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예수카페8변명같지만 살며 우리말을 길게 할 기회가 별로 많지 않답니다.

딱 그런 이유때문이 아니고 말이 짧고, 생각도 그다지 논리적이지 못하고, 어휘력도 짧은 탓이 먼저이지만 아무튼 변명이라도 좀 하고싶답니다.

성서 – 우리들의 이야기 여덟번 째 입니다.

편집을 좀 해서 올리면 좋겠다는 생각만 있을 뿐….

시간이 허락하질 않는답니다.

넉넉한 이해를…

 

어느 토요일 오후

앞뜰에 꽃비 내리는 토요일 저녁입니다.

농사일에 푹 빠져사는 벗이 드릅, 곰취나물, 명이나물을 들고 찾아왔는데, 아이구 이를 어쩐답니까? 이 친구 운전기사가 없어 이 좋은 날에 소주 딱 한잔으로 정을 나누고 자리를 떳답니다.

떠나며 정표로 우리 부부의 아주 편한 모양새인 사진 한장 남겨 주었답니다.

5-9-15

고마움으로.

시집 한권

thumb_14286857716135지난 주일 시집 한권을 받았답니다. 텍사스 킬린(Killeen)에서 목회를 하시는 임찬순 목사님의 시집 <바람의 노래, 목자의 노래>입니다.

시집을 손에 잡은 게 참 오랜만입니다. 책장을 주욱 훑어보니 최근에 돈주고  시집을 산 게 거의 삼년전 일입니다. 시를 잊고 산 것입니다.

말씀이 참 어눌하신 임목사님의 시집은 제게 삼년 이상의 충격으로 다가왔습니다. 제 인생에서 삼년이주는 의미는 여러가지랍니다. 어릴적 군대 삼년에서부터 최근 삼년에 이르기까지…

아무렴 예수의 목회생활 삼년보다 제 삼년이 귀중한 것을요.

삼년만에 손에 쥔 시집에 그 시간의 뜻을 담아 한마디 한마디 시어들을 곱씹으며 넘기고 있답니다.

그의 시 가운데 하나입니다.

꺽이는게 길이다.

꺽여서 뻗는게 길이다.

이리저리 구불구불

가는게 길이다.

그래 그래 길이다.

ㄱ 처럼 구부러지게

ㅣ 처럼 이렇게 곧게

ㄹ 로 구불구불

가는 게 길이다.

–         <길이 참된 삶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에서

누군가에게는 삼년의 길일 터이고, 누군가에는 백년의 길이 될 그 시간들에 대한 그의 노래입니다.

그리고, 그리고…

그가 그의 시에 대해 말하고 있는 변(辯)에 이르면 그를 존경할 수 밖에 없다는 생각에 이른답니다.

<민족의 전진과 고난의 현장에서 한글은 하늘의 뜻과 경륜을 전해주는 통로였다. 성경은 한글을 통해 말하기 시작했다. 그 한글을 갈고 닦고 시를 쓰는 일은 거룩한 성업이다.

유대인의 고난의 역사에서 랍비의 역할은 너무나 지대했다. 이처럼 한민족이 세계로 흩어지면서 세계화의 시대를 살아가는 지금, 목회자의 역할은 미미한 것 같지만 실상은 너무도 지극히 크고 중요하다.

우리들은 돈으로 살지 않고 말씀으로 산다. 사상으로 산다. 꿈으로 산다. 상상력으로 산다.

목회자들은 한민족의 상상력을 자극하고 꿈을 꾸게 하는 일을 감당해야 한다.>

아름다운 사람들이 내뿜어주는 아주 은은한 향내로 세상은 늘 정화되고 있다는 믿음으로. 그 분에게 감사를.

