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란?

연일 95도를 웃돌고 습기가 높은 날씨에 지친 몸이 만사가 귀찮다고 풀어질 즈음 기온이 뚝 떨어졌다. 오늘 내일은 최고 기온이 70도 어간에 머무른단다. 그렇다하여도 지친 몸이 쉽게 탄력을 되찾지 못한다. 나이 탓이려니.

몸 생각만 하다가 맘 생각이 들어 노자(老子)를 펼쳐 든다.

<사람들은 모두 여유가 있는데 나만은 늘 가난하다. 내 마음은 바보의 마음, 그저 멍청하기만 하다. 사람들은 모두 똑똑하고 활발한데, 나만은 흐리멍덩하다. 세상 사람들은 모두 상세하고 분명한데, 나만은 우물쭈물 결단을 못 내린다. 바다처럼 흔들리고, 지나가는 바람처럼 정처 없다. 사람들은 다 유능한데, 나만은 우둔하고 촌스럽다.>

노자(老子) 도덕경(道德經) 20장의 한 부분이다. ‘그랬구나, 노자 어르신도 그 맘 아셨구나’ 그 맘으로 고개를 끄덕거린다.

어찌 노자 뿐이랴!

<여우도 굴이 있고 하늘의 새도 보금자리가 있지만 사람의 아들은 머리 둘 곳 조차 없다.>
예수는 제 몸 하나 추스르지 못한 모습을 고백하기도 했거늘.

노자와 함께 생각이 뒹구는데 튕기는 아내의 소프라노 소리.

“와요!”
저녁밥 준비되었다는 소리에 엉덩이 드는 순간, 이어졌던 아내의 웃음소리.
“미안, 미안! 밥솥을 안 눌렀었네….”

하여, 삶이란 무릇 살만한 것이려니.

삶이란!

귀한 선물

엊그제 일을 마치고 돌아와 우체통을 여니 귀하고 고맙고 반가운 선물이 놓여 있었습니다. 출판사 여울목에서 펴낸 <홍목사의 잡기장>이라는 책인데, 멀리 호주에 계시는 홍길복 목사님께서 보내신 것입니다.

매우 독특한 책입니다.

일테면 ‘목사의 이중성’이라는 제목이 붙은 글은 단 한 문장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목사라는 직업은 남들에게 힘과 용기도 많이 주지만, 남들에게 상처도 많이 입히는 직업이다.” 이렇게 단 한 문장으로 이루어져 제목이 붙은 글들이 아주 많답니다.

‘관점’은 두 문장으로 이루어진 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의 능력 이상의 것을 바라지 않으신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항상 자기 능력 이상의 것을 하나님께 바치려 한다.”

책장을 하나하나 넘기면서 ‘독특하다’는 생각은 점점 제 나이에 마땅히 느껴야만 할 어떤 울림으로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일테면 이런 제법 긴 문장의 글들 때문이었습니다.

<있는 그대로의 상대방을 사랑하는 일이야말로 우리가 살아가면서 가장 마음에 새겨 두어야 할 ‘진정으로 사랑하는 법’이다. 중요한 것은 지금 있는 그대로 사랑하는 것이다. 그 이상의 것을 요구하는 것은 사랑이 아니라 욕심이다. 모든 것은 그것들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한 가치가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 인생의 지혜다.>

<나에게는 당신이 좀처럼 이해하기 어려운 인격과 모순이 있다. 진실과 거짓, 사랑과 증오, 믿음과 불신, 희망과 좌절, 아름다움과 추함, 왜 나에게는 이런 조화될 수 없고, 조화되어서도 안 되는 상극된 요소들이 뒤섞여 있는 것일까? 우선 나는 정직하게 인정한다. 나에게는 분명히 이런 이중 인격적 요소가 뒤섞여 있어 나를 매우 모호하고, 불분명한 인간으로 만들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그 다음 나는 이에 대하여 변명한다. 그래도 뒤죽박죽 내 인격은 끊임없이 맑고, 깨끗하고, 아름다워지려고, 그 어느 한 방향을 향하여 나아가고 있는 과정이라고 말하고 싶다. 내 속에 있는 모순은 내 속에 있는 선한 노력이다. 이는 내가 나와 싸우는 전투이며 그 전쟁을 숨기지 않고 표출시킨 나의 고뇌에 찬 눈물이다.

