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적’이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아시안-아메리칸들의 표를 결집시켜 권리신장을 도모하기 위해, 아시안-아메리칸 정치참여단체인 <80-20>가 참여를 독려하는 메시지입니다. 번역하여 소개드립니다.

  1. 정치적인 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2.  왜 행동하는 것이 중요한지,  3.  선거와 투표가 왜 중요한지를 알려주는 글입니다.

비단 미국에 사는 소수계 이민집단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어디에 살건 “시민”으로 살아가는 권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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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려고만 한다면, 하기 매우 쉽다.

        아시안계가 기회 균등을 획득하는 3가지 쉬운 방법

(1) 미국에서 “정치적”이란 무엇인지 이해하기

미국에서는, 당파적 선거에 참여하는 것이 ‘정치적’ 인 것이다. 비영리 단체는 거기에 관여하는 것이 허용되지 않는다. 관여하면, 비영리 자격을 박탈당한다. 입법과정에 로비하는 것은 정치적인 것으로 고려될 수 있지만, 항상 그렇지만은 않다.

그에 반해서, 정부 혹은 정부 관리와 연관된 이슈에 대해 어떤 입장을 취하는 것은 전혀 ‘정치적’인 것이 아니다. 그것은 시민과 미국 정부간의 대화에 불과할 뿐이다. 심지어 우리가 정부나 정부 관리를 부당하게 비판했을 때라도, 고의로 그리고 악의로 그릇된 정보를 밀어부치지 않는 한, 제 1차 헌법개정인 언론의 자유 규정에 의해 보호받는다.

미국에서 ‘정치적’ 이란 것의 정의를 이해하지 못하는 아시안계 박사, 교수, 중국인 교장과 교사, 전문가 조직 단체장, 기타 비영리 단체들이 매우 많다. 그들은 잘못 알고 있어서, 법무부가 시행한 중국계 미국인에 대한 명백한 프로화일링에 대한 자신의 견해 표명을 자제하였다.

그들은 틀렸다!!!!

우리의 권리를 위해 싸우는 우리 커뮤니티를 위한 강력한 지식인의 목소리가 되기보다는, 무지때문에 그들은 침묵했다. 그것이 바로 “’정치적’의 의미를 아는 것”이 우리 자신을 강력하게 만드는 3가지 쉬운 방법의 첫번째인 이유이다.

(2) 너무 소심하지 마라.

우리의 일시적이고 사소한 득실 대신에 우리 자녀들의 미래에 대해 보다 더 생각하라.

(3) 우리에게 선거가 중요하다는 것을 이해하고, 그것을 이용하라.

표를 구하는 후보자들이 공약을 내세울 것을 미국 정당은 권장한다. 종국적으로, 사람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알아내는 것이 선거를 하는 한 가지 중요한 이유이다. 그래서, 모든 선거, 특히 대통령 선거는 아시안계 미국인들에게는 현재 우리의 불평등한 위치를 조금씩 개선시킬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다.

어떻게 약속을 얻어내는가? 정치인이 선거에 승리한 후에 우리에게 한 약속을 이행하게 만드는 방법이 무엇인가? 아주 복잡하다. 운좋게 우리의 정당한 이해를 위해 헌신하는 전문가 단체가 있다면, 그들에게 맡기는 것이 최선이다.

요컨대, 부동 집단 투표(swing bloc vote)가 공약을 얻어내는 최고의 유인책이다. 그 이유는 그것이 후보자를 가장 진하게 보상하거나 가장 심하게 벌주기 때문이다. 그것이 80-20가 양대 정당이 우리의 이해를 놓고 경쟁하게 유인하기 위하여 언제나 부동 집단 투표를 지지하는 이유이다.

어떤 질문을 할 지 누가 알겠는가? 누가 “부동 집단 투표(swing bloc vote)”를 전달해줄 수 있는가? 곰곰 생각해보라. 80-20 말고, 그 누가 능력과 경험을 갖추고 있는가?


So easy to do, if only you’ll do it.

        3 easy ways for AsAms to win equal opportunity

(1) Understanding what is “political” in the U.S.

   In the U.S., taking a part  in partisan elections is political.  Non-profit organizations are not permitted to engaged in it.  Otherwise their non-profit status will be taken away.  Lobbying in the legislative process could be considered as political but not always.

   In contrast, taking a position on an issue which involves government or government officials is NOT AT ALL political.  It is just conversations between citizens and the US government.  Even when we have criticized the government or officials wrongly, we are protected by the 1st amendment, freedom of speech, unless we knowingly and maliciously push the wrong information.

   There are so many AsAms Ph.Ds, professors, Chinese school principals and teachers, heads of professional organizations, and other nonprofit orgs. who don’t understand the U.S definition of political.  They refrained themselves from expressing their view on the apparent profiling of Chinese Ams by the Dept. of Justice, because of their mis-understanding.

    THEY ARE SO WRONG!!!!

    Instead of being a powerful educated voice for our community to fight for our rights, they silenced themselves because of their ignorance.  That is why “knowing the meaning of political” is the 1st of the 3 EASY WAYS to strengthen ourselves.

(2)  Be less timid.

Think more for our children’s future instead of our temporary & small gains and losses.

(3) Understand the importance of elections to us, and make use of them.

     Candidates seeking votes are encouraged by US political parties to make promises.  After all, finding out what people want is one important reason of holding elections.  Hence, every election, especially the presidential elections, is AsAms’ golden opportunity to chip away at our current UN-equal status.

     How to get the promises?  How to get the politicians to fulfill the promises to us after they are elected?  Very complicated.  Best leave it to the professionals, IF we are lucky enough to have such a group who are dedicated to our rightful interests.

   In essence, A swing bloc vote is the best inducement to get the promises, because it rewards the candidates most richly or punishes them the most severely.   That is who 80-20 has always advocated a swing bloc vote in order to induce both major political parties to complete to serve our interests.

    Who knows what questions to ask?  Who can deliver a “swing bloc vote”?   Search your mind.  Who else but 80-20 has the ability & experience?

대행만능시대 (代行萬能時代)

태평양전쟁과 광복 70년 (Pacific War and Postwar Korea) – 19

– 글쓴 이 : 김도원(金道元)

둘째 이야기    광복 70년 (光復七十年)

대행만능시대 (代行萬能時代)

대행(代行)은 누구를 대신하여 무엇을 행하는 것이다. 하지만, 오늘날 널리 쓰이고 있는 <대행>이라는 말의 뜻은 앞에 적은 <진짜와 가짜> 이야기 끝 부분에 나온 것처럼, 제물로 쓸 물건을 사다달라고 부탁받은 사람이 그 부탁을 한 사람의 심부름을 해준 것과 같은 정도의 뜻이 아니다.   어째서 그렇다는 것일까?

그 이유는 이렇다.   예를 들면,  광고대행사,  분양대행사,  마케팅대행사 등등 – 그냥 <심부름> 정도가 아니고, 하나의 기업(企業)을 이루고 있는 업체(業體)들도 수두룩하기 때문에 그렇다는 것이다.

그런 것은 생략하고, 다른 것에 관한 이야기 해보려고 한다.

언제부터인가 위에 적은 것 말고, 다른 종류의 대행업(代行業)을 하는 사람들도 있는 세상으로 변하고 있다. 그런 이야기 몇 가지를 적는다.

법화경(法華經)이라고 하는 불교의 경전(經典)에서 나온 것으로 알려져 있는 <생로병사(生老病死)>라는 말이 있다.

사람이 이 세상에 (1) 태어나고, (2) 늙고, (3) 병들고, (4) 죽는 것을   生老病死라고도 하는데, <죽음>과 같은 뜻의 말인 사(死), 사거(死去), 사망(死亡) 등에 쓰이는 <죽을 사(死)>자 이야기를 엮어 보기로 한다.