 

참 나쁜 놈들 – 1

조선의 오보, 오도가 아닌 계획된 조작보도를 보며

지난 4일(한국시간) 자칭 일등신문인 조선일보는”해양수산부의 세월호 시행령을 철회하라고 주장하던 이석태 세월호 특조위원장 등 일부 특조위 위원들이 정부 안을 수용하기로 합의한 것으로 확인됐다”며 “오는 6일 시행령이 국무회의 의결을 거치면 특조위가 정식으로 출범하게 된다”는 보도를 하였습니다. 더하여 이 보도는”유족들과 지난 주말 대화를 거쳐 정부안을 받아들이기로 입장을 바꾼 것으로 알려졌다”고 덧붙였습니다.

제가 이 기사를 본 것은 포털 다음을 통해서였습니다. 아침에 습관으로 눈을 떠서 yahoo로는 미국 뉴스를 포탈 다음으로는 한국뉴스들의 제목들을 훑어본답니다.

조선일보라는 생각을 미처 못하고 “결국 이렇게 끌려가고 마나?”하는 생각으로 일터로  나갔답니다. 가게에서 아침에 해야할 일들을 마치고 다시 이에 대한 연관뉴스를 검색해 보았답니다.

같은 날 저녁(한국시간) 오마이뉴스에는 이런 제목의 뉴스가 올라와 있었습니다.

-이석태 “정부안수용?” <조선>의 오도… 개정안 낼 것- 이라는 제목이었습니다.

기사의 내용인즉 조선일보의 보도는 전혀 사실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먼저 특조위원장인 이석태변호사는 “정부 시행령의 문제점을 설명해주긴 했으나, 유가족과 정부안을 수용하기로 협의한 적은 없다”고 잘라 말했다는 것입니다.

또한 이 보도는 <특조위도 이날 오후 5시 17분께 긴급 보도자료를 내고 “특조위 위원장을 비롯하여 특조위원들은 정부안을 수용하기로 합의한 적이 전혀 없다”며 “정부 시행령안이 국무회의를 통과하여 공포되면 시행령으로서의 효력은 발생하겠지만, 특조위는 더욱 강력하게 시행령 개정 운동을 펼쳐나갈 것”이라고 밝혔다.>고 전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글을 쓰고 있는 이 시간 온라인 조선일보에서는 해당 기사를 찾을 수가 없답니다. 그 신문에서 세월호에 대한 기사를 검색해보면 <’장관급 공무원’신분으로 광화문에서 농성하는 세월호 특조위원장…>, <세월호 시위주도 외부단체 ‘제2의 5.18… 100만 대군 만들어야> 등 매우 부정적 의미의 제목들을 단 기사들이 눈에 뜨인답니다.

자! 이쯤 생각해 보는 것입니다.

조선일보의 최초보도인 “세월호 특조위가 정부안을 수용하기로 합의했고, 유가족들도 동의했다”는 사실이 오보일까?하는 것입니다. 단언컨대 이 보도는 미리 조선일보가 계산하고 던진 의도된 조작보도입니다.

조선일보 및 그들과 배포를 맞춰 협력관계로 기생하거나 공생하는 세력들은 이미 이 의도된 조작보도로 얻을 것은  다 얻었다고 생각하고 있을 것입니다. 늘 그래왔듯이 말입니다.

그들은 그들이 만드는 정보 소비자들에게 이미 최상의 뉴스를 제공한 것이고, 그들이 연출하는 의도는 백프로 성공한 것입니다.

조중동을 비롯한 종편방송들 나아가 그들과 얼기설기 이어진 망으로 엮여있는 각종 sns 및 카톡 등등의 정보 공유 수단으로만 뉴스를 접하는 사람들에게는 이미 “합의와 동의”라는 말이 각인되었다는 것입니다.

이제 그들의 머리속에는 “다 합의하고 동의해 놓고는… 하여간 돈에 환장한 사람들과 좌빨들 때문에…”라는 이제껏 자신들의 생각들이 옳았다는 확신만이 자리잡을 것입니다.

