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틈새

“할아버지, 담배는 왜 피세요?” 내가 아주 어렸을 적에 할아버지에게 물었었다. 그 때 하셨던 할아버지의 짧은 대답, “이눔아! 심심허니까 태우지. 그래 심심초란다.”

할아버지 돌아가신 후 머리 제법 굵어졌을 무렵부터 나도 담배를 입어 물었다가 끊은 지도 이젠 시간이 꽤 흘렀다.

하루 삼시 세끼 이외엔 군것질 이라곤  거의 입에 대지 않던 내가 이즈음 들어 주전부리들을 끼고 산다. 각종 견과류와 과자류들이 그것이다.  그러다 만난 한국산 과자 맛에 흠뻑 빠져 산다.

따져보니 어느새 내가 “이눔아! 심심하니까 태우지.”하셨던  내 할아버지 나이에 닿았다. 심심초 아닌 심심과자를 즐기는 셈이다.

그 심심한 마음으로 요 며칠새 틈틈이 즐기는 책, 댄 주래프스키(Dan Jurafsky)가 쓴 ‘음식의 언어’다.

책장을 넘기자 바로 만나게 되는 케찹의 유래가 중국이라는 썰(說)부터 사람 살아온 과정과 음식을 엮어 풀어내는 지은이에 해박한 이야기에 절로 빠져 든다. 한마디로 참 재밌다.

그가 음식의 언어를 통해 발견한 사람살이 발전 과정을 설명하며 단정지어 선언하는 말 한마디에 깊게 빠져 본다. <혁신은 언제나 작은 틈새에서 발생한다.>는.

내 할아버지의 심심초와 나의 심심과자 그 세월 사이에서 내가 보았던 숱한 작은 틈새들을 더듬어 보며.

저녁나절, 글라디오스가 빨간 꽃망울을 내밀고 있다. 이젠 여름이다. 심심초를 태우든 심심과자를 즐기든, 작은 틈새를 찾아 즐기는 한 삶은 언제나 여름이다. 아무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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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

페북 친구 분께서 올려 놓으신 김민웅선생 근황을 읽다.

내 세탁소 가까이 델라웨어 대학교(University of Delaware)가 있다. 아니 델라웨어 대학 바로 코 앞에 내 세탁소가 있다는 말이 맞겠다.

몇 주 전, 이 대학교 졸업식이 있던 날이었다. 그 전날 세탁물을 맡기며 “내일 꼭 입어야 한다.”며 신신당부하던 손님이 문 닫을 시간이 다 되어도 오지 않자 아내가 손님에게 전화를 했었다. 그 때 손님이 했던 말이다. “바이든( Joe Biden) 때문에… 거리가 너무 복잡해서 약속을 다 취소했기에… 옷이 필요 없어졌….”

그날 대통령 바이든이 졸업식에 참석하는 바람에 시내 일대 교통이 엉망이 되었다는 말인데, 삼십 수 년 동안 졸업식 날 장사를 이어 온 내 경험으로 보자면 바이든 아니어도 졸업식날 그 정도의 교통난은 늘 겪어 온 일이었다.

아무튼 그날 대통령 바이든은 누군가에게는 일정을 망쳐 놓은 사람이 된 터이고, 또 다른 누군가들에게는 격려가 되기도 했을 것이다.

바이든의 잦은 주말 고향 방문으로 우리 동네 신문엔 몇 차례 주민들의 불만을 전하는 기사를 내보기도 했었다. 물론 기사마다 그의 잦은 발길을 환영하는 이들의 소리도 함께 였다.

나도 딱 한번 그의 집 근처에서 교통 차단에 걸려 한 동안 차안에서 기다려 본 경험이 있다만, 주말이었고 급한 일도 없었기에 통제되어 기다리는 시간이 그리 불편하지는 않았었다. 다만 그게 내 출퇴근 시간이었거나 급한 용무가 있었던 시간이었다면 내 반응은 분명 격해졌을 것이다.

다시 델라웨어 대학교 이야기.

나는 이 델라웨어 대학교를 거쳐 간 제법 많은 한국인들을 만났었다. 이 대학교에서 석, 박사를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간 이들도 있고, 공무원 또는 교수, 언론인 등으로 연수나 방문, 교환 교수 등으로 잠시 머물다 간 이들도 있다. 내가 그 이들을 만나게 된 장소는 교회였다.

