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고식

<2016년 2월 호된 신고식을 치루다.>


한 두해전부터 받기 시작한 광고 메일들이 있습니다. 특히 지난해와 올들어 그 수가 많이 늘었습니다. 은퇴자들을 위한 아파트와 콘도 광고들과 각종 은퇴 관련 상품 광고들입니다.

아직 은퇴라는 생각을 해본적도 없거니와 제 계획에 따르자면 아직 먼 훗날 이야기이므로 그런 종류의 광고물들은 곧장 휴지통행이 되곤합니다.

지난달인가는 이제 원하면  Social Security 수혜 가능한 연령이 되었다는 안내 메일도 받았답니다.  기차 요금을 비롯한 각종 공공요금의 노인 할인혜택도 받을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러거나 말거나 저와는 아무 상관없는 일처럼 관심이 없었답니다. 당연히 ‘은퇴 이후’라는 생각은 제 머리속엔 없었다는 말입니다.

다만, 가능성은 늘 있는 법이므로 죽어 누울 땅 한조각은 준비해 두었답니다. 물론 먼먼 훗날일 것이라는 생각으로 말입니다.

그러다 독한 감기에 걸린 일은 이달 둘째주 월요일이었습니다. 그로부터 만 삼주가 흘렀습니다만 여전히 약기운으로 지냅니다.

이제까지 살아오면서 일주일 이상 앓아본 일도 처음이거니와 약을 일주일 이상 먹어본 일도 처음입니다. 사흘 이상 전혀 먹지 못한 일도 처음이고, 이렇게 오랫동안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한 일도 처음입니다.

급기야 저혈압 증상으로 일어서다가 맥없이 작대기처럼 쓰러져 잠시 정신을 잃어 본 일도 난생 처음 겪는 일이었습니다. “어, 어..”하는 생각은 분명 있었는데 생각과 몸이 전혀 따로 노는 일을 겪으며 속으로 꽤나 놀라는 경험을 해보았습니다.

쓰러지며 무릎에 생긴 퍼런 멍자국을 보며 “이게 신고식이구나”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노년으로 들어서는 신고식 말입니다.

제 아무리 백세 시대라 하여도 이미 노년으로 들어선 자신을 바로 바라보는 일이 중요하다는 깨달음을 얻은 2월입니다.

이런 저런 생각들이 참 많았던 2016년 2월 한달도 저뭄니다.

마음 편한 글들을 찾아 읽다가 눈에 들어온 임어당(林語堂)선생의 가르침으로 신고식 역시 새로운 삶의 하나라는 깨달음을 얻습니다.

노자1<남을 아는 것은 지혜(智)라 하고 자기를 아는 것은 밝음(明)이라 한다. 남을 이기는 것은 힘이 있다고 하지만, 자기를 이기는 것은 강하다고 한다. 스스로 만족할 줄 아는 자는 부자라 하고, 자기를 이기는 강함으로 행동하는 자를 뜻(志)을 얻었다고 한다. 근원의 바탕을 잃지 않는 자는 영속할 수 있으니, 설사 죽더라도 그 바탕만 잃지 않는다면 그것이 바로 장수하는 것이다.>

재미있게 살기 위하여

독감(毒感)이라더니 정말 독한 놈에게 걸려들었습니다.

약병은 커녕 바이타민 조차 곁에 두고 살지않던 제가 딱 두주째 약기운으로 지낸답니다. 초기 사나흘 앓고 하루 반짝해서 ‘감기가 그렇지 뭐’ 했었는데 웬걸, 그후 꼬박 나흘을 누워지냈었답니다. 그리고 또 하루 멀쩡해서 ‘어이구 독한 놈 만났었네’하고 이튿날이면 털고 일어날 줄 알았답니다. 헌데 정말 독한 놈을 만난 것입니다. 다시 눕고 사흘이 지났답니다.

가벼운 폐렴 증세까지 보이며 급기야 항생제를 넘기기 시작했답니다.

그리고 제가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은 “충분한 수면과 휴식 뿐”이랍니다.

노인네들 한겨울 보내고 새 봄 되어 만나면 겨우내 폭싹 늙었더라는 말이 가히 남 이야기가 아닌 제 이야기가 되었습니다.

그나마 비록 양은 평소 절반이라도 정상적인 식사를 즐길 수는 있게 되었으므로 하루 이틀 후면 독감과의 동거 이야기를 추억 삼을 수 있게 될 듯합니다.

누워 지내며 두 권의 책을 읽었습니다. 얼마전에 돌아가신 신영복선생님께서 남기신 “강의”와 의사 이근후선생님의  책  “나는 죽을 때까지 재미있게 살고싶다.”입니다.

이근후선생님의 책은 사실 암투병중인 장모님께 드리려고 구입한 것인데 제가 먼저 읽고 말았답니다.

신영복선생님의 고전강의인 “강의”를 읽으며 유영모, 함석헌, 김용옥, 강신주 등의 고전 강의와는 또 다른 울림으로 다가왔습니다. 아직 배우고 깨닫고 행해야 할 많은 일들이 있으므로 우선 건강하고 볼 일입니다.

그리고 어제 아침, 이근후선생님의  책  “나는 죽을 때까지 재미있게 살고싶다.”를 읽은 아주 짧은 느낌을 적어 제 가게 손님들에게 이메일 편지를 보냈었답니다. 그리고 제법 많은 분들께서 동감이라는 답을 주셨습니다. 책 제목이 좋다고요.

“죽을 때까지 재미있게 살”기 위해서라도 건강하고 볼일입니다. 무릇 “재미”란 주관적인 것임으로  각자 “스스로”들을 위하여.

