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놈들 – 1

비록 라디오가 뒷전으로 물러앉은 세상이 되었지만 여전히 음악애호가들을 위한 FM방송이나 최근 유행하는 팟캐스트같은 신종 라디오의 위세는 여전합니다. 그렇다하더라도 제 어린 시절의 진공관 라디오가 누렸던 위세에 비하면 많이 퇴락한 셈입니다.

김일, 장영철 등이 나오는 프로레슬링을 보노라고 동네 유일하게 흑백 텔레비가 있었던 쌍둥이네 집으로 몰려갔던 제 또래 아이들과 제 어린 시절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서울 신촌이었답니다.

진공관 라디오그 무렵 대세는 라디오였습니다. 초등학교 입학 무렵에 알지도 못하고 들었던 라디오 연속극 ‘현해탄은 알고 있다’의 주인공 아로운은 아직도 제 기억에 남아있답니다. 한명숙, 현미, 이금희, 위키리, 최희준에 이어 배호까지 다 이 라디오를 통해 섭렵하였습니다. 장소팔, 고춘자에 이어 구봉서, 곽규석, ‘인천 앞바다에 사이다가 떳어도…’의 서영춘 까지도 아무렴 라디오였답니다. 아직 트랜지스터가 나오기 전, 진공관 라디오였답니다.

그 무렵부터 제가 대학생이 되고 군대를 갔다오고 미국으로 이민을 온 이후까지 라디오를 지킨 프로그램이 하나 있답니다. <김삿갓 북한 방랑기>라는 5분 드라마랍니다.

제 또래치고 이 라디오 프로그램 들어보지 못한 사람은 아마 거의 없을 듯합니다. 제 머리가 굵어지고 트랜지스터 라디오 시대가 된 이후로는 거의 들어보지 못했지만, 1960년대만 하여도 ‘두만강 푸른 물에…’에 함께 아주 귀에 익은 방송이었답니다.

내용은 거의 엇비슷해서 지옥같은 북한 인민들의 삶을 고발(?)하고 풍자하는 것이었습니다. 굶주리면서 천리마운동이라는 노동에 혹사 당하고 공산당 압제에 신음하는 북의 인민들의 모습을 김삿갓이라는 인물이 고발하고 풍자하는 내용이었습니다. 아마도 제 또래나 이즈음 한국 뉴스에 종종 등장하는 어버이연합에 속한 분들과 같은 세대 사람의 기억속에는 이 방송이 심어준 북한에 대한 인식이 상당히 깊이 남아 있을겝니다.

그리고 이제 2014년 스마트폰 전성시대에 서서 그 때를 돌아봅니다. 1960년대 일인당 GNP가 북한은 325달러, 남한은 94달러였답니다. 거의 3.5배가 차이가 났답니다. 바로 <김삿갓 북한 방랑기>라는 드라마가 시작하던 무렵 이야기입니다.

게다가 그 무렵만해도 북은 지금과 달리 어느 정도 분배에 있어서 평등이 이루어졌던 시절이었고, 남한은 부(富)의 쏠림 현상이 오늘과 못지 않았으므로 보통의 북의 인민과 남의 국민을 대비해 본다면 당시 <김삿갓 북한 방랑기>의 방송내용은 명백한 허위였습니다.

거짓이거나 말거나 남에서 살았던 저와 같은 사람들은 북은 사람살 곳이 못된다는 확고한 믿음이 있었답니다.

제가 “때려잡자 김일성”을 외치며 군생활을 할 때인 1970년대 중반까지도 북이 남쪽보다 경제력에서 앞서 있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또한 그 무렵 전방부대 중대장이나 대대장의 월북소식이 쉬쉬하며 장병들 사이에 떠돌았던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다 남북의 경제적 상황이 급변하기 시작한 것은 1980년대에 들어와서 입니다.

그리고 2014년 현재 기준으로 본다면 남한은 1인당 소득 28,739달러, 경제 규모는 1조 4,400억 달러인 반면에 북한은 1인당 소득 506달러, 경제 규모는 2012년 기준 123억 달러랍니다. 도저히 서로를 비교할 수 없는 차이의 수치입니다.

더 알기 쉽게 설명하면 2011년 한 해 북한 전체 예산은 2020억원이었는데, 2014년 남한의 종로구 한해 예산은 2980억원이었답니다. 정말 비교할 걸 비교해야지 비교가 안되는 수준이랍니다.

진공관 라디오 시대였던 1960년대에 3.5배 앞서있던 북한이 2014년 스마트폰 시대에 이르러 남한의 1/40의 수준이 된 것입니다.

지나간 50년의 과정이 이랬니? 저랬니?하며 따져 볼 이유도 없이 2014년 오늘 “돈이 최고의 가치가 된” 남에 사는 국민들 가운데 북의 인민을 부러워 하거나 북의 지배체제를 받들거나 찬양하는 사람들이 있을 수가 있을까요? 만일 있다면 그건 정말 정신나간 사람들이 아닐까요?

일테면 나보다 3.5배나 잘 살던 사람이었는데 50년이 흐른 후 보니 내가 그 사람보다 40배나 잘 살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도 그 사람의 지금의 삶을 부러워한다? 도대체 말이 됩니까? ‘돈이 최고’라고 생각하며 살아온 사람들에게 말입니다.

아무리 상식을 뛰어넘어 생각을 해보아도 남한 국민들 가운데 그런 사람은 하나도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참 이상한 일은 ‘종북(從北)주의자’들은 차고 넘친다는 말씀입니다. 남한에서도, 이곳 이민자들의 동포사회에서도 말입니다.

