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초상(初喪)입니다.

sewol22“내가 왜 수학여행을 와서, 내가 왜 세월호를 타서 , 나는 꿈이 있는데, 나는 살고 싶은데…”

침몰후 바다속으로 잠겨가는 배안에서 열일곱살 사내아이가 외쳤던  절규입니다. 고등학교 이학년이었던 김동혁군의 꿈은 그렇게 그의 절규와 함께 수장(水葬)되었습니다. 그때, 거기에 함께 있었던 305명 가운데 살아 뭍으로 돌아온 사람은 단 사람도 없습니다. 그 중 아홉명은 아직도 바다속에서 잠겨있건만 벌써 일년이 흘렀습니다.

예전 우리 조상들은 사람이 죽고난 후 일년이 지나면 소상(小祥)이라는 의례를 치루었습니다. 소상이라고 말할 때 쓰이는 상(祥)은 죽었다는 뜻으로 쓰는 상(喪)이 아니라 상서롭다는 뜻의 상자를 썻습니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지나 다시 봄이 되었으니 이제 슬퍼하는 마음을 잊고 좋은 계절을 맞으라는 뜻입니다. 슬픔에 겨워 식음을 전폐하던 세월을 접고 이제 새로운 세상을 맞으라는 뜻의 의례였습니다. 물론 이제는 거의 잊혀진 옛풍습일 뿐입니다.

이미 옛것이 되어 모두에게 잊혀진 이 풍습을 떠올리게 하는 사람들 바로 세월호 유가족들과 실종자 가족들입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자식들과 기둥이자 삶의 의미였던 가족들을 잃고 난 일년맞이가 그들에겐 다시 초상(初喪)이 되었습니다.

2015년 4월 16일을 맞이하는 세월호 유가족들과 실종자가족들은 다시 상복을 입고 삭발을 했습니다. 슬픔을 잊는 때가 아니라 슬픔에 아픔을 더하는 일년맞이입니다.

2014년 4월 16일, 봄이 흐드러진 제주의 풍광 대신 진도 앞바다 추운 겨울보다 차디찬 바다물 속으로 잠겨가며 외쳤던 김동혁군의 절규는 2015년 4월 16일 그의 어머니 김성실님의 소리가 되어 우리를 향해 이렇게 외치고 있습니다.

“어떻게 진상규명을 할지 이야기하는 사람은 한명도 없다. 하나같이 다하는 이야기는 추모와 기억 뿐이다.”

2015년 4월 16일, 여기 필라델피아에서는 김동혁군과 305명의 넋을 추모하지 않으려합니다. 아직 그들이 소리치며 절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왜 수학여행을 와서, 내가 왜 세월호를 타서 , 나는 꿈이 있는데, 나는 살고 싶은데…”

그들이 아직 살아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아직 꿈을 꾸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오늘 삼보일배의 느린 걸음으로 광화문광장으로 향해 나아가는 그들의 아버지들과 누이들과 함께, 오늘도 봄이 가득한 안산과 광화문광장 그리고 삶의 현장에서 그들의 꿈으로 사는 어머니들과 오라비들와 함께 숨쉬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잊지 않으려합니다.

“우리는 외칠 것입니다. 하나 하나 떨어져 나가 단 한사람이 남더라도 외칠 것입니다. 그렇게 우리는 돌이 되어 외칠 것입니다. 끝까지 단 한사람만이라도 남아 있기만 하다면 그 순간까지 부디 우리들을 잊지 말아 주십시요. 기억해 주십시요. 그것만이 우리들의 소망입니다. 그 바램으로 여기 필라델피아까지 우리들이 온 까닭입니다.”

그렇게 우리들의 가슴에 잊지못할 당부를 남겨놓고 다시 상복을 차려입은 김동혁군의 어머니를 기억하기 때문입니다.

진실의 반대말은 거짓이 아니라 망각 곧 잊어버림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는 진실을 지키기 위해 잊지 않을 것입니다. 잊지 않을 뿐 아니라 그 아픔과 슬픔의 진실 규명을 위해 작은 노력이나마 게을리하지 않을 것입니다.

구원의 손길을 기다리며 온몸, 온힘을 다해 마지막 순간까지 자신들의 꿈을 위하여 손톱이 다 빠지고 손가락이 까맣게 타토록 절규했던 넋들을 기리는 일은 바로 이제부터 우리들이 할 일이기 때문입니다.

2015년 4월 16일, 이제 초상입니다.

416 참사 1주기 전세계 해외동포 동시 추모 집회 from SESAMO on Vimeo.

삭발(削髮)에

2015년 Good Friday를 하루 앞둔 날, 대한민국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삭발을 하며 눈물을 흘리는 이들에 대한 소식을 듣고 보았습니다.

뻔뻔스러움에 교활함까지 더한 모든 분야의 권력과 금력 앞에서, 고작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삭발뿐이었던 이들의 눈물은 그저 아픔일 뿐입니다.

기독교력으로 Good Friday는 예수가 못박혀 죽은 날입니다. 그리고 사흘 후, 예수는 죽음을 이기고 살아나셨다는 믿음은 기독교인들이 하는 가장 중요한 신앙고백입니다.

삭발은 불교의식일 뿐만 아니라 한때 카톨릭 사제들에게 이어져온 의식이기도 합니다.

이제는 한인들에게 완전히 잊혀진 풍습이기는 하지만, 오랜 유교적 전통속에서 살아온 우리네 조상들에게 삭발은 곧 불효(不孝)인 동시에 사회적으로 매장되는 행위였습니다. 바로 살아있되 죽음과 같은 삶을 사는 사람들만이 선택할 수 있는 행위였습니다.

다만 불교에 귀의하여 승려가 되는 길을 택하면 삭발이 용인된 것이고, 이 때의 삭발이란 이제까지 괴로움이 넘쳐났던 사바세계의 자신을 죽이고, 이제는더 이상  괴로움이 없는 세계에서 괴로움이 없는 자기를 만나러 가기 위한 마지막 의식이었습니다.

“도대체 국가란 무엇인가?”, “도대체 한인이라는 공동체의 인자는 무엇일까?”, “300여 명이 넘는 사람들을, 그것도 대부분이 10대였던 아이들을, 사상최대의 구조작전을 편다는 거짓말로 국민들을 속인채 생수장을 시켜놓고, 일년이 다되도록 도대체 왜,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났었는지조차 모를 수 있다는 것을 어떻게 설명해야할까?”….

그 벽앞에서 삭발을 하고 눈물을 흘리는 이들의 사진을 보며 읊조려보는 기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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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삭발이 뻔뻔스러움에 교활함까지 더한 권력과 금력의 탐욕을 죽이고 끊는 일의 시작이기를.

그들의 삭발이 죽은듯이 사회적으로 매장된 것 같지만, 결국 사회에 새바람을 일으키는 시작이기를.

그들의 삭발이 그들이 잃은 사랑하는 이들을 부활케하는 신앙고백이 되기를.

그리고 무엇보다 그들의 삭발을 되새기고 기억하는 우리 이웃들이 넘쳐나는 세상이 되기를. >

말 잘하는 사람

00528025301_20150402소설가 최인호선생이 남기신 글 가운데 한토막입니다.

