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침묵

두주 전 일요일이었습니다. 아내는 교회를 가고 혼자 책상물림을 하다가 바깥바람 좀 쐴 요량으로 집안 창문들을 모두 열었었답니다.

bird sound시원한 바람과 함께 집안으로 들어 온 것은 새소리들과 뒷뜰에 걸어놓은 풍경소리였습니다. 그 소리에 취해 한참을 정물(靜物)이 되었었답니다.

그때 들었던 생각을 짧게 편지로 써서 오늘 제 가게 손님들에게 띄워 보냈답니다. 그리고 제 블로그를 찾아주신 당신에게도 전합니다.

여름을 맞아 멋진 휴가계획을 세우셨는지요? 아니면 지금 생각중이신지요? 혹시 휴가를 즐길 여유가 없어 전혀 그럴 계획이 없으신지요?

얼핏 생각하면 여름에 모든 사람들이 산이나 바다나 강을 찾거나 여행을 떠나는 것으로 생각하지만, 저마다 다 생긴 모습이 다르듯이 여름을 즐기는 방법들도 다를 것입니다.

어떤 계획이 있으시든지, 아니면 아무 계획이 없더라도 올 여름엔 이런 거 한번 해 보시면 어떨까하는 생각으로 말씀드린답니다. 물론 저도 한번 해 볼 생각이랍니다.

날짜를 딱 하루만 정해서 모든 문명의 이기를 끊고 침묵속에서 하루를 보내보자는 것이지요. 저는 일요일 하루를 정해서 해 볼 생각이랍니다.

이 날은 전기, 전화, 셀폰, 컴퓨터를 비롯한 모든 소리나는 기기들을 끊고 조용히 침묵속에서 지내보자는 것이지요.

왜 그런 생각을 했느냐고요? 멀리 어딘가로 휴가를 떠나보는 것 못지않게 어떤 휴식을 얻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 때문이랍니다.

혹시 2005년도에 개봉했던 영화 위대한 침묵(Into Great Silence)을 보신 적이 있으신지요?

알프스 높은 계곡 속에 위치한 그랑드 샤르트뢰즈 수도원(Le Grande Chartreuse)의 카튜시안(Carthusian) 수도사들의 삶을 그린 영화랍니다.

거의 세시간에 가까운 168분 짜리 영화랍니다. 마침 유튜브에 이 영화가 있어 소개드립니다.

영화 전체를 다 보시라고 권하지는 않겠습니다. 졸릴 수도 있으니까요. 다만 영화의 어떤 장면이든지 약 5분 또는10분 정도만이라도 감상해 보시길 바랍니다. 특히 후반부 거의 끝부분인 1시간 5분 경에 나오는 수도사들이 알프스 겨울산에서 아무 도구없이 눈썰매와 눈스키를 타는 모습과 그들의 웃음소리를 들어 보시길 바랍니다.

어떤 환경속에서도 웃음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답니다.

멋진 여름이 되시길 빌며…

당신의 세탁소에서


Did you make a nice vacation plan for this summer? Or are you thinking about that now? Do you have no such plan at all because you cannot afford?

Even though we may easily assume that everybody goes to mountains, oceans or riversides or travels in summer, in reality, everybody enjoys summer in their own way, just as their appearances are not the same, but unique.

Whether you have vacation plans or not, how about trying to do this? Of course, I’ll try to do it at least once this summer.

It is to spend a whole day in silence, cutting off all the gadgets of modern civilization, such as electricity, telephones, cell-phones, computers and so on. I plan to do it one Sunday.

Why do I think about this idea? That’s because I think that it will give me rest as good as any get-away vacations.

Did you happen to watch the documentary film, “Into Great Silence,” which was released in 2005?

It is an intimate portrayal of the everyday lives of Carthusian monks of the Grande Chartreuse, a monastery high in the French Alps. Its running time is 162 minutes, almost three hours.

Fortunately, it is available at YouTube.

I won’t suggest you to watch a whole movie, as it may make you sleepy. But I want you to watch any scene for five to ten minutes. Especially, watch the scene of almost the end of Part II, around 1 hour 6 minutes. Try to watch monks sleighing without any equipment in the snow-covered Alps and to hear their laughter.

I could feel all the more keenly that we can find laughter in whatever conditions we may be.

I wish that you will have wonderful summer.

