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시간

새해 첫날을 맞기 전, 집안에 달력들을 바꾸어 건다. 이제 내일이면 2017년이란다.

신혼, 새살림에 바쁠 아들 내외가 할아버지, 할머니를 찾았단다. 그게 또 예쁘고 고마웠다는 노인들이 손주와 손주 며느리를 위해 준비한 것이 없다며 외식을 제안했단다. 우리 내외가 외식을 권하면 손사래를 치며 미동도 하지 않던 분들이었다. 이즈음엔 아버님 걸음걸이가 신통치 않아  집밖 출입은 아예 삼가던 노인들이었다. 그 소식을 듣고 아내와 나는 부랴부랴 식당을 찾아 나섰다. 그렇게 모처럼 삼대가 모여 앉아 한해를 보내는 저녁을 함께 했다.

필라에 사는 아들 내외에게 늦기 전에 부지런히 올라가라고 했는데, 가는 길에 홀로 계신 제 외할아버지에게 들려 시간을 보내고 갔단다. 나보다 나은 아이들이 고맙다.

이렇게 2016년 한 해가 저문다.

낮에는 필라에 올라가, 생각이 같아 만나면 반가운 이들과 잠시 시간을 함께 했었다.

photo_2016-12-31_18-09-04

한해를 돌아보며 손에 든 책은 장자(莊子)다.

小知不及大知, 小年不及大年, 奚以知其然也? 朝菌不知晦朔, 蟪蛄不知春秋. 此小年也.

작은 지혜는 큰 지혜에 미치지 못하고, 짧은 동안 사는 자는 오래 사는 자에 미치지 못한다. 어떻게 그 것을 알 수 있는가? 하루살이 버섯은 아침과 저녁을 알지 못한다. 한철만 사는 쓰르라미는 봄과 가을을 알지 못한다. 이것들은 짧은 동안 사는 것들이다.

楚之南有冥靈者, 以五百歲爲春, 五百歲爲秋. 上古有大椿者, 以八千歲爲春, 八千歲爲秋. 而彭祖乃今以久特聞. 衆人匹之, 不亦悲乎?

초나라의 남쪽에 명령(冥靈)이란 나무가 있는데, 5백년을 한 봄으로 삼고 5백년을 한 가을로 삼는다고 한다. 태고 적에 대춘(大椿)이란 나무가 있었는데, 8천년을 한 봄으로 삼고, 8천년을 한 가을로 삼았다고 한다. 그리고 팽조는 지금까지도 오래 산 사람으로 특히 유명하다. 보통 사람들이 그에게 자기 목숨을 견주려한다면 또한 슬픈 일이 아니겠는가?

삶과 앎과 기쁨과 행복이 어찌 시간의 길이에 달려 있으랴!

천년을 하루로 살기도 하고, 하루를 천년으로 살기도 하는 것이 사람사는 모습이거늘.

2016.12.31.

2016년 마지막 날엔…

오늘 제 이메일 함에 놓여있는 편지 한장의 내용입니다.

12-31-16“가령 말일세, 쇠로 된 방이 있다고 하세. 창문은 하나도 없고 절대로 부술수도 없는 거야. 안에는 깊이 잠들어 있는 사람이 많아. 오래잖아 숨이 막혀 죽고 말 거야. 그러나 혼수상태에서 그대로 죽음으로 옮겨가기 때문에 빈사(瀕死)의 괴로움 따위는 느끼지 않아. 지금 자네가 큰 소리를 질러 다소 의식이 또렷한 몇 사람을 깨운다면, 이 불행한 몇 사람에게 결국 살아날 가망도 없이 임종의 괴로움만 주게 되지. 그래도 자네는 그들에게 미안하다고 생각하지 않는가?”

“그러나 몇 사람이 깬다면 그 쇠로 된 방을 부술 희망이 전혀 없다고는 말 못하지 않는가?”

위 대화는 루쉰이 글쓰기를 주저하자 계몽잡지 편집자인 그의 친구가 그를 설득하며 나눈 대화입니다. 20세기 초 식민지 열강의 혼란 속에서 루쉰은 이렇게 그의 글을 통해서 잠든채로 서서히 죽어가는 국민들을 깨우는데 자신의 몫을 다하였습니다.

제가 촛불을 드는 이유도 이와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304명의 아이가 죽었는데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사회, 희생자 가족을 국가가 폭력적으로 억압해도 침묵하는 사회…저는 이런 사회에서 살고 싶지 않기에 촛불을 듭니다.