심지어 이곳에서 뿌리내리고자 이민 온 미국 동포 중에 신은미라는 분도 종북주의자라고 하는 뉴스를 보았답니다. 그 이가 북을 다녀온 모양이고, 거기에서 사람사는 모습들을 ‘오마이 뉴스’라는 남한 정부가 허락한 매체에 기고를 했고, 그 글을 즐겨 읽은 이들이 제법되었고, 그래 책도 내고  토크 컨서트라는 행사도 한 모양입니다.

오마이 뉴스에 기고한 그이의 글을 읽어보니 2014년을 스마트폰 전성시대로 사는 그이는 당연히 스마트폰으로 찍은 북의 현실을 이야기하고 있었답니다. 그곳에서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말입니다.

그런데 이미 선진국의 문턱에 들었다고 생각한 남한의 정부 당국과 1960대로 살아가려는 일부 세력들은 신은미씨가 진공관 라디오시대의 <김삿갓 북한 방랑기>와 다른 이야기를 한다고 종북주의자라고 한답니다.

2014년 이 문명의 시대, 선진조국 대한민국에서 진공관 라디오 시대로 살고자 하는 놈들은 도대체 누구일까요?

하나님이 어찌 알랴?

추수감사절 연휴를 참말 잘 쉬었습니다. Thanksgiving day 전날에 눈이 좀 오고 바람이 불었는데, 그 탓이었는지는 모르겠으되 집에 전기와 인터넷, 전화가 불통이 되었었습니다. 다행히 당일 늦은 밤 전기는 다시 들어왔지만 인터넷과 전화는 주일(오늘) 오후까지 나흘 동안이나 불통이었답니다.

다석강의전화는 휴대전화가 있으니 별 문제가 아니었지만 인터넷이 끊어지니 저녁시간이 몹시 길었답니다. 컴퓨터나 TV를 볼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손에 든 것이 유영모선생님의 ‘다석강의’입니다. 제 정신 차리며 사노라고 틈나면 꺼내들곤 하는 책인데, 모처럼 사흘밤을 끼고 살았답니다.

유선생님의 말씀들을 읽으며 이즈음 두루 흐트러져 어찌할 바를 모르던 생각 조각들이 하나로 꿰어지면서 머리 속이 환해지는 참 쉼을 누렸답니다.

왜 한국교회와 한인교회는 유영모님이 가르친 ‘뜻의 믿음’과는 전혀 다른 방향인 ‘맛의 믿음’만을 쫓게 되었을까?

왜 한인교회와 한국교회에는 ‘예수의 뜻을 쫓아 살고자 했던 유영모’류의 사람들을 보이지 않고, ‘맛 곧 돈과 권세의 누림만을 쫓는 이명박, 문창극, 이인호, 조용기, 김홍도……’류들이 창궐할까?

왜 한국교회와 한인교회는 “지금 멸시받고, 버림받고, 고통 받고 조롱받는 이들에게  조용하라고 윽박지르는 권력 앞에서 조용히 가만있기만 하는 것일까?

왜? 자기 일에 책임지지 않는 권력자들과 제 배불리우는 일에만 혈안이 되어, 있지도 않는 종북주의자들을 양산해내며 정, 경, 군, 관, 언, 학, 종교 등 제반 권력에 빌붙어 사는 악인들은 “피둥피둥 살이 쪄서, 거만하게 눈을 치켜 뜨고 다니(시편 73:4)”는 세상이 되었을까?

왜? “하나님의 백성마저 그들에게 솔깃하여 그들의 물에 흠뻑 젖어 들어서 한다는 말이, “하느님이 어떻게 알랴, 가장 높은 분이라고 세상 일을 다 아느냐?”고 할까?

왜? “그들은 악인이어도, 몸은 항상 편하고 재산은 늘어만 가는”(시편 73 : 11-12)” 세상이 되었을까?

이제 저물어가는 2014년 오늘, 제 앞에 놓인 물음들에 대해 유선생님께서는 명쾌한 답변을 내리십니다.

“그러므로 참 예수쟁이가 되라!”는 말씀입니다.

기독교인이 되신 후, 유불선(유교, 불교, 선교)을 통달하여 꿰뚫고 그 곳에도 길이 있다하셨지만 끝내 참 예수쟁이로 살다가신 선생님의 가르침이었습니다.

자유, 독립, 통일, 공평, 평등 같은 거창하고 큰 것을 말씀 하시면서도 그것이 구름 같은 것이 아니라 지금 제가 발딛고 사는 현장에서, 내 가정에서, 내가 속한 공동체에서 작은 것 하나라도 이루며 사는 예수쟁이가 되라는 권고였습니다.

비록 “하나님인들 어떻게 알 수 있으랴!”고 떠드는 이들이 세상 주류를 이루고 있는 세상일지라도 말입니다.

모처럼 푹 쉰듯한 추수감사절 기간이었습니다.

인터넷은 다시 연결되어 이슬람 국가(IS), Ferguson사태, 세월호 유가족 등등 ‘하나님이 어찌 알랴?’는 세상은 다시 제 곁으로 왔지만 말입니다.

백성이 소외감을 느끼면…

포박자세상은 참 빠르게 많은 것들이 변했고, 변하고 있고, 변할 것입니다.

그런데 문득 생각을 멈추고, 변(變)하지 않고 정지(停止)하고 있는 것들을 따져 보기로 한다면 그 역시 엄청나게 많거니와 어쩜 그렇게 예나 지금이나 똑같을까 하는 물음을 지울 수 없답니다.