“말을 잘한다는 것은 그만큼 거짓말을 잘한다는 뜻이다. 말을 잘한다는 것은 그만큼 남의 험담을 잘한다는 뜻이며, 말을 잘한다는 것은 그만큼 아첨을 잘한다는 뜻이다. 말을 잘한다는 것은 그만큼 이간질을 잘 시킨다는 뜻이며 말을 잘한다는 뜻은 그만큼 뻔뻔하다는 뜻이다.”

그가 월간지 샘터에 연재되었던 ‘가족’시리즈를 책으로 엮어낸 두번 째 책이름은 <이웃>이었습니다. 그가 나이 쉰을 향해 달려가던 무렵이었습니다. 그의 관심이 나와 가족을 넘어 이웃으로 확대되어가던 시기였습니다.

그 무렵 그는 평소 말이 많았던 자신을 뒤돌아보면서 “말하기보다는 듣는”것의 중요성을 글로 남겼습니다.

그가 생각하는 정말로 말 잘하는 사람의 모습은 바로 이런 것이었습니다.

“진실로 말을 잘하는 사람은 남의 말을 열심히 듣는 사람이다. 자신의 선입견이나 편견없이 남의 말을 있는 그대로 진공청소기처럼 빨아들이는 사람이다. 대화란 결국 남의 의견을, 그 사람의 입장이 되어 겸손하고 진지하게 듣는 행위인 것이다.”

들을 귀와 듣고자하는 마음은 없고, 오직 뻔뻔스럽게 나불내는 입만 살아있는 사람들이 판을 치는 듯한 뉴스를 보면서 떠올려본 그에 대한 추억입니다.

 

희망의 빛

이제 꽉찬 한달을 맞는 이호진, 이아름 부녀의 삼보일배(三步一拜) 행진 소식을 봅니다.

11067514_373650812826590_1168410099292233094_n하루 한번, 그들이 어디까지 갔을까 아픈 마음으로 열어봅니다. 그들이 결코 외롭지 않을만큼, 딱 고만큼의 사람들이 함께하는 고된 순례의 행진이지만, 매일 이 소식을 통해 제가 예수쟁이이어야만 하는 확신을 다짐니다.

어제 삼배일보 순례길에서 제 딸아이보다도 어린 아름이가 남긴 글입니다. 그 아이의 글에서 가느다란 희망의 빛을 봅니다.

<한달이 다 되어갑니다. 출발할 때의 막막함과 두려움은 점점 사라지는 것 같습니다. 그냥 하루를 열심히 살고 있는 느낌입니다.하루 하루가 감사합니다.

그저 그런 하루가 아니라 감사하고 감사한 하루입니다.

길 위에서 절을 하고 있는 아빠와 저의 모습이 서글플 때도 있지만,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처음에는 화가 나서 절을 했습니다. 제가 길바닥에 절을 해도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을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제가 달라졌습니다.

믿을 수 있어졌습니다. 제가 이 길 위에서도 행복할 수 있다는 믿음이 생겼습니다.

출근한다 생각하고 아침에 길을 나섭니다. 그리고 퇴근하듯이 기쁘게 집으로 돌아옵니다.

내일 하루도 행복하기를 바랍니다.>

이들 부녀의 하루 소식을 접할 수 있는 곳입니다.

이호진 페이스북

 

우리가 돌이 되어 외치리니

어제 필라델피아 Glenside에 있는 Phil-Mont Christian Academy 강당에는 약 백여 명의 한인 동포들이 함께 했었습니다. 세월호 유가족인 두 분 어머님들과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서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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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라 인근에는 약 사만 여명의 한인동포들이 살고 있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사만 여명 가운데 백여명이란 그야말로 한줌거리도 아닐 것입니다. 1%를 넷으로 나누어야 하는 정말 적은 숫자입니다.

그러나 비록 적지만 스스로 돌이 되어 외치는 이들의 절박함을 듣고 그들의 바램을 이어가기에는 충분한 숫자였습니다.

두분 어머님과 함께 오지 못한 유가족들의 이야기를 먼저 들어봅니다.

유해종(유미지 학생의 아버지)

“웬만하면 애들이 보고 싶어 하는 거, 해달라는 거 우리 나름 해주며 살았어. 근데 자식이 이제 세상에서 없어졌네. 화가 나고 정말 미칠 것 같았어. 그래도 하나님이 무슨 뜻이 있는 건 아닌가 싶고, 더 부패되기 전에 뭘 밝히라는 뜻 아닐까도 싶고, 그렇게 생각하니까 그것도 감사하다 싶고….이게 다 뜻이 있는 게 아닐까 생각해요.”

“사실 유가족들도 지금 많이 지치긴 했어. 벌썰 몇 개월이 지난거야. 끝까지 가자는 사람도 있고, 우리가 정부를 싸워서 이기겠느냐, 계란으로 바위치는 거다 하는 사람도 있지. 너무 힘드니까. 근데 누구 하나 이탈하는 사람은 없어…..승리할 수 있을 것 같아. 단기간에 끝날 싸움은 아니야.”

전민주(신승희 학생의 어머니)

“우리는 나라하고 싸우는 건데, 온통 거짓말만 한 나라하고 싸우는 건데, 이제 사람들은 돈 얘기만 해요. … 사람들이 자식 팔아서 돈 벌려고 그런다는 말을 많이 하는데 그런 얘기 들으면 어떻게 자식 키우는 입장에서 저렇게 이야기 할 수 있을까, 자기 자식 아니라고 돈이랑 자식이랑 어떻게 바꿀까 싶고…”

“그동안 힘들었죠. 지금도 힘들고. 그래도 끝까지 갈 사람들은 언젠가는 진상이 규명된다 그렇게 말해요. 10년이든 20년이든 우리가 포기하지 않으면 된다고. …이렇게라도 해야 내가 맘이 편해요. 그것도 안하면 죄인이 될 것 같고… 언젠가는 이것도 끝이 있겠죠. 승희한테 엄마 진짜 열심히 했다고, 네가 헛되이 간 것만은 아니라고말할 날이 오겠죠. 아, 그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어요.”

김진철( 김소연 학생의 아버지)

“제가 걱정인 건…… 일이 다 해결되고 함께혔던 분들이 집으로 뿔뿔이 흩어지면 저는 어떻게 살까하는 생각이 들어유. 여기와서 그려도 히히덕거리고 웃고 있지만 다 해결된 다음에는 어떻게 이겨낼지 걱정이 되유. 지금도 술기운에 사는데… 제가 앞으로 살 계획을 소연이하고 함께 허것다고 꿈꿨는디 이제 모든 게 사라져 버린 것 같아유. 이제 앞으로 어떻게 살지, 아무런 의미도 없고, 깜깜허유.”<딸아이를 먼저 보낸 김진철씨는다른 가족없이 홀로이다.>

정부자(신호성 학생의 아버지)

“대통령이 다녀간 후에 체육관에 TV가 설치됐어요. 그때부터 뉴스를 봤어요. 그런데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이상한 뉴스가 나오더라고요….그때까지만 해도 우리가 세상을 알았나요? 애 키우고 맞벌이하고 내 가정만 챙기면 되는줄 알았지. 나라에 해경이 잇고 경찰이 있는데 그 사람들이 다 알아서 해주겠지 하고 살았지. 이런 세상인지 몰랐죠.”

