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속 – 왕국 9

(당신의 천국 – 스물 네 번 째 이야기) 

나는 그를 맏아들로 삼아, 세상 임금 중에 가장 높은 임금으로 세우리라. 그에 대한 나의 사랑, 영원히 간직하겠고 그와 맺은 나의 계약, 성실하게 지키리라. 길이길이 그의 후손 이어 주리라. 그의 왕조는 하늘이 무너지기까지 이어지리라. – 시편 89: 27-29 

그곳은 무척이나 우아해서 유대인의 종교문학에서는 언제나 관능적이고 활기 넘치는 여성이자 미인으로 묘사된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추잡한 매춘부로, 또 한편으로는 연인에게 버림받아 상처 입은 공주로 그려지기도 한다. 예루살렘은 하나의 신이 사는 집이자 두 민족의 수도이며 세 종교의 사원이고, 하늘과 땅에서 두 번 존재하는 유일한 도시다.  – 사이먼 시백 몬티피오리 지음, 예루살렘 전기에서 

남쪽 유다와 사울왕의 아들 이스보셋이 다스리던 북쪽 이스라엘을 통합한 다윗은 이제 예루살렘성을 점령합니다. 가나안의 한 가운데 위치한 예루살렘은 남, 북  어디에도 속해 있지 않은 성(城)이었습니다. 

이미 우리들이 알아 본 바대로, 다윗의 통일 위업이 달성되기 전 까지 가나안에는 이스라엘족과 가나안 원주민들이 혼재하여 살고  있었습니다.  예루살렘  역시 가나안 본토인들인 여부스족이 살고 있는 성이었습니다. 

여부스인들이 철옹성이라고 믿고 있었던 예루살렘 또는 시온이라고 부르는 이 성은 “만군의 하나님 야훼께서 함께 하신(사무엘하 5: 10)” 다윗의 손에 간단히 무너집니다. 

물론 이 전투에서도 주력부대는 다윗이 거느려 온 다윗의 부대, 용병들입니다. 예루살렘은 이제 다윗의 성으로 불리워지게 됩니다. 이름만 그렇게 부른 것이 아니라 성 자체가 다윗 개인의 소유였던 것입니다. 무슨 말씀인고 하면 남쪽 유대의 성도, 북쪽 이스라엘의 성도, 이스라엘 전체의 소유도 아닌 다윗 개인의 소유라는 말이지요. 

“우리는 또한 이런 질문에 대답해야 한다. 세상의 모든 장소 가운데 왜 하필 예루살렘인가?” 

이 질문은 자그마치 961페이지에 달하는 예루살렘성에 관련된 이야기를 기록한 사이먼 시백 몬티피오리가 그의 책 예루살렘 전기를 시작하면서 독자들에게 던지는 질문입니다. 

통곡의 벽

“왜 하필 예루살렘인가?”라는 이 질문은 제가 지금 제 연재 글을 읽고 계신 바로 당신과 함께 풀어 나가고 있는 숙제입니다. 바로 하나님 나라에 대한 답과 연계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다윗으로부터 약 천년 뒤에 유배지 밧모섬에서 요한이 본 새 예루살렘의 환상을 이야기 할 때 이 물음에 대한 해답의 윤곽이 들어날 것입니다. 

요한의 말한 이 환상 말입니다. 

“그 뒤에 나는 새 하늘과 새 땅을 보았습니다. 이전의 하늘과 이전의 땅은 사라지고 바다도 없어졌습니다. 나는 또 거룩한 도성 새 예루살렘이 신랑이 맞을 신부가 단장한 것처럼 차리고 하느님께서 계시는 하늘로부터 내려 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요한계시록 21: 1-2)” 

자! 오늘은 삼천여년 전 다윗이 점령한 예루살렘의 의미를 한번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첫째  예루살렘을 점령하고 남북을 통일한 다윗이 이룬 업적은 가나안 모든 땅을 이스라엘 이름으로 편입한 것입니다. (물론 아직 점령하지 못한 곳들이나 예루살렘 역시 솔로몬대에 이르러서는 모두 이스라엘에 편입되기 때문에) 

무슨 말씀인고하니, 다윗 이전에는 열 한 부족(레위 부족을 빼고) 이 싸워 이겨 차지하는 땅은 부족 소유의 땅이 되었지만, 이젠 이스라엘왕국의 땅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 말은 바로 유다지파로 대변되는 남쪽 왕국사람들, 다윗이 전투를 벌이면서 새롭게 그의 휘하에 들어 온 남쪽지방의 가나안 족들, 북왕국 이스라엘의 사람들, 예루사람을 차지하고 있던 여부스족 등 중북부에 남아 있던 가나안 족들의 도시국가 사람들, 다윗과 연결되어 있었던 블레셋 사람들이 모두 이스라엘이라는 한 국가로 편입되었다는 것을 뜻합니다. 

두번째 예루살렘을 이스라엘 왕국이 야훼에게 드리는 제사의식의 중심도시로 만든 것입니다. 사무엘시대까지만 하여도 사무엘은 부족들이 사는 곳들을 돌아 다니며 제사를 집전하거나 재판을 진행했지만 이제 야훼 하나님에 대한 제사와 예배는 예루살렘성 한 곳에서만 이루어지게 된 것입니다. 

세번 째는 가나안 땅에 당시까지 남아있던 가나안의 전통들과 히브리에서 유대, 이스라엘로 변화되면서 겪어 온 온 이스라엘의 전통이 하나로 합쳐진 일입니다. 

이스라엘의 전통인 유일신 야훼 하나님 사상과 가나안의 전통이었던 왕권신수설(神受說- 왕의 권력은 신에게서 비롯되었다는 주장)이 통합되면서 야훼 하나님과 이스라엘 사이에 새로운 계약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네 번 째는 야훼의 법궤를 예루살렘에 안치시킨 일입니다. 이 일에 의미는예루살렘을 종교적 중심지로 부각시켰을 뿐만 아니라 다윗과 그 가문의 후계자들의 왕위권을 야훼께서 보장했음을  뜻합니다. 

나아가  예루살렘  또는 시온이 하나님의 선택을 받았다는 것을 입증하는 뜻으로써  다윗의 가문이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특권의 의미로 발전하게 됩니다. 

바로 시편에 실린 이 노래의 뜻입니다. 

“나는 그를 맏아들로 삼아, 세상 임금 중에 가장 높은 임금으로 세우리라. 그에 대한 나의 사랑, 영원히 간직하겠고 그와 맺은 나의 계약, 성실하게 지키리라. 길이길이 그의 후손 이어 주리라. 그의 왕조는 하늘이 무너지기까지 이어지리라(시편 89: 27-29)” 

마지막으로 다윗의 예루살렘 입성으로하여 다윗은 왕국의 관료 임명권, 군대 인사권 뿐만 아니라 제사장 임명권까지 갖는 명실상부한 왕국의 왕이 된 것입니다.  (삼하 8 :15-18) 

바로 새 이스라엘이 탄생하는 싯점이었습니다. 그리고 다윗은 그가 죽기 직전까지 이런 새 이스라엘의 모형을 완성시키기 위하여 전쟁, 반란의 진압 등 싸움의 한 가운데서 평생을 보내게  됩니다. 

이제 다윗에 대한 성서적 고백, 유대족들의 고백을 이야기해야겠습니다. 

왜 다윗이 메시아의 원형이 되는 것인지?  왜 그리스도(메시아) 예수가 다윗과 연계되어 있는지? 

다윗을 통한 믿음의 고백에 대해 이야기 해 보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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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바마케어 두번 째 이야기 올렸습니다.

오바마케어 – 마켓플레이스 해설 2 보기 :  http://socialkoam.com/?p=1014

군대와 아내들 – 왕국 8

(당신의 천국 – 스물 세번 째 이야기) 

다윗은 그 곳을 떠나 아둘람의 굴로 피해 갔다. 그의 형들과 그의 온 집안이 이 소식을 듣고 다윗을 찾아 그리로 내려 갔다. 또한 억눌려 지내는 사람, 빚을 지고 허덕이는 사람, 그 밖의 불평을 품은 사람들이 다윗 주변에 몰려 들었다. 다윗이 그들의 우두머리가 되었는데, 그 수는 사백명 가량이 되었다. – 사무엘상 22: 1- 5, 공동번역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진입한 이후, 경제적으로는 토지에 대한 지파 공동재산 원칙이 점점 무너져 개인 사유 원칙으로 바뀌었고, 사회적으로는 종족간의 평등원리가 사라지면서 새롭게 등장한 부유한 땅 소유자들과 고대 사회질서의 유물인 가난하고 땅없는 농민들 사이의 괴리가 심해졌다. –롯스(Adolphe Lods)의 <이스라엘 역사 – 시초로부터 기원전  8세기까지>에서) 

마온이라는 곳에 한 사람이 있었는데 그의 기업은 가르멜에 있었다. 그는 양이 삼천 마리, 염소가 천 마리가 되는 큰 부자였다. 그는 가르멜에서 양털을 깍고 있었는데, 그의 이름은 나발이요, 아내의 이름은 아비가일이었다. 아비가일은 재색을 겹비한 여자였으나 그 남편은 갈렉 가문 출신으로서 인색하고 거친 사람이었다. – 사무엘상 25 : 2-3, 공동번역 

다윗은 유대땅에 사는 부유한 지주인 나발의 아내와 결혼함으로써 유대인에게는 유대인이 되었고, 또 블레셋인에게는 그들의 신하로서블레셋족속으로 받는 위험에 대해서도 보호하여 주었다. –군네벡(Antonius H. J. Gunneweg)이 쓴 이스라엘 역사에서 

다윗에 대한 이야기를 쓰고자 한다면 끝이 없을 것입니다. 

그는 음악가이자 시인이었으며, 삼손 못지않은 힘을 지녔었고(사무엘상  17 : 34-36), 언변도 뛰어났고(사무엘상 17 : 44-47), 빼어난 전사였으며(사무엘상 17 : 48-51) 무려 잘 생기기까지(사무엘상 16 : 13) 했었답니다. 

그러나 다윗이라는 인물에 대한 우리들의 관심은 이런 인간적으로 잘난 모습들에 대한 것이 아니라, 우리들이 찾아 가려고 하는 하나님의 나라와 다윗 사이에 어떤 연관이 있느냐는 것입니다. 

성서 전체 이야기의 흐름 가운데는 큰 봉우리들이 몇 군데 있습니다. 