뚱딴지같은 소리라고 여길 줄 모르지만 정말 변하지 않는 것들 가운데 하나는 바로 사람이 아닐까합니다.

세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는 속담이 여전히 유효한 세상살이를 보며 해 보는 말입니다.

그 사람들이 함께 모여사는 세상 역시 전혀 변함이 없는 것을 보노라면 깜작깜작 놀랄 때가 있답니다.

어느 사회건 신과 사람 사이에서 브로커 노릇을 하며 사기를 일삼는 종교 브로커들이 늘 있어왔다는 종교적 무변화 곧 정지상태는 이어져 왔고요.

인류사에 있어 가진 자와 못가진 자의 갈등이 없었던 때는 어느 사회든 단 한차례도 없었다는 무변화가 있을 것이고요.

이런 저런 이유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자꾸 사람들의 생각에서 점점 뒷전으로 밀려가는 듯한 세월호 집단 생수장 사건 초기에 있었던 “국가란 무엇인가?”라는 물음 역시 곰곰히 따져보면 인류 역사 이래 변하지 않고 사람들이 계속 던져 온 질문이랍니다.

어쩌면 이런 변하지 않는 사람들의 모습에 대한 변하지 않고 계속되는 질문으로 하여 사람들의 역사는 발전해 나왔고, 발전해 가고 있고, 발전해 나갈 것입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기원전 기원후를 따질 것도 없이 오늘날에 똑같이 품고있는 “국가란 무엇인가?”에 대한 물음에 대한 옛날 사람들의 생각을 곱씹어봅니다.

“도시국가의 상태는 개인의 몸과 아주 닮아있다. 일테면, 우리들의 손가락 하나가 상처를 입으면 몸 전체가 고통을 느끼듯이, 제대로된 국가는 이러한 유기체와 아주 흡사하다. 국민 가운데 어느 누구든 고통을 당하면 국민 전체는 그것이 마치 자기의 것인양 느낄 것이고, 국민 개개인의 즐거움이나 고통은 국민 전체의 그것이 될 것이다.” – 플라톤의 국가론

국가는 마치 하나의 선박이나 살아있는 유기체와도 같다. 그 일부의 와해는 전체의 보전에 치명적인 붕괴 요인이다. – 플라톤의 법률

인간의 몸은 국가를 상징하는 바와 같다. – 중략 – 정신(精神)은 제왕(帝王)과 상응하고, 피는 신하와 기(氣)는 백성과 상응한다. 이러한 까닭에 자신의 몸을 자제할 수 있는 이는 한 나라를 다스릴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수 있다. 백성을 사랑하므로써 국가에 화평을 가져올 수 있고, 자신의 기를 함양함으로써 자신의 몸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백성이 소외감을 느끼면 국가는 와해, 붕괴될 것이고, 기가 다하면 사람의 신체는 생명을 유지하지 못할 것이다. – 포박자(抱朴子)

그들의 차이

제가 살고 있는 델라웨어주는 한적한 시골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곳입니다. 해가 떨어지면 캄캄하답니다. 가로등을 거의 볼 수가 없답니다. 물론 시내 중심가나 상점가들에는 가로등이 밝게 빛나지만 저녁 9시즈음이면 대부분 상가들이 문을 닫고 조용하답니다.

그저 무덤덤하게 이번 분위기에 맞추어 살다보니 이런 풍경이 몸에 아주 익숙하답니다. 그런데 어쩌다가 이웃 대도시 나들이를 마치고 돌아오는 날이면 제가 촌에 살고 있다는 것을 절감하게 된답니다.

그러다보니 아주 급격한 변화도 없는 곳이랍니다. 미국 남부 여행을 하다가 돌아오면 이 곳 사람들도 급한 구석이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긴 합니다만, 1970년대 서울 풍물에 익숙한 제 눈에는 여전히 느긋한 촌냄새가 풍기는 곳이랍니다.

이 마을에서 제가 세탁소를 하며 밥먹고 살기 시작한지도, 거하게 말씀드리자면 사반세기가 흘렀습니다.

그런데 그 때나 지금이나 똑같답니다. 손님들의 모습들과 그들이 맡기는 세탁물 역시 크게 변한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물론 유행의 변화는 있어왔지만 그저 이 곳 분위기(제 가게가 위치한 동네 분위)에 맞을 성 싶은 가격대의 옷들을 세탁한다는 말씀입니다.

이젠 제법 경륜이 쌓인 세탁소 경험 가운데 딱 두번 제 세탁소와 이 지역 형편에 맞지않는 고가품의 옷들을 세탁한 때가 있답니다.

한 때는 약 십오륙 년 전의 과거 일이고, 또 다른 한 때는 바로 이즈음이랍니다. 제 가게 근처에 대학교가 있고 이 대학교의 어학연수원에 해마다 외국인 학생들이 많이 들어와 배우고 간답니다.

십 오륙년 전, 한국에 IMF사태가 터지기 직전 한 때 한국에서 온 어학연수원 학생들이 들고 온 세탁물들은 동네 사람들의 세탁물과는 차원이 다른 가격의 옷들이었답니다. 한 때 그랬다는 말씀입니다.

이즈음에 세탁료는 묻지도 않고 고가의 옷들을 맡기고 가는 젊은이들의 거의 백프로가 중국에서 온 연수원 학생들이랍니다.