“나는 이런 나라인 줄 정말 몰랐거든요. 대통령이 애도 없이 혼자 사니까 욕심없이 똑바로 해줄 줄 알았는데 그 사람이 왔다가고 나서는 뭐가 더 이상했어요. 배를 가라앉혀 놓고는 애들을 건져 왔대요. 이 더러운 나라, 이 더러운 나라, 이 더러운 나라… 이런 나라에서 이렇게 아둥바둥하고 살았나…”

“누가 그러더라고요. 호성이 가고 호상이 엄마는 만능이 됐다고. 이상한 병에 걸렸어요. 뭐라도 해야 편해요. 애가 힘들게 갔는데 부모가 편하면 안되지 싶어서. 그래야 애한테 덜 미안하고 죄가 좀 가시는 거 같아서 정신없이 돌아다녀요. 아마 평생 갈 것 같아요.”

최순화(이창현 학생의 어머니)

“어쨋든 진실이라는 목표 하나 보고 달려가다보면 목적지에 다다를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렇지만 내가 끝장을 봐야 해, 내가 결과를 내야 해 그런 생각은 아니예요. 전에는 저쪽 길로 갔다면 지금은 방향을 틀어서 이 길로 가는 건데, 그냥 끝까지 갈 뿐이지요. 어쨌든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최선을 다해서 간다. 그거예요. 이 길 가다보면 또 다른 사람들이 있으니까. 우리 가고 난 뒤에 다른 사람들이 언젠가는 밝혀 줄 거다, 그건 확신해요. 우리가 앞서서 알마만큼 가줬으니까 다음 사람들이 거기서부터 출발하면 되니까.”

문종택(문지성 학생의 아버지)

“저희 유가족들은 지금 세월호를 두번 타고 있습니다. 그런 유가족들에게 국민이고 정치인이고 언론인이고 할 것 없이 모두 컨테이너를 얹고 , 쇳덩어리를 얹고, 쌀가마니를 얹어요. 선원들보다 해경들보다 더 나쁜 사람들이 되어 가고 있어요.”

“우린 (진상규명을 위해)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일했어요. 생명수당까지 다 줘야 해. 무슨 보상을 해 주려면 그동안 우리 일한 것 다 쳐서 제대로 해줘야 해. 보상 이야기하는 사람들에게 나는 계산을 못하겠으니 당신들이 해보라고 권하고 싶어. 어떻게 계산할 수 있어. 어떻게 계산이 돼. 자식 잃은 게 계산이 돼? 정신없이 쫓아다니며 하는 우리들 이 일들을 어떻게 계산할 수 있냐고. 건강 잃으면서 하는 일들을 어떻게 계산할 수 있냐고. 우리가 지금 만들려고 하는 안전법과 그걸 위해 하는 우리들의 행동은 숫자로 계산할 수 없는 것들입니다.”

임종호(임세희 학생의 아버지)

“유가족들은 노란 팔찌 차고 목걸이도 하고 있지만 딱 전철만 타도 뱃지 달고 있는 사람들이 없거든. 서울 광화문이나 가야 있지. 특정 지역에 가야 있지 진짜 보기 힘들어요. …세희 엄마도 특별법 제정 서명 받을 때 ‘이제 그만해’ 이런 얘기 진짜 많이 듣고 매번 울었어요.”

“사람들을 만나서 얘기를 듣고 위로 받고 그러면 힘이나. 그래도 혼자가 아니구나 하고. 축 처져 있다가도 힘이 나지. 들으려고 하는 사람들이 계속 있으니까.”

노선자( 김건우 학생의 어머니)

“저는 정말 그전까지 기자들이 현장에서 발로 뛰고 그걸 보도하는 줄 알았어요. 그런데 그때 처음 알았어요. 다 거짓말이에요. 인터뷰도 자기 마음에 드는 사람 말만 담는 것 같아요. 뉴스가 진실인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더라고.”

“저는 앞으로 오래 살려구요. 오래 오래 살아서 우리 아들 기억해 줘야죠. 시간이 지나면 우리 아들 잊는 사람들도 많아질 거고 벌써 잊은 사람들도 있을텐데 나는 오래 버텨야 되겠는데…..”

***이상은 416 세월호 참사 시민기록위원회 작가기록단이 세월호 유가족들과의 인터뷰를 기록한 책 <금요일엔 돌아오렴>에서 발췌한 것입니다.

그리고 어제 필라델피아에서 만났던 동혁엄마 김성실님과 경빈엄마 전인숙님의 목소리를 통해 제 맘을 두드렸던 그들의 외침입니다.

“우리는 외칠 것입니다. 하나 하나 떨어져 나가 단 한사람이 남더라도 외칠 것입니다. 그렇게 우리는 돌이 되어 외칠 것입니다. 끝까지 단 한사람만이라도 남아 있기만 하다면 그 순간까지 부디 우리들을 잊지 말아 주십시요. 기억해 주십시요. 그것만이 우리들의 소망입니다. 그 바램으로 여기 필라델피아까지 우리들이 온 까닭입니다.”

 

“잘 들어라. 그들이 입을 다물면 돌들이 소리 지를 것이다.”– 누가복음 19 : 40, 공동번역

 

돌들이 소리 지르는 세상을 외면한 뒤에 오는 세상은 암흑일겝니다.

성서 – 나와 너 그리고 우리들의 이야기

예수 카페어떤 일이 시작되는 연유를 보면 아주 사소하거나 우연적인 계기에서 비롯할 때가 많습니다. 지금의 제가 딱 그 모습이랍니다.

지난해가 저물던 무렵의 일이었습니다. 적(籍)을 둔 교회가 있어서 이따금 나가곤 있지만 성실한 교인은 아니랍니다. 교회 입장에서 본다면 그야말로 있으나 마나한 교인이지요. 저는 그게 좋답니다.

적을 둔 교회가 감리교회인데 교회에 속한 여러 모임 가운데 목장모임이라는 소그룹이 있답니다. 그전에는 속회라고 부르던 모임이랍니다. 장로교의 구역모임인 셈입니다. 예닐곱 가정들이 함께하는 작은 교회로 한달에 한번씩 각 가정을 돌아가며 모여서 성경공부도 하고 친교도 나누고 하는 모임이랍니다.

지난 십수년간 이 작은 모임에 함께한 적도 거의 없답니다. 제 집사람 혼자 가는 것이 당연한 일처럼 굳어졌답니다. 그러다 두해 전 부터 이 소모임에 몇 번 참석을 하게되었답니다. 딱히 뭐 아내의 잔소리가 싫어서는 아니었고 어찌 하다보니 한달 걸러 한번, 아님 두달 걸러 한번 정도로 참석을 하였답니다.