모세, 다윗, 요시아, 세례요한, 바울, 묵시록의 요한 등을 들 수 있겠습니다. 우리들이 궁극적으로 지금 누리며, 앞으로 가게 될 하나님의 나라 길목에 서 있는 사람들입니다. 물론 그리스도 예수를 만나는 길목을 지키는 사람들입니다. 

모세는 하나님과 히브리족 사이에 맺은 계약의 핵심 당사자입니다.  여기서 “계약”이라는 말은 우리들이 성서나 하나님 나라를 올바로 이해하기 위한 아주 중요한 단어입니다. 

예수가 쉬운 말들로 설명해 준 하나님 나라와 바울이 어려운 말로 해석하는 하나님 나라, 이 모두를 우리들이 잘 이해하고 누리기 위해 반드시 알아야 하는 단어 가운데 하나입니다. 

다윗은 바로 이 계약의 틀을 제도화한 사람입니다. 

무슨 말씀인고 하니 첫째는 이 계약(야훼 하나님과 유다 사이에 맺은)의 영역을 확대한 사람입니다. 이 계약의 틀안에 들어 와야만 하는 백성들의 지경을 넓힌 일입니다.

두번 째는 흩어져 있던 계약에 대한 이런 저런 각종 이야기들과 전승들을 하나로 묶고, 예루살렘 한 곳으로 모든 계약의 권위와 그 계약에 따른 모든 제사권을 중앙집권화하는 틀을 세운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더 쉽게 말씀드리자면 다윗 이전과 다윗 이후의 이스라엘족은 달라졌다는 것입니다. 

무엇이 어떻게 달라졌는가는 다음 글에서 잇고요, 다윗이 어떻게 이 일의 주인공이 될 수 있었는지에 대한 다윗과 이스라엘의 신앙적 고백에 대해서는 그 다음 글에서 다루면서 다윗에서 솔로몬으로 넘어 가려고 합니다. 

오늘은 신앙적 고백이 아니라 당시의 사회적 조건으로 보았을 때 다윗이 블레셋을 물리치고 북쪽 이스라엘과 남쪽 유다를 모두 아우르는 새로운 왕국 이스라엘을 세울 수 있었던 까닭을 알아 보려고 합니다. 

다윗 개인의 여러 잘난 모습들은 제껴 놓더라도 결정적인 요인 세가지가 있습니다. 

King David

하나는 다윗이 이끌었던 군사들이고, 둘째는 다윗의 여자들 그리고 마지막으로  모든 인간적 요소들이 다 담긴 다윗의 성품입니다. 

첫째 다윗이 이끌었던 군사입니다. 이 점은 사울과 다윗이 비교되는 결정적 차이입니다. 

사울은 이스라엘 열 두지파가 세운 첫 왕이었습니다. 당연히 그의 군대는 각 지파들이 약속과 필요에 따라 내어 놓은 군사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군대는 지난 글에서 이미 말씀드렸듯이 블레셋과는 비교되지 않는 열악한 무기를 지니고 있었습니다. 사울이 지휘하는 군대와 블레셋군의 전력 차이의 상징적인 비교가 바로 다윗과 골리앗의 비교입니다. 

그런데 사울은 초반 전투에서 승승장구했습니다. 그 승리요인은 바로 야훼 하나님이 이끄는 성전이라는 믿음이었습니다. 초기 싸움을 이끌었던 사울부대의 병사들을 움직였던 힘은 사울이 아니라 사울과 함께하는 신 야훼에 대한 믿음이었습니다. 

쉽게 말씀드려 사울군대는 야훼의 믿음으로 뭉쳐진 이스라엘 각 지파들의 연합관군인 셈입니다. 

다윗이 이끌었던 부대는 다릅니다. 다윗의 부대는 일종의 용병이었고, 다윗은 용병대장이었습니다. 

애초  사울의 한 부대를 이끌고 있었던 다윗은 사울과 왕위 쟁탈전을 벌리다가 힘이 부쳐 밀려나 쫓겨 다니는 신세가 됩니다. 다윗은 사무엘에게로 갔다가 놉이라는 성의 제사장인 아히멜렉으로 가서 몸을 숨기기도 합니다. 또 이 과정에서 사울의 아들 요나단의 도움을 받기도 합니다. 이렇게 도망다니는 처지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모두 다윗이 왕위에 오르거나, 오른 후에 아주 주요한 도구들이 됩니다. 

그러나 결정적인 요인은 마지막으로 다윗의 도망 근거지가 된 아둘람 산채입니다. 바로 그 곳에 있을 때 모여 든 사람들이 다윗의 주력 부대가 되는 것입니다. 사무엘 22장에 나오는 이 기사를 읽다가 보면 수호지 양산박에 모여 든 송강을 비롯한 108 장수들 이야기가 떠오른답니다. 

이야기를 조금 되돌려 보기로 합니다. 다윗이 아둘람 산채로 피신하기 약 이백여년 전 쯤 히브리족이 처음 가나안에 정착하였을 때, 각 지파들은 서로 땅을 분배하고 그 안에서 서로 평등하게 사는 세상을 열였습니다. 여호수아를 비롯한 첫 세대가 지나자마자 각 부족들 간에 힘의 격차가 드러나기 시작하고, 각 부족내에 개별 가족들 사이에도 빈부 격차가 생겨나게 됩니다. 

다윗 때 쯤에 이르니 애초 사회 평등의 원칙은 이미 사라졌고, 빈부의 차이는 크게 벌어져 있었고, 떠도는 사람들이 생겨났다는 말입니다. 바로 그런 사람들이 다윗 주변에 몰려 들었고, 그들을 군사화 시켜서 용병으로 만든 것이 다윗이었습니다. 그리고 다윗은 이들을 이끌고 블레셋의 용병이 됩니다. 

사울의 부대와 다윗의 부대는 이런 차이가 있었습니다. 서로 거느린 부대의 성격 차이는 바로 사울과 다윗이 생각하고 그린  이스라엘 왕국에 대한 모습 차이를  알 수가 있습니다. 

사울은 열 두 부족을 하나로 묶는 공동체인 왕국을 꿈꾸었었고, 다윗은 이미 열 두 부족을 넘어선 가나안 전체를 통일하는 왕국을 꿈꾸었던 것입니다. 

다윗의 블레셋행은 바로 그 꿈을 실현하는 하나의 방편이었던 셈입니다. 

또한 사울의 군대는 야훼로 부터 받은 힘, 카리스마가 사울에서 빠져나갔다는 소문에 응집력과 전력이 와해 되었지만, 다윗의 부대는 다윗 개인에 대한 충성심으로 뭉쳐 있었으므로 다윗의 고백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었기에 단단한 응집력이 있었던 것입니다.

 두번 째는 다윗의 여자들입니다. 

사울의 둘째 딸 미갈, 갈멜 여인 아비가일, 이스르엘 여인 아히노암, 그술 왕 달매의 딸 마아가, 학깃, 아비달, 에글라, 밧세바, 아비삭. 

모두 다윗의 아내들 이름입니다. 

사무엘상 25장에 기록된 아비가일을 아내로 맞는 과정을 보면, 이런 여러 아내와의 결혼은 바로 다윗왕국의 지경 곧 영토를 확장하는 일과 맞물려 있다는 것입니다. 

밧세바에 대해서는 따로 이야기하려고 합니다.

마지막으로 다윗이 지녔던 변화무쌍하고 다양한 성품입니다. 어찌보면 사람들이 지닐 수 있는 여러 성품들을 다 지니고 있었다고해도 큰 탈이 없을 듯 합니다. 

다윗의 작품들로 알려진 시편들에서 들어나는 아주 우아하고, 고상하고, 사려깊은 모습들을 따로 이야기 하도록 한다 하여도, 아비가일을 아내로 취하는 모습이나, 밧세바를 취할 때의 모습을 보면 인간적으로 사악하기 그지 없는 것이지요. 

북쪽 이스라엘 왕, 사울의 아들 이스보셋이 멸망하는 과정도 생각하면서 들여다보면 다윗의 교활함이 뛰어나게 드러나는 장면들이 있답니다. 물론 이스보셋이나 북 이스라엘의 총사령관 아브넬의 죽음에 대해 성서는 다윗이 전혀 몰랐다고 기록하고는 있지만 말입니다. (역사가 요세푸스는 이 장면들을 아주 장황히 설명하고 있답니다. 특히 아브넬이 살해되었다는 소식에 다윗은 모든 백성들을 불러 모아 증인으로  삼고 양손을 하나님을 향해 쳐들고 자기는 아브넬의 살인과 아무 관련이 없으며 자기가 명령한 것도 승인한 것도 아니었다고 소리쳤다라고 기록하고 있답니다.) 

아무튼 이런 남다른 조건을 지니고 있었던 다윗은 블레셋과 사울 사이에서 벌어진 마지막 전투에서 자의반 타의 반으로 벗어나 있게 됩니다. 그리고 이 전투는 사울과 블레셋 군대 양쪽 모두 결정적인 손실과 타격을 입게됩니다. 

다윗은 바로 그 싯점에 슬그머니 그의 용병부대를 이끌고 자기의 고향 유다땅으로 들어갑니다. 그리고 다윗은 아무 일도 안했는데 유다 사람들이 다윗을 찾아와 왕으로 삼았다고 성서는 말합니다. 

사울의 아들 이스보셋이 낮잠을 자다가 비명에 죽고 난 후(사무엘하 4장) 북쪽 왕국 이스라엘이 저절로 다윗에게 굴러 들어옵니다. 

통일왕국을 이룬 다윗은 이제 예루살렘성으로 들어갑니다.

변신 – 왕국 7

(당신의 천국 – 번외호)

불레셋군이 이스라엘을 치려고 동원령을 내린 때였다. 아기스(블레셋의 왕)가 다윗에게 일렀다. “그대는 부하를 거느리고 우리 대열에 끼어 같이 출전하게 될 터이니 그리 아시오.” 다윗이 “알았습니다. 분부만 내리시면 그대로 하겠습니다. “하고 선뜻 대답하자 아기스는 다윗에게 “그렇다면 나는 장군을 나의 종신호위대장으로 삼겠소.”하였다. – 사무엘상 28 : 1-2, 공동번역 

한주간의 일을 마친 토요일 저녁입니다. 아내도 출타중이어서 혼자 느긋한 저녁상도 즐기고 설거지도 마치고 오늘의 제 마지막 과제인 “당신의 천국” 연재글을 쓰려고 앉았습니다. 

오늘은 다윗의 일생 가운데 정점이었던 다윗의 도성(都城) 예루살렘 입성까지의 일을 더듬어 보려는 생각이었답니다. 

