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위에

이런 추위는 처음이라고 말하는 이들이 많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이 동네에 산지 서른 해가 넘었지만 이런 추위는 처음이다. 오늘 아침만 해도 그렇다. 자동차 수은주가 1도라고 가리켰다. 섭씨 영하 17도 이하였다. 일기예보로는 체감온도가 -10, 섭씨로는 영하 23도 이하란다. 벌써 몇 일 째인가? 여름 한 철 더위가 기승을 부릴 때 맥을 놓게 되듯 강추위에 그저 몸이 움추려 들 뿐이다.

문득 내 평생 가장 추웠던 겨울이 언제였던가 꼽아 본다. 나이 들면 지금과 가까웠던 세월보다 먼 옛날 일들이 또렷이 기억난다더니 생각은 빠르게 시간을 되돌린다.

그 땐 정말 참 추웠었다. 방안 그릇에 담긴 물이 얼었고, 자고 나면 벽엔 하얀 성에가 끼곤 했었다. 내 나이 열살 어간의 겨울이었다. 내 집이 가난했기 때문만이 아니다. 그 시절 내 동무들 대부분 그런 방에서 겨울을 지냈다. 그랬다. 그 땐 친구라는 말보다는 동무 라고들 했었다.

한국전쟁 휴전 이후 채 십여 년이 흐르지 않은 겨울이었다. 내 동무들 가운데는 여전히 이북 사투리를 쓰던 아이들이 많았다. 그런 아이들 집 가까이에 가면 억세고 거세기가 동무들의 억양보다 몇 배나 높은 이북 사투리를 듣곤 했다. 동무들의 할아버지 할머니들이었다.

내가 중학교에 들어 갈 무렵 즈음 할아버지 할머니들의 사투리는 더는 듣지 못하게 되었고, 서울 말과 섞인 이북 사투리를 쓰시던 동무들의 어머니와 아버지들도 이젠 거의 세상에 없다.

언제부터인가 동무에서 친구가 된 내 어릴 적 벗들도 어느새 손주 손녀 이야기를 하는 나이들이 되었다.

그래, 그 땐 정말 참 추웠었다. 방안에 있는 그릇에 담긴 믈이 얼었고, 벽엔 허연 성에가 끼곤 했었다. 내 나이 열 살 어간의 겨울이었다. 내가 친구들을 아직 동무라고 부르던 시절이었다.

모진 추위가 이어지는 2018년 새해 벽두에 옛 일을 생각하며….

달과 일상(日常)

새해 첫날 지는 달과 뜨는 달을 보다. 때마침 둥근 보름달이다.

좀 느긋해 질 나이도 지났건만 연휴에도 일상적 습관을 버리지 못하고 새벽녘에 일어나 서성거렸다. 매서운 추위가 계속된다는 일기예보에 집을 나섰다. 행여라도 가게 보일러가 얼지 않을까 하는 염려 때문이었다. 연휴는 일상이 연속되어 진다는 담보가 있어야 참 휴식이다. 이 추위에 보일러가 얼기라도 한다면 연휴 끝에 이어질 내 일상은 엉망이 될 것이다. 비록 노파심이라도 집을 나서야 했다.

1-1-17Moon

첫새벽 녘에 둥근 보름달이 지고 있었다. 새해 첫 날 첫 새벽에 둥근 보름달은 운전을 멈추게 하였다. 내 일생 새해 첫 날 첫 새벽에 보름달을 본 적이 있었던가? 내 기억 속에 남아있는 60여년의 세월을 빠르게 돌아본다.

일상의 연속을 위하여 휴일 아침에 일터로 향하며 누린 이 놀라운 감흥이라니!

우연이었다.

다 저녁 무렵에 홀로이신 장인을 뵈러 가는 길에 둥근 보름달이 떠오르고 있었다.

moon-2

새해 첫날 지는 달과 뜨는 달을 보는 일, 어쩌면 그도 일상(日常) 아닐까? 그 달이 보름달이어도.

2018년 첫날에

시간 – 그 감사에

한 해의 마지막 주간, 또 다시 한 해를 보내는 아픔으로 혹독한 감기를 앓다. 이제껏 큰 병이나 잔병치레 없이 살아온 것 더할 나위 없는 감사이다. 하여 어쩌다 한번 찾아오는 감기와 싸우는 아픔이 그 감사의 크기를 줄이지는 못한다.

이제 몇 시간 남지않은 2017년 한 해를 돌아본다.