(아래글은 손님들에게 보낸 편지)


이근후지난 주간에 책을 한권 읽었습니다. 책 제목이 “나는 죽을 때까지 재미있게 살고싶다.”입니다. 50년 동안 정신과 의사로 일해오다 은퇴한 올해 81살인 한인 의사 이근후라는 이가 쓴 책입니다. 누구나 읽기 쉽게 쉬운 말로 자신이 살아온 인생을 뒤돌아보며 느낀 점들을 기록한 책입니다.(아쉽게도 영문본은 없으니 제가 소개해 드립니다.)

저자 이근후씨 내외는 12여년 전부터 3대가 함께 사는 대가족의 제일 어른이랍니다. 2남 2녀인 자식들이 결혼을 하고 다들 각자 따로 살다가 12여년 전에 모두 함께 모여 살면 어떻겠냐?는 생각으로 한집안에 모두 모여 살게 되었답니다.

이 제안은 그의 장남 내외가 먼저 꺼냈고, 다른 자녀들이 동의를 했다고 합니다. 사실 이박사 내외는 끝까지 망설이다가 함께 하기로 했다고 합니다.

5 가정이 함께 사는 이 집의 구조는 매우 독특하답니다. 출입문이 각기 다를 뿐더러 서로가 서로를 구속하지 않는 구조를 지녔다고 합니다.

이근후는 이렇게 말합니다.

“가족들은 내 인생이다. 가족뿐만 아니라 내가 살아오면서 만난 모든 사람들이 바로 내 인생이다. 칙구, 제자, 동료, 환자들 그리고 여행지에서 만나고, 산에서 만나고, 봉사를 하면서 만났던 사람들…… 수많은 인연들이 모두 나의 인생이었다.”

“나는 그 수많은 사람들의 이름들을 다 기억하지 못한다. 다만 누구라도 얼굴을 떠올리면 그가 가진 장점이나 좋은 기질 달란트를 기억해 낼 수 있다. 내 인생이기에…”

저는 그처럼 대가족을 이루고 살만한 능력도 없거니와 결코 평범하지 않은 그의 삶을 흉내낼 처지도 되지 못합니다.

그렇다하더라도 내 가족 얼굴 하나 하나마다 내 세탁소 손님 한분 한분에게마다 그들을 떠올리 때면 내가 좋아지는 이미지나 의미를 새겨넣는 훈련 정도는 할 수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해 보았답니다.

재미있는 하루 하루들은 매일 새롭게 시작되는 한 주간이 되시길 빌며

당신의 세탁소에서

Last week, I read a book, entitle “I Want to Live a Fun Life until I Die.” It was written by Keun-hoo Lee, MD, who is an eighty-one year old retired neuropsychiatrist and professor.

It is a book in which he recorded what he felt, looking back over his life, in plain terms to make it easy to read. (Unfortunately, as it has not been translated into English yet, I’ll introduce it to you.)

The author, Dr. Lee and his wife head a family of three generations. His two sons and two daughters got married and moved out. But about twelve years ago, he, his wife and his children talked about an idea that all of them would live together in one house and decided to do so.

His oldest son and his wife brought up the idea, and the other son, daughters and their spouses supported it. Initially, his wife and he hesitated to consent to it, but then decided to go along.

The house in which five families live together has a unique structure. The entrance for each family is separate and different and no one interferes in what the others do.

Dr. Lee said:

“My family is my life. Not just my family, but all the people who I have met in my life are my life. Friends, students, colleagues, patients, those who I have met in traveling, hiking, and volunteering ― all those countless encounters were my life.”

“I don’t remember all of their names, but if I recall any of their faces, I can recollect his/her virtue, good disposition, or talents. Because they are my life…”

I don’t think that I can afford to lead an extended family in a house like him or to imitate his extraordinary life.

Having said that, I think that I can train myself to carve in my mind the good perceptions and images which match every face of my family and every customer of mine.

I wish that you will have a fun life every day this week and beyond.

From your cleaners.

뉴욕 나들이 후기

어제 딸아이 사는 모습 좀 보고 오느라고 뉴욕을 다녀왔답니다. 아이가 연휴면 종종 집에 오느터라 자주 가보지는 않는답니다.

뉴욕 맨하턴 나들이에서 제가 즐기는 몇가지가 있답니다. 주차비에 치이고, 맨하턴에서 차 사고를 한번 당한 이후에는 맨하턴 나들이는 언제나 기차 아니면 버스를 이용한답니다. 우선 그 교통 수단의 편안함입니다. 버스나 기차나 오고가는 시간에 누리는 편안함이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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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하턴 한인거리에 있는 서점 방문과 한식당에서 누리는 한끼 입맛의 호사와 곁들이는 소주 한잔의 즐거움 등이 나들이를 풍요롭게 하는 것들이랍니다.

지난 가을에 뉴욕 나들이를 했을 때는 서점이 리모델링 공사중이라 문을 닫아 그 즐거움 가운데 하나를 놓쳤었답니다. 딸아이에게 서점이 공사를 끝내고 다시 문을 열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터여서 내심 알라딘을 통해 구입하려던 책들을 이번 나들이 몫으로 미루고 있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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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서점과 판매 서가에 꽂힌 책을 구입할 수 있는 책방과의 차이는 맛이 다름에 있지요. 같은 책을 구입해도 정말 맛이 다르답니다.

새로 꾸민 서점의 모습에 실망이라기 보다는 안타까움이 밀려 왔습니다. 우선 규모가 거의 절반으로 줄어 들었답니다. 그렇게 줄인 나머지 공간은 화장품 매장과 의류 매장으로 꾸며져 있었답니다.

그렇게 줄어든 공간에서 느꼈던 안타까움을 증폭시킨 것은 서가에 진열된 책들이었습니다. 웬 요리책들이 그리 많이 꽂혀있던지요. 좁은 공간에 거의 한 섹션을 이루고 있었답니다. 그리고 맹목적인 기독교 서적들과 자기 개발서들이 주는 안타까움이었습니다.