그러다 지난해 11월 모임에서 아주 엉뚱한 사건이 일어났답니다. 제가 속한 모임의 구성원들 평균 나이는 60세 전후랍니다. 교회이력으로 따지면 제법 연식이 오래된 분들이고요. 그런데 그날 성경공부를 하다가 누군가가 “좀 체계적으로 성경을 알고 싶은데 마땅한 그런 계기가 없어 어떤 땐 좀 답답하다. 우리 모임에서 함께 그런 계기를 만들어 보면 어떨까?”하는 의견을 내놓았고, 이런저런 이야기들이 오고가면서 그 가운데 제 블로그 글들을 읽고 계시는 한분이 “김아무개가 좀 그걸 맡아서 해주면 어떨까?”하셨답니다.

그 모임을 주관하는 장로님께서 저에 대한 신뢰(?)가 깊으셨던지 “그거 좋겠다. 그렇게 해보자”고 하실 때, 응당 제가 철이 들었다면 “아이고, 그게 무슨…”하며 손사래를 쳤어야 옳았을 일이건만 회갑나이를 그저 숫자로만 먹어 온 이 철부지가 그만 “그러지요, 뭐”라고 한 것이지요.

그래 올 일월부터 모임 때마다 성서공부를 한 시간여씩 맡아 하기로 했던 것인데, 그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퍼득 정신이 들면서 “에라이, 이놈아! 나이살 먹고 어찌 그리 철이 안 날수가…”하는 생각이 제 뒷통수를 딱 치던 것이었습니다.

아무리 속 넓으신 장로님께서 그리하라고 하여도 그저 덥썩 “예”하면, 교회도 잘 나오지 않는 놈이 교회모임에서 성서 이야기를 하고 가르친다고 듣는 욕이나 악평이야 그 방면으로 연륜이 쌓인 제게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아이고! 모임의 수장인 장로님을 비롯한 속한 모임원들이 받을 그 많은 말들이 어찌 제 몫일 수 있으랴하는 생각이 든 것이랍니다.

그래 “제가 잘못 생각했습니다.”하고 모임원들께 넉넉하신 마음을 빌었지요. 그 대신 모두에게 누가 되지 않는 방법으로 성서 이야기를 나눌 방법들을 생각해 보았답니다.

그러다 바로 어제 일이었습니다. 멀리 떨어져 있는 이들과 비지니스 모임을 온라인에서 하게 되었답니다. 몇 해전 세탁인 교실을 이 방식으로 한 두해 해 본적이 있는데 그 때와는 환경이 아주 많이 달라져 있었답니다.

비지니스 온라인 미팅을 끝낸 후 든 생각이랍니다. 그래 이 방식으로 단 한사람과 만나더라도 성서 이야기를 함께 해보자하는 생각이 든 것이었지요.

“삶은 독파하는 것이 아니라 음미하는 것이다.” – 크리스토퍼 필립스(Christopher Phillips)라는 이가 쓴 책 <소크라테스 카페>라는 책 첫 장을 넘기면 만나게 되는 문장입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책의 소제목들입니다.

 1.  질문이란 무엇인가?(What is the question?)

2. 나는 어디에 서 있는가?(Where I am?)

3. 누구를 그리고 무엇을 원하는가?(Whom do you need?)

4. 이게 다 무슨 소린가?(What’s it all about?)

5. 왜 ‘왜’를 묻는가?(Why ask why?)

소크라테스가 고대 아테네 사람들에게 불어 넣었던 철학적 영감과 질문하는 삶을 오늘 현대인들이 되살려 일깨우는 일에 온몸을 다 던져사는 철학자 크리스토퍼 필립스(Christopher Phillips)의 물음들이 예수쟁이들에게도 그대로 유효하다는 생각으로 큰 간판을 “예수 카페”라고 올려봅니다.

성서를 마주 대하는 첫번째 자세는 ‘믿는 마음’입니다.

그리고 그 믿는 마음의 주체는 바로 ‘나’입니다. 그래 “내”가 가장 소중합니다. 성서 앞에서 ‘나’를 바로 볼 때 비로소 ‘너’가 보입니다. “네”가 “나”처럼 신 앞에서 똑같이 소중한 사람임을 아는 것입니다. 그런 ‘나’와 ‘너’들이 모인 “우리”들이 보입니다. 그런 ‘우리’의 울타리의 크기 곧 넓이와 높이와 깊이를 키우는 일을 위해 성서를 읽는 것입니다.

그래 작은 간판을 “성서 – 나와 너 그리고 우리들의 이야기”로 새깁니다.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얼마나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지 모릅니다. 그저 시작할 뿐입니다. 거의 많은 시간을 저 혼자 이야기로 꾸며질 지도 모를 일입니다. 아마 그럴 개연이 높습니다. 그렇다하더라도 제겐 참 뜻있는 순례의 길이 될 것입니다.

제 아무리 백세 시대라 하더라도 예순 해 걸어 온 믿음의 길을 정리해 보는 마음으로 다시 읽어보는 성서는 또 새로운 가능을 열어 줄 것이기 때문입니다.

“성서는 묻지 않으면 침묵한다. 그런데 어떻게 묻느냐 하는 것이 그 대답을 유도한다. 우리는 성서를 자명한 것으로 전제하고 이미 대답을 얻고 있다고 생각하는 동안 성서 대신 아집에 정좌하게 된다. 그렇지 않으려면 계속 성서를 향해 물어야 한다.” – 바로 이 맘으로 시작하는 일입니다.

컴퓨터로 제 얼굴과 제가 보여드리는 자료들을 보며 이야기를 들으실 수 있고, 전화나 스마트 폰으로도 이야기를 들을 수도 있습니다.

매주 목요일 저녁 8시 30분부터 9시 30분까지(미국 동부시간) 한시간 동안 이야기를 하려 합니다.

그 첫시간은 이번 목요일(3월 5일) 저녁 8시 30분입니다. 아래 링크를 통해 함께 하실 수 있습니다.

https://www.anymeeting.com/492-961-284

거기 너 있었는가 그 때에

매일 업데이트되는 뉴스들 가운데 구글 서비스를 통해 제가 받아보는 특정 항목에 해당하는 뉴스들이 있습니다. 우선은 직업상 세탁업(dry cleaning business)에 대한 뉴스가 있고, 미국내 한인 이민자들의 주업종인 micro business에 대한 뉴스와 미국경제에 대한 뉴스들이 있습니다. 그 다음이 한반도관련 뉴스입니다.

이런 항목들에 대한 영문뉴스들은 매일 같은 시간에 제 이메일함에 들어옵니다.

세월호-이호진거기에 엊그제부터 하나 추가한 항목이 있습니다. “세월호 유가족 3보1배”라는 한국어 검색을 추가한 것입니다.

세월호 참사로 아들 이승현군을 잃은 아버지 이호진씨와 그의 딸 이아름씨에 대한 기사를 받아보기 위함입니다. 바라기는 한국내 언론 가운데 이들과 함께 3보1배하며 이들의 고행에 대한 기사를 이어주기를 바라는 마음이랍니다.

