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을 기다리며

사순절기독교력으로 사순절 기간입니다. 앞으로 한달 남짓 남은 올 부활주일 이전에 여섯 번의 주일를 뺀 사십일 동안의 기간을 말합니다. 

사실 기독교의 전통적인 사순절 풍습이 남아 있지도 않고, 그게 그리 중요한 세상도 아니고…

제 이런 말에 “몰라서 하는 소리”라거나, “신앙이 없어서…”라는 대꾸가 있다면, 뭐 그대로 받는답니다. 

다만, 사순절에 의미를 ‘예수의 죽음”을 떠나 오직 “부활”에만 촛점을 맞추는 오늘날 교회의 사순절 고백은 참 허망한 것이랍니다. 

그런 뜻으로 이해인님의 시 하나 읊으며 봄을 기다리는 밤입니다. 

사랑과 침묵과 기도의 사순절에

–       이해인 

주님,

제가 좀더 사랑하지 못하였기에

십자가 앞에서 사랑을 새롭히는 사순절이 되면

닦아야 할 유리창이 많은 듯 제 마음도

조금씩 바빠집니다

 

제 삶의 일과표엔 언제나

당신을 첫자리에 두고서도

실제로는 당신을 첫 자리에

모시지 못했음을 용서하소서

 

“올해에도 우선 작은 일부터 사랑으로”

이렇게 적혀 있는 마음의 수첩에

당신의 승인을 받고 싶습니다, 주님.

성당 입구에서 성수를 찍거나

문을 열고 닫거나

화분에 물을 주는 것과 같은

저의 조그만 행위를 통해서도

당신은 끊임없이 찬미 받으소서

 

식사하거나 이야기하거나

그릇을 닦거나 걸레를 빠는 것과 같은

일상의 행위를 통해서도

당신을 변함없이 사랑하게 하소서

 

주님,

제가 좀더 침묵하지 못하였기에

십자가 앞에서 침묵을 배우는 사순절이 되면

많은 말로 저지른 저의 잘못이

산처럼 큰 부끄러움으로 앞을 가립니다

 

매일 잠깐씩이라도 성체 앞에 꿇어앉아

말이 있기 전의 침묵을 묵상하게 하소서

제가 다는 헤아리지 못하는

당신의 고통과 수난

죽음보다 강한 그 극진한 사랑법을

침묵하는 성체 앞에서

침묵으로 알아듣게 하소서

 

십자가 앞에서 기도를 익히는 사순절이 되면

잔뜩 숙제가 밀려 있는 어린이처럼

제 마음도 조금씩 바빠집니다

성서와 성인전을 머리맡에 두고

거룩함에 대한 열망을 새롭히는 계절

 

제가 기도하겠다고 약속했던

가까운 이웃들의 얼굴이 떠오르고

세상 곳곳에서 기도를 필요로 하는

수많은 이웃들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한번도 제대로 기도를 못한 것 같은

절망적인 느낌 속에서도 주님,

기도를 포기하지 않을 수 있는

믿음과 인내를 주소서

제 안에 사제로 살아 계신 당신이

저와 함께 기도해 주심을 믿겠습니다

 

그리하여 주님,

제가 먼 광야로 떠나지 않고서도

매일의 삶 속에 당신과 하나 되는

즐거운 사순절이 되게 하소서

죽음의 이유 – 말씀4

<하나님나라 – 구원의 확신으로 성서 읽는 법> -39 

아직 예수의 십자가 죽음에 대해 이야기하기에는 이른 싯점입니다. 제 이야기의 흐름상 말입니다. 그런데 오늘은 예수가 죽음에 이르게 된 까닭 한가지 짚고 넘어가고자 합니다. 

또 제가 이글을 이어가면서 가급적 정치 이야기는 하지  않으려고 애쓰지만 오늘은 한국정치 이야기도 한마디 하려고 합니다. 

오늘  이 글을 쓰기 전에 잠시 훑어 본 한국정치 관련 기사 가운데 두 가지가 제 눈에 들어왔답니다. 

한가지는 김한길과 안철수 세력들에 의해 만들어지고 있는 중인 이른바 새정치연합의 정강정책을 조율하는 과정에서 6.15, 10.4 남북공동선언을 존중 승계한다는 내용을 빼겠다는 보도내용이었습니다. 

다른 하나는 유정아 신임 노무현 시민학교장의 취임 소식입니다. 

첫번 째 것인 이른바 새정치연합에 대한 이야기는 접으려합니다. 바라보는 위치에 따라 다 생각들이 다를 수도 있거니와, 무엇보다 제가 목매고 제 나머지 인생을 걸고 나서서 논쟁을 벌릴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다만 두번 째 눈에 뜨인 유정아 신임 노무현 시민 학교장의 말 한마디는 곱씹어 보고자 합니다. 그녀의 말입니다.  – “’인간에 대한 존중’이라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가치관에 공감한다는 차원에서 난 친노” 

그녀의 당찬 “친노”라는 말의 정의에 따른다면 저 역시 영락없는 친노입니다. 나아가 성서를 제대로 읽고 예수를 제재로 믿는 신앙인이라면 누구나 “친노”여야 맞겠다는 생각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신학’이란 ‘인간학’이라는 말이 있답니다. 예수를 믿는 첫번 째 이유는 “’나’라고 하는  한 사람”에서 시작하여 “’너’라고 하는 상대”와 “’그’라고 하는 이웃”들에 대한 존중이 통하는 세상을 그가 제시했기 때문입니다. 

야훼 하나님이라는 신을 존중하고 높힌다는 고백은 바로 야훼 하나님의 모습을 닮은 인간인 나와 당신과 이웃들이 똑같이 서로 존중받아야 하는 존재라는고백으로 이어진다는 말이지요. 

만일 “인간에 대한 존중”이 친노의 가치관이라면 친노란 이미 종교적인 셈입니다. 

그런데 왜? 오늘날 한국사회에서 ‘친노’라는 말이 ‘종북 좌빨’로 이어지고, 척결의 대상으로 매도되곤 하는 것일까요? 

여러가지 해석들과 주장들이 난무하지요. 

저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2001년 12월 10일 제16대 대통령 민주당후보 국민경선 출마를 공식선언 하던 그의 연설에서 그 까닭을 찾아 읽는답니다. 