“중국” – 이제 가히 미국과 더불어 세계를 양분하는 세력으로 평가하기도 합니다. 오늘 CNBC 뉴스는 그런 중국에 대해 다루는 프로를 내보냈답니다. 초강대국인 중국이 이미 경제, 군사적으로 막강한 힘을 갖고 있지만 세계는 물론 아시아를 지배하지는 못한다는 내용입니다. 미국에 비해 아직은 20년 이상 쳐져 있다는 이야기도 덧붙입니다.

그 뉴스를 보다가 생각난 미국과 중국에 대한 생각, 그리고 한국, 한국민에 대한 생각 하나 적어보려고 합니다.

제가 중국의 영향을 받는 문화 관습속에서 자라고 사고하며, 미국에서 미국인으로 사는 한국사람이라는 생각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중국적 사고와 미국적(또는 서구적) 사고방식의 근원적인 차이는 “신(神)을 바라보는 시각과 생각”일 것입니다.

오랜 기간 기독교 영향 아래서 역사발전을 이룩한 서구 및 미국적 사고의 바탕에는 창조주(創造主)이자 자연과 인간을 지배하고 통제하는 신(神)이 있습니다.  나아가 인간은 자연에 대해 신의 대리자 역할을 하는 수준의 위치에 놓여 있다는 사고의 틀에서 세상을 바라봅니다.

그에 반해 중국의 전통적 사고에는 이런 서구적 개념의 신(神)이 없습니다. 물론 하늘(天)이라는 개념이 있지만 이 역시 서구적 신의 개념은 아닙니다.

세상 모든 것들은 자연의 일부분이라는 생각이 중국적 사고의 시발입니다. 해, 달, 별은 물론이거니와 인간, 소, 개, 말에서 신(神)조차도 자연를 이루고 서로 상생하는 일부분들로 생각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생각의 중심에는 바로 그런 생각을 하는 인간이 있습니다.

서구적 사고의 윤리 또는 도덕적 기준이 신(神)에게 있다면, 중국적 사고의 도덕적 윤리적 기준은 바로 사람에게 있는 것입니다. 윤리(倫理)의 윤(倫)이 사람 인(人)변으로 시작하는 것이나 도덕(道德)의 덕(德)이 마음 심(心)변으로 시작하는 까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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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흐름과 믿음이 바로 사람의 마음에서 시작하고 끝난다는 것이 중국적 사고라는 것입니다.

미국이 소련을 상대하며 세계를 이끌었던 시대와는 사뭇 다른 까닭입니다.

군사, 경제적인 힘으로만 양국을 가늠하기 어려운 것은 바로 생각의 바탕에 큰 차이가 있기 때문입니다.

유교적인 틀로 기독교를 해석하고 벼락부자들의 천민 자본주를 신이 주신 복으로 믿고 사는 일부 한국인들도 곁들여 생각해 보면서…

촌구석 세탁쟁이가 모처럼 중국 아이들이 맡긴 고가의 옷들과 CNBC의 방송을 생각하며 몇 자 적어 보는 것입니다.

세월호, 차라리 남기지 않았다면…

지난 일요일 “세월호를 기억하는 필라 사람들의 모임”이 주최한 걷기대회에 다녀왔답니다. 그리고 그날 사진과 동영상을 찍었답니다. 오늘 그 영상들을 함께 참석했던 이들에게 보내자는 생각으로 조금 편집을 해 보았답니다.

그러노라고 세월호 생수장 사건과 관련한 동영상들을 두루 찾아 보았답니다.

그러다 든 생각입니다.

DSC01844첫째는 과연 “문명(文明)”이란 무엇일까하는 물음이었습니다. 뭐 거창한 질문을 하자는 뜻이 아니고, 보통사람들이 물속으로 가라앉는 배안에서 동영상을 남겨 여러사람들에게 보여줄 수 있는 기술이 보편화된 것은 채 십년도 안된 일입니다. 엄청난 문명의 발전이지요. 그런데 그 문명이 얼마나 사람의 마음을 후벼파는 아픔으로 바뀔 수 있는지를 한번 생각해 보았답니다.

차라리 남기지 않았다면 자식을 잃은 부모들의 마음을 이토록 추스리지 못할 정도로 뒤짚어 놓지는 못하지 않았을까하는 물음이었답니다.

두번째로는 사람이 과연 어디까지 뻔뻔해 질 수 있을까하는 물음이었습니다. 천개의 사실도 하나의 진리(힘있는 자들이 만들어 놓은 틀로써의 진리)를 이기지 못한다는 현실에 대한 물음이랍니다.

마지막으로는 그러므로 더욱 해야할 일들이 많은 세상에 대한 감사입니다. 바로 살아있음에 대한 감사입니다. 그저 제가 살고 있는 이 땅끝에서, 작은 몸짓 하나라도 아픈 이들, 더불어 함께 살려고 애쓰는 이들과 함께 하며 오늘을 열심히 살아갈 수 있음에 대한 감사랍니다.

 

 

이민 복권(Green Card Lottery)

매주 제 세탁소 손님들을 비롯하여 (제게 의뢰한)한인 세탁인들의 가게 손님들에게 매주 일요일 아침 짧막한 이메일 편지를 보내는 일을 시작한 지도 벌써 일곱해가 지났습니다.

us-dv-lottery-2014-300x218단 한차례도 쉰 적이 없으니 제법 오래 이어져 온 일입니다. 편지를 띄우고나면 이런 저런 답신들을 많이 받게됩니다.