From your cleaners.

여기가 광화문일수도…

한국 또는 한국인들을 특정지어 표현하는 말들을 꼽자면 긍정적인 말에서부터 부정적인 것까지 꽤 많을 것입니다.

엊그제 박근혜 대통령의 방미계획이 취소되었다는 짧막한 보도와 함께  전세계에  퍼진 것은 메르스와 한국을 동시에 연상케 하는 뉴스들입니다.

급기야 오늘에 이르러서는 “세계보건기구(WHO)가 현장조사 중이지만 메르스와 다른 한국판 메르스(Korean MERS)라는 뜻의 코르스(KORS)로 확인될 가능성”이 있다는 보도가 나오고 있습니다.

한국 또는 한국인과 연관지어지는 신종어가 생길 수도 있다는 말입니다.

개인이나 단체나 국가나 좋고 나쁜 면들이 모두 있게 마련이지만 아무렴 좋은 면들이 많이 드러날수록 정말 좋은 일이겠지요. 저처럼 한반도에 돌아가 누울 한 뼘의 땅조차 없이 완전히 떠나와 이민의 삶에 뿌리를 내린 사람이라도 모국인 대한민국과 한국인들과 연상되어지는 말들이 나쁜 것이라면 정말 쓰리답니다. 좋으면 그냥 좋은 것이고요.

옛날 중국의 노자(老子)선생은 “이웃나라와 가까와서 닭이나 개의 소리가 들릴지라도, 자기네의 음식과 의복에 만족하고 스스로의 고유한 관습과 각자 하는 일에 즐거움을 느낀 나머지, 사람들이 죽을 때까지 이웃나라에는 가고싶지 의욕을 느끼지 못하게  하는” 정부 또는 정치가 최상이라고 끔 같은 말씀를 남기신 바 있지만, 거기 발뒤꿈치에 이르지 못할지언정 이즈음 듣는 모국 소식들은 참담하기 이를데 없어 정말 아프답니다.

그저 아리고 쓰릴 뿐이지 딱히 제가 할 수 있는 일도 없거니와  “떠난 놈이 뭔 신경?”이라는 물음에도 그럴듯히 내세울만한 답변조차 없답니다.

애들 다 키우고, 부부가 덤덤하게 노년을 준비하며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는 터에 좋은게 다 좋은 거라고 안보고 안듣고, 생각 아니하고 살면 노자선생이 말한 세상이랍니다.

그런데 어디 살아있다는게 그런가요? 아리랑 쓰리랑을 흥얼거리거나 듣노라면 그냥 눈물이 흐르는  천상 조선놈인것을요.

숱한 뉴스들 가운데 제 가슴을 후비며 정말 아리고 쓰리게 다가오는 소식이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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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시간으로  어제 날짜인 6월 11일 109일 째 일보삼배 행진을 하고 있는 이호진, 이아름 부녀의 소식이랍니다. 지난해 세월호 참사로 아들이자 동생을 잃은 부녀입니다.

메르스를 위시한 블랙홀 같은 뉴스들에 묻히거나 의도적으로 언론들이 다루어주지 않아 그들의 몸짓이 얼마나 절박하고 절실한 것인지, 그들의 몸짓에 조금만이라도 눈길을 주었다면 오늘 메르스가 코르스가 되는 국면에 이르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조차 못하는 지금의 상황이 참 아프답니다.

삼십만 번의 절을 하며 걸어온 길, 이들 부녀가 이제 사흘 후면 광화문광장에 도착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어제 이아름양은 자신의 페북에 이런 글을 남겼습니다.

“광화문에서 저를 기다리는 게 무엇이든 감사할 것이고 기억할 것 입니다.”

그 아이에게 감사함과 기억할 꺼리를 안겨주어야겠습니다. 비록 물리적으로는 광화문 광장에서 그들 부녀를 맞지 못하더라도 손편지 한 장, 작은 감사의 표시, 그도 아니면 페북에 “참 장하다”는 말 한마디라도 함께 나누실 분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단 한 분 만이라도.

한국 또한 한국인을 특정지어 표현하는 말은 바로 저 하나, 이 글을 읽는 바로 당신 한 사람이 만들 수도 있기에….

이호진 부녀의 페북 링크입니다.

https://www.facebook.com/padre1909

다음은 이아름양의 글입니다.