서점 비즈니스의 현실을 들어내고 있었답니다. 저만해도 서점 나들이는 그저 이따금 누리는 재미일 뿐, 아마존이나 알라딘이 편한 것을요. 그나마 서점을 그렇게 유지하려는 주인장의 아픔을 느꼈다할까요.

서점 방문에 앞서 들렸던 macy 백화점에서의 느낌도 새로운 것이었답니다. 사실 저는 뉴욕 macy 백화점 안에 들어가 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랍니다. 아내와 딸아이가 샤핑을 할 때면 저는 늘 따로 놀곤 했었는데 이번엔 함께 했답니다. 늙어가는 징조일겝니다.

매장에 들어가서 제가 놀란 것은 매장 일층 로비를 장식하고 있는 치장들이었습니다. 중국의 춘절 곧 우리 설날을 중국풍으로 드러낸 장식들이었습니다. 그리고 2, 3, 4층으로 올라가면서도 똑 같은 느낌을 받았답니다. 바로 빨간색을 주조로 한 치장들이었습니다.

중국 소비자들의 위력을 느낄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 어제 서점에서 사온 책들을 훑어 보다가 눈에 들어온 대목입니다.

『논어』의 이 화동론(和同論)은 근대사회 즉 자본주의 사회의 본질을 가장 명료하게 드러내는 담론이라고 생각합니다. 화는 다양성을 인정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관용과 공존의 논리입니다. 반면에 동은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고 획일적인 가치만을 용납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지배와 흡수합병의 논리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화와 동은 철저하게 대를 이루고 있습니다.

따라서 ‘군자화이부동’(君子和而不同)의 의미는 군자는 자기와 타자의 차이를 인정한다는 것입니다. 타자를 지배하거나 자기와 동일한 것으로 흡수하려 하지 않는다는 의미로 읽어야 합니다.

반대로 ‘소인동이불화’(小人同而不和)의 의미는 소인은 타자를 용납하지 않으며 지배하고 흡수하여 동화한다는 의미로 읽어야 옳다고 생각합니다.

화의 논리는 다양성을 인정하는 관용의 논리이면서 나아가 공존과 평화의 원리입니다. 그에 비하여 동의 논리는 지배, 흡수, 합병의 논리입니다.

동의 논리 아래에서는 단지 양적 발전만이 가능합니다. 질적 발전은 다양한 가치가 공존하는 화의 논리에 의해서만 가능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위 구절은 다음과 같이 읽는 것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군자는 다양성을 인정하고 지배하려고 하지 않으며, 소인은 지배하려고 하며 공존하지 못한다..”

IMG_20150426_082042얼마전에 돌아가신 신영복 선생님의 책 ‘강의’ 162-163쪽에 실려 있는 말입니다.

세상은 늘 변하고 시대의 대세에 따라 사람들의 마음도 변하기 마련입니다. 딱히 자본주의의 변화 뿐만 아니라 중국과 미국 또는 한국 이라는 국가 단위 공동체도 부단히 변해갑니다.

점점 설자리 잃어가는 서점 주인과 쇠락해가는 macy 뿐만 아니라  동(同)의 논리에 매몰되어 있는 이 사회가  화(和)를 주창하는 소리에 귀 기울여 주었으면 하는 바램이 이는 밤입니다.

어느 섣달 그믐

단지 몇 달 사이인데 많이 바뀌었습니다.

이른 아침에 뉴욕행 버스를 타노라고 차를 터미널 인근 주차장에 대었더니 평소와 달리 티켓 대신에 동전만한 플라스틱 칩이 나오더군요. 그리고 주의사항이 적혀 있는데 칩을 잃어버리면 거의 세배가 넘는 금액을 물어야 한다고 되어 있었습니다.

차를 대놓고 아내와 저는 작은 다툼을 벌렸답니다. 아내는 칩을 가지고 가자는 쪽이었고 저는 차에 두고 가자는 쪽이었답니다. 암튼… 늘 그렇듯…

외지인 뉴욕에 도착해서는 몇 달 사이 어리버리 노인네가 된 우리 부부는 살가워질 수 밖에 없었답니다.

모처럼 만난 딸아이는 우리 부부가 노인네라는 것을 직파한 모양입니다. 매사 집에 있을 때와 다르게 침착하고 꼼꼼히 애비 에비를 챙기는 모습이었답니다.

어느새 딸아이가 툭!

아내와 어머니보다 더 윗자리에 앉아 있는 듯한 섣달 그믐이었답니다.

돌어오는 길 우리 부부는 다 큰 딸아이 이야기로 “쎄쎄쎄…” 하다가…

다시 주차장에 이르러 그 놈의 칩 때문에… 다시 다툼을…

그렇게 우리들의 일상을 돌아왔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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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지하철 매표소 한글 안내를 보며… )

*** 사족 : 차이나 타운에서 우리 세 식구가 정말 맛나게 먹고도 남은 만두와 국수 값에 비해 코리아 타운에서 먹은 순두부와 비빔밥은 거의 두배 반에 이르는값에 비해 서비스도 그에 역비례였다는…

나를 위로하는 시 하나

2016년 새해 달력을 건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한장을 넘깁니다. ‘왜 이렇게 빠를까’라는 생각을 하며 시집 몇권을 들었던 것은 엊저녁의 일입니다.

선사(禪師)들이 던진 도(道) 통한 시편들인 임종게(臨終偈)와 이 세상 아픔조차 놀이로 읊었던 천상 시인 천상병의 시편들 그리고 오늘 제 가게 손님 한 분이 “Oh Boy!  Gee Whiz!  Wow!  Golly!  Outta’ sight!  Brilliant!”라며 찬사를 보낸 수녀 이해인님의 시편들이었습니다.

그리고 오늘 아침에 제 가게 손님들에게 보냈던 편지입니다.

