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이 된 사내 이야기 12

다시 성서로 돌아가 보자.

마가복음 4장 30-32에는 이른바 “겨자씨의 비유”에 대해 기록하고 있고, 4장 26-29절에는 “자라나는 씨의 비유”가 마태복음 13장 33절에는 “누룩의 비유”들에 대한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다. “어떤 여자가 누룩을 밀가루 서말속에 집어 넣었더니 온통 부풀어 올랐다. 하늘나라는 이런 누룩에 비길 수 있다(마태 13 :33)”는 말을 세상을 확 바뀌는 어떤 것으로 이해할 수도 있겠다만 겨자씨의 비유나 자라나는 씨의 비유처럼 나는 서서히 변하는 어떤 것으로 이해한다. 왜냐하면 그 본질 밀가루가 변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 비유 이야기들에 있어 아주 중요한 것은 사람이 할 일과 하나님의 할 일이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나라는 이렇게 비유할 수 있다. 어떤 사람이 땅에 씨앗을 뿌려 놓았다. 하루 하루 자고 일어나는 사이에 싹이 트고 자라 나지만 그 사람은 그것이 어떻게 자라 나는지 모른다(마가 4: 26-27)” 사람이 할 일은 씨를 뿌리는 일이다. 그것을 자라게 하는 것은 하나님의 일이다.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 가는 과정이란 말이다.

예수가 말한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핵심적 이해는 바로 이것이다. 땅에 씨를 뿌리는 것, 가루에 누룩을 섞는 것, 그것은 사람이 할 일이다. 그리고 씨를 심는 땅, 누룩을 받는 가루는 역사이며 현실이다. 바로 오늘이다. 그리고 자라고 부풀리게 만드는 것은 하나님이다. 하나님의 나라는 확 바뀌는 어떤 것이 아니라 비록 지금 우리 눈으로 확인하고 만질 수는 없어도 역사 안에서 현실화되는 것이다. 그 나라는 이 천년 전 예수가 서서 말하였던 갈릴리에서부터 오늘 여기까지 지속적으로 실현되고 있는 곳이며 이 일에 모든 사람들이 참여하도록 초청받은 곳이기도 하다. 그런데 예수를 죽음으로 이끌어 간 (아니 어쩌면 그 스스로 이끌려 간) 사람들의 하나님 나라의 이해는 지금 오늘도 곳곳에서 일어 나고 있다. 그를 또 다시 죽음으로 몰고 있다. 사람의 일과 하나님의 일을 자꾸  뒤바꾸어 놓기 때문이다.

이야기가 또 어려워졌다. 쉬운 이야기 하나 하자.

 언젠가 “아버지 학교”를 다녀 온 후배가 한 말이다. “제가 확 바뀌었습니다. 기쁘게 살자는 것이죠. 우선 화를 내지 말자. 말의 높이를 낮추자. 성내는 마음을 죽이자. 그렇게 하고 나니 우리 가정이 확실히 바뀌었습니다. 가정이 천국이 되어 갑니다.”

자, 그의 표현대로 그가 확 바뀌었다치자. 그의 가정은 아버지학교를 다녀오기 전이나 다녀 온 후나 구성원에 있어서는 변함이 없다. 그런데 그 가정이 천국으로 바뀌었다고 고백한다. 하나님의 나라는 결코  먼 곳이 아니다.

기쁨과 나누어 먹는 밥에 대한 예수의 선포는 마침내 말로써가 아니라 그의 온 몸을 던진 증언으로 우리 앞에 다가 온다. 하나님의 나라가 그렇게 다가 서는 것이다. 더불어 나누어 먹는 본을 보이며 마침내 그의 몸을 나누는 밥으로 내어 놓은 역사적인 장면 그것이 바로 최후의 만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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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음식을 먹고 있을 때에 예수께서 빵을 들어 축복 하시고 제자들에게 떼어 나누어 주시며 ‘받아 먹어라, 이것은 내 몸이다’하고 말씀하셨다.(마가 14: 22)” 이 때가 유월절이라고 하였다. 죽기 직전에 마지막 식탁, 그는 나누는 밥상을 온 몸으로 보여 설명한 것이다. 하나님의 나라는 바로 지금 여기에서 나누는 밥상과 함께 하는 것이다. 사족(蛇足)처럼 한 마디 달자. 이즈음 차고 넘치는 교인들의 “나 하나만” 또는 “내 가정만” 아니면 “내 교회만”하는 곳은 하나님의 나라와는 아주 다른 곳이다. 물론 나도 그 한 가운데 서 있다.

기쁨에 대한 예수의 실체적인 증언 그것은 바로 부활이다.

“젊은이는 그들에게 ‘겁내지 말라. 너희는 십자가에 달리셨던 나사렛사람 예수를 찾고 있지만 예수는 다시 살아 나셨고 여기에는 계시지 않다. 보라. 여기가 예수의 시체를 모셨던 곳이다. 자, 가서 제자들과 베드로에게 예수께서는 전에 말씀 하신대로 그들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실 것이니 거기서 그 분을 만나게 될 것이라고 전하라하였다.(마가 16: 6-7)” 예수가 다시 <살아났다>고 번역된 ‘에게이로’라는 본래의 말 뜻은 <일어나다> 또는 <궐기하다>라는 뜻을 담고 있다고 한다.

캄캄한 죽음을 이기고 다시 일어난, 다시 궐기한 예수는 갈릴리로 그의 삶의 현장이었던 갈릴리로 먼저 향했다. 기쁨은 바로 이것이다. “기쁜 소식” 곧 복음 – 예수가 살아 복음이 되어 오늘 여기 우리들의 갈릴리에서 기쁨으로 일한다는 성서의 증언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나라이다.

예수를 죽였던 무리들, 그를 따르다 죽음으로 몰고 가는데 함께 하였던 추종자들은 오늘도 살아 있다. 그들은 어떤 이들 이었을까?

***오늘의 사족

‘아버지 학교’를 통해 확 바뀌었다는 후배는 세월이 흘러 바뀌기 전 본래 모습으로 돌아갔다. ‘에게이로’ – 일어나라! 궐기하라! 그게 아직도 누구에게나 유효한 까닭이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밥이 된 사내 이야기 11

둘째로는 예수가 말한 하나님의 나라의 핵심은 “기쁨”이다.

몇 군데 성서를 찾아 읽어 보자. “하늘나라는 밭에 묻혀 있는 보물에 비길 수 있다. 그 보물을 찾아 낸 사람은 그것을 다시 묻어 두고 기뻐하며 돌아 가서 있는 것을 다 팔아 그 밭을 산다(마태 13: 44, 이하 공동번역 성서)”, “잘 들어 두어라. 이와 같이 회개할 것 없는 아흔 아홉보다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는 것을 하늘에서는 더 기뻐할 것이다(누가 15: 7)”, “그러다가 돈을 찾게 되면 자기 친구들과 이웃들을 불러 모으고, 같이 기뻐해 주십시오. 잃었던 은전을 찾았습니다.’ 하고 말할 것이다. 잘 들어 두어라 이와같이 죄인 하나가 회개하면 하나님의 천사들이 기뻐할 것이다.(누가 15: 9-10)”, “그런데 네 동생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 왔으니 잃었던 사람을 되찾은 셈이다. 그러니 이 기쁜 날을 어떻게 즐기지 않겠느냐?(누가 15: 32)” 긴 이야기를 다 인용하지 못하였다만 하나님의 나라에 대해 설명하는 예수의 이야기에서 나는기쁨을 발견한다.

그런데 이기쁨이란 것이 죽어 저 세상에 가서 누리는 것이거나 막연하게 생각속에서 느끼는 것이 아니라. 지금 여기에서 이전과 지금의 바뀐 상황에서 누리는 기쁨이라는 말이다. 죄인 한 사람의 회개, 잃었던 것을 되찾은 현실, 집 나가갔던 아들의 돌아옴같이 이전과는 다른 어떤 현실 속에서 맛보는 기쁨이다.