2015년 6월 11일 목요일 109일차.

용산구청에서 일정을 마무리 했습니다. 오랜만에 만난 기자언니가 물어 봅니다. 다 끝나면 가장 먼저 뭘 하고 싶냐고. 집에 가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소감이 어떠냐고 물어보는 언니에게 자신있게 시원하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속소로 가는 차 안에서 다시 생각했습니다. 정말로 시원한지.

아빠와 제가 팽목항에서 첫 절을 올리고 이 곳 용산까지 오는 데 109일이 걸렸습니다.

아빠와 제가 이렇게 바닥을 기어 오는 걸 얼마나 많은 분들이 알고 계실지, 알고 계신다면 그 분들은 아빠와 저를 어떻게 보고 계실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아빠와 저는 이렇게 해야 했습니다.  그게 살아있는 아빠와 저의 몫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아무것도 없이 하늘에 있는 승현이와 아이들만 믿고 여기까지 왔습니다. 아빠와 저의 마음을 아이들이 알아준다면 잘 될 것만 같았습니다. 어떻게 끝나야 잘 끝나는 것인지는 아직 모르겠습니다.

일기에 제가 썼던 말이 기억납니다.

광화문에서 아빠와 저를 기다리는 사람이 우리 승현이 였으면 좋겠다고.

이틀.

제가 이렇게 길바닥에서 금쪽같은 우리 승현이에게 속죄할 수 있는 시간 입니다.

저에게 109일 이라는 시간은 우리 승현이를 만나기 위해 팽목으로 달려가는 그 순간만큼 길었습니다.

광화문에서 저를 기다리는 게 무엇이든 감사할 것이고 기억할 것 입니다.

저는 승현이에게 부끄럽지 않은 누나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1920년대생 – 1

들어가는 글 1

지난 주 미 연방의회에서 상영된 한국영화가 있습니다. 올해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국제시장>이라는 영화입니다. 제 주변에도 필라에 있는 영화관을 찾아가 이 영화를 보면서 많이 울었다는 이들이 제법 있답니다.

영화를 즐겨 보는 사람도 아니거니와 이미 영화 줄거리가 워낙 알려져 있는 것이어서 저는 영화관을 찾지는 않았답니다. 워싱톤 영화상영 초대도 받았지만 웬지 앞뒤가 뻔한 행사라는 생각도 있고 제 시간도 바쁘고해서 가보지 않았답니다.

그런데 이 영화를 한 달포전에 집에서 흘끔흘끔 보기는 하였답니다. 아내가 어디서 다운 받았는지 이 영화를 보는 것이었습니다. 함께 보자는 아내의 권유가 있었지만 그 때 제가 급히 처리할 일도 있고 해서 TV와 제 pc사이를 눈이 오가곤 하다가 영화보는 일을 그만 두었답니다.

웬지 옛날 어릴 때 보았던 “미워도 다시 한번”이라는 영화가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작정하고 관객들의 눈물을 받아낼 의도로 만든 영화라는 생각이 들었다는 말이지요.

아무튼 이 영화는 1.4후퇴라는 한국전쟁에서 시작하여 가난, 서독 광부, 월남 파병 등등 해방후 오늘까지 평범한 사람들이 겪어낸 시대사를 주인공의 삶에 투영하여 그려낸 작품입니다. 물론 영화에 대한 호불호는 관람객 각자의 몫이겠지만 저는 웬지 만화같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답니다.

주인공이 저보다 많아야 고작 열살 위 정도라는 설정이 많은 부분 제 직간접 경험과 겹치기도 하기 때문이었을 터입니다.

영화 국제시장의 주인공은 1940년대생입니다.

지금 이 글을 읽고 계시는 당신은 몇 년대 생이신지요?

1950년대생인 제가 젊었던 시절 자주 말하거나 듣던 이야기 가운데 이런 말이 있었답니다. “우리나라에는 불행한 세대들만이 존재한다.”

혹시 아직도 이런 말이 유효한 것은 아닌지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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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현재 생존하고 있는 세대들 가운데 가장 불행한 세대를 꼽자면 단연 1920년대생이 아닐까 합니다.