2월을 맞는 우리 모두가 스스로를 다독거리며 조금만 더 예쁜 삶을 살기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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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이면 벌써  2월입니다.

일월 마지막 주일 아침에 제가 정말 좋아하는 시인과 시 하나를 소개해 드립니다. 이미 이 편지를 통해 몇차례 그녀의 시를 소개해 드린 적이 있답니다.

시인의 이름은 이해인이고  1945년생인 그녀는 천주교 수녀입니다.

1950년 한국전쟁이 일어났을 때 그녀의 아버지는 북으로 납치되었습니다. 그녀는 고등학교 1학년 때 수녀가 되기로 결심하였답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곧 수녀의 길로 들어선 그녀는 그 때부터 많은 시를 쓰기 시작했답니다.

그후 공부도 계속해서 영문학과 종교학을 전공하면서 동양과 서양의 생각들, 천주교와 다른 종교들의 생각들을 두루 익히며 시를 써왔답니다.

그러던 그녀가 직장암 3기 판정을 받은 것은 2008년이고, 오늘까지 병과 싸우며 계속 시를 쓰고 있답니다.

제가 그녀의 시를 좋아하는 것은 이런 그녀의 삶에 대한 관심 때문이 아니라, 그녀의 시들을 읽으면 마음이 편안해지고 깨끗해지면서 새로운 힘이 솟기 때문입니다.

2016년 두번째 달력을 넘기면서 읽는 그녀의 시랍니다.

2016년 1월의 마지막 주일 아침에 당신과 함께 나누고 싶어 소개해 드린답니다.

나를 위로하는 날

가끔은 아주 가끔은/ 내가 나를 위로할 필요가 있네

큰일 아닌데도/ 세상이 끝난 것 같은/ 죽음을 맛볼 때

남에겐 채 드러나지 않은/ 나의 허물과 약점들이/ 나를 잠 못 들게 하고

누구에게도/ 얼굴을 보이고 싶지 않은 부끄러움에/ 문 닫고 숨고 싶을 때

괜찮아 괜찮아/ 힘을 내라구/ 이제부터 잘하면 되잖아

조금은 계면쩍지만/ 내가 나를 위로하며/ 조용히 거울 앞에 설 때가 있네

내가 나에게 조금 더/ 따뜻하고 너그러워지는/ 동그란 마음/ 활짝 웃어주는 마음

남에게 주기 전에/ 내가 나에게 먼저 주는/ 위로의 선물이라네

나를 위로하는 마음으로 맞는 2월의 하루 하루가 멋진 시간들이 되시기 빌며…


Tomorrow, it will be February already.

For this last Sunday morning of January, I would like to introduce my favorite poet and a poem of hers. I have introduced some of her poems before through this weekly letter.

The poet’s name is Hae-in Lee. She was born in 1945 and she is a Catholic nun.

During the Korea War, her father was kidnapped and taken to North Korea. When she was a freshman in high school, she decided to become a nun. Since she followed her dream to become a nun after graduating from high school, she has been writing poems.

She also continued studying, and majored in English literature in college and the science of religion in graduate school. She kept writing poems while learning and studying Eastern and Western thoughts and Catholic and other religions.

Then, she was diagnosed with colorectal cancer in 2008. Since then, she has been fighting against the cancer, but she keeps writing poems even now.

The reason why I like her poems very much is not because of her life. It is because her poems always set my mind at ease, and I feel both calm and reinvigorated.

It is her poem which I’m reading while tearing off the first page of the 2016 calendar.

I would like to share it with you in this last Sunday morning of January, 2016.

A Day When I Comfort Myself

Occasionally, really occasionally/ I need to comfort myself.

Though not a big thing,/ As if the world had ended,/ When I taste death,

Though undiscovered by others yet,/ When my flaws and weaknesses/ Make me stay awake,

Because of shame/ Not to show my face to anyone,/ When I want to hide behind the door.

That’s OK. That’s OK./ Cheer up./ You can do better from now on.

Though a little embarrassed,/ While I’m comforting myself,/ Quietly/ There are times to stand in front of a mirror.

In which I become to myself/A little bit warmer and more generous/ A full mind,/ A broadly smiling mind.

Before giving to others,/ Which I give to myself first,/ It is a gift of comfort.

I wish that you’ll have a royal time every day in February which you’ll greet with a mind to comfort yourself.

인생행로 (人生行路)

태평양전쟁과 광복 70년 (Pacific War and Postwar Korea) – 20

– 글쓴 이 : 김도원(金道元)

셋째 이야기    세월여류 (歲月如流)

인생행로 (人生行路)

사람은 누구나 제각기 자신에게 주어진 환경(環境)과 여건 속에서 나름 대로 살아가는데, 그렇게 살아가는 시간을 세월(歲月)이라고도 하고,  세월의 흐름이 빠르다는 뜻으로 세월여류(歲月如流)라는 말도 쓰이고 있다.

내가 태어났고 여남은 살 때까지 살던 곳인 경기도 용인 땅, <유실> 이라는 마을에서부터 지금까지의 내가 살아온 길을 뒤돌아보면서 이날까지 지내온 것을 생각해보니, 그러한 느낌이 더욱 새롭다.

<세월여류>라는 말에 공감(共感)하지 않을 수 없다.

<세월여류)에 관한 몇 가지 이야기를 펼쳐보기로 한다.


아주 간단하고 쉽게 말하자면, 인생(人生)이란 목숨을 가진 사람의 존재(存在), 또는 그 사람의 목숨이다.   사람이 이 세상에 살아 있는 기간도 인생이라고 한다.

가수 최희준이 부른 <하숙생>이라는 노래가 있다.  <인생은 나그네길>이라는 가사로 시작되는 노래다.  우선, 그 노래의 가사부터 적고 이야기를 이어가보자.