예수는 이 천년 전 갈릴리 사람들을 향해 말하였다. 나는 당시의 사람들에게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곳이요라는 설명이 필요 없는 공동의 사전 이해가 있었을 것이라고 말하였다. 당시 사람들이 생각하며 오기를 고대하였던하나님의 나라와 예수가 선포한하나님의 나라의 차이 때문에 예수는 죽음을 피하지 못하게 된다고도 하였다. 바로 이 기쁨에 대한 이해에서도 똑같이 말할 수 있다. 예수를 따랐던 추종자들이나 예수와 적대관계에 있던 사람들에게나 예수의하나님 나라 이야기는 어찌 보면 좀 황당한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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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예수를 따랐던 이들의 입장에서 예수를 바라 보자.

“우리를 위하여 태어 날 한 아기, 우리에게 주시는 아드님, 그 어깨에는 주권이 메어지겠고 그 이름은 탁월한 경륜가, 용사이신 하나님, 영원한 아버지, 평화의 왕이라 불릴 것입니다. 다윗의 왕좌에 앉아 주권을 행사하여 그 국권을 강대하게 하고 끝없는 평화를 이루며 그 나라를 법과 정의 위에 굳게 세우실 것입니다. 이 모든 일은 만군의 야훼께서 정열을 쏟으시어 이제부터 영원까지 이루실 일이옵니다(이사야 9: 5-6)”

이 염원은 갈리리 사람들뿐만 아니라 온 유대가 기다리는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표상이다. 그들의 기대는 분명 로마 압제에서의 해방, 로마의 앞잡이 노릇하던 예루살렘 성전체제와 헤롯왕국의 변혁이었고, 그리하여 마침내 다윗 왕권을 회복하여 하나님을 대신한 구세주가 통치하는 세상을 바랐던 것이다. 그들이 누리는 기쁨이란 바로 그런 나라에서 사는 것이었고 예수가 바로 그 주인공이라고 생각하며 그를 따랐다.

예수를 적대시했던 이들의 눈에도 예수는 분명코 무슨 일을 내고야 말 사람으로 비추어졌다. “보아라. 저 사람은 즐겨 먹고 마시며 세리와 죄인하고만 어울리는구나(마태 11: 19)” 먹고 마시는 것이 문제가 아니다. 그가 어울려 다니는 무리들이 문제였다. 먹고 마시되 체제 안에 사람들과 하는 것이라면 아무 문제가 없었을 것이다. 죄인들의 무리와 어울려 먹고 마시고 나누는 데 문제가 있었던 것이다. 이들에게 있어서 예수는 분명 체제 전복을 노리는 세력 바로 중심이었다.

예수가 말한 상황이 바뀐 곳에서 맛보는 기쁨에 대한 이해는 듣는 이들에 따라 전혀 다르게 다가섰다. 추종자들에게는 확 바뀐 현실이 곧 다가 올 것이고 그 중심에 예수가 있고 기쁨은 그들의 몫이 된다는 것이었으며, 적대자들에게는 체제 전복의 언어로 다가 선 것이다. 그러다 이들의 이해는 한 곳에서 만난다. 추종자들은 어느새 실망하고 분노한 군중으로 변하고 적대자들은 회심의 미소를 짓는 예수의 죽음이다. 무엇이었을까? “기쁨을 말하였던 예수가 왜기쁨을 고대하였던 당시의 사람들의 함성과 손에 죽게 되었을까?

나는확 바뀌는 세상꾸준히 지속적으로 그리고 점진적으로 바뀌는 세상의 차이로 이해하고 있다. 예수의 첫 선포는 매우 다급하고 급박한 표현으로 선언되었다.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웠다바로 지금 눈 앞에 다가 섰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세상은 확 바뀌는 혁명적 세상이 아니다. 바로 이 차이다. 사람들은 당장 맛 보아야할 기쁨, 확 바뀌는 세상을 고대하였다. 그러나 예수는 그런 나라를 말하지 아니 하였던 것이다.

밥이 된 사내 이야기 10

성서는 예수가 공생애를 시작하기 전 곧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다는 선포를 하기 전, 예수가 사탄에 이끌리어 세 가지의 시험을 받았다고 기록한다.

돌로 밥이 되게 하라”, “기적을 보여라, 신이 너를 지키리니…”, “나를 경배하라, 세상을 네게 주리라” 하는 세 가지 시험 말이다.

이것은 바로 당시 하나님 나라를 고대하던 유대 민중들이 원했던 절실한 바램을 해결해 줄 세가지의 열쇠이었다. 경제, 정치, 종교적 압제에서의 해방을 이루어줄 최선의 방책이었다. 그런데 예수는 시작부터 “아니오”였다.

당시의 민중들이 바라는 해결책을 처음부터 “아니오”하며 그들 앞에 선 사람이 예수였다.  갈릴리 해변에 모여 “하나님 나라”를 말하는 예수와 듣는 사람들의 생각이 처음부터 달랐다. 이것이 바로 예수를 죽음으로 몰고 간 까닭이다.  예수는 당시 갈릴리 사람들처럼 밥에 대한 관심이 매우 컸다. 그런데 밥을 바라보는 예수와 듣는 청중 사이에 간격이 있었고,  그 간격 때문에 예수가 죽는다는 말이다.

밥의 문제 때문에 이야기를 들으려 온 사람들의 관심은 제 배 채우려는 데 있었다. 그런데 예수는 “나누는 밥”을 말하였던 것이다. 있는 분, 없는 놈이 예수의 관심이 아니었다.

성서를 다 인용할 수가 없다. 만일 관심이 있는 분들은 지금 성서를 찾아 읽어 보라. 신약성서 누가복음 14장 12절에서 24절까지이다. 얼핏 읽으면 부자에 대한 피해 망상적인 기피증과 가난한 이들에 대한 일방적 편애가 나타난 것 같지만 “아니다”이다.

밥의 문제에 대한 일반적인 대응을 예수는 우선 피력하였고 예수의 관심은 모든 이들에게 열려있다는 것이다. 예수는 잔치상에 모든 이들을 초대한다. 있는 놈, 없는 분을 가리지 않았다. 이 이야기는 마태복음도 나온다. 누가는 어떤 사람이 잔치를 열었다고 하였고 마태는 왕이 잔치를 열었다고 기록한다. 어쨋거나 많은 사람들을 초대한다.

먼저 초청을 받은 이들은 그들의 가진 것 때문에 이 초대에 응하지 않는다. 화가 난 주인은 가난한 자, 불구자, 소경, 절뚝발이는 물론이요, 거리에 나가서 아무나 불러 내 집을 채우라고 명한다. 잔치상이 무엇인가? 나누어 먹는 것이다. 이 나누어 먹는 잔치상을 차려 놓은 것은 주인이다. 누구에게나 열려 있었다. 초대한 주인은 애초 어떤 편파성을 띄고 사람들을 초대한 것이 아니다. 그런데 그 나누어 먹는 자리를 차지한 사람들은 소외된 계층의 사람들이었다.

이 이야기는 결국 잔치상에 초대받은 사람들이 밥을 나누어 먹는 것으로 끝이다. 하나님의 나라는 밥을 나누는 나라인 것이다. 시인 김지하는 예수가 말한 이러한 하나님의 나라에서 영감을 얻어 “밥이 하늘이다”라고 선언하였다. 물고기 두 마리와 떡 다섯 덩어리로 오 천명을 먹이고도 남았다는 기적은 무엇을 말함인가? 나누어 먹는 밥상의 기적을 말하는 것이다. (김지하 이야기 나왔으니 한마디 하고 갈까. 그가 ‘밥이 하늘이다’고 선언했을당시만 하여도 그는 맨정신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어디 ‘나누어 먹는 하늘’이 선언으로 이루어지는 일이던가? 그도 제 배가 고팠을 터이고… 선언이 아뿔사였겠지. 그를 탓할 일 없다. 느끼고 깨달으면 될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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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자는 복이 있다. 하나님의 나라가 저희 것이다”, “부자가 하늘나라에 들어 가는 것보다 낙타가 바늘구멍에 들어가는 것이 쉬우리라”고 가히 혁명적 선언을 한 예수의 참 뜻은 바로 나누어 먹는 밥상 정신을 강조한 것이다.