그런 이야기를 엮으려면, 적어도 한자(漢字)에 관한 것을 폭넓게 설명 해야 되겠지만, 이 글(책)을 엮는 목적이 그러한 것에 관한 긴 설명을 하려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런 이야기는 접어두로 지금 적고 있는 生老病死에 나온 글자인 <死>에 관한 것만를 간략하게 적는다.

<死>를 파자(破字)해보면, 즉 분해(分解)해보면 세 가지 요소(要素)로 이루어져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一 + 夕 + 匕 = 死

一(일)은 지평선(地平線, 또는 어떤 기준[基準])이다.

예를 들면, 위를 뜻하는 글자인 上   (ㅏ + ㅡ = 上)

아래를 뜻하는 글자인 下   (ㅡ + ㅏ = 下)

夕(석)은 저녁이다.   낮 시간의 활동이 끝나는 때다.

匕(비)는 숟가락의 모양을 본뜬 상형문자(象形文字)로, ’숟가락’을 뜻한다.

저녁(夕) 숟가락(匕)을 땅(一)에 묻어버려 밥을 먹을 수 없게 되었으니, 즉, 一 + 夕 + 匕 = 死(죽을 사)다.

엉터리 해석인가?

사람들 중엔 천수(天壽)를 다 누리지 못하고 일찍 세상을 떠나는 사람들도 있기는 하지만, 사람의 한평생을 말할 때, <生老病死>라는 말로  표현하기도 한다. 어찌 되었건, 그러한 것을 부정(否定)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멀쩡하던 사람이 물에 빠져 죽기도 하고, 예기치 못했던 화재 때문에 불에 타 죽는 사람도 있고,  자살하는 사람도 있다. 그런가 하면, 전쟁터에서 목숨을 잃는 사람들도 있고, 그 밖에도 사람이 세상을 떠나게 되는 이유가 여러가지임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사람이 목숨을 잃는 것에는 각양 각색 모습들이 있고, 아무도 그런 것을 예측할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死>에 대한 설명에 나온 말처럼 사람이 <밥숟가락을 놓으면> 그 순간부터 그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니다.

당연한 이야기를 괜히 적었나?

각설하고, 박정희 장군이 5.16 쿠데타를 일으켜 국가원수(國家元首)가 된 다음, 그는 다음과 같은 호칭으로 불린 적이 있다.

대통령권한대행 국가재건 최고회의의장 육군대장 박정희 (大統領權限代行 國家再建 最高會議議長 陸軍大將 朴正熙)

어마어마한 그 직함(職銜)엔 <代行>이라는 말이 들어 있다. <대행>이라는 이야기를 적으면서 해보는 말이다.

오늘날 <대행>과 관련된 한국의 실정(實情)은 어떠한가?

이미 앞에 적은 광고대행사나 분양대행사 등을 포함하여, 그 가지 수를 다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종류가 많다.

capture-20151210-174435한데, 언제부터인가 제사 지내는 것도 대행하는 업체가 있다. 아무리 대행만능시대(代行萬能時代)로 변하고 있는 세상이라고는 하지만, 자기 조상 제사도 남이 대행해주는 세상이 되었다.

그런 제사상(祭祀床)을 받는 고인(故人)의 심정은 어떠할까?

그러한 대행제사(代行祭祀)보다, 고인이 살아있을 때 마음 편하게 해 주는 것이 낫지 않을까?

어느 텔레비전 연속방송극에 나온 대화(對話) 한 토막이 생각난다.

“있을 때 잘해, 살아있을 때 잘 하라는 말야, 나중에 후회하지 말고 ……”

진짜와 가짜

태평양전쟁과 광복 70년 (Pacific War and Postwar Korea) – 18

– 글쓴 이 : 김도원(金道元)

둘째 이야기    광복 70년 (光復七十年)

진짜와 가짜

8.15 광복 이후, 우리네 생활 주변에서 흔하게 쓰이고 있는 말 중에는  <진짜>와 <가짜>라는 말도 있다. 그렇다면, <진짜>는 무엇이고 <가짜>는 무엇인가?

  • <진(眞)짜>는 글짜 그대로 <참>이다. <거짓이 아닌 것>, 또는 <옳고 바름>이다.
  • <진(眞)짜>는 사실(事實)이나 진리(眞理)에 어긋남이 없는 것이다.
  • <가(假)짜>는 <진(眞)짜>의 반대(反對)말이다.
  • <가(假)짜>는 진짜처럼 꾸민 것 또는 진짜가 아닌 것이다.

사이비(似而非)라는 말도 있는데, <사이비>는 겉으로 보기에는 비슷한 듯하지만, 근본적(根本的)으로는 아주 다른 것이다.

어찌 되었건,  <사이비종교>라는 말도 있고 <사이비과학>이라 는 말도 쓰이고 있다.

진짜와 가짜라는 이야기를 엮어보려고 끄집어낸 말이다.

찰리 채플린 (Charlie Chaplin, 1889 ~ 1977 영국인, 희극배우, 영화감독, 제작자)은 1914년에 첫 영화를 발표한 이래 무성영화 (無聲映畵, silent film)와 유성영화(有聲映畵)를 넘나들면서  ‘가짜 목사 (The False Priest)’ 등 여러 가지 작품을 만들어낸 사람이다.

채플린그런 것뿐만 아니고 그는 콧수염, 실크모자, 모닝코트, 지팡이 등으로 분장(扮裝) 또는 위장(僞裝)한 그의 인상(印象)을 사람들에게 심어줌으로 세계적인 인기를 얻은 사람이며, 1975년에는 엘리자베스 여왕으로 부터 그의 공로를 인정받아 작위(爵位)를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에 관한 이야기 한 가지 적는다.

어느 날 찰리 채플린이 한 시골 마을을 지나고 있었는데,  그때 마침 그곳에서 <채플린 흉내내기 대회>가 열리고 있었다. 그것을 본 채플린은 가던 발걸음을 멈추고 그 대회를 구경했다.

경연자(競演者)들은 모두 외모부터 진짜 채플린처럼 분장을 하고 나와서 채플린 특유의 몸짓과 말투를 흉내내고 있었다.  그것을 바라보고 있던 채플린은 자신의 신분을 감추고, 그 대회에 출전하여 자신이 평소에 하던 그대로 연기를 했는데, 채플린은 3등을 차지하게 되었다.

그 대회 출연자들 중엔, <진짜 채플린>보다 더 실감나게 연기를 한 <가짜 채플린>이 두 사람이나 더 있었던 것이다.

한데, 사실은 채플린 특유의 몸짓과 말투와 그의 처진 눈썹과 짧은  콧수염 등은 채플린의 원래 모습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의 본디 모습을 본 적이 없고, 콧수염 등으로 변장(變裝)한 얼굴과 특이(特異)한 그의 행동 등만 본 사람들에게는, 변장한 채플린의 얼굴과 말투와 행동 등이 그의 진짜 모습인 줄 알았을 것이다.

그렇게 꾸민 것이 아닌 그의 본얼굴은 그 당시의 꽃미남이라고 해도 될만큼 잘 생긴 민낯을 가진 인물로 알려져 있다.

찰리 채플린은 앞에 적은 것처럼 콧수염, 실크모자, 모닝코트, 지팡이 등으로 그의 인상(印象)을 사람들에게 심어주었기 때문에, 그러한  그의 독특(獨特)한 것들, 말하자면 꾸민 것들이 그를 상징(象徵)하는 특징(特徵)처럼 되어 있다.

그렇게 꾸민 채플린을 흉내내는 사람들도 있었다고 하는 것인데, 바꾸어 말하자면, 그것은 본 모습이 아닌 사람(채플린)을 흉내내는 사람들(가짜 채플린)도 있었다라는 이야기다.

이쯤에서 말머리를 돌려보기로 한다.

<5.16 쿠데타>에 관한 이야기를 적으면서, 맨 끝 부분에 나와 동갑인  몇 사람의 이름을 적었다.