이렇게 조선일보 등에 속거나, 속여야만 생존 가능한 한인들의 숫자가 최소치로 잡아도 50%가 넘고… 많게는… 글쎄요? “자신의 삶에 불필요한 것들이 끼여드는 것을 싫어하는 사람들, 보고 느끼는 것에 불편한 것들이 싫은 사람들, 나하나 아니 조금 넓혀서 내 가족 먹고 살면 그만인 사람들”까지 합친다면 족히 80-90%는 되지 않을까요?

이쯤 다시 되돌려볼까요.

분명 조선일보는 의도된 거짓말을 “뉴스”라는 이름으로 내보냈습니다. 이걸 좋게말해 오보 또는 오도라고 점잖게 왈 진보라는 매체가 보도를 합니다.

단지 시간이 하루지났을 뿐인데 조선일보는 “언제 내가 그랬느냐?”며 슬그머니 다른 주머니를 풀어 놓습니다. 그리고 남는 것은 “다 합의하고 동의했데메?”라는 소리들 뿐입니다.

오늘 2015년 한인사회의 현실입니다.

pedagogy우리세대 이른바 운동권들의 필독서 가운데 파울로 프레이리의 페다고지라는 것이 있었습니다. 문맹률이 아주 높았던 1960-70년대 브라질 및 남미, 아프리카의 삶을 고민하던 파울로 프레이리가 세상에 던졌던 물음이자 해법이었습니다.

그의 물음과 해법이 문명의 2015년 바로 오늘, 문맹율 거의 0%에 육박하는 한인사회에 그대로 유효하다는 서글픈 생각들에 빠져있답니다.

정리대는데로다시 잇겠습니다.

역사(歷史)에 – 아베(安倍晋三)를 보며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미국 공식방문을 마치고 돌아갔습니다. 그는 이번 방문길에서 많은 것들을 얻고 돌아갔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미일 방위협력지침(가이드라인) 개정으로 미일동맹을 강화하고, 미국을 발판으로 하여 자위대의 영역을 전세계로 확대했다고 합니다.

반면에 국방예산 삭감으로 고민하던 미국은  일본의 경제와 군사력을 이용해 떠오르는 강국 중국을 견제할 수 있게 된 것에 반색하는 기조라고 합니다.

이런 미일 양국의 새로운 밀월에 질세라 중국과 러시아가 손잡고 합동 군사훈련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일본총리로서는 처음으로 미국 상하원 합동연설을 한 아베에게 쏠렸던 관심 가운데 하나였던 과거사 및 위안부 문제 등 과거 일본군국주의 행위에 대한 사죄는 없었습니다.

미일양국 모두 힘(미일동맹)과 돈(환태평양 경제 동반자 협정, TPP – Trans-Pacific Strategic Economic Partnership) 앞에서 만족한 모양새입니다.

70년 전 전범국가(戰犯國家)였던 일본이 당시 승전국이었던 미국을 발판삼아 세계 특히 동양의 주인공으로 나선 셈입니다.

아베를 중심으로한 미일중러에 대한 기사들을 보면서 그 강대국들 한복판에 있는 한반도 남북이 아린 모습으로 떠오릅니다.

이번 방문 길에서 아베는 미국 정계와 재계의 뜨거운 환대를 받았습니다. 미국의 이러한 환대를 보면서 일본이 패망한 전범국의 나락으로 떨어지기 딱 40여년 전에 일본찬가를 불렀던 미국인과 영국인의 글을 떠올립니다.

지난 반세기의 사건을 샅샅이 인식하는 사람은 누구든지 다음 사실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즉 어떤 기독교국가라고  할지라도 일본만큼 과거의 오류를 선뜻 인정하고 온갖 문명의 기술에 대하여 가르침을 구하고 외교에 있어서 그렇게도 솔직하고  온건하며 전쟁에 있어서 그렇게도 기사적이고  인도적인 국가는 없을 것이다. – 동경제국대학 교수였던 영국인 Basil Hall Chamberlain이 쓴 책 <일본문물, Things Japanese,1905>에서