제가 촛불을 든다고 루쉰 같은 영웅이 될거라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그럴 자격도 없고, 능력도 없습니다. 하지만 저의 작은 촛불이 그 누군가에게 공동체를 생각하는 미세한 희망이 되고, 또 다른 누군가에게 새로운 촛불로 불타오르는 계기가 될 수 있다면, 그래서 공동체에 무관심한 이 단단한 쇠로 된 마음을 깨뜨릴 수만 있다면 저의 몫은 차고 넘치리라 생각합니다.

2016년 한 해를 보내는 마지막 날, 필라에서도 촛불은 꺼지지 않을 것입니다.

인근 마을 필라델피아에서 벌써 다섯 번 째 촛불을 든다고 하는데,  저는 한번도 가보지를 못했습니다. 저는 누군가에게 작은 희망이 되리라는 생각도, 누군가에게 새로운 촛불을 들게 할 부추김도, 누군가의 단단한 마음을 녹이거나 깨뜨리려는 의도도 없답니다. 그렇다하여도 이 편지를 보낸 누군가의 소망에는 함께 하고 싶습니다.

언제 어느 때나 항상 새롭게 말을 건네시는 성서 속의 하나님께서 2016년 12월 31일 단지 짧은 시간일지언정 필라델피아 챌튼햄 한아름 앞에서 그들과 함께 외치라는 명령으로 받는답니다.

끝내 철들지 못하는 제가 이따금 사랑스럽답니다.

photo_2016-12-29_20-57-32

날개 옷(Wings of Clothes)

( 이 시를 지난 35년여 내 삶의 일부였던 사랑하는 장모에게 드립니다)
 
날개

이민 삼십년에 이골이 난 내 다림질
그 솜씨로 장모 수의를 다린다.

먼저 버선을 다린다

땅과 하늘 사이 때론
어제와 오늘 사이를 헤매이던 마지막 시간에
장모는 엄마를 부르곤 했다
“엄마가 엄마를 찾으니까 내가 아파”
아내는 엄마를 부르는 장모를 말하며 눈가를 훔쳤다
분단은 남북만 가른 것이 아니었다
북쪽 가족들과 갈라져 남쪽에 홀로남은 장모 나이 고작 열 두살
애초 홀로는 아니었다
고향으로 가겠다며 국군에 입대한 스무살 오빠가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을 뿐
그날 이후 장모는 엄마를 찾지 않았단다
마지막 시간속을 헤매던 장모는 버선발로 다가오는 엄마를 보았을 터

치마를 다린다.

치마는 장모의 자존이었다
열두살 이후 홀로된 외로움을 감싸는 갑옷이었다
열 여덟에 하나되어 육십갑자 세월을 함께 한 장인은 외아들
거기에 호랑이 같은 홀시어머니와 시누이 셋
엄마를 찾지 않았던 장모는 어느새 엄마가 되어갔다
딸 하나 아들 둘
누구랄 것 없이 모두 한수에 더해 끼 넘치는 가족이었지만
문제 없었다
장모의 치마는 모든 것을 감쌀만큼 폭이 넉넉했으므로
허나, 못내 치마 속에 감쌀 수 없는 외로움은 가슴에 숨겼을 터

이제 저고리를 다린다

언젠간 꼭 만나고 말리라
옷고름 매주고 옷깃 여며주던 엄마
장모의 꿈은 끝내 이루지지 않았다
마지막 순간 장모는 꿈을 바꾸었다
내가 엄마가 되리라고
일흔 여덟해의 마지막 한 달
장모는 그저 엄마였다
장인과 두 아들과 며느리들 딸과 사위에게
엄마를 가슴에 아프게 품지 말라고
행여
살아있는 너희들은
외로움과 그리움
그 암덩어리 안고 살지 말라고
장모는 저고리 섶에 우리들의 몫을 그렇게 저미고 갔을 터

마지막 두루마기를 다린다

평안북도 정주 아낙 최용옥
아무렴 한반도 믿음의 성지 정주 땅인데
장모는 평생 믿음의 두루마기를 걸치고 살았다

믿음 아니면 그 외로움 어찌 삭혔으랴
기도 아니면 그 긴 기다림 어찌 이어 왔으랴
찬송 아니면 그 먼 길 어찌 걸어 왔으랴

이제 내가 꿈을 꾼다
꿈이 기도가 된다
무릇 모든 기도는 이미 이루어진 것들 뿐

내가 다린 옷들은 장모의 날개가 된다
날아 날아 날아 훨훨
기다리던 엄마의 손을 잡았다

아! 이제
모녀는 하늘문을 들어섰다

이민 삼십년 도 닦듯 익힌 내 다림질
용 한번 썼다

Casket of D's dad. My lapel flower.