별로 사교적이지도 못하고 골프도 전혀 치지 않는 내가 깊게 교분을 나눈 이들은 거의 없다만, 어쩌다 한 두번 식사 자리나 이야기 자리를 통해 대충 사람의 생각과 됨됨이는 기억에 남아 있게 마련이다. 대부분이 한국으로 돌아가 나름 저마다 제 자리에서 충실하게 사시는 분들이시다.

그 가운데 어쩌다 종종 뉴스를 통해 듣게 되는 이름들이 있다. “쯔쯔… 왜들 그러실까?”하며 내가 부끄러워지는 분들의 소식을 들을 때면 참 안타깝다.

반면에 사는 소식을 들으며 박수 치고 응원하며 잠시라도 스쳐 지나간 인연이 고마운 이들도 있다. 김민웅 목사님은 그 분들 가운데 한 분이다.

그가 곤경에 처한 소식을 접하며, 그를  위해 기도하는 저녁이다. 교회를 통해 알게 되어 자랑스러운 그의 노년 위에 신이 내리시는 용기와 은총이 함께 하시길…. 그로 인해 내 모국의 희망에 찬 소식을 들을 수 있기를….

*****늦저녁에 읽은 글 한 줄. 퀘이커 창시자 조지 폭스(George Fox) 선생의 말.

<나는 어둠과 죽음의 바다를 보았을 뿐만 아니라 그 어둠의 바다 위를 덮어 감싸는 무한한 빛과 사랑의 대양을 보았다. I saw also that there was an ocean of darkness and death, but an infinite ocean of light and love, which flowed over the ocean of darkness.>

 

꽃들에게

세상 소식은 늘 어지럽다. 듣고 보는 것 조차 매우 불편할 때가 많다.

남들 이야기들 뿐만 아니라 내 개인적인 일상도 때론 그러하다. 그렇다고 어떤 도(道)이든 산문(山門)을 두들겨 숨기엔 지나치게 쇠한 나이가 되었다. 누군가들은 백세 시대 운운들 하지만 그게 어차피 모두의 것은 애초 아닐 뿐더러 내가 누려야만 할 까닭도 없다. 그저 내 나이는 내가 느낄 뿐.

이런저런 한 주간의 피곤함 위에 답답한 세상 뉴스들이 더해져 지친 일요일 오후, 뜰에 핀 꽃들이 내 눈에 들어 와 나도 모르게 환한 미소를 머금다.

매우 건방진 말이겠다만 염화미소(拈華微笑)가 별거겠나?

순간 제 맘 하나에 달린 일이거늘.

하여 오늘도 감사!

꽃들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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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 앞에

참 빠르다. 어느새 뜰엔 여름이 찾아왔다. 새소리 바람소리 들으며 멈추어 있는 듯한 시간 속에 앉아 있건만, 빠르게 흘러간 세월들과 더 다급하게 다가오는 듯한 내일을 생각 하노라면 사람살이 한 순간이라는 말에 고개가 절로 끄덕여진다. 그렇다 하여도 그 한 순간에 담겨진 이야기는 셀 수 없을 터이고, 제 아무리 빠르다 하여도 내 생각 하나로 맘껏 되돌리거나 느리게 반추하거나 예견할 수 있는게 시간일 터이니, 살아 있는 한 시간은 그저 축복일 뿐이다. 물론 누구에게나 멈춰 세워진 듯한 고통의 순간들이 있게 마련일 터이지만…

지난 주에 정말 오랜만에 사흘 여정의 짧은 여행을 즐겼다. 참 좋은 벗 내외와 우리 부부가 모처럼 좋은 시간을 누렸다. 시간이나 계획에 쫓기지 않으며 그저 주어진 시간을 맘껏 즐겼다.

토론토에 대한 이십 수 년 전의 기억은 그야말로 악몽이었다. 이번 여행으로 그 기억들을 말끔히 지워버렸다.

사흘 동안 우리 일행은 토론토 시내를 맘껏 걸으며 도시의 아름다움과 맛과 멋을 즐겼다. 나이아가라 저녁 풍경을 즐긴 일은 그저 덤이었다. 그 덤의 풍성함도 만만치 않았다. 나이아가라는 이미 여러 차례 가본 곳이지만, 부모, 처부모 아님 아이들을 위해 또는 방문한 친지들을 위해 길라잡이 역할이었는데, 이번엔 그저 우리 부부 발길 닿는 대로 였으므로.

