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日常)이 아닌 일에 대하여

이따금 엉뚱한 실수를 저지른 뒤 내 나이 탓을 하곤 하지만, 따져보면 그게 딱히 내 나이 탓만이 아니다.

어젯 일만해도 그렇다. 차 열쇠 두개를 모두 차안에 두곤 그만 문을 잠그고 말았었다. 이건 좀처럼 일어나기 힘든 상황이었다. 평소엔 차에서 내린 뒤 차 열쇠에 달린 자동 버튼으로 차문을 닫곤 하는데, 보조 열쇠까지 모두 차안에 두고는 차문에 달린 잠금 버튼을 누르고 차문을 닫아 버렸던 것이다.

세월호 사주기를 맞아 필라델피아에서 있었던 행사에 참여하려고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나서 벌어진 일이었다. 그랬다. 이건 내 나이 탓으로 벌어진 일이 아니었다. 단지 일상적이지 않은 일을 만나면 덤벙대는 오랜 내 습성 때문이었다.

세월호 행사 – 솔직히 내겐 일상적인 일이 아니다. 세월호만 하여도 그렇다. 나는 물론 이거니와 내 일가 친척 모두를 따져보아도 그 일과 연관된 사람은 하나도 없다. 더더군다나 나는 그 땅을 떠나 산 지도 한 세대의 세월이 지났다. 내 일상 속으로 스며들 그 어떤 이유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일상적이지 않은 일에 할 수만 있으면 함께 하려고 애쓰곤 한다. 그러다보면 허둥거리기 일쑤이다. 어제 주차장에서 벌어졌던 실수는 어쩜 당연히 일어 날 수 있는 일이었던 셈이다.

덕분에 나는 행사에 거의 함께 하지 못했다. 서비스 맨을 부르고 기다리느냐고 거의 모든 시간을 보냈기 때문이었다. 내 차문을 열었을 때 행사는 이미 끝 무렵이었다.

나중에 전해 들은 이야기 가운데 하나이다. 행사에 참여했던 유일한 벽안(碧眼)의 사내가 한 말이란다. “세월호 사건은 한국인들만이 기억하고 되새길 사건이 아니다. 안전한 사회를 갈망하는 우리 미국인들 뿐만 아니라 세계인들이 기려야 할 사건이다.”라고.

나는 믿는다. 역사의 발전 또는 문화의 발전이란 내 가족, 내 친족과 친구, 내 편을 벗어나 더 넓은 범위이 이웃들, 전혀 모르는 낯선 사람들, 나아가 내 편이 아닌 저 편의 누군가일지라도 아파하는 사람들과 함께 하려는 공감대를 확장 시키는 일이라는 것을.

세월호 참사를 잊지 않고 되새기며, 원인을 규명하고 한을 풀어 주는 일은 문명으로 나가는 길이며, 역사의 발전을 이루는 일인 동시에 내 믿음으로는 하나님의 나라로 다가가는 일이다. 또한 내 개인적으로는 야만을 벗는 일이다.

비록 내겐 일상적이지도 않고, 차 열쇠를 안에 두고 문을 잠그는 우를 범할지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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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날, 오후

뜰에 봄이 가득한 토요일 오후, 지붕을 범하려는 꽃나무 가지를 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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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한줄 노트.

<그저 바라만 보아라. 이것이 가장 힘든 일이다. 그러나 그저 보이는 게 찍힐 뿐이다. 카메라는 그저 파인더 안에 보이는 사물의 표면에 반사된 빛을 기록할 뿐이다. 그것이 전부다.> –   필립 퍼키스 (Philip Perkis)의 사진 강의 노트(Teaching Photography)에서

 

 

다시 부활에

유난히 더디 오는 봄입니다. 올핸 봄꽃 보다 먼저 부활절을 맞습니다. 부활 이야기의 주인공은 예수입니다. 예수와 부활과 봄이 어떤 연관이 있는지는 모릅니다. 다만  해마다 이맘때쯤이면 함께 생각해 보는 말들입니다.

하여 성서를 펴봅니다.