(I dedicate this poem to my beloved Mother-in-law who was a part of my life for 35 years.)
 
Wings of Clothes

My press, a tired routine of daily life as an immigrant for thirty years,
With the skill, I’m pressing Mother-in-law’s shroud.

First, I press beoseon1.

Between earth and heaven, sometimes
At the last moment, wandering between yesterday and today,
Mother-in-law called for mom.
“As Mom’s looking for her mom, it breaks my heart,”
Wife says, as she wipes tears from her face.
Division did not cut just the country into the South and the North.
Only twelve years old was Mother-in-law, when she became alone in the South, separated from her family in the North.
She was not alone from the start.
It’s because her twenty-year-old brother never returned after joining the army with the hope to go to their hometown.
Mother-in-law had not looked for her mom since then.
I believe that while wandering at the last moment, she must have seen her mom running to her with stockings on her feet.

I press a skirt.

Skirts were Mother-in-law’s pride.
They were the armor to cover her loneliness since she became alone at twelve.
The only son in the family was Father-in-law, with whom she was with for the sexagenary cycle from the age of eighteen.
Her tigerish mother-in-law and three sisters-in-law added to her life.
Mother-in-law, who had not looked for her mom, became a mom herself:
One daughter and two sons.
Though all of them were full of talents and fun,
There was no problem,
Because Mother-in-law’s skirts were wide enough to envelop everything and everyone.
However, her loneliness, which could not be enfolded under them, was hidden in her heart.

Now, I press a jeogori2.

Mother-in-law felt that she would never fail to see her mom again someday,
Who had tied her jeogori string and adjusted her clothes.
Mother-in-law’s lifelong dream was never realized.
At the last moment, she changed her dream,
For herself to become a mother.
In the last month of her seventy-eighth year,
Mother-in-law was simply a mother.
For Father-in-law, two sons and daughters-in-law, a daughter and a son-in-law,
Not to hold her in their hearts painfully,
By any chance,
For all of you, who are alive,
Not to live with that cancer of
Tormenting loneliness and yearning,
Mother-in-law must have left us with taking our shares in the gusset of her jeogori.

Last, I press a durumagi3.

Yong-ok Choi, a village woman of Jeongju, North Pyeongan Province,
Jeongju, certainly a shrine of faith in the Korean peninsula,
Mother-in-law had lived in the durumagi3 of faith all her life.

How could she have appeased such loneliness without faith?
How could she have kept enduring such an agonizingly long wait without prayers?
How could she have walked such a long way without hymns?
Now I’m dreaming.
Dreams become prayers.
In general, all prayers are for what has already been realized.

Clothes I have pressed become Mother-in-law’s wings.
Fly, fly, and fly freely.
She holds the hands of her mother who has been waiting for her.

Ah! Now,
Mother and Daughter enter through the gate of heaven.

My pressing skill which I have practiced as if cultivating myself spiritually during the thirty years of my immigrant life

1. beoseon: Korean traditional socks 

    2. jeogori: The upper garment of Korean traditional clothes for women

   3. durumagi: a traditional Korean outer coat

2016년 성탄에

새 식구를 맞고, 또 다른 가족이 하늘나라로 떠나는 길을  배웅하노라 지난 두어 달 동안 몸과 마음이 조금 분주했었다. 눈과 귀는 열려있어 미국이나 한국의 숱한 뉴스들은 저절로 내게 들어와 생각의 분주함을 더했다.

지나간 내 삶이 그랬듯, 습관처럼 생각의 분주함을 떨치려 성서를 손에 들곤 하였다. 2016년을 보내는 이 시간속에서 성서는 내게 이렇게 응답했다. 우리는 신의 은혜와 은총을 소유하고 마냥 누리는 존재가 아니라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 속에서 신의 은총을 그냥 겸허히 받아 드리는 존재라는 것이다. 어떤 처지와 환경에 놓여 있든간에, 신 앞에서 사람(존재)이 존귀할 수 밖에 없는 까닭이다.

그 맘으로 가게 손님들에게 성탄편지를 띄웠다. 누구랄 것도 없이 모두 귀한 모습으로 2017년 새 희망을 맞자고…


2016년 마지막 일요일이자 성탄절입니다.