식민지 백성으로 태어나, 그것이 아주 당연한 일로 생각하며 자랐고, 어느날 문득 해방이라는 놈이 찾아와 내 나라라는 것이 있는 줄 알았고, 이게 좋은 건가하는 생각이 채 들기도 전에 좌익과 우익 어느 편엔가 줄을 서야 살 수 있겠다 싶었더니 전쟁이 터지고, 국군이 되거나 인민군이 되어 숱하게 죽어간 세대가 바로 1920년대생들입니다.

그 때 살아난 사람들이 바로 <국제시장>의 주인공보다 앞서 오늘의 대한민국의 터를 묵묵히 가꾸어 온 세대입니다.

현재 대한민국 인구분포 현황을 보면 이 세대에 속한 사람들의 수는 약 백만 명 정도를 추산됩니다. 전체 인구수의 약 2%에 못 미치는 숫자입니다. 그래도 살아있는 이 세대들이 장수시대의 선두 그룹이가도 합니다.

바로 그 가운데 한분이 제 아버님이십니다.

1926년생이신 제 아버님은 아직 타고난 당신의 치아를 사용해 식사를 하시고, 돋보기 없이 글을 읽고 쓰시며, 건반 악기를 두드리시며 여가를 즐기십니다.

제가 제 블로그에 “아버지의 90년”이라는 카테고리를 따로 여는 까닭입니다.

물러날 때를 알아야

주일아침, 유교(儒敎)의 경전 가운데 하나인 역경(易經)에 있는 가르침을 우습게 아는 이들이 차고 넘쳐나는 세상 뉴스를 보면서 몇 자 적어 봅니다.

주역(周易)이라고도 부르는 역경을 보면 태극, 음양, 사상, 팔괘 등등의 용어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64괘가 있고 그 64괘 중 제일 윗자리에 건위천(乾爲天)이라는 괘가 있습니다.

이 건위천이라는 괘에 해당하는 사람의들 운세는 이렇게 설명되곤 합니다.

“용이 하늘로 치솟아 오르는 형상이다. 사업에 비하면 盛業(성업), 完全操業(완전조업)을 의미한다. 따라서 긴장한 상황 속에 있으며 또한 책임도 무겁다. 그래서 이 괘는 가장 좋은 괘이다. 너무나 좋기 때문에 모든 것은 차면 기운다는 것으로 도리어 불길한 것으로 역전할 우려가 있다.”

“현재 귀한 위치에 있는 이거나 또는 평소에 부지런하고 자신을 잘 다스리는 사람에게는 지극히 좋은 괘이지만, 평소에 근면하지 아니한 사람, 거짓말이 많은 사람, 오만한 사람들에게는 악운으로 역전되기가 십상이다. “

“보통 사람들에게 운이 꼭대기에 다다른 것이서 오만심을 불러일으키기 쉬우니 조심하라.”

“너무 높이 올라간 용의 형국이다. 용은 떨어질 우려가 있다.”

그리고 주역(周易) 건위천(乾爲天)편에는 이런 말이 있습니다.

“나아감은 알되 물러남은 알지 못하며<知進而不知退(지진이불지퇴)>, 존함은 알되 망함은 알지 못하며<知存而不知亡(지존이불지망)>, 얻음은 알되 잃음은 알지 못하니<知得而不知喪(지득이불지상)> “

“나아감은 알되 물러남은 알지 못하며<知進而不知退(지진이불지퇴)”라는 말은 얼핏 승승장구하는 군대나 연전연승하는 스포츠팀이나 선수들에게는 아주 듣기 좋을 수도 있겠습니다.

capture-20150607-091559-vert조선시대 양반과 관료사회에서는 이 역경의 가르침을 벼슬아치들이 반드시 곱씹어야 할 교훈으로 삼았었다고 합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벼슬자리 곧 권력을 부리는 자리에 앉다보면 계속 더 높은 자리로 올라가려고 온갖 수단과 방법을 다 동원하여 제 목적을 이루는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갖은 권모술수와 부정하고 부패한 방법으로 제 목적을 달성했지만 끝내 패가망신하는 자가 되지 말라는 교훈입니다.

그런 개인이나 집안의 패가망신 뿐만 아니라 자칫 나라가 절단나는 사단이 될 수도 있겠기에 벼슬아치들에게 곱씹기를 강조했던 말 “나아감은 알되 물러남은 알지 못하며<知進而不知退(지진이불지퇴)”라는 교훈이 뼈저리게 들려야만하는 오늘입니다.