좀 사사롭고 사치스럽기까지한 이야기지만 이호진씨의 나이가 제 아내와 같거니와 제가 제 아내의 본 이름대신 즐겨 부르던 이름이 이아름이었다는 사실이 뉴스를 쫓는 정말 하찮은 이유도 되었다는 말씀을 덧붙이면서, 그 나이에 30만번의 큰절을 해가면서 520km를 길을 걷는 부녀의 모습을 잊지 않기위해 부녀에 대한 뉴스를 쫓고자 하는 것이랍니다.

교회력으로 사순절기랍니다.

사순절(四旬節)이란 부활주일 이전에 주일(일요일)을 뺀 사십일 동안을 말합니다. 예수가 겪었던 고난을 되새김하면서 오늘 살아있는 자로서 그를 따르고자하는 신앙고백으로 보내는 40일이랍니다.

“예수를 믿는다” 또는 “예수를 따른다”는 말은 바로 내 자신이 예수가 된다는 말입니다. “나의 나됨” 곧 내 정체성과 “예수의 예수됨” 곧 예수의 정체성을 하나로 일치한다는 말이지요.

이천년 전 예수가 명령한 “나를 따르라”는 말에 따라 2015년 오늘을 사는 내가 그를 따른다는 것은, 예수가 이천년 전 팔레스타인의 상황속에서 했던 것처럼 오늘 내가 사는 상황 속에서 내가 어떻게 할 것이냐 하는 물음과 결단으로 살라는 말일겝니다.

이천년 전 예수의 모습 가운데, 그 때의 상황과 예수의 삶을 표본처럼 축약해 주는 성서 이야기가 있습니다. 바로 마가가 전하는 예수의 말입니다.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요,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니 이러므로 인자는 안식일에도 주인이니라.”(마가복음 2:27-28, 개역개정본)

예수시대에 안식일은 바로 법이었습니다. 하여 이 성서 본문은 이렇게 읽어도 무방합니다.

“법이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요, 사람이 법을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니 이러므로 사람이 법의 주인이니라.”

그 당시의 법 곧 안식일법에 대해 전해지는 우스꽝스러운 이야기들 가운데 이런 것들도 있습니다.

당시 이스라엘에서 안식일이란 금요일 해질 무렵부터 그 다음날인 토요일 해질 무렵까지를 말합니다. 그런데 금요일 해질 무렵에 나귀가 끄는 수레에 짐을 가득 싣고 막 집에 도착한 순간 해가 서산으로 꼴깍 넘어갔습니다. 이제 안식일이 시작됐으니 아무 일도 하지 못하게 된 것입니다. 안식일에는 물건을 나르거나 옮기는 일은 금지되었기 때문입니다. 이제 만 하루동안 나귀는 무거운 짐수레 굴레를 지고 지내야만 하는 것이지요. 안되었다 싶었던지 예외조항이라는 것이 하나 있었답니다. 한번만 딱 쳐서 나귀에게 매인 수레의 끈을 풀 수는 있다는 조항입니다. 딱 한번만 쳐서 말입니다.

당시 안식일법이란 아주 엄격한 법률이었는데, 엄밀한 의미에서 이 법은 있는 사람들만 지킬 수 있는 법이었습니다. 일주일에 만 하루를 아무 일도 하지않고 지낼 수 있는 사람이란 이미 어느 정도 누리고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먹고 살기위해 안식일에도 일을 해야만 하는 사람들, 몸이 성치 않거나 아파서 안식일에 회당에 나갈 수 없는 사람들은 그냥 바로 죄인이 되는 세상이었습니다.

사람 특히 없고, 누리지 못하고, 억눌려 사는 사람들에게 안식일법이란 곧 죄인이라는 족쇄를 채우는 도구였습니다.

본래 성서적 의미의 안식일이란 없는 자, 부려 지는 자, 노예, 비정규직 노동자, 품팔이 등등을 위해 하루 쉼을 주는 날이었습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안식일에는 이것도 하지말라 저것도 하지말라는 금지조항들이 하나 하나 추가되면서 (있고 누리는) 사람들이 (없고 누리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족쇄를 채우는 법으로 바뀐 것입니다.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 식의 안식일법 만능시대에 예수가 내렸던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요,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다”라는 선언은 가히 혁명이었습니다. 이즘식으로 말하자면 예수는 가히 좌빨이었던 것입니다.

이런 예수를 따라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 가운데 제임스 콘(James Hal Cone)이라는 미국인이 있습니다. 그는 미국교회의 인종차별과 인종분리에 정면으로 “No”를 선언하며 백인들이 이야기하는 해방신학과는 완전히 다른 흑인해방신학을 주창한 신학자입니다.

그는 그가 쓴 책 <눌린 자의 하느님( God of the Oppressed)>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신약성서에 따르면,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인간이 되어서 죄와 악과 죽음의 세력을 결정적으로 이겨냄으로써 인간에게 아픔의 실체에 대항해서 싸울 수 있는 자유와 능력과 희망을 준다. 이것이 바로 예수의 삶과 십자가와 부활의 의미이다.”

제임스 콘은 “아픔의 실체에 대항해서 싸울 수 있는 자유와 능력과 희망”을 품고 사는 사람들이야말로 바로 오늘날 살아있는 예수라고 선언한 것입니다.

“자유와 능력과 희망을 안고 아픔의 실체에 대항하여 싸우고자” 3배 1보의 길을 걷고 있는 이호진씨 부녀에게서 제가 느끼는 성서적 예수의 모습입니다.

이들 부녀를 향해 “가만히 있어라”거나 “이젠 그만하라” 나아가 “종북 좌빨”을 뇌까리는 교회나 기독교인이 있다면, 적어도 제가 믿는 신앙의 잣대로 그들은 종교적 사기꾼들일 뿐입니다.

이즈음 기독교인들이 즐겨 부르는 찬송 가운데 하나로 “거기 너 있었는가 그 때에”라는 노래가 있습니다.

오늘 예수의 고난은 세상 도처에서 “여기 지금 나와 함께”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거기 너 있었는가 그 때에”라는 노랫말을 “여기 지금 내가 있는가”라는 물음으로 곱씹는 일이야말로 이 사순절에 예수쟁이들이 해야만 하는 일일겝니다.

태(胎) – 3보 1배

<황사가 잔뜩 낀 23일 오전 10시, 세월호 참사로 숨진 고 이승현(단원고)군의 아버지 이호진씨와 누나 아름씨가 진도 팽목항 부둣가에 섰다. 참사 314일째 되는 이날, 부녀는 세월호 참사의 진실규명을 위해 ‘진도 팽목항~서울 광화문 3보 1배’를 시작했다(유튜브에서 동영상 보기).- 중략 –

100 여일 동안의 약 500km 여정에 나선 부녀는 “참혹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 세월호 유가족·실종자 가족들을 다시 한 번 생각해주길 바란다”고 호소했다. 이호진씨는 “(참사) 1년이 다 돼가는 지금까지 뭐 하나 제대로 밝혀진 게 없다”며 “(우리 부녀가) 30만 번 절을 하는 동안 적어도 세월호를 다시 한 번 떠올려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기사 전문보기)

오늘자 오마이뉴스가 전하는 기사 <팽목항→광화문 3보1배 “하늘 위 아들 위해 멈추지 않아”>의 도입부입니다.