나는 단지 회의주의자나 허무주의자로 전락되지만 않는다면, 그렇다면 나에게는 가능성이 있다. 신앙이 승리할 가능성이 있다. 모든 할렐루야 승리의 합창은 끊임없는 자기와의 싸움을 거친 후 허무와 회의 갈등을 통과한 다음에만 불러야 한다.>

책 표지 다음 면에 홍목사님께서 손수 저희 내외에게 써 주신 글에는 “가끔 한 두줄 읽고 커피 한 잔 드시고 또 가끔 다시 한 두줄 읽으시고 하늘 한번 쳐다 보시”라고 했지만, 280쪽 책장을 그예 다 넘기고 말았답니다.

이제, 제가 이따금 하늘 쳐다보며 꺼내 읽는 책들인 성서와 Walden 노장자 곁에 꽂아두고 한 두줄씩 새기며 호주와 제가 사는 여기의 거리를 좁히려 합니다.

시래기

한여름에 시래기를 삶았다. 삶은 때론 엉뚱하다. 다행히 집안 창문을 다 열어 놓아도 덥지 않아 좋았다. 시래기 삶기 좋은 여름날이었다 할까?

이른 아침 습관으로 일어나 커피 한잔 하면서 무언가를 찾노라고 골방을 찾은 게 일의 시작이었다. 올봄에 농사짓는 친구가 보내준 잘 말린 시래기 한 보따리가 눈에 뜨인 것이다. 우연찮은 충동으로 시작한 일은 만만치 않았다. 시래기 양이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행히 오전 내내 창문을 다 열어 놓아도 에어컨이 돌지 않는 날씨에 감사하며 시래기를 삶고 우렸다.

이따금 엉뚱한 일을 벌리곤 하는 나를 바라보는 아내는 언제나처럼 담담하다. ‘많기도 하다. 누구랑 나눠 먹지?’

이따금 나가는 교회인데, 오늘은 교회 창립기념일 이라 예배시간이 좀 늦은 오후 시간이었다.

모처럼 만나 눙치며 반가운 사람들…. 무슨 말을 해도 ‘그러려니….” 웃을 수 있는 사람들… 따져보니 모두 일흔 이쪽 저쪽이다.

저녁식사까지 마치고 돌아와 집문을 여니 오호 집안에 밴 시래기 냄새!

냄새를 탓할 아이들도 없고, 아내는 시래기를 볶아 무치겠단다.

시퍼런 무우청이나 시래기나 다 뜻이 있지? 한여름이나 겨울이나, 아무렴!

복 그리고 꿈

이 나이에 누리는 복이 하나 있다. 생각이 엇비슷한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사는 복이다. 몇 사람 되지도 않거니와 온라인 화상으로 만나는 일이니, 생각하는 사람에 따라 “그걸 복이라고… 쯧쯧…” 혀차는 사람도 있을 수 있는 일이겠다만 내겐 참 소중한 복이다.

이름하여 ‘필라세사모 온라인 모임’이다. 세월호 참사 이후, 세월호와 아픈 사람들을 잊지 말자는 뜻으로 모인 필라델피아 인근에 사는 이들의 모임이다.

만나서 뭐 그리 큰 일 하지도 못하거니와 대단한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아니다. 한국에 새 정권이 들어서기 이전에는 세월호 유가족을 위로하며 그들과 함께 원을 풀어 나가는 일에 대한 이야기들을 주로 나누어 왔고, 최근 정권이 바뀐 이후엔 새 정권이 세월호의 진실을 밝혀내고, 한국 및 한인 사회가 보다 안전한 사회로 나아가는 길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가고 있다.

물론 우리들이 나누는 이야기들 대부분은 우리들의 이야기로만 남는 경우가 허다하다. 국가는 고사하고 작은 지역 사회 아니 우리들 각자가 속한 아주 작은 공동체 하나 바꿀만한 특별한 여력들이 없는 지극히 평범한 사람들의 모임이기 때문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내겐 분명하고 소중한 복이다. 때론 한주간 겪는 소소한 일상을 나누는 이야기일지라도 우리들의 이야기 바탕에는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일 테면 이번 주 모임에서 한 젊은 학자가 던진 이야기로 인해 나는 사람살이에 대해 다시 생각헤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하여 복이다.