가슴 한 켠에 아직도 가시지 않고 아릿한 아픔으로 남아있는 기억들도 있지만, 대체로 참아내고 이겨낼 만한 일들 이었음에 감사하다. 곰곰 생각하니 돌이킬 수 없는 후회도 있다만, 잊을 만한 새로운 시간들이 찾아온다는 소망이 있어 감사하다.

여느 해 보다 유달리 장례식장을 많이 찾았던 한 해였다. 제 아무리 백세 인생을 외쳐도 유한함을 벗어날 재간은 없다. 나 역시 노년의 문으로 한발 내딛는 한 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롭게 시작할 수 있고, 시작해야만 할 일들이 내 앞에 놓여있다는 사실에 감사하다.

새해를 맞이하는 오늘 밤, 체감온도가 화씨로 -10도, 섭씨로는 -23도 란다. 연일 매서운 추위가 이어진다.

가게 손님 가운데 Morris라는 양반이 있었다. 해마다 이맘 때 쯤이면 내 가게에 들어서면서 던지는 매양 똑 같은 이야기가 있었다. “이건 추위가 아니야! 정말 추운 건 한국이지. 시베리아보다 더 추웠어!” 한국전 참전용사이던 그는 지난 더운 여름날 어느 날 세상 떳다. 생전 그에게 한국은 언제나 1950년 겨울이었다.

어찌 Morris씨 뿐이랴! 나 역시 때때로 모국인 한국은 1970년대이거늘. 추억만으로는 결코 추위를 이기지도 못할 뿐더러 새 날을 맞지 못하는 법이다.

강추위 속에서도 새 날은 밝을 것이다. 이제 어제로 남을 2017년을 추억이 아닌 기억으로 새기는 한 그 역시 모두가 감사이다.

그 맘으로 내 가게 손님들에게 보내는 편지이다.

12-31-17올해의 마지막 날 아침입니다. 하루, 한 주, 한 달, 일년의 구분은 있지만 시간이 빠르기는 매양 한가지입니다. 그런데 과연 시간이 빠르기만 할까요?

지난 주간 제가 경험한 일인데 시간은 때론 정말 느리고 더딘 걸음으로 가는 때가 있답니다. 하루 해가 너무나 길게 느껴질 만큼 시간은 느리고 느리게 흘렀답니다.

저는 지난 주간에 심한 감기로 고생을 했었답니다. 쉴 수 있는 형편이 아니어서 가게에서 일을 하면서 하루 해를 보냈는데, 특히 날씨가 몹시 추웠던 지난 목요일, 금요일 이틀 동안은 시간이 그렇게 느리고 더디게 흐르던지요. 다행히 어제부터 몸 상태는 좋아졌고, 일요일인 오늘과 새해 첫날인 내일 쉴 수 있어 시간은 다시 빠르게 흐를 것 같습니다.

시간은 누구에게나 언제나 공평하게 흐르지만, 빠르고 느린 속도의 느낌은 사람마다 처한 환경에 따라 달라지는 법이지요.

때론 더디고 느리게 지나갔지만 대체로 빠르게 흐른 지난 한 해, 제 세탁소 손님들을 생각해 봅니다.

제 가게 최고령 손님이셨던 할머니는 지난 봄 97세로 세상을 뜨셨습니다. 해마다 이맘 때면 “이건 추위가 아니야! 정말 추운 곳은 한국이지. 그땐 시베리아보다 더 추웠어!”라는 말을 잊지 않으셨던 한국전 참전 용사였던 할아버지도 지난 여름에 돌아가셨답니다. 매 주 세탁소를 찾아 오시다가 은퇴 이후 아주 이따금 찾아 오시는 이들도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새로 동네에 이사해 오신 젊은 부부들도 있고, 부모 손 잡고 오던 어린 아이가 훌쩍 큰 어른이 되어 단골 손님이 된 경우도 있습니다.

때론 “언제부터 이 세탁소가 여기 있었느냐?”고 묻는 새 손님들도 있습니다. 제가 “1990년 부터…”라고 답을 하면 “이 동네에서 그 보다 더 오래 살았지만 이 세탁소는 처음 봤다.”고 대답하는 손님들도 있답니다.

한 해가 저무는 순간, 제 세탁소에서 만난 얼굴들을 떠올려봅니다. 그저 모든 분들께 감사할 뿐입니다. 당신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이제 맞이하는 2018년 새해의 시간들 역시 때론 빠르게 때론 느리게 흐를 것입니다. 그러나 모든 시간들이 저나 당신에게 소중하고 복된 시간들이 되시길 소망합니다.

