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통(嫡統) – 귀환 7

(당신의 천국 – 예순 네 번 째 이야기)

그 해 칠월 이십 일일, 주께서 예언자 하깨를 시켜 말씀을 내리셨다. “스알디엘의 아들 즈루빠벨 유다 총독과 여호사닥의 아들 여호수아 대사제와, 그 밖에 살아 남은 모든 백성에게 일러라. ‘이 성전이 예전에는 얼마나 영광스러웠더냐? 너희 가운데 그것을 본 사람이 더러 남아 있으리라. 그런데, 지금 이 성전은 어떠하냐? 너희의 눈에도 이 따위는 있으나 마나 하지 않으냐? 그러나 즈루빠벨아, 힘을 내어라. 나 야훼의 말이다. 여호사닥의 아들 대사제 여호수아야, 힘을 내어라. 이 땅 모든 백성들아, 힘을 내어라. 그리고 일을 시작하여라. 내가 너희 곁에 있어 주리라. 만군의 야훼가 말한다. – 학개 2 : 1 – 4 

오후 늦게 일인치 정도의 눈이 내릴 것이라던 일기예보는 빗나갔습니다. 오전부터 펑펑 쏟아지던 눈발이 조금 잦아들었지만 밤 늦게까지 약 6인치 이상의 눈이 내린다는 수정 예보가 나왔습니다. 

눈발이 날리기 전에 교회에 갔었는데 돌아오는 길은 눈길이었습니다. 모처럼 사람의 말로 사람 이야기를 하면서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는 말씀에 기쁨을 맛보고 돌아 온 주일이었습니다. 

집 앞 드라이브웨이 눈을 치우고  난 뒤 나무가지에 내려 앉은 눈 사진 몇 장 찍어보았답니다. 잦아들던 눈발이 다시 굵어지고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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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SC01574쌓이는 눈위로 어둠이 내리기 시작합니다.  이제 해오던 이야기를 이어가야겠습니다. 

지금으로부터 2,500여년 전, 팔레스타인 이야기 말입니다. 

먼저 유다인들의 입장에서 당시를 뒤돌아 보려고 합니다. 아니, 보다 정확히 말씀드리자면  바벨론에 살다가 예루살렘 땅으로 돌아 온 유다인들의 입장에서 당시를 바라보자는 것입니다.  바벨론 땅에 포로로 끌려가 70년을 살았던 유다인들이 모두 돌아 온 것은 아니라는것 쯤은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아도 알 수 있겠거니와 당시의 유적들을 통해 확인할 수도 있는 사실이랍니다. 

아무리 주변 상황이 바뀌었더라도 거기(바벨론) 남아 사는 게 훨씬 나았던 사람들이 있었겠지요. 그리고  돌아 온 사람들의 면면을 보면 뚜렷한 특징들을 찾아낼 수 있답니다. 한마디로 단정지어 말씀드리자면 “우리는 야훼 하나님께서  선택한 백성들을 이끌어 나가는 엘리트 집단에 속한 사람들”이라는  외골수 믿음에 충실한 사람들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해야 할 최고의 우선 순위는 자신들의 믿음을 증명하고 유지하고 이어나갈 증표를 만드는 일이었습니다. 파괴된 솔로몬의 성전 재건축이야말로  그들이 자신들의 삶에서  야훼 하나님을 드러내는 사건이었고, 스스로들이 생각하는 민족적 사명이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 앞에 놓인 현실은 달랐습니다. 같은 조상의 자손들이고, 야훼 하나님을 똑같이  말하고는 있었지만 현실적인 삶의 모습들을 보면 자신들과는 다른 생활을 하는 사는 사람들과 함께 해야하는 현실이었습니다. 그들은 단호히 이를 거부합니다. 사마리아인들과 70년 사이 바뀐, 그 땅의 주인들과 함께 하는 것을 거부한 것입니다.

그들의 주장은 단 한가지였습니다. 바로 “너희와 우리는 다르다.”입니다. 고로 “성전 건축은 우리의 일이지 너희의 일이 아니다.”였습니다. 

이제 사마리아인들과 그 땅에서 여호수아(이 여호수아와 예수아로 불리는 귀환 시대 제사장 여호수아와는 다른 인물이라는 점 기억하시고요.)이래 사사시대를 거쳐 다윗과 솔로몬 시대를 이어 그 땅을 지키고 있던 사람들의 입장에서 생각해 봅니다. 70년 동안 세월의 흐름과 변화에 따라 근근히 또는 잘 살면서 그 땅에서 살아 온 사람들입니다. 

어느날 느닷없이 70년 전에 이 땅에서 살았던 사람들과 그 후손들이 돌아와서 옛 전통을 잇는다며 성전을 세운다는 소리에 “그래, 그거 좋은 생각이네, 우리도 함께 하지”라고 손을 내밀었더니 바벨론에서 돌아온 사람들은 매몰차게 내민 손을 내칩니다. 

정상적인 사람들이라면 당연히 뿔 날 일이지요. 더더군다나 땅, 그 가운데 값나가는 땅은 예나 지금이나 한정되어 있는 것이고, 70여년을 누리던 땅도 나누어야 하는 처지에서 본다면 열받는 일이 아니었을까요? 

그런 감정 꾹꾹 숨기고, 같은 핏줄이니까하며 손을 내밀었더니 그 손을 내치다니! 돌이킬수록 분이 난 것이지요. 그래서 그 땅에서 계속 살던 사람들이 택한 방법이 정치, 군사적으로 그 땅의 주인인 페르시아 황제에게 “내 편 좀 들어 달라”는 장계를 올리게 되는 것이지요. 

자!  이런 이야기들을 이어가는 당시의 주인공들, 당시의 영웅들이 바로 페르시아 총독 스룹바벨과 제사장 예수아(여호수아), 예언자 학개와 스가랴이었습니다. 

빠르게 성전터와 토대를 세웠지만 사마리아와 그 땅에 살던 이방인들 및 이방 종교에 물든 이들의 방해 공작 앞에 머뭇거리게 되는 스룹바벨과 예수아 그리고 그들을 향해 “너희야말로 야훼 하나님의 명령을 이행할 영웅이다. 성전 건축에 온 맘과 힘을 다해라.”라는 부추김을 하던 사람들이 학개와 스가랴였습니다. 

이제 당시 그 땅의 정치, 군사적 주인이었던 페르시아 입장이 되어서 그 시대를 돌아보기로 하겠습니다. 

이제까지 보지못한 엄창난 땅을 지배하게된 페르시아왕 고레스는 점령지를 지속적으로 잘 다스리기 위한 정책으로 점령지의 고유한 문화와 종교를 이어가도록 허용합니다. 이러한 정책의 혜택을 받은 족속 가운데 하나가 유다족입니다. 그런데 그 고레스황제가 죽고난 뒤 왕위를 이어받은 아들 캄비세스는 고작  7년 동안 황제위에 있다가 후사(후계자)가 없이 죽음을 맞이합니다. 

기원전 522년에서 기원전 521년 사이 약 일년 동안 페르시아는 극심한  왕위 쟁탈전에 휩싸여 있었습니다. 그 혼란한 권력 다툼의 정세를 뚫고 이겨내 권력을 쟁취한 사람이 바로 다리우스 1세입니다. 

다리우스1세는 왕국의 시조인 고레스의 정책을 이어받는 동시에 지방 변방의 소국들을 이웃한 큰 나라들이 세력을 키우는 것을 막는 방패막이로 사용하는 정책을 편답니다. 

이런 세가지 서로 다른 상황들이 맞물려 제 2 성전의 건축은 터를 세웠다가 잠시 중단되고  결국은 다시 이어져 완공되는 역사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자! 이 당시의 상황을 야훼 하나님을 믿는 신앙으로 고백한 기록들이 바로 에스라, 느헤미야, 학개, 스가랴서 라는 것입니다. 

성전 건축이 완성되면서 새로운 전통이 하나 세워집니다. 바로 대제사장의 적통이 예수시대까지 이어지는 것입니다. 왕이 없는 시대, 총독과 대제사장이라는 이원 체제가 자리잡는 시대로 접어드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시대가 이어지면서 그 땅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그날이 오면”이라는 대망이 깊어지고  있었답니다.

법칙 – 귀환 6

(당신의 천국 – 예순 세 번 째 이야기)

잔뜩 찌푸린 하늘에서 금방이라도 눈이 쏟아질듯한 주일 아침입니다. 미국 전역에 때이른 한파가 몰려왔다는 아침 뉴스가 일요판을 장식하고 있습니다. 워싱톤 타임즈는 눈 구경하기 힘들다는 텍사스등의 남부에 쏟아진 눈소식을 멤피스발로 전하고 있습니다. 

날씨 변화 뿐만 아니라 사람들은 종종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장벽에 부딪히고는 합니다. 이럴 때면 사람들은  그 일을 해결해 줄 어떤 힘을 상상하거나 소망하게 됩니다. 일테면 슈퍼맨이라든지 스파이더맨 같은사람들 말입니다. 이른바 영웅입니다. 

영웅들이 세상을 지배하던 시대가  있었습니다. 오늘날에는 그런 시대가 지났다고들 말합니다. 

그런데 약 백년 전에 이탈리아에 살던 한 사내가 무리지어  움직이는 개미떼를 유심히 관찰하고 있었답니다.  개미들은 자신들이 먹을 양식을 열심히 개미집으로 운반하고 있던 중이었습니다. 당연히 모든 개미들이 열심히 일을 하고 있는 줄 알았는데, 사내가 자세히 들여다보니 단지 20%의 개미들만 열심히 일하고 있었답니다.  일하는 개미떼  20%와 왔다갔다 하면서 놀기만 하는 개미떼 80%로 나누어지더라는 말씀입니다. 사내는 20% 와 80%의 개미떼를 따로 모아서 서로 다른 곳에서 살게하였답니다. 그랬더니 똑같은 현상이 반복되더랍니다. 열심히 일하던 20%들 사이에도, 놀기만 하던 80%들 사이에도,  일하는 20%와 놀기만 하는 80%로 다시 나누어지더라는 말이지요. 

이번엔 벌들이 일하는 모습을 관찰했더니 개미에게 나타난 현상과 똑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더랍니다. 하나 새로운 법칙을 발견한 것입니다. 

