아주 간략하게 짚고 넘어가고 싶은 것이 있답니다. 오늘날 한국어를 사용하는 한인들이 알고 있는 예수에 대한 일반적인 생각이나 믿음 또는 기독교를 개독교라며 비하하면서까지 싫어하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예수의 모습들이 형성된 과정을 짧게 살펴보자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성서를 읽으며 하나님 나라를 바로 만나고 누리려면, 예수에 대한 제대로 된 이해가 필수이기도 하거니와 성서에 나오는 예수 이야기나 예수가 하신 말씀들을 제대로 이해하고 믿는 일이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창조 이래, 또는 인간이라는 종(種)이 지구상에 나타난 이래 사람들의 생각이 획을 긋듯 크게 바뀐 때는 정치적으로는 민주주의, 경제적으로 자본주의가 형성된  17세기가  아닐까합니다. 

예수에 대해 이전과는 확연하게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나타난 것도 이 무렵이었습니다.  그 이전에는 마태, 마가, 누가, 요한복음은 순서대로 있는 사실 그대로 쓰여진 책이고, 예수는 신의 아들이며 곧 신이라는 믿음이 지배해왔습니다. 

태양이 도는 게 아니라 지구가 돈다는 게 사실로 밝혀지면서 천체를 손바닥 들여다 보듯이 들여다 볼 수 있게 되는데, 보니까 거기 하늘나라는 커녕 천사 날개같은 것은 다 허구요, 소설이었다는 생각들을 하게 된 것입니다.  “참고 기다리라”는 마지막 때도 결코 오지도 않았고 올 것 같지도 않은 생각들이 들기 시작합니다. 

교황, 국왕, 귀족 등의 최상위 계급들이 무너지면서 그 자리를 급속하게 돈을 가진 이들이 제 몫으로 차지하는 세상으로 바뀝니다. 인권, 평등, 자유는 누구나 누릴 수 있는 천부의 가치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기 시작합니다. 

세상이 이렇게 빠르게 변하고 생각이 바뀌면서 “신은 죽었다”라는 소리까지 등장하게 됩니다. 

그 무렵 “복음서에 나오는 예수와 실제 예수와는 다르다.”는 주장이 나오기 시작합니다.  헤르만 사무엘 라이마루스(Herman Samuel Reimarus, 1694년-1768년)라는 사람이 시초라고 합니다. 

그 뒤를 이어 교회나 예수에 대한 관심이 있는 분들(믿음과 교인과는 관계없이)이 한번 쯤은 들어 보셨을 자유주의 신학자들이 쏟아져 나옵니다. 

학자로서는 슈트라우스 (David Friedrich Strauss)가 시초이고 문학으로는 ‘신과는 전혀 관계없는 사람’ “예수전”을 쓴 죠셉 르낭(Joseph Renan)입니다. 

슈트라우스라는 신학자가 <예수의 생애>를 발표한 것이 1835년이었습니다. 스트라우스는 이 책에서 성서속 예수 이야기에는 신화 곧 전설이 많이 끼어 들었다고 말하면서, 이런 역사적이지 않은 사실이 끼어든 것은 성서를 기록한 사람들이나 제자들이 의도적으로 사기를 쳤기 때문이 아니라 그들의 신화적 상상력이 발동한 탓이라고 하였답니다 . 

역사적 예수

슈트라우스는 당시 주류들에  의해 크게 비판받기는 했지만, 이후 역사적 예수 연구에 불을 붙이는 역할은 한 사람입니다. 

그리고 19세기 후반, 독일을 중심으로 자유주의 신학의 물결이 거세집니다. 이들은 신의 아들 또는 신이었던 예수보다는 도적적으로 권위있는 사람으로서의 예수에 대한 연구에 몰두하였습니다. 

