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날에

아버지날 아침에 부끄러움으로 쓰다. – 6. 17. 18


제겐 아들 하나, 딸 하나가 있습니다. 두 해 전에 결혼한 아들은 가까운 필라에 살고, 딸 아이는 뉴욕에서 직장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아이들과는 일 년에 몇차례 얼굴을 봅니다. 아이들이 학교를 다니던 때가 엊그제 같건만 어느새 그 때 일들이 가물가물 먼 옛 일이 되었습니다.

되돌아보면 아이들을 키우면서 제일 힘들었던 계절이 해마다 이 맘 때 였던 것 같습니다. 긴 여름방학이 시작되어 아이들이 대부분의 시간을 집에서 보내게 되지만, 우리 부부는 그 시간을 세탁소에서 보낼 수 밖에 없었기 때문입니다. 때론 아이들을 데리고 세탁소에 나와 함께 있곤 했었지만, 세탁소 특유의 여름 더위를 아이들과 함께 하는 것은 곤욕이었답니다.

제가 무지했던 탓도 있었고, 게을렀던 요인도 있었지만 제 형편에 맞게 아이들을 보낼 summer camp나 여름방학 프로그램을 찾아 아이들을 보내는 일도 참 쉽지 않았답니다.

특별히 아이들과 함께 여행을 다녔던 기억도 없거니와, 하다못해 영화관을 함께 찾았던 일도 거의 없었답니다. 지금 생각해보니 아이들에게 정말 미안하고 부끄러운 일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크게 엇나가지 않고 몸과 마음이 건강하게 잘 자라준 아이들이 참 고맙습니다.

Father’s Day 아침에 제 두 아이들이 생각나서 몇 자 적어 보았답니다. 부끄러움으로 말입니다.

한가지 덧붙일 말이 있답니다. 제 부끄러움을 감싸는 감사함에 대한 것입니다. 오늘, 저와 아이들이 각자의 삶의 자리에서 감사함으로 하루 하루를 즐기며 살고 있다는 사실 말입니다. 아버지로써, 아들로써, 딸로써 말이지요.

오늘, Father’s Day는 물론이거니와 한 주간 내내 감사와 기쁨이 넘치는 하루하루가 되시길 빕니다.

당신의 세탁소에서

그 겨울, 일요일들

− 로버트 헤이든

일요일에도 아버지는 일찍 일어나
그 검푸른 추위 속에 옷을 입고는
한 주 내내 모진 날씨에 일 하느라
갈라져 쑤시는 손으로 재속의 불을
다시 살려 놓았다.
아무도 고마워하지 않았음에도.

잠에서 깨어난 나는 몸속까지 스몄던 추위가
타닥타닥 쪼개지며 녹는 소리를 듣곤 했다
방들이 따뜻해지고 나서야 아버지는 나를 부르셨다.
나는 그 집 구석구석에 배인
분노를 경계하며 느릿느릿 옷을 입고는

추위를 몰아내고
내 외출용 구두까지 윤기나게 닦아 놓은 아버지한테
건성으로 말을 건네곤 했다
내가 그때 무엇을, 무엇을 알았을까
사랑이라는 엄숙하고 외로운 사명을.

6-17

I have a son and a daughter. My son, who got married two years ago, lives in Philadelphia and my daughter works and lives in New York City. I see them several times a year. Even though it seems like yesterday that they were students, those days became the dim and distant past before I knew it.

Looking back on the past, it seemed to be around this time of year every year when I felt it was most difficult to raise children. While they spent most of their time at home during the long summer break, my wife and I had to work at the cleaners for most of the day. From time to time, I brought them to the cleaners, but it was very difficult not just for me, but also for them, to endure the summer heat, especially at the cleaners.

Maybe I was a little ignorant and lazy, but it was not easy to find summer camps or summer programs for them which I could afford.

I have no special recollection of taking a trip with them and I hardly went to the movies with them. Now that I think about it, I feel so sorry.

Nevertheless, they have grown up well and are healthy in body and mind. I feel very grateful for that.

In Father’s Day morning, I wrote this with a shameful feeling, as my two children came to my mind.

I’d like to add one more thing. It is gratitude which enfolds my sense of shame. Today, my children and I live and enjoy our days in gratitude at our own places in life, as a father, a son and a daughter.

I wish that you’ll have a day with overflowing gratitude and joy, not just today, Father’s Day, but this week and beyond.

From your cleaners.

Those Winter Sundays

–          ROBERT HAYDEN

Sundays too my father got up early
and put his clothes on in the blueblack cold,
then with cracked hands that ached
from labor in the weekday weather made
banked fires blaze. No one ever thanked him.