이 법칙을 사내의 이름(Vilfredo Pareto)을 따서 파레토의 법칙(Pareto Principle)이라고 부른답니다. 

파레토는 개미와 벌들 뿐만 아니라 사람사는 세상에도 이 법칙이 똑같이 적용된다고 보았답니다. 그리고 20%에 해당하는 그룹에 속한 사람들을 일컬어 엘리트(elite)라고 했답니다. 나아가 그는 역사란 엘리트가 바뀌고 변화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했답니다.  그는 건강한 사회란 엘리트가 제 몫을 잘 해내고 나머지 대중들인 80%가 잘 따라주는 사회라고 이해를 했답니다. 

그럴듯한 내용이지만 신영웅주의라고 할 만한 것이지요.  엘리트그룹에 속한 사람들이 대중 지향적, 곧 전체 그룹인 100%를 생각하며  일한다는 것은 매우 힘들고 드문 일이지요.  뭐 말로써야 할 수는 있겠지만 말입니다. 

longtail

그런데 약 십년 전인 2004년에 영국출신 크리스 앤더슨(Chris Anderson)이란 이가  롱테일(Long Tail)이란 말로써 파레토의 법칙이 통하지 않는 새로운 세상 이야기를 합니다. 

엘리트에 속하는 20%가 아니라 나머지 대중(mass)인 80%의 영향력이 사회의 변화를 주도하는 시대가 되었다는 말이지요. 급격한 기술변화에 따라 바뀐 시대가 만들어 낸 법칙이지요. 이를 롱테일(Long Tail)법칙이라고 하지요. 

인터넷과 디지털 기술의 발달로 인해 생긴 시장과 유통 형식의 변화를 설명하면서 생긴 말이지만 사회구조 변화에도 여전히 적용된다는 것입니다. 

이즈음 한국뉴스에서 많이 볼 수 있는 기사 가운데 하나가 국가기관이 개입한 부정선거 논쟁이지요. 그 핵심이 바로 댓글이라고 말하는 인터넷 여론조작에 국가기관이 주도적으로 개입을 했느냐는 것이지요. 다른 여러가지도 있는 모양이지만 그건 제가 잘 모르는 일이니 접고요. 

엘리트 중심사회로 굳어져 내려왔던 한국 사회체제가 이전에는 전혀 생각해 보지 못했던 일이 한 번 일어난 적이 있었습니다. 바로 노무현 정권의 등장이었습니다. 그가 대통령이 된 원인을 찾으려면 여러 분석들이 가능한 일이지만 그 중 하나가 롱테일법칙이 힘을 발휘했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보는 것이지요. 

그래 엘리트 중심사회로 회귀하려는 집단들이 모든 노력을 기울여 그 동안 해오던 일들이 결집되어 나타난 것이 바로 국정원이라는 기관을 통해 롱테일 법칙이 통하는 사회를 지배하는 일이었다는 것입니다.  

눈 이야기와 날씨 이야기를 하다가보니 여기까지 왔네요. 

무릇 역사란 어떤 독립적인 사건 하나 하나를 이어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전(前)과 후(後)라는 시간의 연속성, 여기 저기라는 공간의 상관성들이 어우러져 일어나는 여러 사건들이 이어져 만들어지는 법이지요. 

그 사건들의 기록이 역사라면 기록을 남기는 사람들의 생각을 사관(史觀)이 되겠습니다. 그 기록을 신, 곧 하나님과의 연관 속에서 바라보면서 남긴 것이 신앙고백이고, 그 신앙고백을 할 수 있도록 인도한 이는 야훼 하나님이시라는 믿음으로 쓰여진 책은 성서가 되겠지요. 

예루살렘 제2성전(제 1성전은 파괴된 솔로몬 성전)의 건축과정과 예루살렘 성의 재건에는  바로 이런 여러 사건들이 어우러져  담겨 있답니다. 

눈발이 날리기 시작합니다. 

2500년전의 이야기는 오후에 잇겠습니다.

복병 – 귀환 5

(당신의 천국 – 예순 두 번 째 이야기)

황제가 내린 회신은 다음과 같았다. “사령관 르훔, 비서 심새는 사마리아를 비롯한 유프라테스 서부지방에 있는 동료 관리들과 함께 평안하기를 빈다.  경들이 보낸 편지 읽는 것을 내가 똑똑히 듣고,   조사를 시켰더니 과연 그 성은 예전부터 반역 음모를 꾸미어 이 황실에 반기를 든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었음이 드러났다.  예루살렘에는 일찌기 강한 왕들이 있어 유프라테스 서부지방을 모두 손안에 넣고 조공과 세금과 관세를 거두어 들이곤 하였다.  그러니 내가 다시 지시를 내릴 때까지 성 쌓는 일을 중지시키도록 하여라.  그리고 부디 명심하여 일을 소홀히 다루지 않도록 하여라. 사태가 악화되어 이 황실에 손실을 끼치는 일은 없어야 한다.” – 에스라 4 : 17 – 22 

내가 마음으로 증오하는 민족이 둘 있는데 세째 번 것은 민족이라 할 수도 없다.  사마리아산에 사는 주민들과 불레셋인들, 그리고 세겜에 사는 어리석은 자들이 그들이다. – 집회서 50 : 25 – 26 

기원전 586년에 예루살렘성과 솔로몬성전이 바벨론에 의해 파괴되고 유다의 마지막왕 시드기야가 처참한 모습으로 바벨론으로 끌려 가면서 유다왕국이 무너졌었지요. 그리고 약 70년 후 바벨론 포로들이 귀환하였지만 나라를 되찾았다거나 왕을 새로 세울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여전히 페르시아의 식민지였습니다. 

페르시아의 식민지를 거쳐 희랍의 식민지로 이어져 기원전 166년 하스몬왕조가 들어서기까지  약 500년이 넘는 동안 유다인들에게는 “왕”이 없었습니다. 

유다의 역사와 유다인들의 신앙을 이해하는데 아주 중요한 부분 가운데 하나입니다.  이 점은 우리들이 만나고 누리는 하나님 나라의 주인공인 예수 그리스도를 바로 만나기 위해서도 중요한 내용입니다. 

여전히 페르시아 지배 아래 식민지였던 예루살렘은  페르시아의 총독이 다스리는 지역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귀환 이후 약 백 년 뒤인 느헤미야 시대까지 총독은 바벨론에 포로로 있던 유다인들 가운데 선정되어 파송된 듯 합니다.(성서의 기록으로 보아서) 

일제 시대 총독이 일본인이었던 것과는 조금 다른 체제였던 것입니다. 일테면 일본에서 교육받고 일본화된 한국인을 총독으로 세우는 정책을 편 것 같습니다. 

그렇게 처음 등장하는 인물이 세스바살이라는 사람인데(에스라 1장) 그리 큰 역할을 한 사람은 아니고요.(이 사람에 대한 여러 설이 있답니다. 그 가운데는 스룹바벨과 동일인물일 것이라는 추정도 있고요. ) 아무튼 그 다음 등장하는 총독인 스룹바벨(즈루빠벨)이라는 인물에 좀 주목할 필요가 있답니다. 

식민지를 관할하는 총독의 임무 가운데 첫째는 본국(지배국)의 이익을 위하고 본국의 명령에 따르는 것이겠지요.  그런데 이 스룹바벨은 한 때 유다인들이 메시아로 생각했을 만큼 카리스마가 있었던 사람이랍니다. 예언자 스가랴 이야기를 하면서 다시 등장하게 될 인물입니다. 스룹바벨은 분명 페르시아가 지명해 내린 사람이었습니다. 

자! 총독이 한 사람있습니다. 지배지의 정치 및 군사를 주로 담당했겠지요. 

그 다음에 유다인들을 유다인이게 한 야훼 하나님을 위한 제사를 관장하는 사제 그룹이 있었지요. 이들의 중심은 이미 바벨론 포로로 끌려 갔던 사람들에게 있었고, 당연히 귀환 이후에도 그들의 몫이었지요. 

그들 가운데 예수아(여호수아)라는 대제사장이 있었습니다. 페르시아 식민지의 종교를 담당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바로 이 두사람이 귀환 이후 예루살렘의 중심에 서 있습니다.  정치, 군사, 종교의 최고 지도자 두 사람이 야훼 하나님께 사로잡힌 것입니다. 

이 두사람이 의기 투합하여 한 일이 바로 예루살렘 솔로몬 성전의 재건이었습니다.  일을 시작하고 성전의 기초를 놓기까지 일사천리로 진행되고 곧 새 성전이 눈 앞에 보이는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이 일을 방해하는 복병을 만나게 됩니다. 그들은 바벨론이 지배하던 시대에 그 땅에 살고 있었던 사람들입니다. 사마리아인들을 비롯한 유다의 동족들과 인근의 이방 민족들이었습니다. 

동족인 사마리아인들과 철천지 원수 사이가 되는  계기인 동시에 유다의 정통과 제사장의 정통이 예수시대까지 이어지게 되는 시대가 바로 이 무렵입니다. 

또한 페르시아의 내부 권력 다툼과 권력을 움켜쥐는 승자가 결정되는 시기이기도 합니다. 

다리우스

그렇게 정통이 세워지고, 권력을 움켜지는 세력이 공고해지기 까지의 수 십년 동안의 혼돈의 시기였고, 불안한 시기였습니다. 마치 세상이 끝날 것 같은 불안함이 사람들을 휘감고 있던 때였던 것입니다. 종말론이 등장하고 새로운 세상에 대한 갈망이 깊어지게 된 것이지요. 

예언자 학개와 스가랴가 일하던 때였습니다. 

그렇게 솔로몬 성전 재건축의 열망이 새로운 세상에 대한 갈망과 합쳐질 즈음  다리우스라는 페르시아 황제가 등장합니다.

고백 – 귀환 4

(당신의 천국 – 예순 한 번 째 이야기)

요압이 백성의 수를 왕께 보고하니 곧 이스라엘에서 칼을 빼는 담대한 자가 팔십만 명이요 유다 사람이 오십만 명이었더라. – 사무엘하 24 : 9 

병적조사한 결과를 다윗에게 보고했다. 칼을 쓸 수 있는 군인이 이스라엘에는 백 십만이 있었고 유다에는 사십 칠만이 있었다.  – 역대상 21 : 5, 공동번역에서 

“하나님이 살아있고, 말씀하시고, 행동하시기 때문에 역사가 일어난다.”, “우리가 성서를 바르게 읽을 때는 거짓된 겸손,주저 , 냉정한 마음으로써가 아니라 믿음 안에서 읽을 때이다.” – 칼 바르트(Karl Barth)의 성서안에 있는 새로운 세상(The Strange New World within the Bible)에서 

어제 이야기를 이어갑니다. 