바로 이 대목입니다. 

<조선 건국 이래로 600년 동안 우리는 권력에 맞서서 권력을 한 번도 바꾸어 보지 못했고, 비록 그 것이 정의라 할지라도 비록 그 것이 진리라 할지라도 권력이 싫어하는 말을 했던 사람은 또는 진리를 내세워서 권력에 저항했던 사람들은 전부 죽임을 당했다. 그 자손들까지 멸문지화를 당했다. 패가망신 했다.> 

김대중과 노무현은 여러모로 다릅니다. 

노무현은 분명 돌연변이였습니다. 이조 600년 이래 까지는 아니라도 동학 농민혁명 이래 120년을 따져 보면 그는 분명 돌연변이였습니다. 

그 오랜 세월 정권을 움켜쥐고 있었던 세력들의 눈으로 본다면 끔직한 사건이었습니다. “민주주의”라는 말은 입에 달고 살았으되 실제 유권자들의 선택에 의해 권력이 넘어가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경험을 했던 것입니다. (뭐, 수많은 말들과 원인 분석들이 넘쳐 나지만 제가 볼 때는 바로 이 경험 즉 “유권자들이 권력을 대행하는 주체를 선택할 수 있는 일이 실제로 일어날 수 있다는 경험”은 오랜 기간 정권을 자기 손에 넣고 주무르던 세력들에게는 다시는 일어나서는 안될 악몽이었습니다. 이점에서 김대중과 노무현은 아주 다릅니다.  오해없으시길 바라는 마음으로 한마다 첨부합니다. 이는 노무현의 정치적 행보와 그 결과의 옳고 그름 또는 성과의 크기와는 아무 관계없는 일입니다.) 

어찌보면 노무현의 죽음은 이미 그 때 예견된 일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엄청난 역사의 반동을 보고 있는 것입니다. 

인류 역사의 큰 흐름이자, 인간에 대한 존중이 이루어지는 더불어 함께 사람 사는 세상으로 가는 길이 그리 쉽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는 현상이지만 믿음으로 눈으로 보면 세상은 분명 그 방향을 향해 나아가고 있답니다. 

이제 예수의 이야기로 돌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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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는 그가 사람들에게 한 두 가지 명령 때문에 죽을 수 밖에 없는 운명을 맞게 됩니다. 

바로 지난 이야기에서 소개 드렸던 “가족에게 돌아가라”는 귀환명령과 “가족을 버려라”는 이탈명령 때문이었습니다.

이 두 개의 다른 명령은 예수 당시의 사회가 유지될 수 있었던 기본 축을 뒤흔드는 외침이었습니다. 

소외된 자들, 죄인들이라고 일컬어지는 문둥병자, 장애인, 귀신들린 자, 율법을 어긴 자 등등은 사회로부터 격리되어야만 했고, 그렇게 그들을 격리해야만 자신들의 삶의 자리를 유지할 수 있는 세력들이 있었습니다. 당시 그 사회를 지탱해주던 암묵적인 버팀목이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는 그 담을 허물어 버린 것입니다. 

또한 당시 율법학자들의 주류를 이루었던 바리새파를 비롯한 소시민 계층들을 향해 “가족을 떠나라”고 하는 이탈명령을 내린 것입니다. 이것이야말로  당시 사회의 기본 구성요인이었던 가족제도를 허물고 그 터 위에서 유지되었던 권력의 기반을 흔들어 엎는 반사회적 명령이었던 것입니다. 

예수가 정치적 사형 방식인 십자가를   당시 사회에서 피해갈 수 없었던 까닭입니다. 

이제 다시 성서로 돌아갑니다.

연탄화덕 – 말씀 3

<하나님나라 – 구원의 확신으로 성서 읽는 법> – 38 

어느 날 예수께서는 레위의 집에서 음식을 잡수시게 되었다. 예수를 따르던 사람들 중에는 세리와 죄인들도 많았는데 그 중 여럿이 예수와 그의 제자들과 함께 그 자리에 앉아 있었다.  바리사이파의 율법학자들은 예수께서 죄인이며 세리들과 한 자리에서 음식을 나누시는 것을 보고 예수의 제자들에게 “저 사람이 세리와 죄인들과 어울려 같이 음식을 나누고 있으니 어찌된 노릇이오?” 하고 물었다.  예수께서 이 말을 들으시고 “성한 사람에게는 의사가 필요하지 않으나 병자에게는 필요하다.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 하고 대답하셨다. – 마가복음 2 : 15 -17 

페이스북 친구 한분이 올린 사진을 한참 바라보고 있다가 댓글을 달았었답니다. 제가 단 댓글에 그 분은 사진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해 주셨습니다. 

선운산으로 유명한 전북 고창을 여행하면서 찍은 사진 몇 장이었습니다. 내 눈길이 꽂혔던 사진은 고창 여행 마지막을 장식했다는 장어구이였습니다. 

사실 그 장어구이보다는 장어를 굽는 연탄불에 제 눈길이 꽂혔었답니다. 제 눈에는 영락없는 연탄불이었답니다.

연탄화덕

그 사진을 바라보면서 연탄화덕에 둘러앉아 돼지갈비와 동태찌게에 막소주나 막걸리를 나누어 마시던 시절과 그 때에 함께 했던 얼굴들을 추억했었답니다. 돼지갈비나 삼겹살, 매운탕 등은 그나마 주머니 사정들이 넉넉할 때 그 화덕 위에 올려졌을 터이고, 많은 경우에 동태찌게 한 뚝배기를 연탄화덕 위에 올려놓고 물 붓고 고추장 풀고를 거듭하며 막걸리동이나 제법 비우던 시절이었답니다. 

이젠 추억이 된 연탄화덕과 함께 했던 시절들을 떠올리게 했던 사진이었답니다. 그런데 그 사진을 올린 페친의 설명을 듣고서는 세월의 간격이 제 추억속의 시간보다 더 크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답니다. 

그 페친의 사진 설명이랍니다. “야자수로 만든 불이랍니다. 킬로에 65,000원이고요. 셀프로 구워 먹는 곳입니다.”

연탄화덕1

이런 친절한 사진 설명에도 불구하고 저는 장어를 굽고 있는 사진 속의 화덕은 연탄화덕이라고 믿기로 했답니다.