10 26

그러다 달력을 보니 오늘이 10월 26일입니다. 제가 사는 미국 동부시간으로 말입니다. 한국의 박정희 전 대통령이 궁정동 안가에서 비참한 최후를 맞았던 날입니다. 

제 나이 이십 중반일 때의 일입니다. 지난 일에 “만일….”이라는 상상은 허전하기 그지 없는 일이지만, 만일 박정희 전 대통령의 죽음이 한 두해만 늦추어졌거나 좀 빨랐다면 다른 건 다 모를 일이지만 제 인생은 조금 다른 길을 걸어 오지 않았을까하는 그저 늙막에 그림이나 그려 보는 것입니다. 

당시 저는 신학공부를 하고 있었답니다. 돌이켜보면 제 인생 가운데 가장 호사스런 때였습니다. 

1975년에 다니던 대학에서 제적을 당하고, 징집되어 군생활 마치고 제대한 것이 1977년 성탄전 날이었답니다. 그런데 할 일이 없던 것이었습니다. 학교로 되돌아 갈 길도 없었고 말 그대로 백수였던 젊은 날이었지요. 

그러다 이듬 해 봄부터 신학공부를 할 수 있는 길이 열렸었답니다. 한국신학대학교에서 운영하는 선교교육원이라는 평생교육기관이 당시 서대문 충정로에 있었답니다. 

그 곳에서 저처럼 본의 아니게 백수가 된 젊은이들을 위한 신학공부의 장을 마련해 준 것입니다. 선생님들도 역시 본의 아니게 당시에 백수가 되신 분들이셨습니다. 

서남동, 안병무, 문익환, 문동환, 이우정, 김용복, 송건호, 이문영, 박현채 선생님 등등 그야말로 당시 이름만 들어도 설레던 분들 에게 강의를 들으며 공부를 하고 있었답니다. 함께 배우던 친구들이 약 이십 여명 쯤이었는데 저보다 한참이나 앞선 친구들이라 쫓아가느냐고 엄청 애쓰던 때였답니다. 

그 때 그 분께서 궁정동에서 그렇게 가시지 않았다면 아마 저는 신학공부를 계속하면서 학문을 하거나 목사가 되거나 그러지 않았을까하는 생각을 해 보는 것이지요. 

아무튼 1979년 10월 26일 궁정동 사건으로 인해 우리들은 다니던 대학으로 다시 돌아갈 수 있었답니다. 

십년만에 대학을 졸업했지만 마땅히 갈 곳이 없었답니다. 그래 이번엔 진짜 목사의 길을 가보자하고  제 신앙의 본고장인 예수교 장로회 통합측 신학교인 장신 이른바 광나루 신대원에 입학을 했답니다. 

그런데 분위기가 영 제게 맞지를 않던 것이었습니다. 그래 하나님께 기도와 서원을 했답니다. “아버지 하나님, 제 나이가 아직 너무 이른 것 같습니다. 한 오십까지 좀 살다가 인생을 좀 알면 다시 돌아오겠습니다.”라고요. 

그리고 이제 환갑줄입니다만 영영 그 서원은 짐으로 지고 갈 모양입니다. 

박정희. 지금은 그의 이름이 다카키 마사오였다고 말해도, 해방후 남조선 노동당 군사총책인 빨갱이였다고 해도 잡혀가지는 않는 모양입니다. 1960, 70년대에는 그런 말을 하면 잡혀 갔답니다. 사실을 사실대로 말한 것인데도 말입니다. 그래도 아직 쉬쉬하는 모습이지요. 고만큼 부끄러움은 남아 있다고 긍정적으로 생각할 수도 있겠습니다. 

다윗 역시 그런 과거를 지닌 인물이었답니다. 그런데 그 사실이 부끄럼없이 성서에 기록되어 있답니다. 

사울과 왕권을 놓고 다투다 일신상의 안위를 위해 적군인 블레셋의 호위대장이 된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의 사울과 블레셋의 아기스가 서로의 총력을 다해 마지막 일전을 앞 둔 시점에서 다윗은 블레셋에 충성 맹세를 합니다.

 그리고 출전을 코 앞에 두고 블레셋의 장수들이 다윗의 출신을 트집잡아 믿지 못하겠다고 하자 다윗은 블레셋 왕에게 다시 한번 굳은 충성 맹세를 합니다. (사무엘상 29장) 

만일 그 싸움에 다윗이 출정을 했다면 오늘날 우리들의 기억이나 성서의 기록에 그의 이름은 남아있지 않았을 것입니다. 

다윗은 자기 민족과 싸우지는 않았지만 그가 적군에 빌붙었던 사실을 숨기지 않았습니다. 물론 후대의 기록자들도 그러했고 다윗을 기리는 유대인들도 그 사실을 숨기지 않았습니다. 

다윗과 박정희의 인물을 비교하자는 뜻이 전혀 아닙니다. 

시장터의 장삼이사(張三李四)로 사는 저 같은 사람에게도 인물의 장단점이 있는 법이거늘, 신 앞에서 비교해 본들 비행기에서 내려다 본 건물의 높이겠지요. 

다만 어떤 인물을 기리는 그 시대 정신을 생각해 보자는 뜻입니다. 

다윗의 변신은 야훼 하나님과 신명기적 법정신을 이스라엘에게 심었고, 박정희의 변신은 잘 살아 보세와 하면 된다는 정신을 낳았습니다. 

다윗의 결과는 신 앞에 홀로 설 줄 아는 인간, 신을 두려워 하는 인간을 낳았고(나중에 다윗의 시편들을 이야기 할 때 이런 거 이야기하렵니다.) 

박정희의 결과는 오늘 누리는 힘(돈, 권력, 명예, 성 등등)을 위해서라면 부끄러움이나 신은 사치일 뿐인 인간을 낳았다는 생각입니다. 

오늘은 좀 엉뚱한 데로 이야기가 흐르는 것 같습니다. 번외호로 하겠습니다.

이름 – 왕국 6

(당신의 천국 – 스물 두 번 째 이야기)

예루살렘에서 통치를 시작한 첫 유대의 왕인 다윗부터 (로마) 티투스에 의해 예루살렘이 완전히 멸망되기까지의 기간은  1,179년간이다. – 요세푸스 유대전쟁사 6권 10장에서 

한편 로마 병사들은 더 이상 살해하거나 약탈할 유대인들이 없으므로 분노를 풀 데가 없었다.  –중략 – 티투스는 나머지 성벽은 기초가 드러나도록 완전히 파괴하여 사람이 살던 곳인지 의심이 갈 정도로 완전 폐허로 만들어 버렸다. – 요세푸스 유대전쟁사 7권 1장에서 

야곱에게서 한 별이 솟는구나. 이스라에서 한 왕권이 일어나는구나 그가 모압사람들의 관자노리를 부수고 셋의 후손의 정수리를 모조리 부수리라. – 민수기 24 : 17, 공동번역 

다윗을 이야기 하려고하면 빼 놓을 수 없는 이름 가운데 하나가 블레셋입니다. 다윗이 통일 왕국을 세우게 된 결정적인 원인은 블레셋을 이겼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몰라도 다윗과 골리앗 이야기는 누구나 다 아는 이야기입니다. 바로 다윗이 등장하는 장면입니다. 다윗은 그렇게 블레셋과 함께 등장합니다. 다윗이 곤경에 처했을 때 그가 몸을 의탁하고 재기의 꿈을 키운 곳은 바로 블레셋 진영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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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레셋과 다윗은 뗄 수 없는 관계에 있었다는 말이지요. 

블레셋(Pleshet  또는 Peleset)은 오늘날 팔레스타인이라는 지명의 어원이 됩니다. 블레셋족속이라는 Phililster라는 말에서Philistine이라는 말이 생겨났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이스라엘 국기에는 다윗의 별이 그려져 있습니다. 

삼천년 전의 악연이 오늘까지 이어지고 있는 셈입니다. 

블레셋과 다윗 관계를 들여다 보면서 이런 저런 상상을 하다보면 “사람의 뜻”과 “신의 뜻” 또는 “힘의 뜻”과 “믿음의 뜻” 사이에 있는 차이를 느낄 수 있답니다. 

오늘은 그거 한번 짚고 넘어 가려고 합니다. 힘 또는 사람의 뜻과 신 또는 믿음의 뜻 사이에 있는 차이 말입니다. 

블렛셋족은 히브리족들이 가나안에 들어간 때와 엇비슷한 무렵에 가나안에 나타난 족속입니다. 바다로 부터 온 사람들, 섬으로 부터 온 사람들이라는 불리움을 받는 블레셋 족속은 그리스반도나 크리티섬에서 에게해를 건너온 것으로 역사학자들은 추정하고 있답니다. 

이들은 당시 철기문화권에 이미 이르러 있었기 때문에 아주 강력한 철기 무기로 무장되어 있었을 것으로 생각하고요, 반면에 가나안에 정착한 히브리족들은 아직 청동기문화권에 속해 있었답니다. 

사무엘상 13장 19절에서 23절의 기록을 보면 아주 흥미 있는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답니다. 

<그 당시 이스라엘에는 대장장이가 한 명도 없었다. 블레셋인들이 히브리인들에게 칼이나 창 같은 것을 만들지 못하게 했던 것이다. 그래서 이스라엘 사람들은 보습이나 곡괭이나 도끼나 낫을 벼리려면 블레셋 사람들이 사는 곳으로 내려가지 않으면 안되었다. 보습이나 곡괭이를 벼리는 값은 삼분의 이 세겔이었고 도끼를 벼리고 낫을 가는 값은 십분의 일 세겔이었다. 그래서 그 전쟁이 터졌을 때 사울과 요나단을 따르는 무리에게는 칼도 창도 없었다. 무기를 가진 사람은 사울과 요나단 뿐이었다.> 

이 성경의 기사로 유추해보자면 히브리 부족 동맹은 블레셋족의 영향 아래 있었다는 것이고요, 사울이 블레셋을 무기도 없이 초반에 승승장구했다는 사실은 거의 기적같은 일이었다는 것이지요. 

아무튼 블레셋과 이스라엘 사이에는 그런 큰 힘의 격차가 있었다는 점입니다. 

오늘날 팔레스타인 가자 자치구를 중심으로 한 해안지방에 터 잡고 있었던 블레셋족은 당시 가나안지역의 터잡으려 하던 이스라엘족에게는 가장 강력한 적이었던 것입니다. 

사울은 이들과 맞붙어 최후에는 처참한 패배를 당했지만 그들의 기세를 확연히 꺽어낸 사람입니다. 그 기반 위에서 다윗은 그들 블레셋 세력을 완전히 꺽어 버린 것입니다. 다윗은 한동안 블레셋족에게 몸을 의지하고 그들의 용병대장 노릇을 합니다. 아마 그런 경험들이 블레셋을 이기는 요인도 되었을 것입니다. 이런 이야기는 다윗의 성격을 다룰 때 다시 드리기로 하겠습니다. 