올 한해 어떻게 보내셨는지요? 저도 지나간 올 한 해의 삶을 되돌아봅니다. 당신 덕분에 세탁소도 잘 운영되었으며, 제 개인적인 삶이나 가정 일들도 그럭저럭 잘 꾸려 온 것 같답니다. 그러나 곰곰히 다시 따져보면 아쉽고, 부족하거나 모자란 것들이 너무나 많답니다.

그런 생각으로 선택해 읽은 책의 제목은 <완벽하지 않은 것들에 대한 사랑>입니다.

한국의 불교 스님인 혜민이 쓴 책인데, 이 사람의 이력이 재미있답니다. 한국에서 태어나 고등학교를 마친 후 캘리포니아 대학교 버클리에서 종교학을 공부한 후 하버드 대학교에서 종교학 석사, 프린스턴에서 종교학 박사를 마친 뒤, 매사추세츠 주의 Hampshire College에서 7년간 종교학 교수로 있다가 한국으로 돌아가 스님이 되었답니다. 현재는 가족을 먼저 보낸 분들, 암 진단을 받으신 분들, 장애인 아이를 기르고 있는 부모들, 힘든 취업 준비생들, 유산의 아픔이 있으신 분들 등등을 위한 무료 치유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는 베스트셀러 작가이기도 합니다.

혜민 스님은 그의 책 <완벽하지 않은 것들에 대한 사랑>에 이런 말들을 기록하고 있답니다.

<완벽하진 않아도 85퍼센트 정도 괜찮다 싶으면 넘기고 다음 일을 하세요. 완벽하게 한다고 한없이 붙잡고 있는 거, 좋은 거 아닙니다. 왜냐하면 완벽이라는 것은 내 생각 안에서만 완벽한 거니까요.>

<오랫동안 원하던 것을 성취하고 나면 두고두고 행복할 것 같지만 절대로 그렇지 않아요. 막상 성취하고 나면 잠시의 행복감 뒤에 허탈의 파도가 밀려오고, 성공 후 새로운 상황이 만들어낸 생각지도 못한 후폭풍이 몰려와요. 그러니 지금의 과정을 즐겨요. 삶에 완성이란 없는 것 같아요.>

그리고 그의 책을 읽는 이들에게 이런 당부를 합니다.

<지금 이 글을 읽으시는 모든 분들 행복해지시길, 건강해지시길, 편안해지시길. 어디를 가시든 항상 보호 받으시길. 자신의 존귀함을 잊지 않으시길.>

성탄절 아침에 불교 스님의 말로 인사 드리는 것이 다소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도 있지만, 비록 결코 완벽할 수는 없는 존재일지라도 우리 스스로의 존귀함을 일깨워 주는 점에서는 다 통한다는 마음으로 인사 드립니다.

Merry Christmas & Happy Holidays!

당신의 세탁소에서


 

It’s the last Sunday of 2016 and Christmas Day.

How has this year been to you? I’m also trying to look back on my life this year. Thanks to you, I think that I have been able to manage to run the cleaners as well as my personal life and my family well enough. However, brooding over things in this year more thoroughly, I feel that many things are lacking and that this year leaves me much to be desired.

With that thought, I chose and read a book whose title was “Love for Imperfect Things (완벽하지 않은 것들에 대한 사랑).”

It was written by a Korean Buddhist monk, Hyemin, who has a very interesting career. After graduating from a high school in Korea, he studied the science of religion at the University of California in Berkeley, received a master’s degree in the science of religion from Harvard, and a Ph.D. from Princeton. After that, he taught at Hampshire College in Massachusetts as a professor in the science of religion for seven years. Then, he returned to Korea and became a Buddhist monk. At present, he is running a free special healing program for unfortunate people, such as bereaved families, people with cancer, parents with handicapped children, jobseekers in difficult situations, women with the ordeal of miscarriage, and so on. He is also a best-selling author.

He said the followings in his book, “Love for Imperfect Things”:

<If you think that it is 85% fine, if not perfect, move to the next work and do it. To hold on to something forever to make it perfect is not good. That’s because to be perfect really means to be perfect only within your own perspective.>

<Though you may think that you would be happy for a long time if you accomplish what you have wanted for so long, that is nowhere near the truth. Once you have accomplished it, you would face a wave of letdown after a brief feeling of happiness. You would confront the unexpected backlash which a new situation after the success will cause. So enjoy the process at the present time. It seems to me that there is no completion in life.>

And, he made wishes for the readers of his book:

<I wish for all of those who are reading this book to be happy, healthy, and comfortable, and to be protected wherever you may go, and not to forget the nobility of yourself.>

It may look inappropriate to greet you with a Buddhist monk’s words on Christmas morning. But, I’m doing so with the thought that Christianity and Buddhism have something in common: they enlighten us that though we can never be perfect, we are still precious.