오늘은 이번 주에 제가 받은 답신 가운데 하나를 여기에 소개드리려고 합니다.

지난 일요일 제가 띄운 편지 내용은 <미국 복권 이민 비자(American Green Card Lottery)>에 대한 내용이었습니다.

바로 아래와 같은 내용이었답니다.

복권 사보신 적 있으신지요? 복권에는 여러 종류가 있지요? 어떤 종류의 복권을 사보셨는지요? 그 런데 혹시 복권 이민 비자(American Green Card Lottery)라는 말을 들어 보신 적이 있으신지요? 말 그대로 미국에서 살 수 있는 비자를 복권 추첨을 통해 발급해주는 것이랍니다.

로또 이민 비자의 정식명칭은 ‘다양성 이민 비자 (Diversity Immigrant Visa)’랍니다. 미국 사회의 다양성을 확보한다는 취지로 전 세계 사람들 가운데 미국에서 살기를 원하는 사람들 가운데 추첨을 통해 매년 최대 55,000명에게 미국 이민 비자를 발급해 주는 제도랍니다.

지난 6일 월스트리트 저널 온라인판에 실린 이 로또 이민 비자에 대한 기사를 보면서 저는 깜작 놀랐답니다.

올해 이 프로그램을 통해 비자를 얻기 위해 응모한 사람들의 숫자가 1,100만 명이 넘는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가운데 추첨을 통해 55,000명이 미국 이민 비자를 얻게된다는 것입니다.

더더군다나 놀란 사실은 미국에서 살기를 원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으로 알려진 나라들, 일테면 멕시코, 브라질, 캐나다, 영국, 중국, 인도, 한국, 필리핀, 베트남 등등의 국적을 가진 사람들은 로또 응모 자격조차 주지 않는답니다. 이미 그 나라 출신의 이민자들이 미국내에 많기 때문이랍니다.

그러니 만일 세계 모든 국가에 사는 사람들에게 복권에 응모할 자격을 준다고하면 아마 응모자가 몇 천만명이 될 지도 모를 일인 것이지요.

제가 무슨 이민제도나 이민비자발급 제도 같은 것을 말씀드리고자 함이 아닙니다. 저도 이민 일세이지만 잘 알지 못하는 부분이기도 하고요. 다만 미국에서 살기를 원하거나 미국민이 되기를 원하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다는 사실에 놀랐다는 말입니다.

만일 당신이 복권을 사보신 경험이 있다면, 그 사람들의 심정을 조금은 쉽게 이해하실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고보면 이민 일세는 저는 이미 복권에 당첨된 것인지도 모를 일입니다.

건강한 미국시민이 되는 일, 우리 동네에서 꼭 필요한 세탁소 주인이 되는 일은 이미 제가 당첨된 복을 지키는 일일 것입니다.

감사의 계절입니다. 이 땅에서 뿌리 내리고 사는데 가장 크게 도와 주시는 우리 세탁소 손님들에게 드리는 감사가 매우 큰 계절입니다.

그리고 Driggs씨에게서 받은 편지 번역과 원문입니다.

영에게,

당신이 이곳에 와서 기쁘다. 당신 아내와 당신은 분명히 열심히 일하고, 지역사회에 참여하며, 하는 일을 통해 가치를 더하고 있다.

대형 함선이 등장하여, 이곳에서 새 삶을 일구려는 다양한 사람들을 데려오기 (시작한 때로부터) 대략 6만년 전에, 머나먼 그리고 아마도 험난한 여정을 통해 걸어서 원래 이곳에 도착한 아메리칸 인디안들만이 부족 시민인 나라가 바로 이 미국이다. 하지만, 아마도 “불과” 10만년 전에는 이 땅에 인간은 전혀 없었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현재 불법적인 방법으로 우리 나라의 남부 국경을 넘어 도착하는, 그들 중 상당 수는 범죄 전력이 있거나 범죄를 저지를 의도가 있는 이민자들에게는 “당신이 이곳에 와서 기쁘다”는 말을 나는 할 수가 없다.

다행히도, 그들은 최근 까지 남서부 지역에 머무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사실은 미국인들의 99%는 이민자였다; 단지 어떤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 보다 더 오래 살았을 뿐 이다. 많은 미국인들이 이런 사실을 잊고 사는 것 같다. ─ 아니면 초등학교에서 주의를 기울이지 않아 애당초 그것을 배우지 못했을 지도 모른다.

우리 중 어떤 사람들은 자신의 선조들이 전쟁에서 싸웠으므로, 그들은 이곳에서 살 권리를 획득했지만, 다른 사람들은 얻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부계와 모계 쪽 모든 내 선조들은 프랑스와 인디언간의 전쟁 (French & Indian War),’ ‘미국 독립전쟁,’ ‘1812년 전쟁’에 참전했지만, 나는 그것을 이 나라가 사람들이 상대적으로 자유롭게 살 수 있는 나라로 만드는데 내 조상들이 기여한 것으로 보며, 또한 그것이 내게 특별한 특전을 수혜할 자격을 주는 것이 아니라, 내 조상들의 본에 맞게 살아가야 한다는 의무를 뜻하는 것으로 여긴다.

보다 최근에 낙원에 온 이민자들은 찾은 것을 모두 자기 자신만을 위한 것으로 지키기 위해, 그들 보다 후에 오는 사람들에게 문을 닫고 싶어하는 습관이 있다는 것을 나는 알게 되었다.