다윗이 통일 왕국을 세운 후 블레셋족은 점차적으로 사실상 지구에서 사라집니다. 그런데 왜 그 땅의 이름이 그들의 이름을 따서 팔레스타인이 되었느냐는 것이지요. 

이야기는 다윗시대로 부터 약 일천년 뒤로 빠르게 지나갑니다. 

예수가 십자가형을 당하고 부활하신 후로부터 약 한 세대가 흐른 뒤인 기원 후 66년 유대와 로마 사이에 전쟁이 일어납니다. 제 1차 유대-로마 전쟁이라고도 합니다. 이 전쟁으로  로마황제 티투스에 의해 유대와 예루살렘은  73년에 처절한 멸망을 합니다. 

저 위에서 인용한 유대의 역사가 요세푸스의 기록을 보면 그 때의 상황을 그려 볼 수 있답니다. 요세푸스는 이 전쟁에 로마인으로 참전했던 사람입니다. 

그리고 그로부터 약 60년이 흐른 기원 후 132년에 제 2차 유대-로마 전쟁이 일어납니다. 숨죽여 살던 유대인들에게 유대인들의 전통인 할례를 금한다는 로마에 새 법령에 항거하여 일어난 전쟁입니다. 이 전쟁을 이끈 시므온이라는 대장은 바르-코흐바(Bar-Kochba)라고 불리었는데 그 뜻은 ‘별의 아들’이라는 것입니다. 민수기 24 : 17에 나오는 예언이 그를 두고 한 말이라고 믿은 전 유대인들이 로마에 항거하는 전쟁을 벌입니다. 

결국은 처절한 패배를 당한 유대인들은 로마 황제의 명에 따라 그 땅을 떠나게 됩니다. 이른바 유대 디아스포라가 일어난 사건입니다. 그 후 유대인들은 바르-코흐바(Bar-Kochba) 대신에 바르-코지바(Bar- Koziba)라고 시므온을 불렀는데 그 뜻의 거짓의 아들이라는 이름이었답니다. 

문제는 여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랍니다. 

이즈음에 중국의 소수민 정책은 자치구정책을 쓰고 있지요. 일테면 조선족 자치구처럼 말입니다. 소수민족이 전통적으로 지니고 있는 문화와 관습을 용인하면서 자국민으로서 의무를 다하게 하는 정책 말입니다. 

바로 로마의 식민지 통치도 그랬답니다. 식민지의 전통 문화와 관습을 보장한 것이지요. 예수 시대의 예루살렘은 그런 모습을 보였답니다. 

그런데 유대와의 일, 이차 전쟁을 끝낸 로마는 유독 식민지 유대에게는 아주 가혹한 처분을 내린 것이지요. 모든 유대족들을 그 땅에서 내 몬 것입니다. 

그리고 그 땅의 이름조차 유대인들이 메시아로 생각하는 다윗의 원수 블레셋의 이름을 딴 팔레스타인으로 정했답니다. 다시는 유대인들이 그 땅을 밟을 생각조차 하지 말라는 뜻이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약 1800여년이 흐른 뒤 그 땅에는 다윗의 별 깃발이 나부끼고 있는 것이지요. 

다윗 이야기로 돌아가기 전에 이 글을 읽고 계시는 당신에게 드리는 퀴즈입니다. 

이즘 현재 이스라엘국가와 팔레스타인에 사는 사람들 가운데 예수를 믿는 기독교인들은 어느 쪽이 더 많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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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가지 안내 말씀을 드립니다. 

이 글을 연재하게 된 까닭은 여러가지가 있지만 그 중 하나가 복지라는 개념에 대해 생각해 보자는 것이었습니다. 

혹시 이 글을 읽고 계신 당신께서 미국에 살고 계신 영세업자나 소상인이거나, 오바마케어라는 건강보험에 관심이 있는데 뭔지 잘 모르시는 분이라면 누군지 모를 당신을 위해서 오바마케어와 마켓플레이스에 대한 설명을 제 웹(http://socialkoam.com/?p=1008)에 연재해 올리고 있으니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제가 무료로 정보를 제공하듯이 이웃에게도 무료로 함께 나누시기를 바랍니다.

지도(地圖) – 왕국 5

(당신의 천국 – 스물 한 번 째 이야기) 

다윗은 나이 삼십에 왕위에 올라 사십 년을 다스렸다. 헤브론에서 칠 년 육 개월 동안 유다를 다스렸고, 예루살렘에서는 삼십 삼 년 동안 온 이스라엘과 유다를 다스렸다. – (사무엘하 5: 4-5, 공동번역) 

그는 왕이 갖추어야 할 모든 덕망과 인격을 소유한 걸출한 인물로서 그렇게 많은 지파의 안위를 책임질 만한 인재였다. 그는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용맹하였으며 위험에는 그 누구보다도 먼저 뛰어드는 담대함을 가진 용사였다. – 중략 – 그는 신중하고 온유하며 재난 가운데 처한 자들에게 친절하였으며 의로우며 인정이 많은 인물이었다. 한마디로 말해서 그는 왕이 갖추어야 할 덕성을 다 갖춘 사람이었다. – (요세푸스의 유대고대사 7권 15장에서) 

제가 27년 째 살고 있는 델라웨어주는 미국에서 두 번 째로 작은 주입니다. 제가 사는 집에서 5분이면 펜실베니아주가 되고, 15분 이면 뉴저지도 가고 메릴렌드도 만난답니다. 시속 약  60마일(96km)로 달린다면 동서를 가로지르는데 30분이면 족하고 남북을 달린다해도 채 두시간이 안 걸리는 작은 주랍니다. 

총면적이 6,452 km²이니 대한민국에서 제주도를 빼고는 제일 작다는 충청북도 면적(7,431.50 km²  ) 보다도 조금 작은 곳이지요. 

이 글을 쓰노라고 대한민국 지방자치단체들의 면적 크기를 보고 있노라니 특별시, 광역시, 자치시를 빼 놓고 도(道)면적으로는  경상북도가 제일 크더군요. 그 면적의 크기가 19,027.96 km² 랍니다. 

갑자기 웬 땅크기를 따지냐고요?  이제부터 서너 번에 걸쳐 이야기할 다윗왕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랍니다. 

오늘날 팔레스타인에 자리잡고 있는 이스라엘의 면적은20,770 km² 랍니다. 대한민국 경상북도보다 조금 넓은 정도입니다. 

약 삼천년 전 이야기 속에서 우리들이 머리 속에 그리는 일들이 이렇게 아주 작은 땅에서 벌어진 일들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보자는 뜻이지요. 

그런데 성서를 보면 다윗이 왕이 되는 의식을 세 번이나 치룬답니다. 첫번 째 이야기는 사무엘상 16장에 나오는 이야기로 사무엘에게  기름을 부어 받고 왕이 되는 것입니다. 두번 째는 사무엘하 2장에 나오는 이야기로 유다의 왕이 되는 장면입니다. 세 번 째는 사무엘하 5장에 나오는 이야기로 통일국가의 왕이 되는 장면입니다. 

자!  이제 다윗이 치룬,  이 세번의 왕위 즉위 의식을 제대로 알려면 당시의 상황을 좀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야 우리들이 다윗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 때문입니다. 그리고 앞으로 이어질 남왕국, 북왕국 또는 유다나 이스라엘이 지닌 의미를 좀 더 확실히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일들이 왜 필요하냐고요? 

예수의 하나님 나라 선포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이고, 그 선포를 설명하는 바울의 길을 제대로 알기 위해서이고, 마침내 “나는 예수쟁이요, 나는 구원을 받았소, 나는 지금도 천국에 살지만 죽어서도하나님 나라에 가오.”라는 선언을 하기 위해서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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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좀 돌이켜 봅니다. 탈애굽을 한 히브리족들이 가나안을 정복했던 시기로 돌아가 보자는 것입니다.  위에 지도는 여호수아가 가나안을 정복하고  열 두지파 부족들 가운데 레위지파를 빼고 각 지파가 차지한 땅을 그림으로 그려 본 것입니다. 

경상북도만한 땅을 열 한 지파가 그림처럼 나누어 가졌다는이야기지요. 그런데 문제는 그림처럼 딱 선을 그어서 각 지파들이 그 땅을 차지했던 것은 아니라는 것이지요. 그 땅 안에는 가나안 땅에 살았던 원래 부족들이 살아있었고, 해안 지방으로는 블레셋이라는 힘이 센 족속이 있어서 그들이 가나안 곳곳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었다는 것이지요. 

사사(판관)시대 이야기는 바로 이런 각 지파들, 또는 한 두지파의 연합체의 땅에서 일어난 일들이 기록되어 있는 것이지요. 

사울이 왕이 되었을 때의 이야기는 블레셋이라는 강한 세력이 각 지파들 모두에게 큰 위협이 되었을 때 지파 곧 부족 동맹의 총연합체인 이스라엘의 이름으로 뭉쳐 싸우던 시절이었답니다. 

그런데 레위지파를 뺀 열 한 지파 가운데 남쪽에 자리잡은 유다지파가 있지요. 그 아래로 시므온 지파가 있지만 이 시므온지파는 유다지파로 흡수되어 버렸고요.  다윗은 바로 이 유다 지파 출신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리고 이 유다 지파에 대한 예언은 창세기에 나오는 야곱의 유언으로 소급된답니다. (창세기 49장 10절 : 왕의 지팡이가 유다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유다지파 바로 위에 있는 베냐민 지파의 일부와 유다지파가 훗날  남왕국  유다의 원류가 되는 것이고요. 나머지 지파들이 북왕국 이스라엘의 본류가 되는 것이지요. 

다윗이 왕이 세 번되는 과정을 잠시 다시 생각해 봅니다. 

사울이 이스라엘 첫 왕이 된 것은 지금 보통 우리들 머리 속에 그리고 있는 고구려의 왕이나 신라의 왕 또는 백제의 왕처럼 평양이나 경주, 공주에 있는 궁궐에 앉아 있던 왕이 아니랍니다. 

경상북도를  각 군으로 나누어 땅을 차지하고 있지만 각 군의 작은 읍들에 모여 살고 이웃하는 읍들에는 적들이 있고 뭐 그런 상황이었는데 블레셋이라는 엄청난 세력의 적들이 경상북도 전체를 위협하게 된 것이지요. 

