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가라! – 엘리야 이야기

성서 우리들의 이야기 -13

남북으로 왕국이 갈리고 북왕국 이스라엘의 첫 임금이 된 여로보암의 죄는 성소에 야훼 제단을 쌓고 거기에 금송아지 우상을 만들었던 일에서 시작됩니다. 여로보암 입장에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을 수도 있습니다. 남왕국 유대와 달라야 한다는 신생국가로써 내세워야 할 국가적 모델이 필요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똑같은 야훼를 섬기지만 남왕국 예루살렘과 다른 형태의 제사 방식이 필요했을 것입니다.  여로보암이 죄를 쌓게 된 배경입니다.

여로보암 이후의 왕들인 나답, 바아사, 엘라, 시므리, 오므리 때까지 북왕국 이스라엘은 이런 모습에서 크게 엇나가지는 않았습니다.

아합왕 때에 이르러 야훼는 철저히 버려지고  이세벨의 신인 바알이 나라의 신으로 섬겨지게 됩니다. 수도인 사마리아에 바알 사당이 들어선 것입니다. 또한 아세라신의 목상도 만들어 세워 섬겼습니다.

바로 이런 상황에서 엘리야가 갑자기 등장하게 된 것이고, 갈멜산에서 일 대 850 싸움까지 겪게되고 바알신을 섬기던 예언자들을 모두 죽이는 일대 숙청 혁명이 일어납니다. 그 뒷심은 바로 야훼만이 하나님이라는 백성들의 고백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일 이후 목숨줄 연명하고자 도망친 쪽은 아합왕이 아니고 엘리야였습니다.

왜? 승자가 도망을 가야했을까요?

남북 분단왕국 이야기

왕(王)이 아닌 예언자들의 역사(役事 또는 歷史) – 남북 분단 왕국 이야기 1

예언자 이야기는 우리들이 하나님 나라를 찾아가는 길목에서 아주 중요한 이정표입니다.

왜 예루살렘인가?

성서 – 우리들의 이야기 열번 째

지난해 문창극에 이어 이번에는 황교안이 오늘날 한국기독교 또는 한국교회의 편협하고 천박한 신앙관을 세상에 가감없이 드러내고 있습니다.

이런 모습에 교계나 교회가 부끄러워 하기는커녕 오히려 목청 높혀 그를 두둔하기 바쁜 모양새입니다.

심지어 <황 후보자는 하나님의 공의를 드러내는 일에 다니엘과 같이 쓰임받는 하나님의 일꾼입니다. 우리의 기도가 그에겐 천군만마와 같습니다. 아울러 여러분이 지인들 20명에게 이글을 전달하여 우리가 함께 기도한다면 그것이 바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에 동참한 것이 될 것입니다.>라는 SNS의 글들이 퍼지고 있다고 신문은 보도하고 있습니다.

부끄러움을 느끼기는커녕 몰염치의 당당함에 뻔뻔스러움을 더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일부(그 일부가 큰 세력이긴 하더라도) 한국교계나 한국교회가 천박한 모습을 더하면 더해 갈수록 옳게 믿으려하는 이들은 성서에 귀를 기울일 일입니다.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예수카페8변명같지만 살며 우리말을 길게 할 기회가 별로 많지 않답니다.

딱 그런 이유때문이 아니고 말이 짧고, 생각도 그다지 논리적이지 못하고, 어휘력도 짧은 탓이 먼저이지만 아무튼 변명이라도 좀 하고싶답니다.

성서 – 우리들의 이야기 여덟번 째 입니다.

편집을 좀 해서 올리면 좋겠다는 생각만 있을 뿐….

시간이 허락하질 않는답니다.

넉넉한 이해를…

 

계시(啓示, revelation)에 대하여

성서 – 우리들의 이야기 일곱번 째

7-YoungKim“계시(啓示, revelation)”라는 말은 지금 우리들이 찾아가고 있는 천국 곧 하나님 나라를 누리고 이르는 첫 번 째 핵심 열쇠입니다.

야훼 하나님을 만나는 일은 그의 드러남과 나나 우리가 그를 만나고 아는 일이 동시에 일어나야만 하는 것입니다. 신이 어떻게 나나 당신에게 나타셨는가? 그것이 바로 계시입니다.

모세는 직접 사람의 말을 하시는 야훼 하나님을 본 사람입니다. 여호수아는 그런 모세에 후계자입니다. 이 두 지도자들에게 나타났던 신 야훼는 스스로 드러내셨던 분입니다. 비록 모세와 여호수아가 이끌었던 무리들이 때론 의심하고, 불신을 드러내긴 했지만 모세와 여호수아가 야훼 하나님의 약속을 받은 사람들이라는 점에는 깊은 신뢰와 믿음을 보냈습니다. 그런 고백들을 쉬지 않기도 했습니다.

사사시대 이후의 야훼 하나님의 드러남 곧 계시는 사뭇 다른 모습으로 바뀝니다. 직접 신이 사람을 만나는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꿈이나 어떤 징후로 사람과 만나는 것입니다. 전적으로 사람들의 고백을 통해 신이 드러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들에게 계약이란?

성서 – 우리들의 이야기 6

이스라엘의 희망은 구약성서에 기록되어 있는 고난의 시대 이래로 수 세기 동안 유태인들을 괴롭혀온 참혹한 고난에도 불구하고 오늘날까지도 살아있다.  최근사 아우슈비츠와 그 외의 다른 죽음의 수용소에서 조직적으로 근절되고, 탈출할 수 있는 모든 출구가 닫혀진 것처럼 보였던 나치 횡포의 무시무시한 시절까지도… (John Macquarrie  의 “인간이 되신 하나님”에서)

하나님의 이름들

부활의 아침입니다.

예수가 십자가에 달려 죽었다가 다시 사셨다는 사건을 나에 대한 구원 사건으로 이해하고 믿게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그의 은총이고 은혜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은총은 누구에게나 늘 열려있습니다.

다만 폴 틸리히(Paul Johannes Tillich)의 선언처럼  신의 용납(은혜와 은총)을 용납(받아드리는) 하는 것은 사람의 몫일 따름입니다.

그러므로 부활의 아침은 누구에게나 언제나 열려있습니다.

성서 – 우리들의 이야기 다섯 번째이야기입니다.

오늘은 하나님의 이름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새의 노래소리에 귀 기울여지는 아침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