가난하다는 것이 결코 자랑일 수 없으며 부를 누리는 것이 결코 죄가 될 수 없다. 부와 가난의 본질 곧 나누는 밥상 정신이 있고 없음이 바로 하나님의 나라에 참여 여부를 결정하는 요인이 된다는 말이다.

예수가 율법을 온전히 지키며 살았다고 자부하는 부자청년이 “영생의 길”의 길을 묻자 그에게 한 대답 아니 명령은 “네 가진 것을 팔아 가난한 사람에게 주라”이다. 이것이 바로 예수가 갈파한 하나님의 나라의 핵심 내용이다. 나누는 밥 말이다. (나누는 형식에 대한 고민은 인류 역사가 끝날 때까지 이어질 터이고, 비록 돌고 돌며 때론 뒷걸음치는 것같지만 그래도 공평한 방법으로 나아간다는 믿음이 있는 이들에 의해 역사는 발전해 나갈 것이다.)

두 번째는 “기쁨”이다. 하나님의 나라는 “기쁨”을 누리는 나라이다.

하나님의 나라는 밥을 나누어 먹는 곳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나누어 먹는 곳”이라는 말은 아주 현실적 표현이다. 나중에, 뒤에 가서, 그 날에 그런 것이 아니라 바로 지금 여기에서 나누어 먹는 현실을 말하는 것이다. 그런 “하나님의 나라는 가까웠다”

 

 

***오늘의 사족

오병이어 곧 물고기 떡 다섯 덩어리와 물고기 두마리 그거 한 번 생각해 보자.

오천 명이 있었다. 애들과 여자는 빼고서다. 그 때나 지금이나 종교적 모임 그러면 당연히 여자들이 많았을 것이다. 그럼 거기 얼마나 있었을까?  아무리 적게 잡아도 만 명은 넘었었겠지. 글쎄 그 당시 인구로 이게 가능했을까? 믿자. 믿음인고로.

그러나 그 광야에 그렇게 나 온 이들 가운데 먹을 거 가지고 온 사람이 달랑 한 가족 뿐이였을까? 그건 아니였겠지. 딱 자기들만 먹으려고 짱 박고 있었겠지. 움켜 쥐고 있었겠지. 나와 내 가족들 배채우는 게 우선있을 터이니…

그런데 기적이 일어났다.  그렇다. 기적은 있다. 나누려는 맘이 바로 기적의 씨앗이었다. 예수의 기적은 마음에서 시작된 일 아닐까?

열 두 광주리 남은 이야기는 이 글의 이부(가슴으로 만난 예수 이야기)에서 이어가려 한다.

 

 

밥이 된 사내 이야기 9

지난 이야기에서 민감한 부분에 대해 마구 휘둘려 말한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만 어찌하랴 내 뜻을 나타내는 글을 쓰고 있으니 말이다

한 걸음 물러서서 이렇게 이야기하자. 하나님의 나라는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오는 것”이라고 한 내 말에 꼬리를 단다. 사람이 죽은 후 또는 세상이 종말을 맞은 후에 대한 열쇠는 세상 누구도 갖고 있지 않다. 이렇게 말이다. 그것은 오로지 신의 영역이다. 자 이렇게 한 걸음 물러서면 더욱 더 “오는” 하나님의 나라가 나의 관심이 되는 것이다. 

 

일테면 “나”라고 하는 인생을 놓고 보자. “나”는 죽어서가 아니라 살아서도 하루에 열 두 번씩 지옥불에 던지어 진다. 끊이지 않는 탐심(貪心)과 욕심과 음심(淫心) 거기서 끝나기만 한다면야 얼마나 좋으리. 나 하나 세우자고 아니면 조금 편하자고 이어지는 거짓말과 허세 진짜 가도 열 두 번씩 간다. 지옥에. 

 

이 어쩔수 없는 “나”는 예수를 기댄다. 예수의 십자가에 기댄다. 그의 십자가를 대신 지기는커녕 그의 십자가의 공로 의지하여 “내가 예수 당신을 믿사오니” 그 말 한마디로 하루 열 두 번씩 지옥불에 던져지는 그 순간 나는 천국열차로 갈아탄다?

 

 

자! 이건 사람의 영역이 아니다. 믿음에 백 제곱을 한다하여도 그건 사람이 판단할 일이 아니다. 그것은 신의 영역이다. 그러니 신께 맡기라고? 예수는 결단코 그렇게 쉬운 하나님의 나라를 말하지 아니하였다.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라는 예수의 선포를 들은 이들은 이 천 년 전 유대 갈릴리 사람들이었다. 그들이 이해하는 하나님의 나라는 어떤 것이었을까?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이 주권을 갖고 통치하는 나라이다. 유대의 역사는 이 전통으로 이어 온 역사이다. “오직 여호와만”이라는 기치 아래 역사를 일구어 온 민족이 그들이다. 다윗의 후예에서 구세주가 나타나 하나님 나라를 건설한다는 믿음으로 지탱해 온 역사이다. “반가와라, 기쁜 소식을 안고 산등성이를 달려오는 저 발길이여! 평화가 왔다고 외치며 희소식을 전하는구나. 구원이 이르렀다고 외치며 너희 하나님께서 왕권을 잡으셨다고 시온을 향해 이르는구나(이사야 52,7)” 유대민족 염원의 소리이다. 하나님이 왕권 곧 주권을 세우는 현실이 바로 하나님의 나라이다. 

 

예수가 살았던 시절은 이 하나님의 주권이 아주 실종된 상황이었다. 유대민족은 로마의 식민이 되어 로마황제의 통치 아래 있었다. 조선총독부 통치 아래 일본의 식민이었던 한민족이었다. 썩을대로 썩은 성전체제는 유대민족에게 이중고(二重苦)를 안겨 주었다. 당시의 성전체제는 엄청난 권력을 행사하였다. (덧글 하나 붙일까? 이즈음 한국에서 “그 때(일제시대)가 좋았다”는 미친 놈들이 널 뛴다고 하더라만, 그게 우리 민족만 그런 게 아니다. 어느 민족, 어느 때건 그런 미친 종자들은 있어 왔다. 더하여 역사는 정말 긴 것이다. 하여 자괴는 금물일진저.)

 

이른바 산헤드린과 성전의 두 권력은 당시 유대인들의 등에 엄청난 짐을 지우는 권력기관이었다. 산헤드린은 유대인들을 대표한 최고의결기관, 오늘로 말하자면 국회쯤 되겠다. 당시 로마제국은 산헤드린에 보내는 공문서에 “정부”, “원로원” 또는 “예루살렘 시민”이라고 호칭했던 것으로 보아 유대민족을 대외적으로 내세우던 기관쯤 될 것이다. 대사제를 중심으로 10명 내외의 제사장으로 구성된 상임집행부에 의해 운영된 성전체제는 그 권한이 막강하였다.

 

일테면 경제발동권이 그것이다. 첫째가 십분의 일세(십일조)를 거두어 드리는 권한이다. 둘째는 예루살렘 성전에만 하나님이 계시다는 신조(이런 것이 바로 정치든 종교든 권력형 사기이다만)를 내세워 모든 유대인들을 최소한 년 1회 예루살렘으로 모이게 하여 돈을 뜯어내는 일이다. 현실이 그러하였다. 만일 십일조를 못 내든가 최소 일 년에 한 번 예루살렘 성전 참배를 못하는 경우, 그들은 죄인이 된다. 