자신 보다 나중에 오는 사람들이 일을 열심히 하려 하지 않고, 지역사회의 일원이 되려 하지 않고, 우리가 원하거나 필요로 하지 않는 기술과 재능을 들여오려 하거나, 이 땅을 보다 나은 곳으로 만드는데 조력하지 않으려 하는 경우에 한해, 그 생각이 공정하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경제학을 수년 동안 공부한 바에 따르면, 우리가 기술과 재능을 소지한 이민자들을 지역사회에 들이면, 모두가 보다 나은 상태가 되며, 그것은 보통 모두의 삶이 개선되는 결과를 낳게된다.

 현재 처한 불쾌한 또는 희망이 없는 상황이 어떻던지 간에, 단순히 해를 끼치기 위해, 사람들이 이곳에 오고 싶어하는 경우는 아주 예외적이겠지만, 만일 그것이 실제 상황이라면, 처한 특별한 상황이 무엇이든지, 그것은 그들에게 문호를 개방할 이유가 결코 되지 않을 것이다.

단지 그런 이유만으로도 남서부 국경지역 주(州)의 문제가 해결되기를 바란다.

만일 기꺼이 지역사회의 건설적 일원이 되려한다면, 그렇다면 어디지역에 살고 있든지, 모두에게 (이민비자) 복권추첨에 신청할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

뉴스 레터를 계속 보내도록하라. 시사하는 바가 많은 내용들이다!

Charlie

그리고 편지 원문입니다.

Young,

I am glad you came here.  You and your wife certainly work hard, participate in the community, and add value by what you do.

As this is a country in which only the Native American tribal citizens originally arrived by a long and possibly torturous journey on foot before large ships started showing up, bringing a variety of people wanting to make a new life here some 60,000 years later.  But we do know that perhaps “as little” as 100,000 years ago, there were no people here at all.

I cannot say “I’m glad you came here” about some of the immigrants currently arriving by unauthorized means across the southern borders of our states, as a few too many of them have criminal backgrounds or a criminal intent for being here.

Fortunately, they have tended to stay in the Southwest until recently.

But the truth is that 99+% of Americans were immigrants; some have just been here longer than others.  A few too many Americans tend to forget that — or didn’t pay attention in grade school and learn it in the first place.

Some of us think that because their ancestors fought in a war, they earned a right to be here that others didn’t earn.

My ancestors on both my father’s and my mother’s side of the family did fight in the in the French & Indian War, the American Revolution and the War of 1812, but I look at that as their contribution to helping make this country a place people can live in relative freedom — not a grant of special privileges for me, but an obligation to live up to their example.

I have learned though that more recent immigrants coming into paradise have a habit of wanting to slam the gate on those coming in behind them, to protect what they’ve found all for themselves.

To me, that only seems fair if those coming in next are not willing to work hard, be a part of the community, bring some skills or talents we don’t need or want, or are unwilling to help make this a better place.

Several years of studying Economics taught me that we are all better off when we let immigrants with skills and talent into the community, as normally doing that results in everyone’s lives improving.

It is unusual for people to want to come here from whatever unpleasant or hopeless situation they are in simply because they want to do harm here, but when that is the situation, whatever that unusual reason might be is never going to be seen as a good reason to keep the door open for them.

I wish we would fix the problem in the southwestern border states for that reason alone.

Everyone else from wherever they come from — if they are willing to be constructive part of the community, then they should have a chance in the lottery!

Keep up the newsletters.  Good thought provoking stuff!

Charlie

우리는 이 땅에 최근에 이주한 이민자들입니다. 한국(남한)사회도 이즈음에 들어 다문화사회로 막 진입해 들어가고 있습니다.

Driggs씨는 이 땅을 살아가는 한 건강한 중년 사내이며, 그 역시 이민자의 후손입니다. 그의 생각에 귀기울여 보아도 좋겠다는 생각으로 올려봅니다.

세월호 – 난 더욱 예수쟁이어야

세월호 집단 생수장 사건이 일어난지도 어느새 반년이 지났습니다.  세월호 선장을 비롯한 선원들의 일심 재판도 끝났습니다. 끝내 시신조차 거두지 못한 아홉 영혼(추정하는 숫자일지도 모를 일이지만)들의 가족들에게 깊은 한을 남기며, 시신 수색작업도 끝냈다고 합니다.

노란리본실로 어이없는 세월을 살아가고 있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거대한 여객선이 육지가 빤히 바라보이는 연안에서 기울어져 바닷속으로 잠겼고, 바다 속으로 가라앉은 배에 타고 있던 사람들은 사고 이후 단 한사람도 구조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희생자들의 대부분이 아직 인생을 꽃피우기도 전인 아이들이었습니다.

육개월이 지난 지금까지도 왜 사고가 일어났는지, 왜 그 많은 아이들이 속수무책으로 바다속에서 죽어가야 했는지는 아무 것도 밝혀진 것이 없습니다.

오늘 이런 저런 뉴스들을 훑다가 정말 기가 찬 나머지 헛웃음 터트릴 수 밖에 없는 기사를 보았답니다. 달탐사를 위한 엄청난 예산을 쪽지예산으로 들이밀었다는 소식이었습니다.

도대체 “사람”은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라는 물음이 이어졌습니다.

사람들이 모여 만든 공동체에서 – 그것을 국가라 부르든, 사회라 부르든, 교회라 부르든, 당파라고 부르든 간에 – 가장 중요한 핵심은 사람이건만 어디에도 “사람”을 찾아보기 힘들다는 말씀입니다.