당신의 세탁소에서

시간은

– 헨리 반 다이크

기다리는 이들에겐 너무 느리고
걱정하는 이들에겐 너무 빠르고
슬퍼하는 이들에겐 너무나 길고
기뻐하는 이들에겐 너무 짧다네
하지만 사랑하는 이들에겐
그렇지 않지


It’s the morning of the last day of this year. Though time has divisions like day, week, and year, time is flying by as ever. But, is time really going by so fast all the time?

As I experienced last week, I think that sometimes time goes by so slowly or at a slow pace. Last week, I felt that time went by so slowly to make me feel that a day was too long.

I suffered from severe cold last week. As I could not afford to have days off, I had to work at the cleaners. Especially on Thursday and Friday when it was very cold, I felt that time was passing by so slowly. Fortunately, I began to feel better as of yesterday. As I can take rest today and tomorrow, New Year’s Day, I think that time will fly by fast again.

Though time passes by without bias and without favor to anybody, the feelings of the speed of time may be different according to the conditions in which one might be.

Sometimes time flew by fast and sometimes it passed by slowly this year. But, overall, I could say that this year passed by fast. I’m thinking about my customers this year.

The lady who had been the oldest customer passed away at the age of 97 in the spring. The gentleman who around this time of year always said, “It is not cold. The really cold place is Korea. When I was there, it was even colder than Siberia!” He passed away in the summer. He was a Korean War veteran. Some customers who used to come every week began to come less often after they retired.

And then, as new customers I met young couples who had moved to the community. I have regular customers who used to come to the cleaners with their parents but now have grown up to be adults.

From time to time, new customers asked, “Since when has this cleaners been here?” When I answered “Since 1990,” some of them were surprised and said, “Though I have been living here even before 1990, I didn’t know that you are here.”

At the moment when 2017 is coming to a close, I’m recalling the faces of those whom I have met at my cleaners this year. Simply, I’m thanking all of you and I am deeply grateful to you.

In the New Year, 2018, time will fly by fast sometimes and go by slowly sometimes. However, I wish that all the time will be precious and blessed to you.

From your cleaners.

Time is.. .
– Henry Van Dyke

Too Slow for those who Wait
Too Swift for those who Fear
Too Long for those who Grieve
Too Short for those who Rejoice
But for those who Love
Time is not.

성탄과 별

해방과 구원은 성서 이야기의 두 핵심이다. 히브리족속의 탈애굽과 예수의 십자가는 두 핵심 이야기를 대변하는 사건들이다. 나머지 무수한 이야기들을 단지 두 핵심 이야기를 위한 치장으로 내칠 수는 없겠다만, 무게가 처짐에는 틀림없다.

예수 탄생 이야기도 마찬가지다. 십자가와 부활에 닿지않는 예수 탄생 이야기는 큰 뜻이 없다.

<그 분은 그 옛날 호숫가에서 그분을 알지 못했던 사람들에게 찾아가셨던 것처럼, 우리에게도 이름이 없는, 알지 못하는 분으로 찾아 오신다. 그분은 우리에게 “나를 따르라!”고 똑같이 말씀을 하시며, 우리 시대에 그분이 성취하셔야 할 과제를 우리에게 정해 주신다. 그리고 순종하는 사람들에게는, 그들이 현명한 사람이건 단순한 사람이건 간에, 그분의 제자로 살기 위해 거치게 될 수고와 갈등, 고난 속에 그분 자신을 계시하시며,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신비로써, 그들은 자신들의 경험 속에서 그분이 누구인지를 배우게 된다.> – 알버트 슈바이처(Albert Schweitzer, 역사적 예수의 탐구에서)의 말이다.

<예수가, 아마도 처음이자 유일하게, 성전의 화려함에 맞서서 그 합법적 브로커 기능을 브로커 없는 하나님의 나라(unbrokered kingdom of God)의 이름으로 상징적으로 파괴하였다는 사실은 분명해 보인다.> -우리 시대의 신학자 존 도미닉 크로산(John Dominic Crossan, 역사적 예수에서)이 만난 예수의 모습이다.

십자가와 부활이 전적으로 믿는 이들 개인 신앙고백에 닿아 있듯이, 예수 탄생의 뜻 역시 온 세상 각 사람들과 신이 그 어떤 브로커 없이도 만나는 지점 곧 오늘 여기에서 세워진다.