대학에서 언론학을 연구하는 친구인데, 그가 최근 연구했던 주제에 대해 말한 아주 짧은 요약이다.

<사람들에게 하나의 사실을 얻는 정보 매체가 어떤 것인가? 를 묻고, 사람마다 사실을 인식하는 차이와 정보 매체와의 연관관계를 따져 보았다. 이즈음 판을 친다는 가짜 뉴스를 인식하는 사람들의 태도에 대한 연구도 해보았다.>는 것이다.

여러 이야기들 중에 짧게 언급했던 그의 말이기에 깊은 그의 연구 내용은 모르지만 언젠가 기회가 되면 그이 이야기를 듣고 싶다.

그런데 그날 그의 짧은 이야기를 들으며, 누군가가 자꾸 생각이 났었다. 그리고 이틀이 지난 오늘에서야 그 이가 생각났다. 오래 전에 돌아가신 청암(靑巖) 송건호 선생님이다.

송선생님께서 남기신 말씀이다.

“일선 기자로서 오랜 체험을 가진 언론인이라면 결코 없는 사실을 허위 보도하는 것이 아니면서도 입장을 달리하고 시각을 달리하는 취재와 보도를 통해서 독자들에게는 중대한 정치, 경제 사실들을 얼마든지 사실과 사건의 이미지를 참된 진실과는 상반되는 방향으로 독자들의 머리 속에 심어 넣을 수가 있다.>

내가 청암 선생님을 따랐던 때가 1970년대 말이니 거의 40여년이 지난 일이다. 이제 젊은 학자를 만나 진일보한 청암 선생님의 소리를 듣는 듯 하여 누리는 내 복이 크다.

필라세사모 이름으로 내가 누리는 복을 이야기하듯, 세월호 아이들과 유가족으로 인하여 살아가는 이들이 안전한 사회에서 누리는 복을 이야기하는 세상이 어서 오기를 꿈꾸며….

벗과 멋 그리고 삶과 오늘

두어 주 전 일이다. 동네 벗에게 전화를 받았다. 나이 들어가며 그의 트레이드 마크가 된 나비 넥타이가 썩 잘 어울리는 친구다. 나이에 어울리게 외모나 내면으로 제 멋을 풍기는 친구들을 보면 참 좋다. 나 또한 흉내라도 내는 시늉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비 넥타이야 애초 나와는 무관한 액서사리이어서 온전히 그의 멋으로 치부할 수 있지만, 그의 색스폰 연주에 이르면 부러움이 인다. 나이 들어 불기 시작한 모양인데 그 소리가 제법이다. 게으른 나는 차마 흉내조차 내지 못할 그만의 멋이다.

그런 그가 전화를 통해 내게 제안을 하나 했다. 친구와 내가 적을 두고 있는 교회 창립 예배 순서에 자신이 색스폰을 연주하는데 시 한 수 읊어 보라는 것이었다. 그의 제안은 여러모로 가당치 않은 것이어서 애초 나는 저어했다. 하여 그냥 웃고 넘기려 했었다.

그러다, 오늘 그의 섹스폰 연주에 맞추어 소리내어 시 한 수 읊어본다. 연습으로.

피조물, 죄인, 참 사람 이해를 위한 구원, 구원의 확장, 삶과 죽음, 감사 그리고 오늘 등등을 곱씹어 보면서….

자기 멋 맘껏 누리며 나이 들어가는 벗에게 고마움을.


오늘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동쪽에 있는 에덴이라는 곳에 동산을 마련하시고 당신께서 빚어 만드신 사람을 그리로 데려다가 살게 하셨다.)

한 처음 하늘 문 열어
사람 하나 세우셨다.
이름 지어 아담 곧 사람
이내 사람을 부르는 소리
–  여호와 하나님께서 아담을 부르셨다. “사람아! 너 어디 있느냐?”
사람은 떨며 대답했다.
–  알몸을 드러내기가 두려워 숨었습니다.