인생은 나그네 길/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가 / 구름이 흘러가 듯 떠돌다 가는 길에/ 정일랑 두지 말자 미련일랑 두지 말자/ 인생은 나그네 길/ 구름이 흘러가 듯 정처 없이 흘러서 간다

인생은 벌거숭이/ 빈 손으로 왔다가 빈 손으로 가는가/ 강물이 흘러가 듯 여울져 가는 길에/ 정일랑 두지 말자 미련일랑 두지 말자/ 인생은 벌거숭이/ 강물이 흘러가듯 소리없이 흘러서 간다

위에 적은 가사처럼 사람이 한 세상 살아간다는 것은 <나그네 길> 같은 것이고, <빈 손으로 태어났다가> <빈손으로 돌아 간다>라는 것을 부정 (否定)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어째서 그렇다는 것인가?

쉽게 말하자면 사람은 누구든지 이 세상을 떠날 때, 이삿짐 나르듯이 무엇을 가지고 갈 수는 없기 때문에 그렇다는 것이다. 사람이 이 세상에 와서 어떤 모양으로 어떻게 살다가 언제 가든 간에, 태어날 때 공수래(空手來)한 것 처럼, 떠날 때에도 공수거(空手去)한 다는 뜻 아니던가?

그러한 것을 부정(否定)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앞에서 적었듯이 인생(人生)이란 목숨을 가진 사람의 존재(存在), 또는 그 사람의 목숨이고, 사람이 이 세상에 살아 있는 기간이다. 한편, 사람이 이 세상을 살아가는 일도 <인생>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앞에 적은 <하숙생> 가사처럼 <인생은 나그네 길>과 같은 것 이고, <인생이 고달프다>라는 말도 쓰이고 있다.

세상에서 아무리 부귀(富貴)와 영화(榮華)를 누리면서 장수(長壽)한다고 하더라도, 늙고 병들어 저 세상으로 갈 때에는 너나없이 누구나 빈손으로 가지않던가?

이 세상을 떠나갈 때 이렇다할만한 이름을 남기고 가지는 못한다고 하더라도,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거나 남의 손가락질을 받을만한 짓은  하지 않으면서 살다 가는, 그러한 인생길이 되어야 할 것이라는 말이다.

말하자면, 누구 앞에서라도 <한 점의 부끄러움 없이 한 세상 살다 갈 수 있게 된다면, 그러한 것 보다 더 보람있는 [삶]은 없을 것이다> 라는 이야기다.

‘구순(九旬)’하면 나도 남의 일처럼 살아왔건만 어느덧 올해(2016년) 만 90살이 되었다.

오늘날의 내 생활 주변(周邊)을 살펴본다.

내 삶의 종착점(終着點)이 시시각각 (時時刻刻)으로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끼니 때마다 주는 밥 먹고 우두커니 허송세월(虛送歲月)만 하면서 지낼 수는 없지 않은가?”라는 생각을 해본다.

그러한 뜻에서, 오늘도 컴퓨터 키보드를 누르면서 내 나름대로 이런 작업을 하고 있는 것이다.

돌이켜보니 스물 다섯 살, 한창나이에 사지(四肢)가 멀쩡하던 사람이 삽시간에 자유롭게 걸을 수 없는 몸이 되었다.  하지만, 어찌하랴!    이것이 내 운명(運命)인 것을 ……

젊디젊은 나이에 지팡이를 짚어야 걸어다닐 수 있는 처지가 되다니 …

이방원(李芳遠, 조선 제3대 왕인 태종[太宗])의  ‘하여가(何如歌)’라는 시조(時調)는 이렇게 시작된다. “이렇게 산들 어떻고 저렇게 산들 어떠한가”라고.

그 말을 응용하여 나도 한 마디 적어본다.

이런들 어떻고 저런들 어떠한가 나라의 부름 받고 맡은 제자리 지키다가  몸을 다치게 된 것을 …

그래도 나는 행운아(幸運兒)다. 그 난리 속에서 목숨을 잃은 전사자(戰死者)들도 있고 나보다 더 심하게 몸을 다친 전상자(戰傷者)들도 있다.

한데, 이렇게라도 살아있지 않은가 말이다. 얼마나 다행(多幸)인가를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이방원의 <하여가(何如歌)>와 함께 생각해볼 것이 있다.  그것은 고려 충신 정몽주(鄭夢周)의 단심가(丹心歌)다.

이방원의 <하여가>와 정몽주의 <단심가>에 관한 긴 이야기를 하려고 끄집어 낸 것은 아니고, 내 고향인 용인에 정몽주선생의 묘가 있다는 것을 적기 위해 늘어놓은 이야기다.

정몽주 묘

  •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모현면 능원리에 정몽주선생묘가 있다.

경기도 기념물 제1호인 그 묘가 있는 곳인 <모현면>은 내가 살던 곳인 <포곡면>과 인접(隣接)해 있는 곳이다.

<인생행로>에 관한 이야기를 한다는 것이 내 고향 땅에 있는 정몽주 선생묘 이야기까지 나왔다.

어찌 되었건, 지금 이 글에 적고 있는 이야기 제목처럼 <인생행로>라는 말 말고도, <인생>이라는 말이 널리 쓰이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예를 들면, 인생파(人生派)라는 말도 있도, 무슨 인쟁관(人生觀)이니, 인생철학(人生哲學)이니 하면서 아주 거창한 말을 하는 사람들도 꽤 있지만, 그런 이야기는 접어두고, <인생극장(人生劇場)>이라는 이야기 하나 적고, 인생행로에 관한 이야기를 마무리한다.