2018년 성탄 전날 아침에 빌어보는 기도이다. “곤고한 모든 이들의 가슴에 한 점 별빛으로 찾아오소서. 별빛에 크기와 상관없이 오신 당신으로 인해 오늘, 여기에서 누리는 삶의 뜻을 찾게 하소서.”

그 마음으로 가게 손님들에게 편지를 띄운다.

12-24

이제 2017년도 딱 한 주간을 남겨 놓았습니다. 지나간 한 해 동안 있었던 여러 일들을 생각해봅니다. 사람 사는 일이 늘 그렇듯 꼭 즐겁고 기쁜 일들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여느 해처럼 때론 아프고 슬프고, 화나고 짜증나는 일들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한 해를 돌아볼수록 커지는 것은 감사입니다. 특별히 제 세탁소를 통해 만난 당신께 감사를 드립니다.

그 감사의 마음으로 크리스마스 전 날 아침에  제가 좋아하는 시 한편을 당신과 나누고 싶어 띄웁니다.

겨울 길을 간다

–       이해인

봄 여름 데리고
호화롭던 숲
가을과 함께 서서히 옷을 벗으면
텅 빈 해질녘에
겨울이 오는 소리

문득 창을 열면
흰 눈 덮인 오솔길
어둠은 더욱 깊고 아는 이 하나 없다
별 없는 겨울 숲을
아는 이 하나 없다

먼 길에 목마른
가난의 행복 고운 별 하나
가슴에 묻고
겨울 숲길을 간다.

화사한 봄도 아니고, 호사스런 여름도 아니고, 풍성한 가을도 아닌 텅 빈 겨울에 흰 눈 덮힌 오솔길을 걷는 시인은 올해 73살의 카톨릭 수녀입니다. 그녀는 아는 이 하나없이 별 빛조차 없는 어두운 겨울 숲길을 걷고 있습니다.

보통 사람들의 눈으로 바라보면 겨울 길을 걷고 있는 시인은 불쌍하고 안타깝게 보입니다. 그런데 시인은 저 같은 보통 사람들에게 놀라운 반전을 선포합니다. 자신은 행복한 사람이라고 말입니다.

그녀가 행복한 까닭은 <가난의 행복 고운 별 하나/ 가슴에 묻고/ 겨울 숲길을> 걷고 있기 때문이랍니다. 그녀가 가슴에 품은 별이란 종교적 고백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곰곰이 따져보면 저 같은 보통사람들 누구에게라도 그 별 하나 묻을 가슴이 있는 한 ‘행복을 가져다 주는 고운 별’ 같은 사람 하나쯤을 있지 않을까요?

이제 한 주간 남은 2017년의 당신의 시간들이 고운 별들로 반짝이는 길이 되시길 빕니다.

당신의 세탁소에서


The year 2017 has just one week left now. I’m thinking back over various things that happened this year. As is of the case with life, not all of them were happy and pleasant. Just like other years, some of them were painful, sad, upsetting or irritating. However, as I’m looking back over the year, what becomes bigger is gratitude. Especially, I am grateful to you who I got to know through my cleaners.

With the gratitude in mind, I would like to share with you one of my favorite poems on this morning one day before Christmas.

Walking on a winter path

– Hae-in Lee

Along with spring and summer
Woods which was dazzled,
When they take off clothes slowly with autumn,
Desolate at sunset
The sounds of winter coming are whistling around.

When I open the window casually,
On the snow-covered footpath,
Darkness becomes deeper and no one who I know is there.
In the winter woods without stars
There is no one that I know.

Thirsty from a long journey
Happiness of poverty, a beautiful star
Burying in my heart,
I’m walking on a winter footpath in the woods.

Not in cheery spring, not in dazzling summer nor in abundant fall, but in desolate winter, the poet who is walking on the snow-covered footpath is a Catholic nun at the age of 73. She is walking on the dark winter footpath in the woods without stars.

If we look at her with the eyes of ordinary people, the poet may look pitiful and sad. But, she declares the reversal which is shocking to ordinary people like me. She says that she is a happy person.

The reason why she is happy is because she is walking <on a winter footpath in the woods/Burying in my heart/Happiness of poverty, a beautiful star>. The star which she buries in her heart may mean religious confession.

But, thinking it over deeply, to all the ordinary people like me, if we have a heart to bury that star in, I think that we must have at least one person who is like a beautiful star which brings happiness to us. Don’t you think so?

I wish that the last week of 2017 will be like a path sparkling with beautiful stars to you.

From your cleaners.