제 자리 아닌 것은 탐하지 말 일이며, 설혹 그 자리에 올랐다 하더라도 제 자리가 아닌 줄 알면 물러나야 개인이나 나라에 득이 될 일입니다.

자기가 오른 자리가 어떤 자리인 줄도 모르고 공주놀음에 빠져있는 대통령을 비롯해 부정부패의 교본으로 기록될 만한 이들이 연이어 국무총리 자리를 놓고 출사표를 던지는 인간들, 입으로는 독감정도의 감기라면서 그 조차 수습못해 전 국민을 유언비어의 도가니속에 빠뜨려 놓고 허둥지둥 거리는 장차관 이하 실무 담당 공무원들, “경제가 세월호에 발목잡혀…”운운히며 한(恨)조차 풀지 못하고 죽은 귀신 불러내어 제 면피에 급급한 국무총리 대행이라는 인간들이 오늘 절실히 곱씹어 마땅한 “知進而不知退(지진이불지퇴)”입니다.

참 씁쓸한 사진들

미국내 언론들이 한반도에 대한 뉴스를 전하는 빈도수에 있어 남쪽은 북쪽을 따를수가 없답니다. 그만큼 북한에 대한 뉴스를 많이 다룬다는 말입니다.

그 가운데서도 북의 김정은에 대한 뉴스들이 가장 많습니다. 그런 류의 기사들 대부분이 김정은을 희화화하거나 비아냥거리는 내용들입니다. 특히 기사에 달린 사진들이나 동영상들은 정상적인 미국인들에게 웃음을 주기에 충분한 것들입니다.

수많은 사진들 가운데 그나마 가장 젊잖은 사진 두 장을 골라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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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rth Korean leader Kim Jong Un visits Mangyongdae Revolutionary School

저런류의 사진들이 미국인들의 눈에는 우수꽝스럽거나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를 전해주고 있겠지만 북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통(通)하는 것이지요.

그리고 오늘 제가 본 남쪽의 사진 한장이 어찌 그리 우스꽝스럽고 안스럽던지요. 아마 사진에 달린 설명과 사진에 대한 정황설명을 미국인들이 보거나 듣는다면 그 반응이 어떨까하는 생각을 해본답니다. 그리고 이런 종류의 사진이 통(通)하는 남쪽 사회를 생각해 본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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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 그리 남북이 닮아가는지요. 그나마 닮아가기라도 하니 좋다고 할까요?

답답함으로.

(혹시 제 느낌을 모르시겠나요? 그럼 어쩔까요? 정말 답답함으로.)

우리동네 뉴스

오늘 제가 사는 동네 사람들의 최고 관심 뉴스는Beau Biden의 장례식이었습니다. 올해 46살, 젊은 나이로 세상을 뜬Beau는 현 미국 부통령 Joe Biden의 장남이자 델라웨어주Attorney General(주 법무장관)이었으며, 내년도 선거에서 유력한 주지사 후보였습니다.

어제 오늘 지역 방송이나 신문에는 Biden 일가에 대한 뉴스가 넘쳐났답니다.biden

장례 행사를 치룬 Saint Anthony of Padua Church는 Wilmington시 downtown내 Little Italy라고 불리우는 이태리 이민자들이 모여사는 곳에 위치하고 있답니다.

그리고 오늘 제 가게 손님 한분에게서 들은 이야기랍니다.

이 양반은 은퇴한 대학교수랍니다.

Saint Anthony of Padua Church는 자신이 다니는 교회랍니다. 그 교회는 이번 주일(6월 7일)부터 일주간 동안 치루어지는Italian Festival 준비로 보통 분주한 게 아니었답니다. 교회 부속건물과 뜰에는 행사 준비로 각종 좌판들과 전시 및 판매용품들로 그득차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장례식을 위해서 그 모든 준비물들을 치워야했다고 합니다. 처음에는 한쪽 구석으로 다 미뤄 놓았는데 바로 전날 보안요원들이 현장 답사 및 준비를 하며 보안에 문제가 있다고 모든 물품들을 장례시장에서 옮겨줄 것을 요구했다고 합니다.

이 이야기를 신나서 제게 전해준 손님은 걸음걸이도 시원치않은 노인이시랍니다. 그렇게 다 치운 물건들을 내일 오후에는 또 다시 다 정리해서 페스티벌 준비를 해야한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그는 내내 싫지 않은 표정이었답니다.