신명기 역사가들과 역대기 역사가들의 차이를 아주 극명하게 드러내 주는 것은 다윗왕이 시행했던 병적(인구)조사를 시킨 주체에 대한 생각입니다. 

먼저 신명기 역사가의 기록을 보지요.야훼께서 다시 이스라엘에 진노를 내리실 일이 있어 다윗에게 이스라엘과 유다의 병적을 조사할 마음을 품게 하셨다. – 사무엘하 24 : 1 

다음은 역대기 사가의 기록입니다.사탄은 이스라엘을 괴롭히려고 다윗으로 하여금 이스라엘의 병적을 조사할 마음을 품게 하였다. – 역대기상 21 : 1 

야훼 하나님께서 시킨 일이라는 고백과 사탄이 시킨 일이라는 고백 사이에는 하늘과 땅만큼의 차이를 느끼게 합니다. 도대체 왜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일까요? 

또한 인구조사를 하고 난 뒤의 결과도 다르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신명기 사가들은 남, 북 합쳐서 130만 명이라고 했고, 역대기 사가들은 남, 북 합쳐 157만으로 기록하고 있답니다. 

이런 차이에 대해 이미 많은 주석가들과 학자들이 여러 의견들을 내 놓았고, 오늘날 이 순간에도 우리들이 살고 있는 수많은 동네 목사님들이 나름대로의 해석과 설명을 이어가고 있지요. 그 뿐만 아니라 기독교를 개독교라고 비하하는 사람들이나, 신앙의 경전인 성서를 폄훼하려는 사람들이 “이것 봐라! 한 가지 사실 가지고도 전혀 다른 내용이 기록된 것으로 보아 성서는 믿을 수 없는 것이고, 기독교 신앙이란 헛된 것이다.”라는 주장의 도구로도 사용되고는 합니다. 

여기서 잠깐 이야기를 옆길로 돌립니다. 

이즈음 한국 뉴스를 보면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는 것이 “창조경제”라는 말이 있습니다. 솔직히 저는 창조경제라는 게 뭔지 잘 모른답니다. 이따금 설명하는 분들의 글을 읽어보아도 제 머리 속에 떠오르는 것은 “아! 이 친구도 모르고 있구나”하는 생각 뿐이랍니다. 더더군다나 이걸 대통령이 심심치 않게 사용을 하시던데, 이 말을 만든 친구가 누군지 몰라도 참 불경하기가 짝이 없는 인간이라는 생각이랍니다. 이왕 만들고 알려 주려면 제대로 잘 알려주어서 사용하시는 나랏님의 영광이 드러나도록 해야할 일이거늘, 그 말을 쓰실 때마다 사람들로 하여금 “참 딱하네”하는 생각이 들게 해서야 되겠느냐는 말이지요. 

아무튼 그 창조경제라는 소리에 창조과학이라는 말이 생각났다는 것입니다.

창조과학이란 한마디로 성경에 나오는 천지창조부터 모든 이야기들이 과학적으로 증명 가능하거니와 과학은 성경에 기초해야 한다는 주장입니다. 19세기 말에 미국에서 생긴 신흥종교 가운데 근본주의 기독교도들이 만든 제7일 안식교의 교인인 조지 맥크리디 프라이스(George McCready Price)라는 이가 쓴 책(새로운 지질학 The New Geology)에서 비롯되었다는 설이 있답니다. 

제가 여기 미국에서 사반세기 넘게 살아봐서 잘 아는데요, 이 땅에 또라이(乭아이)들 정말 많답니다. 1960대에는 이 창조과학에 빠진 사람들이 꽤 많았고요, 한 때는 창조과학이론으로 학교교육을 시켜야한다는 운동도 있었답니다. 지금은 미국 국립 과학원(United States National Academy of Sciences)이 “창조과학은 과학이 아니다. Creation science is in fact not science.”라고 규정하고 있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름을 바꾸어가며 이 운동에 전념하고 있는 미국인들이 지금도 많답니다. 

그런데 또라이들이 여기만 있겠어요. 혹시라도 “미국서 한다더라…”라는 소리에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한국에서도 자칭 과학자, 목사라는 양반들이 한국창조과학회라는 것을 만들어 뭘 한다나하는 소리도 듣는답니다. 

저는 또라이라고 했지만 그 분들이야 그 분들 나름대로 다 신앙적 결단으로 하는 일일 터이니 그 이들 쪽에서 본다면 제가 또라이거나 사탄이겠지요. 

설혹 그네들 말마따나 지구의 나이가 성경의 역사대로 약 팔 천년 전후이고, 천지창조가 과학적으로 증명된다고 하더라도 세상 사람들이 다 기독교인들이 될까요? 종종 신앙을 과학으로 증명하려는 이들을 보면, 모든 것을 “믿씁니까? 아멘”으로 끝내고마는 단순 복종형 무조건적인 신앙과 서로 맞닿아 있다는 생각을 해본답니다. 

이런 두 부류의 사람들(이른바 근본주의 기독교 신앙인들)을 제가 비난하거나 비판을 하자는 뜻이 아닙니다. 그렇게 믿고 하나님의 뜻대로 우리들이 살고 있는 이 세상, 아니 자신들이 서 있는 자리를 하나님 나라로 만들고, 궁극적으로 그들 자신이 하나님 나라에 간다면 뭐 무슨 문제가 있겠어요. 신앙의 자유가 보장되어 있는 사회인데요. 물론 그것이 보장되지 않는 곳들도 여전히 존재하지만 말입니다. 

그러나 역사를 돌아보거나 오늘날 세상을 돌아보아도 수많은 다툼과 전쟁을 유발하는 요인 가운데 하나가 바로 이런 “무조건적이거나 편협한 근본주의 신앙을 가진 종교집단”이라는 것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제가 이 연재글을 쓰고 있는 이유 가운데 하나이기도 합니다. 바로 성서를 하나님 뜻에 맞게 제대로 읽고 이해하자는 뜻이고, 예수 그리스도가 나의 구원자이자 구세주임을 믿고 고백하는 신앙이 흔들리지 않게 하려는 일이며, 마침내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간다는 믿음을 견고히 하기 위해서 드리는 말씀입니다. 

성서의 이런 서로 다른 고백에 대한 설명은 헤아릴 수 없이 많습니다. 지금부터 말씀드리는 것은 이 글을 쓰고 있는 제 자신의 믿음이요 고백입니다. 그렇게 이해하시고 읽어 주시기 바랍니다. 

성서는 사람들이 사용하는 말로, 사람들이, 사람들 사이에서 일어난 일들과 그 일들을 통해 얻은 사람들의 생각을 기록한 책입니다. 다만 성서가 성서인 까닭은 그 기록에 관여한 사람들과 사용하는 말과 일어난 일들과 그를 통해 얻은 생각들 모두가 야훼 하나님께서 경영하시는 일 안의 일부라는 믿음의 고백을 전재하고 이루어졌기 때문입니다.

성서는 야훼 하나님에 대한 신앙고백을 전제로 하고 쓰여진 책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의 눈으로 읽어야하는 책입니다. 

그렇다면 창조과학을 말하는 사람이나 “무조건 믿씁니다. 아멘”하는 사람과 저같이 고백하는 사람과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고백

바로 기록을 남긴 사람들의 삶의 자리를 제대로 바라보자는 것이고, 그 사람들이 자신들의 삶의 자리에서 들었거나 본 야훼 하나님의 일하심은 어떤 것이었느냐를 찾아보는 일입니다. 나아가 왜 그들은 그 자리에서 그런 야훼 하나님을 고백하게 되었을까? 왜 야훼 하나님은 그 때 그들에게 그렇게 일하고 계셨을까?라는 물음을 통해 성서가 말하는 해답을 찾는 일입니다. 

좀 더 쉽게 말씀드린다면 성서는 사람이 사람들이 사용하는 말로 사람들의 손에 의해 쓰여진 책입니다. 다만 야훼 하나님을 믿는 신앙 안에서 기록된 것이지요. 그 신앙의 기초는 “절대”라는 말은 신앙의 대상인 하나님의 것입니다. 그렇다면 사람은 절대로 “절대”일 수가 없습니다. 

성서에 나타난 서로 다른 기록이란 바로 그 지점에서 나타난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성서는 그 지점에서 나타난 사람들의 한계에도 하나님이 일하고 계시다는 사실을 알려준답니다. 우리들이 그 당시의 사람들의 이야기를 제대로 보기만 한다면 그 사실을 볼 수가 있답니다. 

성서 기록의 다름을 그대로 보면서 다르게 기록한 당시의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여다 보아야 하는 까닭입니다. 

오늘은 이야기가 좀 돌았습니다. 다시 역대기 사가들의 핵심 인물인 에스라와 느헤미야의 성전 재건 및 예루살렘성 개축 이야기를 이어 가겠습니다

차이 – 귀환 3

(당신의 천국 – 예순 번 째 이야기)

야훼께서 다시 이스라엘에 진노를 내리실 일이 있어 다윗에게 이스라엘과 유다의 병적을 조사할 마음을 품게 하셨다. – 사무엘하 24 : 1 

사탄은 이스라엘을 괴롭히려고 다윗으로 하여금 이스라엘의 병적을 조사할 마음을 품게 하였다. – 역대기상  21 : 1 

조선은 나라를 세운지 매우 오래다. 그렇지만 강역이 지나(중국)에 접근함에 따라 항상 그들의 견제를 받았다. 지나인이 혹은 와서 왕이 되었다. 혹은 그 땅을 군현으로 삼았다. 또한 본국인으로 왕이 된 자도 대개 지나에서 봉작을 받았다. 조공을 힘쓰고 사대의 예를 하지 않는 자는 매우 드물다. 이것을 보면 조선은 거의 지나의 속국인 것과 같다. – 일본인 하야시(林泰輔)가 쓴 “조선사(1892)”에서 

조선 땅에 세계 열강들이 눈독을 들이던 1887년 일본의 동경제국대학(東京帝國大學)에 사학과가 개설됩니다. 그곳에서 일본역사를 비롯한 조선역사의 연구가 시작됩니다.  그리고 3년 후인 1890년 이 학과의 교재용으로 국사안(國史眼)이라는 교과서를 만듭니다. 