엇박자와 문(門)

연애 6년에 결혼 34년 차이니 꽉 찬 40년인데, 아내와의 엇박자는 여전하다. 이즈음 겪는 엇박자는 젊은 시절 그것과는 좀 다르다. 예전엔 그 삐걱거림이 대부분 성격차이에서 비롯되었지만, 이즈음엔 기억 차이에서 나오는 다른 소리들이 많다.

엊그제 이어진 일들 모두 우리 부부가 이즈음 겪고 있는 기억력 차이에서 온 엇박자 행보였다.

지난 토요일 약속은 벌써 달포 전에 이루어진 것인데 아내와 나는 그야말로 새까맣게 잊고 있었다. 이 점은 엇박자가 아니라 정박에 완벽한 화음까지 이루어진 망각이었다. 해마다 초대해 주는 우리 가게 손님 Gaskin씨의 연말 파티 초대였는데, 당일 오후에 Gaskin씨가 가게로 찾아와 다시 알려 줄 때까지 우리 부부는 완벽하게 정박으로 잊고 있었던 것이다.

엇박자는 Gaskin씨가 가고 난 뒤에 일어났다. 나는 Gaskin 내외에게 미안하기는 하지만 토요일 오후에 계획했던 내 시간을 갖는 쪽으로 고집을 세운 반면, 아내는 초대에 응해야 한다는 쪽이었다. 그 엇박에 화음과 추임새를 넣어 준 것은 아들 내외였다. 필라델피아에서 사는 아들 내외가 마침 우리 동네 백화점에서 크리스마스 샤핑을 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은 아내는 아이들에게 Gaskin씨네 연말 파티에 함께 하자는 제안을 하였고, 이에 아이들이 흔쾌히 승낙하였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어제 일요일 저녁은 아내와 내가 서로 다른 장소에서 시간을 보내기로 약속했었다. 아내는 한국학교 연말 행사에, 나는 세월호를 기억하는 사람들의 모임에 참석키로 주초에 서로 간에 확인까지 마친 터였다.

분명 우리들의 기억 속에는 두 행사가 같은 날 같은 시간에 약 10분 거리에 떨어져 있는 서로 다른 장소에서 행해지는 것이어서 함께 갔다가 행사가 마칠 즈음 만나서 함께 오면 될 일이라고 생각했었다.

허나 문제는 역시 기억의 차이였다.

두 행사 장소는 모두 집에서 한시간 거리여서 행사 시작 한시간 십여 분 전에 집을 나서려는데 아내가 하는 말, ‘어! 우린 6시네!’

내가 가야 할 곳은 ‘5시’였다.

늘 그렇듯 우린 잠시 다투었고, 엇박자를 맞출 궁리를 하였던 바, 여느 때처럼 ‘아차!’하는 내 실언 탓에 모든 일들은 아내가 두드리는 박자대로 움직이었다.

5시, 반가운 얼굴들이 모인 세월호를 기억하는 사람들의 모임. 단편영화 <민우씨 오는 날>를 함께 보며, 끝내 이산 가족이란 이름으로 지난 해 세상 뜬 장모 생각에 눈물 찔끔 흘리다 먼저 일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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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시. 한국학교 연말 잔치. 공식명은 <재미한국학교 동북부지역 협의회 제 16회 교사 사은회>. 행사는 꽤 오랜 시간 이어졌다. 그 시간 동안 자칫 아내의 부속물이 될 뻔한 나를 구원해 준 이는 시인이었다.

시인 강남옥, 그녀의 시집 <토요일 한국학교>는 아내와 나 사이 엇박자와 <민우씨 오는 날>의 연희와 민우 사이 세월의 간격과, 장모와 처 할머니의 알 수 없는 만남과 세월호와 아직 풀리지 않은 숱한 한(恨)들 사이에 문(門)들을 내게 보여 주던 것이었다.

아무렴 때론 엇박 역시 삶의 흥을 돋는 추임새거늘.


 

JFK

  • 강남옥

우리 훗날 건너가
더 훗날 다시 만나자던 그
요르단 강인듯

70년대 명절 단대목에 가던 목욕탕인 듯

한국 소주 까며 끼리끼리
그리운 섬처럼 사는 보통 한국 사람들에게 JFK는
미간 넓은 재클린 케네디의 남편 이름 아니다

치약이나 손톱깍이 모조리 훑어 뺏는 무정한 손
가고픈 곳, 가고 싶지 않은 곳, 바람 많은 눈물의 징검다리
그 게이트 건너지 않고는 위독한 어머니께
직항으로 갈 수 없는 좁은 문이다

가슴에 넣어 온 작은 종 딸랑딸랑 흔들며
미국에게 이리 오너라~ 할 때
낯선 집 앞 우두커니 문 열리기 기다리는
막다른 골목이다

생을 뒤집어 단숨에 돌아가기엔
오래 서성거려야 하는
서성이다 발길 돌려 정글로 돌아가는
미국 동북부 보통 한국 사람들에겐 언제나
Just From Korea

첫 눈

무릇 믿음이란 제 마음가짐이다.