또 하나 성전체제가 당시 유대인들에게 부과한 짐은 이른바 안식일법령과 정결법이다. 안식일법령은 가히 사람을 꽁꽁 얽매는 법령이었던 바 일테면 “안식일에는 이천 걸음 이상 걸어서는 안 된다‘, ”병을 고쳐서는 안 된다“, “두 글자 이상의 글을 써서는 안 된다”, “글자를 고쳐 다시 써서도 안 된다”, “물건을 옮겨서도 안 된다”, “안식일에는 구걸을 해서도 안 된다” 온통 아니된다였다.(이즈음 한국도 이 바람 불었더라. 안 되는 게 점점 많아진다지) 

 

예나 지금이나 있는 분들이야 무슨 고통이 있으리. 다 없는 놈들이 문제지. 신명기법전 곧 여호와를 고백하던 초기 유대인들에게 안식일은 분명 가난한 자들을 쉬게 하려는 정신으로 만들어 진 것이건만 체제화된 성전의 공권력은 가난한 자들을 억누르는 방편으로 안식일을 이용하는 세태이었다.

 

이 위에 정결법은 더욱 가관이었다. 음식 그릇을 씻는 일에서부터 의복, 몸에 대해 어떻게 정결하게 하여야 하느냐를 아주 자세히 규정해 놓은 이 법은 사실 없는 놈들은 거의 지키기 어려운 것들이었다. 이것을 지키지 못하면 다 죄인이 되었다. (오늘날에도 많이 듣는 이야기 아니더냐. 성수주일, 십일조, 거룩 이거 지키지 않으면 지옥행, 오늘도 도처에서 그리 아우성들 치지) 

 

자! 로마에 뜯기고 동족의 성전체제에 뜯기고 죄인중에 큰 죄인이 된 사람들이 기다릴 것이 무엇이었겠나? “저 세상”아니었겠나? 그것이 어떤 곳인가? 하나님의 나라이지. 하나님이 통치하는 나라, 하나님의 세상 곧 우리들의 세상이 꿈 아니었겠나? 물론 그 평온한(?) 세상이 천 년 만 년 가주기를 바라던 세력들도 있었겠지. 로마의 권력과 그에 아부하던 유대족들, 성전체제 아래 배 두드리던 권세가들 그 무리들에게야 바로 그 때가 천국이었겠지. 구태여 일제치하 한민족과 비교 아니하여도 알지 않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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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그 때 갈릴리 바다 바람 맞으며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라고 소리친 것이 예수이다. 몰려 든 사람들은 이리 뜯기고 저리 뜯기다 “행여 하나님의 나라가 오는 것일까?”하는 설레임으로 다가 선 이들이었다. 그들이 바라던 하나님의 나라는 구세주의 왕국 곧 메시아의 나라이었다. 

 

그들이 무엇을 바랐겠는가? 정치적 해방, 경제적 평등, 종교적 자유 그랬겠지. 그 때나 지금이나 원초적인 사람들의 바램, 비나리 뭐 그런 것들을 크게 벗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모여든 사람들과 예수의 생각은 처음부터 달랐다.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생각이 처음부터 달랐다는 말이다. 그런데 예수는 하나님의 나라를 말하였다. 그의 죽음의 서곡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 2013부활주일 아침에…하나님 나라의 오심을 믿고 간구하며

 

밥과 기쁨 -2

바로 지금 오늘 여기에.

첫 생각을 잃어 버리게 된 것이다. 예수는 분명하나님의 나라를 첫 설교에서 선포하였고 그의 생애를 통해 즐겨 이야기하였는데 그 나라가 어떤 곳이냐하는 물음이 없어진다면 이건 좀 우스운 이야기 아닌가 말이다. 나는 아무래도 그 나라가 어떤 곳이냐하는 물음에 대한 답을 찾아야겠다. 

기록에 의하면 하나님 나라에 대한 일체의 설명없이 예수는 막바로 그 나라가 다가왔다라고 선포하였다. 그 말을 들은 사람들은 이천년 전 유대 갈릴리 사람들이었다. 자 이야기를 이렇게 풀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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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대 중반의 서울, 사람들이 연일 모여 데모를 한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 마이크를 붙들고 “여러분, 마침내 이 땅에 민주화가 가까이 왔습니다”하고 외쳤다. 사람들이 “민주화가 무엇이오?”하고 묻겠는가 아니면 “와”하고 함성을 지르고 박수를 치겠는가? 

또 다른 이야기 하나. 2015년 어느 날, 남북 문제가 아주 잘 풀려서 남북에서 공동성명을 발표하였다 치자. “칠 천만 한민족 동포 여러분! 마침내 통일이 다가왔습니다” 그랬다고 상상이나 한 번 해 보자는 말이다. 그 때 “통일이 무엇이오?”라고 묻겠는가 아니면 “어, 어”하며 설레임과 말 못할 두려움 그런 것들에 휘감기겠는가? 설명이 필요 없다는 말이다. 우리네 역사 경험에서 갖게 된 통일과 민주화에 대한 어떤 표상이나 현실에 대해 구구한 설명이 필요 없다는 말이다. (솔직이 내가 이 글편들을 쓴 것은 몇 년 전 일이다. 한국은 민주화된 나라라는 것이 이 글을 쓸 당시 나의 인식이었다. 헌데 2013년 현재의 한국은 “민주화가 가까이 왔습니다”라는 선포가 여전히 유효한 땅이다. 어쩜 하나님의 나라는 이와 똑 같은 거 아닐까?)  

나는 예수가 선포한 “하나님 나라”에 대한 당시 갈릴리 사람들의 이해가 이와 거의 엇비슷 했을 것이라고 믿는다. 그 나라에 대한 특별한 설명을 하지 않더라도 당시 갈릴리 사람들에게는 그들이 함께 느끼고 있는 하나님 나라에 대한 염원과 그 나라가 온다는 믿음이 밑바닥에 깔려 있었다는 말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예수를 에워싸기 시작했고 예수는 그들이 이해하고 있는 하나님 나라에 대한 생각들과 자신의 생각이 다른 부분들에 대해 말하기 시작하였다. 그게 바로 하나님나라 비유 이야기들이다. 

또 다른 예를 하나 들자. 예수는 기도의 원형을 가르쳐 주었다. 

모이면 외우는 주기도문이 그것이다.

이렇게 시작된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가 임하옵시며…” 나라에 대한 설명은 전혀 없다. 그리고 그 나라는 “임하는” 것이다. “임하다” 곧 “come”이다. 

하나님 나라가 어떤 곳이냐 하는 물음에 대한 답을 찾기 전에 이 이야기를 먼저 해야만 하겠다.

하나님 나라는 “온다”는 것이다. 하나님 나라가 가까웠다는 선포나 나라가 임하소서 하는 기도에서 하나님 나라는 역사 한복판 곧 우리들의 삶의 현장 바로 오늘 여기 오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사실 복음서 어디를 훑어 보아도 한국적 생각과 관습에 젖어 쓰는 “천당”이라는 말에 해당되는 표현은 없다. 더더군다나 “천당에 간다”는 표현도 없다. 다만 주로 마태가 기록한 복음서에 “하늘나라에 들어간다”는 표현들이 있지만 이 말은 우리들이 생각하는 “천당에 간다”는 느낌과는 사뭇 다르다. 마태의 유대교적 전통과 그들의 역사적 관습에 따른 표현 “성전에 들어간다”고 하는 매우 현실적 상황을 나타내는 어법이라는 말인데(이 부분은 슈바이쳐의 해석이다) 또 조금 어렵게 나갔다만 성서의 본뜻은 하나님의 나라는 오는 것이지 우리가 그리로 가는 것은 아니다라는 말이다. 

적어도 예수가 말한 하나님의 나라는 우리가 이승에서 저승으로 가는 뜻의 그런 나라는 아니다. 그 나라는 우리가 살고 있는 삶의 한 복판 바로 여기 지금 오늘 가까이 왔다. 그렇게 온다. 그게 과연 어떤 모습일까? 