한데, 희극배우 배삼룡(裵三龍)도 나와 동갑이다.   강원도 양구에서 태어난 배삼룡의 본명은 배창순이다. 춘천에서 보통학교(초등학교)를 졸업한 그는 일본에서 유학한 적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배삼룡광복 후 귀국하여 1946 유랑악극단 ‘민협’의 단원으로 지내게 된 그는 어정쩡한 그의 모습을 빗대어 극단 선배들이 <삼룡>이라는 이름을 붙여 주었다. 그때부터 그는 <배삼룡>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했다.

1969년 텔레비젼 MBC방송국이 개국되면서 그는 <웃으면 복이 와요>  등에 출연하여 우스운 짓이나 말로 남을 잘 웃기는 모습을 선보이며 그의 전성기(全盛期)를 달렸다. 그러한 배삼룡은 말을 더듬거나 바보스럽고 비실대는 행동을 했기 때문에 <비실이>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그는 무대생활만 한 것이 아니고, <형님먼저 아우먼저>, <출세작전>, <요절복통 007>, <아리송해>, <형사 배삼룡>, 등 희극영화에도 출연 하여 흥행에 성공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80년에 등장한 신군부(新軍部)의 “희극은 수준이 낮은 것이다” 라는 말을 듣게 되어 배삼룡은 무대를 떠나게 되었다. 그 후 음료사업을 시작했는데 뜻대로 되지 않았고, 미국으로 가서 얼마 동안 살다가 귀국했다.

1960 ~ 1970년대 서민들의 <삶의 애환(哀歡)>을 웃음으로 달래주었고, 그의 얼굴만 봐도 웃음이 절로 나오게 했던 배삼룡을 가르켜 말할 때,  <비실이 배삼룡>이라고 하거나 <바보 배삼룡>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러한 배삼룡은 그 당시 많은 사람들에게 웃음을 나누어 주었다. 그러했던 배삼룡은 여러 해 동안 병석에서 투병생활(鬪病生活)을 하다 가 2010년 2월 23일 서울아산병원에서 항년 84세를 일기(一期)로 이 세상을 떠났다.  한편, 서민들에게 큰 웃음을 남기고 간 희극배우 배삼룡은 2003년 제10회 대한민국 연예예술대상 문화훈장을 수상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진짜와 가짜>라는 제목으로 시작한 이야기가 <가짜 콧수염>을 달고 <가짜 행동> 등으로 사람들을 웃긴 찰리 채플린과 <비실이>와 <바보>가 대명사(代名詞)처럼 되어버린 배삼룡에 관한 이야기까지 나왔다.

채플린이 콧수염 등으로 가장(假裝)을 했던 것처럼, 배삼룡의 바보짓도 그가 진짜 바보였기 때문에 그러한 모습을 사람들에게 보여주었던 것은 아니었다.

앞에서 <박사와 장군>이라는 이야기를 적으면서 “지금은 가짜 박사도 있는 세상이다.”라는 말을 적었는데, 오늘날엔 <가짜>가 <진짜>를 뺨칠 정도로 세상이 변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8.15 광복 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진짜>라는 말과 <가짜>라는 말도사람들 입에 자주 오르내리는 말 중에 하나다.”라는 생각을 해보면서 적는 이야기다.

그렇다면, 무슨 가짜가 있다는 말인가?

살펴보기로 한다.

6.25전쟁 때, 전선(戰線)을 누비며 적군(敵軍)과 싸우다 전장(戰場)의 이슬로 사라져 목숨을 잃게 된 젊은이들도 있고, 나처럼 사지(四肢)가 멀쩡하던 사람이 적탄(敵彈)을 맞고 정상적(正常的)인 몸을 가질 수 없게 된 사람들도 생겼다. 달리 말하자면, <전사자(戰死者)>들도 많았고, <상이군인(傷痍軍人)> 이라고 불리게 된 사람들도 생겼다는 이야기다.

그러한 <전상자>들을 <상이군인>이라고도 하는데, <가짜 상이군인> 이라는 말도 쓰이고 있었다는 것을 생각해 본다.  가짜 상이군인 뿐만 있었던 것이 아니었다.

다음과 같은 말도 쓰이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는 세상으로 변하고 있다.

가짜 목사,  가짜 박사,  가짜 의사,  가짜 형사, 가짜 기자,  가짜 학력.  가짜 문서,  가짜 화폐,  가짜 이력서,   가짜 자동차 번호판, 가짜 양주(洋酒),   가짜 한우(韓牛), 가짜 고추가루,   가짜 콩나물,  가짜 참기름, 등등 …

서울 남대문시장에 있는 어느 참기름가게 앞에 다음과 같은 말이 적힌 간판이 붙어 있다고 한다.   “정말 순 진짜 참 기름만 팝니다.”

<깨>는 <참깨>도 있고 <들깨>도 있다.   그러므로 참깨로 짠 기름은 참기름이고, 들깨로 짠 기름은 들기름이다.

한데 어찌 된 것인지, <참기름>이라는 말 자체(自體)에 <참>이 들어  있는데도 불구하고, 무엇이 부족하여 수식어(修飾語)를 더 붙인 것일까?   같은 내용의 수식어를 세(3)개씩이나 덧붙인 것이다.  얼마나 <가짜>가 많으면, 그런 간판도 생겼을까?  ‘가짜가 많은 세상이라는 것을 새삼스럽게 말할 필요가 있겠는가?’라는 말이다.

<거의 같다>라는 뜻으로 쓰이는 <비슷하다>라는 말이 있다.

예를 들면, XXX와 비슷한 사람, 또는 이것과 저것은 모양이 비슷하다. 하지만, 엄밀(嚴密)하게 따져보면, <거의 같다>는 것이나 <비슷하다> 라는 말은 <조금도 틀림이 없이 같은 것이다>라는 뜻은 아니다.

<거의 같다>라는 것은 <조금도 틀림이 없이 같은 것>과는 그 말의 뜻이  다르기 때문이다.

구한말(舊韓末)의 정치가이며 독립운동가인 월남 이상재(月南 李商在) 님의 일화(逸話) 하나를 이 글에 옮겨 적는다.  그는 어느 강연장에서 청중들에게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고 한다.

이상재

옛날에 어떤 사람이 자기 아버지 제삿날이 다가와서 제사에 쓸 제물을 사러 장엘 가려고 하는데, 마침 그의 친구 한 사람이 자기도 장엘 간다 고 하기에, 그 친구에게 제물로 쓸 물건을 사다달라고 부탁했다.

그 친구는 무엇을 사오면 되겠느냐고 부탁한 사람에게 물었더니, 그 사람이 대답하기를 “고기 같은 것 한 근과 사과 같은 것과 배 같은 것 몇 개씩 하고, 북어 같은 것도 좀 사고 ……… ” 그런데 그 때 묵묵히 강연을 듣고 있던 청중들이 일제히 폭소를 터뜨리며 크게 웃었다.

바로 그때, 이상재님은 주먹으로 탁자를 치면서 청중을 향해 말했다.

“여러분! 무엇이 그렇게 우습단 말입니까?   사과면 사과, 배면 배지 거기에 웬 <같은>이라는 말이 붙느냐?  정말 우스운 사람도 다 보겠군.  그래서 웃어댄 것이 아닙니까?   그러나 절대로 웃을 일이 아닙니다. 우리 다같이 한 번 생각해봅시다.   각자 나는 지금까지 과연 안팍이 모두 진실된 사람이었나, 아니면 겉과 속이 다르지 않았나 한 번 살펴 보자는 것입니다.  사람은 사람이어야 합니다.  결코 사람 같은 사람이 되어서는 아니 됩니다.   사람답게 살도록 모두 노력해야 합니다.”            그 말을 듣고 있던 사람들은 모두들 고개를 숙였고, 그 강연장의 분위 기는 어느새 조용하고 숙연해졌다고 한다.