어제 첫 눈 치고는 제법 많은 눈이 내렸다. 때때로 자연은 사람의 생각과 계획한 일들을 바꾸어 놓고 한다. 누구에게라도 예외는 없다.

나이 탓인지 일년 전 일이나 오 십년 전 일이나 거의 같은 간격으로 다가오는 이즈음이라 그저 세월 빠르다는 소리로 퉁 치고 말지만, 참 빠르다. 세월이.

아들 내외가 결혼 일주년 기념이라고 여행을 다녀왔다고 하더니, 장모 떠나신 지도 벌써 일년이란다. 그저 모두 엊그제 같은 일이건만.

어제는 집에서 처부모님께서 다니시던 교회 목사님을 모시고 조촐히 장모 일주기 추모 예배를 드리려 했었다. 그러나 첫 눈은 우리 부부의 계획을 바꾸어 놓았다.

델라웨어 한인 침례교회 이홍 목사님과 교우들은 첫 눈의 뜻을 넉넉히 받아주었다. 공동체의 그 넉넉함 덕에 오늘 주일예배와 함께 장모 일주기 추도예배를 침례교회에서 드렸다. 장모는 아마 내 집보다는 침례교회가 좋았던가 보다. 올 첫 눈은 장모의 뜻일 거라는 내 생각은 하여 믿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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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어머니께서 이즈음 입에 달고 사시는 말, ‘그저 고맙다.’를 나도 읊조린 하루다.

가족이 함께 해야 할 일에 제 일들 제치고 늘 함께 해 주는 아들, 며느리 딸아이에 대한 감사도 크다.

예배 후 찾은 장모 쉬시는 곳엔 구름 사이 햇살이 함께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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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아이들과 함께 부모님을 찾았다. 몇 주 전에 이미 약속한 모임 이었지만 아이들은 몰랐다. ‘아직 정신 있을 때 남길 건 남기고, 줄건 주고 정리를 해야겠노라’는 부모님은 우리 형제들을 함께 보자고 하셨다. 그게 오늘인데 장모 덕에 우리 아이들도 함께 하였다.

여러 말씀 중에 내 귀에 남은 말은 아버지의 말씀이다. “우리 죽어도 절대 눈물 보이지 말아라. 우리 복되게 잘 살았다.”

그리고 내가 형제들에게 말하지는 않았지만, ‘저건 내꺼야!’ 눈독들인 물건은 아버지의 공병우 타자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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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렴 무릇 삶이란 제 믿음 두드리는 타자기 소리 듣는 일이거늘.

이 생각 하나 모두 올 첫 눈 덕이다.

일요일 단상 이제(斷想 二題)

  1. 추억

두어 달 사이 벌써 세번 째 장례식장을 찾는다.  고인들은 노년기에 이르러 이민을 오신 일 세대들로 세 분 모두 90 가까운 일기를 마친 분들이다. 1920년대 후반에 태어나셨던 분들이니 곤고한 시대를 겪어 온 이들이다.

오늘 찾아가는 분은 살아 생전 또래 어르신들 사이에서 ‘장군’으로 불리었던 이다. 부리부리한 눈에 사내다운 풍모 뿐만 아니라 그가 살아온 이력 때문에 붙여진 애칭이다. 한국전 참전 용사였던 그는 영관급 장교로 예편한 이후 경찰에 투신하였다. 1960-70년대 늘 뉴스의 중심이 되곤 하던 서울 주요지역들의 경찰서장을 두루 거치고 은퇴 이후 우리 마을에서 여생을 보내다 떠나셨다.

늘 과묵하고 만면에 웃음을 잃지 않았던 그와 잠시 시간을 함께 하였던 때가 있었다.

어느새 스무 해 전 일이다. 당시 알고 지내던 은퇴 기자 양반이 있었다. 지금이야 쓰레기 소리를 듣는 신문이 되었지만 60, 70년대만 하여도 한국을 대변하는 신문 소리를 듣던 곳에서 기자 노릇을 했던 분이다.