학문적으로 이들을 향해 첫 번째 철퇴를 든 사람은 아프리카의 성인 슈바이처입니다. 그리고 종교적으로 이런 유럽의 자유주의 신학에 대항한 것은 미국의 복음주의 또는 근본주의 종교 운동입니다. 한국 기독교는 이 무렵 미국 교회의 (거의 전적인 그리고 일방적인) 영향을 아래 뿌리를 내리게 됩니다. ( 그리고 아래 계속되는 사람들의 생각의 변화 곧 기독교 신학, 신앙, 운동의 변화와는 상관없이 19세기, 20세기 초 미국의 복음주의 신앙으로 회귀 또는 정체 되어 있는 한국 기독교에 대한 이야기는 나중에 따로 드립니다.  이러한 성향은 비단 기독교 뿐만이 아니라 한민족이 불교와 유교를 받아 드렸을 때와 그것을 이어가는 행태와도  매우 유사한 점도 함께 나누어야 할 중요한 이야기 가운데 하나입니다.) 

아무튼 의사이자 위대한 신학자였던 슈바이처가 “예수의 생애 연구사”를 펴 낸 것은 1906년의 일입니다. 슈바이처는 이 책에서 “이른바 자유주의 신학자들이 말하는 사람이었던 예수는 역사속에 살다 간 예수의 모습이 아니라 그들 곧 자유주의자들이 생각하고 그려서 만든 그들이 좋아하는 예수의 모습일 뿐”이라고 통박하였습니다. 

여기에 “역사속  예수 연구”에 대해 결정적 쐐기를 박은 사람은 20세기 가장 위대한 신학자들 중 한 사람으로 꼽히는 불트만입니다. 그의 말을 쉽게 풀어 쓰면 “예수가 어떤 역사적 인물이었는지 그게 무슨 상관이냐? 성서는 오직 예수가 구세주라는 선포에 충실할 뿐이다. 곧 말하는 예수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예수가 구세주라는 말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그의 이론은 매우 강력하였습니다. 적어도 한 세기동안 그의 영향력은 전 유럽을 덮었고 한 동안 역사적 예수를 말하는 이들이 없었습니다. 

그러다 그 불트만에게 “아니요!”라고 나선 사람들은 바로 불트만의 제자들인 케제만, 보른캄등이었습니다. “역사적 예수 이야기 없이 어떻게 신의 아들 예수 이야기가 나오랴?”는 것이 그들의 주장이었습니다. 그 케제만 아래서 대단한 한인 신학자 한 사람 안병무가 나옵니다. 안병무 목사 – 이른바 민중신학이라는 새로운 지평을 연 사람이며 세계 신학계에 한국말 “민중”을 알린 사람입니다.(무릇 모든 학문은 그것을 뛰어넘는 성과들이 나오게 마련입니다. 그러나 어느 한 시대 앞서 나갔던 인물들에 대한 평가에 있어 제 속차림이나 편협함이 앞서는 민족에게는 미래에도 큰 인물이 나오기 힘든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비단 학문에서뿐만이 아니라, 정치, 문화, 종교, 사상, 나아가 돈을 따지는 경제에 이르기 까지 말입니다.) 

다시 예수 연구 이야기로 돌아가서 최근래에 이르러 1985년에 로버트 펑크(Robert W. Funk)와  존 도미닠 크로산(John Dominic Crossan)이 중심이 되어 예수 세미나(Jesus Seminar)가 발족이 됩니다. 이들은 짧은 시간내에 엄청난 양의 연구들을 발표합니다. 이들의 연구 가운데 “진짜 예수가 한 말들은 무엇일까?”라는 것도 있습니다. 

이쯤 제 개인적 경험 몇 줄 얹습니다. 

나이 이십까지는 성서무오설(聖書無誤說 :성서는 일점 일회도 잘못이 없다)에 기반한 그야말로 미국식 근본주의 교단에서 성장을 했답니다. 교회 주보조차 성물(聖物)이라고 생각했으니까요. 그 무렵 막 성장 가도에 불을 짚히던 서대문 순복음 집회에 참석했던 기억도 있군요. 그보다는 제가 다니던 교회 새벽기도를 통해 체험했던(글쎄요, 깜박 졸다가 꿈에서 본 것인지, 기도 중에 제 정신이 다른 세계에서 본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예수와의 만남이 더욱 선명하답니다. 

그러다 스물 언저리부터 학문적으로 성서를 읽게 되었답니다. 물론 그 무렵 제 개인적인 일탈(이즈음 이 말이 유행인지라)로 하여 성서를 수차례(정확히 몇 번인지는 기억 못하지만) 통독을 하는 경험을 했답니다. 그것 밖에 할 수 없었던 시간을 보낸 적이 있었답니다. 오랜 동안 성서를 꿰고 있다는 자만으로 살았어도 창피하지 않을만큼 읽었답니다. 