그리고 그가 한 마지막 말입니다.

“아까운 젊은 친구 먼저 간 길 배웅하는데 이 정도야….”

옛사람의 위로

뉴스 보기가 겁납니다. 뻔뻔스러움이 도를 넘었습니다. 빤한 거짓말도 낯빛 하나 변하지 않고 제 자랑으로 늘어 놓습니다.

백주 대낮에 거짓이 명명백백하게 드러나도 눈 하나 깜작하지 않습니다. 해 떨어지기 전에 이미 거짓을 진실로 바꿀 수 있는, 아니 거짓임을 밝혀낸 이들을 사회를 어지롭히는 불순분자로 낙인 찍기까지 할 수는 위력을 지니고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위력은 실제로 발휘되곤 합니다.

답답함으로 노자(老子)의 도덕경(道德經)이나 넘겨봅니다.

노자

도덕경 제 3장 위무위(爲無爲)편 마지막 문장입니다.

“위무위 즉무불치(爲無爲 則無不治)” – “무위로써 (정치를)하면 다스리지 못할 것이 없다”라는 말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무위(無爲)란 아무 것도 하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라 억지로 하거나 꾸며대는 것을 말합니다. 즉 꾸미지 말고(속이지 말고, 거짓으로 하지 않고 정치를 하면) 다스리는 일(정치)가 잘못될 수가 없다는 말입니다.

‘무위’ – 곧 (백성을) 속이거나, (백성을 향해) 꾸미거나 거짓말 하는 하지 않는 것입니다. 정치란 그렇게해서는 안된다는 가르침입니다.

그러나 정치란 사람이 하는 일임으로 100% 그렇게 할 수는 없을 터이니, 위무위(爲無爲)라는 말 속에는 설혹 ‘속이거나, 꾸미거나, 거짓말 하는’ 상황이 오더라도 최소한 무위한 것처럼 하라는 뜻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속이되 속이지 않은 것처럼은 하라는 말입니다. 바로 최악의 경우에라도 부끄러움을 잃어서는 아니된다는 경고입니다.

노자가 정치를 비롯한 사회 제반 분야의 이른바 지도층들에게 주는 교훈입니다.

부끄러움을 잃고 뻔뻔함이 당연시되는 사회는 결국 혼란을 맞게되고 망하거나 쇠한다는 것은 인류 역사의 경험이기도 합니다.

때론 옛사람들이 위로가 되기도 합니다.

삼보일배(三步一拜)

오체투지(五體投地)나 삼보일배(三步一拜)라는 말들은 제게 좀 낯선 말들이랍니다. 제가 그런 행위들을 해본적도 없거니와 귀에 익은 말들이 전혀 아니기 때문입니다. 불교에서 비롯된 이 말들은 제 일상과는 거리가 좀 있답니다.

금강경이나 반야심경 같은 경전들의 번역본들이나 벽암록 같은 선문답집 등을 곁에 두고 읽는 까닭은 그저 제 지적 유희일 뿐이지 불교의 심오한 바닥을 느끼고자하는 지경은 아니랍니다.

그러니 오체투지(五體投地)나 삼보일배(三步一拜)같은 수행방법들은 저와는 거리가 먼 것들이랍니다.

사실 108배니 천배니 삼천배니 하는 말들은 소설속 또는 야사 등에서 들어보았지만 오체투지니 삼보일배니 하는 말들을 들은 것은 근자에 이르러서입니다.

세월호 희생자인 고 이승현군의 아버지 이호진씨와 누나 아름양이 팽목항에서 광화문을 향해 삼보일배 걸음을 내디딘지 백일을 맞는답니다.

삼보일배

세걸음 걷고 큰 절 한번하면서 520km의 거리를 온몸으로 걷고 있는 것이지요. 지난 2월 23일에 시작한 이 고행의 걸음은 오는 이달 중순경 광화문에서 끝을 맺을 예정이라고 합니다.

무릇 모든 종교 수행 방법에는 고행이라는 수단이 있습니다. 세 걸음 걷고 한번 큰절을 하는 삼보일배만 하더라도 자신이 지은 모든 나쁜 업을 뉘우치고, 깨달음을 얻어 모든 생명을 돕겠다는 서원하는  불교의 수행법입니다.

