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정過程

아침에 일어나니 몸이 좀 이상 했었다. 으스스하니 춥고 세수하며 손끝에 닿은 물이 그리 찰 수가 없었다. ‘몸살 기운이 있나?’하며 일터로 나갔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미열이 나기 시작했고 온 몸이 마디마디 쑤시기 시작했다. 오후 들자 콧물 나고 잔기침이 잦아졌었다. 아무래도 좀 심상치 않았다. 일을 마치고 돌아오자 마자 covid test를 해보니 영락없이 양성 반응이었다. 다행히 아내는 음성이었다. 지난 주 수요일 일이었다. 마침 수요일엔 가정의(family doctor) 사무실이 8시까지 문을 열었다. 전화를 하니 잠시 후 의사에게 연락이 왔다. 내 증상과 증상이 나타난 시점 등을 물은 의사는 먹는 치료제도 나왔으니 이튿날에 사무실로 오라고 했다.

이튿날 이런 저런 검진 후 의사는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 치료를 위해 먹는 약 PAXLOVID를 처방하기 전에 내게 물었다. ‘이 약을 일반인들 누구에게라도 급한 경우 사용할 수 있도록 한 게 바로 어제부터 랍니다. 아직은 연구중인 약품인 것이지요. 약간의 부작용이 따를 수도 있다는 것이지요. 제 생각입니다만 김씨는 특별한 병력도 없고  복용하는 약도 없고…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우선 본인의 의사가 중요하므로… 묻는 것이지요’

나는 잠시 망설였었다. 그 때 증상으로 보아 참을 만도 했고, 앓아봐야 며칠 고생하면 끝일텐데… 부작용을 염려하면서 까지 먹을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과 먹고 빨리 나을 수 있다면 나은 방법 아닐까? 또 아내가 아직 괜찮은데 공연히 내가 옮기기 전에 빨리 복용하는 게 낫지 않을까? 생각 사이에서 왔다갔다 했던 것이었다.

결국 처방전을 받아 들고 사무실을 나왔다. 약을 받아 들고 돌아와서도 먹을까 말까 많이 망설였었다. 그 때까진 증세가 참을 만 했기 때문이었다.

본격적인 증상이 시작된 것은 그 날 밤부터 였다. 물은 커녕 침조차 넘기기 어려운 목 통증과 기침 가래에 이은 답답한 가슴 통증 등이 거의 만 48시간 이어졌다. 정말 오랜만에 장시간 누워 있었다.

그렇게 어느새 일주일이 지났다. 그 사이 아침 저녁 각 세 알씩 오일 간 복용하는 PAXLOVID 30알을 남김 없이 먹었다. 어제 오후엔 의사선생이 전화를 해서 내 상태를 물었다. 나는 완전히 정상으로 돌아온 듯 하다며 감사함을 전했다.

이틀 간격으로 아내는 테스트를 계속했고 정말 감사하게도 연이어 음성이 나왔다. 아파보니 40년 함께 해 온 아내에 대한 고마움이 크게 인다.

누워 있으며 잠시 들었던 생각. < 다 과정인데…. 언젠가 머지 않아 맞이할 내 마지막 때에도… ‘뭘 과정일 뿐인데…’하며 웃을 수 있으려면…. 하루 하루 내가 마주하는 순간 순간들이 그저 과정인데 하며 겸허하고 너그럽게 살아야 하지 않을까….>하는 제법 나이 든 생각 하나.

그리고 며칠만에 다시 돌아온 일터에서 만난 진상 손님으로 하여 피로와 짜증과 화가 치밀다 가라앉은 후 중얼거렸던 내 혼잣말. “에이그… 나이가 들긴 뭘…?…. 겸허하고 너그럽게..? 에이고 아직 멀었습니다!”

어쩌겠나?  다 과정인 것을.

그거 하나 되씹어 볼 수 있던 것 만으로도 지난 한 주간에 대해 감사!

시간에

“내가 26년생…. 지금은 22년…. 백 년이 얼마 안 남았네…. 참 오래도 살았다. 이젠 가야 되는데…” 휠체어에 앉아 창밖을 바라보시며 중얼거리시는 아버지는 이즈음 정신이 아주 맑으시다. 식사량도 그렇고 잡숫는 즐거움도 맘껏 누리시는 편이다. 오늘 같기만 하시다면 백수(白壽) 아닌 백수(百壽)도 욕심만이 아닐 듯 하다.