텔레비전이 보급되기 전에는 극장에 가서 영화나 연극을 볼 수 있었다.  한데, 요즘에는 굳이 극장엘 가지 않아도 그런 것을 볼 수 있다. 텔레비전만 틀어놓으면, 어디에서든지 영화나 연속극 등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Soap-Opera (2)한국의 경우, 가정의 일상생활을 다룬 것을 안방에서도 볼 수 있다고 하여 <안방극장>이라는 말도 생겨났다.  한편, 미국에서는 그런 연속극을 비누회사에서 그 회사의 제품을 선전 하는 광고와 함께 시청자들에게 제공한다고 해서 SOAP OPERA라고도 한다.

대개 가정주부들을 상대로 방영되는 것인데, 남녀간의 사랑에 얽힌 이야기를 내용으로 한 것이 많다.

나는 전에 서울 서대문 네거리 근처에 있는 동양극장 앞을 지나다닌 적이 있었다. 주로 연극을 공연하고 있던 그 극장 앞을 지나다닐 때마다 그 극장에서 공연하는 연극의 제목과 공연기간이 적힌 간판이 극장 앞에 걸려 있는 것을 본 생각이 난다.

동양극장

그 간판에는 그 연극에 나오는 주연남녀배우를 비롯해 배우들의 이름과 몇 막(幕) 몇 장(場)짜리 연극이라는 것도 적혀있었다.

연극에는 관객을 웃기는 희극(喜劇), 음악으로 이루어지는 악극(樂劇), 종교를 주제로 하는 종교극(宗敎劇), 거의 난투장면을 주로 하여 꾸민 활극(活劇), 역사상 어떤 시대의 일을 가지고 만든 시대극(時代劇), 대사의 전부나 혹은 그 일부를 노래로 하는 가극(歌劇), 슬픈 이야기로 엮어져서 눈물 없이는 볼 수 없는 비극(悲劇), 사회의 죄악이나 불합리한 점을 풍자하는 내용이 담긴 풍자극(諷刺劇) 등 여러 가지가 있다.

관객들이 보는 앞에서 그런 연극이 극장무대 위에서 조명과 음악 등의 도음을 받아가며 배우들이 연기를 한다.

한데, 배우들이 무대에서 공연하는 그런 극장 말고, 인생극장(人生劇場) 이라는 것도 있다.

<인생극장>이란 다른 것이 아니다.  그 말은 이 세상을 하나의 <극장>이라고 가정(假定)하고, 세상에서 되어지는 모든 인생살이를 하나의 극(劇)으로 비유해서 한 말이다.

거기에는 인생의 불행과 비참한 이야기를 줄거리로 하여 파멸(破滅), 고통(苦痛), 죽음 등으로 인생의 끝을 맺는 비극도 있고, 보는 이들의 마음을 흐뭇하게 해주며, 인간의 삶에 대한 깊은 뜻을 다른 사람에게 깨우쳐 줄 수 있는 장면을 보여주며 막(幕)이 내려지기도 한다.

극장무대에서 하는 연극은 그 무대를 가리는 막(幕)이 몇 번이고 내려 가기도 하고, 올려지기도 할 수 있기 때문에 그 무대가 가려지기도 하고, 보이게도 되어 있다.   그러나, 인생극장에서는 그렇게 할 수가 없다.

그러므로 <인생살이>는 <단막극(單幕劇)>과 같은 것이다.

일반 극장에서는 극을 관객들에게 모여주기 전에 리허설(rehearsal)이 라고도 하는 예행연습(豫行演習)을 배우들이 한다. 그러나, <인생극장>에서는 그런 것이 없다.

한번 지나가면, 그 장면(場面)은 그것으로 끝이라는 말이다. 그런 만큼, <인생극장>에서의 연기란 대단히 어려운 것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 중에서도 특히, 세상을 살 만큼 살아온 나이가 지긋한 사람, 한 집안을 이끌어가는 가장(家長), 연장자(年長者), 상급자(上級者), 크고 작은 갖가지 생활공동체를 이루고 있는 집단(集團)의 우두머리인 장(長) 등등의 경우, 그 연기는 더욱 힘들어지고, 훌륭한 연기를 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마음과 정성을 다 바쳐야 될 것이다.

그러한 역(役)을 맡게 되었을 때, 경우에 따라서는 다른 사람들에게 ‘웃음거리’나 ‘조롱거리’가 되는 수도 있고, 또는 남에게 해(害)를 끼치 게도 되며, 덕(德)이 되지 못하게 되는 수도 있다.

<인생극장> —— 우리네 인간(人間)들이 한세상 살아가는 것은 너나 없이 누구나 인생극장(人生劇場)이라고 하는 단막극(單幕劇)에 출연 (出演)하는 배우들과 같은 것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민중의 적

하늘이 내린 이틀 연휴였습니다. 비록 눈치우노라고 다섯시간 가까이 운동 아닌 노동을 하였지만 넉넉한 쉼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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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덮힌 동네 한바퀴를 돌고나서 입센(Henrik Ibsen)의 희곡 “민중의 적( An Enemy of the People)”을 읽었습니다.

예상되는 눈폭풍을 정확히 예측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강설량을 비롯한 하늘의 변화를 거의 분단위로 미리 알아 맞추어 사람들에게 대비케하는 21세기에, 19세기말 작가의 작품이 가당키나 한 것이냐는 생각도 없지 않았답니다.

읽고난 후의 느낌을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사람 사는 일 또는 사람이란 참 변하지 않는 구석과 변하더라도 더디게 정말 더디게, 수천 수만년을 겪어야 변하는 것들이 있구나”하는 생각이었습니다.

19세기말 노르웨이에서 그 당시 세계, 곧 유럽이 중심이었던 세계에 살았던 사람들에게 불었던  예술 운동의 하나였던 리얼리즘(realism)을 내세운 입센의 작품 가운데 하나인 ‘민중의 적’은 바로 변하지않는 사람들의 모습을 그린 것이었습니다.