I’d wake and hear the cold splintering, breaking.
When the rooms were warm, he’d call,
and slowly I would rise and dress,
fearing the chronic angers of that house,

Speaking indifferently to him,
who had driven out the cold
and polished my good shoes as well.
What did I know, what did I know
of love’s austere and lonely offices?

하늘과 신호등

주말이면 몸이 맘에게 말한다. ‘이젠 너를 좀 알라구!’

아내와 나는 외식으로 한 주간 노동의 피로를 달랜다. 어느새 쌓인 피로가 쉽게 가시진 않는 나이가 되었다.

반주(飯酒) 한 잔에 얼콰해진 나는 운전을 아내에게 맡기고 하늘을 찍는다.

하늘에게 지시하는 이 가당찮은 신호등의 무모함이라니!

초저녁 달이 웃고 있었다.

6. 15.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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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테

기념식이 끝나고 식사가 시작되었다. 어찌하다보니 운좋게도 오늘 행사의 주인공이신 장광선선생님 곁에 앉게 되었다. 투병 중이신 선생님의 최근 근황이 여러모로 많이 좋아지셨다는 말씀에 내 마음이 좋았다. 무엇보다 느리지만 넉넉히 잡수시는 모습이 참 좋았다.

이러 저런 이야기를 나누는데 선생님의 조카내외가 다가와 선생님께 작별인사를 드렸다. “갈 길 멀고 일도 있어 먼저 일어날께요. 이렇게 유명하신 분인 줄을 미처 몰랐어요. 오늘 저희들이 자랑스러워요.”

오늘, 가족들이 이렇게 유명하신지 미처 몰랐다는 장광선선생님의 평론집 출판 기념회에서 있었던 일이다.

멀리 한국에서, LA에서, 시카고에서, 노스 캐롤라이나에서, 뉴욕에서, 가까이는 필라와 뉴저지 델라웨어에서 한달음에 달려 온 이들이 백여명이었다.

선생님은 스스로 늘 “무식하면서도 용감하지 못한 사람”이라 하셨지만, 오늘 모인 이들은 모두 선생님의 유식과 용감함에 반한 이들이었다.

그랬다. 평생 조국의 민주화와 통일 그리고 진정 사람다운 사람 생각으로 그려낸 선생님의 나이테에 반한 이들이었다.

아래는 선생님의 글 <나이테>이다.


 나이테

나이테가 한 줄 더 느는구려.

나이테는 그저 늘어나는 것이 아닙니다.

나이테는 그 해에 가물었는지 비가 많이 왔는지 바람이 어느 계절에 심했는지 하는 기후까지를 그 안에 포함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수백년 혹은 천년을 넘게 자란 나무의 나이테는 기록이 없는 옛날의 기후풍토를 연구하는 중요한 자료가 된다고 들은 기억이 납니다.

벌레가 파먹었던지 들짐승이 괴롭혔든지 몹쓸 병에 죽다 살아남았던지 아니면 어느 무지한 사람의 도끼가 찍었던지 그런 아픔의 상처도 고스라니 간직합니다.

아무리 혹독한 시련도 지난 후에 남기는 흔적은 아름다운 무늬가 되는 것이 나이테지요.

나무의 나이테가 단순하게 외부환경을 기록하는 것과는 달리 사람의 나이테(年輪)는 의식활동을 기록합니다.

그래서 사람의 나이테(年輪)는 경륜(徑輪)이라고도 하는 것 같습니다.

나무의 나이테를 들여다보면서 그 해에 날씨가 어떠했는지를 가늠하듯이 사람의 나이테를 들여다보면서는 그 사람이 무슨 생각을 하며 어떻게 살았는지를 가늠하겠지요.

아픔이었거나 기쁨이었거나 또 하나의 나이테를 두른 님이여, 훗날 그것이 아름다운 무늬가 될 것임을 잊지 마세요.

오늘을 위한 기도

“이 자리에서 장사 몇 년이나 했니?” 제 가게에 처음 오는 손님들이 종종 제게 던지는 질문입니다. 제가 거의 30년이 되어간다고 답을 하면 깜짝 놀라며 “진짜니? 내가 Newark에 산지도 오래 되었고, 이 샤핑 센터를 한 두 번 와 본 것도 아닌데 너희 가게가 여기 있는 줄은 오늘 처음 알았구나.”라고 말하는 분들을 볼 수 있답니다.