그렇게 걷다 한나절을 보낸 곳, 온타리오 자연사 박물관(Royal Ontario Museum)이었다. 백만 불 짜리 동전, 거대한 다이아몬드나 각종 금붙이 등에 혹하지 않는 아내들에게 감사하는 벗과 내가 맘껏 즐길 수 있던 곳이었다.

박물관 이층은 지구상 생물들의 기원과 생성 발달의 단계 그리고 오늘날 위기에 처한 현실 등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 곳에서 내 기억에 담아 온 두 가지. 지구 상에 생존 하는 생명체들의 존재들 중 과학자들이 이제껏 확인해 낸 생명체 수들은 고작 10% 내외라는 사실과 그나마 그 생명체들이 급속히 소멸해 가는 이유들 중 하나는 늘어나는 인간들의 개체 수 때문이라는 것.

내가 잠시 고개 끄덕이며 겸허해 진 까닭이었는데, 아직은 신이 인간들에게 꼭 필요하다는 생각을 일깨웠기 때문이었다.

늦은 저녁 잠시 뜰에 앉아 있는 짧은 시간과, 사흘 여행의 추억과 칠십 여년 지난 세월들과 수만 년 사람살이 이어 온 시간들은 모두 하나같이 빠를 뿐.

하여 오늘 지금 이 순간은 그저 겸허해야. 시간 앞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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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靑春)에

비록 하룻길 여행일지라도 시간과 노잣돈, 건강 등 나름 제 형편에 맞아야 나서는 법이라는 내 생각으로 보면 나는 이미 노인이다. 어느 날 문득 쌀 몇 되와 고추장 된장 짊어지고 집을 나서 한 달 여포 산과 바다를 헤매던 젊은 때를 생각해 보면 그렇다는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랜만에 큰 맘 먹지 않고 며칠 여행길을 즐긴 아내와 나는 아직 청춘이다.

걷다가 문득 눈에 들어 온 시계 바늘이 가르친 숫자에 놀라다. 매일 마주하던 시간들이 특별히 다가올 때가 있듯.

날고 뛰지는 못할지 언정 그저 잠시 일상을 벗어나 걸을 수 있는 것만으로도 축복이다. 그 축복을 누리는 아내와 나는 아직은 청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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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설(妖說)

<언어가 없는 인간들에게 공동체도, 사회도, 계약도, 평화도 없다는 점은 동물세계와 다를 바가 없고 인간이 언어를 가진다는 것은 축복이자 저주이다. 합리적 사고와 과학을 가능하게 한다는 점에서 축복이고 일시적인 욕망과 기호에 따라서나, 산만하게 언어를 사용하여 재앙을 초래하기 때문에 저주이다.> – 토마스 홉스(Thomas Hobbes)가 리바이어던(Leviathan)에 남긴 말이다. 홉스는 국가 또는 군주라는 힘은 언어를 통제, 통용 시킬 수 있는 절대권력에 의해 탄생된다고 하였다.

그리고 공자는 필야정명호(必也正名乎)라고 가르쳤다. 정치란 무릇 명분을 바로 세우는 일이라는 외침이다. 명분에 대한 공자의 해설이다. <명분이 바로 서지 않으면 (정치가 하는 일을 사람들에게) 순조로이 설명 할 수 없다.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일은 이루어질 수 없다. 일이 이루어지지 않고서는 예악이 흥성할 수 없다. 예약이 흥성하지 못하면 형벌도 공정할 수 없다. 형벌이 공정하지 못하면 백성은 손발을 어디 둬야 할 지도 모르게 된다. 그래서 군자의 명분은 반드시 말로 설명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정치하는 사람이) 말하는 것은 반드시 행동으로 옮길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또한 군자(정치가)는 자기가 한 말에 대해 언제나 구차함이 없어야 한다.>

뜰일 하다가 갑자기 쏟아지는 빗발을 피해 쉬며 뉴스들을 훑다가 떠올려본 옛 사람들의 교훈이다. 이즈음 한국에 새로 들어선 정권과 그 권력 주변에 몰려 든 사람들이 내뱉은 말들이 그저 요설 뿐인 듯하여 참 불편하다.