월남 이상재님이 청중들에게 던진 그 말씀은 오늘날을 살아가고 있는 현대인들에게도 주는 경구(警句)라는 생각을 해본다.

엊저녁에 딸아이가 밥상에서 저의 부부에게 물어본 말이랍니다. “한국식 반찬을 어떻게하면 빠르고 쉽게 만들어 먹을 수 있지?” 아내와 저는 순간적으로 나름 아는 지식을 총동원해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해주었답니다. 그러나 우리 부부의 응답이 아이에게는 닿지 않는 분위기였답니다.

아무렴 쉽게 살자면야 뉴욕인데, 한국마켓에 가서 사먹으면 간단히 해결될 문제겠지만 그래도 아이가 제 먹거리를 스스로 만들어 먹는 일로 생각하고 묻는게 고마웠답니다.

그래 오늘 아침부터 부산을 좀 떨었답니다. 아이가 먹을 밑반찬을 만들어 보내노라고 말입니다. 콩자반, 장조림, 오징어젓갈을 만들어 조금씩 싸서 넣어주었답니다.

내친김에 농사짓는 친구가 보내준 무우로 석박이와 물김치도 좀 담구었구요.

아마 엊저녁에 제가 “징검다리”를 떠올려 생각한 것은 모두 제 딸아이 덕이랍니다. 그 맘으로 오늘 제 가게 손님들에게 보낸 편지랍니다. 그리고 오늘 저녁 우리 부부의 밥상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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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조촐한 밥상을 함께 나누려 애쓰는 이들을 생각하며…>

예전에는 아주 흔히 볼 수 있었던 것들인데 지금은 거의 찾아볼 수 없는 것들이 있지요. 그런데  비록 볼 수는 없더라도 그 이름만은 남아서 사람들이 오늘날에도 흔히 사용하는 말들이 있지요. 어떤 것들이 있을까 한번 생각해 보는 일도 재미있지 않나요?

제가 어릴 적에만 해도 한국에서 흔히 볼 수 있었지만 지금은 한국에서없어진 것들 중에  징검다리라는 것이 있답니다. 징검다리라는 것은 거의 없어졌지만 한국사람들은 이 말을 아직도 사용한답니다.

예전 한국의 전형적인 마을 구조를 보면 작은 산 밑에 집들이 몇채 있어 마을을 이루고 마을 앞에 농사를 짓는 논과 밭이 있고, 그 논과 밭 끝에는 작은 개울이 있답니다. 그 개울을 건너면 또 다른 마을이 시작되는 것이고요.

그 개울에는 다리가 놓여져 있었답니다. 지금 “다리”라는 말에 당신이 상상하고 있는 그런 모습의 다리가 아니랍니다.

바로 이 사진과 같은 모습의 다리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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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울 위에 큰돌들을 사람들의 보폭만큼의 간격으로 이어놓은 다리랍니다. 이런 징검다리를 거의 볼 수 없지만 예전에는 어느 동네에서건 아주 흔히 볼 수 있었답니다.

그런데 비록 징검다리의 모습은 볼 수없지만 “징검다리”라는 말은 아직도 아주 자주 사용하는 말 가운데 하나랍니다.

‘징검다리’라는 말은 이쪽과 저쪽을 이어주는 것이라는 뜻으로 쓰이기도 하거니와,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는 역할을 한다라는 뜻으로도 쓰인답니다.

자! 11월 마지막 일요일이고 이틀 후면 12월입니다.

12월은 2015년의 마지막 달이자 2016년을 이어주는 징검다리입니다.

올 한해동안 함께했던 기쁨과 즐거움을 내년에도 이어주는 동시에  누군가에게 힘과 희망을 심어주는 징검다리 같은 올 한해 남은 시간들이 되시길 빕니다.


 

 

There are many things that could commonly be seen in the old days, but that have almost disappeared nowadays. But, even though they cannot be found easily, their names still remain to be used so often. Don’t you think that it is interesting to think about those things?

Among those things that could commonly be seen when I was young, but that have almost completely disappeared in Korea, one thing came to my mind. It is “Jing-Gum Dah-ri.” “Dah-ri” means “a bridge.” Though it is very difficult to find any of these now, people in Korea are still using the words.

In the old days in Korea, a typical village in the countryside was located at the foot of a small mountain, and had rice paddies and farming fields in front. And at the end of the farming area was a small creek. If you crossed the creek, you would step in a different village. In a word, the creek made a border between two villages.

A bridge traversed the creek. Even though I said a “bridge,” it was not the kind of bridge you might have imagined.

It was a kind of bridge as shown in this picture.

It was a bridge which was made by putting big rocks at the intervals of a person’s stride in the creek. Nowadays, this kind of “Jing-Gum Dah-ri” is very difficult to find, but in the old days, it could be seen in any village.

Even though they have almost disappeared completely, the word, “Jing-Gum Dah-ri,” is still one of the frequently used words.

As its function indicates, it is being used to mean what connects this and that, and also what plays a role to help someone.

There, There! It is the last Sunday of November and December will start in just two days.

December is the last month of 2015 and a “Jing-Gum Dah-ri” to connect 2015 to 2016.

I wish that all of you will have the remaining days of 2015 like a “Jing-Gum Dah-ri” which connects and extends all the joys and happiness in this year to next year and which inspires someone with hope and strength.

이론과 실천을 함께 고민하며 살아온 벗의 이야기 – 1

Thanksgiving day 아침입니다.

모처럼 아이들도 집으로 오고, 온가족이 모이는 날입니다. 아내와 함께 아침 일찍부터 수선을 피웁니다. 칠면조구이는 이제 완전히 제 몫이 된 일입니다. 올해는조금 색다른 레서피를 사용해 봅니다. 야채를 잘 안먹는 아들녀석을 위해 어제밤에vegetable stock을 끓여 푹 담구어 놓았지요.

음식준비를 하면서 올 한해 감사함들을 꼽아봅니다. 그 가운데 하나가 필라세사모 식구들을 만나게 된 일입니다. 필라세사모는 “세월호를 잊지 않는 필라델피아 사람들”의 약칭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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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만난 이들을 통해 새로운 교회의 모습을 느껴본 한해랍니다.

무릇 신앙의 궁극적 목표라면 구원이 될 것입니다. 한두해 전부터 제가 적을 두고 있는 교회의 같은 소그룹에 속해있는 이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죽은 후 구원 문제에 대한 성서적 이해를 돕기위해 한동안 열심히 성서 이야기를 썻던 기억이 납니다. 그 그룹에 속한 멤버들이 대충 저보다 연상들이었으므로 죽음의 문제가 결코 남의 일로만 여겨지지 않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구원이란 사람들이 살아가는 오늘 현재 모든 영역에서 일어나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죽음 이후에 문제로 국한지어 생각하는 것은 좀 따분한 일이기도 합니다.

그러던 차에 필라세사모 식구들을 만난 것이지요. 구원에 있어서 ‘이론’과 ‘실천’은 매우 중요하고 함께 가야만 하는 것이지요. 그런 뜻에서 이들과의 만남은 올 한해 제게 가장 큰 감사가 되어야할 것 같답니다.

그 모임에서 엊그제 대전에서 목회하는 김규복목사를 온라인으로 초빙해 이야기를 들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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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무쌍전(文武雙全) 또는 문무겸전(文武兼全)이라고 하는 말이 있지요. 문(文)과 무(武)를 다 갖추고 있다는 말입니다. 제가 김목사를 향해 ‘이론’과 ‘실천’을 쌍전(雙全)했다거나 겸전(兼全)했다고 칭송하려고 하지는 않지만, 적어도 구원에 있어 궁극의 목표라고 할만한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일” 곧 “인간성의 총체적인 회복”을 위해 평생을 ‘이론’과 ‘실천’을 함께해 온 사람라고는 말씀 드리고 싶답니다.

그날 밤 김목사의 이야기를 들었던 우리 필라세사모 식구들 뿐만 아니라, 단 한사람만이라도 더 이야기를 들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몇차례에 걸쳐 그의 이야기를 올리려 합니다.