그 교과서에 담긴 내용들입니다. 

“일본 개국의 시조는 세 아들중 스사노오가 행동을 함부로 하여 出雲으로 쫓아내고 그곳을 다스리게 했는데, 신라 및 常世國과 교통을 했고, 나중 에 한국(가라쿠니)으로 갔다고 한다.  일본에서 天孫이 강림한 곳은 日向 (휴가,  지금의 미야자키)의 高千穗(다카치호)  봉우리다.  日向에 도읍한 神代의 3세대 가운데 葺不合尊은 아들 五瀨命, 稻飯命, 御毛沼命, 磐余彦 尊을 낳았다. 이 중에서 稻飯命은 妣의 나라 海原에 있으며 新良國(시라 키)의 祖가 되었다. 稻飯命이 신라의 왕이 되고나서 왕자 천일창이 나라 를 知古에게 넘겨주고 寶器를 가지고 돌아와서 但馬(다지마, 지금의 효 고)에 거주했다.”

“韓의 대가라국이 신라와 三已汶의 땅을 놓고 다퉈 蘇那曷叱知를 보내 그 땅을 바치고, 鎭將을 요청했다. 朝議에서 鹽乘津彦彦을 파견하여 진수케 했다.” 

“태후가 섭정을 하면서……(중략)……백제를 綏撫하고 신라, 백제를 침 략했다. 荒田別, 鹿我別을 파견하고, 백제 卓淳과 함께 신라를 쳤다. 比 自㶱 등 7국을 평정했다. 應神帝 친정후는 武內宿禰를 보내 筑紫를 지키 게 했다.  筑紫都督府가 여기서 일어났다.……(중략)……신라 백제 등 여 러 나라에 관사를 뒀다. 임나일본부가 이를 총괄하고 도독부가 이를 控 制했다.  고구려 역시 來貢했다.” 

요약하자면 신라의 왕은 일본인이고, 신라와 가락국이 전쟁을 일으키자 일본군이 와서 평정하고 조공을 받기 시작했으며 그 땅에 임나 일본부를 두었고, 신라 백제는 물론이고 고구려도 조공을 바쳤다는 이야기입니다. 

이 교과서 이후로 1892년에 일인 하야시(林泰輔)가 쓴 조선사를 필두로  조선관련 역사서들이 쏟아집니다. 이른바 반도사관(半島史觀), 식민지사관의 출발입니다. 일본은 한국을 침략하기 전에 역사를 보는 눈을 바꾸는 작업을 먼저 시작한 것입니다. 

처음부터 한반도는 일본의 영향아래 있다는 것, 조선인들은 반도적 성격이 뿌리박고 있어서 사대(事大)가 심하고, 역사 발전이 더디어서 일본보다 한 천년은 뒤져 있고, 파당을 지어 싸우기를 즐기는 등 민족성이 저열하기 때문에 일본이 보호하고 도와 주어야 한다는 이론을 만들어 퍼뜨린 것입니다. 이른바 ‘일한동조론'(日韓同祖論),  ‘동조동근론'(同祖同根論)’입니다. 

일본인들을 이러 사관을 지닌 이들을 일컬어 국학파라고 불렀습니다. 

2013년 오늘날까지 한반도 남쪽에 이런 사관에 물든 무리들이 횡행하고 있음은 심히 불행한 일이지요. 

그렇다고 일본의 모든 역사학들이 이런 소리를 내는 것은 아닙니다. 주자학파 또는 신유학파라고 해서 조선이 일본보다 앞선 문화와 전통을 지닌 역사를 지닌 나라라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다만 이들이 소수일 뿐인 것이지요. 

이런 주장들에 대해서 어떤 생각을 하시느냐 또는  ‘그게 다 나하고 뭔 상관이냐!’며 머리 내 저으신다하여도 제가 뭐라고 말씀드릴 처지는 아닙니다. 그냥 그렇다는 것입니다. 

자! 이제 우리들이 가야할 길을 떠나볼까요. 

바벨론 포로기 시절에 포로로 잡혀갔던 유다인들은 “왜 우리들의 처지가 이렇게 되었을까?”라는 물음으로 기록을 남겼고, 그들을 일컬어 신명기 역사가들이라고 한다고 했고, 그들이 쓴 책들이 신명기, 여호수아, 사무엘, 열왕기 등이라고 했습니다. 또한 그들의 주장은 광야에서 야훼 하나님과 히브인들 사이에 맺었던 계약에 충실해야 한다는 것이었고, 계약을 위반한 민족에게 하나님의 심판이 내려지고, 회개하고 돌아가면 용서와 구원이 따른다는 것이었습니다. 

이제 자신들의 고향 땅 예루살렘과 유다로 돌아 온 사람들은 비록 많지 않은 숫자였지만 그들만의 고민이 시작되었습니다. 돌아 온 땅에는 자신들이 생각하고  믿었던 야훼 하나님의 믿음과 자신들만의 민족 전통과는 다른 사람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분명 그들도 자신들과 마찬가지로 예날 이스라엘 12지파의 후손들이었지만 다른 민족이나 다른 나라 사람들과 섞여서 혼혈이 많았고, 종교도 조상들이 지켜왔던 것과는 다른 이방적 의식들이 많이 섞여 있습니다. 

무엇보다 영화롭던 조상들의 성전은 파괴되어 있었고, 거룩한 성 예루살렘은 성벽조차 제대로 된 곳이 없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아비들이 했던 물음을 다시 꺼집어냈습니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우리는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나? 우리의 미래는 어떤 것일까?’라는 물음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얻은 해답을 기록으로 남깁니다. 바로 역대기와 에스라, 느헤미야서 입니다. 

그들은 기본적으로 신명기 사관에 동의를 합니다. 다만 야훼 하나님과의 약속을 이루어 나가는 주체를 자기들 나름으로 명확하게 규정을 한 것입니다. 바로 성전 중심의 공동체입니다. 

예루살렘모형

그리고 그 성전 중심 공동체의 핵은 다윗과 솔로몬이었습니다. 다윗은 예루살렘성이었고 솔로몬은 성전이었습니다. 

역대기 상  1장이 족보로 시작하는 까닭입니다. 이 족보는 태초의 아담으로 시작하여 아브라함 야곱을 거쳐 유다지파를 통해 다윗에서 정점을 찍습니다. 솔로몬에 이어 남왕국 유다의 역사로 이어집니다. 북왕국 이스라엘은 아예 역사에서 제외를 시켜버립니다. 

그들에겐 예루살렘과 성전만이 야훼 하나님의 전통을 잇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신명기 역사가들도 북왕국 이스라엘에 결코 우호적이지는 않았지만 그들 역시 한민족, 한 계약 백성으로 이해한 반면 역대기 역사가들은 아예 거들떠 보지를 않은 것입니다. 

또한 신명기 역사가들은 왕들이 행실이 야훼 하나님이 보시기에 어떠했는지를 평가의 잣대로 삼은 반면에 역대기 사가들은 왕들이 성전을 위해 무엇을 했느냐는 잣대를 사용했습니다. 

그들의 눈 앞에 절실했던 것은 바로 성전 재건과 예루살렘 도성의 새로운 영화였기 때문입니다. 

이 두 역사가 그룹의 사관을 극명하게 드러나는 것은 바로 다윗과 솔로몬에 대한 기록에서 나타납니다. 몇 가지 예를 들어 보기로 하지요. 

첫째 나단 선지자가 다윗을 위해 받은 야훼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장면입니다. 

먼저 신명기 사가가 쓴 장면입니다. 

내가 친히 그의 아비가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되리라. 만일 그가 죄를 지으면 나는 사람이 제 자식을 매와 채찍으로 징계하듯 치리라. 그러나, 내가 일찌기 사울에게서 내 사랑을 거두었지만 그에게서도 그처럼 내 사랑을 거두지는 않으리라.  네 왕조, 네 나라는 내 앞에서 길이 뻗어 나갈 것이며 네 왕위는 영원히 흔들리지 아니하리라. – 사무엘하  7 : 14 – 16 

다음은 역대기 사가의 기록입니다. 

나는 친히 그의 아비가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되리라. 네 선임자에게서는 내 사랑을 거두었지만, 네 후계자에게서는 그렇게 사랑을 거두지 않을 것이다. 내가 세워 준 이 왕조, 내가 세워 준 이 나라를 다스릴 직책을 그에게 맡겨 끊어지지 않게 하리라. 그의 왕위는 길이 흔들리지 아니하리라. 나단은 환상 가운데서 받은 이 모든 말씀을 다윗에게 전하였다 . – 역대기상 17 : 13 – 14 

어떤 차이가 있지요?  다윗과 자식들에 대하여도 징계하신다는 내용이 한 쪽엔(역대기 기록) 쏙 빠진 것이지요. 

또 하나 볼까요. 

신명기 사가의 기록입니다. 

또 다윗은 모압을 쳐서 이기고 그 사람들을 땅에 엎드리게 한 다음 줄로 재어 두 줄 길이 안에 든 사람들은 죽이고, 한 줄 길이 안에 든 사람들은 살려 두게 하였다. 이리하여 모압은 다윗에게 조공을 바치는 속국이 되었다.  – 사무엘하 8 : 2 

똑같은 장면을 전하는 역대기 사가의 기록입니다. 

그는 또 모압을 쳐서 속국으로 삼고 조공을 받았다.  – 역대기상 18 :2 

여기에서는 어떤 차이가 있나요? 자칫 잔인해 보일 수 있는 다윗의 모습을 쏙 빼버린 것이지요. 

(아이고 너무 늦어서 내일 또….)