<예수께서 갈릴리에 오셔서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여 이르시되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하시더라.> – 마가복음 1장 14-15

<그가 살아나셨고 여기 계시지 아니하니라 보라 그를 두었던 곳이니라. 가서 그의 제자들과 베드로에게 이르기를 예수께서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시나니 전에 너희에게 말씀하신 대로 너희가 거기서 뵈오리라 하라 하는지라.> – 마가복음 16장 6 – 7

예수 이야기가 시작된 첫 장소가 갈릴리였고, 이야기를 맺는 장소 역시 갈릴리라고 마가는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가 물위를 걷고, 거친 풍랑을 잠재우고, 귀신을 내쫓고, 병든 자를 고치고, 죽은 자를 살리는 등의 숱한 가적과 치유의 역사를 만들어 냈던 곳이 바로 갈릴리였다고 기록자 마가는 전하고 있습니다.

예루살렘 성밖에서 십자가에 달려 못박혀 죽고, 무덤에 머물다 부활한 예수는 다시 갈릴리로 갔다고 기록한 것도 마가입니다.

갈릴리 – 그 땅에서 예수는 나병환자를 고치고, 중풍병자를 일어나 걷게 하고, 귀신들린 자의 정신을 바르게 하고, 눈먼 자를 보게 하고, 혈루증 걸린 여인을 치유했습니다. 그리고 그 때마다 예수는 병 고침을 받은 이들을 향해 ‘집으로 돌아가라’라고 명령했다고 마가는 이야기합니다.

이런 예수의 명령을 <가족(사회)에게로 돌아가라는 귀환명령>이라고 규정한 사람은 일본 신학자 아라이 사사구(荒井献, 그의 책 ‘예수의 행태’에서) 입니다.

예수 당시 병든 자들은 죄인이요, 소외된 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죄가 있어 죄인 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외로운 처지를 원하지 않았습니다. 죄 없는 죄인이요, 원치 않은 소외였기에 한맺힌 이들이었습니다. 예수의 귀환명령은 바로 한 맺힌 이들에게 한을 풀고 원래 있던 자리로 돌아가라는 명령이었습니다.

예수의 명령에 따라 본래 있던 자리로 돌아간 이들이 어떤 삶을 살았는지 성서는 귀환 이후 그들의 이야기를 전하지 않습니다. 전해지는 당시의 관습이나 체제로 미루어 귀환 이후 그들의 삶은 여전히 곤고 하였을 것입니다. 가족과 이웃들은 여전히 그들을 비정상적이었던 사람으로 취급 하였을 것입니다.

요한복음에 나오는 간음한 여인을 생각해 보면 쉽게 답이 나옵니다. 예수가 간음한 여인을 용서하고 가족으로 돌아가라고 명령했지만, 여인이 돌아간 곳에는 여전히 손에 돌멩이를 들고 아무 때나 그들이 맘만 먹으면 던질 수 있는 이들이 넘쳐 났을 것입니다.

바로 부활한 예수가 먼저 가 있는 곳, 갈릴리의 모습입니다. 그리고 2018년 오늘, 예수가 먼저 와 있는 곳 내가 발 딛고 사는 여기의 모습입니다.

소외된 이들, 한 맺힌 이들이 사람 본래의 모습으로 살기 위해 애쓰는 현장에서 오늘도 함께한다는 예수의 선언 – 바로 부활입니다.

이 봄에 필라델피아  Schuylkill 강변을 함께 걷고자 하는 이들의 모습에서 예수가 먼저 와 걷고 있던 갈릴리를 떠올려 보는 까닭 역시 바로 그 부활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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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에

만우절 이자 부활절.

뭔가 어울리지 않는 듯도 하고, 어쩜 참 잘 어울리는 조합 같기도 하다. 부활, 누군가에겐 치열한 믿음일 터이지만 또 다른 누군가에겐 한갓 농담일 뿐.

물론 내겐 삶의 마지막 의미이기도 하지만 그리 무거운 것은 아니다. 일 테면 어느 도(道)트인 신앙인의 절절한 기도문 가운데 탁하고 내 가슴을 치던 고백이 그렇다.

“아내에 대해 늘 사려 깊은 마음을 가지게 해 주시고, 혹 상처 입하는 말을 하게 될 때는 저의 혀를 묶어 주시옵소서.”