아내의 원성 소리가 들리기 전에 부엌으로 가야할 시간입니다. 오늘은 짧게 첫번 째 이야기입니다.

조찬기도회

태평양전쟁과 광복 70년 (Pacific War and Postwar Korea) – 17

– 글쓴 이 : 김도원(金道元)

둘째 이야기    광복 70년 (光復七十年)

조찬기도회

교회용어사전 (Glossary of Christianity, 서울,생명의말씀사,2013)이라는 책이 있는데, 그 책에 ‘예배 및 예식’이라는 제목이 있고, 그 제목 안에 국가조찬기도회 <國家朝餐祈禱會, National prayer breakfast>라는 항목이 있다.

우선 조찬(朝餐)에 관한 이야기부터 해본다. ‘조찬(朝餐)’, ‘조반(朝飯)’, ‘아침 밥’  또는 그냥‘아침’이라고 하는 이런 말들은 모두 같은 내용의 말이다.

한데, 내 경험이나 생각으로는 ‘조찬(朝餐)’보다 ‘조반(朝飯)’이 낫고, ‘조반(朝飯)’보다 ‘아침 밥’이나 그냥 ‘아침’이라고 하는 말이 훨씬 실감 (實感)나는 말이라고 여겨진다.

아침, 점심, 저녁 …… 이렇게 끼니 때마다 거르지 않고 먹을 수 있는 환경(環境)에서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들도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서 해보는 말인데, 나도 그러한 사람들 중에 하나 였던 때가 있었다. 배고픔을 참으면서 지낸 것이 무슨 자랑거리일 수도 없고, 굶주림을 겪은 것이 내놓을 만한 이야기는 아니지만, 내가 겪었던 사실이니 적어보는 말이다.

일제 때, 특히 태평양전쟁 당시에 있었던 이야기는 말할 것도 없고, 6.25 전쟁 때에도 먹는 것 때문에 큰 어려움을 겪은 적이 있었다.

지금도 한반도의 허리를 가로지른 채 남북을 막고 있는 철조망은 6.25 전쟁 때문에 생긴 것인데, 그 전쟁 때 반찬 없는 주먹밥을 먹으며 전쟁터를 누비던 때가 있었다. 그러한 전장(戰場)에서 목숨을 잃었거나 전상자(戰傷者)가 된 사람들을 생각해본다.

혹자(或者)는 말하기를  “그때는 그때고, 지금은 지금이다.”라고 하든가, 아니면 “지금 당장 잘 먹고 잘 살고 있으면 되는 것이지, 다 지나갔고 케케묵은 6.25 때 이야기를 궁상(窮狀)맞게 꺼집어내어 들먹일 필요가 있겠는가?” 라고 할 수도 있을지 모르겠다.

어찌 되었건 간에, <國家朝餐祈禱會, National prayer breakfast>에 나온 ‘breakfast’라는 말은 break와 fast의 합성어(合成語)다.

  • Break(깨뜨리다) + fast(음식을 먹지 않음) = breakfast

곧 “밤 사이에 먹지 않은 것을(단식한 것을) 깨고, 음식을 먹는다.”라는 뜻이다.

  • 24시간을 3등분한 여덟(8)시간 마다 음식을 먹는 것이 아니고, 저녁밥을 먹은 시간과 아침밥을 먹는 시간과의 간격(間隔, 시간적인 동안)이 아침에서 점심까지,  또는 점심에서 저녁까지보다 더 길기 때문에 위에 적은 것과 같은 설명이 있게 되었다라는 것이다.

‘국가조찬기도회’에 관한 것을 적으려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국가(國家)가 무엇인가?

국가는 일정(一定)한 영토(領土)를 가지며, 거기에 거주(居住)하는   다수인(多數人)으로써 구성(構成)되어 하나의 통치조직을 갖는 단체, 즉 나라다.

따라서 ‘국가는 통치권(統治權), 영토(領土), 국민(國民)의 3 요소로써 성립된다.’라는 것이 국어사전의 해설이다.

이쯤에서 ‘국가조찬기도회’에 관한 몇가지 이야기를 골라서 간략하게 적어보려고 한다.

cats‘국가조찬기도회’는 1966년 3월 8일 옛 조선호텔에서 열린 ‘제1회 대통령조찬기도회’가 모태(母胎)이며, 1976년 제8회 때부터 국가조찬기도회로 이름을 바꾸었고, 2003년부터 사단법인으로 되었는데, 그 이름부터가 아주 거창(巨創)하다.

“(사) 대한민국국가조찬기도회 KOREA NATIONAL PLAYER BREAKFAST”

그 기도회는 국민화합(國民和合)과 경제활성화(經濟活性化) 또는 한반도의 평화를 위한 기도를 하기 위하여 기독교단체에서 해마다 주최 하는 아침기도회다. 그 기도회는 대통령을 비롯한 정치계의 요인(要人)들과 한국 개신교의 저명한 성직자(聖職者)들이 함께 기도도 하고 아침밥도 먹는 행사다.

위에 적은 것만으로는 그 모임에 관한 것을 길게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유신정권(維新政權) 이후 본격적으로 정교유착(政敎癒着)을 하게 된 것이 바로 1966년부터 시작된 국가조찬기도회다.>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한국에서의 그러한 정교유착(政敎癒着)은 일부 기독교 지도자들이 유신정권을 지원하는 형태로 시작된 것이다. 그러므로, <그러한 국가조찬기도회에서 나온 말이라는 것은 5.16 쿠데타로 시작된 박정희 정권(政權)을 찬양(讚揚)하는 내용이고, 그러한 정권에 힘을 실어주는 형태였다.>라는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는 것이다.

정치계와 경제계가 서로 자신의 이익을 얻으려고 깊은 관계를 가지게 되는 정경유착(政經癒着)이라는 것이 있었는데, 정치인과 종교인들 중 에도 서로 깊은 관계를 가지는 사람들이 있다.

‘정교유착(政敎癒着’이라는 것이 바로 그러한 것인데, <정교유착을 하는 인사(人士)들은 기독교 성직자로서의 본분(本分)을 망각(忘却)했거나 아니면 저버린 사람들이다.>라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닐 것이다.

기독교(개신교)의 경우, 성직자(聖職者)란 ‘종교교단(宗敎敎團) 내에서의 예배<제례(祭禮)의 집행>, 신도(信徒)의 교육, 교단의 운영 등을 지도 또는 담당하는 직업의 사람이다.’라는 것이 일반적인 해석인데, 그렇다 면, 위 해석에서 말하고 있는 <종교교단>이란 무엇인가?

  • 종교(宗敎)란 무한절대(無限絶對)의 초인간적(超人間的)인 신(神)을 숭배(崇拜)하고, 신성(神聖)하게 여겨 선악(善惡)을 권계(勸戒)하고 행복(幸福)을 얻고자 하는 것을 뜻하는 것이고,
  • 교단(敎團)은 위에 설명한 것과 같은 종교상(宗敎上)의 신앙(信仰)과 제례의식(祭禮儀式)을 같이하는 동질적(同質的)인 사회집단(社會集團)이다.

한데 오늘날엔 개신교 성직자들 중, 자신의 본분을 저버리고 사는 사람 들도 있는 것을 볼 수 있는 세상이 되고 있다.    내면적(內面的)인 것뿐만 아니고, 외형(外形)에도 그런 면(面)이 있다.

돌이켜보건대, <지난 60 ~ 70년대의 물량주의(物量主義)와 권력지향풍조 (權力指向風潮)로 사회적 규범이 깨어지고, 가치관의 붕괴로 인한 혼돈 상태도 드러나고 있다.>라는 것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언제부터인가 <초대형교회>라는 말이 쓰이고 있다.