이런 경험은 딱히 그 손님들 뿐만 아니라, 제게도 일어나곤 한답니다. 제가 매일 오가는 길이지만 새로 개업한 곳이 아닌데도 처음 본 듯한 상점들이 이따금 눈에 띄곤 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이런 경험들이 비단 상점에 국한되어 일어나는 일은 아닙니다. 매일 똑같이 오고 가는 길에서 문득 바라 본 하늘이 마치 처음 본 듯한 느낌이 들 때도 있고요, 어느새 푸른 색으로 풍성한 몸이 되어버린 나무들이 낯설 때도 있답니다.

이즈음 사진 찍는 일에 재미를 붙이다 보니, 꼭 사진을 찍지 않더라도 늘 보던 하늘이며, 나무며, 꽃들과 풀 한 포기까지 새롭게 보일 때가 많답니다.

눈에 보이는 것들만이 아니라 시간에 대해서는 더욱 무심하게 그냥 스쳐 지나가게 버려 두는 일이 제겐 많은 듯합니다. 매일 맞이하는 똑 같은 ‘오늘’을 그저 특별하다거나 소중하지 않게 흘려 보내는 일이 많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어느새 세상이 푸르러 가는 유월입니다.

무심코 스쳐 지나가 버린 ‘오늘’ 이었던 어제들에 대한 감사와, 세탁소의 소음 대신에 아침 새소리에 귀를 기울일 수 있는 이 일요일 아침 ‘오늘’에 대한 행복과 “이 자리에서 장사 몇 년이나 했니?”라고 묻는 손님들을 만나는 즐거움이 기다릴 ‘오늘’이 될 내일의 기쁨을 상상해 보는 유월의 첫 일요일 아침이랍니다.

이 아침에 제가 누리는 감사와 행복과 기쁨과 즐거움이 당신에게 끊이지 않는 유월이 되시길 빕니다.

당신의 세탁소에서


“How long have you been doing business here?” It’s a question which new customers so often tossed to me. When I answered, “Close to 30 years,” some of them were really surprised and said, “I’ve lived in Newark for a long time and have visited this shopping center quite a few times. But, I didn’t know that you are here until today.”

This kind of experience happens not just to them, but also to me. For example, though I have driven the same roads every day, I often find stores which I haven’t noticed before, though they are not newly-opened.

It’s not just those stores which I feel that I’ve never seen before. Sometimes, the sky to which I happened to look up on the same road which I’d driven every day looked new as if I had never seen it before. Sometimes, trees which became thick with green leaves looked unfamiliar.

Especially, as I get interested in taking pictures, things that I see every day, such as the sky, trees, flowers and a blade of grass, so often look new and fresh, even at the moments when I’m not trying to take picture of them.

When I was leaving the cleaners after I cleaned the store on Sunday morning  a couple of weeks ago, I happened to see families of geese. While I was watching them, a thought, which I’ve never held before, crossed my mind. It was that all living things are beautiful. These are the pictures which I took on that day. They are different families: the first one with two baby geese, the second with four, and the third with six.

It seems that I’ve passed by so many visible things without noticing them. Even more, I feel that I let a day slide by thoughtlessly so many times. I think that I haven’t regarded “today,” which I meet every day, as special and precious and have let it flash by so often.

Before we know it, it is June in which the world becomes green.

It is the first Sunday morning of June on which I can feel gratitude about yesterday, which was ‘today’ yesterday and slipped by casually, and listen to birds’ singing instead of the noise of the cleaners. I also feel the happiness about ‘today’ and imagine the joy of meeting customers who may ask me the question, “How long have you been doing business here?” tomorrow which will then be ‘today’.

I wish that the gratitude, happiness, and joy which I enjoy this morning will also be with you ceaselessly in June and beyond.

From Your cleaners.

Birthday girl

While I was taking advantage of the long weekend by taking a nap, I was surprised and woke up by my wife’s calling me. Suddenly, I realized that summer had already come before I knew 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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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der her pressure, I’m leaving home for my old friend, Kathy’s, birthday party. The following are the lines printed on the invitation which I got from Kathy’s son, Christopher a few days ago:

“we have decided to celebrate this 3-quarters of a century milestone. If she continues to roller-skate two or three times a week, we expect to be doing this again in 25 years. Just letting you know, in case you cannot make this 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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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thy, who turns 75 this year, always looks like a teenage girl, always cheerful and a face beaming with a smile, whether 25 years ago or now. While she, my wife and I all know very well the wrinkles of life in our faces which have been plowed by the past 25 years, she is really a teenage girl even now. My wife, who chats with Kathy about dancing, singing and life for a while whenever she sees her, seems about the same 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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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day, Kathy’s two sons and daughters-in-law were so excited, which looked very good to me. It was a part of grace which Chris said before dinner: “Today Mom turned 75 and I wish that we’ll have the same party 75 years la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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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 there were Kathy’s real friends, young ladies and in their mid- or late-seventies and Korean War veterans in their late eighties. What a young man in his mid-sixties who was listening to their chatters could and should do was only taking pictures for the birthday gi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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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rthday girl