그날 이후
여호와께서 단 한 순간도 쉬지 않으신 일
사람 사랑
가죽옷 입혀 놓은
사람을 향한 사랑

(에케 호모(Ecce homo)
–  빌라도는 사람들에게 예수를 가리켜 보이며 “보라! 이 사람이다” 하고 말하였다.)

사람들은 강퍅하였다.
수천 년 부끄럽고 두려운 세월
여호와, 참다 참다 참다 참 사람 하나 내린다. 이 땅에

(그는 메마른 땅에 뿌리를 박고 가까스로 돋아난 햇순이라고나 할까? 늠름한 풍채도, 멋진 모습도 그에게는 없었다. 눈길을 끌 만한 볼품도 없었다.)

모가지 뻣뻣한 사람들이 그를 향해 쏘아 날리는
멸시와 퇴박
도살장으로 끌려 가는 어린 양처럼
가만히 서서 털을 깎이는 어미 양처럼 결코
입을 열지 않았던 사람
온갖 굴욕을 받으면서도 입 한번 열지 않고 참았던 사람
참 사람
예수

온 몸 온 맘
삶으로
죽음으로
마침내 다시 사심으로
여호와를 알게 한 사람
사람 사랑을 고백케 한 참 사람

삶과 앎
바로 사람
그 사람들이 모인 곳

1979년 여름 어느 날
이 사람을 보라!
그 소리에 끌려 모인 사람들
이름하여 델라웨어 한인 감리교회

여호와는 우리에게 이미 보여주셨다.
한 처음을
한 사람을
서른 여덟 해에 담긴 태초와 오늘까지의 세월을

2017년 이 곳은 새 하늘과 새 땅
사람들이 부르기 전에 여호와께서 응답하시고
사람들이 말하기 전에 여호와께서 들으시는 세상

세우는 자
세움을 받는 자
마음 문 열어 박수 치는 자
모두 사람이 되어
참 사람이 되어

감사하므로 살아있는 오늘을 느끼는
나 너
우리
마침내
참 사람

쉼 그리고 즐거움

사흘 연휴, 아이들과 함께 산길을 걸으며 시간을 함께 하기로 계획한 것은 달포 전이다. 아이들은 흔쾌히 내 의견에 동조해 주었다. 운전하기에 피곤치 않을 적당한 거리 쯤에 놓여있는 곳들을 물색하다가 결정한 곳은 뉴욕 주 중심에 있는 Ithaca였다.  Cornell 대학교로 유명한 곳이지만, 곳곳에 이 땅의 원주민 부족 가운데 하나인 Cayuga 부족의 흔적이 살아있는 곳이라는 Wikipedia의 설명에 혹하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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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 내내 아내와 아들 내외 그리고 딸아이 모두 흡족해 내가 마냥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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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녀석이 지금보다 조금 나은 조건의 직장으로 옮기련다는 계획과 며늘아이가 새 학기에 맡게 될 학교 아이들의 이야기들을 들으며 나는 지혜로운 인디언 아버지 흉내를 내보기도 했다.

딸아이와 어깨를 닿게 걸으며 아이의 직장 이야기와 설계 중인 결혼 프로젝트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며 세대의 차이, 생각의 차이를 확인해야 했다. 우리 내외의 건강과 은퇴 계획 등을 묻는 딸아이가 고마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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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그렇듯, 여행 내내 아내는 우리 가족의 윤활유였다.DSC02743

함께 모여 먹고 마시는 즐거움 역시 멋진 쉼 이었다. 우리 내외와 아이들이 적당히 타협할 만한 생음악이 연주되는 여행지의 저녁상도 넉넉했다.

무엇보다 어제와 내일 그리고 오늘을 잇는 내 쉼이 참 좋았다.20170703_121911

어느 인디언이 ‘당신’인 내게 남긴 말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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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리에서 일어나면 아침 햇빛에 감사하라.
당신이 가진 생명과 힘에 대해 당신이 먹는 음식, 생활의 즐거움에 대해 감사하라.
만일 당신이 감사해야 할 아무런 이유를 알지 못한다면 그것은 어디까지나 당신 잘못이다.