<아주 큰 교회> 라는 것인데, 일반적으로 출석하는 사람의 수가 1만명 이상 되는 교회를 지칭하는 말이라고 한다.  국가조찬기도회에 관한 이야기를 적다 보니, 초대형교회라는 말이 나왔다.

대통령조찬기도회라는 이름으로 시작한 기도회가 오늘날엔 사단법인 대한민국조찬기도회 (KOREA NATIONAL PLAYER BREAKFAST)로 되어 있고, 그 조직규모가 거창하다.

대한민국 헌법 제1장 제20조 제2항에 “국교는 인정되지 아니하며, 종교와 정치는 분리된다.”라는 조문(條文)이 있는데, 그것이 논란의 대상으로 되고 있다.     정교유착(政敎癒着)이라는 말을 생각해 보면서 이번 이야기를 끝낸다.

30년만에 만나는 자리에 당신을…

라디오에서 크리스마스 캐롤이 흘러나온지도 벌써 여러날 되었습니다. 이렇게 올 한해도 서서히 저물어 갑니다. 이번 주간엔 한해에 대한 감사(thanks)를 드리는(giving) 날인 Thanksgiving Day를 맞습니다. 한해의 감사를 드려야만 할 대상들을 꼽아보는 일도 제법 뜻이 있겠다는 생각을 해보는 아침입니다.

제 자신과 가족들이 드려야할 감사의 내용들과 드려야할 대상들을 헤아려봅니다. 꼽자하니 꼬리를 잇습니다.

그러다 올 한해 제 마음이 자꾸 흐트러질 때마다 붙잡아 주었던 옛 선생님의 말씀 하나 떠올려봅니다.

올 한해 동안 제 마음이 자꾸 흐트러져 일상을 벗어났던 까닭은 “내가 이제껏 잘못 생각하고 살아온 것이 아닐까?”하는 물음 때문이었습니다. 일테면 그것은 제 신앙적 물음이었습니다.

이즈음에 이르러 오만하거나 무지한 자들에 의해 거의 “빨갱이들의 언어”로 규정지어지는 듯한 말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민중”입니다. 이 “민중”이란 말은 어찌보면 제가 살아오면서 (비록 가까이 하지도 못했고, 스스로 그 범주에서 자꾸 벗어나려고 애써왔다는 게 솔직한 고백이겠지만) 꼭 붙잡고 싶었던 화두 같은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것은 제가 이해하고 믿는 성서의 가르침 탓인데, 올 한해 그 이해와 믿음이 자꾸 흔들렸다는 것입니다. 그럴 때마다 저를 추스리고 깨우쳐주신 선생님의 가르침이 있었습니다. 바로 “민중과 함께 했던 예수”에 대한 가르침입니다.

오래전에 돌아가신 안병무목사님은(1922-1996) “민중이란 정치, 경제, 문화, 종교 할것없이 ‘어떤 체제로부터 버림받고 밀려난 소외계층’이다.”라고 말씀하셨고, “그리고 그 민중이란 오늘이라는 구체적인 현실에서 그때 그때 다른 모습으로 나타나는 것이지 객관화시켜 절대화할 수 있는 개념이 아니다.”라고 가르쳐 주셨답니다.

바로 2015년 오늘, 소외된 모습으로 살아가는 이들이 바로 민중들이고, 그 소외된 상태에서 벗어나려고 애쓰는 이들이 민중들이라는 말씀입니다.

비록 2015년의 제 삶이 민중적인 것이 아니고, 민중과 함께하는 삶도 아니였지만, 그들을 조금이라도 이해하려고 흉내라도 낸 까닭은 바로 안목사님의 가르침이 함께했기 때문입니다.

그래 감사랍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제 이해와 믿음이 흔들릴 때마다 성서를 손에 들고 질문하게 했던 신앙에 대한 감사입니다.

세월호 유가족들, 나그네나 이방인으로 이민자로 살아가는 사람들. – 모두 2015년 감사절에 위하여 기도해야만 할 민중들의 모습입니다.

그리고…

30년 넘는 세월동안 흔들림없이 민중들과 함께 하나님나라를 꿈꾸며 외길 걸어온 벗을 소개 드립니다. 저도 30여년만에 이 친구를 처음 만납니다. 헤어져 만난지 30년이 넘었지만, 그가 서 있는 곳에서 한결같이 첫 마음 그대로 “어떤 체제로부터 버림받고 밀려난 소외계층”과 함께 하고 있는 김규복목사입니다. 그는 오늘도 함께하는 이들에게 ‘희망과 소망’을 이야기합니다.

희망과 소망으로 산다는 것은 오늘 이 자리에서 내일을 살고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자리에 이 글을 읽고 계신 당신을 초대합니다. 뜻깊은 2015년Thanksgiving이 되리라는 생각으로…

김규복목사 초청 온라인

제목 : 한국내 이민 노동자들과 다문화 가정

일시  : 2015 11 24() 오후 9오후11(미국 동부시간 기준)

장소 : 온라인 모임방https://zoom.us/j/6998016922  ) – 당일(11/24) 오후 8시 50분부터 입장 가능합니다. 녹색 글씨 링크를 클릭하시면 됩니다.

필라 세사모에서 당신을 온라인 강의에 초대합니다.

Join from PC, Mac, Linux, iOS or Android: https://zoom.us/j/6998016922

Or join by phone:

+1 646 558 8656 (US Toll) or +1 408 638 0968 (US Toll)

Meeting ID: 699 801 6922

참조 : http://conta.cc/1Lrc3ug

김규복목사 약력보기 (http://www.seomna.or.kr/page/m1s2.html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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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 이주민과 함께하는 모임> 사진첩에서

 

Happy Thanksgiving!

매주 일요일 아침마다 제 가게 손님들을 비롯하여 저처럼 구멍가게를 하는 이들의 손님들에게 짧은 편지를 띄우는 일을 계속한지도 제법 되었습니다. 2007년 7월부터 시작해서 이제껏 단 한주도 쉬어본적 없이 이어져 온 일이랍니다.

매번 편지를 쓸때마다 제 맘속에 품는 생각이 하나 있답니다. “단 한사람만에게라도”라는 생각이랍니다. “단 한사람만에게라도” 제 생각이 이어져 단지 편지를 읽는 짧은 시간 동안만이라도 삶에 대한 푸근함과 감사를 느낄 수 있다면, 제가 하는 일에 의미를 둘 수 있겠다는 맘으로 이어온 일이랍니다.

그리고 내일 아침 띄울 편지를 이 밤에 마무리지었답니다.

이 편지를 제 블로그에 올리는 까닭은 비단 제 손님들 뿐만 아니라 제가 기억하는 모든 이들, 아니 누군가 제가 모르게 저를 기억해 주시는 모든 분들께 드리는 이 계절의 인사이기 때문입니다. 제 인사를 맘속으로 받는 단 한사람 있다면, 그 분에게 드리는 뜻으로…. 함께 나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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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NS (Social Network Service)는 사람들의 생활을 아주 많이 바꾸어 놓았습니다. 특히 스마트폰 이용자들의 증가와 무선 인터넷 서비스의 확장은 삶의 양식을 빠르게 바꾸어 놓았습니다.

진짜인지 우스개 소리인지 모르지만 바로 옆에 있는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면서도 얼굴을 보며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스마트폰 문자를 통해 이야기를 나눈다는 말도 듣습니다.

이런 삶의 변화는 물론 긍적적인 측면의 것들이 많지만 종종 부정적인 측면도 나타나곤 합니다.

일테면 페이스북 등에 자신의 이야기들을 공유하면서 일반적으로 좋은 것들만 올리다보니, 나이 어린 친구들 가운데 “남들은 저렇게 즐겁게 잘만 사는데…. 나는 뭐지?”라는 생각이 들어 자신을 비하한다는 뉴스들도 보게되는 것입니다.

그런 뉴스들을 보게될 때면 안타까움이 앞선답니다. 사실 남과 자신을 비교하여 스스로 주눅들어하는 일은 SNS뿐만 아니라 현실 세계에서도 종종 보게되는 일들입니다.