그래 사울이 각 군(지파)들의 힘을 모아서블레셋과 싸움을 하게 된 것이지요.  그 때 다윗은 사울왕 밑에 있는 여러 장수들 가운데 하나 였다는 것이고요.(어떤 장수였는가는 다음 글에서) 그런데 야훼 하나님이 그런 상태에서 사울을 제끼고 다윗 네가 왕이 되라고 사무엘을 시켜 기름을 부었다는 것이 첫 번 째 이야기이고요. 

두번 째는 자기의 고향땅 유다에서 자기 고향  땅 사람들, 곧 유다의 왕이 되었다는 것이고요. 그 떄 유다와 일부 베냐민 지파를 뺀 나머지 땅인 북쪽의 이스라엘이라고 부르는 곳의 왕은 사울의 아들인 이스보셋이었지요. 

마지막으로 세 번 째 왕위에 오른 것이 바로 북 이스라엘과 남 유다를 통일한 후에 예루살렘에서 치루어 진 일이지요. 

오늘의 이야기는 아주 오래 전인 삼 천년 전에 대한민국 경상북도만한 작은 땅에서 열 두 부족이 서로 땅을 갈라 살던 때에, 그나마 각 부족의 땅엔 이런 저런 적들이 함께 했고, 서쪽으로는 블레셋, 남쪽으로는 아말렉, 동으로는 모압 등등의 적으로 싸여 있던 시절에 다윗이 통일 왕국을 이루어가는 그림에 대한 이해를 돕기위해 한번 지도 설명을 한 것이랍니다.

결과 – 왕국 4

(당신의 천국 – 스무 번 째 이야기)

“사울은 수천을 치셨고, 다윗은 수만을 치셨다네!”  사울은 이 말이 비위에 거슬려 몹시 화를 내어 투덜 거렸다. “다윗에게는 수만 명을 죽인 공을 돌리고 나에게는 고작 수천 명을 죽인 공밖에 돌리지 않으니 왕의 자리마저 그에게 돌아가겠구나.” (사무엘상 18: 7-8, 공동번역) 

“모든 역사의 경우가 대부분 그렇듯이, 어느 인물을 평가하는 후기의 입장에 대해서도 결국은 결과가 결정해 주었다. 결국 사울의 평가는 다윗이 결정한 것이다. 그러나 역사적으로는 사울의 업적을 떠나서 다윗의 성공을 생각할 수 없다.”  ㅡ군네벡(Antonius H. J. Gunneweg)이 쓴 이스라엘의 역사에서 

삼국지연의에 나오는 주인공들 일테면 조조와 유비 제갈공명이나 관우, 장비, 조자룡, 하후돈, 하우연 손권 등에 대해 어떤 인상들을 가지고 있으신지요? 

하늘이 내린 책략가로 떠오르는 공명이나 착한 이미지로 떠오를 수도 있는 유비, 간사하고 교할한 이미지로 떠 올릴 수도 있는 조조 등등 사람들 사이에 어떤 굳어진 이미지들이 있지요. 

그러나 실제 역사적 사실로 보자면 공명이 했다는 일 가운데 많은 것들이 허구이거나 사실과 다르답니다. 소설의 도입부에 나오는 유비, 관우, 장비가 맺는 도원결의는 소설가 나관중의 상상 속에서 그린 허상이고요. 

조조에 이르면 사실과 다른 것들이 더욱 많답니다. 소설속에서는 나쁜 이미지를 지닌 인물로 그려져 있지만 실제 역사적 인물 조조는 학문 특히 시에 능한 시인이었고, 서화(書畵)와 음악에도 조예가 깊었던 사람입니다. 학문의 깊이도 남달랐고, 군사와 무예 실력도 뛰어났다고 합니다. 무엇보다 사람 보는 눈이 뛰어나 인물을 알아보고 적재적소에서 일하게 하는 능력이 뛰어났다고 한답니다. 그런 탓인지 이즈음에는 성공하려면 조조의 처세술을 배우라는 글들도 종종 눈에 뜨인답니다. 

아무튼 소설과 역사적 사실 사이의 차이지요. 

소설이 아니더라도 실제 똑같은 사실도 보는 관점에 따라 아주 달라지는 경우도 있지요. 

혹시 고려시대 역사에 나오는 묘청(妙淸)의 난이라는 역사적 사실을 기억하시는지요. 요승(妖僧 – 요망한 중) 묘청이 서경(지금의 평양)을 중심으로 반란을 일으켜 대위국(大爲國)이라는 나라를 세웠다가 토벌된 일로 기억하시는 분들이 아마 많을 것입니다. 학교에서 그렇게 배웠으니까요. 

그러나 단재 신채호선생은 이 묘청이 일으킨 사건이야말로 한반도의 역사를 바꿀 수도 있었던 “조선역사상 일천년래 제일 대사건”이라고 하셨답니다. 

오늘날 대한민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미국에서 전시작전권을 환수해야한다는 축과 그건 종북주의자들이 하는 소리라는 축의 대립이 있지요. 바로 이런 대립의 시초가 고려시대 묘청이 시도했던 서경천도(묘청의 난) 사건이라는 것이지요. 

<낭불 양가 대 유가의 전쟁이며(郎佛 兩家대 儒家의 戰- 전통적으로 내려오던 화랑과 불교의 세와 유교의 세력이 맞선 전쟁이며), 국풍파 대 한학파의 전쟁이며(國風派대 漢學派의 戰- 고려의 정신과 중국 종속 정신과의 전쟁이며), 독립당 대 사대당(事大黨)의 전쟁이며, 진취사상 대 보수사상의 전쟁이니, 묘청은 곧 전자의 대표요 김부식은 곧 후자의 대표이었던 것이다. 

이 전역(전쟁)에 묘청 등이 패하고 김부식이 승하였으므로 조선사(朝鮮史)가 사대적 보수적 속박적(束縛的) 사상 즉 유교사상에 정복되고 말았거니와, 만일 이와 반대로 김부식이 패하고 묘청 등이 승하였더라면 조선사가 독립적 진취적 방면으로 진전(進展)하였을 것이니, 이 전역을 어찌 일천년래 제일 대사건이라 하지 아니하랴.> – 신채호선생의 일갈입니다. 

이 묘청의 반란을 진압한 고려 정부군의 대장이 김부식이었고, 그 김부식이 삼국사기를 쓰고, 이 사건에 대해 기록을 남겼습니다. 

어느 쪽 시각이 역사적 사실에 가까울 것 같으신지요? 어느 쪽 해석이 한반도나 전세계에 퍼져사는 한민족의 미래를 위한 해석이 될까요? 

자! 이쯤 우리들 이야기의 본류인 성서의 사울 이야기로 옮겨갑니다. 

이스라엘 첫 왕 사울에 대한 이야기를 읽노라니 삼국지도 생각나고, 묘청의 서경천도 사건에 대한 단재 선생의 글도 생각나고해서 드린 말씀입니다. 

성서 사무엘상에 나오는 사울 이야기를 읽다보면 사울은 참 불쌍한 사람이랍니다. 화려한 등장으로 이스라엘 왕국의 첫 왕이 되었지만, 무수한 전쟁만 치루다가 목이 잘려 나가 효수되는 처참한 죽음을 맞습니다. 더더구나 세 아들과 함께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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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에 나오는 사울 이야기를 짧게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사울은 야훼 하나님이 예비해 둔 왕이었습니다. 사울은 이스라엘 부족 동맹을 상시적으로 위협해 온 블레셋을 비롯한 이스라엘과 철천지 원수였던 아말렉 등 많은 가나안의 적들과 크고 작은 전투와 전쟁을 치루었습니다. 왕이라기보다는 이스라엘 부족의 총사령관에 가까웠습니다. 초기에 그는 승승장구했습니다. 

그러나 사울은 야훼 하나님 앞에 결정적인 죄를 연달아 짓게 되고, 야훼 하나님이 세운 사사(판관)였던 사무엘과 반목을 하게됩니다. 

이 무렵 야훼 하나님의 눈길은 이미 사울을 버리고 다윗에게 꽂혀 다윗을 새 이스라엘의 왕으로 기름부어 세웠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사울은 다윗에 대한 시기에 불타 정신적으로 여러 불안 증세를 보이다가 끝내 무당을 찾아가 자기의 앞날을 묻는 돌이킬 수 없는 죄를 짓습니다. 

블레셋과의  마지막 대접전이었던 길보아 싸움에서 세 아들을 잃고 스스로 목숨을 끊습니다. 블레셋군은 그의 주검에서 목을 치고 그의 시체는 벳산 성벽에 못박아 달아 놓았다고 성서는 기록합니다. 

성서적 고백과 야훼 하나님의 뜻에 대한 이야기는  잠시 미루고요. 

사울은 왕이 된 후 집권 중반부터 다윗과 아주 심한 권력 투쟁에 휩싸이게 됩니다. 이제 이어질 다윗 이야기에서 주로 다룰 일이지만 인물론으로 보자면 사실 다윗보다 사울이 훨씬 잘난 사내이고 성격의 됨됨이도 낫다는 생각입니다. 

사울은 왕이라기 보다는 뛰어난 장수였습니다. 전형적인 무관 스타일입니다. 그에 비해 다윗은 잘 알려졌다시피 시도 잘 쓰고 악기도 잘 다루는 등 가무에 능했을 뿐만 아니라, 변신도 밥 먹듯이하는 아주 교활한 성격이었으며, 때론 탐욕스럽기도 한 마치 삼국지연의에 나오는 나쁜 이미지의 조조를 떠올리게 하는 인물입니다. 

그런데 다윗이 사울을 이기고 왕위를 이었습니다. 그리고 다윗의 자손들이 그 왕위를 이어나갔고요. 역사는 다윗에 의해 기록되었다는 말이랍니다. 그렇다면 실제 사울의 입장에서 보면 성서의 기록이 억울할 수도 있는 부분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게 되는 것이지요. 

자! 여기서 성서적 고백 곧 야훼 하나님의 뜻에 대해 생각해 보아야 하는 것이지요. 우리들의 천국을 위해서 말입니다. 

성서가 기록한 사울의 죄입니다. 야훼 하나님께서 왜 사울에게 얼굴을 돌리고 그를 버리기로 결정을 했느냐는 것입니다. 

성서가 말하는 사울의 죄는 저 위에서 말한 무당을 찾아갔던 일 말고도 크게 세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 야훼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직분과 왕의 직분이 엄격히 분리된 약속을 범한 죄입니다. 전쟁을 치루기 전에 야훼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는 사사인 사무엘의 몫인데 그 일을 사울이 했다는 것입니다. 사무엘상 13장을 읽어 보시길 바랍니다. 인간적으로 보면 사울의 결정은 아주 당연한 것이었답니다. 