<오늘의 사족> : 천국, 가까이 온 하늘나라는  바로 우리들의 구멍가게 바로 그 곳으로 온다. 코너 스토아, 네일가게, 가발 가게, 잡화, 세탁소, 야채가게 등등 바로 오늘 하루를 지지고 볶는 그 곳에…

바로 지금 오늘 여기에.

 

밥과 기쁨 – 1(하나님 나라)

밥이 된 사내 이야기 – 7

<밥과 기쁨 –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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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와 함께 했던 사람들 그리고 그의 죽음을 이야기하기 전에 먼저 생각해 볼 일이 있다.

도대체 그가 살아생전 무엇에 그렇게 관심이 있었고 무슨 말을 하였나 하는 것이다.

역사속 예수를 연구하던 또는 연구하는 학자들이나 거룩하신 정통 보수 신앙인들 모두 예수가 십자가에 달려 죽었다는 사실에는 의견이 일치한다. 물론 예수가 십자가상에서 반쯤 죽은 상태에 있다가 그의 측근들에 의해서 어찌어찌 구사일생하여 막달라 마리아와 함께 멀리 일테면 스페인 어디론가 가서 숨어 살다 죽었다던가 하는 소설책들도 있다만 그런 것은 다 허구의 문학작품들이고 예수가 십자가에 달려 죽은 사건은 사실인 동시에 진실임이 명백하다.

그가 왜 그렇게 죽었을까?

그가 한 말 때문이라는 것이 첫 번째 답이다.

“때가 찼다. 하나님의 나라가 다가왔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이 말은 예수가 한 첫 번째 설교인 동시에 그의 공생애 동안 한 모든 이야기의 요약이라고 해도 아무 탈없다. 이렇게 단정 지어 말하는 까닭은 기독교의 좌, 우파 신학자 또는 성서학자들의 공통된 의견이기 때문이다.

여기에도 a,b,c로 곧 a “때가 찼다”, b “하나님의 나라가 다가왔다”, c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이렇게 나누어서 a,b는 진짜 예수가 한 말 c는 후대에 첨가한 말 이렇게 말하는 학자들로 있지만 뭐 거기까지야 고민할 필요 있겠나?

여하튼 예수가 “하나님 나라”를 줄기차게 이야기한 것은 틀림없다. 그렇다면 그가 이야기한 “하나님의 나라”는 어떤 나라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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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갓 이민 와서 몇 해 동안은 주로 아이가 태어난 집들을 방문하는 일이 잦았다.

세월이 흘러 이즈음엔 자녀 결혼식 초대나 어르신들 부고(訃告) 청첩을 받는 일이 잦아졌다.

지난해와 올 들어 유난히 장례식에 참석하는 회수가 많았다. 최근에 참석하였던 세 곳의 장례식의 설교자들은 서로 다른 이들이었지만 내용은 엇비슷하였는데 나는 그 때마다 “참 아니다”하는 생각이 들었다.

“여러분! 오늘 아무개집사(성도,권사,장로)는 교회를 열심히 섬기시다가 하늘나라에 들어가셨습니다. 이제 이 죽음 앞에 서서 우리가 결단을 해야합니다. 열심히 교회 섬기다 하늘나라 가시겠습니까?, 아니면 지옥불에 던지워질 것입니까?” 내용의 차이는 있겠지만 어김없이 이런 협박성 경고는 빠지지 않았던 것인데 나는 아무리 생각해도 “그건 아니야”였다. 설혹 ‘교회’ 대신에 ‘예수’로 말을 바꾼다 하여도 여전히 “아니다”이다. 마치 설교자들이 천국 열쇠를 손에 쥐고서 “너는 들어 가고, 당신은 안돼!”하는 어투도 그렇거니와 적어도 예수가 말한 하나님의 나라는 그렇게 “들어가는” 곳이 아니기 때문이다.

자 예수로 돌아가자. 예수가 한 말 “하나님의 나라가 다가왔다”에서 “다가왔다” 또는 “가까왔다”라는 말을 어떻게 읽어야 할까?

그 나라가 이미 온 것이냐(현재형) 아니면 곧 올 것(미래형)으로 해석해야 하느냐하는 문제이다. 이 논쟁은 꽤 오래된 것이며 지금도 진행중이다. 이른바 종말론이 이 논쟁에 끼여들게 된다. 또 이야기가 어렵게 나가는 것 같다. 내가 어렵다는 표현을 자주 쓰는바 이것은 읽는 이들을 향해 하는 말이 아니고 내 스스로 하는 말이다. 쉬운 말이 내 생각을 정리하는데 도움을 주기 때문이다.

예수와 함께 살며 그를 쫓아 다녔던 사람들이나, 예수가 죽은 후(혹 느낌이 안 좋으신 분들에게는 부활승천후) 그를 믿고 고백했던 첫 무리들(교회)은 그들 당대 곧 그들이 살아 있을 때 하나님의 나라가 올 것으로 믿었다. 그런데 그 나라는 오지 않았고 그들은 그렇게 믿다가 죽었다.

그리 오래 되지 않은 일을 하나 생각 해 보자. 서기 2000년을 앞두고 있던 1990년대 우리 이민사회도 함께 시끄러웠던 무슨 선교회인가 하는 집단들이 “휴거”운운 하며 떠들었던 일 말이다. 종말이 온다는 것이 그들의 주장이었다. 그런데 그런 비슷한 사건들은 지난 이천년 동안 쉬지않고 계속되어 온 일이다. 서기 1000년을 앞두고서 일어났던 세계 종말에 대한 믿음은 전 유럽을 공포로 몰아놓기까지 하였다. 옛날 이야기만이 아니다. 바로 몇 달 전인 2012년 말에는 노스트라다무스라는 이름까지 얹혀 전 세계가 들썩한 일도 있었다.

하나님의 나라와 종말을 연결 짓는 일을 두가지로 나누어 생각해 본다. 하나는 개인의 종말이요, 다른 하나는 역사의 종말 곧 세계의 종말이다.

개인의 종말이야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죽음 아니겠나? 그 어떤 변설과 유려한 말로 치장 하더라도 죽으면 이 세상은 없다. 세상이 끝난 것이다. 죽은 이에게 지금 여기서 돌아가는 세상은 끝난 것이다.

역사의 종말 곧 세계의 종말에 이르면 참 복잡해진다. 개인의 죽음처럼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사람이 죽은 뒤에 일어날 일들과 세상은 반드시 끝장은 나는데 그 뒷일들을 고민, 고민하다가 만들어 낸 말이 이른바 “피안(彼岸)”, “하늘나라”, “천당”, “천국”들이다. 그런데 이러한 말들 앞에서 사람들은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왜냐하면 그것은 신 곧 하나님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영역은 그렇게 가장 중요한 말과 내용이 되어 사람들로 하여금 생각을 잃게 한다. 많은 이들은 이것이 바로 올바른 성서적 이해라고 믿고 있다.

성서를 통해 보면 이러한 이해를 뒷받침 해주는 이야기들이 있다. 일테면 복음서들에는 “하나님 나라에 대한 비유”들이 많이 기록되어 있지만 실제 그 곳이 어떤 곳이냐 하는 명확한 언급은 거의 없다는 점, 심지어 마가의 기록에 의하면 “너희가 이 비유도 알아듣지 못하면서 어떻게 다른 비유들을 알아듣겠느냐?”고 예수가 말했다고 함으로써 하나님의 나라는 사람에게 철저히 가리워져 있다는 믿음을 심은 것들이 그러한 예이다. 이와 같은 믿음을 아주 논리 정연하게 이론화 시킨 사람이 불트만이다. 그의 이야기를 그대로 적어 보자.

“하나님 나라는 인간 역사 안에서 실현되는 어떤 것이 아니다. 하나님 나라의 모퉁이 돌, 건설, 그리고 완성은 어디서도 언급되지 않는다. 오직 그 나라의 ‘가까이 옴’, ‘도래’, ‘출현’만이 언급될 뿐이다. 그것은 초자연적이고 비세상적인 어떤 것이다.”