그리고 예수세미나의 열풍이 신학계에 일 때 저는 여기 미국에서 그들에게 빠졌었답니다. 그 그룹들이 내놓는 책들은 거의 읽어 보았다고 하여도 크게 엇나가지 않을 정도로 빠졌었답니다. 

학문적으로 예수세미나 열풍과 신앙적으로는 복음주의(근본주의) 열풍은 극과 극에 있지만 서로가 모두 시들해질 무렵 저는 이제 삶의 내리막을 걷는 나이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즈음의 제 생각으로 이 글을 이어가고 있답니다. “모두가 다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예수는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는다는 것이고, 예수의 복음은 복음이어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왜냐구요? 제 믿음이기 때문입니다. 

이어지는 이야기들은 그 믿음으로 예수의 말씀들과 행위들을 되짚어보는 제 노력이며, 궁극으로는 이 글을 읽고 계시는 당신과 함께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고자 하는 순례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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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이쯤. 

눈이 엄청 내려 사방이 고요한 밤에

(이야기가 너무 딱딱해 진 듯하여 아까 이 글을 쓰고 있는데 “사진 한장?”하는 아내를 위해 마지못해 찍은 사진 하나 붙입니다.).

 

죄목- 광야 8

<하나님 나라 – 구원의 확신으로 성서 읽는 법> – 16 

헤롯 안티파스는 새로운 도시 티베리아를 묘지 위에 지음으로써 정결법을 어겼다. 세례자 요한의 회개운동은 바로 이러한 정황과, 상류층의 헬라적 삶에 의해 고유의 문화가 위협당하고 있다는 위기의식을 바탕으로 사람들에게 큰 호응을 얻었다. 부정한 것에 의해 위협 당하고 있다는 느낌은  세례에 대한 욕구를 불러 일으켰다. – 게르트 타이센(Gerd Theissen)의 역사적 예수에서 

세례요한이 갈릴리 지방을 다스리던 분봉왕 헤롯 안티파스에 의해 체포되어 죽었다는 사실에 대해 공관복음서(마태, 마가, 누가)와 요세푸스의 기록들이 모두 한목소리로 증언하고 있습니다. 

헤롯 안티파스는  아버지 헤롯대왕과  그의 후궁 출신 어머니인  사마리아 여인 말다케(Malthake) 사이에서 태어난 헤롯왕의 다섯번 째 아들입니다.헤롯대왕은 첫 부인 도리스와 왕후인 미르얌이 나은 두 아들은 죽여 버립니다. 그리고 나머지 세 아들에게 그의 왕국을 나누어 주고 죽습니다. 

그렇게 갈릴리와 베레아 지역을 물려받은 안티파스는 어린 시절을 로마에서 보냈습니다. 아버지 헤롯대왕이 그를 인질로 로마에 보냈기 때문입니다.  아버지는 반쪽 유대인(에돔출신)이었고 자신은 사마리아의 피도 섞였고 게다가 로마식으로 자란 안티파스는 집권을 하자 곧 실행한 것이 도시를 정비하는 일이었습니다. 로마식으로 바꾼 것입니다.  그 가운데 하나가 오늘날까지 유명한 티베리아스입니다. 당시 갈릴리의 수도였습니다. 이 도시의 이름은 안티파스가 당시 로마황제 티베리우스를 기리기 위해 명명한 것입니다. 

안티파스의 첫 부인은 나바테아국의 공주였습니다.  아버지는 이방 에돔 출신, 어머니는 사마리아 출신, 아내는 이방 여자였던 헤롯 안타파스가 느꼈을 정통성에 대한 열등감에 대해 조금 이해가 가는 대목입니다. 그가 다스리는 곳은 유대 갈릴리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가 선택한 것은  정통 유대 하스몬 왕가 출신인 헤로디아와 재혼이었습니다. 헤로디아 역시 제 나름의 욕심이 있었던 여자였습니다. 헤로디아의 첫 남편은 바로 안티파스의 이복동생  빌립이었는데 같은 왕자 출신이지만 안티파스처럼 다스리는 땅이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헤로디아의 욕심이란 왕비가 되는 것이였을 겝니다. 