주일아침, 희년(禧年)을 꿈꾸며

주일아침에 성서 레위기 한 장을 읽는다.

여호와께서 시내 산에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이르라.

너희는 내가 너희에게 주는 땅에 들어간 후에 그 땅으로 여호와 앞에 안식하게 하라. 너는 육 년 동안 그 밭에 파종하며 육 년 동안 그 포도원을 가꾸어 그 소출을 거둘 것이나 일곱째 해에는 그 땅이 쉬어 안식하게 할지니 여호와께 대한 안식이라. 너는 그 밭에 파종하거나 포도원을 가꾸지 말며 네가 거둔 후에 자라난 것을 거두지 말고 가꾸지 아니한 포도나무가 맺은 열매를 거두지 말라 이는 땅의 안식년임이니라..안식년의 소출은 너희가 먹을 것이니 너와 네 남종과 네 여종과 네 품꾼과 너와 함께 거류하는 자들과 네 가축과 네 땅에 있는 들짐승들이 다 그 소출로 먹을 것을 삼을지니라.

너는 일곱 안식년을 계수할지니, 이는 칠 년이 일곱 번인즉 안식년 일곱 번 동안 곧 사십구 년이라. 일곱째 달 열흘날은 속죄일이니 너는 뿔나팔 소리를 내되 전국에서 뿔나팔을 크게 불지며 너희는 오십 년째 해를 거룩하게 하여 그 땅에 있는 모든 주민을 위하여 자유를 공포하라. 이 해는 너희에게 희년이니 너희는 각각 자기의 소유지로 돌아가며 각각 자기의 가족에게로 돌아갈지며  그 오십 년째 해는 너희의 희년이니 너희는 파종하지 말며 스스로 난 것을 거두지 말며 가꾸지 아니한 포도를 거두지 말라. 이는 희년이니 너희에게 거룩함이니라 너희는 밭의 소출을 먹으리라. – 레위기 25장 1-12절, (개역개정본 성서에서)

이즈음 사회보장이나 복지정책에 대한 뉴스나 의견, 주장들을 많이 볼 수 있다만, 솔직히 나는 이 분야에 대해 밝지 않다. 내가 살았던 시대의 한국사회에선 ‘사회보장이나 복지’라는 말은 불온하였다. Social security라는 말에 내가 친숙하게 된 것은 이민 후 세금을 납부하면서 내기 시작한 social security tax 때문이다. 그러나 그 뿐, 사회보장이니 복지라는 문제에 대해 깊이 생각하며 살아오지는 않았다. 근래에 내 집에 많이 배달되는 광고물로는 은퇴연금이나 은퇴 후 자산관리에 대한 것이 으뜸이다. 아마 내 나이 탓일게다. 그러나 그도 그 뿐, 내 개인적인 일로 받아드릴 뿐이지, 사회적 문제로 생각이 나아간 적은 거의 없다. 한마디로 사회보장이나 복지 문제에 대해 무지하다.

이렇게 무지, 무식한 내 식견으로도 성서에서 말하는 안식년과 희년의 선포는 가히 혁명적이다. 혁명이란 이루어 질 수도 있는 일이므로, 혁명이라기보다는 부질없는 망상에 가깝다고 하는 게 나을 듯 하다.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으니 만일 네 오른 눈이 너로 실족케 하거든 빼어 내버리라’는 예수의 말을 실천한 사내가 없듯이, 희년법이란 사람사는 세상에서는 실현 불가능한 헛된 꿈일 수도 있겠다.

레위기를 기록했던 시대에 이미 희년법은 기억과 신앙속에 남아있었을 뿐, 이스라엘 역사나 그 이후 인류사에서 실천되었던 적도 없다. 물론 이즈음 교회 또는 대학, 공무원 사회에서 안식년이니 안식 휴가니 하는 말과 휴가제도를 시행하고는 하지만, 엄밀한 뜻에서 성서에서 선포하는 안식법과는 거리가 멀다. 희년에 이르면 여전히 성서속에만 남아있는 사어(死語)에 불과하다.