어찌어찌 이야기 끝에 ‘장군’과 ‘은퇴 기자’ 두 양반이 그 당시 경찰서장과 출입기자 사이로 연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두 양반이 서로 만나고 싶다고 하여 내가 자리를 주선한 적이 있었다.

가벼운 술자리에서 두 어른은 옛 시절을 추억했다.

나는 두 어른에겐 추억이 된 옛 시절 이야기들이었지만, 그 시절을 아픔으로 기억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에 익숙하였기에 두 어른과는 그리 가까이 지내지는 못했다.

장례식 가는 길, ‘장군’을 추억하며 역사를 돌아보는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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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해외연대 국가와 도시들)

  1. 기억

역사 또는 지난 일들은 누군가에겐 추억이 되기도 하지만 다른 누군가에겐 아픔 서린 한이 되기도 한다. 뿐이랴! 또 다른 누군가에겐 새 세상을 여는 기억이 되기도 한다.

내가 세월호 참사 소식에 귀 기울이기 시작한 때는 참사가 일어나고 한참이 지난 후였다. 물론 당시 실시간으로 전해오던 황망한 소식을 쉽게 잊을 수는 없었지만 딱히 내가 해야 할 일은 전무하다는 생각이었다.

그렇게 몇 달이 흐르고 나서야 이웃마을 필라델피아에 ‘세월호를 기억하는 사람들’의 모임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어찌 연이 닿아 모임에 이따금 얼굴 내밀어 내가 살아가는 까닭을 찾기도 한다.

다음은 지난 10월 말에 서울에서 열렸던 한 행사를 소개하는 어느 기사 내용이다.

“진실은 국경을 넘고 저항은 인간을 찾는다.” (수전 손택)

세계 34개 도시의 참가자로 이루어진 4.16해외연대 서울포럼이 닷새간의 일정을 마치고 지난달 30일 폐막됐다.

이번 행사는 세월호 참사 이후 온라인상에서 연대해 온 재외동포들이 상호 협력을 구체화, 공고화 하기 위하여 개최한 최초의 오프라인 모임이다. 이번 포럼에서는 4.16해외연대의 형성과 활동영역 확대 과정에 관한 브리핑(전희경, 애틀랜타 세사모)을 비롯, 재외동포사회 민주진영의 활동사(오복자, 독일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 세사모), 활동환경(김이제이, 뉴욕 뉴저지 세사모), 재외동포사회 풀뿌리 운동이 성찰할 의제(이은희, 프랑크푸르트 민주평화투명) 등의 발제가 있었다.

또한 활동주체 운영방식에 대한 사례 발표(박준영, 인도네시아 4.16자카르타촛불행동), 이미지로서의 세월(박정후, 세월호를 기억하는 몬트리올 사람들), 해외 활동 지역을 일목요연하게 파악할 수 있는 디지털 시스템(이호정, 필라델피아 세사모), 재외 선거 시스템 개선 방안(김수야, 4.16파리연대/이켈리, 세월호를 기억하는 토론토 사람들) 등 다양한 발제 및 발표를 통해 재외 국민과 재외 동포의 정치 참여 조건과 환경을 개선하는 방안을 논의했다.

26일, 안산 분향소와 기억교실 방문으로 ‘416 해외연대 서울포럼 2017’의 첫 문을 연 4.16해외연대는, 포럼 일정 외에도 광장 전시회, 촛불집회 1주년 대회 등 세월호와 관련한 다양한 활동에 참여하는 등 알찬 일정을 소화했다.

필라델피아에서 두 분이 이 행사에 참여하였다. 지난 주간 우리는 행사에 참여하고 돌아 온 두 사람에게서 행사 이야기를 전해 들을 수 있었다.

많은 이야기들 가운데 가슴에 깊게 새겨진 이야기 한마디다.

“포럼 현장과 광화문, 안산, 진도, 팽목 등지를 돌아보며 마주했던 유가족들의 치열함 앞에서 우리들이 할 수 있는 일들이란 너무 초라했어요. 안타까움과 미안함 뿐이었지요. 그런데 그런 제게 유가족 한 분이 이런 말을 했어요. ‘당신들이 기억해 주는 것 만으로도 우리에겐 큰 힘이 된다’고요”

나는 아주 작게는 체험을 통해, 대부분은 알량한 정보와 지식을 통해 멀게는 해방 이후에서 가깝게는 세월호 참사까지 누군가에게 한을 품고 살게 한 숱한 사건들을 기억한다. 단지 기억 뿐, 기억이 누군가의 한을 폴어 준 일은 없다.