 자! 사진을 찍고 사진을 소개하는 사람이 야자수로 만든 불이라고 설명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저는 연탄불로 생각하고 믿기로 했다는 말입니다. 

연탄화덕에 동태찌게를 올려놓고 물붓고 고추장 풀고를 거듭해가며 막소주를 들이키던 시절은 가난했던 시절이었습니다. 사실 제가 가난이라고 하지만 절대 빈곤 상태는 아니었습니다. 술집 연탄화덕에 둘러 앉을 수 있었다는 말은 절대 빈곤과는 거리가 먼 그저 그 시절 소시민들의 일반적인 모습에 비교적 가까운 것입니다. 

아마 그 시절 함께 했던 많은 친구들에게  2014년 오늘에  “야자수로 만든 불에 킬로에 65,000원하는 장어를 셀프로 구워먹는”  일들은 그리 고민하지 않아도 선택할 수 있는 일일지도 모릅니다. 2014년 한국사회 소시민들이 맘 한번 먹으면 즐길 수 있는 일일겝니다. 

그런데 연탁화덕에 동태찌게를 끓여먹던 1960, 70년대나 야자수로 만든 불에 장어를 구어먹는 2014년 오늘이나 절대 빈곤 상태에 놓인 이웃들은 여전히 있을 것입니다. 

물론 제가 여기서 말하는 “절대 빈곤”이라는 말은 경제적인 문제만 국한해 말씀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교육, 노동, 정치, 종교 등의 모든 사람들이 살며 부딪힐 수 밖에 없는 모든 분야에서의 절대빈곤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제 예수의 말씀으로 돌아갑니다. 

예수는 절대빈곤층들(예수 시대에 죄인으로 불리우던 사람들)을 향해 치유와 용서의  기적을 배푼 후에는 “가라”는 명령을 내렸습니다. 이른바 귀환명령입니다. 가족에게로 돌아가라는 명을 내린 것입니다. “네가 그토록 가고 싶어했던 사람들이 더불어 함께 사는 세상으로 돌아가라.”는 명령을 내리신 것입니다. 물론 돌아갈 수 있는 상태로 기적을 베푼 후에 말입니다. 그러나 이미 제가 이야기했듯 그들이 돌아갈 곳, 곧 가족들이 있는 세상을 바꾸는 일의 몫은 돌아간 사람(치유받은 죄인들)들이 풀어야 하는 일이었습니다. 

반면에 예수가 “가족을 떠나라.”, “가족을 잊어라.”, “가족을 버려라.”라고 명하는 사람들은 예수 시대에 소시민계층에 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바로 연탄화덕에 동태찌게를 우려 먹던 사람들, 야자수로 만든 불에 장어구이를 구어 먹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성서를 읽다보면 예수는 바리새인들과 대척점에 서 있다는 느낌이 드는 구절들을 읽게 됩니다. 바리새인들은 당시의 소시민 계층이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어찌보면 선한 구석이 있는 소시민들이었습니다. 성경(구약 특히 오경)을 열심히 연구하고 묵상하며 종교적인 삶을 살아가려고 애쓴 이들이었습니다. 문제는 절대빈곤층(소외된 자들, 죄인들)과 자신들을 구별하고 더불어 함께 살려 하지 않고, 당시의 사회 종교 지배층들을 떠바치는 역할을 했다는 것입니다. 

지난 글에서 제가 추억했던 소정(小丁) 이문영(李文永)선생님께서는 이런 소시민들의 특징 가운데 하나는 바로 절대로 절대빈곤층으로 떨어지지 않고, 소수의 가진 그룹 곧 사회 상류층으로 올라가려는 욕망이라고 하셨습니다. 

바로 예수가 이른바 이탈명령, 곧 가족을 버리라고하는 명령하시는 지점입니다. 

얼핏 전혀 다른 명령인 것 같은 “가족에게로 돌아가라”는 명령과 “가족을 버려라”고 하는 명령 사이에는 더불어 함께 살아가야 한다는 똑같은 내용의 명령이 함축되어 있는 것입니다. 

결국 예수가 내린  이 두가지 다른 명령으로 하여 예수는 십자가의 길로 들어서게 됩니다.

모국(母國)을 위하여

이민이라는 게 살면 살수록 살던 곳이 그리워 지는 삶이랍니다.

그렇다고 돌아갈 수는 없는 것이 참된 이민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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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나이까지 들고보면 그 그리움의 크기는 더해가기만 한답니다. 

그리움의 크기와는 상관없이 아마 저는 여기 뼈를 묻을 것입니다. 

제 자식들도 어디서 어떤 일을 하며 살더라도 이미 한국인은 아닙니다. 그저 한국계 미국인 뿐이지요. 

그렇다하더라도 오늘은 모국을 위한 정말 간절한 기도를 드려본답니다. 

저도 이젠 정치에서 무슨 도덕을 찾을 나이는 이미 지난 늙은이랍니다. 

<광장>을 잃고서도 그를 느끼지 못한 <시대>는 아직도 불행한 역사를 살아가고 있다는 생각을 해 본답니다. 그 역사를 꾸미고 있는 것은 바로 동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이겠지요. 나이와는 아무 상관이 없는 일입니다. 동시대에 함께 숨쉬고 살아가는 데에 뜻이 있는 것이지요. 

반세기 전에 작가 <최인훈>이 서있던 그 <광장>이 2014년 오늘 현재 내 모국에  아직도 그대로 유효하다는 생각은 저를 기도하게 만든답니다. 

그냥 웬지 모를 슬픔이 밀려오는 밤에….

김어준과 변희재

주말이라 좀 쉬노라고 여기 저기 온라인 사이트를 뒤적이다가 든 생각 하나랍니다.

김어준과 변희재. 

썩 다른 듯 하지만 아주 똑같은 캐릭터를 보면서 이즈음의 한국 사회를 쉽게 조망해 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해 본답니다. 

저야 뭐 세상사  성서적 시각으로 보자는 쪽이니까, 그 거울에 비추어 보는 것이지요. 

김어준과 변희재같은 젊은이들이 뉴스가 되는 사회는 불행한 사회가 아닐까요? 