말 그대로 리얼리즘적인 작품이었습니다. 현실주의(現實主義) 또는 사실주의(寫實主義)라고 번역되어지지만 그저 사람사는 일들을 사진 찍듯 표현한 사실(寫實)적인 희곡입니다.

정말 간단히 작품의 줄거리를 요약하자면 “주인공인 스토크먼은 자기가 사는 동네 발전에 유익하다고 선전하며 강행되고 있는 사업인  온천개발 사업이 사실상 오염된 온천수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이건 아니다’라고 외칩니다. 그러나 돈에 눈이 먼 지역 이기주의들<권력(시장을 비롯한 행정, 정치권력), 언론권력, 일반인들(민중들)>에 의해 ‘민중의 적’으로 낙인찍히는 과정을 그려낸 작품입니다.

민중을 위해 나선 주인공이 민중의 적이되는 과정을 그린 것이지요.

작품속에선 민중을 향한 두개의 서로 다른 목소리를 이렇게 전합니다.

스토크만: 내겐 진실이 있고 민중이 함께합니다. 온천은 오염됐으며 정치도 썩었다고 외치겠습니다.

시장(mayor): “이 나라는 지금 파산 직전의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어쩌다가 이런 지경에 이르렀습니까? 모두 개혁이라는 미명 아래 정의를 외쳐대는 사람들 때문이 아닙니까? 행정 당국이 파괴되면 남는 게 뭡니까? 혁명과 혼란을 원하십니까?”…. “난 5년 안에 여기에 모인 여러분들을 세계 최고의 부자 시민으로 만들 자신이 있습니다. …. 여러분에게 묻겠습니다. 어떤 사람이 주장하는 대로 온천의 작은 문제를 확대하고 과장하여 우리의 앞길을 가로막는 ‘민주적 권리’를 주장해도 되겠습니까?…. 죽느냐 사느냐를 가르는 선은 분명하게 그어져야 하고, 누군가 그 선을 넘을 때는 우리 민중은 그자의 목덜미를 움켜쥐고는 ‘안 돼!’라고 단호하게 선언해야 할 것입니다.”

스토크만: “‘다수’가 깨닫기 전에 먼저 한 사람의 ‘소수’가 알아야 하는 게 아닙니까? 진리는 언제나 같습니다. ‘소수의 권리’는 ‘다수’에게 공격을 받더라도 신성한 것입니다. (시장이 ‘저자의 입을 막으라’고 소리친다) 모두 알아두셔야 합니다. 온천물은 오염되었습니다.

주민들(민중): “오염이란 말 한마디만 더 하면 가만 안 둔다!” “이 동네에서 살기 싫으면 짐 싸가지고 조용히 떠나라!” “저놈을 체포하라!” “저놈은 간첩이다!” “적이다, 적! 적이다, 적! 강물 속에 쳐 넣어라!” “적이다!배반자! 반역이다!”

그리고 이제 민중을 생각해봅니다. 그리고 적에 대해 생각해 봅니다.

제가 “민중”이라는 말을 배운 것은 서남동, 안병무 목사님들에게서 입니다.

특별히 안병무선생님께서는 “민중이란 예수”라고 말씀하셨던 분입니다. 그는 예수란 어떤 개인적 인격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집단적 인격을 말하는 것이라고 주장하신 어른입니다. 민중과 예수는 더불어 함께라고 하셨습니다. 민중이 곧 예수라고 말한 이였습니다.

그것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사람들이 살아가는 사건’들 속에서 찾을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이쯤 흥미로운 것은 예수는 바로 입센의 ‘민중의 적’에 나오는 ‘민중’들의 외침 곧 “저놈을 체포하라!” “저놈은 간첩이다!” “적이다, 적! 적이다, 적! 강물 속에 쳐 넣어라!” “적이다!배반자! 반역이다!”라는 소리에 십자가에 달려 죽었다는 사실(事實)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사실(寫實)적으로 믿는 것은 신앙입니다.

내가 눈이 내리는 이곳에 사는한 겨울이면 눈은 내릴 것이고, 눈을 치울 힘이 있는한 눈을 치우며 살것입니다.

그렇게 살아있는한 누구나 때론 민중이 되기도 하고 민중의 적이 되기도 하며 살 것입니다.

그리고…

무릇 신앙이란 결단이어야 합니다. 민중이라는 말 없이도.

올해도 사람으로 살기 위하여

2016년 초하루도 저무는 시간입니다.

노부모님들께 얼굴 내밀어 짧은 새해 인사를 드린 후 집에서 쉬며 하루해를 보냅니다.

늦은 저녁에 Henry David Thoreau를 찾아 손에 들었습니다.

civil-disobedience-2150여년 전에 마흔 다섯 짧은 삶을 누리다 간 사내가 숲속이나 감옥에서 남긴 말들이 2016년 초하루 제 맘속에서 살아 그대로 전해져 옵니다.

오늘 도시속에서 제가 바라보는 세상이나 150여년전 매사추세츠 월든 호수가에서 쏘로우가 바라보았던 세상이나 별반 다름이 없기 때문일겝니다.

짧은 미국 역사속에서 손꼽을만한 미국의 정신(精神) 가운데 한사람인Henry David Thoreau의 말이 여전히 유효한 2016년을 시작하면서, 그가 이미 파악했던 내가 살아가야하는 환경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가야만 하는 방향을 곱씹어 봅니다.