헤로디아

그렇게 두 남녀의 배포가 맞아결합한 일이었지만 두 가지 이들의 장애가 되는 일이 있었습니다. 하나는 유대의 율법을 어긴 일입니다. 자기의 형제의 처와 결혼하지 못한다(레위기 18 : 16, 20 : 21 )는 율법을 어긴 일입니다. 두번 째는  첫부인의  아버지 나바테아국의 왕 아레다였습니다. 딸을 버린 장인의 분노는 대단한 것이었습니다. 결국 헤롯 안티파스의 파멸은 이 장인의 노함에서 비롯된답니다. 

아무튼 이 무렵 세례요한은 헤롯 안티파스와 헤로디아의 결혼을 비방했기 때문에 체포되었다고 성서는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눈여겨 보아야 할 성서가 몇 군데 있답니다. 

“그래서 헤로데는 요한을 죽이려고 했으나 요한을 예언자로 여기고 있는 민중이 두려워서 뜻을 이루지 못하고 있었다. – 마태복음 14 : 5” 

“군중이 모두 요한을 참 예언자로 알고 있었기 때문에 군중이 무서워서 ‘모르겠읍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 마가복음 11 : 32 – 33” 

“모든 백성들은 물론 세리들까지도 요한의 설교를 듣고 그의 세례를 받으며 하느님의 뜻을 받아 들였으나… – 누가복음 7 : 29” 

물론 세례요한이 헤롯 안티파스의 율법에 어긋난 결혼에 대해 잘못된 일이라는 예언자적 사명을 행한 일은 사실일 것입니다. 권력자의 입장에서 자신이 한 일에 대해 지적을 하면 국가를 비방한 일로 치부하여 그 당사자를 죽이거나 벌하는 왈 다스리는 일들은  예나 지금이나 비일비재합니다. 

그렇게 세례요한이 괘심죄로 죽게 되었다는 말도 일리는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위에서 인용한 성서의 기록들이 전하는 그 당시의 상황을 보다 진실에 가깝게  잘 정리한 것은 요세푸스가 아닐까 합니다. 

“요한의 말을 듣고 감동한 사람들이 구름 떼처럼 요한에게 몰려들자, 요한의 영향력이 커진 것을 본 분봉왕 헤롯은 혹시 요한이 기고 만장하여 반역을 일으키지나 않을까 심히 걱정하기에 이르렀고, 마침내 요한을 처형하여 후환을 없애는 것이 상책이라고 생각하기에 이르렀다. – 요세푸스 유대고대사 18권” 

이즈음 식으로 말하자면 국가반란 예비 음모죄 정도에 해당하는 죄목으로 죽었다는 말이지요. 

자, 이렇게 죽어 간 세례요한과 예수와의 관계는 어떤 것일까요. 

우선 복음서의 기록들을 살펴보기로 합니다. 

마가는 예수의 길을 예비하고 그 길을 닦는 사람으로 묘사합니다.(마가복음  1 : 1 – 8) 마태는세례요한과 예수의 관계를 마가보다 더 깊고 긴밀한 관계로 설정해서 이야기합니다. 곧 예수를 예비하는 사람일 뿐만 아니라 선포의 내용도 엇비슷하고(마태복음  3 : 2), 세례요한을 이미 예수가 선포하는 새 시대의 인물로 간주합니다. (세례자 요한 때부터 지금까지 하늘 나라는 폭행을 당해 왔다. 그리고 폭행을 쓰는 사람들이 하늘 나라를 빼앗으려고 한다. –마태복음 11 : 12) 

그러나 누가는 이와 다른 입장으로 요한의 자리를 설정합니다. 세례요한은 옛시대의 막내일 뿐이라고 못박는 것입니다. (요한 때까지는 율법과 예언자의 시대였다. 그 이후로는 하느님 나라의 복음이 선포되고 있는데 누구나 그 나라에 들어 가려고 애쓰고 있다. – 누가복음 16 : 16) 

요한복음은 세례요한의 위치를 더욱 아래로 떨어뜨려 놓습니다. 단지 예수가 구세주임을 증언하는 역할(나는 지금 이분이 하느님의 아드님이시라고 증언하는 것이다. – 요한복음 1 :36)을 할 뿐이고, 예수가 일할 수 있는 디딤돌에 불과하다(그분은 더욱 커지셔야 하고 나는 작아져야 한다. – 요한복음 3 : 30)는 기록을 남기고 있는 것입니다. 