두 사람의 생각과 삶의 방식, 그들이 영향을 끼치는 사람들의 집단들을 보면 전혀 다르지요. 

그런데 살아가는 방식은 똑같다는 생각이 든답니다. 

바로 “뻔뻔함”, “상대 무시하기”, “유아독존” , 나아가 “소설쓰기로 덮어 씌우기” 등등 

이즈음의 한국사회를 표현하는 정형같다는 생각이 든답니다. 

한 시대를 이끌어가는 시대정신까지 이런 예능인들에게 비추어보아야 하는 세상이 서글프답니다. 

세상 살아가는 방법과 생각은 다를 수 있고, 또 달라야 하고요, 그 다름을 서로 인정해 가며 사는 사회가 건강한 사회겠지요. 

한국(한인)사회 전반에 만연된 서로를 인정하지 않는 풍조 속에서 ‘김어준과 변희재’ 같은 류의 “뻔뻔함”이 뉴스가 되는 사회는 바람직하지 않다는 생각을 해본답니다. 

아무리 예능천국인 세상이라도, 예능화 시키지 말아야 하는 구석은 있는 것이겠지요.

(참과 거짓의 대척을 자꾸 예능화 시키는 이런 두 아이의 꼭두각시 놀음에 대해  “이 눔아!”하며 큰 소리칠 어른조차 없는 사회를 탄하며.)

바른 중간 – 말씀 2

<하나님나라 – 구원의 확신으로 성서 읽는 법> – 37 

“한 종이 두 주인을 섬길 수는 없다. 한 편을 미워하고 다른 편을 사랑하거나 또는 한 편을 존중하고 다른 편을 업신여기게 마련이다. 하느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 수는 없다.” – 누가복음 16 : 13 

“어떤 돈놀이꾼에게 빚을 진 사람 둘이 있었다. 한 사람은 오백 데나리온을 빚졌고 또 한 사람은 오십 데나리온을 빚졌다.  이 두 사람이 다 빚을 갚을 힘이 없었기 때문에 돈놀이꾼은 그들의 빚을 다 탕감해 주었다. 그러면 그 두 사람 중에 누가 더 그를 사랑하겠느냐?”   – 누가복음 7 : 41- 42 

집이란 그 집에 사는 사람들이 뜰에 앉아서 하느님을 명상하는 신성한 곳이라는 것이 내 생각이다. 내가 세계를 다니며 아름답게 본 곳이 두 곳인데, 하나는 미국에 있는 내 동생 인영의 집 뜰이다. 집집의 뜰이 연이어진 넓은 공간을 나는 아름답게 보았다. 집집마다 명상하는 정원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 내 정치적 입장이기에, 나는 좌우 정책 스펙트럼 중심부에서 약간 우 쪽에 기운 보수주의자이다. 만인의 명상을 믿는 나는 좌단이 아니며, 약자를 편드니 우단은 아니다. – 이문영의 ‘겁많은 자의 용기’에서 

“나는 의당 해야 할 최소한의 발언을 했을 뿐인데  그 시절에  모두 17번 붙잡혀 갔고 3번 해직돼 총 9년 8개월 동안 봉급을 받지 못했으며 3번 구속돼 5년 동안 감옥생활을 했다.”  

올해 초인 지난 1월 16일 향년 87세로 하늘나라로 돌아가신 소정(小丁) 이문영(李文永)선생님의 말씀입니다. 

이문영

1960년 4.19 혁명 때 서울시내 대학교수 가두시위 때 플랭카드를 들고 맨 앞에 섰던 양반이십니다. 1973년 고려대 노동문제연구소장으로 있을 때 데리고 있던 연구소 직원들이 반정부 지하신문을 만들었다고 봉급을 주지말라는 중앙정보부(지금의 국정원)의 압력을 뿌리쳤다가 교수직을 잃었던 양반이십니다. 

이후 1976년에 있었던 ‘3·1민주구국선언’으로 구속된 이후 3번 구속되었고  오년의 세월을 감옥에서 보내시기도 했던 양반이십니다. 

그 분은 스스로 호를 ”소정(小丁)”으로 지은 까닭을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때 내 호를 소정(小丁)이라고 정한 일이다. 작은 일꾼이 되겠다는 뜻을 보여주는 호였다. 여기서 정(丁) 자는, 어렸을 때 공부를 못한 나의 성적표에 적힌 갑을병정(甲乙丙丁) 중 정이었고 남들이 천히 여기는 백정의 정이었다. 나는 무서운 유신 정부 아래서 꼭 필요한 저항을 하는 최소의 한 일꾼, 바닷고기로 치면 고래는 당연히 아니고 삼치나 갈치나 조기도 아니고 이런 것들이 먹는 멸치도 아니고 멸치들이 먹는 부유 생물 플랑크톤이 되자고 나는 다짐했다.  그러나 회상컨대 내가 최소이기를 바랐던 이 무렵이 바로 나의 최고의 시기라는 생각이 든다.> 

덩치도 크셨고 눈도 크셨고, 말씀은 어눌하며 더디셨던 양반이셨습니다. 자상하기엔 이를데 없으셨던 분이셨습니다. 

이즈음 한국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이자 반드시 풀고  넘어가야만  한반도의 가능성이 열리는 문제이기도 한  “빈부의 문제, 교육, 노동, 세금, 행정” 등을 아주 간단히 요약해서 그 분이 말씀하신 내용입니다. 

“유럽은 노동조합이 많고 또 힘도 세다. 대신에 운동을 평화적으로 최소화한다. 물론 우리와는 사정이 다르다. 운동을 최소화하게 하려면 정부가 가난한 자들에게 돈을 줘야 한다. 노동자의 자녀들이 대학을 거저 다닐 수 있어야 한다. 그렇게 하려면 부자들한테서 세금을 많이 걷어야 한다. 부자들이 세금을 많이 내는 대신 그들에 대한 저항은 약화된다. 말하자면 대타협을 이뤄야 한다. 우리도 노동 쪽이 강해져야 하지만 실력행사는 최소화해야 한다.” 

그리고 이 요약의 말씀에 강조하는 부분이 있답니다. “최소화한 실력행사는어떤 억압에도 굴하지 말고 사수하라.”는 것입니다. 