Merry Christmas & Happy Holidays!

From your cleaners.

 

아들이라는 이름에게

Daylight saving time 해제로 시간이 바뀐 뒤, 밤이 제법 길어졌다. 잠시 눈을 붙였다 떳더니 어느새 밤이다. 바깥 날씨가 쌀쌀한지 이따금 돌아가는 히터소리 외엔 조용하니 집안이 적막하다.

서울서 온 큰처남과 함께 장모를 모시고 병원에 간 아내에게선 아직 전화가 없다. 신혼여행 떠난 아들내외나 오라비 결혼식에 함께하고 제 일터로 다시 돌아간 딸이나 내게 전화 줄 일은 만무할 터, 적막함 속에서 기다리는 것은 장모의 입원소식이다.

어제 일이다. 결혼 피로연을 마치고 밤늦게 들어와 전화를 드렸을 때만 하여도 목소리만은 또랑하셨다. “많이 섭섭하고, 많이 미안하고… 내가 결혼식엘 못가리라곤 정말 생각 못했는데….”

아들녀석은 태어나 걸을 때까지 거의 장모 손에서 컸고, 큰 외삼촌의 사랑을 많이 받았었다. 어제 오늘, 큰 처남에게 큰 고마움을 느낀다. 암과 씨름하며 잘 버텨오시던 장모가 급격히 무너지기 시작한 것은 요 며칠 사이의 일이다.

그리고 어제 결혼식장에서 있었던 일이다. 식장은 지은지 오래된 교회 건물이었다. 식장에 들어선 장인과 어머니, 아버지는 거의 동시에 화장실을 찾으셨었다. 정말 오래된 건물이었다. 화장실은 가파른 계단을 두번 꺽고 올라가야만 하는 이층에 놓여 있었다. 나는 순서대로 한분씩 부축하여 그 계단을 올랐다. 어머니, 장인, 아버지 순서였다. 그 순서대로 다시 부축하여 계단을 내려왔다.

지팡이에 의지하시는 장인과 아버지를 부축하여 오르내릴 때보다 어머니는 한결 수월하였다. 내 염려는 어머니가 가장 컸었는데 의외로 어머니는 아무 말씀없이 내 팔과 손을 잡고 꼿꼿하게 그 가파른 계단을 오르내리셨다.

어제 밤 모든 잔치를 끝내고 나는 아내에게 말했었다. “세 분을 부축하며 계단을 오르내리고 나니, 그래도 어머니가 아직 제일 나으신 것 같아.” 아내가 그런 내 생각이 틀렸다며 내게 해 준 말이다.

“아니, 내 생각은 달라. 어머님는 아들에게 조금이라도 걱정을 주고 싶지 않았을 뿐이야. 난 아직 이만큼 건강하니까 나에 대한 염려랑은 조금도 하지 말아라. 그러셨던거야. 어머님이 화장실 다녀오셔서 내게 뭐라셨는지 알아? ‘아이고 얘야, 두 다리와 두 팔이 다  떨리는구나!’ 하셨다니까.”

그 아내의 말을 생각하며, 다시 큰 처남에게 고마움을 느낀다. 아무렴 아들이 곁에 있는데…

또 다시 어제의 결혼식장 이야기 하나.

분명 엊그제 있었던 결혼식 예행연습 때는 없었던 순서였다. 결혼 예식 거의 마지막에 있었던 목사님의 기도 순서였다. 분명 예행연습 때는 목사님의 기도 순서 였을 뿐이였다.

그 순서에서 Manuel Ortiz목사님은 신랑 신부인 두 아이들을, 아이들이 켜놓은 촛불 제단 앞에 무릎을 꿇게 하고는, 예식에 함께했던 네 분 목사님들과 함께 손들을 두 아이들에게 얹어 기도를 시작하라고 하셨다.

나는 당연히 아이들에게 손을 얹은 목사님들께서 돌아가며 기도를 하시려니 생각했었지만 Ortiz목사님은 신랑 신부에게 기도를 하라고 명하셨다.  아들녀석과 이젠 내 며늘아이가 된 Rondaya가 드린 기도는 내 가슴을 촉촉히 적셨다.  그리고 이어진 배성호목사님의 기도 “아이들이 드린 기도가 이루어지기를…”

예식이 끝난 후, 나는 아내와 내기를 하였다. ‘아이들의 기도는 우리가 몰랐을 뿐 짜여진 것이였다.’는 것이 내 주장이었고, ‘Ortiz목사님의 생각으로 즉석에서 하나님께 드린 아이들의 기도였다’는 것이 아내의 주장이었다.