삼보일배는 문자 그대로 세걸음 걷고 절 한번 하고라는 뜻 위에 불보(佛寶), 법보(法寶), 승보(僧寶)의 삼보(三寶)에 귀의한다는 뜻이 있다고 합니다. 곧 부처님께 귀의하고, 진리에 귀의하고, 수행자에게 귀의한다는 뜻이라고 합니다.

이호진씨 부녀의 삼보일배 고행이 비단 그런 종교적 수행만은 아닐 것입니다. 두 부녀의 고행길은 자신들이나 가족들의 구원이나 깨달음을 위한 수행만은 아닐 것이라는 이야기입니다.

아마 지난해 4.16일 이전의 이호진씨 부녀에게 이런 고행길이란 차마 꿈속에서라도 상상조차 못한 일이었을 것입니다.

도대체 왜, 이들 부녀가 이런 고행과 고통을 감내해야만 하는 일이 일어났을까, 그 의미는 무엇일까?

아무래도 예수쟁이인 저는 이런 고통의 의미를 성서에게 묻게 된답니다.

성서 욥기는 바로 이호진씨 부녀와 같은 처지에서 육체와 정신적으로 고통을 당해본 사람만이 쓸 수 있는 문학작품입니다.

욥기의 주인공인 욥은 죄없는 자들이 당해야만 하는 고통과 그 고통을 정당화하는 체제(신학, 신앙)에 대한 그리고 그런 종류의 신(고통을 정당화하는 이들이 말하는 신)에 대한 반항이자 도전입니다.

그러나 욥기 저자는 끝내 욥이 당하고 감내해야했던 고통에 대한 이성적이고 합리적 또는 설득력있는 설명이나 해석을 내리지 않습니다. 욥기는 죄없는 사람들이 겪는 고통이란 가장 비인간적 상황이라는 점을 인정하는 바탕에서 그것을 이겨내야만 하는 몫은 바로 사람에게 달려 있음을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그 모든 과정에 신이 함께 함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이호진씨 부녀가 사개월여에 걸친 520km 삼보일보의 고행을 광화문에서 마친 후에도 아마 두 부녀의 고통은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물론 지난 일여년 동안 세월호 유가족들과 그들과 함께 하려고 애쓰는 사람들의 바램들이 이루어지지도 않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삼보일배의 고행은 새로운 시작에 대한 희망이 될 것임은 분명합니다. 그것이 바로 신앙이기 때문입니다.

왜 예루살렘인가?

성서 – 우리들의 이야기 열번 째

지난해 문창극에 이어 이번에는 황교안이 오늘날 한국기독교 또는 한국교회의 편협하고 천박한 신앙관을 세상에 가감없이 드러내고 있습니다.

이런 모습에 교계나 교회가 부끄러워 하기는커녕 오히려 목청 높혀 그를 두둔하기 바쁜 모양새입니다.

심지어 <황 후보자는 하나님의 공의를 드러내는 일에 다니엘과 같이 쓰임받는 하나님의 일꾼입니다. 우리의 기도가 그에겐 천군만마와 같습니다. 아울러 여러분이 지인들 20명에게 이글을 전달하여 우리가 함께 기도한다면 그것이 바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에 동참한 것이 될 것입니다.>라는 SNS의 글들이 퍼지고 있다고 신문은 보도하고 있습니다.

부끄러움을 느끼기는커녕 몰염치의 당당함에 뻔뻔스러움을 더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일부(그 일부가 큰 세력이긴 하더라도) 한국교계나 한국교회가 천박한 모습을 더하면 더해 갈수록 옳게 믿으려하는 이들은 성서에 귀를 기울일 일입니다.

 

유월에

매 주일 아침, 제 가게 손님들을 비롯하여 저와 같은 업(세탁업)을 하시는 이들의 손님들에게 짧은 편지를 보내기 시작한지도 제법 오랜 시간이 흘렀답니다. 내일이면  400번 째이니 거의 8년 가까이 잇고 있는 일입니다.

저는 이 편지를 “단 한사람만”이라도 주일 아침에 “사는 맛”을 함께 느낄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이어왔답니다.

400번 째 편지,  비록 제 손님은 아니지만 이 글을 읽는 당신과도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유월에!


 

bs-06-13-DW-Kultur-Gaienhofen오월의 마지막 날입니다. 그리고 이제 본격적으로 여름이 시작되는 유월입니다.