이 차이들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기록 연대와 저자들의 입장에 따라 세레요한의 위치가 변하는 것을 알 수가 있는 것이지요. 

다만 확실한 것은 예수가 세례요한에게 세례를 받았다는 것입니다. 또한 많은 학자들을 예수가 세례요한의 영향을 많이 받았고, 한때 세례요한 집단에서 함께 생활했을 것이라고 추정하기도 한답니다. 아, 물론 학문적 연구의 내용일 뿐이지요. 

그렇다면 과연 이제 그의 시대를 맞이하게 될 예수는 세례요한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었을까요.

사람들 – 광야 7

<하나님 나라 – 구원의 확신으로 성서 읽는 법> – 15

 (세례)요한 당시에 유대인들이 합법적으로  희생제물을 드릴 수 있었던 유일한 장소는 예루살렘이었으며, 그 제사를 드리기 위해서는 많은 돈이 들었다. 이런 상황에서 모든 죄를 용서받을 수 있는 새롭고, 값싸며, 누구나 받을 수 있고 하나님의 인정을 받는 제사의식을 도입한 것은 요한의 위대한 창안이었다. 임박한 심판에 대한 그의 경고는 결코 새로운 것이 아니었다. 즉 예언자들은 그 이전에 800년 동안 그런 심판을 경고해 왔다. 새로운 점은 대격변을 일으키며 오는 심판(그 나라)에 대해 보통사람들도 쉽게 준비할 수 있는 길이 있다는 확신을 심어준 것이었다.   – 모턴 스미스(Morton Smith)의 비밀복음서(The Secret Gospel)에서 <미국 콜롬비아 대학 고고 역사학자인 스미스는 베들레헴 동쪽에 있는  미르  사바에서 마가의 비밀 복음서를  포함한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스 서신 사본을 발견한 사람> 

세례요한의 아버지는 아비야 반열에 속한 제사장인 사가랴라고 적시해서 기록한 것은 누가입니다. (누가복음 1 : 5 – 9) 누가에 따른 요한 아버지 사가랴의 모습으로 보아서 그는 하위직에 있는 사제였을 것입니다. 어떤 반(班)에 속해서 제비를 뽑아 자기 순번이 정해지는 자리란 바로 당시 풍습으로 하위직급  제관들의 모습이었습니다. 

또한 당시 유대사회는 소수 최고위층의 제사장들을 제외하고는 종교적 자리의 높고 낮음이 사회적으로 부를 누리느냐 못누리느냐와는 별로 상관이 없던 때였습니다. 특히 종교적으로 하위 제사장 직분에 사람들은 사회적으로는 아주 하층에 속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합니다. 

비록 가문이 제사장가문에 속해 있었지만 세례요한은 예루살렘 성전에서 일한 적이 없었습니다.

광야에서 자기들만의 의식과 전통을 이어가며 폐쇄집단을 이루어 살던 에세네파 사람들의 주류는 바로 예루살렘에서 소외된 제사장 가문의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런 당시 상황들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 것은 광야에서 활동한 세례요한 역시 예루살렘 성전 중심의 세력들을 비판하는 편에 섰던 것 같습니다. 그의 설교와 그를 따르던 무리들을 보면 이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요한은 분명히 제자를 거느리고 자기를 중심으로 한 세력을 형성하고 있었습니다.

<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새인들이 금식하고 있는지라. 사람들이 예수께 와서 말하되 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새인의 제자들은 금식하는데 어찌하여 당신의 제자들은 금식하지 아니하나이까? –마가복음 2 :18>라는 마가의 기록이 그 사실을 증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오늘날까지도 우리들이 모이면 즐겨 사용하는 주기도문이 처음 생긴 때의 일을 누가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한 곳에서 기도하시고 마치시매, 제자 중 하나가 여짜오되, 주여 요한이 자기 제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친 것과 같이 우리에게도 가르쳐 주옵소서.누가복음 11 :1>

‘요한의 무리들도 하는데 우리도 하나 가지고 있어야 하지 않느냐? 우리들도 기도문 하나 가져봅시다.’라는 제자들의 요구에 대해 예수가 그럼 이렇게 하라면서 가르쳐 준 것이 주기도문이라는 것입니다.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가 임하시오며…>라고 말입니다. 