자! 추수감사절 주간입니다. 약 오천만 명이 가족들과 함께 하려 길을 떠나고, 그만한 숫자의 칠면조들이 가족들의 식탁을 풍성하게 해주는Thanksgiving Day가 있는 주간입니다.

얼핏 이 한주간을 모든 사람들이 즐겁고 기쁘게만 보내는 것 처럼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조금만 관심을 갖고 이웃들을 돌아보면 누구나 다 그런 것이 아니라는 것을 쉽게 알수 있습니다.

함께 모이는 가족들 한사람 한사람들도 마찬가지일것입니다. 가족 구성원 모두가 그저 즐겁고 기쁘기만한 “오늘”을 누리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그러나 추수감사절입니다.

그 누구라도, 어떤 상황이나 어떤 처지에 있더라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사하고 기뻐하며 즐길 수 있음을 확인하는 날입니다.

어떤 계획, 어떤 모습 누구와 함께 보내시더라도 즐겁고 풍성한 추수감사절이 되시길 빕니다.

SNS (Social Network Services) has changed people’s everyday lives so much. Especially, the explosion of smartphone users and the rapid expansion of wireless internet service have changed their life styles drastically and quickly.

Whether it is a joke or a fact, I’ve heard that people talk to others through texts on smartphones instead of looking at each other, even if they sit side by side.

While this kind of change in our lives brings about many positive aspects, it also gives rise to negative phenomena.

According to news reports, when people post their stories to share with others on SNS such as Facebook, generally they select only good and happy stories to post. So when youngsters see those posts, they think that “other people enjoy such a happy life… Why isn’t my life like that?” and put themselves down.

I feel sorry when I come across such news. As a matter of fact, social phenomena to compare oneself with others and to put oneself down are not limited to the SNS world, but are happening in the real world all the time. But still, that’s very unfortunate and sad.

Well! It is Thanksgiving Day week. About fifty million people will travel to join their families, and roughly the same number of turkeys will make dinner tables become delicious feast.

On a moment’s thought, we may assume that everybody will enjoy this week happily and delightfully. But, looking around with a little bit more caring mind, we will easily know that is not true.

Even all the family members gathered may not be in the same happy and delightful situation. All of them may not be enjoying only happiness “today.”

However, it is still Thanksgiving Day.

Whoever and in whatever situation you may be, it is a day which you can enjoy and celebrate with thankful and happy feelings.

I wish that all of you will have a happy and abundant Thanksgiving Day, whatever plan you may have, whomever you may be with, and whatever circumstances you may be under.

아름다움에 대하여

어제밤 이후 제 머리속을 떠나지 않는 한 생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생각을 하고 있는 제가 그 생각을 무어라 불러야는지 딱히 이름지어 부를 수가 없었답니다. 제 머리속과 가슴을 꽉채운 어떤 생각이 있기는 한데 “그건 바로 이거다”라고 이름지어 말할 수가 없었다는 말씀입니다.

월요일 일터에서 일을 하면서도 그 ‘어떤 생각’이 그냥 느낌으로만 뱅뱅 돌 뿐이지, 생각이 영글어 표현에 이르는 지경에는 닿지 못했답니다.

그러다 하루가 지난 이 밤, 옛 선생님의 가르침 하나 문득 떠올리면서 그 생각을 무어라 이름 지어야 하는지를 찾아내었답니다. 바로 “아름다움”이랍니다.

저는 어제밤 <접속 – 세월호가족과 재외동포 온라인 만남>이라는 온라인 화상 모임에 함께 했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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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모임에는 한국에 계신 세월호 유가족분들을 비롯하여 미국, 캐나다, 독일 등지의 19개 도시에서 참가하신 약 백여명에 가까운 동포들이 함께 했답니다.

비록 컴퓨터나 휴대폰 화상을 통해 얼굴을 맞댄 것이지만, 마치 실제 한 공간에서 만나고 느끼는 것 같은 시간을 함께 했답니다.

어제밤, 거의 두시간을 넘긴 만남속에서 함께했던 이들은 마치 서로서로 손을 맞잡고 이어진 모습으로 하나가 되었었답니다.

그 순간들의 느낌들을 하나로 엮는 생각이란  바로 “아름다움”이었답니다.

사실 어제밤 함께했던 이들이 함께 나누고자 했던 것은 아픔이었답니다.

그리고 어제밤 모임은 그 아픔이 ‘너’만의 것이 아닌 ‘나’와 ‘우리’들의 것이라는 사실을 확인하는 자리였던 동시에 그 아픔을 남의 일로만 생각하는 “저들을” 향하여  “끝내 너희들도 우리가 되리라”고 함께 외쳐보자고 만든 자리였답니다.

그렇게 아파하는 자들의 모임이었지만 모임에 참석했던 우리 모두는 웃음을 잃을 수 없답니다.

바로 어제밤, 아파하는 우리들이 함께했던 그 웃음에 대한 생각을 “아름다움이다”라고 말씀하신 이는 함석헌선생님이시랍니다.

<그러나 정말 아름다움은 어디 있는지 아느냐? 도리어 강한 대조에 있지 않느냐? 푸른 잎에 붉은 꽃, 시커먼 구름에 반짝이는 샛별 모양으로. 감격을 하지. 비극이 무엇이냐? 극단의 대조 아니냐? 도저히 어울릴 수 없는 것을 맞대놓음으로 아름다움을 나타내는 것이 비극이다.우리 마음은 하나됨을 얻는 때에 가장 즐거움을 느낀다. 그러므로 하나될 수 없는 것을 맞대놓고 거기서 하나됨을 찾으려 하는 때에 아름다움을 느낀다.>

바로 아름다움이었습니다.

세월호에 맺힌 한이 이미 아름다움으로 이어지는 한 “잊혀지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들은 그 아름다운 일들을 이어가는 새로운 걸음들을 이어갈 것입니다.

5.16 쿠데타

태평양전쟁과 광복 70년 (Pacific War and Postwar Korea) – 16

– 글쓴 이 : 김도원(金道元)

둘째 이야기    광복 70년 (光復七十年)

5.16 쿠데타

한국 현대사에서‘<4.19혁명>은 이승만 박사를 연상(聯想)할 수 있는 말이고, <5.16 쿠데타>의 주인공은 박정희 장군이다.’라는 것이   초등학교 학생용으로 만든 국어사전에도 실려 있는 것이기 때문에, 그런 것을 길게 설명할 필요는 없지만, 이번 이야기의 제목으로 정한 내용을 엮어 나가기 위해, 우선 그런 설명부터 이 글에 옮겨 적고, 5.16 쿠데타에 관한 몇 가지 이야기를 펼쳐보기로 한다.

<사일구(4.19) 혁명(四一九革命)>

1960년 4월, 12년 동안에 걸친 이승만 정권의 독재 정치와 3.15 정.부통령 선거의 부정에 항거하여 학생과 시민이 들고일어난 일.

<오일륙(5.16) 군사정변(五一六軍事政變)>

1961년 5월 16일, 박정희 육군소장을 비롯한 청년 장교들이 장면 내각을 뒤업고 정권을 장악한 일.

                  (초등학생 학습 국어사전 (주) 교학사, 1999. 7. 10)

위에 적은 것처럼 <5.16 군사정변>이라고도 하고, <5.16 군사혁명 (軍事革命)>이라고도 하는 <5.16 쿠데타>란 1961년 5월 16일, 박정희 (朴正熙) 소장을 중심으로 일단의 청년 장교들이, 4.19의거 이후의 정치적으로나 사회적인 혼란을 수습한다는 명목 아래 일으킨 군사혁명 이다.