연휴를 맞아 늘어지게 낮잠을 자다 아내가 부르는 소리에 놀라 일어나 보니 어느새 여름이 성큼 다가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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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의 채근을 받으며 집을 나서 오랜 친구 Kathy의 생일 파티장으로 향한다. 얼마 전 Kathy의 아들 Christopher에게 받은 초대장에 써 있는 글귀다. “3/4세기를 살아 온 우리 어머니 Kathy를 위한 파티에 초대합니다. 우리 어머니가 지금처럼 매 주 두 세 차례 롤러 스케이트를 앞으로 25년을 더 타시면 그 땐 한 세기를 기념하는 생일 잔치를 열 것입니다만, 혹시 그 때 당신이 오지 못할 것을 대비해 미리 알려드리오니 이번 잔치에 꼭 참석해 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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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해 일흔 다섯인 Kathy는 25년 전이나 지금이나 그냥 십대 소녀 같다. 우리가 알고 지낸 지난 25년 사이에 그녀가 겪어 온 세월이나, 우리 부부가 헤쳐 온 시간들에 쌓여 온 삶의 주름들을 서로가 익히 알고 있지만 그녀는 여전히 소녀다. 그녀를 만나면 춤과 노래와 삶에 대한 수다가 이어지는 아내 역시 그녀 또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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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Kathy의 두 아들과 며느리는 한껏 들떳는데, 그게 내 눈엔 참 좋아 보였다. Chris가 드린 식사 기도이다. “우리 어머니가 올해 75인데 75해 뒤에 오늘 같은 자리를 만들 수 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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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Kathy의 진짜 친구들인 70대 중 후반의 누나들과 80대 후반의 한국전 참전 용사 아저씨까지, 그들의 수다를 듣는 60대 중반의 청년은 그냥 사진이나 찍을 뿐. Birthday girl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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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共感)에

한 주간 한반도에 얽힌 뉴스들이 넘쳐났고, 오늘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사람마다 어떤 정보를 소비하느냐에 따라, 또는 이미 굳어진 생각들에 따라 서로 다른 견해들을 나타냅니다. 때론 그 다름의 간격이 너무 멀고 깊어 공존, 공감의 영역에서 만나는 일이란 결코 일어나지 못할 듯 합니다.

그 간격이란 한반도 안에 사는 이들에게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이 땅 미국안에서도 매양 일어나는 일입니다.

일요일 아침에 이런 저런 생각으로 이 땅에서 함께 사는 이웃들에게 보내 본 편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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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아주 재미있게 읽은 책이 하나 있답니다. ‘최근에’, ‘재미있게’ 라고 했지만 사실은 책을 다 읽기 까지는 거의 반년이 걸렸답니다. 어려운 글은 아니었지만 1200 페이지에 달하는 두께 때문에 틈나는대로 조금씩 읽다보니 오랫동안 붙들고 있었던 것이랍니다.

심리학자인 Steven Pinker가 쓴 <The Better Angels of Our Nature: Why Violence Has Declined>이라는 책입니다. 책 제목에 그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들이 이미 다 들어가 있답니다. 한국어로도 똑같은 뜻인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라고 번역되었답니다.

이 책에서 Steven Pinker는 우리가 흔히 듣는 말들인 ‘역사상 가장 끔찍한 오늘’, ‘날로 증가하는 폭력’이라는 말들은 사실이 아니라고 주장합니다. 그는 기원전 8000년부터 오늘에 이르기 까지 인류 역사에서 일어났던 폭력의 역사를 되짚어 보면서, 우리가 살고 있는 오늘이 과거 어느 때보다 덜 잔인하고 덜 폭력적이며 더 평화로운 시대라고 주장을 한답니다.

그의 말입니다.

<우리가 확신할 수 있는 것은 지금까지 많은 종류의 폭력이 줄었다는 점, 그리고 우리가 그 이유를 이해하려고 노력할 수 있다는 점이다. 폭력의 감소는 사회, 문화, 물질 조건들의 결과이다. 이 조건들이 지속된다면 폭력이 계속 낮게 유지되거나 심지어 더 줄 것이고, 조건들이 지속되지 않는다면 그렇지 않을 것이다.>

폭력을 줄이는 우선적인 조건들로 그가 내세운 것이 바로 우리들의 본성에 있는 선한 천사들인데 그 본성이 점점 확대되어 간다고 합니다.