여기서 분명히 알수 있는 것은 요한은 제자들을 두고 있었으며 금식으로 훈련도 시키고, 자기들만이 사용하는 기도문도 있었다는 것입니다. 

또한 자기를 따르는 사람들을 향해 구체적인 생활지침들을 내리기도 하였습니다. <옷 두 벌 있는 자는 옷 없는 자에게 나눠 줄 것이요 먹을 것이 있는 자도 그렇게 할 것이니라.  직업이 세리인 사람들은 부과된 것 외에는 거두지 말라. 직업이 군인인 사람들은 사람에게서 강탈하지 말며 거짓으로 고발하지 말고 받는 급료를 족한 줄로 알라. – 누가복음 3 : 10 -16>등의 구체적인 생활지침이었습니다. 

그를 따르던 무리들 가운데는 그를 구세주로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세례요한의 설교

세례요한을 따르던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이었는지에 대한 복음서의 기록들은 기록한 이들이 본 관점에 따라 조금씩 차이가 있습니다. 

우선 마태는  “요한이 많은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이 세례 베푸는 데로 오는 것을 보고…마태복음 3 : 7)”라면서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이 많았다고 전합니다. 나아가 세례요한의 설교는  그들을 향한 것이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마가는 “온 유대 지방과 예루살렘 사람이 다 나아가 자기 죄를 자복하고 요단 강에서 그에게 세례를 받더라. – 마가복음 1 : 5”라면서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한 남부 유대 지방을 강조합니다. 

반면에 누가는 “요한이 세례 받으러 나아오는 무리에게 이르되… 누가복음 3 : 7”라고 기록하며 그들을 무리 곧 군중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광야의 세례요한을 찾아가 회개하고 세례를 받는 일단의 사람들에 대한 해석들이 왜 이렇게 다르게 기록되었을까요? 기록하는 사람들의 입장이 서로 달랐기 때문이라는 설명이 적절할 것입니다. 

먼저 마태의 경우를 보면, 마태복음이 기록된 때를 대략 기원후 80년경으로 보고 있는데 이 무렵은 초대교회가 막 자리를 잡아가고 있던 시기였습니다. 또한 유대의 완전한 멸망으로 인해 랍비종교인 유대교가 막 성립되어 가는 시기기도 하였습니다. 이 새로운 유대교의 주류는 바로 바리새파였습니다. 기독교 초대교회와 유대교의 경쟁이 치열해지기 시작하던 때에 마태복음아 기록된 것입니다. 마태가 자기 기록을 보여주고자 했던 사람들 곧 마케팅의 대상이었던 주독자층은 바로 유대인 출신 기독교도들이 였습니다. 

이런 시각으로 본다면 마태가 본 세례요한의 설교대상은 당연히 바리새인들이 되어야 했던 것 아닐까요? 

두번 째 마가의 경우입니다. 마가의 주된 관심 가운데 하나는 갈릴리였습니다. 마가가 전하고자 했던 예수는 철저히 갈릴리 사람이었습니다. 갈릴리에서 모든 일들이 일어났었고, 예루살렘 세력에 의해 죽었다가 살아나신 예수가 향한 곳도 갈릴리라고 전한 사람이 마가입니다. 

이런 시각으로 본다면 마가가 본 세례요한의 설교대상은 당연히 예루살렘 중심의 남부 유대인들이어야 했던 것 아닐까요? 