제국(帝國)은 변하였다. 서유렵인들이 300백년 걸려 이룩한 것을 일본은 30년 동안에 이룩하였다. 일본은 우리가 지금까지 유럽에 독특한 것이라고 생각했던 여러가지 소질들 – 즉 조직을 만드는 힘, 세부에 대한 관심, 철저한 도야(陶冶), 위대하고도 원대한 목표를 향한 참을성 있는 노력 등 – 을 높은 수준으로 갖추고 있음을 실증하였다. – 미국신학자 George William Knox가 쓴 <동양의 정신, The spirit of the Orient, 1906)에서

“헤겔은 역사적으로 중요한 사건이나 인물은 두번 반복된다고 했다. 그러나 그가 빠뜨린 것이 있다. 첫번째는 비극으로, 두번째는 희극으로 반복된다.”는 유명한 마르크스의 말이 있습니다만 마르크스 역시 빠뜨린 것이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역사란 희비극 반복의 연속이다.”라는 생각말입니다.

re_51064d93a612e

4-30-05

 

더딘 걸음으로 오던 봄이

잠시

앞뜰에서 쉬어간답니다.

 

2015년 4월 30일

봄이 전해주는

이런저런

아리기만한 세상소식들에

쓰린 맘 다스리며

곧 떠날

봄에게 한 잔.

 

그 봄이 따라주는

내 잔은 쌍 잔.

나 비록 여기 살아도…

지금으로부터 110년 전인 1905년 7월 27일 일본 도쿄에서 미국 육군성 (오늘날의 국방부) 장관인 윌리엄 테프트(William Howard Taft)와 일본수상 가쓰라 다로(桂太郞)는 오랜 시간 밀담을 나눕니다.

그 밀담이 공개된 것은 그로부터 약 20년이 흐른 뒤인 1924년의 일입니다.

이른바 가쓰라-데프트 조약(Taft–Katsura Agreement)입니다.

당시 가쓰라가 한 말 가운데 이런 말들이 있었습니다.

 “한국이 일본과 러시아가 벌인 전쟁의 직접적 원인이 됐다”

 “한국 문제의 완전한 해결이 전쟁의 논리적 결과이며, 이는 일본에 실로 중대한 문제”

  “만약 전쟁 이후에도 (아무런 조치 없이) 한국에 맡긴다면 한국은 또다시 다른 국가들과 협정이나 조약을 맺어 전쟁 이전과 같은 복잡한 상황을 재발시킬 것이므로 일본은 이러한 상황의 재발 가능성을 막기 위해 모종의 확실한(definite)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1904년 에서 1905년 사이에 있었던 러시아와 일본과의 전쟁은 한국 때문에 일어난 것인데, 문제는 바로 한국에게 있었다는 이야기입니다. 한국에게 외교권(주권)을 쥐어주면 또 다시 이런 전쟁이 일어날 수 있으니 이 참에 확실한 조치를 취할 필요가 있는데, 그것은 바로 한국을 일본의 식민지화하는 것이다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같은 해인1905년 11월 17일 대한제국 외부대신 박제순과 일본제국 주한 공사 하야시 곤스케가 상호 날인란 제2차 한일협약(第二次韓日協約) 곧 을사늑약(乙巳勒約)이 맺어지자 당시 세계에서 제일 먼저 한국과 외교적 관계를 단절한 나라는 바로 미국이었습니다.

IE001825061_STD그로부터 110년이 흐른 오늘날까지 미국과 일본 바라기로 사는 대한민국의 엘리트에게는 이번 아베 신조 일본 수상과 오바마 미국 대통령 행정부가 합의한 미일방위협력 지침이 쌍수를 들어 환영할만한 일일 터이고, 그 때나 지금이나 미일 양국은 대한민국 주권을 존중하는 바탕 위에서 이루어진 일이라고 거품을 물겠지만, 머지않은 날에 일본 자위대 제복을 입은 아이들이 명동거리를 활보하는 모습이 떠오르는 것이 비단 나 혼자뿐일까?라는 생각으로…

답답한 밤

볼티모아(Baltimore)는 제가 사는 곳에서 시속  70마일로 달려 한시간 조금 넘는 시간이면 닿을 수 있는 곳입니다.