그저 오로지 “돈”입니다. “권력”은 돈을 그러 모으기 위한 일차적 수단이고요. 그렇다면 돈과 권력을 누리는 사람들이 있어야 할 터인데 그조차 없습니다. 물론 거기 모습으로만 사람이 있으되 이미 사람이 아닌 악귀들만 있을 뿐입니다. 사람이라면 당연히, 반드시 있어야만 하는 “부끄러움”을 상실한 악귀들만이 공동체의 주인 행세를 하고 있는 모습이랍니다.

세월호 집단 생수장 사건 이래로 정말 조용한 공동체가 한 곳 있습니다. 바로 개신교회입니다. 그렇게 느끼는 까닭은 제가 평생 개신교도인 까닭입니다. 이 나이에 개종(改宗)을 하거나 무종교자가 되는 일은 없겠기에 제겐 그저 아픔입니다.

기억나는 것이라고는 세월호 생수장 사건으로 인해 불거진 인사파동에서 드러났던 문창극이나 김성주 류의 사람들이 읊어댔던 “하나님의 뜻”이라는 말 뿐입니다.

그들이 말하는 “하나님의 뜻”이야말로 “사람을 철저히 배제한” 것입니다. 오직 “돈과 연계된 악귀들 만을 위한” 세상을 말하고 있는 것이지요.

그런데 정말 큰 문제는 문창극이나 김성주 류가 말하는 “하나님의 뜻”을 말하고 믿는 사람들이 한국교회와 한인교회에 여전히 차고 넘치는 주류라는 것입니다.

뭐 멀리 가서 찾을 이유가 없답니다. 그저 주변에 널려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개신교도임을 부인하지도 않을 것이고, 예수와 교회를 버리지 않을 것입니다. 제 신앙이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하나님의 뜻”을 믿기 때문입니다.

긴 역사를 통해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임할 것임을 믿는 까닭이 첫째요, 누구나 짧은 인생을 통해 모든 고난과 고통 속에서도 신을 향해 응답하는 몸부림이야말로 참 신앙이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세월호 집단 생수장 사건은 죽은 이들의 문제가 아닙니다. 살아있는 사람들이 현재 진행형으로 신앞에서 묻고 응답해야 하는 사건입니다.

제가 살며 사랑하는 목사님 가운데 한 분이신 홍길복목사님께서 그의 글 <디아스포라 코리안의 역사와 삶>에서 하신 말씀입니다.

<기독교신학에서 고난은 제3의 성례전이라 일컬어진다. 고난은 예수그리스도의 정체성이고 그의 구속사역의 방법이다. 십자가의 신학은 고난의 신학이다. 고난이 없이는 구원도, 부활도 없다. 고난은 인간존재의 가장 명확한 존재방식이다. 고난은 디아스포라의 존재방식이다. 고난은 모든 디아스포라의 삶과 이야기의 키 워드(key word) 이다.

고난을 넘어서는 길은 그냥 고난 가운데서 살아가는 것이다.  좌절을 극복하는 것은 절망의 밑바닥까지 떨어진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고난은 미화되서도 않되고 찬양할 수 있는 일도 아니다.  그러나 언제나 고난의 한 가운데는 고난의 주인이신 우주와 역사의 창조주가 계시다.

기쁨은 고난의 반대편에 있는것이 아니라 고난의 역사가 진행되는 한 가운데 자리를 잡고 있다.

승리 역시 실패가 끝난 뒤에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실패가 진행되는 한 가운데 다른 얼굴로 현존하여 있다.

“고난이 지난 후에는 승리가 온다”라고 믿고 기대하는 것은, 자칫 고난 자체가 주는 위대성과 값어치를 모독하는 것이 될 수 있다.

고난은 훗날 기쁨으로 바뀌어지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그 자체로써 이미 엄청나게 위대한 축복이요, 승리이다.

수학에는 답을 얻는 과정이 있듯이, 인생에도 정답으로 가는 과정이 있다.  그것은 개인이든 공동체이든 마찬가지이다.

고난이 정답이다.>

세월호 집단 생수장 사건을 먼나라 이야기로 치부하고 있는 교회의 모습에도 불구하고 제가 개신교도이어야 하고, 예수쟁이이어야만 하는 까닭입니다.

필라, 세월호를 기억하는 사람들

오늘 세월호를 기억하는 필라 사람들이 모여 함께 걸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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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라델피아 시내 한 복판에 있는 Fairmount 공원 Schuylkill 강변길을 한시간 가량 걸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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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에는 “미안합니다. 잊지 않겠습니다.”라는 문구를 뒤에는 “A Memorial Walking For Victims Of The Sewol Ferry Disaster In South Korea”라는 문구를 새겨놓은 노란색 셔츠들을 입고 함께 걸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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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사람들이 가을 길을 걷는다고 세상이 어떻게 달라지지 않는다는 것은 잘 알지만, 이렇게라도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연대하는 작은 끈이 있다면, 아파하는 누군가에게 작은 위로가 되고, 서로가 안고 가야하는 기억을 더욱 굳게 할 수는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으로 걸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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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기를 마치고 작별을 하기 전 우리들 옆에서 한 친구가 롤러 스케이트를 타고 한을 푸는 춤사위를 펼쳐 보였답니다. 

그리고 Schuylkill 강에 비친 오후의 햇살을 가르며 가는 오리 한마리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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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있음에…

기도빨(기도의 능력)도 없는 제게 기도부탁을 하는 사람들에게 그냥 미안하고 송구한 주일 아침입니다. 절실한 사람들에겐 오늘 아침처럼 뜰에 가득한 가을이 아픔으로 다가설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가게 손님들 가운데 친구들처럼 가깝게 지내는 이들이 있습니다. 그저 일상의 소소함들을 나누는 것이지요.