둘째는 아말렉과의 전쟁을 치루고 난 뒤에 벌어진 일입니다. 야훼 하나님은 이 전쟁을 치루기 전 사울에게 명령을 내렸답니다. 아말렉족을 싹 죽여 없애고, 모든 재물도 태워 없애라는 명령이었답니다. 

사울은 이 전쟁에서 대승을 거둡니다. 그런데 사울은 아말렉 왕인 아간과 양과 소 등의 재물들을 죽이지 않고 탈취를 한 죄입니다. 

이 역시 인간적으로 보면 크게 나무랄 일이 아닌 것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사무엘이 이런 사울의 행태를 보고 나무랄 때 보인 사울의 태도입니다. 그는 야훼의 명령을 어긴 일에 대해 묻는 사무엘에게  자신의 군대와 야훼를 위한 제사용이었다는 변명을 한 것입니다. 뒤늦게 그는 후회하며 용서를 빌지만 이미 때는 늦은 일이었습니다. 

이 세가지가 성서가 말하는 사울의 죄입니다. 그 유명한 성서 구절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말씀을 따르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낫습니다.”(사무엘상 15 : 22, 표준 새번역 개정판)라는 대목이 나오는 장면입니다. 

성서와 이스라엘이 사울왕의 생을 놓고 야훼 하나님께 드리는 고백을 요약하자면 이렇습니다. 물론 제 생각일 뿐입니다. 

첫째 세상의 그 어떤 권력도 야훼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를 주관하지는 못한다는 것입니다. 즉 세상의 모든 권력은 신을 대신하지 못한다는 고백이라는 말입니다. 

두번째는 이스라엘족들의 민족적 신앙고백인 야훼 신앙에 영향을 끼칠 외부의 것들은 애초 싹을 자르는 철저한 경계를 두자는 고백입니다. 

마지막으로는 이제 이야기가 이어질 다윗과 사울의 결정적 차이를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거니와 , 이스라엘의 메시아 원형인 다윗과 저와 믿는 이들이 그리스도로 고백하는 구원자 예수 사이를 잇는 다리인 바로 “회개”입니다.

왕도(王道) – 왕국 3

(당신의 천국 – 열 아홉 번 째 이야기)

베냐민 지파에 속한 명문 출신으로서 덕이 출중한 기스(Kish)라는 사람이 살고 있었다. 그에게는 사울이라는 아들이 하나 있었다. 그는 키가 크고 잘 생긴 미남 청년이었다. 더우기 그의 지혜와 총명함은 외모보다 나으면 나았지 결코 못하지 않았다. – (요세푸스 의 유대 고대사 6권 4장에서) 

가문 좋고  키 크고 잘 생긴데다가 지혜와 총명이 출중한 사울은 야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위해 준비한 첫 번 째 왕이었습니다. 성서와 역사가 요세푸스의 기록은 이 점에서 완벽한 일치를 보여 줍니다. 

이즈음처럼 상징조작으로 준비된 대통령상을 만든 것이 아니라 정말로 야훼 하나님께서 미리 준비한 왕의 재목이었다는 말입니다. 

사울의 이야기를 풀어 가기 전에 먼저 생각해 보려는 것들 세가지가 있습니다. 

첫째 왕을 세워 이스라엘 왕국을 건설하기 약 이백 년전에 이미 이스라엘 왕도(王道)에 대해 기록한 성서의 기록을 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왕들은 마땅히 이런한 자격을 갖추어야 하며, 이러 몸가짐을 가져야 한다는 규정들을 이미 정해 놓았다는 말씀입니다. 바로 광야에서 히브리족과 야훼 하나님 사이에 맺은 계율에 그렇게 기록되어 있답니다. 

자! 우리들이 지나왔던 신명기로 잠시 다시 돌아가 봅니다. 신명기 17장 14절에서 20절까지 이스라엘 왕도(王道)에 대한 규정을 다시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야훼 하나님이 앞날을 예견하시고 미리 말씀했다는 것입니다. 너희들이 언젠간 틀림없이 왕을 세울 것인즉 왕은 이러해야 한다라고 명령했다는 말입니다. 

“왕은 반드시 동족이어야 하고, 큰 군대(군마)를 거느려서는 안 되고, 많은 후궁을 두어서도 안되며 재산을 많이 모아도 안된다.  왕이 된 후 반드시 두루마기에  이런 명령들을 적어 놓고 매일 되뇌이며 지켜야 한다. 혼자 힘으로 힘드니 사제가 늘 옆에 있어야 한다.  특히 동족을 얕잡아 보는 일은 절대 금한다.”라는 내용입니다. 

두번 째입니다. 이런 성서(출애굽기에서 열왕기까지) 역사 이야기들의 기록연대입니다. 뭐 물론 그 때 그때 사건이 일어날 때마다 하나님의뜻으로 기록되었다고 믿으셔도 괜찮습니다. 이스라엘의 왕도(王道)를 이백 수십년 전에 하나님께서 미리 예견하시고 말씀하셨다고 믿는 것도 좋다는 말씀입니다. 

제가 저 위에서 인용한 요세푸스라는 유대의 역사가가 유대고대사를 기록한 것은 기원 후 약 95년경의 일입니다. 앞으로 이어질 제 이야기 가운데 신구약 중간사와 예수 시대사는 이 양반의 글이 많이 인용될 것입니다. 

오늘날 성서학자들의 의견들은 이 이야기들(출애굽에서 열왕기까지)의 근간을 이루는 기록들은 남왕국 유대왕 요시아 때를 전후한 기원 600년 경에 이루어졌다는데로 모아져 있습니다. 

사울 왕의 등장이 대략 기원전 1030년에서 1000년 즈음으로  보고 있으므로 이스라엘 왕국이 세워지고 거의 망할 무렵까지 이스라엘 백성들이 원했던 왕도였다는 것입니다. 

제가 기록연대를 한번 생각해 보다는 뜻은 역사를 어떻게 되돌아보고 해석하느냐의 중요성을 되짚어 보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역사적 경험과 사건을 되뇌일 때마다 야훼 하나님과의 관계와 그의 일하심이라는 관점으로  고백하고 기록했다는 것입니다. 

인류사에 나타난 수많은 족속들 가운데 전민족적으로 수천년을 일관되게 이런 고백으로 역사를 되돌아 본 민족은 유태족이 유일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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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측면에서 이즈음 대한민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역사교과서 문제를 보고 있노라면 측은함이 밀려 들 뿐입니다. 아마 단재(丹齋) 신채호(申采浩) 선생이 지금 대한민국에 살아계셨다면 유영익, 이명희 등을 비롯한 김무성 등등 역사 왜곡론자들을 향해 육혈포를 들이될 의열단 하나 만드시지 않았을까 하는 상상도 해본답니다. 

세번 째입니다. 한국 역사도 제대로 모르면서 왜 유대 역사나 이스라엘 왕조사를 우리가 이야기 해야 하는가 하는 것입니다. 저는 예수쟁이로서 이따금 기독교인들을 비난하거나 비평하는 이들이 하는 이 말 “자기 역사도 제대로 모르는 주제에…”라는 말에 강력히 대응하기 위해서라도 한국역사에 대해서만은 이스라엘 역사 이상으로 잘 알고 해석할 수 있도록 노력을 한답니다. 

아무튼 천국, 하나님 나라 이야기를 하면서 왜 유대사와 구약 성서에 이리 매달리느냐는 것이지요.

그리스도 곧 메시아 예수의 계시와 구원, 부활과 영생, 마침내 하나님 나라를 시간과 공간의 매임없이 전세계 사람들에게 알리는 일에 전생애를 바쳤던 사람 바울, 그의 믿음의 밑바탕에 깔린 의식이 바로 유대사이기 때문입니다. 

이제부터 우리들이 들여다 볼 이스라엘 역사 곧 유대사는 정말 보잘 것 없는 역사입니다.  왕을 세운지 백년만에 나라는 두 동강나고, 남북으로 갈린 두나라가 서로 으르렁거리다 북쪽 이스라엘는 앗시리아에게 남왕국 유다는 바벨론에게 망합니다. 참 보잘 것 없는 역사랍니다. 

왜 하나님의 나라를 찾아가는 제 이야기 속에서 이 보잘 것 없는 유대사가 중요한 것인가 하는 까닭을 말씀드립니다.

바로 바울 사도가 구원의 확신으로 세상사람들을 향해 쏟아내는 말의 기본 정신은 바로 보잘 것 없는 유대사와 그 역사 속에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고백이기 때문입니다. 

<형제 여러분, 여러분이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았을 때의 일을 생각해 보십시오. 세속적인 견지에서 볼 때에 여러분 중에 지혜로운 사람, 유력한 사람, 또는 가문이 좋은 사람이 과연 몇이나 있었습니까?  그런데 하느님께서는 지혜있다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시려고 이 세상의 어리석은 사람들을 택하셨으며, 강하다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시려고 이 세상의 약한 사람들을 택하셨습니다. 또 유력한 자를 무력하게 하시려고 세상에서 보잘것없는 사람들과 멸시받는 사람들, 곧 아무것도 아닌 사람들을 택하셨습니다. 그러니 인간으로서는 아무도 하느님 앞에서 자랑할 수 없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여러분을 그리스도 예수와 한 몸이 되게 하셨습니다. 그리스도는 하느님께서 주신 우리의 지혜이십니다. 그분 덕택으로 우리는 하느님과 올바른 관계에 놓이게 되었고, 하느님의 거룩한 백성이 되었고, 해방을 받았습니다. 이것은 다 하느님께서 하신 일입니다. ( 고린도전서 1: 26-30, 공동번역) 

이제  세가지 곧 내가 누릴 하나님 나라를 찾아가기 위해서 이스라엘이 고백했던 왕도를 근간으로 사울왕부터 이야기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순장(殉葬) – 왕국 2

(당신의 천국 – 열 여덟번 째 이야기) 

그 때에 가서야 너희는 너희들이 스스로 뽑아 세운 왕에게 등을 돌리고 울부짖겠지만, 그 날에 야훼께서는 들은 체도 하지 않을 것이다. (사무엘상 8 : 18, 공동번역) 

이스라엘 부족들이 왕을 세우게 해달고 조르자, 내키지 않았지만 그 청을 들어 주기로 한 야훼 하나님은 마지막 순간까지 부족들의 마음을 돌려 보려는 시도를 해 봅니다. 

사무엘상 8장 10절에서 18절 사이에 나오는 이야기가 바로 그 내용입니다. 