그곳에서 오늘 폭동이 일어났다는 뉴스가 실시간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지난해 미주리주 Ferguson 에서 일어났던 백인 경찰에 의한 흑인 소년 사살 사건 이후 계속되어온 유사 사건들 가운데 하나인 흑인청년 Freddie Gray 장례식이 있었던 오늘 오전, 장례식 이후의 일어난 항의 시위대들이 폭도로 변해 상가를 탈취하고 경찰 차량등을 불태우는폭동으로 번졌다는 소식입니다.

각종 온라인 뉴스들은 실시간 영상으로 이 사건을 보도하고 있습니다.

답답한 마음으로 실시간 영상들을 보면서 더 끔직한 뉴스가 눈에 들어왔답니다.

미국을 방문중인 일본 수상 아베 일행들과미 행정부가  1997년 미일 양국 사이에 맺었던   “미일 방위협력 지침(The defense cooperation agreement)” 에서 한층 강화된 새로운 협력지침 가이드라인에 상호합의했다는 소식입니다.

74C43976-ECAE-49C3-AFF4-91C35BC4650D_w640_r1_s_cx0_cy1_cw0

그리고 이 합의에 양국 모두 환영했다고 합니다.

한마디로 미국군대가 가는 곳이면 어디든 일본군(자위대)이 함께 갈 수 있고, 일본군(자위대)이 작전하는 곳은 미군이 지원할 수 있다는 내용이랍니다.

70년 전 전승국과 패전국 사이였던 두 적국들이 탄탄한 동맹관계가 되었음을 선포한 것입니다.

이차대전 이후 미국의 점령지였던 일본은 1950년 일어난 한국전쟁으로 인해 체결되고 발효되었다고 볼 수도 있는 1951년 이른바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에 의거하여  미군 점령지역에서 벗어나 독립국가가 됩니다.

그리고 이후 일본은 미국의 영향 속에 스스로를 편입시키는 안보법 체계를 구축하면서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그리고 이제  패권에 힘이 딸리는 미국을 등에 업고 옛날의 영화를 다시 누리려 하고 있는 것입니다.

좀더 찬찬히 들여볼 일입니다만, 오늘의 뉴스를 보자니 남한은 일본과 미국에 북한은 중국에 가일층 종속으로 달려가고 있는게 아닐까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냥 답답한 밤입니다.

역사는 과거사가 아니라 미래사 – 헤리만의 교훈

미국방문길에 오른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오는 29일 미국 상하원에서 행할 연설에 많은 이들의 관심이 모여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종전 70주년을 맞으면서 적대적으로 승전국과 패전국 관계였던 미일 양국이 이제는 상호 돈독한 우방이 되어 만나는 행사에서 가장 주목을 받고 있는 관점은 바로 “과거사 문제” 입니다.

과거 제국주의 일본이 저지른 각종 만행을 인정하고 그 국가 행위에 대한 사죄와 사과를 기대하는 이들이 많겠지만 현재로선 그럴 가능성은 거의 없어보입니다.

한국과 중국이 제 아무리 목청을 높여도 미일 양국이 눈앞에 놓인 중국을 향한 동맹관계와 경제 동반자로써의 상호 이해관계 앞에서는 속수무책일 확률이 높기 때문입니다.

중국이야 자기나라의 이해와 아시아 종주국으로써 패권을 차지하기 위한 수단으로 과거사 문제를 계속 꺼집어 내겠지만, 어정쩡한 것은 언제나 그렇듯 대한민국이 아닐까합니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방미 뉴스를 보면서, 미일 양국과 특히 대한민국을 생각하다가 떠오른 인물 한사람을 소개해 볼까합니다.