마지막으로 누가입니다. 누가가 원했던 주 독자층은 온 누리 사람들이었습니다. 온 로마로 예수를 전하려고 그는 기록을 남겼습니다. 그래서 그는 “기쁜 소식” 으로 예수의 복음을 요약합니다. 누가복음 1장과 2장에 나오는 세례요한과 예수의 출생 이야기는 모두 “기쁨” 가운데 이루어진 일들입니다. 이제 나중에 더 깊이 이야기되겠지만 예수의 삶 자체가 “기쁨” 가운데 이루어졌다고 누가는 전합니다. 결정적으로 예수가 죽었다가 부활하고 마지막 떠나시는 모습을 기록한 누가의 마지막 기록 역시 “기쁨”으로 마감하는 것입니다. 

바로 이 말씀입니다.  “ 예수께서 그들을 데리고 베다니 앞까지 나가사 손을 들어 그들에게 축복하시더니  축복하실 때에 그들을 떠나 하늘로 올려지시니  그들이 큰 기쁨으로 예루살렘에 돌아가 늘 성전에서 하나님을 찬송하니라. 누가복음 24 : 50 – 53” 

이런 시각으로 본다면 누가가 본 세례요한의 설교대상은 당시 삶의 기쁨을 잃어 버리고 살던 가난한 사람들, 소외된 자들, 여자들을 중심으로 한 무리 곧 군중이어야 했던 것 아닐까요? 

이런 누가가 본 무리들 곧 군중에 대해 마태도 동의하는 구절이 있답니다. “요한이 의의 도로 너희에게 왔거늘 너희는 그를 믿지 아니하였으되 세리와 창녀는 믿었으며 너희는 이것을 보고도 끝내 뉘우쳐 믿지 아니하였도다. 마태복음 21 : 31”라고 말입니다. 

세례요한을 따르거나 그의 설교를 듣던 사람들이 바리새인이나 사두개인들이었던, 온 유대와 예루살렘 사람들이었던, 아니면 가난하고 소외된 무리들(군중)들이었던, 세례요한 주변에 모였던 바로 그 사람들 때문에 세례요한은 죽음을 맞이하게 됩니다.

새 날 또는 반역 – 광야 6

<하나님 나라 – 구원의 확신으로 성서 읽는 법> – 14 

이즈음은 어떤지 잘 모르겠습니다만 한 때 계룡산(鷄龍山)의 신도안(新都內)은 각종 신흥종교의 집합소로 알려졌었습니다. 조선조 중엽부터 백성들 사이에 널리 퍼진 예언서인 정감록(鄭鑑錄)의 영향을 받은 현상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계룡산은 새로운 세상이 열리는 도읍지로 알려진 곳입니다. 

실제 조선 순조임금(재위기간 1800년-1834년)때 서북지방에서 일어난 홍경래난 이후 동학혁명에 이르는 19세기의 여러 농민 봉기들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했던 것이 바로 정감록입니다. 

홍경래의 서북지방이나 전봉준의 전라도 고부나, 봉기를 일으킨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성지에 가까운 곳들이겠지만 권력자 입장에서 보면 반란의 땅인 것입니다. 

전라도 광주를 민주화의 성지로 부르는 사람들이 있거니와 늘 색안경을 끼고 바라보는 눈길이 있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천 년 전 세례요한이 “회개하여라. 하늘 나라가 다가 왔다!(마태 3 : 2, 공동번역)”고 외쳤던 유대 광야(曠野)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광야는 마태가 세례요한에게 투사한 예언자 엘리야(실상 엘리야는 벌써 왔다. 그러나 사람들이 그를 알아 보지 못하고 제멋대로 다루었다. 마태복음 17 : 12)를 비롯한 예언자들의 땅이었습니다. 

그들의 세대에는 망해 없어진 마지막 유대왕국 하스몬왕조 시조였던 마카베오가 광야에서 봉기했듯이 광야는 메시야가 오실 곳이었습니다. 실제 세례요한 당시에 “스스로 자기가 메시야”라며 백성들을 광야에 모았던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고 요세푸는 그의 책 유대전쟁기에 기록하고 있습니다. 

유대광야

당시 광야는 메시야가 오실 땅이고, 새 날의 시작을 알리는 곳이라고 생각한 사람들이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반면에 광야는 반역의 땅이고, 반란의 진원지요, 도둑들의 발현지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로마와 헤롯을 비롯한 로마의 권력 대리인들, 그리고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한 종교 권력자들에게 유대광야는 늘 불온한 땅이었던 것입니다. 