세월호는 그 관점에서 확연히 다르다. 기억이 새 역사를 쓰고, 새 세상을 열고 있다. 일시적 한풀이 운동이 아니라 일상으로 녹아져 끊임없이 이어지는 운동이 되었다. 기억은 그 운동의 힘이다.

불편한 진실

델라웨어주 부지사를 지낸 S. B. Woo는 팔순 나이에도 불구하고 정정한 현역입니다. Woo씨는 현실정치에서 은퇴한 이후 오랜 기간 동안 아시안 아메리칸들의 정치력 신장을 위한 단체 80-20 Initiative를 이끌어 오고 있습니다. 그가 이즈음 정열을 쏟고 있는 분야는 아시안 아메리칸 다음세대들이 교육 현장에서 차별 받지 않는 세상을 만드는 일입니다.

그가 의장으로 있는 80-20 National Asian American Educational Foundation(80-20 전국 아시안 아메리칸 교육재단)은 아시안계 다음 세대들이 교육현장에서 받고있는 다양한 차별들에 대한 보고서들을 내고 있습니다.

여기 소개하는 글은 대학입학 과정에서 아시안 학생들에게 일어나고 있는 차별에 관한 글입니다.

(우리 다음 세대들이 이 땅에서 주인으로 살아가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이 글을 이웃과 함께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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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에

추수감사주일에 한 해를 돌아본다. 어느새 노년의 초입에 선 내게 한 해는 참 짧다. 그저 모든 일들이 어제 같다.

오늘은 우리 부부가 적을 둔 교회가 아닌 델라웨어 한인 침례교회에서 예배를 드렸다. 장인 장모가 적을 둔 교회이다. 지난 해 장모께서 떠나신 후, 나는 그 교회 목사님께 약속을 드렸다. 일년에 네 번 쯤은 침례교회에서 예배를 드리겠노라고.

우리 내외는 침례교회 목사님 내외분을 비롯하여 교우들에게 큰 사랑의 빚을 지고 산다. 참으로 작은 신앙공동체이지만 공동체의 제 멋과 맛이 도두라져 내놓을만한 교회이다.

좀 더 솔직하게 말하자면 돌아가신 장모에게나 홀로이신 장인에게 딸, 사위보다 사뭇 가깝고 정겨운 교회 식구들이다. 감사 주일에 느끼는 감사의 크기가 남다른 까닭이다.

구순(九旬)을 코 앞에 둔 장인은 오늘 하모니카를 부셨다.

노인의 하모니카 소리에 함께 화답해 준 공동체 식구들에게 그저 감사할 뿐이다.

예배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 우리 부부는 늪이 있는 공원에서 머물고 있는 가을의 마지막 풍경들과 함께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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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랬다. 어찌 성장하는 젊음만이 감사이랴! 살아있는 모든 것들이 모두 감사인 것을.

사랑에

겨울을 재촉하는 바람이 매서운 소리를 낸다. 부는 바람에 나무가 내어줄 잎새가 더는 없다. 창밖 풍경에 빠져있다가 메신저 울림 소리를 듣는다.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 인자함이 영원함이로다.- 시편 107편 한 구절이 담겨있는 추수감사절 카드를 보낸 이는 허춘중 목사님이다. 태국 치앙마이를 중심으로 인도차이나 선교 활동에 전념하고 있는 목사님인데, 젊어 한 때 추억을 공유하고 있는 분이다. 얼굴 본지는 얼추 40여년 저쪽 일이다.

추수감사주일 아침, 허목사의 전자카드가 내 정신을 깨운다.

맑은 정신으로 바울 선생의 소리에 귀를 연다.

피차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에게든지 아무 빚도 지지 말라 남을 사랑하는 자는 율법을 다 이루었느니라.(로마서 13 : 8, 개역개정)

남에게 해야 할 의무를 다하십시오. 그러나 아무리 해도 다할 수 없는 의무가 한 가지 있읍니다. 그것은 사랑의 의무입니다. 남을 사랑하는 사람은 이미 율법을 완성했읍니다.(공동번역)

Let love be your only debt! If you love others, you have done all that the Law demands.( The Contemporary English Version)

바울 선생은 매섭고 사나운 바람 뿐만 아니라 한점 미풍에도 내어줄 수 있는 잎새를 달고 살았던 나무였던 듯.

사랑의 빚을 세어보는 추수감사 주간을 보내야 할 터.

허목사에게 감사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