너희들이 왕을 세우겠다면 그렇게 하기는 하겠다만, 너희가 세울 왕들이 도대체 어떤 일들을 할 것인지를 알기나 하느냐? 내가 미리 말해주마! 너희가 세운 왕들은 너희와 자손들에게 병역의 의무, 노역의 의무 등을 부과할 것이고, 비록 지금 네 소유인 것도 왕이나 주변 권력이 원하면 마음대로 빼앗아 가기도 할 것이고, 심지어 너희들을 종으로 삼는 일도 일어날 것이다. 또한 이제껏 나 야훼가 만든 법률인 율법에 따라 거두어 들인 너희 소득의 십분의 일과는  아주 다른 십분의 일세가 부과될 것이고, 이제껏 레위족속과 너희 부족들의 평등한 복지에 쓰여졌던 그 돈들은 왕과 그 주변의 배속 채우는 일에 쓰여질 것이다. 그리고 이 일 곧 왕을 세우는 일로 너희와 제 자손들은 후회하게 될 것이다. 

대충 이런 내용이지요.  다시 한 번 잘 생각해 보라는 마지막 충고였지요. 그러나 끝내 이스라엘 부족은 이런 야훼의 마지막 충고를 외면하고 고집을 피어 마침내 왕을 세우게 됩니다. 

자!  여기서 잠깐 생각해 볼 것이 있답니다. 

애굽에서 탈출했던 히브리족들의 기억 속에는 분명 애굽 곧 이집트의 왕들의 모습들이 남아 있었을 것입니다. 믿음의 조상으로 일컬어지는 아브라함의 고향 땅 우르에 있었던 메소포타미아의 고대 왕들에 대한 기억도 남아 있었을 수도 있습니다. 

아니 그렇게 멀리 갈 것도 없이 가나안 땅에 먼저 뿌리 내리고 살던 부족들의 모습에서도 많이 보아왔을 것입니다. 

왕에 대한 모습입니다. 

우리로 치면 단군이나 일본, 몽골 등의 왕의 역사를 보면 쉽게 알 수 있답니다. 중국의 삼황오제(三皇五帝) 전설은 약간 다르긴 하지만 거의 맥락에 있어서는 같다고 볼 수도  있겠는데요.

고대의 왕들은 곧 신(神)과 동일한 위치에 있거나 신과 사람 사이의 중간자 역할을 하는 사람이었답니다. 

‘단군’이라는 말의 어원을 여러가지로 해석하고 미루어 생각하는 것  중에 하나가  ‘당골’에서 나왔다는 설이 있지요. 바로 무당 곧 신과 사람과의 중개자라는 뜻이지요. 

고대의 왕들은 신 또는 신을 대행하는 사람이었답니다. 이게 뭔 말이냐하면 “왕 마음대로 자기 지경에 있는 사람들과 모든 생명체들을 움직일 수 있었다”는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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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오늘의 이야기입니다. 언제부터인가 한국 언론에 등장한 말 가운데 하나가 “순장(殉葬)”이라는 말이 있답니다. 제가 언제부터인지는 따져 보지는 않았지만 얼추 노무현 아니면 김대중 대통령 퇴임 이후에서 부터 퇴임 대통령 이후를 함께 하는 사람들을 일컬어 이  말을 쓴 것 같습니다. 

“순장조”라는 말로 말입니다. 

저는 전두환 치세 말기에 이민을 와서 솔직히 잘 모릅니다만, 특히나 인터넷이라는 희대의 물건이 뜨기 전까지, 아니 제게 생활화되기까지 전두환 말기부터 김대중 대통령 퇴임 무렵까지 한국 신문을 거의 볼 기회가 없었기 때문에 그 기간에 대해서는 어둡답니다. 뭐 그 때 그랬다는 말이지요. 이제는 알고자 노력만 하면 쉽게 알 수 있는 일이지요. 

이즈음 제가 보고 있는 신문 또는 잡지를 들면 조선, 동아, 중앙, 경향, 한겨레, 오마이, 뉴스타파, 국민 TV 등등의 한국 매체에서 부터, Washington Post, New York Times, The Times를 비롯한 미국내 지역 신문들까지마음 먹고 시간 나면 아무데나 수시로 들어가 볼 수가 있답니다. 

그런데 2013년 현재 한국 언론은 정말 문제라는 생각이랍니다.  두 가지입니다. 

참 똑똑한 젊은 이들이 취재를 할 것이고, 오랜 경험이 있는 데스크가 판단들을 하겠지만, 돈에 너무 매어 있다는 것이 첫 번 째이고, 그러다보니 쓰는 언어나 보도 태도들이 지나치게 자극적이라는 점입니다. ‘순장’이라는 말의 사용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다시 이야기로 돌아 오지요. ‘순장’이란 왕이나 그 주변의 권력자가 죽었을 때 그 죽은 이의 재산인 사람이나 동물들을 산 채로 또는 죽여서 함께 묻는 것을 말합니다. 

이스라엘 부족들이 왕을 세울 무렵 왕권국가에서 동서를 막론하고 일어났던 일이고, 세계사로 보자면 약 오 륙 백년 전까지 남아 있던 풍습이랍니다. 왕의 절대 권력은 야훼 하나님이 이스라엘 부족에게 경고했던 것보다 훨씬 사나웠다는 사실입니다. 

탈애굽 40년과 사사(판관)시대 약 200년 동안 이스라엘 부족 동맹은 신정체제 곧 신이 직접 다스리는 시대를 통해 사람과 사람 사이에 평등함이 이루어지는 사회를 꿈꾸어 왔고, 그것이 가나안 세상이라는 자기 고백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애굽에서 오랜 동안 겼었던 노예 생활에 대해 잘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약 두어 세대를 지나면서 야훼에 대한 믿음과 조상들의 경험을 잊게 되는 것입니다. 

성서는 그런 징조들을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사무엘상 2장 12절에서 17절의 기록에는 야훼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를 담당하고 있는 사무엘의 스승 엘리사제의 두 아들이 아버지의 권력을 믿고 그 권력을 마구 사용하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또 사무엘상 8장 1절 이하에는 사무엘의 아들들이 돈을 받고 재판을 하거나 행정을 보는 뇌물수수죄를 범하고 있다거나 사무엘상 22장 1, 2 절에 다윗 주변에 모이는 사람들을 보면 “억눌려 지내는 사람, 빚을 지고 허덕이는 사람, 그 밖의 불평을 품은 사람들”이라는 것으로 미루어보아 이미 평등한 가나안의 꿈은 사라진 모습입니다. 

이 땅에서의 하나님 나라의 첫 징후이자 모습이라고 제가 말씀드렸던 평등한 세상으로써의 하나님 나라가 무너진 것입니다. 

그렇게 이스라엘 왕국의 첫 임금인 사울이 등장하게 되는 것입니다. 

다음 이야기로 넘어가기 전에 한가지는 짚어야겠습니다. 

이스라엘이 왕을 세운 역사적 사실, 고백들과 다른 민족의 왕들에 대한 이야기 사이에 아주 큰 차이 두가지입니다. 

첫째 고대 왕국 시조왕들은 대부분이 왕이 내려와 백성을 다스리거나 백성들이 원하는 것들을 먼저 알아서 해 주었기에 왕이 되었다(중국의 예)는 설화들을 지닌 반면 이스라엘은 백성들이 원해서 그리 되었다는 점이고요. 

두번 째는 고대 왕국의 왕들은 대개 신의 반열과 동일시 되거나 중개자의 모습이지만 이스라엘의 왕은 철저히 야훼 신 앞에서는 백성들과 동일한 위치에 있었다는 점입니다.

신의 양보 – 왕국 1

(당신의 천국 – 열 일곱 번 째 이야기) 

요담의 우화(寓話) – 판관(사사)기 9장 8-15절에 있는 – 는, 임금 곧 왕이 된다는 것은 아무런 업적도 이루지 못하는 직업으로써, 정상적인 인간이라면 그런 자리를 좋아할 리 없다는 것이다. 더구나 임금의 체제 곧 왕정은 항상 폭군적 성격을 띤다고 가시덤불의 입을 빌어 이야기 한다. (한스 발터 볼프(Hans Walter Wolff)의 구약성서의 인간학에서) 

한민족의 첫 임금은 단군입니다. 잘 알다시피 단군은 하늘나라 임금인 환인의 아들 환웅과 곰에서 처녀가 된 웅녀 사이에서 나온 임금입니다. 이름하여 단군신화입니다. 

이런 첫 임금 설화는 한민족에게만 전해 지는 것은 아니지요. 고대 국가의 첫 임금들은 대부분 하늘, 태양, 달, 별 등 자연과 연계된 신화들을 갖고 있습니다. 

여기서 생각해 볼 것이 있습니다. 바로 대부분의 고대 국가들은 시작을 왕에서 비롯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서 이야기의 주인공들은 좀 다르지요. 

성서는 왕 이야기가 아니라 창조 이야기(제가 글을 시작하면서 창세기부터 하지 않았답니다. 창세기는 나중에 요한 계시록 이야기 할 때 함께 하려고 합니다.)부터 시작되지요.

그리고 아브라함과 모세 이야기를 풀어 내고, 가나안 정복 후, 그것도 약 이백년이 지나서야 왕이 나타나는 것이지요. 

사실 이스라엘이 왕을 세우고 왕국을 이루던 그 시기에는 주변의 많은 나라들은 이미 왕권 체제를 갖추고 있었지요. 

마침내 왕을 세우고 이스라엘 왕국으로 들어서는 이야기가 시작되는 책이 바로 사무엘서입니다. 

사무엘서로 들어가기 전에 먼저 판관(사사)기의 두 곳 기사를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답니다. 

한 곳은 사사(판관)기의 마지막인 21장 25절입니다. “그 때는 이스라엘에 왕이 없어서 사람마다 제 멋대로 하던 시대였다.” 

그리고 다른 한 곳은 저 위에서 소개드린  9장 8-15절에 있는 요담의 우화입니다. 우화의 내용입니다. (한번 찾아서 읽어 보시길) 

나무들이 모여서 왕을 세우는 장면입니다. 나무들은 올리브 나무, 무화과 나무, 포도 나무 들에게 왕이 되어 달라고 청을 합니다. 이 나무들은 모두 다른 나무들이 왕이 되달라는 청을 거절합니다. 나무같은 나무들에게 청을 거절 당한 나머지 나무들이 정말 나무같지 않은  가시나무에게 청을했더니 그 가시나무가 덥썩 그 청을 받아드리면서 공갈 협박을 하는 이야기입니다. 