결과는 나의 완패였다.

무릇 아들은 허당이다. 그러나 아이들에게 기도를 시킨 Ortiz목사님도, 아이들의 기도를 하늘과 이어 준 배성호 목사님도 모두 아들들인 것을…

나와 내 아들 역시.

무릇 아들이라는 이름은 어머니들을 위해 있는 것일 수도.

사랑한다

집안 잔치로 두루 번잡한 아침입니다. 늘 그렇듯 집안 일의 분주함은 대개 아내 몫입니다.

이른 아침에 이메일함에 들어온 메일 하나를 다시 읽습니다.

필라 연대집회 시간 : 11월 12일 4:00 pm 챌튼햄 H-Mart 앞 사거리 (인원 집중을 위해 집회를 오후 4시로 통일했습니다. 착오 없으시기 바랍니다.)

늦은 공지와 빠듯한 일정에도 불구하고 25명이 넘는 필라인들이 모여 동포간담회를 빛내주었습니다.

무당에 의해 헌법이 유린되고 온갖 부정과 탐욕으로 점철된 현 박근혜 정권을 타도하고자 굳은 결의를 다졌습니다.

지금 현재 광화문 광장에는 100만의 인파가 모여 외치고 있습니다.

부패와 무능으로 얼룩진 박근혜 정권의 타도를 넘어서 약자가 억압받고 더욱 열악한 경쟁 속으로 내몰리는 이 부조리한 현실을 성토하고 깨부수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입니다.

– 중략 –

우리는 현재 반드시 해야할 하나의 과업을 바로 눈 앞에 두고 있습니다.

권력에 맞서 당당하게 정의와 진리를 쟁취해가는 그 영광스런 역사를 여러분과 함께 만들어 가고 싶습니다.

– 민중총궐기 연대집회는 모두에게 열려있습니다.

기본적인 피켓은 준비되어 있으나 개인적으로 피켓을 만들어오셔도 됩니다.

필라 세사모는 시국성명 및 11월 12일 민중총궐대회와 함께 하겠습니다.

엊저녁에 있었던 필라동포 간담회에서 나누었던 이야기들을 새겨봅니다.

그리고 나는 왜 오늘 아침 광화문 소식에만 꽂혀있는지? 떠나온지 30년, 아이들은 이미 미국인이 되어 트럼프만 어이없어 하는데…

그러다 손에 쥔 시 한 편. 정호승님의 <사랑한다>입니다.

그래, 끝내 잊지 못할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어떤 모습이어도 사랑해야만 하는  내 부모와 아이들처럼…

<사랑한다>

  • 정호승

밥그릇을 들고 길을 걷는다/ 목이 말라 손가락으로 강물 위에/ 사랑한다라고 쓰고 물을 마신다/ 갑자기 먹구름이 몰리고/ 몇날 며칠 장대비가 때린다/ 도도히 황톳물이 흐른다/ 제비꽃이 아파 고개를 숙인다/ 비가 그친 뒤/ 강둑 위에서 제비꽃이 고개를 들고/ 강물을 내려다본다/ 젊은 송장 하나가 떠내려오다가/ 사랑한다/ 내 글씨에 걸려 떠내려가지 못한다

선거 이후

“악마(devil) 둘을 놓고 누굴 고르겠니? 차라리 포기할래.”, “글쎄, 여기야 민주당 텃밭이니까… 그래도 좀 이상한 느낌은 있어.” “군사학교(Military Academy) 다닌 놈이 막상 전쟁(베트남 전쟁) 터지니까 군대도 기피한 놈을.”– 어제 가게 손님들에게서 들었던 말들이다. 조금 일찍 가게 일을 마치고 투표를 한 뒤, 개표뉴스를 보다가 일찍 자리에 들었었다.

그리고 오늘, 가게 손님들에게서 들은 이야기들이다.

“드디어 백인 남자 대통령이야!”, “오늘 기분 어때? 그저 그렇다구? 넌 클린턴이었던 모양이구나?”

어제, 오늘 내게 그런 말들을 던진 이들은 모두 백인 남성들이었다.

백가쟁명으로 선거 결과에 대해 넘쳐나는 뉴스들을 훑으며 든 생각 하나. 선거 결과는 이 땅에서 시민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겪어내야만 하는 알 수 없는 미래라는 것을.