어제 이발을 했다. 이발을 해주시는 이가 내게 덕담을 건넸다. “아니 어쩜 이 연세에 흰머리 없이 까마세요.” 그러던 그가 깜작 놀라며 조금은 호들갑스럽게 “아이고, 이거 어떡하죠? 여기 머리 빠진 걸 모르고 너무 짧게 짤라 버렸네요.  어떡하죠?” 하며 미안해 했다. 나는 웃으며 말했다. “괜찮아요. 뒤통수는 내가 볼 수도 없고, 내 머리 쳐다볼 사람도 없고, 설마 구멍난 거 본들 뭐 문제 있나요?”

“참 낙곽적이신데도 스트레스를 받으시나 봐요? 원형탈모는 스트레스 때문이라던데요…”계속되는 그 이의 말을 이렇게 막았었다. “스트레스는 무슨… 그냥 때 되니까 빠졌다 났다를 반복하는 것이지요. 아직은 다시 나니까 괜찮아요. 머리털 없이 사는 사람들도 많는데… 그저 나이들어 가는 증상일 뿐인걸요.”

오늘 아버지와 잠시 함께 했던 시간을 빼곤 온종일 뜰에서 지냈다. 화단에 잡초를 뽑고 멀칭을 입히고, 여름 구근과 응달 식물도 심고, 꽃씨도 뿌렸다. 토마토와 고추 모종도 심고, 완두콩, 시금치, 열무, 배추, 상추 등속이 올라오는 텃밭 잡초들도 뽑아 주었다.

백 년, 칠십 년이 아니라 내겐 아직 하루 해가 짧다.

저녁나절 간지러운 봄바람 타고 내 귀를 홀리는 새소리와 풍경소리에 이는 춘정(春情)을 달래려 한 잔 술을 벗삼다.

분홍 봄꽃은 비나리로 연등처럼 걸렸고 하늘엔 시간이 비행기를 타고 흐른다.

그리고 혼자 중얼거려 보는 말. “스트레스 없는 사람, 걱정과 염려 없는 사람, 분노와 미움 없는 사람이 있을까? 그냥 시간을 효소 삼아 사는게지.”

시간(時間)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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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탁장이

오늘 아침 바라본 내 가게 앞 풍경이다.

그야말로 공사판이다. 가게 앞엔 공사판 바리케이드가 놓여 있다. 샤핑센터 리모델링 공사가 시작된 지는 여러 달 전 일이다. 건물주가 말하는 공사계획에 따르자면 이제 몇 달 남지 않았단다.

내 가게 코 앞에 차를 대고 세탁물을 들고 날던 손님들이 이즈음엔 족히 300에서500 피트(약100-200미터)를 걸어야만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찾아오는 손님들에게 미안하고 또한 그저 고마울 뿐.

이른 아침 찾아 온 손님에게 내가 건넨 인사 말,  ‘아이고, 멀리 걷는 불편함을 드려 미안합니다. 그리고 감사합니다.’

그에 대한 손님의 응답, ‘뭘요, 걷는 운동하고 좋지요. 당신 탓도 아니고요. 공사 끝나고 당신 가게가 이전 보다 훨씬 잘 되었으면 참 좋겠어요! 당신 가게가 여기 있어 난 참 좋아요.’

하여 난 아직 은퇴하기 이른 나이다. 세탁장이로.

부활 이후

고등학교 일학년 때였다. 교회 토요 모임이 끝난 후 몇몇이 모여 제법 진지하게 부활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갔었다. 이야기의 수준이 뭐 대단했을리 없었겠지만 사뭇 진지했던 기억이 남아 있다. 그 가운데 K가 있었다. 그는 부활신앙에 깊이 빠져 있었고, 당시 또래들과는 다르게 이 세상과 저 세상에 대한 이야기에 열을 올렸었다.

그리고 이튿날인 일요일 늦은 밤에 그의 형이 나와 친구들 집을 찾아 다니면서 그의 행방을 물었었다. 이른 아침에 집을 나간 K가 늦게까지 집에 들어오질 않았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다시 하루가 지난 후, K는 한강 샛강에서 주검으로 떠올랐었다.

오십 수 년이 지난 일이지만, 그 때 토요 모임과 K에 대한 기억은 아직도 선명하다.

생각할수록 순수하고 순진했던 시절이기도 했고, 아프고 아리고 쓰린 기억이기도 하다.