시대정신 – 귀환 2

(당신의 천국 – 쉰 아홉 번 째 이야기)

사로잡혔던 자들의 자손이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성전을 건축한다 함을 유다와 베냐민의 대적이 듣고 스룹바벨과 족장들에게 나아와 이르되 우리도 너희와 함께 건축하게 하라 우리도 너희 같이 너희 하나님을 찾노라 앗수르 왕 에살핫돈이 우리를 이리로 오게 한 날부터 우리가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노라 하니 스룹바벨과 예수아와 기타 이스라엘 족장들이 이르되 우리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하는 데 너희는 우리와 상관이 없느니라 바사 왕 고레스가 우리에게 명령하신 대로 우리가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위하여 홀로 건축하리라 하였더니 이로부터 그 땅 백성이 유다 백성의 손을 약하게 하여 그 건축을 방해하되… 에스라 4 : 1 – 4 

설운도의 잃어버린 30년을 들으며 여의도 광장을 헤매던 때가 1983년의 일입니다. 당시 저와 아내는 평안도 정주 땅에서 내려 온 이들 가운데 장모의 기억 속에 있는 이름이나 사진이 혹시 있을까하고 수많은 사람들이 들고 다니는 손피켓과 벽보에 나붙은 이름들을 훑고 다녔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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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로부터 또 다른 30년이 흘렀지만 제 장모님은 아직도 북에 남아 있었던 혈육의 소식은 듣지 못하고 있답니다. 당시 20대 중반쯤이었을 청년가수 설운도씨도 이미 50대 중반을 넘겼을 것입니다. 

한국전쟁이 끝난지 60년이 되는 올해도 그렇게 저물어갑니다. 북진통일에서 평화통일로 평화공존에서 이즈음은 이대로 이렇게 나누어진 채로 죽 살자는 축들도 제법 많다는 이야기들도 들립니다. 

어찌어찌 설혹 통일이 된다고 하여도 해결해야만 하는 어려운 문제들이 이만 저만이 아닐 것입니다. 이념, 언어, 경제체제 및 구조, 종교 등등 하나가 되기에는 고착되어진 다름의 크기가 너무 크기 때문입니다. 

아마 땅의 소유권에 대한 문제도 그 중 하나가 될 것입니다. 

또한 통일이 된다고 하여도 미, 중 ,일, 러 등 주변 강대국들과의 관계정립에 대한 문제도 여전히 숙제로 남을 것입니다. 

그러나 제 아무리 산적한 문제들을 해결하고 넘어 가야만하는 어려움들이 있더라도 한반도의 통일은 한민족의 소망이어야 하고, 통일 이전 시대를 살아가는 한민족의 시대정신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지금으로부터 약 2500여년 전에 팔레스타인 예루살렘성을 중심으로 한 유다 땅에서 일어난 사건들은 바로 우리들이 염려하는 통일 이후의 문제점들을 고스란이 안고 있었습니다. 

바벨론을 멸망시킨 페르시아의 시조인 고레스왕은 이전의 제국들인 바벨론과 아시리아와는 아주 다른 점령지 정책을 펴나갔습니다. 바벨론과 아시리아는 점령지의 모든 지역을 제국화시키는(하나의 권력 아래 온 땅이 똑같이 지배되는) 정책을 폈던 반면에 고레스는 점령지의 피지배 민족이나 국가들이 그들의 고유한 문화적 종교적 생활과 전통을 보장해서 이어나갈 수 있도록하는 정책을 폈습니다. 

제국이 성립된 초기라는 점도 있었겠지만 페르시아제국은 이전의 바벨론이나 아시리아 제국보다 그 땅이 거의 두 배나 되는 거대한 제국이었기 때문입니다. 

고레스왕의 명령에 따라 포로지 바벨론을 떠난 세스바살, 스룹바벨, 여호수아 등의 일행들이 예루살렘에 도착한 시기는 기원전 529-520년 사이입니다. 이 무렵 말기, 그러니까 기원전 520여년 경에 활동했던 예언자들이 학개와 스가랴입니다. 

에스라와 느헤미야서를 기록한 에스라와 느헤미야가 예루살렘에 돌아 온 것은 기원전 445 -433년 무렵의 일입니다. 처음 바벨론 포로 출신 유다인들이 예루살렘으로 돌아온지 약 60 – 70년이 흐른 뒤의 일인 것이지요. 

(에스라, 느헤미야, 학개 – 모두 합쳐보아야 25장 정도되는 짧은 글입니다. 역사 이야기라 읽기도 쉽습니다. 아무 선입관 두지 마시고 그냥 죽 읽어 보시기를 권합니다.) 

전체 10장으로 이루어진 에스라서에서 에스라가 예루살렘으로 돌아 온 이야기는 7장에서야 나옵니다. 그러니까 그 전에 기록된 이야기들은 (1-6장) 지나간  6,70년을 돌아보면서 기록한 것이지요. 

다시 오늘날 대한민국으로 돌아와 볼까요? 이즈음 역사 이야기들 많이 하지요?  일본 식민지 때 이야기, 해방 후의 이야기, 이승만, 박정희 이야기 등등 말입니다. 길어야  70년이고  짧게는 사십년도 지나지 않은 저 쪽 이야기인데요, 오늘날에는 수많은 기록과 사진, 영상 등등의 자료들이 남아있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똑같이 있었던 지난 사실에 대해 전혀 다른 이야기와 주장들이 넘쳐 나지요. 도대체 누가 정말 옳은 말을 하는지 가늠하기 어려울 때도 있지요. 

자! 다시 2500여년 전 팔레스타인으로 가 볼까요. 

기록이라고 해 보았자 별거 없던 시절이고 거의가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이야기에 의존하여 옛 일에 대해 알 수 있었던 시절이랍니다.  이런 조건에서 일어난 어떤 사실에 대한 이야기가 후세 사람들이 “이것이야말로 그 시대의 진실”이었다고 믿게 하는 방법은 무엇이었을까요? 

바로 기록을 남기는 일이었답니다. 

우리들이 지난 이야기에서 사관(史觀)을 알아 본 적이 있습니다. 역사를 바라보는 눈, 또는 역사를 기록하는 시각을 말한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신명기 사관에 대해 이야기를 했었습니다. 

에스라는 신명기 사관과는 다른 눈으로 역사를 보고 기록했답니다. 에스라와 같은 시각을 가진 기록자들을 일컬어 역대기 사가(史家)라고 하고, 그들의 사관을 일컬어 역대기 사관이라고 부릅니다. 

이 역대기 사가들에 의해 기록된 책들이 역대기 상 하와 에스라 느헤미야서입니다.

우선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온 유다인들과 그들이 도착한 당시 예루살렘과 유다땅에 살았던 사람들에 대해 생각해 보기로 하지요. 

바벨론 포로였던 계층은 왕국이 멸망하기 전에 유다의 상층부에 속한 사람들과 성전에 속해 있던 사람들이 주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에스라는 대를 이어 온 사제 집안의 전통을 이어받은 모세의 법에 통달한 사람이었습니다.(에스라 7 :  1-  5) 

바베론에서 돌아온 사람들의 대표성를 드라내는 사람이 바로 에스라입니다.에스라서  2장에 나오는 첫 귀환자들의 명단과 숫자를 보면 42,360명이라는 숫자가 나옵니다.(에스라 6 : 64) 당시의 전통으로 미루어 성인남자들의 수로만 생각하여도 사람의 수는 많지만 당시 유다 전체의 인구에 비해서는 그리 크지 않은 숫자랍니다. 

그들이 돌아오기 전에 예루살렘과 유다 땅에서 살고 있던 사람들이 더욱 많았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유다인들과 옛북왕국 이스라엘인들, 그리고 주변의 작은 왕국이나 나라 출신들이 살고 있었던 것입니다. 70여년 전 유다 왕국이 망하고 바벨론으로 끌려 갔던 사람들의 땅은 오래 전 토지개혁으로 그 땅에 남아 있는 사람들의 소유가 되었고 그들이 경작을 하던 때였습니다. 

아마 돌아 온 이들 가운데는 그 땅의 옛주인들의 자손들도 있었을 것입니다. 우선 땅의 소유권 문제가 드러났을 것입니다. 

그러나 구약성서 전체 이야기의 흐름으로 보아서 땅의 소유권 문제보다 더욱 큰 문제는 전통을 잇는 정신의 문제가 이 시대에는 우선했습니다. 

탈애굽이후 가나안 정복, 사사시대, 다윗 솔로몬 시대를 거쳐, 남북 왕국이 멸망하기 까지는 땅의 소유가 구원의 문제로 직결되는 것이었습니다만 이 때에 이르러서는 정신적 전통을 이어가는 것이 구원의 소중한 가치로 여겨지는 시대가 된 것입니다. 

그 중심이 예루살렘이었고, 솔로몬의 성전이었습니다. 역대기 사가들이 바라 본 유다의 역사입니다.  그들의 생각을 좀 더 알아보기로 하겠습니다.

전제(前提) – 귀환 1

(당신의 천국 – 쉰 여덟 번 째 이야기) 

바사 왕 고레스 원년에 여호와께서 예레미야의 입을 통하여 하신 말씀을 이루게 하시려고 바사 왕 고레스의 마음을 감동시키시매 그가 온 나라에 공포도 하고 조서도 내려 이르되  바사 왕 고레스는 말하노니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세상 모든 나라를 내게 주셨고 나에게 명령하사 유다 예루살렘에 성전을 건축하라 하셨나니  – 에스라 1 : 1 – 2, 공동번역 

하나님께서 고레스의 마음을 움직이셔서 아시아 전 지역에 이같은 방을 붙이도록 만드셨다. “고레스 왕이 이같이 선포하노라. 전능하신 하나님이 나를 인간 세계의 왕으로 삼으셨는데, 나는 그 하나님이 바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섬기는 하나님인 줄 믿고 있노라. 그 하나님이 선지자를 통해서 내 이름을 예언하신 것을 볼 때 이는 매우 분명하다. 따라서 나는 유대 땅 예루살렘에 하나님을 위해 집을 지어 드리고 싶노라.” – 요세푸스의 유대 고대사 11권 1장에서 

서기 1636년  12월 중순의 일이었습니다. 오늘이 12월2일이니 지금으로부터 얼추 만 377년 전의 일입니다. 청나라 장수 용골대가 이끄는 부대가 압록강을 건너 한양을 향해 밀려오자 조선왕 인조가 남한산성으로 피신을 하던 때입니다. 그리고 한 달 보름이 지난 이듬해인 1637년 1월 30일 항복을 주도한 이른바 주화파들의 주장에 따라 인조는 남한산성을 나와 삼전도(지금의 서울 잠실 석촌호수 부근)로 향합니다. 