무릇 양심(良心)이 없는 말이 난무하는 사회는 참 위태로운 법이다.

*** 뜰에서 보내는 하루 쉼은 그야말로 안식(安息)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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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무꽃

가게 앞 공사판은 곧 끝날 듯 끝날 듯 하며 지루하게 이어져 족히 삼 사백 피트(백 미터 이상) 걸어서 세탁물을 들고 오가는 손님들에게 미안함 마음 그치지 않는다.

한 물 간 업종이라는 말도 많고, 더하여 접근성 제로에 이르는 공사판 환경임에도 찾아주는 손님들 덕에 바쁜 한 주간을 보냈다.

지난 주말에 텃밭 열무를 거둘까 하다가 한 주 미루었는데 그새 열무 꽃밭이 되고 말았다. 텃밭 농사 흉내내기 삼년 차, 가장 쉬었던 게 열무농사였다. 그냥 씨 뿌려 놓으면 그만 이었는데, 아뿔사! 내 게으름으로 그만….

처음 경험하는 일이므로 구글(google)신(神)에게 물었다. “열무꽃이 피었을 때…”라고.

그렇게 만나 문태준 시인의 극빈(極貧)이라는 시였다.

<극빈極貧 /문태준

열무를 심어놓고 게을러
뿌리를 놓치고 줄기를 놓치고
가까스로 꽃을 얻었다 공중에
흰 열무꽃이 파다하다
채소밭에 꽃밭을 가꾸었느냐
사람들은 묻고 나는 망설이는데
그 문답 끝에 나비 하나가
나비가 데려온 또 하나의 나비가
흰 열무꽃잎 같은 나비 떼가
흰 열무꽃에 내려앉는 것이었다
가녀린 발을 딛고
3초씩 5초씩 짧게짧게 혹은
그네들에겐 보다 느슨한 시간 동안
날개를 접고 바람을 잠재우고
편편하게 앉아 있는 것이었다
설핏설핏 선잠이 드는 것만 같았다
발 딛고 쉬라고 내줄 곳이
선잠 들라고 내준 무릎이
살아오는 동안 나에겐 없었다
내 열무밭은 꽃밭이지만
나는 비로소 나비에게 꽃마저 잃었다. >

열무꽃 덕에 이웃에게 결코 넉넉치 않았던 내 삶을 잠시 돌아보는 시 한편 곱씹다.

*** 거센 열무 꽃대 잘라 내고 여린 열무 잎 다듬어 거두다. 아침 새소리는 경쾌하고 저녁 나절 새소리는 넉넉하다. 새 소리에 취해 열무 다듬는 시간에 누린 행복이라니. 그 짧은 시간만큼은 부끄럽지 않을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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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대기

새로운 것을 배우고 깨닫는 일도 기쁨이겠다만, 종종 지나간 것을 되새겨 얻는 즐거움도 제법 쏠쏠하다.

두어 주 전에 코로나와 씨름 하노라고 방에 갇혀 며칠을 보내며 다시 읽어 본 소설 <나무 위의 남작> 이었다. 얼추 스무 해 전에 읽었던 그 때와는 사뭇 다른 느낌으로 다가와 새롭게 눈 뜬 기분이었다.

이탈로 칼비노의 소설 <나무 위의 남작> 속 주인공 코지모 남작은 그가 열 두살 되던 해인 1767년에 일생을 나무 위에서 살기로 작심하고 나무 위로 올라간다. 이후 평생을 마치 타잔 처럼 나무와 나무를 타고 지낸다. 타잔과는 다르게 땅 한번 밟지 않고 나무 위에서만 삶을 이어가다가 마침내 죽어 땅으로 돌아와 묻혀 남긴 그의 비문(碑文)이다. –  <코지모 피오바스코 디 론도 – –나무 위에서 살았고 —- 땅을 사랑했으며 — 하늘로 올라갔다.>

그가 어린 나이에 나무 위로 올라가게 된 까닭은 그의 아버지에 대한 반항 때문이었는데, 아버지에 대한 상징은 곧 기득권 세력, 부패한 체제를 일컫고 있다. 프랑스 혁명이라는 대변혁기를 남들 보다는 조금은 높은 나무 위에서 당시 사람사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고뇌하며 행동하는 주인공 코지모 남작에 대한 이야기는 내게 새로운 감흥으로 다가왔다.