일년 전 이호진씨와 그의 딸 아름씨는 승현군의 이름 앞에 “고(故)자가 붙고, 2015년 이 추운날 부녀가 함께 세걸음 걷고 큰절 한번하며 500km를 걷게 될 줄은 상상조차 못했던 일일겝니다.

어느 인생이나 어느 가족에게나 아픔과 슬픔, 기쁨과 즐거움이 있게 마련입니다. 세상 누구에게라도 말입니다. 소소한 일상적 삶속에서 누구라도 겪게되는 아픔, 슬픔, 기쁨, 즐거움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전혀 상상치 못했던 재난이 개인이나 가족에게 다가오는 일은 뉴스로는 흔한 일이지만 실제 그런 일들을 당하는 사람들은 뉴스가 될만큼 흔치않은 일입니다.

국가라는 공동체를 꾸리고 사는 까닭은 바로 그런 상상치 못한 재난이 국가 구성원인 개인이나 최소 공동체인 가족에게 닥치지 않도록 미리 방지하고, 재난이 닥쳤을 경우엔 국가의 모든 역량을 다해 그 재난으로부터 개인이나 가족을 보호하기 위함입니다. 국가가 필요한 까닭입니다.

대한민국 헌법 제34조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에는 다음과 같은 항목들이 나열되어 있습니다.

1. 모든 국민은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를 가진다.

2. 국가는 사회보장•사회복지의 증진에 노력할 의무를 진다.

3. 국가는 여자의 복지와 권익의 향상을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

4. 국가는 노인과 청소년의 복지향상을 위한 정책을 실시할 의무를 진다.

5. 신체장애자 및 질병•노령 기타의 사유로 생활능력이 없는 국민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국가의 보호를 받는다.

6. 국가는 재해를 예방하고 그 위험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하기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

이호진씨와 그의 딸 아름씨는 지금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를 “포기”한 상태입니다. 500km의 길을 (누구엔가 드리는 것인지도) 모를 30만 번 정도 큰절을 하며 백여일 동안 걷는다는 일은 <인간다운 생활> 을 “포기”’하는 사건입니다.

태

이들 부녀의 행동을 얼핏 이렇게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를 포기”한 행위로 받아들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부녀는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를 포기”한 것이 아니라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를 쟁취”하기 위해 “인간다운 생활”을 스스로 포기하고 항거하고 투쟁하는 긴 여정에 오른 것입니다.

국가가 “재해를 예방하고 그 위험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하기 위하여 노력”하지 않았고, 여전히 “노력하지 않고”있기 때문입니다.

오마이뉴스는 험하고 먼길을 떠나는 부녀와 나눈 대화를 이렇게 전합니다.

부녀는 “광화문에 도착했을 때 (대한민국이) 어떤 모습이길 바라는가”라는 질문에는 이구동성으로 비관적인 답을 내놨다.

이호진씨는 “실종자 9명 수습하고, 진상 밝히고, 책임자 처벌하고, 법질서 올바르게 확립되면 얼마나 좋겠느냐만, (우리가 3보 1배로) 광화문까지 간다고 해서 그렇게 될 거라곤 생각하지 않는다”며 “개인적으로 쌓인 한을 조금이라도 길에 내려놓고 싶다”고 한탄했다.

이아름씨는 “정부에 바라는 게 있나”라고 묻자, “그냥 하던대로 하면 될 거 같다”고 싸늘하게 답했다. “별로 기대하는 게 없는 건가”라고 다시 물으니, 그는 “그렇다”며 고개를 숙였다.

저는 이 기사를 일으며 오래전 대만 신학자 송천성(宋泉盛, Choan Seng Song)이 말한 “태(胎)의 신학”이라는 말을 떠올렸습니다.

송천성은 ‘태(胎)’라는 말을 사용하면서 창조와 희망을 이야기합니다. 그가 말한 태의 신학은 인간의 자궁 속에서 하느님의 구원을 체험하는 데서 오는 투신의 신학입니다. 이는 어머니가 자신의 몸속에 깃든 생명이 결실을 맺기까지 혼신을 다 하는데서 비롯된다고 합니다. 태의 신학은 궁극적으로 희망의 신학입니다. 생명의 궁극적 의미는 희망이기 때문입니다.

아버지 이호준씨와 딸 이아름씨는 죽은 아들과 동생인 이승현군을 생각하며 스스로를 고통속에 투신하는 여정에 나선 것입니다. 이호준씨 부녀의 투신은 죽은 고 이승현군을 위한 것이라기보다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의 모든 이들이 “재해를 예방하고 그 위험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하기 위하여 노력”하는 결실을 맺기 위해 혼신을 바치는 행위입니다.

그리고 그들의 투신이 “태(胎)”안에서 새로운 생명을 잉태하는 희망으로 이어지려면 그들의 긴 여정에 함께하는 사람들의 연대는 필수조건인 동시에 충분조건이 될 것입니다.

교회력으로 사순절 기간입니다. 예수의 삶은 수난 그 자체였습니다. 예수의 수난은 사람들의 아픔과 고통을 신(神)이 스스로 몸소 겪었다는 고백 위에 있는 것입니다. 신과 사람이 고난과 고통 속에서 하나가 되었다는 선언 위에서 구원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이호진씨 부녀가 한 말처럼 그들이 걷는 고난의 삼보일배의 끝에서 눈에 띄는 변화가 보이지 않더라도 그들의 행위는 이미 희망을 품은 태(胎)입니다.

우리들의 땅끝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증인 되리라” – 성서 사도행전(사도행전1:8)에 나오는 말입니다. 이 성서 말씀을 되뇌이며 “땅끝까지, 땅끝까지” 이른바 선교여행을 떠나는 것이 한인교회의 유행이 된 일도 제법 오래 되었습니다.

조금 지나친 비유라고 나무라시는 분들도 많겠지만 이즈음 지구촌 골치거리인 이슬람 국가(IS)의 망상과 한인교회들이 땅끝까지 선교라며 불교, 이슬람 지역을 비롯한 전세계를 향한 자기식 믿음을 내세우는 일에 무슨 차이가 있을까하는 생각도 있답니다.

내가 가서 닿을 수 있는 땅끝에 놓여 있는 것은 무엇일까요? 언제 어떻게 어느 땅끝에 가 닿더라도 내 코 앞에 언제나 놓여 있는 것은 바로 내 발끝입니다.

바로 내 발끝이 지금 나에겐 땅끝인 셈입니다.

그렇게 지금 내 발끝이 놓인 땅끝에서 오늘 공동체의 문제를 가지고 증인이 되기 위해 애쓰는 사람들 이야기 두개를 전해 드립니다.

<세월호 이야기>

오늘자 한국신문 인터넷판 첫머리를 복사한 사진입니다. 조중동이야 애초 기대조차 없으니 예외로 치더라도 한번 보시지요.

헤드

늘 있어왔던 노란 리본과 “잊지 않겠습니다”, “결코 잊지 않겠습니다.”라는 말이 싹 사라져 버렸답니다.