도19

그 곳에서 기다리고 있던 청 태종 앞에서 조선왕 인조는 ‘삼배구고두'(三拜九叩頭 : 큰 절 세 번을 하고 아홉번 머리를 조아리는 것)라는 항복의식을 행합니다.  야사(野史)는 이 날 인조의 이마에 피가 홍건히 고였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역사는 이를 일컬어 삼전도의 치욕이라고 합니다. 

이 항복 이후 조선인으로 청나라에 끌려간 사람들의 수는 대략 17만 명이 웃돈다고 합니다.  사실 이런 역사가 한반도에서 처음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고구려와 백제가 망한 뒤 당나라에, 고려 시절에는 몽고족의 원나라에, 아주 후대에 이르러는 일본에 많은 이들이 끌려 간 역사가 있답니다. 

아무튼  삼전도의 치욕 이후 10년이 지나서 끌려 갔던 이들 가운데 약  5만 명이 고향 땅 조선으로 돌아옵니다.  그 가운데 약 2만여명이 일년 안에 스스로 목숨을 끊고 맙니다. 왜냐고요?  돌아 온 이들  대부분이  여성들이었는데 그들을 향해 조선 땅에 남아 있던 고향사람들이 붙여 준 별명 때문이었답니다. 바로 “환향녀(還鄕女)” 곧  “화냥년”이라는 별명 때문이었지요. 끌려가 몸을 더럽힌 여자라는 손가락질 때문이었다는 것입니다. 

심지어 돌아 온 부인들을 버리는 이혼이 잇달자 조정에서는 이혼이 옳다 그르다 싸움으로 해가 뜨고 저무는 일까지 벌어진답니다. 

아무튼 자살하는 여인들이 잇다르자 왕이 명을 내립니다. 회절강(回節江) 에 가서 목욕을 하는 모든 여인들은 깨끗한 것으로 간주한다는 명이랍니다. 한양과 경기도 출신은  한강에서, 강원도는 소양강에서, 경상도는 낙동강에서, 충청도는 금강에서, 전라도는 영산강에서, 황해도는 예성강에서, 평안도는 대동강에서 목욕을 하면 절개를 지킨 것으로 간주한다는 것이었답니다. 

혹시 이런 사실들이 진짜일까? 너무 슬픈 이야기다!라는 생각이 드십니까? 

정말 슬픈 것은 그런 역사를  잊고 사는 것이 슬픈 일이랍니다. 

이제부터 이야기하려는 유다민족들의 바벨론 포로 후기의 이야기들을 잇기 전에 나와 같은 말을 썻던(물론 오늘날과 같은 말은 아니더라도), 내 조상들의 이야기 또는 나는 모르지만 내 안의 습관이나 전통이 되어 흐르고 있는 선조들의 경험을 한번쯤 생각해 보자는 뜻으로 들추어 본 우리들 조상들이 살아온 삶의 한 조각이었답니다. 

신바벨론이 중동 지방을 경영하던 시대는 짧았습니다. 바벨론 영향아래 있던 메대의 한 부족왕이었던 고레스가 메대의 전 지역과 파사(바사, 페르시아) 지역을 통합시킨 때는 기원전 549년이었습니다. 그로부터 십년 뒤 고레스는 바벨론을 무너뜨리고 중동의 새로운 강자로 등극합니다. 바로 페르시아 제국이 탄생한 것입니다. 그 거대한 제국은 약 200년 뒤인 기원전 333년에 희랍의 알랙산더 대제에게 무릎을 꿇기까지 그 지역의 주인이 됩니다. 

그리고 팔레스타인 곧 가나안 땅은 페르시아, 그리스, 시리아 등을 거쳐 로마의 식민지 역사를 이어갑니다. 기원전 140년에서 기원전 63년까지 약 80년 동안 유대 민족의 왕국이었던 하스몬 왕조 시대를 빼고는 그런 역사로 이어져 내려오다 세례요한의 소리가 들리고 예수의 하나님 나라 선포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조금 지루하지만 우리들이가고 있는 하나님 나라를 향한 길이 제대로 된 여정이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역사 이야기랍니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가  “회개하라!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라고  선포했을 때, 선포한 예수 그리스도나 그 선포를 들은 갈릴리 사람들이나, 후에 선포된 예수 그리스도를 전파했던 바울이나 모두가 이런 역사적 경험과 전통을 이어받은 유대인들이었기 때문입니다. 

일테면 “떡을 나누다”라는 말과 “빵을 나누다”라는 말과 “밥을 나누다”라는 말을 이해하는 한국인들의 느낌은 다르답니다. 그 느낌의 다름을 잘 알기 위해서는 한국인들이 살아오면서 겪는 이야기들을 알아야만 하는 것이지요. 

유다인들이 바벨론 포로기를 끝내고 예루살렘 땅으로 돌아오던 무렵부터의 이야기를 기록한 책들은 역대기 상하 뒤에 나오는 에스라, 느헤미야서입니다. 

에스라, 느헤미야의 이야기를 읽기 전에 먼저 우리들이 들여다 보아야 하는 그 당시의 상황들이 있습니다. 어떤 상황에서 이런 성서의 기록들이 쓰여졌고, 거기에 담긴 신앙적 고백들은 어떤 것들이 있고, 그 고백들은 우리들이 하나님 나라를 찾아가는데 어떤 해답을 주고 있는지를 제대로 알기 위해서입니다. 

자!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갔던 유다인들은 극히 일부의 사람들이었고, 유다왕국이 망할 당시 그 사회의 상층부를 구성하고 있었던 사람들이었다는 것은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유다 땅에 남아 있었던 사람들이 있었고 이집트나 인근의 다른 나라로 피난 곧 이민 또는 이산되어 간 유다인들이 있었습니다. 

여호야김이 바벨론에 끄려가던 기원전 598년부터 첫 귀환이 있던 기원전 538년까지 일흔 해가 지났습니다. 지금처럼 수명이 길지 않았던 시절의 70년이면 전혀 다른 세대들이 주인공이 된 세상입니다. 

유대 땅에 남아 있었던 사람들이나 바벨론 포로였던 사람들이나 이집트 등 주변 다른 국가로 이주했던 사람들에게나 완전히 다른 세상이 된 시간이 흐른 뒤에 일어난 사건이라는 점을 생각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엄밀한 뜻으로 보면 포로 귀환시대라는 말은 바벨론 포로였던 사람들에게만 적용되는 말이라는 것입니다. 

유다 땅에서 그대로 살았던 사람들 입장 다르고, 바벨론에서 돌아 온 사람들 입장 다르고, 이집트 등 다른 나라 땅에서 여전히 살아가는 사람들 입장 다르고요. 그런데 그들 모두가 유다인들이었다는 것이지요. 

당연히 처한 입장에 따라 생각들이 달랐겠지요. 

이런 분위기를 전제하고 이제 에스라 이야기로 넘어가 보지요.

비밀 – 포로기 7

(당신의 천국 – 쉰 일곱 번 째 편지) 

“너 다니엘아, 이 말씀을 비밀에 붙여 마지막 그 때가 오기까지 이 책을 봉해 두어라. 많은 사람들이 읽고 깨쳐 잘 알게 되는 날이 올 것이다. 그러나 갈팡질팡하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 중략 –  “언제쯤 마지막 때가 와서 이런 놀라운 일이 일어날 것입니까?”  – 중략 –  “한 때, 두 때 하고 반 때가 지나 거룩한 백성의 군대를 부순 자가 죽으면 모든 일이 끝날 것이다.”  이 말을 듣고 나는 무슨 말인지 몰라서 그 일이 어떻게 끝날 것이냐고 물었다.  그가 대답했다. “다니엘아, 물러가라. 이 말씀은 마지막 때가 오기까지 봉한 채 비밀에 붙여질 것이다.  – 중략  – 정기제사가 폐지되고 파괴자의 우상이 선 다음 일천 이백 구십 일이 지나야 끝이 온다.   일천 삼백 삼십 오 일을 기다리며 버티는 사람은 복된 사람이다.   그러니 그만 가서 쉬어라. 세상 끝날에 너는 일어나 한 몫을 차지하게 될 것이다.” – 다니엘 12 : 4 -13 

먼저 다니엘서 마지막(?)장인 12장의 성서 구절을 소개 드렸습니다. 하나님 나라를 찾아가는 길이 그리 쉽지마는 아닌 여정이랍니다. 

기껏 이야기를 다 해 놓고서 “이건 절대 비밀이니, 마지막 때까지 너만 알고 있어라.”, 이게 어디 쉬운 일이겠습니까? 입이 근질거려서 말입니다. 게다가 “그 마지막 때”가  언제인지도  모르는데 말입니다. “그 때가 언제냐?”는 물음에 돌아 온 대답은 그저 황당하기만 할 뿐입니다. “한 때, 두 때 하고 반 때가 지나 거룩한 백성의 군대를 부순 자가 죽으면 모든 일이 끝날 것이다.” 

당신이라면 이게 무슨 소리인지 쉽게 알아들을 수 있으시겠는지요? 그래 다시 그 때가 언제냐고 다그쳐 묻자 돌아 온 답이지요. “정기제사가 폐지되고 파괴자의 우상이 선 다음 일천 이백 구십 일이 지나야 끝이 온다.” 

다니엘 이야기는 이렇게 헷갈리는 이야기입니다. 

우선 성서에 놓여있는 위치도 애매하답니다. 지금 우리들이 읽고 있는 성서에는 에스겔서 호세아서 사이에 놓여 있어 예언서 가운데 하나로 놓여 있는데 반해 히브리 성서에는 에스더와 욥기 사이에 있어 욥기, 잠언, 전도서, 시편 등과 함께 성문서에 속해 있답니다. 

그 뿐이 아니랍니다. 우리들이 사용하는 성서에는 12장으로 되어 있는데 반해 헬라 성서에는 14장으로 되어 있답니다. 공동번역에는 외경에 다니엘 제 2경전으로 기록되어 있고요. 

이 책을 쓴 사람과 그 시대에 대해서도 서로 다른 많은 이야기들이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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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저런 이야기들이 많고, 다니엘이라는 인물이 실존한 사람이냐 아니냐하는 이야기들도 있지만 다니엘서는 우리들이 하나님 나라를 찾아가는 길에 반드시 있어야 하는 중요한 책 가운데 하나입니다. 

다니엘서는 크게 두 개의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전반부 1장에서 6장까지는 유다왕조의 여호아김왕과 함께 바벨론으로 끌려가는 포로 다니엘이 바벨론 왕궁에서 겪는 이야기에서부터 바벨론이 망하고 바사(페르시아)왕 고레스 시절 까지의 역사적 이야기로 되어 있습니다. 