부활이란 그렇게 늘 치열하지만 농담처럼 가까운 것이 아닐까?

일터의 아침

만일 “당신의 취미는 무엇입니까?”라는 질문을 받을 때 무어라고 대답하시는지요? ‘내 취미가 뭐지?’라는 생각없이 바로 튀어 나오는 답이 있으신지요? 저 스스로에게 “내 취미가 뭐지?”라고 묻고는 한참을 생각해 보아도 떠오르는 대답이 없기에 물어보는 말이랍니다.

솔직히 저는 이렇다할 취미가 없답니다. Wikipedia는 취미를 이렇게 정의하고 있더군요. A hobby is a regular activity that is done for enjoyment, typically during one’s leisure time. 여가 시간에 즐기는 정기적인 활동 이라는 정의에 맞게 제가 하는 일이란 잠자는 일 밖에는 없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랍니다. 하루 중 대부분의 시간을 세탁소에서 보내고 집으로 돌아가면 저녁을 먹고 특별히 무언가를 할 여유없이 잠자리에 들곤 하기 때문입니다. 그나마 잠자리에서 잠 들기 전에 몇 줄씩이라도 읽곤 하는 책 읽기 정도가 취미라면 취미하고 할 정도랍니다.

올해초에 나도 취미 활동을 해보자는 생각으로 사진기를 하나 장만했답니다. 사진 찍기 초보자들을 위한 카메라라는 설명에 솔깃해서 구입한 카메라랍니다. 평생 해보지 않던 일이라 배울 것이 참 많았답니다.

사진을 찍기 위해 특별히 어딘가를 찾아 가지는 않는답니다. 그저 세탁소와 집 근처 제 일상적인 삶에서 볼 수 있는 것들을 카메라에 담아본답니다. 하늘, 나무, 새, 오리 등등을 찍고 있는데 평소에 눈에 뜨이지 않던 많은 것들이 새롭게 보인답니다. 하늘만 하여도 매일 매일이 다르고 일을 나올 때와 일을 마치고 돌아갈 때가 다릅니다. 물론 그걸 다 카메라에 담지를 못한답니다.

이즈음 카메라를 들고 다니며 제가 느낀 생각 하나랍니다. “내가 보고 느끼고 깨닫는 세상은 정말 작고 작은 세상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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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en you are asked, “What is your hobby?” what would be your answer? Do you have an answer which you can give instantly without asking yourself the same question? For me, nothing came to my mind, however hard I’d tried to find an answer after I’d asked the question to myself. That’s why I ask you the question.

Frankly, I’ve got no hobbies to speak of. Wikipedia defines “a hobby” this way: “A hobby is a regular activity that is done for enjoyment, typically during one’s leisure time.” I almost thought that my hobby must be sleeping, if I looked back at my activities through Wikipedia’s definition. That’s because I go to bed without doing anything special. I don’t feel any time and energy left for doing some other things after I spent most of my time at the cleaners, returned home and ate dinner. If I really had to say my hobby, I might have said that my hobby was reading, as I read a book just before going to bed every night, even if I read only a few paragraphs at a time.

Earlier this year, I bought a camera with the thought that I’d make photography be my hobby. I got it as I was tempted by the explanation that it was excellent for photography novices. As it was something that I had never actually done, there were lots of things that I had to learn.

I don’t go to any places especially to take pictures. I try to capture things which I can find around my house and cleaners and in my everyday life. While I’m taking pictures of the sky, trees, geese and so on, I can see many things that I don’t think I’ve seen usually. The sky looks different every day and the sky when I come to the cleaners in the morning doesn’t look the same when I leave the cleaners in the early evening. Of course, I cannot capture all of them with my camera.

While I was carrying a camera recently, one thought which came to my mind was: the world in which I see, feel and realize is really nothing but a really small world.

후배를 위하여

볼수록 멋지게 나이 들어가는 후배가 있다. 얼굴 본지는 제법 오래 되었다만, 참 좋은 세월을 살고 있다 보니 페북을 통해 그의 근황을 가까이 마주한다. 그가 이즈음 동유럽 국가들 여행을 하고 있단다. 그 곳 사람 사는 거리들을 흑백 사진으로 전하고 있는데 참 ‘그답다’는 생각이다.