Kathy의 남편 Fred는 작지만 아주 다부진 몸매를 지닌 진짜 사나이였습니다. 사냥이 취미인 그에겐 여러 종류의 총들이 있고, 사격을 가르치기도 하였습니다. 얼굴이 영화 007의 주인공이였던 Sean Connery를 닮은 정말 멋진 사내랍니다. 그러던 그가 이즈음 암으로 투병중이랍니다. 지난 주에는 폐렴까지 겹쳐 Kathy를 덜컥하게 만들었답니다.

John은 이제 나이들어 그저 모든 것 넉넉히 바라보며 즐길 수 있을만했는데, 이즈음 눈가에 그렁하게 맺히는 눈물을 감추지 못한답니다. 10살짜리 손녀가 암판정을 받고 투병 중이기 때문이지요. John의 기도 부탁에는 응답조차 하지 못하고 그저 고개만 끄덕이고 말았답니다.

제가 사는 동네 한인교회 목사님 한분에게는 정말 자랑스러운 아들이 있었답니다. 그 분의 맏아들입니다. 고등학교 때는 학생회장도 하며, 주를 대표하는 청소년 오케스트라의 violinist였고, 대학생활에서는 한번도 우등을 놓쳐본 적이 없는, 장차 의사가 꿈이었던 대학 4학년이었답니다. 그런 자랑스런 아들이 지난 달에 교통사고로 목사님 곁을 떠났답니다.

그렇게 떠난 아들을 묻고 온 날 오후에 목사님 댁 하늘 위에는 쌍무지개가 떳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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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또 한 사내를 만났습니다. 한국에서 7년 만기형기를 마치고 지난해 미국으로 강제추방 당한 오십대 초반의 사내입니다. 그의 논리적이고 세련된 화법을 담은 소주잔에는 아직도 여전히 요한 모리츠처럼 25시를 살아가고 있는 한반도의 무수한 얼굴들이 담겨있었습니다.

가을이 가득한 뜰을 바라보며 주일 아침에 드리는 기도입니다. 아프고, 외롭고, 괴롭고, 흔들리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 갈 길 꿋꿋하게 걸어가는 이들을 생각하며.

살아있기 때문에

–       이정하

 

흔들리고 아프고 외로운 것은

살아 있음의 특권이었네.

살아 있기 때문에 흔들리고,

살아 있기 때문에 아프고,

살아 있기 때문에 외로운 것.

오늘 내가 괴로워하는 이 시간은

어제 세상을 떠난 사람에겐

간절히 소망했던 내일.

 

지금 내가 비록 힘겹고 쓸쓸해도

살아 있음은 무한한 축복.

살아 있으므로 그대를 만날 수 있다는

소망 또한 가질 수 있네.

만약 지금 당신이 흔들리고 아프고 외롭다면,

아아 아직까지 내가 살아 있구나 느껴라.

그 느낌에 감사하라.

도대체 뭐가 다를까?

지금으로부터 155년 전인 1860년 5월에 한양 땅에서 일어났던 사건입니다. 강화도령으로 잘 알려진 조선조 철종임금 11년차에 일어난 일입니다.

포도대장을 지낸 신명순의 집에 낯선 중년의 여인이 스며듭니다. 여인의 이름은 주례, 당시 나이 쉰 네살이었습니다. 여인은 그 때 열 세살이었던 아들을 데리고 신명순의 집을 침입합니다. 가슴에는 단도(短刀)를 품고 있었다고 합니다.

마침 신명순은 큰 사랑방에서 아우와 함께 담소중이었다고 합니다. 당시 신명순의 나이는 예순 둘. 주례라는 여인이 단도를 꺼내들고 신명순을 향해 달려들었으나 신명순 형제의 힘에 맥없이 저지당했습니다. 열 세살 어린 아이도 그냥 얼어버렸고요.

아우성 소리에 신명순의 하인들이 달려들어 여인과 아이를 포박하고 포도청으로 끌고 갔답니다.

그리고 포도청에서 공초한 내용은 이렇답니다.

“지난해 오월에 제(주례) 맏아들이 병들어 죽고 작은 아들 회종이 지난해 팔월에 무슨 일인지 우포도청에 잡혀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열흘도 못되어 죽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제 아들이 죽었는지 살았는지도 몰랐습니다. 저는 그저 몇 달 동안 마음이 저리고 뼈가 삭아 어찌할 바를 몰랐습니다. 사람의 마음은 귀하거나 천한거나 다 같은 것입니다.

이 달은 제 맏아들이 죽은 달이요, 둘째 아들의 생일이 낀 달입니다. 도대체 제 작은 아들이 왜 죽었는지를 알고 싶은 생각에 정신이 나가 포도대장 집을 들이닥치게 되었습니다.”

여인 주례는 이 일로 하여 목을 잘리는 형벌로 세상을 마감했습니다. 열 세살 막내는 귀양길에 올랐고요.

그리고 155년이 흘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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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세월동안 아낙 주례같은 삶을 살다가 간 사람들은 얼마나 될까요?

세월호 집단 생수장 사건이 일어난 지도 6개월이 지나 이백일을 맞는답니다.

이즈음은 ‘종북’이라는 신종 효수(梟首)놀음이 유행의 도를 넘은지라.

155년전과 오늘의 다름은 무엇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