유다인들의 바벨론 유다 포로 시대와 바벨론 포로 생활을 마치고 가나안 땅으로 귀환하던 무렵까지에 걸친 이야기입니다. 

후반부 7장에서 12장까지는 다니엘이 본 환상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세상의 마지막  곧 종말을 예견하는 묵시록입니다. 신약에서 요한계시록에 대비되는 구약의 유일한 묵시록입니다. 

묵시록 또는 묵시문학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는 신구약 중간시대 이야기를 할 때 그리고 요한계시록을 이야기 할 때 풀기로 하고 여기서는 대충 넘어가겠습니다. 이야기가 너무 길어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다만 묵시문학이 널리 퍼졌던 시절에 대해서만 잠시 짚고 넘어가도록 하겠습니다. 성서에는 몇가지 단편적인 묵시문학적 이야기들이 있답니다. 창세기 에녹에 대한 이야기에서부터 이사야, 스가랴 등에 나오는 것들이지요. 그러나 한 권의 책으로 담아 이야기가 쓰여진 곳은 구약의 다니엘과 신약의 요한계시록 두 권이 있습니다. 

성서에는 두 권 뿐이지만  오늘날까지 알려지거나 남아있는 묵시문학 책들은 에녹서, 바룩서, 천문서, 희년서 등등 여러 책들이 있답니다. 그리고 이런 책들이 기록된 때는 대략 기원전 250년 부터 기원후 150년 사이에 집중되어 있답니다. 

세상 마지막 때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이 깊었던 시대였음을 알 수 있는 것이지요. 묵시문학 또는 묵시문학에 대한 이야기는 아주 조심스럽기도 하거니와 매우 중요한 부분이기도 하므로  따로 떼어 이야기하기로 하겠습니다. 

“비밀로 하라! 너만 알라!”, “그 때는 모년 모월 모일인데 그 모는 아무도 모른다.”라는 명령 사이에서 사기치고 도적질한 수많은 인간들의 기록들이 있거니와 오늘도 여전히 차고 넘쳐 난답니다. 

자! 오늘은 다니엘서의 전반부만 이야기 하도록 하겠습니다. 수많은 설(說)들에도 불구하고 다니엘서가 쓰여진 때는 기원전 165년 전후, 유다 땅이 그리스 곧 헬라의 영향 아래 있을 때 쓰여진 것이라는 설이 대세입니다. 

이 때는 유다의 전통과 신앙이 그리스의 영향을 받아 크게 흔들릴 때였고, 당시 유다를 지배하고 있었던 헬라의 안티오커스 에피파네스(주전 175-163년)는 철저히 유다의 전통과 야훼신앙을 짓밟고 엄청난 유다인들을 학살하던 시대였습니다. 

(이 부분에 대한 상세한 이야기는 중간사 시대에서 이야기합니다.) 

견딜 수 없는 험한 세상에서 옛날 바벨론 포로시절(약 사백 년 전)에 모든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야훼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버리지 않고 굿굿히 지켜 나갔던 다니엘과 함께 하셨던 야훼에 대한 기억들을 남긴 책이 바로 다니엘서 전반부입니다. 

이제 바벨론의 멸망과 바사(페르시아)의 등장, 그리고 포로들의 귀환 이야기로 이어집니다.

 

복기 – 포로기 6

(당신의 천국 – 쉰 여섯 번 째 이야기) 

과거의 역사를 복기하며 미래의 가능성을 전망한다. – Nouriel Roubini (세계 금융위기를 정확히 예측했던 뉴욕대 교수)  

‘너희의 하느님 야훼께서 앞장서서 친히 싸워 주실 것이다. 에집트에서 너희에게 해 주신 일을 목격하지 않았느냐? 이번에도 몸소 그대로 해 주시리라.  광야에서도 그렇게 해 주시지 않았느냐? 너희가 바로 이 자리에 이르기까지의 길에서도 야훼 너희 하느님께서는 마치 사람이 제 아이를 업듯이 너희를 업어다 주시지 않았느냐?  그렇게까지 해 주셨는데도 너희는 너희 하느님 야훼를 믿지 않았다. – 신명기 1 : 30 -32 

바벨론 포로 시절에 일했던 신명기 역사학자들의 정신은 신명기에 담겨져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책의 제목을 보면 대략 그 책의 내용을 짐작할 수가 있습니다. 성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창세기(創世記) 는 천지창조 이야기, 출애굽기(出埃及記)는 애굽 탈출 이야기, 레위기는 제사법전, 민수기(民數記)는 인구조사 이야기라는 가늠이 가능합니다. 

한국어 성서는 초기에 중국어 번역본을 재번역해서 이루어진 것들이지요. 그래 제목들도 중국어(한자어) 성격과 일치하는 것이 많답니다. 모세 5경 중에 중국어 번역본과 한글 번역본의 제목이 다른 것은 레위기 하나 뿐입니다. 중국어는  利未記라고 한답니다. 영어 번역본 제목이Leviticus인데 이걸 중국어 발음과 가깝게는利未이 되고 우리말로는 레위가 된 것이지요. 

그러면 신명기(申命記)는 무슨 뜻일까요? 영어 번역본은Deuteronomy   라고 되어 있지요. 영어 제목의 뜻은deutero- 가 “두번 째” 또는 “다시(再)”라는 뜻이 있고 –nomy는 어떤 학문을 말할 때 붙이지요. 그러니까 다시 쓴 이야기 정도의 뜻이 있겠지요. 

이걸 한자어로는 申은 보통 ‘납 신’이라고 해서 나비 곧 원숭이를 뜻하는데요, 그 이외에도 ‘알리다, 펴다 (신고 申告, 신문고 申聞鼓 등)’라는 뜻이 있답니다. 命은 명령이고요. 그러니까 하나님의 명령을 알리는 책이라는 뜻인데, 때로는 申의 의미에는 重 곧 다시라는 뜻도 포함되어 있다고 합니다. 신명기(申命記)라는 책의 정확한 의미는 “하나님의 명령을 다시 알리는 책”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실제 그리스어 성경본의 제목(deuteronomion)  역시 “다시쓰는 법전a copy of this law 또는 두번 째 법전this second law” 이라는 뜻이 있으니 신명기라는 제목은 알맞은 번역이라고 하겠습니다. 

바벨론 포로들은 대부분 유다의 전통과 관습에 통달한 계층이었습니다. 에스겔이 제사장 출신이었다거나 이제 우리들이 이야기하게 될 다니엘 등의 출신을 보면 잘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이들에게는 조상 대대로 입으로 전해져 오던 이야기들(구전)과 수많은 단편적 기록(원 신명기라고부르기도 한답니다.)들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들의 전통과 신앙에 따르면 야훼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자신들 곧 유다민족의 나라가 망했다는 사실을 받아 들이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서 자손 만대까지, 세상 끝날 까지 번성과 영화를 누리며 살게 해 주겠다고 약속했던 조상들의 신 야훼 하나님을 이해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이제 그들이 선택할 수 있었던 길들은 야훼 하나님을 버리고 바벨론인들로 살아가는 방법과 야훼 하나님께 매달려 미래의 세상을 바꾸는 일에 매달리는 방법이 있었습니다. 

실제 오늘날까지 전해오는 이 시절의 바벨론 기록에 따르면 재빨리 바벨론 사람이 되어서 큰 돈을 번 유대인들의 이야기들이 남아 있답니다. 

“지난 세기에 발견된 상업용의 고대 문헌을 기록한 토판문서에는 수많은 히브리인들의 이름이 나온다. – 중략  – 히브리인들은 바벨론의 모든 환경에 적응하여 언어까지도 받아 들었다.” , “그러나 이방세계와 민족적 사회적으로 혼합되는 길을 그들의 독특한 종교적인 특성이 막아주었다.”  – 군네벡(Gunneweg)이 쓴 이스라엘 역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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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 가운데 신명기 역사가들이 택한 방법은 유다민족이 걸어 온 지난 일들을 되돌아 복기해 보는 일이었습니다. “왜 우리들이 여기까지 오게 되었는가?”, “왜 야훼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이 바벨론 땅에 끌려 오게 하셨는가?”, “그럼 이제 야훼 하나님은 우리들을 어쩌실 작정이신가?”라는 물음들을 안고 지난 일들을 돌아 보기 시작한 것입니다. 바로 전해 오는 이야기들과 그들이 지니고 있는 기록들을 꼼꼼히 들여다보면서 야훼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를 찾아 보는 일이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 것을 기록해 남기는 일들을 한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신명기를 비롯한 신명기 역사서들(여호수아, 사사, 사무엘 상하, 열왕기 상하)입니다. 

이 역사서들을 기록하면서 그들이 사용한 잣대 곧 사관(史觀) 을 일컬어 신명기 사관이라고 합니다. 

그 사관의 기본 틀은 “야훼 하나님은 언제나 신실하시다. 계약을 위반한 쪽은 언제나 유다와 이스라엘이었다. 야훼 하나님은 유다 민족을 향해 첫번 계약의 정신으로 돌아 올 것을 늘 촉구하셨다. 여전히 계약을 위반하고 제 고집만을 피우는 유다민족에게 훈계의 채찍을 치셨고, 우리가 바벨론에 있는 까닭도 그렇다. 그러나 우리가 돌아만 간다면 신실하신 야훼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하셔서 새 세상으로 인도 하신다.”라는 믿음이었습니다. 

신명기 역사가들이 생각한,  돌아가야만 하는 계약의 기본 정신은 누구에게나 평등함이 이루어 지는 공동체로 돌아가는 정신이었습니다.  오직 야훼 하나님 한 분 이외에는 평등한 사람들이 온 몸과 마음과 혼과 영을 다하여 야훼 하나님을 섬기며, 이웃들과 평화롭게 지내는 공동체로 돌아가자는 정신 곧 믿음이었던 것입니다. 

야훼 하나님은 이들의 노력을 외면치 않으셨습니다. 천년 만년 갈 것 같던 바벨론제국이 무너지는 것입니다. 