나는 지금 그가 전하는 아우슈비츠 강제 수용소의 사진들을 보고있다. 사진에 그가 달아 놓은 댓글이다. “우리나라에도 있어야할 현장!!! 우리는 없어~~~ 분통이 터져.” 그 소리에 난 그저 중얼거린다. “친구야! 분통 터트릴 나이는 이미 지났어, 건강하자구. 그런 날 오겠지. 아무렴 와야지!”

어제 저녁 스물 남짓한 벗들과 함께 했었다. 필라델피아 세월호를 기억하는 사람들 모임이었다. 이명박 구속 등 점진적이나마 더불어 함께 살아가야만 하는 세상으로 나아가고 있는 모국을 자랑스러 하자며 모인 자리였다.

photo_2018-03-25_08-27-59그 중 몇몇은 어제 낮에 미국내 총기 규제를 외치며 전국적으로 일었던 ‘우리의 생명을 위한 행진(March for Our Lives)’ 필라델피아 시위에 참석하고 온 터였다. 그들로부터 행사 현장의 이야기들을 들으며, 안전과 시민 그리고 국가에 대한 생각들을 나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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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중 하나가 ‘연방 교통 안전 위원회National Transportation Safety Board (NTSB)’에 대해 말했다. 항공사고를 다룬 영화 Flight를 예로 들면서 미국내외의 각종 해상, 철도, 항공과 관련된 사고를 수사하여 그 원인을 파악하고 끝내 책임 소재를 철저히 규명하는 업무를 담당하는 기관에 대한 설명과 필요성을 강조하는 그의 이야기를 들으며 그의 직업이 그와 참 잘 어울린다는 생각을 했었다.

이 땅에 어디 지고지선의 국가 공동체가 있겠느냐만, 더불어 사는 사람살이를 위한 꿈으로 역사와 공동체는 바뀌어 왔다는 믿음은 참이다.

한국 출장길에서 막 돌아와 시차 적응이 안되어 피곤하다던 친구는 따끈한 한국소식을 전하며 다시 필라 사람이 되었다. 그가 한 상자 가득 채워 한국에서 들고 온 물건은 오는 4월 16일, 세월호 사주기를 맞아 네번 째 기억식으로 행진을 할 때 우리들이 깔맞춤으로 입을 셔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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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의 행사 준비와 오는 5월에 필라델피아를 방문하는 세월호 유가족 희망목공소 팀을 맞을 준비에 대한 의견들을 나누며, 4월에 입을 셔츠들을 미리 입고 인증 사진을 찍었다. 아직 메아리조차 듣지 못하는 소리들을 외치고 있는 스텔라데이지호 가족들에게 작은 힘이나마 보태자는 뜻이었다.

우리들 모두 너나없이 하루살이에 바쁜 삶이어서 아픈 이웃들을 기억하는 마음의 곳간은 정말 작디작다. 비록 그렇다 하여도 ‘공감’과 ‘연대’의 작은 몸짓이라도 쉬진 말아야 할 터.

이 아침, 후배의 분통을 조금만이라도 삭혀 줄 수 있다면….

 

춘분(春分)

춘분(春分)날 눈에 갇히다. 눈이 12인치 이상 내릴 것이라는 예보가 맞는가 보다. 예기치 않게 다가온 시간의 여유는 게으름을 낳는다.

내리는 눈발도 그저 정물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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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그렇듯 뉴스들은 복잡하고 시끄럽다.

이런 날은 동화(童話)가 적절하다.

“사람들이 너에게 정답이라고 내미는 곳을 그냥 믿어 버려서는 안 돼. 언제나 네 스스로 많은 것을 생각하고 다듬어야 해. 그리고 네 믿음, 네가 옳다고 여기는 것, 네가 취하는 태도에 반드시 책임을 져야 해.”
“하지만 그것은 정말 힘든 일이에요.”
“그래 당연히 힘들지. 하지만 그런 게 자유야.”

– 라이너 에를링어의 <거짓말을 하면 얼굴이 빨개진다>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