이로써 민주당의 장면(張勉)정권이 무너지고 군사혁명정부가 생겼는데,    2년 동안 그들의 군정(軍政)이 실시되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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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설명하자면, <장면 내각(張勉內閣)> 또는 <장면(張勉)정권>이란 이승만의 자유당 정권이 무너진 다음부터 박정희의 군정이 생길 때까지  그 중간에 있었던 정권이다.

이야기를 잇기 전에 World Book, Inc에서 펴낸The World Book Encyclopedia의 1988 판에 실린 박정희에 대한 기록을 소개한다.

Park Chung Hee (1917-1979) served as president of South Korea from 1963 to 1979.

He had taken power as head of the nation in 1961 after leading a military revolt against the civilian government.

In 1979, Park was assassinated by the head of the country’s Central Intelligence Agency.

Park, controversial leader, helped establish many new industries in South Korea and the country’s economy grew rapidly under his rule.

On the other hand, Park’s government greatly restricted individual rights.

For example, the government made illegal to criticize the president or the constitution, which gave the president almost unlimited power.

Park had many people imprisoned for criticizing his policies.

He declared that harsh rule was needed to guard against attack by North Korea.

Park was born in Sonsan-gun, a country in North Kyongsang Province.

In the early 1940’s he attended military academies and served in the Japanese Army.   (중간 생략)

Park became a Korean Army captain in 1946 and a general in 1953.

After leading the 1961 military revolt, he headed the military government for two years.

In 1963, Park resigned from the army and was elected president by the voters to head a new civilian government.

He was reelected by the voters in 1967 and 1971.

In 1972 and 1978, Park was reelected college made up of persons loyal to him.

위와 같이, 백과사전에 실린 박정희 대통렁이 남긴 행적(行蹟) 중엔 다음과 같은 설명도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Park’s government greatly restricted individual rights.

For example, the government made illegal to criticize the    president or the constitution, which gave the president almost unlimited power.

Park had many people imprisoned for criticizing his policies.

위에 옮겨적은 설명만으로도, <5.16 쿠데타>의 주인공인 박정희 장군의 인간성(人間性)이 어떠하다라는 것을 대략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가 가지고 있는 출세(出世)에 대한 욕망(欲望)은 남다른 데가 있었다.

한국 현대사에서 그는 보기드문 변신(變身)의 달인(達人)이라는 것이 세간(世間)에 알려져 있기 때문에 몇 가지 예를 들어보기로 한다.

박정희는 5.16 쿠데타를 일으키면서 <혁명공약(革命公約)>이라는 것을 발표했다. 한데, 그 <공약(公約)이 <공약(空約)>으로 변질(變質)되어 버렸다.

예를 들면 공약 3번 중, <이 나라 사회(社會)의 모든 부패(腐敗)와 구악(舊惡)을 일소(一掃)하고>라는 말이 있는데, 구악(舊惡) 대신 <신악(新惡)>이 생겼고, 그 신악의 위세(威勢)는 구악을 뺨칠 정도였다.

그런 것 뿐만 아니었다.

공약 6번은 어떠했나?

<…… 우리의 과업이 성취되면 참신하고도 양심적인 정치인들에게 언제든지 정권을 이양하고 우리들은 본연의 임무에 복귀할 …… >이라는 공약(公約)을 약속대로 실행(實行)했던가?

박정희 소장과 육군사관학교 8기생인 김종필(金鍾泌) 중령 등이 주도 (主導)한 쿠데타 세력은 그들과 합세한 일단(一團)의 병력과 함께 1961년 5월 16일 새벽에 한강을 건너 서울의 주요기관을 점령하였다. 그리고, 그들은 군사혁명위원회를 만들어 앞에서 설명한 것과 같은 혁명공약을 발표했다.

5.16 쿠데타의 주역(主役)인 박정희 장군 …… 이미 앞에 적었듯이 그는 <출세(出世)에 대한 욕망(欲望)이 남달랐고, 변신(變身)의  달인(達人)이라는 것이 세간(世間)에 알려진 사람이다.

  • 일제강점기(日帝强占期)때, 문경공립보통학교 교사였던 박정희는 교사직을 사임하고, 일본의 허수아비 국가인 만주국(滿洲國) 신경군관학교 (新京軍官學校)와 일본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한다.
  • 일본을 위해 목숨까지 내놓을 것을 맹세했고, 창씨개명할 때 100 퍼센트 일본식으로 성과 이름을 바꾸기까지 했던 박정희 —   그는8.15 해방을 맞아 광복군(光復軍)으로 변신했다.   그리고   귀국한다.

그는 귀국한 다음, 대한민국을 위해 남긴 그의 업적도 있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보면, 그는 자신의 욕망(欲望)을 위해 수단과 방법 을 가리지 않는 사람이고, 결국은 한 나라의 독재자가 되었던 것이다.

박정희가 주도(主導)하는 제4공화국 헌법을 <유신헌법(維新憲法)>이 라고도 한다.   한데, 그 법에는 긴급조치(緊急措置)라는 것이 있다.

긴급조치(緊急措置)는 이현령비현령(耳懸鈴鼻懸鈴)과 같은 것이다,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라고 하듯이, 둘러대기에 따라 이렇게도 되고 저렇게도 될 수 있다는 말이다.

그러한 <긴급조치>라는 것은 그 당시 박정희가 장기집권(長期執權)의 꿈을 꾸면서, 그의 욕망을 채우기 위하여 만들어낸 수단과 방법이었다.  말하자면, 그것은 자신의 인생말로(人生末路)를 재촉하는 법이었다.

자승자박(自繩自縛)이라는 말도 있고, 자업자득(自業自得)이라는 말도 있는데, 박정희 —– 그가 바로 그런 사람이었다.

World Book, Inc에서 펴낸 1988 Edition The World Book Encyclopedia 에 실린 박정희 대통령에 관한 설명을 생각해본다.

In 1979, Park was assassinated by the head of the country’s Central Intelligence Agency.

이 설명문에 나온 ‘the head of the country’s Central Intelligence Agency.’의‘the head’라는 표현은 당시 중앙정보부 김재규(金載圭) 부장을 가리킨 것이다.

나는 이 글을 엮으면서 대한민국 역대 대통령 등, 저명(著名)한 인사 (人士)들의 이름도 적었다.   한데 그들 중 이승만 박사만 빼고, 그 밖에는 모두 이름으로만 알고 있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지금 이 글에 적고 있는 <김재규(金載圭)>라는 그 이름은 내 마음 속에 늘 있게 될 것이다.

돌이켜보건대, 박정희가 <혁명공약>을 어긴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세 번이나 집권기한(執權期限)을 연장(延長)했고, 유신헌법이라는 것으로 집권을 유지하려고 했다.   한데, 박정희 대통령이 휘두르는 그 엄청난 권력을 김재규가 막아낸 것이다.

김재규 …… 그가 어떠한 의도(意圖)로 (예를 들면, 정권 탈취 등) 박정희를 죽였든 간에 그런 것과는 상관없이 사건이 생긴 다음, 박정희 독재가 무너졌다는 것을 부정할 사람은 없을 것이라는 이야기다.

역사(歷史)에 가정(假定)은 있을 수 없다.   이미 이루어진 것은 되돌릴 수 없거나 되돌리기 어려운 것이기 때문에 그렇다는 것이다.

하지만, 글을 엮기 위해 한 가지 적는다. 박정희도 갔고, 김재규도 갔다.   한데, 1979년 10월 26일, 궁정동 안가(安家) 술판에서 벌어진 그 사건이 없었다면, 이런 글을 쓰게 되지도 않았을 것이다라는 생각을 해본다.

박정희 대통령에게 총을 쏜 김재규 장군도 1926년생이다.  5.16 주체(主體)의 한 사람인 김종필 전 국무총리도 1926년생인데, 그의 구순(九旬,90세)에 관한 글이 인터넷을 통해 전해지고 있다.     (참고 : 위에 적은 <90세>란 한국의 전통적인 계산법에 따른 것임)

1926년생인 그들은 모두 내 나이와 같은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나서 적어보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