<안식일이 지나자 막달라 여자 마리아와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와 살로메는 무덤에 가서 예수의 몸에 발라 드리려고 향료를 샀다.

그리고 안식일 다음날 이른 아침 해가 뜨자 그들은 무덤으로 가면서  “그 무덤 입구를 막은 돌을 굴려 내 줄 사람이 있을까요?” 하고 말을 주고 받았다. 가서 보니 그렇게도 커다란 돌이 이미 굴러져 있었다. 그들이 무덤 안으로 들어 갔더니 웬 젊은이가 흰 옷을 입고 오른편에 앉아 있었다.

그들이 보고 질겁을 하자  젊은이는 그들에게 “겁내지 말라. 너희는 십자가에 달리셨던 나자렛 사람 예수를 찾고 있지만 예수는 다시 살아 나셨고 여기에는 계시지 않다. 보라. 여기가 예수의 시체를 모셨던 곳이다. 자, 가서 제자들과 베드로에게 예수께서는 전에 말씀하신 대로 그들보다 먼저 갈릴래아로 가실 것이니 거기서 그분을 만나게 될 것이라고 전하라” 하였다.

여자들은 겁에 질려 덜덜 떨면서 무덤 밖으로 나와 도망쳐 버렸다. 그리고 너무도 무서워서 아무에게도 말을 못하였다. – 마가복음 16장 1-8>

예수 부활에 대한 마가의 기록이다.

마가의 기록은 여기서 끝난다는 것이 성서학자들의 일치된 견해라고 한다. 이후 이어지는 이야기들(마가복음 16장 9- 22절) 곧 부활하신 예수의 나타남과 하늘로 올라가는 이야기들은 후대에 사람들이 만들어 첨가한 것이라는 의견에 대체로 공감한다고 한다.

아직 얼굴 모습이 선한 어린 K와 헤어진 지도  반 백년이 넘었고,  그새 나는 고집스런 노인이 되어간다.

그리고 이젠 누구의 이야기에도 흔들리지 않는 믿음이 되어 버린 내 부활신앙이다.

다시 일어나 자신이 일하며 살았던 갈릴리 마을로 돌아가 사람들에게 함께 일어나자고 외쳤던 예수에 대한  이야기를 남긴 마가에게 공감하며.

오늘 여기에서 다시 일어나는 삶, 그것이 부활이후라는 믿음.

공연히 죽음 넘어 신의 영역을 넘보는 일일랑은 접고.

부활주일이었던 어제, 내 뜰은 온통 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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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聖) 금요일에

예수가 십자가에 달리셨던 날을 기리는 성(聖) 금요일( Good Friday) 밤이다. 지난 일요일인 종려주일 이후 몇 번을 되새겨 다시 읽어 보는 마가의 기록이다.

마가는 예수에 대한 16장의 기록 가운데 1/3이 넘는 분량에 예수의 마지막 한 주간의 삶을 담았다.

마가복음 11장은 예수가 자신의 마지막 삶의 여정 한 주간을 시작하는 종려주일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된다. 갈릴리 출신 시골사람 예수가 예루살렘 도성으로 들어가는 길에 모인 도시 사람들은 ‘호산나’를 외치며 그에게 열렬히 환호를 보냈다. ‘호산나!’ 곧 ‘우리를 구원하소서!’하는 외침이었다. 예수가 곧 군중에 의해 신이 되는 시간이었다.

예루살렘으로 들어간 예수의 행적과 말씀들에 대한 기록을 이어가던 마가는 예수가 십자가에 달려 죽음에 이르는 첫 과정을 이렇게 기록했다.

마가복음 14장 한글 공동번역은 이렇게 시작된다.

<예수를 죽일 음모—–과월절 이틀 전 곧 무교절 이틀 전이었다. 대사제들과 율법학자들은 어떻게 하면 몰래 예수를 잡아 죽일까 하고 궁리하였다.>

예수 죽음의 시작은 곧 누군가의 음모로 시작되었다는 기록이다.

‘그 누군가’는 곧 당시 체제의 기득권자들이었다. 이어지는 마가의 기록에는 예수를 배신한 제자와 자신의 안위를 위해 예수를 부인한 제자, 예수를 떠나는 제자들의 모습을 전하고 있다.나아가 ‘호산나!’를 외치며 예수를 신의 자리에 올렸던 군중들이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으시오!’라며 악을 써 외치는 모습을 담담히 기록하고 있다.

그렇게 십자가에 달려 죽음을 당한 예수를 기리는 성 금요일 밤이다.