이야기가 이렇게 흐르다 보니 우리가 잃어 버린 것이 있다.

바로 “하나님의 나라가 어떤 곳이냐?”하는 물음이다.

*** 오늘의 사족 : 예수를 죽음으로 몰았던 그의 말의 핵심은 바로 “하나님의 나라”였다. 이 글을 읽는 당신이 그리고 꿈꾸거나 가고 싶은 “하나님의 나라”는 어떤 곳인가?

인류사에 지속된 고민 가운데 하나인 동시에 한정된 삶 가운데 자유했던 수많은 사람들이 만난 곳이기도 하다.

역사속 예수를 찾아서

밥이 된 사내 이야기 – 6

<역사속 예수를 찾아서>

지난 이야기에서 성서의 정전(canon)들이 어떻게 형성되었나를 간략히 말하였다.

문예부흥 이후 인쇄술의 발달과 번역 작업에 힘입어 성서는 급속도로 세상에 퍼졌다.

이후 성서는 최고의 베스트셀러로 자리잡는다. 그러나 팔린 부수에 비해 가장 안 읽히는 책들 중 하나라는 사실도 재미있다.

엄청난 판매량에 비해 성서에 대한 이해나 인식수준은 놀랄만치 낮다. 특별히 한인교회들은 매우 심한 편이다. 평신도들은 말할 것도 없고 수많은 설교자들도 신학교에서 당연히 배웠을 성서의 비평학적 이해에 대해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아니 솔직히 말하자면 그런 이해의 능력조차 없는 이들이 많다.

(이쯤 읽다가 “짜식 니가 뭔데? 니가 뭘 아는데? 아님 너 anti냐? 그러시는 분들이 계실 수도 있을 것이다. 이렇게 대답하고 계속해야겠다. 나는 ‘쟁이 곧 예수쟁이이지 anti가 아니라는 것, 아는 거 별 거 없다는 거, 나는 그저 나라는 거…. 다만 그저 내 생각을 말씀드리고 있다는 것. 그래서 결코 당신의 동조를 얻고 싶다거나, 그렇게 내 생각에 동의해 달라고 구걸하지 않는다는 것을 말이다.)

하여 성서란 다른 어떤 것과 비교되지도 않는 비교할 수도 없는 절대적 신앙의 대상이라는 것이 많은 교인들의 일반적인 생각이다. 그래서 내촌(內村)선생의 “성서우상화”에 대한 통박은 여전히 유효하다는 말이다.

성서가 일반인들이 쉽게 접할 수 있게 된 19세기 들어 일단의 학자들과 문학가들이 역사속 예수에 대한 관심을 갖고 말하기 시작하였다. 실제 이 땅을 살다간 예수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하는 물음으로 역사적 예수를 찾는 작업들을 시작한 것이다.

조금 지루한 이야기를 하고 넘어가야겠다. 학문이란게 사실 좀 따분한 것인고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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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트라우스라는 신학자가 <예수의 생애>를 발표한 것이 1835년이었다. 스트라우스는 이 책에서 성서속 예수 이야기에는 신화 곧 전설이 많이 끼어 들었다고 말하고, 이런 역사적이지 않은 사실이 끼어든 것은 성서를 기록한 사람들이나 제자들이 의도적으로 사기를 쳤기 때문이 아니라 그들의 신화적 상상력이 발동한 탓이라고 하였다. 불행하게도 그는 이 책 하나를 쓴 까닭으로 평생 사회로부터 버림받아 격리되어 살았다고 한다.

그리고 19세기 후반, 독일에서는 소위 “자유주의” 신학자들이 나온다. 이들은 신의 아들 또는 신이었던 예수보다는 권위있는 사람으로서의 예수에 대한 연구에 몰두하였다. 이들이 몰두하였던 사람으로서의 예수 연구에 첫 번째 철퇴를 든 사람은 아프리카의 성인 슈바이처이다.

의사이자 위대한 신학자였던 슈바이처가 “예수의 생애 연구사”를 펴 낸 것은 1906년의 일이다. 슈바이처는 이 책에서 “이른바 자유주의 신학자들이 말하는 사람이었던 예수는 역사속에 살다 간 예수의 모습이 아니라 그들 곧 자유주의자들이 생각하고 그려서 만든 그들이 좋아하는 예수의 모습일 뿐”(솔직히 슈바이처가 한 본래의 말은 좀 졸립다. 하여 쉽게 풀어 써 본 것이다)이라고 통박하였다.

여기에 “역사속의 예수 연구”에 대해 결정적 쐐기를 박은 사람은 20세기 가장 위대한 신학자들 중 한 사람으로 꼽히는 불트만이란 사람이다. 그의 말을 쉽게 풀어 쓰면 “예수가 어떤 역사적 인물이었는지 그게 무슨 상관이냐? 성서는 오직 예수가 구세주라는 선포에 충실할 뿐이다. 곧 말하는 예수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예수가 구세주라는 말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의 이론은 매우 강력하였다. 적어도 한 세기동안 그의 영향력은 전 유럽을 덮쳤고 한 동안 역사적 예수를 말하는 이들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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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문에 무슨 고수가 있겠는가? 고수가 되었다는 순간 벌써 저 아래 후배가 치고 올라와 한 방에 고수자리를 차지하는 것이 학문아닌가? 딱이 뭐 학문뿐이겠나? 그게 세상 이치이지. 그 대단한 불트만에게 잽을 날리며 “역사적 예수 이야기 없이 어떻게 신의 아들 예수 이야기가 나오랴?”하며 역사속 예수 이야기를 들고 나온 사람들은 다름 아닌 불트만의 제자들인 케제만, 보른캄등이었다. 그 케제만 아래서 대단한 한인 신학자 한 명이 나오니 그가 안병무이다. 안병무 목사 – 이른바 민중신학이라는 새로운 지평을 연 사람이며 세계 신학계에 한국말 “민중”을 알린 사람이다.

역사속의 예수를 찾아 나선다고 하면서 왜 이리 지루한 이야기를 하는고 하면 이게 내 이야기가 아니고 근 일 백년 이상 썩 대단한 사람들이 찾아 나섰던 길이라는 것을 밝히고자 함이다. 이쯤 하면 또 거룩하신 성도나 정통보수의 깃발을 높이 드시는 높은 분들은 “성서가 있거늘…”하고 말하실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성서는 신앙적 고백의 집산이다.

일테면 “처녀가 애를 낳다”는 사실 하나를 보자. 믿지 않는 눈으로 바라보면 호박씨 까는 소리에 불과할 것이지만 믿는 눈으로 보면 처녀가 아이를 낳은 것은 진실일 수 있다. 나는 사실이라 하지 않고 진실이라고 말하였다. 믿음은 그런 것이다. 또 하나의 예를 들자. “물로 포도주를 만들었다” 믿음의 눈으로 보면 바닷물을 소주로 만들 수도 있는 것이다. 여기서 “과학적으로 이렇게 저렇게 설명하고 인증해 보니 그렇게 될 수도 있다”하면 그것은 이미 믿음이 아니다. 믿음이 기적을 만들어 낸다는 말이 다 그런 것이다. 믿음은 그냥 믿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하나 짚고 넘어서야 할 것이 있다. 그 믿음이 옳은 것이냐, 그른 것이냐 하는 물음이다. 역사속 예수를 찾아 나서는 길은 바로 이 물음에 대한 답을 얻고자 하는 것이다. 믿음이 옳은 것이냐, 그른 것이냐하는 판단을 어떻게 내릴 수 있을까? 저마다 제 믿음이 한 수 하는 것인데 도대체 어떤 믿음이 진짜 참 순수 원조냐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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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럴 때 즐겨 이야기하는 예화가 하나 있다.