제가 아주 어렸을 때 이 어르신의 행정학 강의를 한 학기 들을 수 있었던 기회가 있었답니다. 

삼십년이 훌쩍 넘은 저 쪽 세월의 일이지만, 당시의 수업노트를 지금도 제가 간직하고 있답니다. 그 중 아직도 머리 속에 남아 있는 이문영선생님의 강의 내용입니다. 

“어느 사회건 철저히 소외된 그룹과 많은 것을 누리는 그룹이 있다. 문제는 적당히 누리면서 조금은 소외된 느낌으로 살아가는 이른바 그 사회의 중간 그룹이다. 이 중간 그룹의 일반적 특성은 소수의 누리는 그룹속에 들어가려는  신분상승을 늘 꿈꾼다는 것이다. 

바로 이 중간그룹들의 선택이 그 사회를 규정한다. 여러분들은 이미 우리사회에서 중간그룹 이상의 삶을 보장받고 있는 셈이다. 

여러분들이 사는 세상을 건강한 세상으로 만들려면 중간그룹의 삶을 사는 사람들이 소수의 누리는 그룹으로 나아가는 욕망과 비례한 만큼 아래 그룹 곧 소외된 그룹에 대해 관심을 가져햐만 한다.” 

그 어르신께서 하신 정확한 말씀 그대로는 아니지만 대충 뜻은 이러했답니다. 

자! 지금 저는 약 삼십 오년 전에 (제가 이문영선생님께 배웠던 시절은 1978 – 1979년 이었습니다.) 배웠던 “이문영”선생님네 대한 이야기와 그가 하셨던 이아기들을 글로 써서 이 글을 읽고 계신 당신께 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문영 선생님은 거의 60년 가까운 세월동안 가르치시고 글을 남기신 분입니다. 그 분의 대한 기억이나 생각이 누구나 다 저와 똑같을 수가 있을까요? 

100%  아니지요. 

일테면 당시 중앙정보부나 후에 안전기획부에서 일하셨던 이들이나 오늘날의 박근혜대통령을 비롯한 일단의 세력들의 눈으로 본 이문영선생님의 모습에 대한 그림은 제가 그린 것과 전혀 딴판이 될 것입니다. 

오늘은 예수의 말씀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한 잣대을 돌아가신 이문영선생님을 빗대 말씀드립니다. 

이제 “가족에게 돌아가라!”가 아니라 “가족으로부터 떠나라”고 말씀하신 예수의 말씀을 전한 사람들은 누구이며, 어떤 이들에게 예수는 그런 말씀을 하셨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갑니다.

일구이언 – 말씀 1

<하나님나라 – 구원의 확신으로 성서 읽는 법> – 36 

“나를 따라 오너라” 하고 말씀하시자 그는 “선생님, 먼저 집에 가서 아버지 장례를 치르게 해 주십시오” 하고 청하였다.  예수께서는 “죽은 자들의 장례는 죽은 자들에게 맡겨 두고 너는 가서 하느님 나라의 소식을 전하여라” 하셨다.  또 한 사람은 “선생님, 저는 선생님을 따르겠읍니다. 그러나 먼저 집에 가서 식구들과 작별 인사를 나누게 해 주십시오” 하고 말하였다.  예수께서는 “쟁기를 잡고 뒤를 자꾸 돌아다 보는 사람은 하느님 나라에 들어 갈 자격이 없다” 하고 말씀하셨다. – 누가복음 9 : 59 – 62 

나를 따르려고 제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부모나(아내나) 자식이나 토지를 버린 사람은 백 배의 상을 받을 것이며, 또 영원한 생명을 얻을 것이다. – 마태복음 19 : 29 

가령, “누구든지 나에게 올 때 자기 부모나 처자나 형제 자매나 심지어 자기 자신마저 미워하지 않으면 내 제자가 될 수 없다.”는 누가복음 14장 26절의 말씀을 인간 공동생활의 토대였으리라고 가정하기보다는, 오히려 특별한 공동체 삶의 한 정황이라는 양식사의 한 전제를 문제삼고 싶을 것이다. 이러한 윤리적 극단주의 때문에 예수의 말씀은 일상의 행동을 규정하기에는 아주 부적합하다. 그렇게 때문에 오히려 다음과 같은 문제가 제기되지 않을 수 없다. 즉, 그러한 말씀을 30년 동안이나 구전으로 전달한 사람들은 누구일까? 누가 그런 말씀을 진지하게 받아들였을까? 누가 그런 말씀을 진지하게 받아 들일 수 있었을까?   – 게르트 타이쎈(Gerd Theisen)의 “원시 그리스도교의 예수 말씀에 대한 문학사회학적 고찰”에서 

이즈음에도 이런 말을 쓰는지는 모르겠으되 “일구이언이면 이부지자라(一口二言 二父之子)”하는 말이 있습니다. 한입으로 다른 이야기를 하면 아버지가 둘인 사람이다라는 말이지요. 후레자식이라는 말입니다. 

이랬다 저랬다 상황에 따라 자기가 한 말을 뒤집기 일쑤인 사람을 일컬어 하는 말이지요. 특히 여기 미국이나 한국이나 정치판에서 먹고 사는 이들이 주로 듣고사는 말일겝니다. 

애비가 둘이다는 말은 욕이지요. 이즈음은 세상이 하도 급변해서 애비 두 서넛, 애미 두 서넛 되어도 욕은 될 수 없지요. 솔직히 저는 실제 그런 사람들을 욕되게 할 뜻이 전혀 없답니다. 그런 상황은 전혀 본인의 뜻이 아니기 때문이고, 어떤 상황에 처한 사람일지라도 제가 믿는 신인 야훼(여호와) 하나님 앞에서는  모두 똑같이 의미있는 삶인 까닭입니다. 

아무튼 이부지자(二父之子)  곧 애비가 둘이라는 말은  예전에는 큰 욕이었답니다.  후레자식이었지요. 후레자식이란 호래자식에서 비롯된 말이라고 하지요.  호(胡)와 래(來)에서 온 말입니다. 오랑캐 자식이라는 말입니다. 

누가 그렇다고요? 바로 한 입으로 딴 소리하는 사람을 일컬어 그리 불렀다는 말입니다. 