죽음을 맞기 전 예수는 이런 기도를 했다고 마가는 전한다.

<“내 마음이 괴로와 죽을 지경이니 너희는 여기 남아서 깨어 있어라” 하시고는 조금 앞으로 나아가 땅에 엎드려 기도하셨다. 할 수만 있으면 수난의 시간을 겪지 않게 해 달라고 하시며 “아버지, 나의 아버지! 아버지께서는 무엇이든 다 하실 수 있으시니 이 잔을 나에게서 거두어 주소서. 그러나 제 뜻대로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소서”>

Good Friday라는 반전(反轉)의 용어는 예수가 구했던 그 뜻을 헤아려 깨닫기 전에 쓰기엔 많이 가볍다.

그렇게 예수는 군중이 아닌 스스로의 뜻으로 신이 되었다.

2022년 다시 마주 한 성 금요일 밤. 오늘도 누군가는 “내 마음이 괴로와 죽을 지경이니 너희는 여기 남아서 깨어 있어라” 권유하고, 누군가는 또 배신을 일삼거나, 부인하거나 외면하고….

누군가는 그들이 누리는 오늘의 이익을 위해 꾸준히 음모를 꾸미고.

마침내 예수가 마지막 숨을  내쉬던 그 밤에 먼 데서 이 광경을 지켜 보고 있었던 사람들은 “막달라 여자 마리아, 작은 야고보와 요셉의 어머니 마리아, 그리고 살로메”라는 마가의 기록.

당시 예수 부근에 있었던 사람들 가운데 가장 낮은 자리에 있었던 사람들 – 그들을 통해 그 어둡고 처참했던 밤에서 빛을 그려낸 마가.

성금요일에 다시 마가를 읽으며.

고추장

나는 입이 매우 짧다. 그렇다고 음식을 가리는 쪽은 아니다. 어떤 음식이든지 먹을 만한 것이라면 가리지는 않는다. 이른바 혐오음식으로 알려진 것들도 대개는 거부감없이 먹었다. 물론 싫어하는 음식들도 있다. 일테면 고수(실란초Cilantro)  등과 같은 허브류 등 입에 안 맞는 것들은 거부하는 편이지만 질색하고 거들떠 보지도 않는 편은 아니다.

아무튼 나는 입이 짧다. 소식(小食)  곧 먹는 양이 적은 편이다. 대단한 건강 타령으로 그리 하는 것은 것은 아니다. 그냥 내 생긴 형편이 그러하기 때문이다. 그냥 많이 먹지를 못하기 때문이고, 많이 먹어 배가 부르면 불편하기 때문이다.

하여 나는 입이 짧다. 그렇다고 반찬 투정을 부리지는 않는다. 그냥 있는대로 내 배 찰 정도로 잘 먹는 편이다만, 종종 내가 듣곤 하는 소리이기 때문에 나는 입이 짧다.

그런 내가 제일 좋아한다기 보다는 즐겨 찾는 것은 고추장이다. 아이들 다 집 떠나고 난 뒤, 아내와 나는 일주일에 거의 반반씩  음식과 설거지를 나누어 한다. 내 순번이 되었을 때 내가 가장 많이 사용하는 음식 재료는 단연 고추장이 으뜸이다.

어쩌다 나 혼자 밥을 먹게 될 때엔 뜨듯한 밥 한 공기에 고추장 하나면 족하다. 참기름 몇 방울 더한다면 그 족함에 더할 나위 없다.

이런 내 입성을 캘리포니아 사돈 어른들이 어찌 아셨는지 고추장 한 병을 곱게 싸 보내 주셨다. 그냥 고추장도 아니고 커다란 대추알 박힌 대추 고추장이었다.

그 고추장 풀어 달달하고 얼큰하게 장칼(?)국수(엄밀히 칼국수라 할 수 없는 마켓에서 산 국수임으로)로 아내와 함께 저녁상을 즐겼다. 다음에 아이들 오면  칼국수 만드시던 어머니 흉내 내어 내가 직접 만든 장칼국수 한번 끓여 보아야겠다.