이건 중세시대 진짜 있었던 이야기이다. 신심(信心)깊은 수도승 한 분이 계셨다. 평생 수도원에서 절제의 삶을 살며 이 수도승이 연구에 몰두한 일이 있다. 그게 뭐냐고? “바늘 끝 위에 천사가 몇 명이나 앉을 수 있을까?”라는 연구였다. 이 연구로 평생을 산 수도승의 이야기. 지금 우리들의 눈높이로 보면 “이런 미친 놈이 있나?”이겠지만 그는 처절하였을 것이며 진지하였고 그것의 자기의 삶의 목적이라 여기며 살았을 것이다. 웃을 일 하나 아니다. 21세기 이 문명의 땅에서 나는 믿음이라는 허울로 중세의 수도승마냥 정말 미친 짓하는 수 많은 이웃들을 보며 살고 있으니 말이다.

신학이란 인간학이란 말이 있다. 다음 글에는 예수의 행태(사실 이런 말은 썩 좋지 않다만, 예수가 살았던 방법 쯤이 좋겠는데, 나도 가끔은 유식한 척하는 것을 좋아하는 모양이다)가 바로 인간학에 초점을 둔 것이라는 말하고자 한다마는 옳은 믿음이라는 것은 결국 사람들이 제 “삶의 자리”(이게 또 내 말이 아니고, 신학자들 중 이른바 양식사학자들이 쓴 말이다)에서 제 값하며 살아갈 수 있게 하는 힘인 것이다.

역사적 예수를 찾아내는 일은 바로 그 옳은 믿음으로 가는 길을 밝히는 일이다.

오늘의 사족: 진실과 사실, 그 차이와 차이의 폭을 아는 일, 그게 바로 믿음이다. 이거 참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 믿으면 다 된다고 한다. 나는 그 말에 그저 웃는다.

다만 차이와 폭 사이에 제사밥이 없다면, 그 제사밥에 눈독 들이는 세력이나 개인이 없다면 나도 동의하겠다. 믿으면 다 된다는 말에.

성서 무오론(無誤論)

밥이 된 사내 이야기 – 5

<성서 무오론(無誤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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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 일곱 권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정한 교회는 교부들의 주석들로, 성서해석의 기준으로 삼으며 교회의 권위를 드높여 갔다. 교회의 권위가 단단히 세워질수록 정전화(正典化:canon)된 성서는 일 점 일 획도 잘못이 없는 책으로 규정되어 졌다. 성서 무오론(無誤論)이 확립된 것이다. 더불어 성서는 교회의 지침서 나아가 윤리 생활의 교본으로 새로운 율법책이 되어 갔다.

처음 양피지나 파피루스에 손으로 써서 두루마리 형태로 남긴 성서는 한 두루마리에 기껏해야 한 두 권의 책의 분량을 담아 낼 수 있었다. 인쇄술에 앞서 발달된 것은 장정술(裝幀術)이었다. 오늘날의 책처럼 면을 첩첩으로 쌓는 장정술인 코덱스(codex) 방식이 개발되자 신약성서뿐 아니라 방대한 구약성서까지 한 권으로 묶어 펴낼 수 있게 되었다. 하나의 묶음집으로써 성서를 펴낼 수 있게 되자 이것을 만들고 보관하는 새로운 직업이 나타났다. “필사자”라고 불리었던 전문적 성직자들이 그들이다. 그들과 함께 발달한 것이 “필사학”이다. 기껏 베껴 쓴다는 뜻의 “필사”가 어찌 학문에까지 이르게 되었는가? 그들은 단순한 필경사가 아니었다.

처음 기록된 경전들은 띄어쓰기가 전혀 되어 있지 않았다. 오늘날의 장(章) 절(節) 구분은 물론 되어 있지 않았고 구두점조차 없었다. 또한 기록한 이들의 편의에 따른 약자 표시는 거의 암호에 가까웠다. 오늘날 인터넷 세대들이 쓰는 약자들, 일테면 “u” 는 ”you”이고, “brb”는 ”be right back”을 말하지만 한 세기 전 사람들에게는 암호이듯 처음 성서의 약자(略字)들은 그렇게 전해져 왔던 것이다. 띄어쓰기가 없는 문장해독은 더욱 어려운 것이었다. 일테면 “GODISNOWHERE”를 “God is now here(신이 여기 계시다)”라고 읽을 수도 있으며 ”God is no where(신은 어디에도 없다)“라고 읽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같은 소리의 다른 뜻을 받아 적었을 경우는 정말 난감한 경우이다. 희랍어 ”우리들(hemeis)”을 “너희들(humeis)”로 받아 적은 경우를 찾아내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he와 hu는 똑같은 발음 [hi]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필사자“들은 전문적 지식인이어야만 하였다.

오늘날처럼 성서에 장(章)이 구분된 것은 13세기 초기의 일이고 절(節)이 구분된 일은 16세기 중반에 이르러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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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적 지식인으로서 “필사자”였던 성직자들에게 덧붙여진 권위가 있었으니 본문을 변형할 수 있는 권한이었다. 그들은 전해 오는 여러 다른 필사본들을 비교하고 비평하며 종합하기도 하였고, 뜻이 다르게 해석될 수도 있는 낱말들을 바꾸기도 하였으며 불경스런 어투를 빼거나 의미를 더하기 위해 새로운 말을 덧붙이기도 하였다. 이리하여 전문적 지식층이 된 필사자들은 치열한 학파적 논리싸움으로 성서를 그들만의 전유물로 삼기에 이르렀다. 먹고 살기 바쁜 무식한 보통 사람들에게 성서는 남의 나라 이야기였다. 그러나 누리는 계급이 된 지식층들은 그 권위를 받들어 줄 아래 계급이 필요하였다. 그들은 무지한 보통사람들이 자신들의 고귀한 업적들을 이해해야 한다는 명목으로 그림 성서를 만들게 된다. “그림 성서” 중세 교회시대의 희화화된 모습의 단면이다.

인쇄 기술의 발달이 이루어지던 무렵 일어난 종교개혁은 성서학 나아가 성서연구학의 일대 혁명을 초래하기에 이른다.

 

<오늘의 사족> : “필사자” 곧 중간자이며 매개자이다. 이것과 저것을 이어주는 자이다. 그 뿐, 제가 한 노릇의 대가만 받으면 만족해야지.

그가 곧 하늘이 되고자하면 망하는 법. 그 이치 모르고 “내가 곧 법”이라는 필사자들이 오늘도 판을 친다.

또 다른 쪽의 문제 하나.

필사자 곧 매개자를 하늘로 우기는 광신도들. 왈 미친…

성서의 정전화(正典化:canon)

밥이 된 사내 이야기 – 4

<성서의 정전화(正典化:canon)>

사건을 만들고 말하기를 즐겼던 예수는 이야기꾼이었을 뿐 글쟁이가 아니었다.

그는 단 한 줄의 글도 남기지 않았다. 그러므로 예수이야기-그가 한 말, 그가 행했던 일들, 그에 대한 무성한 소문들-는 입에서 입으로 바람타고 떠돌며 전해졌다.

제일 처음 예수 이야기를 글로 써서 기록한 사람은 글 깨나 배운 바울이라고 한다.

예수보다 열 대여섯 살 아래였던 바울은 생전의 예수를 만난 적이 없었던 듯하다. 그가 예수를 만난 것은 예수가 십자가에 달려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다는 소문이 전 유대지역에 떠돈지 약 두 해가 지났을 무렵이었다.

그는 부활한 예수를 만났고, 그 만남으로 하여 그에게 사로잡힌 바 되었다고 쓰기 시작하였다.

예나 지금이나 배운 이들이 쓰는 글들은 읽기 어렵다.

불행하게도 갈릴리 호수가를 헤매던 예수의 모습은 바울의 관심 밖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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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은 오직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사실, “예수가 짊어진 십자가사건은 곧 신의 은총”이라는 사실을 전파하는 일에 전 생을 바쳤다.

타고난 이론가이자 조직가였던 바울은 “일하고 말하던(선포하는) 예수”에 대한 기록이 아니라 “바울 자신이 말하고 전해야 할(선포된) 예수에 대한 기록”에 전념하였다.