다시 말해서 자신의 말에 약속에 책임지지 않고 말을 바꾸는 사람은 오랑캐의 자식이란 말이지요.

운보 김기창

예수가 딱 그 짝이라고 제가 말한다면 아마 저를 미친놈으로 몰아치는 사람들이 차고 넘칠 것입니다. 그런데 대단히 죄송하지만 예수가 한 말씀들을 찬찬히 놓고보면 영락없이 딱 그 짝이랍니다. 

일구이언(一口二言)을 밥먹듯이 했다는 말씀입니다. 

지난 기적 이야기를 하면서 예수는 기적을 통해 병고침을 받은 사람들에게 “가라”는 명령을 즐겨했습니다. 가족에게로 돌아가라는 명령이었지요. 

그런데 예수는 똑같은 입으로 “가족을 버리라!”고 명령을 한답니다. 그것도 한두번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가족을 버려라.”, “가족을 떠나라.”, “가족을 잊어라”, “가족을 돌아보지 마라”는 명령을 한답니다. 

도대체 이런 예수의 일구이언(一口二言)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이현령 비현령(耳懸鈴 鼻懸鈴)”이라는 말도 있지요.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라는 말이지요. 귀걸이 코걸이는 옛말이지요. 요즈음엔 피어싱(Piercing)이라고 하지요. 입술,  혓바닥, 배꼽 등등 몸 아무데나 제 맘대로 장신구들을 달곤 하는 일 알입니다. 

일구이언이 이현령 비현령으로 아무 때나 어디서나 예수의 이름으로 만병통치가 되는 오늘날의 교회, 이른바 넘쳐나는 설교들은 때론 그저 성황당이 되곤 하지요. 

이게 누구 때문일까요? 일구이언한 예수 때문이라구요? 그런 답에는 그냥 웃고요. 

그럼 교회나 설교자들 때문이라고요? 어느 정도의 탓을 만드는 요인이 되겠지만 주된 요인은 아니랍니다. 그럼 누구 탓이냐고요? 

바로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과 이 글을 쓰고 있는 제 탓이랍니다. 

자! 이제부터 예수의 말씀을 통해 그 까닭을 알아보도록 하지요.

가라(GO) –기적 8

<하나님나라 – 구원의 확신으로 성서 읽는 법> -35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고 다만 사제에게 가서 네 몸을 보이고 모세가 명한 대로 예물을 드려 네가 깨끗해진 것을 그들에게 증명하여라. (마가  1 : 44) 

내가 말하는 대로 하여라. 일어나 요를 걷어 가지고 집으로 가거라.(마가 2 : 11) 

주께서 자비를 베풀어 너에게 얼마나 큰 일을 해 주셨는지 집에 가서 가족에게 알려라.(마가 5 : 19) 

여인아, 네 믿음이 너를 살렸다. 병이 완전히 나았으니 안심하고 가거라. (마가 5 : 34) 

예수께서는 “저 마을로는 돌아 가지 말아라” 하시며 그를 집으로 보내셨다. (마가 8 : 26) 

가라. 네 믿음이 너를 살렸다. (마가 10 : 52) 

죽었던 젊은이가 벌떡 일어나 앉으며 말을 하기 시작하였다. 예수께서는 그를 그 어머니에게 돌려 주셨다. (누가  7 : 15) 

일어나 가거라. 네 믿음이 너를 살렸다. (누가 17 : 19) 

일어나 요를 걷어 들고 걸어 가거라.(요한 5 : 9) 

소경은 가서 얼굴을 씻고 눈이 밝아져서 돌아 왔다.(요한 9 : 7) 

예수께서 사람들에게 “그를 풀어 주어 가게 하여라” 하고 말씀하셨다. (요한 7 : 44) 

영어와 한국어 사이에는 많은 차이가 있습니다. 언어 학습에 있어 이런 차이점들을 인정하고 그 차이들을 그대로 받아드리는(외우는) 방법이 학습효과를 높이기도 합니다. 

우리말 “오다”와 “가다”인 영어의 “come”과 “go”의 차이도 마찬가지입니다. 

come

제 직업은 세탁업이지요.  세탁소에 손님이 들어옵니다. 그 순간 카운터는 가게 뒤에서 일을 보고 있습니다. 그 때 카운터는 손님을 향해 “I’m coming.”하면서 손님이 기다리고 있는 카운터로 움직입니다. 

이 때 “I’m coming.”을 “내가 옵니다.”라고 하지 않지요. “제가 갑니다.”가 되는 것이지요. 

여기서 나고 자란 제 두 아이들은 비교적 한국말을 잘 하는 축에 속합니다. 완벽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거의 두나라 말을 구사하는데 불편이 없습니다. 그런데 두 아이 모두 종종 헷갈리게 말하는 것 가운데 하나 역시 바로  이 “오다”와 “가다”입니다. 

집에 오기로 한 시간에 도착하지 않는 아이들에게 전화를 걸어 묻습니다. “어디냐?, 언제오냐?” 그러면 아이들의 대답이지요. “지금 올께” 또는 “지금 오고 있어.” 바로 “I’m coming”을 한국식으로 표현한 말이랍니다. 

뭐 이 정도야 서로 다 이해할 수 있는 일이지만, 예수를 믿는 신앙에 있어서 이 come과 go, 곧 오다와 가다를 헷갈리면 정말 잘못된 신앙에 빠질 수가 있답니다. 

예수는 치유기적을 행한 이후  치료받은 이들을 향해 “가라”로 명하셨습니다. 어디로 가라고 했습니까? 바로 가족에게로 돌아가라. 네가 본래 살던 곳으로 돌아가라는 명령이었습니다. “이제 내가 네 병을 고쳐 주었으니 나를 따르라”라고 하거나, “내가 네 병을 고쳐 주었으니 세상 끝까지 돌아 다니면서 이를 알려라.”라고 하지 않았다는 말씀입니다. 

병을 고치려는 간절한 마음으로 예수를 찾아갔던 사람들이나, 예수가 찾아갔던 사람들의 본래 소망은 정상적인 사람이 되어 남들과 더불어 함께 사는 사회에서 떳떳하게 사는 것이었습니다. 

예수 시대 당시의 나병환자를 비롯하여 병자나 신체불구자들은 사회로 부터 차단되어 살아야만 했던 사람들임을 기억해야만 합니다. 