이쯤 머리 속에 남아있던 신문기사 한 토막을 떠올린다. 한국 문재인 정부가 소액, 장기연체 채무 를 탕감하겠다는 기사이다.

<문재인 정부가 추진하는 탕감 대상 채권은 1000만원 미만의 10년 이상 연체된 채권이다. 사실상 소멸시효가 완성된 회수 불능 채권으로 볼 수 있다. 그 규모는 약 11조원으로 추산된다. 이미 문재인 정부는 내각이 구성된 이후 국민행복기금이 보유한 회수 불능 채권 1조9000억원을 소각하기로 했다. 대상자는 43만7000여명이며 1인당 435만원 정도의 부채가 사라지게 된다.>

지난 달 조선일보 기사 일부이다. 이 기사에는 <선진국 사례에서도 정부가 나서서 일반 서민들의 부채를 일괄적으로 탕감하는 사례는 거의 없다>는 전문가 의견도 달려 있다.  ‘국가가 나서서 빚을 없애주면 혜택받는 이들은 좋겠지만, 그럼 그 동안 열심히 빚을 갚아 온 사람들은 바보냐?’,  ‘그럼 이제 누가 빚을 갚으려 하겠느냐?’며 사회 전반에 퍼질 도덕적 해이를 염려하는 이들의 의견들도 있다.

“가난으로부터의 해방, 철저한 쉼, 모든 빚의 원상회복, 이자없는 대부, 되무를 수 있는 법” 등등을 선언하고 있는 성서의 희년법은 아주 깊은 전제를 달고 있다. 바로 참회와 자유 정신이다.

<속죄일이니 너는 뿔나팔 소리를 내되 전국에서 뿔나팔을 크게 불지며…> 희년을 선포하는 첫날에 해야 할 일은 바로 희년에 함께하는 모든 이들이 참회하며 뿔나팔을 부는 것이다. 희년(禧年) 곧 기쁨의 해는 히브리말로는 ‘쥬빌리(Jubilee)의 해’이다. 쥬빌리란 ‘수양의 뿔’을 의미하는데, 이것은 희년을 선포할 때 수양의 뿔로 된 나팔을 분데서 유래한다.

개인이나 사회 공동체가 옛 빚을 벗어 던지고 새로운 출발을 할 때 전제되어야 하는 것들이 바로 참회와 속죄, 그리고 서로가 서로를 용납하는 기쁨과 자유의 나팔이다.

하여 현실세계에서 불가능한 유토피아적 발상이라 할 수도 있겠다만, 신앙의 세계에서는 가능하다는 것이 성서의 선포이며, 이를 믿는 이들에게는 역사속에서 이루어 질 수 있는 나아가 현실에서 이루어져 가고 있는 일이 된다.

현실에서 희년이 선포되지 못하는 까닭은 그 뜻이 사람 사는 세상에서 비현실적이기 때문이 아니라 사람들이 실천할 의지가 없기 때문이다. 못가진 자, 빚을 탕감 받은 자들의 참회와 가진 자, 빚의 탕감을 실천할 수 있는 권력자들의 의지가 함께 힘을 모아 희년 곧 쥬빌리의 뿔나팔을 불어 제낄 때 희년은 유토피아가 아닌 오늘의 일로 다가설 수도 있다고 믿는다.

사회보장과 복지 정책의 문외한인 내가 살았고 살고 있는 한국과 미국은 이 분야에선 후진국이라 하겠다. 아마 나 같은 문외한들이 많이 살고 있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그나마 퇴임 이후에도 많은 신뢰를 얻고 있는 오바마나 이제 막 시험대 위에 오른 문재인처럼 ‘사회 정의’에 대한 고뇌 깊은 권력자들과 참회와 속죄를 전제로 서로를 용납하는 시민들이 함께 불어 제끼는 뿔나팔 소리로 세상은 조금씩 희년을 향해 나아가는 것은 아닐까?