만일 어떤 사람이 매일 반나절을 사랑하는 마음에 가득 차서 숲속을 산책한다면, 게으름뱅이로 낙인찍힐 것이다. 그러나 만일 숲을 밀어내어 평평한 땅으로 만드는 투기꾼으로 시간을 보낸다면 그는 부지런하고 진취적인 사람으로 여겨질 것이다.(If a man walks in the woods for love of them half of each day, he is in danger of being regarded as a loafer. But if he spends his days as a speculator, shearing off those woods and making the earth bald before her time, he is deemed an industrious and enterprising citizen.) – Walden

“우리는 먼저 인간이어야 하고 그 다음에 국민이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법에 대한 존경심보다는 먼저 정의에 대한 존경심을 기르는 것이 바람직하다. 내가 떠맡을 권리가 있는 나의 유일한 책무는, 어떤 때이고 간에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일을 행하는 일이다. 단체에는 양심이 없다는 말이 있는데 그것은 참으로 옳은 말이다. 그러나 양심적인 사람들이 모인 단체는 양심을 가진 단체이다. 법이 사람들을 조금이라도 더 정의로운 인간으로 만든 적은 없다. 오히려 법에 대한 존경심 때문에 선량한 사람들 조차도 매일매일 불의의 하수인이 되고 있다.( I think that we should be men first, and subjects afterward. It is not desirable to cultivate a respect for the law, so much as for the right. The only obligation which I have a right to assume is to do at any time what I think right. It is truly enough said that a corporation has no conscience; but a corporation of conscientious men is a corporation with a conscience. Law never made men a whit more just; and, by means of their respect for it, even the well-disposed are daily made the agents of injustice.) – 시민불복종(Civil Disobedience)

***40년 전에 제게 Henry David Thoreau의 “시민불복종(Civil Disobedience)”을 가르쳐 주셨던 선생님은 이즈음 구순을 바라보는 나이에 “시민이 되지 말고 국민이 되어야 한다”며 노망을 부리지시만…

세월 – 그래도 감사함에

어제 손님 가운데 올해 일흔 네살인 유태계 Rose할머니와 나눈 이야기랍니다. 은퇴 의사인 남편과 늘 함께 오시곤하는데 어제는 혼자였답니다. 성탄 인사로 이어진 그녀의 이야기였지요.

“나이따라 세월의 속도가 달라진다더니, 60 넘고서부터는 시간이 거의 100마일로 달려가는 것 같아. 그 속도 보다는 좀 느리지만 자꾸 몸도 줄어들고 말이야. 삼년전에 왼쪽 다리 수술하고는 한쪽이 짧아졌는데… 우스운 소리같지만, 오른쪽 다리로 서서 보는 세상과 왼쪽 다리로 서서 보는 세상이 그게 몇인치 차이뿐이지만 달라보여. 그래도 확실한 것은 하나 있지. 내가 지금 걸을 수 있다는 사실 말이야.”

몇 해전 까지만 하여도 하누카 인사를 내세운 고집스런 할머니와 성탄인사를 나누며 든 생각은 바로 세월이랍니다.

2015년을 뒤돌아보는 성탄 아침입니다.

이맘 때면 늘 그렇듯 아쉬움들이 먼저 다가옵니다. 올해 마무리 짓지 못하고 해를 넘기는 일들, 끝내 포기하고 만 일들을 따라 떠오르는 아쉬움들입니다.

그 아쉬움들을 감사함으로 덮을 수 있는 생각은 누가 무어라해도 신앙에서 오는 것입니다.

때론 아슬아슬한 느낌을 받을 때도 있었지만 네 분 노인들이 모두 올 한해를 무탈하게 지내신 것이 큰 감사입니다.

90대로 진입하신 두분(제 부모님), 90대를 코 앞에 두신 장인, 80대를 손에 잡으려는 장모 – 이렇게 네 분이랍니다.

Tom's beer1-12-24-15제일 막내격인 장모가 이즈음 재발한 암과 씨름 중이신데, 아주 밝게 잘 견디어 내시는 모습에 감사하답니다. Chemoembolization(색전술) 치료중이신데 함께하는 아내나 장모나 늘 밝은 모습이어서 감사의 크기가 큽니다.

모처럼 집에서 함께하는 아이들과 맛난 것 사먹으라고 쌈지돈 내미시는 제 부모님들에게 느끼는 감사의 크기 역시 그 못지 않답니다.

5주 동안 숙성시켜 어제 아침에 받아낸 맥주에 그야말로 한정판 레이블을 붙여서 성탄선물을 건네 준  Kennedy씨의 맥주는 오늘 저녁 아내와 아이들과 함께 할 만찬에서 나눌 요량이랍니다.

저 역시 100마일의 속도를 느끼는 세월이지만 오직 감사함으로.

2015년 성탄 아침에.

삶은…

뭐 고령 사회이니 아직 애 취급 받을 때도 종종 있지만 제 나이도 만만찮답니다. 이따금 죽음에 대한 준비를 해야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쓸데없다고 말할 나이가 아니랍니다. 평균 연령이 높다고 그게 제 껏은 아니니까요.

그렇게 2015년이 저물어가고, 오늘은 성탄전야입니다.

아기예수가 2000번 넘게 태어나 기리는 날입니다. 제가 말과 글을 배울 때 2000년이던 세월이 제 나이 예순 몇에도 이천년입니다.

예수는 여전히 태어나고, 살고, 죽고, 다시…

오늘의 뜻일겝니다.

돌아볼수록 올 한해가 그저 감사입니다.

감사 이전에, 늘 부글거리는 용암처럼 끓어오르는 화가 제 맘속에 가득했었답니다.

개인적으로는 연초에 계획했던 일들, 세상사로는 제 뜻과 어긋난 일들을 생각하면 그저 분이 차오를 뿐이랍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사뿐이랍니다.

허구한날 태어나 죽임을 당한 사람 같은 신, 신 같은 사람.

짧게 흥으로 살다간 끝내 신이 된 예수의 생일 전야이기 때문입니다.

90대, 80대에 이른 부모 앞에서 재롱 피어야하는 60대이어도 흥입니다.

무릇 삶이란…

자기가 옳다고 하는 것에 흥을 잃으면 뜻이 없기에.

그리고 역사란  그 뜻있는 사람들이 이어가는 것임으로.

이 밤은 그저 흥으로.

2015년 성탄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