여름이 오면 많은 사람들이 자연을 찾아 나섭니다. 바닷가나 강가를 찾아 나서기도 하고 산과 공원을 찾기도 합니다.

자연과 함께 살았던 유명한 미국인을 꼽으라면 헨리 데이빗 소로우를 들 수 있을 것입니다. 그가 매사추세츠 주 콩코드 강변 숲속에서 지내며 쓴 책인 Walden은 자연 속에서 찾을 수 있는 삶의 진리들 –단순, 조화, 아름다움 등- 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소로우와는 반대로 자연을 자신의 집으로 맞아들인 유명한 독일인이 있습니다. 데미안 황야의 늑대, 싯달타 등으로 유명한 헤르만 헤세입니다.

그는 처음 자신의 집을 갖은 이래 여러 번 이사를 다니면서도 정원을 가꾸는 일을 게을리해 본적이 없다고 합니다. 그에게 정원은 바로 자연이었답니다.

그리고 그가 스스로 가꾼 정원 속에서 얻은 삶에 대한 깨달음을 이렇게 적고 있답니다.

<‘작은 기쁨’을 누리는 능력. 그 능력은 얼마간의 유쾌함, 사랑, 그리고 서정성 같은 것이다. 그것들은 눈에 잘 띄지도 않고, 찬사를 받지도 못하며, 돈도 들지 않는다. 고개를 높이 들어라. 한 조각의 하늘, 초록빛 나뭇가지들로 덮인 정원의 담장, 멋진 개 한 마리, 떼를 지어가는 어린아이들, 아름다운 여성의 머리 모양. 그 모든 것들을 놓치지 말자.>

<하루 중 한 한 번이라도 하늘을 쳐다보지 않거나 활기에 찬 좋은 생각을 떠올리지 못하는 사람처럼 불쌍한 사람은 없다.>

<나는 유감스럽게도 쉽고 편안하게 사는 법을 알지 못했다. 그러나 한 가지만은 늘 내 마음대로 할 수 있었다. 아름답게 사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그의 책 <정원에서 보내는 시간,Hours in the Garden and Other Poems>에 있는 말들이랍니다.

작은 기쁨으로 활기차고 아름다운 유월을 맞이하시길 빌며…

당신의 세탁소에서

행복이란

– 헨리 데이빗 소로우

행복은 한 마리 나비와 같다. 나비를 잡으려 할수록 이리저리 빠져 달아나버린다. 그러나 다른 곳에 관심을 돌리고 있다보면, 어느새  어깨에 살포시 내려앉아 있다.

 

800px-WaldenPondSpringIt is the last day of May. It will be June tomorrow in which the real summer begins.

In summer, many people go out to nature. They go to the beach, riversides, mountains, or parks.

Henry David Thoreau is one of the most prominent Americans who lived a life with nature. His best-known book, Walden, which he wrote while he was living in the forest around the shores of Walden Pond in Concord, Massachusetts, is still telling us that the true meaning of life, such as simplicity, harmony, and beauty, can be found in nature.

There is one famous German author who brought nature into his house instead of going out to nature, in contrast to Thoreau. It is Hermann Hesse, the author of many widely-read books, including Demian, Steppenwolf, and Siddhartha.

It is said that he had never neglected gardening since he had gotten the first house of his own, though he had to move many times. For him, his garden was nature itself.

He wrote life lessons which he had learned from his own garden in this way:

<The ability to enjoy ‘small happiness.’ That is like some pleasure, love and the delineation of feeling. Those don’t attract attention, don’t get praise, and don’t cost money. Raise you head high. A pick of sky, the garden wall covered with green leaves, a beautiful dog, a group of cheerful children, beautiful hairdos of women – never miss all these things.>

<There are none more pitiful than those who don’t look at the sky, nor come up with a spirited and good thought at least once a day.>

<Unfortunately I have never known the way to live easily and comfortably. However, I could always do one thing at my own will. It is no other than living beautifully.>

These words are from his book, Hours in the Garden and Other Poems.

I wish that you’ll greet spirited and beautiful June with small joy.

From your cleaners.

Happiness

–              Henry David Thoreau

Happiness is like a butterfly; the more you chase it, the more it will elude you, but if you turn your attention to other things, it will come and sit softly on your should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