한국 대통령의 방미 뉴스에

당신이 뉴욕 또는 LA, 아니면 시카고 어디쯤 살고 있다 치자. 그런데 텍사스 어딘가에서 사람들이 여럿 다친 큰 사고가 났다고 하자. 그리고 며칠 후 당신은 한국에 있는 지인이나 친척의 안부전화를 받는다. ‘미국에서 사고가 났다는데 괜찮으냐?’고 묻는 전화 말이다. 지금이 어떤 세상인데 이런 아제 개그를 하느냐고 나무라는 이들도 있을 수 있겠다만, 실제 그런 일들이 일어났던 게 그리 먼 옛날이 아니다.

살아온 연식이 제법 되시는 분들은 한국에서 있었던 이런 일들을 기억할 것이다. 미국 갔다가 한 두어 달 만에 한국으로 돌아와 혀 꼬부라진 소리로 한국 말하는 코미디 말이다. 코미디가 아니라 실제 그런 이들도 있었다. 1960, 70년대 쯤에 있었던 일이라고 생각하며 살던 내가 이즈음 생각을 고쳐먹게 되었다.

최근 한국 뉴스를 보면서 이런 옛일들이 지금도 여전히 진행되고 있다고 믿게 된 것인데, 특히 한국 TV 뉴스 가운데 해외 특파원들의 말투를 유심히 듣고 난 후에 굳힌 생각이다. 내 믿음이 옳고 그름을 당신이 판단하고 싶거든 한국 TV 뉴스 중에 해외 특파원들(일테면 뉴욕, 워싱톤, LA, 런던, 파리, 동경 등등 어디라도 좋다)의 말투와 억양을 유심히 들어 보시라. 뭔가 달라도 다르다는 것을 쉽게 눈치채게 될 것이다. 뭐가 다르냐고? 일반적인 한국인들의 말투와 억양이 아니라는 것이다. 더더구나 한국내 아나운서나 앵커들의 말투와 억양과는 확연히 차이가 난다.

다시 옛날 코미디로 돌아가자. 당시 이어지던 우스개이다. 김포공항에 내려서 빠다 바른 소리로 한국말하는 이의 뺨을 치면 바로 김치 냄새나는 한국말이 튀어 나온다던 이야기인데, 그 우스개 역시 지금도 여전히 통하지 않을까 싶다. 분명 연습했다 싶은 해외 특파원들의 말투와 억양 역시 뺨 한 대만 치면 그들의 평시 억양과 말투로 되돌려 놓을 수 있겠다는 생각 말이다.

믿거나 말거나 한때 언론사를 기웃거렸던 경험 탓에 워싱톤 주재 특파원들의 취재환경이나 그들의 행태에 전혀 문외한은 아니다. 단언컨대 현지인 출신이 아닌 한 평소 억양과 말투가 한국인들과 다른 이들은 없다.

그런데 왜 특파원 뉴스를 전하는 그들의 말투가 독특할까? 답은 간단하다. 뉴욕, LA, 시카고, 텍사스를 뭉뚱그려 동일한 미국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또한 저 친구는 전문가이므로 나와는 다른 말투와 억양을 써도 마땅하다는 생각을 하는 이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뿐만 아니다. 해외 특파원쯤 되면 뭔가 달라도 크게 다를 것이라는 선입견을 가진 이들도 있다. 더하여 의도적으로 그런 독자나 시청자들을 만들어 내려고 하는 언론사가 존재하는 까닭이다.

사실 억양이나 말투 같은 형식은 그리 큰 문제는 아니다. 의도적으로 만들어낸 그 형식 속에 담긴 내용들이 가짜이거나 거짓일 때가 종종 있기 때문인데, 이때 형식은 거짓이나 허위를 위장하는 수단이 된다.

한국 문재인 대통령의 첫 방미 행사를 앞두고 수많은 뉴스들이 쏟아지고 있다. 늘 그렇듯 한국의새로운 권력자가 첫 번 째 방미를 하면 동포사회도 이런저런 이야기거리들이 넘쳐난다. 그리고 그 이야기들의 중심에는 사람들이 있게 마련인데 그 사람들이란 수십년이 지나도 매양 한가지 타입의 얼굴들이다.