William_Averell_Harriman에버렐 헤리만(William Averell Harriman, 1891-1986)입니다. 그는 살아생전 미국 외교정책 전문가들 사이에서 “현자(賢者, The  Wise Men)”로 불리었던 사람입니다.

헤리만의 아버지는 조선과 만주의 철도건설을 도맡았던 대재벌이었고, 헤리만 자신은 투르먼(Truman) 대통령 아래에서 상무장관,  48대 뉴욕 주지사, 1952년과 1956년 대통령 선거에서 민주당 후보로 나서기도 했었습니다.

그는 또한 은행업을 비롯한 투자, 부동산업 등에서도 성공을 거둔 뛰어난 사업가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저를 비롯한 동시대의 한국인들에게 그의 이름이 낯설지 않은 까닭은 그가 베트남전쟁 말기에 미국과 월맹 사이에 있었던 휴전협정에서 미국 수석대표를 지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리고  1969년, 그가  휴전협정 수석 대표직을 사임하는 기자회견장에서 남긴 말은  2015년 오늘 미일 양국의 지도자들은 물론이거니와 대한민국인들이 한번 곱씹어도 좋은 명언입니다.

그의 말입니다.

<월맹(북베트남)이나 월남(남베트남)의 민족해방전선의 지도자들 가운데는  과거 프랑스 식민에 식민권력에 앞장섰거나 협력한 인물이 없을 뿐만 아니라, 그 대부분은 식민정권의 권력이나 행정 그리고 군대에 대항해서 민족해방과 독립투쟁을 평생 동안 해온 사람들이다.

그와는 반대로 월남(남베트남)의 정부, 군대, 종교, 사회, 문화 등 각 분야의 지도층 인물들은 해방후 국토가 분단되기 이전에 프랑스 식민권력의 관리였거나 군대의 장교 또는 하사관으로서 자기 동포와 적대적 입장에 서있던 사람들이다.

그러니까 남북베트남의 대중들이 어느 쪽을 더 존경하고 신뢰할 것인가? 어느 쪽 지도자들이 진정으로 베트남의 재중과 민족을 위해 행동할 것인가? 이에대한 답변은 자명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그는 “베트남 전쟁은 이미 진 전쟁”이라고 선언합니다.

역사란 과거사와 오늘과 미래사가 단절되어 나누어지는 것이 아니라 과거사가 곧 현재사이자 미래사가 된다는 충고입니다.

아베 신조의 방미 행보를 보면서 곱씹어도 좋을 헤리만의 교훈입니다.

계시(啓示, revelation)에 대하여

성서 – 우리들의 이야기 일곱번 째

7-YoungKim“계시(啓示, revelation)”라는 말은 지금 우리들이 찾아가고 있는 천국 곧 하나님 나라를 누리고 이르는 첫 번 째 핵심 열쇠입니다.

야훼 하나님을 만나는 일은 그의 드러남과 나나 우리가 그를 만나고 아는 일이 동시에 일어나야만 하는 것입니다. 신이 어떻게 나나 당신에게 나타셨는가? 그것이 바로 계시입니다.

모세는 직접 사람의 말을 하시는 야훼 하나님을 본 사람입니다. 여호수아는 그런 모세에 후계자입니다. 이 두 지도자들에게 나타났던 신 야훼는 스스로 드러내셨던 분입니다. 비록 모세와 여호수아가 이끌었던 무리들이 때론 의심하고, 불신을 드러내긴 했지만 모세와 여호수아가 야훼 하나님의 약속을 받은 사람들이라는 점에는 깊은 신뢰와 믿음을 보냈습니다. 그런 고백들을 쉬지 않기도 했습니다.

사사시대 이후의 야훼 하나님의 드러남 곧 계시는 사뭇 다른 모습으로 바뀝니다. 직접 신이 사람을 만나는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꿈이나 어떤 징후로 사람과 만나는 것입니다. 전적으로 사람들의 고백을 통해 신이 드러나게 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