그런 사람들을 향해 예수는 “가라”, “네가 그렇게 원했던 본래 살던 곳으로 돌아가라.”고 명령한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유의깊게 살펴볼 지점이 하나있습니다. 

요한복음 9장에는 실로암못에서 눈 먼 사람을  고쳐주는 예수의 기적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리고 눈이 뜨여 세상을 다시 보게된 전에 소경이었던 사람을 향해 예수는 “가라”고 명하십니다. 집으로 돌아간 이 눈이 다시 뜨인 사람에 대한 후기가 이어집니다. 

“이에 쫓아내어 보내니라.”(요한 9 : 34) – 눈을 뜬 전에 소경었던 사람을 맞이한 고향사람들의 반응입니다. 그를 다시 내 쫓아 냈다는 말입니다. 

예수는 병을 고쳐주고 “가라”고 명했습니다만, 그가 “가는” 곳의 환경을 바꾸는 기적을 행하지는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역사를 길게 보면 “환경이 바뀐 기적들”을 확인할 수가 있답니다. 그리고 그 기적을 만든 이들은 “병을 고침 받은” 사람들이었습니다. 

저는 이 지점이 예수의 기적 이야기의 핵심이라고 이해한답니다. 

이에 관련된 글 하나 함께 읽어 보시길 바랍니다. 제가 몇 해전에 쓴 것인데  제 이해를 함께 하시는데 도움이 좀 될 것입니다.

가라(GO)! – go and sin no more (링크)

아내와 샴푸

이제 제발 샴푸를 쓰라는 아내의 성화에 샴푸로 머리를 감았답니다. 물론 샴푸를 사용한 것이 오늘 처음 있는 일은 아니랍니다. 다만 거의 사용해 본 적이 없다는 말씀입지요. 

그냥 세수비누를 사용해 왔지요.  한 삼십년 된 듯 합니다. 세수비누로 머리를 감은 세월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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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전에는 빨래비누를 사용했었지요. 거의 서른 나이까지 제가 머리감을  때 즐겨쓰던 비누였답니다. 누런색 사각 덩어리 빨래 비누였답니다.  그 놈으로 머리를 감고 나면 머리속까지 시원했답니다. 

그 빨래비누를 구할 수 없어서 사용한 것이 세수비누랍니다. 

샴푸는 영 제 체질에 맞지 않는다는 생각에 거의 사용하지 않았답니다. 아내의 성화에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약간의 세치라고 할만한 흰머리카락은 있지만 아직 검고 윤기있는 머리털을 유지하고 있답니다. 

나이 육십에 이제 샴푸로 머리를 감습니다. 

저는 이게 문명이라고 생각하지 않지만, 아내의 말은 듣는 게 편할 거 같은 생각이 들어서랍니다. 

누구는 새로 시작하는 나이라지만, 늙어가는 나이이기도 한 탓입니다.

죄인 – 기적 7

<하나님나라 – 구원의 확신으로 성서 읽는 법> – 34 

“최근 일주일 사이 네 가정이 생활고와 병에 시달리다 세상을 버렸다. 이들은 행복했던 서민층 가정이었으나 병마와 실직으로 졸지에 ‘틈새 빈곤층’이 됐다. 그중 대부분은 기초생활수급자나 차상위계층이 아니어서 일반적인 정부 지원 대상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들은 최근 신설된 복지제도에 따라 긴급 지원을 받을 수 있었는데도 이를 배제하고 극단적 선택을 한 것으로 드러났다.” – 2014년 3월 5일자 동아일보 인터넷판 사회면 

“추정소득 180만원 ‘송파 세 모녀’ 받을 수 있는 혜택은 없었다.” 

“정부는 국민들의 복지 체감을 높이겠다며 오는 10월부터 기초생활보장제도를 전면 개편하기로 했다. 최저생계비를 없애고 별도의 소득 기준으로 생계·주거·교육급여를 따로 지급하는 맞춤형 급여제도를 설계했다. 서울 송파구의 세 모녀가 살아있었다면 새 기초생활보장제도의 혜택을 받을 수 있었을까. 제도가 바뀌어도 달라지지 않는 까다로운 조건들 탓에 여전히 사각지대에 머무를 가능성이 높다.” – 2014년 3월 5일자 국민일보 인터넷판 사회면 

“그 때 어떤 중풍병자를 네 사람이 들고 왔다. 그러나 사람들이 너무 많아 예수께 가까이 데려 갈 수가 없었다. 그래서 예수가 계신 바로 위의 지붕을 벗겨 구멍을 내고 중풍병자를 요에 눕힌 채 예수 앞에 달아 내려 보냈다.  예수께서는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에게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 하고 말씀하셨다.  “이 사람이 어떻게 감히 이런 말을 하여 하느님을 모독하는가? 하느님 말고 누가 죄를 용서할 수 있단 말인가?” 하며 중얼거렸다.  예수께서 그들의 생각을 알아 채시고 이렇게 말씀하셨다. “어찌하여 너희는 그런 생각을 품고 있느냐?  중풍병자에게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 하는 것과 ‘일어나 네 요를 걷어 가지고 걸어 가거라’ 하는 것과 어느 편이 더 쉽겠느냐?    이제 땅에서 죄를 용서하는 권한이 사람의 아들에게 있다는 것을 보여 주겠다.” 그리고 나서 중풍병자에게  “내가 말하는 대로 하여라. 일어나 요를 걷어 가지고 집으로 가거라” 하고 말씀하셨다.  중풍병자는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벌떡 일어나 곧 요를 걷어 가지고 나갔다. 그러자 모두들 몹시 놀라서 “이런 일은 정말 처음 보는 일이다” 하며 하나님을 찬양하였다.” – 마가복음 2 : 3 – 12 

“예수 당시의 가난한 사람들이란, 그들이 처한 물질적, 도덕적, 사회정치적 상황에서 상류층의 사람들에 의해 경멸받고 벌받고 경원시 당하면서 그것이 당연한 것으로 여겨지던 사람들 모두를 말한다. 가령 하급 재정관리, 즉 강제로 로마 수비군에 협력했던 세리를 말한다. 그리고 그들의 물질적, 이데올로기적 수준으로인해 양심적으로 율법을 준수할 수 없는 나머지 사람들로부터 ‘죄인’이라 불리웠던 사람들 모두를 말한다. ‘죄인’이라는 말은 종교적으로 세력을 가지고 있으면서 그 결과 공동의 도덕을 수립했던 자들이 그러한 사람들에게 붙여준 상표임이 분명하다.” – Georges Casalis의 가난한 자들의 복음에서 

1970년대 까지만해도 동아일보 이름값 좀 했었답니다. 한겨레신문 초대사장이신 청암(靑巖) 송건호(宋建鎬)선생도 동아일보 편집국장 출신이시지요. 