이제 앞으로 두어 주 동안 이른바 특파원들이 전하는 무수한 뉴스들이 쏟아질 것이다. 때론 빠다칠한 억양과 말투로 사실이나 진실과는 거리가 먼 그들의 이해에 맞춘 소설들이 뉴스로 둔갑하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걱정은 없다. 빠다 칠한 소리로 한국말하는 이들의 뺨을 후려치는 시민들이 내가  한국에서 살았던 1970년대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많기 때문이다.

문재인 한국 대통령보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 돌출행동에 대한 걱정이 앞서기도 하지만, 양국 정상의 첫 만남이 한반도와 미주에 사는 동포들에게 위안이 되는 뉴스들이 넘쳐나기를 빌며.

아버지날에

아이 사는 모습을 보노라고 모처럼 뉴욕에 다녀왔다. 달포 전에 잡은 계획인데 오늘이 Father’s Day인줄은 그땐 몰랐었다. 하여 엊그제는 아버지와, 어제는 장인과 잠시 시간을 가졌었다. 아침에 집을 나서는데 하늘이 잔뜩 찌푸렸다. 비가 오락가락할 것이라는 예보였다.

올라가는 길에 딸아이에게 만일 비가오면 Metropolitan Museum을, 날이 좋으면 Central Park에 가자고 메시지를 보냈다. 날씨는 걷기에 딱 좋았다. 걷자면 배가 든든해야 하는 법, 좀 늦은 아침 북어 콩나물 해장국으로 배를 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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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tropolitan Museum – 딱 30년 전에 이곳을 왔었다. 그 때는 아버지와 함께 였었다. 아내와 딸과 함께 온 오늘은 나는 그저 쫓아다니면 족했다. 묻고 길을 찾고 안내하는 것은 딸아이가, 돈내는 일은 아내와 딸의 일이 되어 내가 할 일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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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많이 바뀌었다. 우선 그땐 딸아이가 아직 세상에 없었다. 아내는 갓 서른 청춘이었다. 그때만해도 아버지 걸음은 빨랐다. 박물관엔 중국 진나라와 한나라 특별전이 열리고 있었는데 마침 그 전시관을 돌고 있을 때 전화가 왔다. 아들과 며느리가 Happy Father’s Day 문안을 전하는 전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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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드셋을 이용해 전시작품 설명을 들을 수 있는 Audio Guide랄지, 아주 작은 방일지라도 한국관이 따로 설치되어 있는 것 등도 30년 전과 다른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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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무엇보다 놀란 뉴욕 지하철이다. 새로 연장된 구간의 지하철은 서울만큼 깨끗해 놀라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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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요커가 다 된 딸아이는 제법 맛있는 빵집 위치를 꿰차고 있었다. 우리는 빵과 커피를 들고 Central Park의 느긋한 오후를 함께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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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의 춤 – 그 점 하나.

토요일 저녁, 서울 시청 앞 광장에서 열린 6.10 항쟁 30주년 기념 행사 녹화 영상을 보며 세월을 뒤돌아 보았다. 그 때 그 수많은 인파 속에 나도 점 하나로 서 있었다. 그 무더위를 뒤로 하고 그 땅을 떠났다.

그리고 이 땅에서 이민 30년. 참 많이 변했다. 내가 느끼는 그 세월의 모든 변화들을 감사로 받아 드리고 싶다.

환갑 나이가 된 아내가 느닷없이 ‘진도 북춤’을 배워야겠다고 선언한 것은 올 초의 일이었다. 난 ‘저러다 말겠거니’했다. 아침에 일어나 계단을 내려오며 무릎이 시큰거린다는 아내가 그 일을 저지르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30년 전 아내는 한풀이 춤도 탈춤도 추곤했다. 그러나 그건 30년 전의 일일 뿐.

그러다 오늘 나는 왕복 300마일 ‘진도 북춤’을 배우러 가는 아내의 운전기사였다.

두 시간 춤을 배우고 난 뒤 아내가 물었다. “내가 할 수 있을까?”

지난 30년 동안 너나없이 모두가 그 물음으로 살아오지 않았을까?

30년 전 한풀이 춤을 추었던 아내는 이제 어느 날엔가 진도 북춤을 출 것이다.

그랬다. 30년이란 그저 시간의 흐름 가운데 하나의 점일 뿐.

그 점 하나에 대한 감사가 이어지는 밤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