고추장 한 숟갈로 넉넉히 배부르고 좋은 주말 저녁에.20220406_183846

축복에

일터로 나서는 아침과 일을 마치고 돌아온 저녁에 나무와 새가 한 몸이 되어 전하는 소리 – 봄이 오고 있는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오늘 이야말로 지금 내가 누리고 있는 가장 큰 축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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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단(異端)

며칠 전 아들 녀석의 전화를 받았다. ‘이 눔이 갑자기 웬 일?’하는 맘으로 녀석의 전화를 받았다. “아이고 웬 일이셔? 엊그제 봤는데…”하는 내 인사에 녀석은 평소와 달리 가래 잔뜩 낀 목소리로 응답했다. “몸이 좀 이상해서… 테스트했더니 파지티브라고…” 그렇게 아들놈은 바이러스 확진 소식을 전했다.

며칠 동안 가보지도 못하고 아침 저녁으로 아들과 며느리 안부를 묻는 전화만 하며 보냈다. 행여? 하는 마음으로 돌아본 우리 내외는 무사하다.

나흘 째. 녀석이 입 맛이 돌아왔단다. 그래 안심이다. 먹는 즐거움을 찾았다니!

며칠 동안 이래저래 복잡한 머리 속 달래려고 꺼내 들었던 책 <성서 밖의 예수>이다.

벌써 이십 수년 전 일이 되었다만, 한 때 ‘역사적 예수’를 연구하는  ‘예수 세미나’ 학자들이 펴낸 글들에 푹 빠져 있던 때가 있었다. 당시에 참고 서적 중 하나로 대충 읽어 보았던 <성서 밖의 예수>였다.

종교사회학자인 일레인 페이젤(Elaine Pagels)이 쓴 이 책의 원제는 ‘영지주의 복음서(Gnostic Gospels)’이다.

예수가 죽은 이후 기독교가 형성된 이래 최초의 이단(異端)이 되어 역사의 패배자가 된 영지주의에 대해 개설해 놓은 책이다.

저자 일레인 페이젤(Elaine Pagels)은 만일 영지주의자들의 복음서가 기독교의 경전(이른바 성서)에 정경의 일부가되었다면(마태 마가 누가 요한복음처럼) 오늘날의 기독교보다는 훨씬 나은 종교가 되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일테면 영지주의자들의 찬양했던 하나님이 어머니이자 아버지였던 점, 인간적인 예수와 막달라 마리아와의 관계, 부활에 대한 상징적인 이해, 무조건적임 믿음에 앞선 하나님과 나와의 지식적 만남 등등… 나름 충분히 이해할 수 그들의 신앙과 주장이 이단으로 치부되어 역사 속에 묻혀버린 것을 아쉬어 하는 지은이가 남긴 말이다.

<내가 영지주의에 열중했던 것은 정통파 기독교에 대항하고 영지주의를 찬성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역사학자의 임무는 어느 편을 옹호하는 것이 아니라 진실을 밝히는 일이다.>

그렇게 닿은 이단에 대한 내 생각 하나.

무릇 모든 종교의 교단(敎團)이란 그들이 내세운 최초 선각자들의 눈으로 본다면 모두가 이단 아닐런지?

예수, 석가, 무함마드 어쩌면 공자까지도.

아들 녀석 덕에 우연히 꺼내들어 잠시 빠져 들었던 <성서 밖의 예수>. 이십 수 년에 밑줄 그었던 곳엔 별 감흥 없이 새롭게 밑줄을 다시 그으며 읽었다.

내 뜰엔 봄 꽃이 다시 피고 두어 주 전에 파종한 텃밭엔 새 싹이 오르고…

무엇보다 내 아들 녀석 입 맛이 돌아와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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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소

아버지 고향인 경기도 포곡면 유운리 유실 마을은 내가 어릴 적 방학이면 찾아가 지내던 곳이다. 초, 중, 고교 시절이었던 1960대만 하여도 아직 전기가 들어 오지 않아 호롱불을 켜고 살았던 유실 마을까지는 서울 신촌에서 거의 하루길이 걸렸다.

유실 마을을 지키고 계셨던 작은 할아버지 체구는 지금의 나 만큼이나 작고 야윈 분이셨다. 그 작은 할아버지는 신 새벽이면 ‘어흠’ 기침소리로 일어나셔 밤새 끓인 쇠죽을 여물통에 옮기신 뒤, 막걸리 한 사발 들이키시곤 밭으로 나가셨었다. 그 할아버지 닮아서인지 나 역시 지금까지 해 뜬 후 눈 뜬 적은 별로 없다.

새벽 밭일 끝내고 돌아오셔서 조촐한 아침 상 물리신 후 작은 할아버지는 죽 여물로 배 든든히 채운 황소를 앞세우고 다시 들일에 나서시곤 하셨다.