송선생님께서 동아일보를 그만 두시고 한국 현대사에 대한 연구에 정열을 쏟으시던 무렵에 하셨던 말씀이랍니다. 

“일제시대에 자란 나는 경성제국대학이 꿈이었다. 해방이 되서 서울대학으로 바뀐 경성제국대학 법대에 입학하였다. 언론에 관심이 있어 그 길로 들어섰고, 조선 동아 등의 기자생활을 하면서 사회 엘리트로서 당연히 누릴 수 있는것이라고 생각하는 것들을 누리며 큰 고민없이 편집국장 자리까지 갔었다. 1975년 동아투위 사태이후 신문사를 그만 두고 한국 현대사를 다시 돌아보면서 내가 누려온 것이 당연한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내가 서울대를 다니고 사회 엘리트로써 승승장구 하며 살아오는 동안 내 동족들이 앓고 있던 터무니 없는 아픔을 외면하고 살아왔다는 것을 깨달았다는 말이다. 아니 좀 더 심하게 말하자면 그 동족의 아픔을 거름 삼아 내가 살아 온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에 이른 것이다.” 

송건호선생님이 일한던 곳, 동아일보의 오늘자 신문 기사를 보면서 “참 망가져도 더럽게 망가졌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모든 책임을 죽은 이에게 돌리는 뻔뻔스런 모습은 비단 동아일보에만 국한된 것이 아닐겝니다. 

삶의 모든 궁극의 목표나 가치 판단의 사회적 기준이 “돈”이 된 일은 박정희시대의 “잘 살아 보세” 깃발에서부터 시작된 것입니다. 물론 긍정적인 측면도 있었습니다. 다만 “더불어 함께 잘살아 보는” 고민과  과정이 없었다는 것이 문제가 된 것입니다. 잠시 그런 과정이겠거니 하고 생각했던 시대가 있었습니다. 이른바 민주정부 10년이 바로 그런 시대였다고 생각합니다. 

누가 잘하고 못하고의 문제가 아닙니다. 누가 옳고 그름도 문제도 아닙니다. 역사의 발전과정은 분명 “사회 공동체가 더불어 함께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향해 전진해 왔고 앞으로도 그 방향으로 나아갈 것입니다. 어떤 공동체에서는 그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의 핏값을 치루기도 합니다. 또 어떤 민족은 이미 조상들이 치룬 피값과 오랜 경험을 토대로 토론과 흥정을 통해 그 방향으로 나아가기도 합니다. 

솔직히 우리 민족은  이런 “더불어 함께 사람답게 사는 세상”에 대한 고민의 역사가 짧습니다. 이런 문제로 피흘려 본 경험도 일천합니다. (사실 이 부분을 이야기하자면 깁니다. 그래 이런 이야기를 제 나이에 맞게 옛날 화롯가에서 이야기해 주시던 할아버지 흉내내며 해 보고 싶은 마음으로 “예수쟁이, 예수로 세상보기”라는 팟캐스트를 시작했는데… 이런 저런 일들로 이즈음 시간을 내지 못하고 있답니다.) 

아무튼 “돈” 뿐만 아니라 “실리”, “권력” 등을 손에 쥐는 것만이 “승리”하는 것이라는 이즈음 잘 쓰는 “공학적” 사고들을 성서적 관점, 예수의 기적행위의 관점에서 보자면 그야말로 지탄받아 마땅한 것들입니다. 

이런 모습들은 이즈음 한국의 정치세력이나 그들을 지지하는 세력 또는 사회의 아젠다를 만들고 이끄는 언론과 경제주체들 모두에게 해당되는 것일겝니다. 

그래 아파야합니다. 이 세대를 한글을 사용하며 사는 모든 사람들이 말입니다. 특히 성서를 읽고 스스로  기독교인이라고  말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고민하고 아파해야만 합니다. 그게 기독교인의 바른 길입니다. 

신문기사

 

이제 성서로 돌아갑니다. 

예수가 기적을 통해 고쳐준 사람들이 앓고 있던 병이란 당시 사람들에게는 병일 뿐만 아니라 죄였습니다. 

뭐 멀리 갈 것 없습니다. 이즈음은 그런대로 많이 좋아져서 장애우니 장애인이니 하는 말을 쓰지만 제가 어릴 때만 하여도 “병신”이라는 말로 아픈 사람들을 욕보이게 부르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예수시대에는 병(문둥병, 맹인, 농아, 앉은뱅이, 광인 등등)은 곧 사회에서 격리되어야먄 하는 죄인이었습니다. 문제는 누가 이런 병에 걸렸느냐는 것입니다. 과중한 세금, 불공평한 나눔은 가난한 이들을 막다른 골목으로 내몰며 영양실조에서부터 각종 질병 나아가 불구자가 되는 곳으로 밀고 나간 것입니다. 

그런데 당시 정치적 또는 종교적 지배계층들은 과중한 세금이나 불공평한 나눔 같은 사회적 문제를 고민하거나 해결하려고 하지 않고  아픈 이들을 향해 죄인이라는  팻말을  걸게하고는 그들을 희생삼아 자기 뱃속을 채웠던 것입니다. 

마치 2014년 오늘날 동아일보와 그 세력처럼 말입니다. 

예수의 치유기적은 바로 “아니다! 지금 아픈 너희는 단연코  죄인이 아니다!”라는 선언이었습니다.“미안합니다”, “죄송합니다”라는 말을 남기고 떠나는 이웃들을 죄인으로 만드는 사회는 반성서적인 사회입니다. 그 사회에서 입다물고 있는 교회는 예수와는 아무 상관없는 헛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