그가 비록 현실의 부조리와 부패에 저항하는 뜻으로 나무 위에서 평생을 살았지만 그는 땅과 사람을 사랑했던 이었다. 그는 남들 보다 조금은 높은 곳에서 사람들을 내려다 보며 사람들의 사는 모습을 꿰뚫어 보며 살았다. 그는 사람과 사람살이 그리고 자연에 대한 넘치는 사랑을 품고 살다 갔다. 나무 위에서.

어제 텃밭과 꽃밭 잡초를 뽑다가 문득 바라본 하늘이었다. 하늘을 향해 꼭대기로 치솟는 나무들의 새순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던 말. ‘꼭대기’

꼭대기에 닿으면 그저 잊지 말아야 할 말, 바로 ‘겸허’

이젠 점점 하늘에 가까워 가는 나이에 곱씹고 곱씹고 또 곱씹어야 할 말 , 바로 ‘겸허’ 그리고 오늘에 대한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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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운동淸雲洞

세상이 너무 많이 달라져 누군가의 경험을 일반화 시키는 일은 아주 무모한 일이 되었다. 비록 그 경험이 같은 공간 같은 시간을 함께 해 온 사람들이 다수라 할지라도 마찬가지다. ‘나이 들어 돌아보는 십대 나이 어린 시절의 추억은 아름답다.’라는 말도 마찬가지일 터이다.

그렇다 할지라도 이제와 돌이켜보는 내 십대 어렸던 시절의 추억은 부끄럽지만 내 살아 온 시절 가운데는 가장 아름다웠던 시간들이었다.

일차 중학교 입학 시험에서 실패했던 내가 이차 시험을 통해 들어간 학교는 청운 중학교였다.  머리 빡빡 밀고 검정 교모와 교복을 입고 신촌에서 버스를 타고 신문로에서 내려 신문로 사거리에서 다시 전차를 타고 효자동 전차 종점에서 내려 언덕길을 한참 걸어야 닿았던 청운 중학교였다.

그렇게 여섯 해 서울시 종로구 청운동 청운 중학교와 경기상업고등학교, 내 십대 소년을 되돌아 추억해 보는 밤이다.

북악산(학교 때 교지 이름이 백악이었는데 북악보다는 나는 백악이 더 좋았었다) 기슭에서 인왕산을 바라보며 품는 멋진 곳에 위치한 학교였다. 구글 검색을 통해 학교를 찾아보니 중학교는 완전히 옛 모습을 잃었으나 고등학교 건물은 예나 다름없는 모습이었다.

청운동, 효자동, 통인동, 내자동 그 거리 거리와 골목골목들이 내 어린 시절 벗들의 얼굴들과 함께 내 머리 속을 마구 스쳐 지나간다.

그 누가 무어라 할지라도 지나간 모든 시간들은 비록 아릴지라도 소중하고 아름다워야 한다. 더하여 소년 시대의 추억이라면.

기억컨대 청운동 그 거리를 1972년 이후 밟아 본 적이 없다. 딱 오십 년이 지났다.

몇 해 전 일이던가? 세월호 가족들이 울며 걸어 닿은 곳이 청운동사무소 앞이라는 신문기사를 보며 옛 생각에 잠시 빠졌던 일이 있었다.

그리고 오늘, 한 시대의 변화를 알리는 청와대 뉴스를 보며 돌아보는 옛 생각이다.

사람살이 종종 반동(反動)의 시간을 겪기는 한다지만, 오십 년 아닌 칠 십년 전 자유당 시절로 돌아가는 듯한 한국의 권부와 그 주변 소식들이 조금은 난감하다만….

잠시나마 내 소년에 대한 추억은 여전히 아름다울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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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길

해마다 이 맘 때면 내 집 앞에 꽃길이 펼쳐진다. 날씨가 궂은 해에는 일주일여, 봄이 제법 긴 해는 석 주 이상 꽃길을 걸으며 일터로 향하고, 그 길을 딛고 돌아온다. 일주일이든 석 주든 해마다 내가 누리는 꽃길의 즐거움은 딱 그만큼이 적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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