그나마 한겨레만 오른쪽 아래 작은 사각형으로 남겨 놓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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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잊혀져 가는 세월호를 여기 땅끝에서 붙들고 이야기하는 사람들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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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3월 8일 일요일 오후 5시, 세월호 참사의 희생자인 단원고 2학년 김동혁군과 임경빈군의 어머니 김성실님과 전인숙님이 필라에 오십니다.

참사 직후부터 지난 300여일 동안 진상규명과 안전사회 건설을 위한 유가족들과 국민, 그리고 해외 동포들의 외침이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정부와 여당, 그리고 주류 언론의 외면 속에서도 이러한 노력들이 있었기에 지난 해 11월 세월호 특별법(4.16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 및 안전사회 건설 등을 위한 특별법안)이 국회에서 통과되었습니다. 그러나 아직 진상규명을 위한 어떠한 조사도 이루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조사위 설립 준비를 지원하는 주무부처인 해양수산부는 조사위원에 대한 대통령 임명장 수여 실무를 손놓고 있고 파견 공무원을 철수 시키는 등, 오히려 조사위 설립과 활동을 의도적으로 방해하고 있다는 의혹을 사고 있으며, 새누리당 김재원 의원은 조사위를 ‘세금도둑’이라 규정하기도 하였습니다.

‘국가가 국민을 구조하지 않은 사건’에 대해 그 누구도 책임지지 않고 진상규명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선체 인양조차 하지 않으려는 분위기 속에서, 언론의 외면과 왜곡이라는 현실 속에서, 엄마들이 다시 한 번 길 위에 나섰습니다. 세월호 참사 피해 당사자로서, 현재까지 직접 보고 듣고 느낀 것을, 피해 가족이 처한 입장과 앞으로의 방향을, 동포들에게 정확히 전달코자 먼 길을 찾아 오십니다.

유가족 만남3월 8일 오후 5시부터 8시까지, 글렌사이드에 위치한 필-몬트 크리스천 아카데미(Phil-Mont Christian Academy, PMCA)에서 여러분과 이야기를 나눌 예정입니다. 참사 사흘부터 20여일 동안 실종자 구조 과정을 취재한 고발뉴스 이상호 기자의 현장기록 영상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 <다이빙벨>도 함께 관람할 예정입니다.  특히 이번 자리에서는 한국말을 모르는 분들께도 세월호 참사의 진실을 알릴 수 있도록, 영문 자막이 들어간 <다이빙벨>을 상영하며, 유가족 간담회도 원활한 소통을 위해 사전번역과 현장 통역을 제공할 예정입니다. 또한 간단한 다과가 준비하고, 아이들과 함께 오실 분들을 위해 탁아실도 운영합니다. 널리 알려주시고, 함께 참여해 주십시오.

덧붙여, 이번 주 수요일(2월 18일) 저녁을 시작해 25일, 3월 4일까지 매주 수요일 세월호 유가족 간담회 행사경비 마련을 위한 ‘일일식당’ 행사가 있습니다. 간담회 준비팀의 회의장소이기도 한 <토담골>(블루벨 위치)에 오셔서 저녁 식사를 하시면, 식사비용의 25%가 간담회 행사경비를 위한 후원금으로 사용됩니다. 오셔서 맛있는 저녁식사도 드시고, 간담회 준비현황도 살펴보세요. 장소와 일시는 아래와 같습니다.

일시 : 2015년 2월 18일 저녁 6시 이후

장소 : 토담골 (1341 Township Line Rd. Blue Bell, PA 19422 (610) 239- 9260)

관심과 참여에 거듭 감사드립니다.

필라 세사모 드림

<강정마을 이야기>

또 하나는 강정마을 이야기입니다. 땅끝을 찾아가는 사람들과 그들을 땅끝에서 맞는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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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에서 소식: 남한내 해군기지 반대 운동  –

미국 전역 영어 순회 강연회: 2015년 3월 17일 – 4월 16

운동가 박희은과 Paco Michelson 특별 강연

포기하지 않으면, 패할 없다”

2007년 이래, 강정 마을 주민과 그들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남한내 유일한 특별 자치도인 제주도에 대한민국 해군 기지의 건설을 반대하기 위해 분투해왔다.

해군 기지는 미국과 남한의 이지스  전투 시스템(Aegis Combat Systems)의 본거지가 될 것이며, 이 전투 시스템은 록히드 마틴이 무기를 추적, 유도하기 위하여 생산하였다. 남한 해군 관리에 따르면  이 기지는 20척의 전함과 15만 톤급 크루즈 선박 두 척을 수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한다.

제주도의 한국민들은 남한과 미국 정부의 이해를 위해 문화적 명소와 자신의 땅을 도둑맞는 것을 억지로 받아들이도록 폭력적으로 강요받고 있다. 이 충돌은 미국 신식민주의의 명백한 실례이다.

미국 전역 영어 순회 강연회: 2015년 3월 17일 – 4월 16

운동가 박희은과 Paco Michelson 특별 강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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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희은
: 30년 동안, 박희은은 대한민국에서 창설된 소규모 공동체 네트웍, “개척자들”과 함께 아시아 전역에 있는 분쟁지역에서 평화를 건설해왔습니다. 가장 최근에 그녀는 대한민국 제주도 강정마을에서 정의를 위해  투쟁하며 때론 울기도 하고, 기뻐하기도 하면서 투쟁했습니다.

Paco Michelson: 대한민국에서 창설된 소규모 공동체 네트웍, “개척자들”과 함께, Paco Michelson은 아시아 전역 많은 분쟁 지역에서, 가장 최근에는 주민들의 소망과는 반대로 전쟁기지가 건설되고 있는 대한민국 제주도에서 거주하며 일해왔다. 그는 군사중심정책과 억압에 직면하고 있는 제주도의 주민들과 함께 강한 저항을 구축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순회 강연회 스케쥴 (상세 행사 내용은 조만간 발표될 것임!):

Boston: March 16 (Mon) – March 19 (Thursday)

Maine: March 19 (Thursday) – March 21 (Saturday)

NYC: March 21 (Saturday) – March 26 (Thursday)

Phila: March 26 (Thursday) pm – March 28 (Saturday)

DC: March 28 (Saturday) – March 30 (Monday)

LA: March 30 (Monday) – April 4 (Saturday)

SF & Santa Cruz: April 4 (Saturday) – April 9 (Thursday)

Seattle: April 9 (Thursday) – April 12 (Sunday)

Portland: April 12 (Sunday) – April 16 (Thursday)

순회 강연회에 대한 정보 문의 연락처:

Juyeon JC Rhee <[email protected]>

www.SaveJejuNow.org

@SaveJejuNow

Facebook.com/Groups/NoNavalBase

호소문

2007년 이래, 강정 마을 주민과 그들의 지지자들은 국가 폭력, 기업 세력, 전쟁을 통한 부당 이득 취득, 환경 파괴와 맞서서 매일매일 분투하고 있다. 그들의 투쟁은 열정적이고  비폭력적이었다.

그들의 평화를 위한 노력의 결과, 아주 작은 강정 마을은 이제 남한 전역에서 “범죄”율이  가장 높은 지역 중의 하나가 되었다. (2012년 현재) 22만 명 이상의 경찰병력이 강정 마을에 상주하고 있다.