4년이라는 긴 세월을 트럼프에게 대권을 쥐어준 미국에서 이제 나는 어제처럼 이 땅의 시민으로 별 걱정없이 살 것이다. 뭐, 살만큼 살았으므로.

그러나 이 땅에서 살아가야만 하는 내 새끼들을 위한 염려가 이어지는 것을 어찌하리.

호들갑들을 떨지만 사실 따지고보자면, 역대 미국 최고 권력자들과 권력 주변 인물들의 이야기를 들추어보면 트럼프는 그저 보통 수준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그저 염려하는 것은 시민이 아닌 우민(愚民)들이 외치는 USA 소리에 묻힐 듯한 천부(天賦)의 사람 모습.

그래도 한가지 남은 기대라면 분칠 좋아하는 이 사회의 습관이 최소한의 염치는 지닐 것이라는.

선거와 유권자

선거일이 코앞으로 다가왔습니다.

제가 사는 동네에서 투표로 선택하는 자리는 대통령 뿐만이 아니라 많습니다. 연방정부로는 대통령, 부통령과 연방 하원의원이 있고, 주정부 자리로는 주지사와 부지사 그리고 주하원의원과 주 Insurance Commissioner가 있습니다. 그리고 구청장(County Executive) 및 구의원들을 선택해야 합니다.

제가 미국 선거를 처음 본 것은 1988년부터이고, 선거에 참여한 것은 2000년부터입니다. 1988년 선거는 민주당 대통령 후보였던 듀카키스(Michael Stanley Dukakis)가 부시1세(George Herbert Walker Bush)에게 만방으로 깨진 선거였습니다. 그 때 선거도 이번 선거만큼이나 인종으로는 백인, 종교로는 기독교 근본주의, 지역으로는 남부가 기세를 떨쳤었습니다.

2000년 선거는 생각할수록 아쉬웠던 고어(Albert Arnold “Al” Gore, Jr.)의 패배가 있었지요. 부시 2세(George Walker Bush)의 당선은 미국사회를 많이 바꾸어 놓았습니다. 부시 부자가 미국역사를 일정부분 바꾸었다고해도 크게 틀리지는 않을겝니다.  아무튼 이 때는 제가 처음 참여했던 선거이기도하고, 당시만 하여도 사회활동을 조금 할때인지라 고어 선거운동도 했었지요. 아시안 아메리칸을 상대로 한 라디오, TV 선전광고에 함께 하기도 했었습니다. 그래 그만큼 아쉬움이 컷었지요.

그리고 올해 선거는 참 특이한 점들이 많습니다. 그 가운데 하나 눈에 띄는 것이 있답니다. 선거 때마다 너나없이 붙이고 다니는 차량 스티커를 일체 볼수 없다는 점입니다. 힐러리나 트럼프 어느 쪽을 막론하고 지지 스티커를 붙이고 다니는 차를 거의 볼 수 없답니다. 이게 제가 사는 곳에만 국한된 일인지는 모르겠으나, 아주 신기한 현상이랍니다.

이 현상을 여러가지로 해석할 수 있겠지만, 그만큼 유권자들이 속내를 드러내지 않는 선거라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 정책은 사라지고 민주, 공화 양당 대통령후보의 사생활만이 회자된 이번 선거를 바라보는 민심이라고 할 수도 있겠고요.

누가 대통령이 되든 미국사회는 이번 선거결과로 많은 어려움들을 겪어 내야만 할 것 같습니다. 그 감내는 모두 유권자들의 몫이겠지요.

정신의학자 제임스 길리건(James Gilligan) 은 그의 책 <왜 어떤 정치인은 다른 정치인보다 해로운가Why Some Politicians Are More Dangerous Than Others >에서 이런 말을 합니다.

<사실 선거 운동의 틀을 두 후보의 순전히 개인적인 대결로 몰아가려는 목적 중 하나는 두 당의 실제 정책 차이가 무엇인지에 유권자가 주목하지 못하게 만들려는 데 있다. 그래야 개인적으로 어떤 일을 성취했고 어떤 추문과 결부되었는지를 놓고 개인들에게 논쟁이 집중되고, 두 정당의 정책이 어떤 결과를 가져왔고 두 정당이 정치와 경제에서 어떤 성적을 거두었는지에는 집중되지 않기 때문이다.>

비단 코앞으로 다가온 미국선거 뿐만 아니라 모든 국가 모든 선거에서 유권자들이 깨어 있어야 하는 까닭일겝니다.

정책조차 없거나 거짓인 정당들이 판치는 세상이지만….