어린 내겐 엄청난 크기의 황소는 작은 할아버지 앞에서는 늘 공손했고 내가 기억하는 한, 유실 마을 아버지 고향의 기둥이었다.

대학생이 된 내가 1972년 여름 7.4 남북 공동성명 소식을 들은 곳도 이미 전기가 들어 온 유실 마을에서 였다.

그 무렵에 삼성일가의 돈이 그 일대를 차지하기 시작했고…. 모를 일이다…. 지금은 몇 층짜리 고층 아파트가 들어섰는지?

다만, 오늘 다시 생각해보는 황소다.

오늘 아침 장기요양원에 계시는 아버지를 찾기 전에 잠시 만났던 참 좋은 벗 필라 이종국 선생에게 들은 황소 그림 이야기 때문이었다.

올 정월 즈음이었다. 세월호 가족들과 함께 하는 “기억 하장, 함께 하장”이라는 후원행사가 있었다. 뜻있는 분들이 이런 저런 물품들을 기증하고 그 물품들을 구입한 기금으로 4.16가족협의회의 진상규명 활동비를 마련해 보자는 뜻으로 열린 행사였다.

‘필라세사모’ 이름으로 작은 물품 하나라도 구입해 보자는 뜻이 모아져 기증 물품들을 보고 있던 중에 ‘필라세사모(세월호를 기억하는 필라델피아 사람들 모임)” 회원들의 마음을 사로 잡은 것은 작가 류연복의 작품인 그림 <황소>였다.

그러나 당시 한 회원이 남긴 의견 <이 황소는 구경만 하시는 것으로.^^>처럼 다른 물품들에 비해 조금 고가였다.

나야 그저 이름만 걸쳐 놓았을 뿐이지만 ‘필라세사모’ 친구들이 일하는 것을 보면 황소처럼 우직하다. 결국 <황소> 그림은 필라델피아로 오게 되었고, 지난 주에 한인 이민자들 뿐만 아니라 아시안계 이민자들 나아가 소수자들의 권익옹호에 앞장 서 일하는 ‘필라 우리센터’  사무실에 걸었단다.

다시 <황소>

이재(理財)에 재빠르게 밝은 이들에게 황소는 그저 물품이거나 지나간 시절의 추억거리일 수 있겠다만, 그 우직함과 꾸준함 나아가 든든함을 이어가는 역사성을 찾는 이들에겐 곁에 두고 싶은 상(象)이 아닐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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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눈(春雪)

우수(雨水), 경칩(驚蟄) 다 지나고 내일이면 Daylight saving time 곧 summer time으로 시간이 바뀌는데 사방이 눈으로 덮였다. 날씨도 제법 춥다. 겨울 옷 벗어 던진 지도 제법 되었는데 다시 찾아 입었다.
내일은 화단 꾸밀 요량으로 벌써부터 맘 설레었는데 일기 가늠 못하는 것을 보면 아직 내가 세상 덜 살았나 보다.

‘봄눈, 봄눈, 봄눈이라…’ 그리 홀로 읊조리다 정지용 시인의 <춘설春雪>을 읊어 본다.

<춘설(春雪)>

문 열자 선뚝! 뚝 둣 둣
먼 산이 이마에 차라.

우수절(雨水節) 들어
바로 초하로 아침,

새삼스레 눈이 덮인 뫼뿌리와
서늘옵고 빛난 이마받이 하다.

얼음 금가고 바람 새로 따르거니
흰 옷고름 절로 향기롭워라.

옹승거리고 살어난 양이
아아 꿈 같기에 설어라.

미나리 파릇한 새순 돋고
옴짓 아니기던 고기입이 오믈거리는,

꽃 피기전 철 아니 눈에
핫옷 벗고 도로 칩고 싶어라.

우수 지난 봄눈과 추위를 맞아 시인은 아직 벗지 않았던 핫옷(솜옷)을 벗어 던지고 온몸으로 추위와 봄눈의 뜻을 즐겨 보겠단다. 아마 곧 맞게 될 화사한 봄 맛을 더하게 위함으로.

*** 나 역시 마찬가지다만 이 번 주초에 있었던 한국 대선 결과에 낙담하고 시름하는 벗들에게…. 우리들이 지난 날 누리지 못했던 찬란한 봄 맞이를 위한 통과의례 쯤으로 생각하자는 뜻으로 전해 보는 봄눈(春雪) 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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