지금까지 700명 이상이 체포되어서, 650명 이상을 대상으로 약 200번에 이르는 법정 소송이 행해져서, 대략 27만 달러의 벌금이 부과되었고, 46명이 구속되었다.

외국인 30명 이상이 입국이 거부되거나, 추방, 입국이 불허되었다. 이 모두가 마을주민의 생계, 지역 생태계, 북동아시아의 평화를 위협하는 해군 기지 건설을 평화적으로 저항한다는 “범죄”를 이유로 행해진 일들이다.

강정마을 주민 다수는 농부이며, 정의를 위한 그들의 투쟁은 작물 생산을 포기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강정마을 지지자들 다수는 풀타임으로 투쟁에 임하고 있으며, 생계수단으로 임시 고용 잡일과 임시 농업 근로에 의존한다. 벌금은 더 높아져 가고 있어, 많은 사람들은 납부할 여유가 없는 수천 달러의 벌금을 내야 한다.

정의를 위한 이 투쟁에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바치고 있는 이들 용감한 평화건설자들(peacemakers)을 생각하시고, 법률 비용을 해결하는데 도움을 줄 기부를 해주십시요. 기부하려면, 다음 주소에 접속하고  “http://savejejunow.org/donate/”그리고  “Donate Now” 링크에 클릭하십시요. 당신의 기부가 “Jeju legal”을 위한 것이라는 것을 반드시 명시해 주십시요.

그들과 함께하라!

매서운 추위가 몰아친 주일 아침, 제 이메일함에 세월호 유가족 간담회에 대한 소식이 들어왔습니다.

필라델피아를 중심으로 인근에 사는 한인들 가운데, 지난해 대한민국 진도 앞바다에서 있었던 세월호 참사를 잊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모여 “잊지않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할까?”라는 물음을 줄기차게 던지며 함께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세월호를 기억하는 필라 사람들의 모임”입니다.

그이들이 오는 3월초에 세월호 유가족들 두 분을 초청하여 모시고 간담회를 개최한다는 내용과 그 간담회를 위한 준비사항들을 알리는 소식이었습니다.

그저 마음으로만 성원을 보낼 뿐 이런 저런 핑계로 적극적으로 함께하지 못하는 부끄러움으로 이 글을 씁니다.

육년 전인 2009년 1월의 어느 날 밤이었습니다. 뉴스를 전하는 화면에서는 엄청난 살인 사건이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이즈음 날이 새면 터지는 IS(이슬람 국가)의 만행에 버금가는 장면이었습니다. 그러니까 한국시간 2009년 1월 20일 아침 7시20분, 대한민국 서울 용산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크레인에 실린 컨테이너 박스안에 있는 경찰 특공대들이 망루 양쪽을 잡아당겼습니다. 그러자 망루 틈이 벌어지고, 불기둥이 망루 아래로부터 솟구쳤습니다. 불은 삽시간에 망루 전체로 퍼지며 시커먼 연기가 하늘을 덮었습니다. 그리고 그 때 그 모습을 바라보던 누군가가 외쳤다는 소리입니다.

“저기 사람이 있어요. 저기 사람이….”

애타는 맘으로 외쳤을 “저기 사람이 있어요. 저기 사람이….”라는 절규를 육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기억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있을까요?

그리고 열달 전인 2014년 4월 16일 대한민국 진도 앞바다, 바닷물 속으로 잠겨가는 여객선 세월호에 울려 퍼지던 소리 “가만히 있으라” – 그렇게 가만히 있었던 사람들은 단 한사람도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2015년 2월, 오늘 우리들 귀에는 이런 소리들이 들립니다. 바로 “그만 하라!”입니다. “제발 지겹다. 이젠 좀 그만 하라.”는 소리 말입니다.

마음만 먹었다면, 뜻만 있었다면 충분히 살릴 수도 있었던 생때같은 가족들이 죽어가는 모습을 바라보며 “저기 사람이 있어요, 저기 사람이….”를 외치는 이들에게 “가만 있으라!”라고 외치는 자들 “이젠 지겨우니 그만 하라”고 외치는 자들의 목청만 높아가는 세월입니다.

성서 마가복음의 기자인 마가는 갈릴리에서 시작하여 갈릴리에서 끝나는 이야기를 우리들에게 전하고 있습니다.

<요한이 잡힌 후 예수께서 갈릴리에 오셔서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여 이르시되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하시더라. – 마가복음 1장 14-15절, 개역개정본>

갈릴리에서 일하던 요한이 잡혀 죽음에 이르게 되자 예수는 갈릴리로 나가 그의 일을 시작했다고 마가는 전합니다.

<예수께서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시나니 전에 너희에게 말씀하신 대로 너희가 거기서 뵈오리라 하라 하는지라. – 마가복음 16장 7절, 개역개정본>

십자가에 못박혀 죽었다가 살아난 예수는 누구보다도 먼저 갈릴리로 간다는 마가의 전언으로 사실상 마가의 예수 이야기는 끝이 납니다.

“갈릴리” – 예수가 나아갔던 곳이고 일했던 곳이고 다시 살아나 달려간 곳입니다.

예수가 붙잡혀 십자가에 달리기전 사람들은 베드로가 예수 패거리였다는 것을 확인하기 위해 이렇게 묻습니다.

“사람들이 다시 베드로에게 말하되 너도 갈릴리 사람이니 참으로 그 도당이니라. – 마가복음 14장 70절)”

“갈릴리 사람이니 너 또한 한 패거리지?”라는 물음, 어디서 많이 듣던 소리같지 않으신지요?

지친 예수“저기 사람이 있어요! 사람이…”라는 외침을 불온하고 불순하다고 낙인찍으며 “가만 있어라!”, “이젠 그만 하라!”외치는 자들을 향해 나아갔던 이, 바로 예수라는 믿음이 제 믿음입니다. 그리고 여전히 “저기 사람이 있어요! 사람이…”라고 외치는 사람들이 있는 곳, 2015년 오늘 “가만 있어라!”, “이젠 그만 하라!”고 강압하는 자들을 향해 “여기 사람이 있다!”고 외치는 이들이 있는 곳, 갈릴리에 예수가 함께 한다고 믿습니다.

매운 바람소리 온종일 그치지 않는 날, “세월호를 기억하는 필라 사람들의 모임”에서 전해 온 소식 가운데 만난 예수랍니다.

‘우리가 텍스트(성서)에 말을 걸기까지는 텍스트(성서)는 결코 우리에게 말을 하지 않는다. 그리고 텍스트(성서)는 우리 자신의 언어로 대답한다. 그것이 사회학적인 언어이든 신학적인 언어이든지간에 그렇다. 간단히 말해서, 새로운 대답은 새로운 자료로부터 나오기보다는 새로운 물음으로부터 나온다.” – John Goodrich Gager(전 프린스톤대학 종교학 교수)가 쓴 <우리들은 적들과 손잡을 것인가? 사회학과 신약성서 (Shall we marry our enemies? Sociology and the New Tastament)>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