이제 다니엘 이야기로 넘어가기 전에 아주  짧은 기록으로 남아있는 오바디야(오바댜) 예언자에 대해  잠시 언급하고 가렵니다. 구약성서 가운데 단지한 장 그것도 21절로 끝나는 정말 짧은 책입니다. 내용은 유다의 영원한 적인 에돔의 멸망과 이스라엘의 승리를 예언하는 것입니다. 야곱과 에서에서 시작된  후손들의 끈질긴 다툼에 대한 경고와 야곱 가문의 승리를 예견하는 것인데요, 이 책에서는 야곱 가문인 유다가 바벨론에게 망할 때에 에돔이 돕기는 커녕 고소해 하는 죄 때문에 애돔이 망한다는 것입니다. 

우리 속담에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픈” 행태에 대한 벌을 생각나게 하는 책이랍니다. 

이제 다니엘 이야기로 이어집니다.

나는 누구? 2 – 포로기 5

(당신의 천국 – 쉰 다섯 번 째 이야기) 

우리가 받은 성령은 세상이 준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은총의 선물을 깨달아 알게 되었읍니다.  우리는 그 은총의 선물을 전하는 데 있어서도 인간이 가르쳐 주는 지혜로운 말로 하지 않고 성령께서 가르쳐 주시는 말씀으로 합니다. 이렇게 우리는 영적인 것을 영적인 표현으로 설명합니다.  그러나 영적이 아닌 사람은 하느님의 성령께서 주신 것을 받아 들이지 않습니다. 그런 사람에게는 그것이 어리석게만 보입니다. 그리고 영적인 것은 영적으로만 이해할 수 있으므로 그런 사람은 그것을 이해하지도 못합니다. – 고린도전서 2 : 12 – 14, 공동번역에서 

성경을 다른 말로 풀이하자면 이중적인 저작권을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인간들은 이것을 기록했고, 하나님은 인간들을 통해 이것을 기록하였다. 성경은 인간의 기록인 것과 동시에 신적인 기록이다.  – J. I. Packer의’ 하나님의 말씀들(God’s Words)’에서 

모든 일에는 뜻이 있다. 모든 일은 뜻이다. 뜻에 나타난 것이 일이요, 물건이다. 사람의 삶은 일을 치름(경험)이다. 치르고 나면 뜻을 안다. 뜻이 된다. 뜻에 참여한다. 뜻이 있으면 있다.(존재 存在) 뜻이 없으면 없다.(무 無) 뜻이 있음이요, 있음은 뜻이다. 하나님은 뜻이다. 모든 것의 밑이 뜻이요, 모든 것의 끝이 뜻이다. 뜻 품으면 사람, 뜻 없으면 사람 아니다. 뜻 깨달으면 얼(영 靈), 못 깨달으면 흙. 전잰을 치르고도 뜻을 모르면 개요 돼지다. 영원히 멍에를 메고 맷돌질을 하는 당나귀다.  – 함석헌의 ‘생각하는 백성이라야 산다.’에서 

사관(史觀)에 대해 짚고 넘어가자고 했습니다. 역사를 바라보는 눈에 대해 이야기 해 보자는 것입니다. 

제가 예순 해를 살아오는 동안 만났던 그리고 지금도 만나고 있는 사람들의 수는 헤아릴 수 없을 만큼입니다. 그 가운데는 제 아내처럼 저와 거의 한 몸인 사람도 있고, 제게 베풀기만 하신 부모님들, 그저 주고만 싶은 자식들이 있습니다. 제 삶에서 가장 가까운 거리에 있는 가족들입니다. 조금 범위를 넓혀 본다면 지금 현재 제가 속한 크고 작은 공동체나 모임, 일에 연관되어 만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아주 범위를 넓혀서 제가 누려온 시간들 곧  60년으로 시간을 늘이고 그 안에서 스치듯 연을 맺었던 사람들을 다 생각해 본다면 어마어마한 수가 될 것입니다. 

그 많은 사람들 가운데 지금 이 순간 제 머리 속을 스쳐가는 얼굴들도 있고, 전혀 제 머리 속 기억에 없는 분들도 있습니다. 정말 한 번 꼭 다시 보고 싶은 얼굴도 있고, 행여라도 다시볼까 겁나는 사람의 얼굴도 있습니다. 

그 많은 사람들과 얽혀서 일어났던 혹은 지금도 일어나고 있는 일들 역시 헤아릴 수 없이 많습니다. 그 일들 역시 ‘아, 다시 한번…’하는 일들도 있거니와 ‘다시는 절대 일어나서는 안되는…’일들도 있습니다. 

저만 그런 것이 아니라 저와 만났던 모든 이들도 그 분들의 입장에서 보면 저와 똑같을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 지금 제 모습을 봅니다. 지금  바로 이 글을 쓰고 있는 순간, 현재의 제 모습입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가장 가까운 제 아내로부터 지금 제 머리 속에 없는 그 누군가가 생각하는 저에 대한 모습이 있을 것입니다. 

지금 현재의 내 모습이 이루어진 것은 지난 예순 해 동안의 결과물입니다. 그 결과물에 대한 평가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내리는 객관적 평가가 있을 터이고, 제가 스스로 내리는 주관적 평가가 있을 것입니다.  바로 개인사에 대한 평가입니다. 이 때 어느 것이 더 중요할까요? 객관적인 평가와 주관적인 평가 사이에서 말입니다. 

바로 그 평가의 잣대, 기준을 어디에다가 두느냐 하는 문제를 이야기 하려는 것입니다. 

개인사에서 공동체나 민족, 국가라는보다 큰 범위로 생각을 키워 보기로 하지요. 

일단 같은 말을 쓰는 한민족 공동체의 경험에 대해 이야기 해보지요. 지난 약 한 세기 동안 겪었던 일들을 생각해 보자는 것입니다. 일본의 식민지 경험, 이산(離散자신들의 삶의 자리에 따라 후에 제일동포, 조선족, 고려인, 미국인 등등…), 해방, 분단, 전쟁, 4.19, 5.16, 유신, 10.26, 5.17…. 등등등 

이런 집단 또는 공동체의 경험들을 어떻게 평가하느냐 하는 평가의 잣대가 바로 사관(史觀)이라는 것입니다. 

일어난 일은 똑같습니다.  1950년 6월 25일에 한국전쟁이 일어났고, 1987년 6월10일에 유월항쟁이 있었습니다.  한국전쟁으로 인해 피난생활을 하시던 부모님 사이에서 피난지 부산에서 세상에 나왔고 유월 항쟁 직후 미국으로 이민을 온 제가 경험했던 시기의 대한민국 곧 한반도 남쪽에서 일어난 일들 입니다. 

바로 어떤 시점에 어떤 곳에서 일어난 사건이 있는데 그 사건에 대해 이야기하는 내용들이 아주 심지어는 전혀 다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즈음 한국에서 뉴스가 되어 이 곳까지 전해진 역사 교과서 문제란 바로 이런 것이지요. 

어떤 평가의 잣대로 지난 일들을 바라보고 해석하고 기록하느냐가 중요한 까닭은 바로 그 기록에 따라 그 공동체의 미래가 결정되어지기 때문이지요. 

하나님 나라에 이르는 정말 중요한 열쇠중 하나가  바로 사관(史觀)인 이유입니다. 

지금 내가 여기에 내가 되어 있는 모습, 또는 내가 속한 공동체가 오늘 여기에 그려져 있는 모습을 바라 보면서, 여기 이렇게 있기까지 지난 시간들을 되돌아 보며, 어떤 까닭으로 여기까지 오게 되었는지를 생각하고 기록하는 일이 바로 사(史)이고, 그것을 보는 눈이 바로 관(觀)입니다. 

한반도가 일본의 식민지였던 시절을 되돌아 보면서 그 시절은 치욕의 세월이었다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거니와 그 시절이 있었기 때문에 한민족이 근대화되고 잘 살게 되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바로 역사를 바라보는 시각의 차이입니다. 

그런데 인류의 역사가 시작된 이래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런 거 별로 생각하지 않고 살아 왔답니다. 눈 앞에 보이는 오늘, 나와 가까운 사람들 또는 내가 만나고 있는 사람들이 영원 무궁토록 잘 먹고 잘 사는 것이 늘 우선하는 것이지요. 어찌보면 이게 대세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게 대세로 이어지지 않다는 것입니다. 바로 성서의 이야기입니다. 

이제 약 이천 오백년 전 팔레스타인으로 돌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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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가 완전히 망했고, 포로로 끌려간 이들, 피난 간 이들, 그 땅에 남은 이들 그렇게 새로운 공동체들이 생겨났습니다. 이전에는 모두 다윗과 솔로몬의 자손인 유다인들이었는데 이제는 가나안에 남은 유다인, 이집트 등으로 피난 간 유다인 그리고 바벨론 포로가 된 유다인들이라는 새로운 집단 공동체가 생겼다는 말씀입니다. 

한 때 다윗과 솔로몬의 영광스런 시대에 대한 이야기들, 남 북으로 갈라져 살던 이야기들, 아니 아주 오래 전 애굽에서 탈출하여 가나안에 정착하기 까지의 이야기들이 이들 모든 집단에 전해졌을 것입니다. 그러다 나라가 망하고 서로 살고 있는 자리와 처한 위치가 다르게 된 것입니다. 

어떤 개인이나 집단에게는 차라리 잘 된 일일수도 있었고, 다른 어떤 집단이나 개인에게는 전혀 상관없는 일이였을 수도 있고, 어떤 공동체나 그 속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지금 여기에 왜 어떻게 이렇게… 그럼 내일은?”이라는 물음으로 다가 올 수도 있었던 것입니다.

바로 바벨론에 포로로 가 있던 그 누군가가 그런 물음 앞에 서 있었던 것입니다. 이들을 일컬어 신명기사관으로 기록을 남긴 사람들이라고 한답니다. 신명기 역사가들 이랍니다. 

그들은 나라를 빼앗기고 포로로 남으 나라에 잡혀와 있는그 당시 현재의 모습 속에서 지난 일들을 돌아보며 그 모든 과정 속에 담긴 뜻을 찾아 내려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찾아낸 결과가 바로 신명기에서 열왕기까지의 이야기들이라는 것입니다. 

바벨론 포로시대가 구약성서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까닭은 바로 이 신명기 역사가들이 “나는 누구냐? 우리는 누구냐?”라는 물음으로 야훼 하나님 앞에 서 있었던 때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깨달은 ‘나’, ‘우리’ 곧 신명기 정신은 어떤 것이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