요한은 그의 이름 앞에 붙은 별명처럼 세례를 주는 사람으로 유명해졌습니다. 요한의 세례는 유대의 전통적인 정결례법과는 다른 그만의 독특한 것이었습니다. 세례가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는지는 학자들간에 의견이 분분하지만 대세를 이룰만한 학문적 성과는 아직 없답니다. 

다만 당시 에세네파 공동체에서 세례의식을 행했는데 에세네파의 세례는 일정기간의 수습기간을 거쳐 정회원이 된 사람끼리만 이루어진 것인데 반해 세례요한의 세례는 누구나 다 참여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에세네파의 세례는 정례적인 의식이었던 것에 반해 세례요한의 세례는 단 한번으로 그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세례요한이 에세네파의 영향을 받은 것은 사실일 것으로 추정하는 학자들이 많답니다. 

세례요한의 세례는 누구나 다 받을 수 있었지만 한가지 전제조건이 있었습니다. 바로 “회개하라”입니다.  “회개하고 세례를 받아라. 그러면 죄를 용서받을 것이다.(마가복음 1 : 4, 공동번역)”라고 선포한 것입니다. 

그의 이러한 선포, 곧 회개와 세례를 통한 죄의 용서에 대한 선포가 광야에서 긴박하게 이루어진 까닭은 바로 세상 마지막 때가 가까이 왔다는 종말론 때문이었습니다. 

“회개하여라. 하늘 나라가 다가 왔다!(마태 3 : 2, 공동번역)”는 선언은 바로 세상 종말을 준비하라는 명령이었습니다. 

요한이 종말에 대해 생각했던 것을 바로 아는 일이 아주 중요합니다. 그의 종말사상을 정확히 이해하는 일이야말로 세례요한이 행한 세례를 바로 아는 길입니다. 그가 광야에서 행했던 설교를 통해 요한의 생각을 알아보는 일이 중요한 까닭입니다. 

<요한이 많은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이 세례 베푸는 데로 오는 것을 보고 이르되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를 가르쳐 임박한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 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고 생각하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 

이미 도끼가 나무 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지리라. 

나는 너희로 회개하게 하기 위하여 물로 세례를 베풀거니와 내 뒤에 오시는 이는 나보다 능력이 많으시니 나는 그의 신을 들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베푸실 것이요. 

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 마당을 정하게 하사 알곡은 모아 곳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리라.> – (마태복음 3 : 7 – 12, 개역개정) 

마태가 기록한 요한이 선포한 설교의 핵심입니다. 

내용인즉은 “이미 지녔다고 생각하는 기득권은 안 통한다”는 것이 첫째요, 회개가 우선이다를 것입니다. 나아가 지금 내가 물로 세례를 주지만(그저 물로 적시는 것이니 그냥 의식에 불과한 것이지만) 때가 이르러 능력자가 오셔서 줄 세례는 단지 의식이 아니라 불과 성령으로 주는 것으로 단지 의식이 아닌 심판의 행위라는 것입니다. 

세례요한의 세례는 선택의 여지가 아직 있는 것이지만 뒤에 오는 실력자가 주는 세례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그 때에는 불에 타는 심판을 피하느냐 마느냐의 선택만 있을 뿐이라는 경고이기도 한 것입니다. 

세례요한의 세례의 의미는 궁극적으로 죄에 대한 용서에 있는데 거기에는 “유대인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선민이기 때문에”라느 등의 기득권이 인정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단지 전제는 회개라는 것입니다. 이는 과거를 보지 말고 미래를 보라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선택받았다는 옛 것에 대한 미련을 버리고, 사람으로서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미래를 감사함으로 받는 길을 선택할 것을 주문하는 것입니다. 

세례요한의 세례와 선포는 유대전통의 예언자들의 예언을 뛰어 넘는 것이었습니다. 

에덴과 출애굽의 가나안으로 돌아가는 믿음이 아니라 새롭게 다가 올 새 세상을 향한 새로운 선포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 우리가 만나게 될 예수의 선포에 비하면 세례요한 역시 옛사람에 불과할 뿐이었습니다.

이제 구시대의 막내이자 새시대의 전령으로서의 요한, 그의 삶과 그를 따르던 이들, 성서에서의 그의 의미와 죽음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