%ec%a0%95%ec%b1%85%eb%b9%84%ea%b5%90

소리에 대하여

계절이 깊어가는 늦저녁, 소리에 귀가 열리다.

내 업종 탓인지 더는 듣고 볼 수 없는 소리를 종종 떠올린곤 한다. 어머님이 두드리던 다듬이 소리다. 기억컨대 어머니의 젊은 시절은 노동의 연속이었다. 청석 다듬잇돌을 두드리는 박달나무 두 방망이 소리에 내가 아련하게 잠에 빠져들던 그 순간도 어머니에겐 노동이었다. 직업상 매일 돌아가는 세탁기를 보며 때로 떠올려보는 어머니의 다듬이 소리인데, 솔직히 어머니의 노동보다는 내가 즐겼던 아련한 잠이 먼저 잡히곤한다.

그리고 엊저녁, 모처럼 나선 필라델피아 나들이에서 들었던 소리들이 오래 잊고 있었던 생각들을 깨웠다.

img_5408a

비록 잊고 있었지만 들을 귀를 열어 담아드린 우리 가락, 우리 소리에는 한(恨)을 풀어내는 영험함이 있었다. 비단 노동이나 일에 지쳐 윤기없고 무력하고 재미없는 삶 뿐만 아니라, 맺힌 한에 억눌려 망가져 피폐해진 삶까지도 다시 일으켜 세우는 흥과 신명의 소리, 바로 우리 소리요 우리 가락이었다.

photo_2016-10-30_11-04-59

어찌 찌든 순간만 이어지는 삶이 있으랴! 반짝반짝 빛나는 플릇, 클라리넷이 빚어낸 소리와 떠받치는 피아노 소리에는 일상과 축제, 위로와 감사가 담겨 있었다.

img_5502a

생황(苼簧)이 만들어내는 소리는 새로운 세상이었다. 들숨과 날숨으로 뽑아내는 소리는 하늘의 소리, 땅의 소리, 사람의 소리가 한데 어우러졌다.

img_5482a

피리소리를 들으며 이즈음 들리는 흉흉한 소리들과 한맺힌 모든 소리들을 잠재우는 만파식적(萬波息笛)이었으면 바램도 가져보았다.

img_5538a

416기억저장소에서 세월호 유가족이 보내온 영상을 통해 나의 소리, 너의 소리, 우리의 소리가 어우러지는 판은 마땅히 난장(亂場)이어야 했고 태평소와 사물놀이패들은 그렇게 판을 펼쳤다.

img_5574a

img_5756a

세월호 참사 희생자 가족들이 세월호를 기억하기 위해 운영하는 416기억저장소 후원을 위해 필라세사모가 펼쳤던 소리마당은 잊고 살았던 것들을 그렇게 깨우쳐 주었다.

img_5371a

아직 소리의 여운이 가시지 않은 가을 아침에 우리세대의 시인 김정환이 노래했던 사랑을 읊조리며.

(행사를 위해 수고한 모든 이들에게 다시 큰 박수를 보내며)

가을에

– 김정환

우리가 고향의 목마른 황토길을 그리워 하듯이/ 내가 그대를 사랑하는 것은/ 그대가 내게 오래오래 간직해준/ 그대의 어떤 순결스러움 때문 아니라/ 다만 그대 삶의 전체를 이루는,/ 아주 작은 그대의 몸짓 때문일 뿐/ 이제 초라히 부서져 내리는 늦가을 뜨락에서/ 나무들의 헐벗은 자세와 낙엽 구르는 소리와/ 내 앞에서 다시 한번 세계가 사라져가는 모습을/ 내가 버리지 못하듯이/ 내 또한 그대를 사랑하는 것은/ 그대가 하찮게 여겼던 그대의 먼지, 상처, 그리고 그대의 생활 때문일 뿐/ 그대의 절망과 그대의 피와/ 어느날 갑자기 그대의 머리카락은 하얗게 새어져 버리고/ 그대가 세상에서 빼앗긴 것이 또 그만큼 많음을 알아차린다해도/ 그대는 내 앞에서 행여/ 몸둘바 몰라 하지 말라/ 내가 그대를 사랑하는 것은/ 그대의 치유될수 없는 어떤 생애때문일 뿐/ 그대의 진귀함 때문은 아닐지니/ 우리가 다만 업수임 받고 갈가리 찢겨진/ 우리의 조국을 사랑하듯이/ 조국의 사지를 사랑하듯이/ 내가 그대의 몸한 부분, 사랑받을 수 없는 곳까지/ 사랑하는 것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