무슨 말인고 하면 김아무개가 살아생전 무슨 일을 하다가 그렇게 죽었다하는 사실을 말하는 것보다는 김아무개가 살아서 이런 일을 하였는데 내 생각에는 그가 이런 뜻에서 그렇게 살았고 또 그렇게 죽었다는 자기의 생각을 말하였다는 말이다. 그것은 바울이 처음(초대) 교회들을 향한 설교의 형태인 편지글로 남겨 전해졌다. 이 때가 대략 예수가 십자가에 달린 후 이 삼 십년이 흐른 뒤(서기 50-60)였다.

초대교회의 기둥들인 야고보(서기 62년경) 베드로(서기 64년경)와 바울(서기67년경)이 죽은 후, 입으로 입으로 전해지던 살아 생전의 예수 이야기들을 기록한 첫 번째 책 마가복음이 서기 67년에서 74년 사이에 쓰여졌다.

이후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서기 80년대 추정) 요한복음(서기 90년대 추정)이 뒤따른다. 이 네 권의 복음서와 정전에서 제외된 도마복음서는 역사적 예수를 찾아가는 중요한 이정표가 된다. 이렇게 일세기 후반부터 시작된 예수에 대한 기록들은 이후 백 여 년간 오늘날 정전(正典)이 된 27권을 비롯하여 <도마복음> <베드로복음> <바나바서신> <베드로계시록> <헤르마스목자서신> <이집트인복음서> <바울행전> <히브리인복음서> <요한행전> <12사도교훈집(디다케)>등이 쏟아져 나왔다.

처음 예수를 따르던 갈릴리 무리들은 예수가 떠나자 교회를 형성하였다.

야고보, 베드로, 바울이 조직한 교회는 시간이 흐를수록 제도화 되어져갔다. 예수와 함께 했던 첫 세대들이 죽고 예수에 대한 이야기책들이 쏟아지자 교회는 심각한 고민에 빠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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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도대체 어떤 책이 예수에 대해 바르고 본래적인 모습을 말하고 있는가?”, “어떤 기준으로 이 책들을 해석하고 이해해야 하는가?”하는 질문 앞에선 고민이었다. 더욱이 2세기에 나타난 최초의 기독교 이단인 영지주의(Gnosticism)와의 싸움에서 교회는 이러한 질문 앞에서 결단을 내리게 되었다. “정전화 작업(canonization)”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특별히 교회는 영지주의와 싸우는 과정을 통해 교회법, 신조, 주교조직 등을 공고히하며 제도화에 박차를 가하게 되었다.

그러나 정전화 작업은 그리 만만하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마침내 오늘날과 같은 27권의 책들이 묶여 “신약성서”라는 이름으로 “하나님의 말씀”이 된 것은 4세기 중반 알렉산드리아의 감독 아타나시우스때의 일이다. 역설이지만 교회는 이 무렵에 이미 어두운 중세로 들어 서고 있었다.

Canonization

성서 우상숭배

밥이 된 사내 이야기 – 3

<성서 우상숭배>

오바마를 일컬어 흔히들 검은 케네디라고한다. 케네디, 고작 40년 전 사람이다. 그의 바람기는 클린턴을 능가하였었고, 그의 업적은 미완성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그에게 “케네디”라고하는 분장을 덧입혀 형상화하였다.

온갖 문서는 말할 것도 없고, 영상자료와 일거수 일투족을 손바닥 손금 확대경으로 들여다 보듯하는 세상에서도 분장은 가능한 법이다. 하물며 조석간 신문은 커녕 흔한 찌라시 한 장 없던 2,000년 일이고 보면…

“루터에 의해서 성서 우상숭배가 시작된 것이다. 모든 우상 숭배가 많은 무서운 해독을 가져 오는 것과 마찬가지로 성서숭배도 또 많은 무서운 해독을 흘러 내렸던 것이다”

우찌무라 간조(內村鑑三)의 말이다.

류영모                                 내촌                             김교신                                 함석헌

유영모~1                   우찌무~1               김교신~1                   함석헌~1

우찌무라 간조(內村鑑三)에게서 유영모가 나오고 김교신이 나오고 함석헌이 나왔다. 내촌선생이 루터의 성서우상화를 철저히 공박하고 있으나 루터에 대한 존경심은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다. 일테면 그는 “신문명 또는 신세계, 신세대는 1517년 10월31일에 새로 태어난 것이다. 유대나라 베들레헴에 예수가 탄생하신 날을 제외하고 이날은 세계적인 가장 큰 하루이다. 시인 로웰의 한마디로 말한다면 이날 <용감한 루터, ‘아니오’라고 대답했던 바 그 ‘아니오’에 부딪혀 전 유럽은 동요했다>”라며 루터의 종교개혁운동일을 예수사건 이래 인류 최대의 사건으로 들고 있는 것이다. 그런 선생이 왜 루터의 성서우상화를 통박하였을까?

이야기를 이렇게 풀어 나가자. 나는 상업고등학교를 졸업하였다.

이제 한국에서 세 명의 상고출신 대통령을 연달아 배출하였다고 자랑스럽게 상고출신임을 밝히는 것이 아니다. 세 분 모두 어찌보면 모두 난감한 처지인데 뭐 거기 빗댈 것 있겠나? 어쨋건 고등학교 시절 “상업미술”과목이 있었다. 워낙 그림 그리기에는 젬병이었던 나는 이 시간을 몹시도 싫어하였다. 어쩌면 그림 그리기가 싫었다기보다는 선생님이 싫었다는 것이 더욱 적합할 지 모르겠다. 일주일에 두 시간이었다고 기억한다.

첫 번째 시간에는 그림의 주제를 주고 그림을 그리게 한다. 주어진 시간에 다 못 그려도 좋았다. 돌아오는 시간까지 완성만 하면 되었기에 시간적인 제약은 없었다. 그리고 두 번째 시간 선생님은 아이들의 작품을 평가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 평가방법이 내겐 참 기가 찰 노릇이었다. 아이들은 열 명 단위로 교단 앞으로 나가 정렬하고는 자기가 그린 그림을 가슴높이로 받쳐든다. 선생은(이쯤해서 님자 빼자) 교실 뒤 끝 책상에 걸터앉는다. 그리고 “일 번” 호명을 하면 일 번 학생은 자기가 그린 그림을 머리 위로 치켜든다. 선생은 잠시 그 그림을 보다가 “우수, 가작, 낙선, 선외”중 하나를 택일하여 평가를 내린다. 아아! 나는 늘 선외였다.

어찌 그 선생에 대한 좋은 기억이 있겠는가? 그 뿐이었다면 나는 내 그림솜씨를 탓하며 지금쯤에는 기억에도 없었을 것이다. 늘 선외를 받는데 부화가 치밀어 선생을 시험해 본 것이다. 하루는 우수평가를 받은 옆 반 친구의 그림을 빌려 가지고 머리위로 치켜들었다. 솔직히 말해서 나는 선생에게 매맞을 각오를 한 터이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선외” 그것으로 끝이었다. 나는 그 뒤로 선생을 미술선생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내 어릴 적의 추억이다만 내촌선생의 성서우상화도 따지고 보면 이 정도의 이야기와 다를 바 없다는 말이다. 어려운 말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위해 이렇게 이야기를 바꾸자.

“성서안에 모든 것이 들어 있고 따라서 그것으로 족하다는 이른바 축자영감설의 신앙적 주장은 아주 편협하다”는 말이다. 그 같은 시각으로 성서를 읽는 한, 내촌선생께서 지적한 성서우상화의 길로 들어서는 일이요, 내 기억속 미술선생처럼 같은 작품을 쥐어 든 손에 따라 우수와 선외로 평가하는 우를 범할 수 있는 까닭이다.

자! 어떻게 성경이 형성되었고 갈릴리 바다를 살아 숨쉬며 활보하다 그 일로 죽은 예수가 진열장 속에 데드 마스크처럼 장식화 되었을까? 그 이야기를 찾아 떠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