왕이란 이런 것이라는 왕에 대한 히브리족들의 생각이었습니다. 그들의 왕은 야훼 하나님일 뿐이었을 때의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사사기 마지막 절에는 왕이 없어서 제멋대로 하던 시대라는 말을 합니다. 이제 왕을 세우게 된 이스라엘 백성들의 자기 위안인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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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이제 사무엘상 1장에서 12장 까지를 보시면 이스라엘의 첫 임금 사울왕이 즉위하는 과정을 볼 수 있답니다. 다시 한번 그 부분을 읽어 보시기를 권하면서 저는 두 가지를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우리들의 천국을 찾기 위한 핵심이라는 제 생각이랍니다. 

첫째는 사무엘상 8장 7절에서 9절의 이야기입니다. 야훼 하나님이 사무엘에게 내리는 계시입니다. 

“백성이 하는 말을 그대로 들어 주어라. 그들은 너를 배척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왕으로 모시기 싫어서 나를 배척하는 것이다. 그들은 내가 이집트에서 데려 내 온 이후 이 날 이 때까지 나를 저버리고 다른 신들을 섬기며 그런 짓을 해 왔다. 너한테도 지금 그렇게 하는 것이다. 그러나 엄히 경고하여 왕이 그들을 어떻게 다스릴 것인지를 일러 주어라.” 

이렇게 마지못해 내리는 야훼 하나님의 양보에 의해 사울왕이라는 첫 임금을 세우게 되는 것입니다. 

두번 째는 사무엘서 4장에서 7장까지로 이어지는 블레셋이라는 외부의 적 이야기입니다. 

많은 학자들이 동의하는 부분이기도 하거니와 일반적인 합리적 사고로 따지더라도 이 블레셋이라는 외부 세력의 침략이 이스라엘 국가를 건설하게 된 직접적 동인인 것은 확실해 보입니다. 

그 때까지만 하여도 열 두 부족 동맹국이었으니 말입니다. 동맹국이라는 게 다 그런거 아니겠어요. 서로의 필요에 따라 움직이는 관계 말이지요. 

강력한 적 앞에서 강력하게 뭉칠 힘이 필요했다는 말씀입니다. 

이스라엘 부족들이 느끼는 절실한 현실적 요구에 야훼 하나님이 응답은 하시되 정말 마뜩지 않은 응답을 하시는 것이지요. “그래 니들이 왕을 세울려면 세워라. 할 수 없다. 다만 이 것만은 명심해라.”라는 조건과 함께 말입니다. 

그  명심해야만 하는 조건들이란 사실 인간들이 지키기엔 감당하기 어려운 것이랍니다. 구약 야훼의 역사관인 신명기적 역사관으로 본다면 인류 역사란 바로 그 감당하기 어려운 신과의 약속을 더 많이 이루려 애쓰는 역사라고 말할 수 있답니다. 

아무튼 이스라엘 왕국 시대의 시작은 야훼 하나님께서 그리 마뜩찮게 생각한 역사의 시작이랍니다. 

오늘부터 한 주간은 그렇게 시작된 약 사백년의 왕국 역사 가운데 통일 왕국이었던 약 백년 동안의 이야기 곧  사울, 다윗, 솔로몬 이야기를 이어가려 합니다. 

과연 이들 시대의 이야기가 우리들의 천국과 어떤 연관이 있는지 말입니다.

쉬어가는 이야기 2 – 니가 뭔데?

“네깐 놈이 뭔데?” 또는 “니가 뭔데?”라는 질문을 누군가에게 받아 보셨거나, 스스로에게 던져 본 경험이 없는 사람이 있을까요? 없다면 스스로를 속이는 일이라거나, 누군가 당신의 등 뒤에서 한 말을 듣지 못했을 뿐이라는 강변은 하지 않겠습니다만, 보통 일반적 수준의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번쯤은 겪는 일입니다. 

스스로에게 “니가 뭔데?”, “내가 뭐지?”라는 질문을 던지는 것은 자기 정체성에 대한 물음일 수도 있고, 어떤 일에 대한 자신감이 없을 때나 손해를 입게 되거나 이익이 되지 않는 일을 피하려 할 때 사용하기도 하지요. 

누군가가 제게 그런 질문을 하는 것은 질문한 사람의 생각에 비추어 제 수준이 그에 미치지 못하거나 자격이 없다고 판단하기 때문이겠지요. 이럴 경우 대처하는 방법들은, 그 말을 들은 사람의 성격과 그 상황에 따라 아주 여러 가지로  나타날 것입니다. 

그 자리를 피할 수도 있겠고, 다툼이 일 수도 있겠거니와 제 삼자를 끌어 들일 수도 있을겝니다. 

이런 일은 우리들이 살아가는 사소한 일상에서 겪을 수도 있는 일입니다. 

조금 크기를 넓혀 “모든 사람은 법 앞에서 평등하다”는 말을 생각해 보기로 하지요.  이 말은 내가 속한 국가 공동체가 정해놓은 헌법과 법률 및 자연법 곧 사람답게 살 권리 보장법 아래서 누구나 평등하다는 뜻이지요. 

다른사람과 똑같이 법과 제도 아래서 “니가 뭔데?”라는 질문을 받지 않을 권리를 지니고 있다는 것이고 그것을 국가에 요구할 수 있다는 말이지요. 또한 국가라는 시민의 합의에 따라 권력을 행사하는 기관에게  “니가 뭔데?”라는 질문이 마구 돌아다니지 않도록 요구할 권리도 있는 것이지요. 민주주의 사회에서 이루고자하는 평등의 의미지요. 

다스림을 받아야 하는 백성이 아니라, 법과 제도 아래서 누구나 평등해야 하는 시민들이 모인 사회가 민주주의 사회이겠지요. 

그런데 다스리는 입장에 있는 사람들은 시민보다는 백성이 훨씬 편한 일이고, 다스림을 받는 게 편한 사람들 역시 늘 있게 마련이고요. 그냥 그렇게 나누어져서 살면 좋겠지만 또 시민이고자 하는 사람들이 늘 있어왔지요. 그래 다스리고자 하는 자들과 시민이고자 하는 자들의 다툼이 있게되는 것이고 그런 일들이 연속되면서 역사가 이루어 진 것이지요. 

당연히 역사는 백성에서 시민들이 늘어가는 쪽으로 흘러왔고, 앞으로도 그렇게 흘러가겠지요. 

그런데 점점 돈의 권력이라는 힘이 세어지고, 시민으로서의 경험이 그리 많지 않거나 단기간에 백성에서 시민으로 바뀐 곳에서는 그 시민 앞에 수식어가 붙게 되는 것이지요. 깨어있는 시민이 되어야 한다거나 행동하는 시민이 되어야 한다거나 말입니다. 물론 불행한 사회이지요. 

이제 “니가 뭔데?”의 크기를 조금 더 넓혀 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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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사람은 법 앞에서 평등하다.”는 생각은 어디에서 왔을까요? 바로 “모든 사람은 신 앞에서 평등하다.”는 생각에서 비롯된 것이지요.  하나님 앞에서는 누구나 다 평등한 모습으로 서 있다는 말입니다. 

“당신의 천국”이라는 제목으로 쓰고 있는 제 이야기 앞에 던져진  “니가 뭔데?”라는 질문에 대한 아주 간단 명료한 답이랍니다. 

“신 앞에서는 누구나 평등하다.”는 이 말을 “성서 앞에서는 누구나 평등하다.”는 말로 대체 하면서 이 물음에 대한 응답은 계속되는 제 이야기 속에서 이어질 것입니다. 

Layman 이라고 합니다. 교회에서 평신도를 일컫는 말입니다. 이 말의 또 다른 뜻은 “이제 막 시작한” , “아주 초보적이어서 잘 모르는”의 의미가 담겨 있답니다. 아마츄어 곧 전문가가 아니라는 뜻도 담겨 있고요. 

성서연구방법론으로 유명한 한스 베버(Hans R Weber)의 말입니다. “종종 성직자들은 자기들만의 교회의 목회를 수행하려고 한다. 또한 평신도들은 그들의 목회를 한 사람 –성직자-에게 맡겨 버린다. 이 한 사람의 독무대(one man show)는 철저히 비성서적이다.”(‘Salty Christians-소금 노릇하는 기독인들’에서) 

교회안에서나, 신심이 돈독하다고 스스로 생각하는 사람들 가운데 이런 말들을 하곤 하는 것을 듣게 됩니다. “말씀을 먹어야 한다.”는 말이지요. 그런데 목회자나 성직자는 말씀을 먹여 주는 사람이고, 평신도는 먹임을 받는 사람이라는 생각에 이르면 아주 잘못된 일이랍니다.

이제 연재되는 제 이야기로 돌아가려합니다. 이스라엘의 국가 건설과 왕조 시대 이야기를 시작하려 합니다. 

혹시 성서를 처음 읽는 사람이나 새롭게 성서를 알려고 다시 읽고자 하시는 분들에게 저 나름대로의 성서 읽기 방법을 소개 드립니다. 그냥 제 경험과  아주 오래 전에 성서 스타디 그룹들을 이끌 때 유용했던 방법이기에 소개 드립니다. 

우선 성서를 처음부터 끝까지 그냥 죽 읽는 것입니다.  그냥 창세기 첫 글자인 “태”에서 계시록 마지막 “멘”까지 죽 읽어 보시라는 말입니다. 이 때 중요한 것은 어떤 역본을 보시느냐는 것입니다. 성서 한글 번역본은 여러가지가 있습니다. 아무런 선입관도 갖지 마시고 자신이 읽게에 편한 번역본이 제일 좋습니다. 그래야 쉽고 빠르게 읽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 현재 살아있는 한글 세대들에게 읽기 적합한 번역본은 공동번역이나  표준 새번역 개정판일 것입니다. 그렇게 성서를 새롭게 읽는 기회가 되시는 분이 한 분이라도 계신다면  그보다 더 바랄 게 없을 뿐만 아니라 제 이 글쓰기에 큰 의미를 둘 수 있겠습니다. 

지금은 제가 그냥 죽 쓰고 올리기 때문에 때때로 뜻이 제대로 통하지 않는 곳들도 있고, 맞춤법에 틀린 말들도 있어 읽기에 좀 불편하실 때도 있습니다. 일단 전체 이야기를 다 마친 후 교정을 보도록 할 것입니다. (현재 생각으로는 백 번 째 이야기 정도에서 마치려 합니다.) 

자! 이제 야훼 하나님께서 자신의 뜻을 한 수 접고 이스라엘 왕을 세우게 되는 이야기로 들어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