Steven Pinker는 우리들 마음 속에 선한 본성들을 감정이입, 협력, 자기 통제라고 말합니다.

저는 그 가운데 감정이입 Empathy라는 말에 특별히 관심을 가졌답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이 Empathy 라는 말을 쓴 게 고작 100년 밖에 안되었다는 말에 많이 놀랐답니다.  Steven Pinker에 따르면 심리학자 Edward Titchener라는 이가 1909년 처음 쓴 말이라고 합니다.

감정이입이란 공감 곧 함께 느끼고, 공명 곧 함께 우는 것입니다. 같은 톤으로 같은 소리를 내는 것이지요.

Memorial Day weekend입니다. 누군가를 기억한다는 것은 그가 느꼈던 것을 함께 느끼는 일이요, 그가 울고 웃었던 일에 함께 하는 것이며, 그와 같은 톤으로 같은 소리를 내어보는 일이 아닐까 합니다.

이제 본격적으로 여름도 시작되지요.

함께 하는 가족에서 시작하여 가까운 이웃들과 벗들과 공감하고 공명하는 풍요롭고 평화로운 여름이 되시길 빕니다.

당신의 세탁소에서


 

There is a book which I really enjoyed reading recently. Though I said “enjoy reading” and “recently,” in fact, it took almost six months for me to finish it. That was not because it was so difficult to understand, rather because it was so thick, about 1,200 pages. As I read some of it whenever I had time, I held it for such a long time.

It is “The Better Angels of Our Nature: Why Violence Has Declined” written by a psychologist, Steven Pinker. The title itself implies what I’d like tell you. Its Korean translation has the title,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 which is the literal translation of “The Better Angels of Our Nature.”

In this book, Steven Pinker argues that words such as “historically the most horrible present” and “ever increasing violence,” which we hear very frequently, are not true. Having examined the history of violence from 8,000 BC to the present, he argues that the present is an era more peaceful, less horrible, and less violent than any other time in human history.

He contends:

<It is that substantial reductions in violence have taken place, and it is important to understand them. Declines in violence are caused by political, economic, and ideological conditions that take hold in particular cultures at particular times. If the conditions reverse, violence could go right back up.>

The primary conditions which he contends will reduce violence are none other than the “better angels of our nature,” which are expanding increasingly, according to him.

Steven Pinker argues that the “better angels of our nature” are empathy, cooperation, and self-control.

Among them, empathy is of particular interest to me. By the way, I was surprised by the fact that the usage of the word, empathy, began just about 100 years ago. According to Pinker, the psychologist Edward Titchener used the word first in 1909.

Empathy means the ability to understand and share the feelings of another. In other words, it means to feel together, to cry together and to speak in the same tone.

It is Memorial Day weekend. What to remember someone means may be to feel what the person has felt, to be together with him/her at his/her laughter and weeping, and to have the same voice in the same tone, I think.

Now summer is starting to set in.

I wish that you will have a fruitful and peaceful summer in which you feel and cry together with your family, friends, and neighbors.

From your cleaners.

들어라, 양키!

의사의 권유로 한 동안 멀리했던 hard liquor 한 잔. 역사란 단 한 발자국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때론 뒷걸음질 하는 때도 있다는 것을 모르는 바가 아니다만, 허전함을 순간 채우는데 독주만한 것이 있으랴!

그래, 70년이다. 그리고 너무나 익은 반복이다. 다만 ‘이번 만은’ 하는 바램은 절실했는데, 역시 요행수에 기댄 것일까?

1945년 이래 약소국들의 모든 외침은 <들어라 양키, Listen, Yankee!> 아니였을까?

<우리는 당신들을 정직하게 대하고 싶다. 그러므로 우리는 말한다. ‘우리는 당신들이 우리를 조금도 염려(근심)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는 것을. 이 말은 당신들이 우리들을 돌봐 주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말하고 싶은 것은 당신들 미국 인민의 이름으로 양키들이 한 짓을, 그리고 그들이 할 일들을 조금도 하지 않았던 것에 대해서, 당신들이 걱정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들이 미국의 민주주의를 의심하게 만드는 것이 바로 이 점이다. 당신들도 이해 할 수 있을 것이다. 안 그런가?>

<사람은 누구나 꿈을 가지고 있다. 허나 그런 꿈은 많은 인민들의 일상생활과는 하등 상관없는 것이다. – 중략 – 그러나 양키들아! 우리가 너무 많은 일을 단번에 이룩하려 하고 가끔 유치한 행동도 하고 무서운 실수도 저지르며 흥분하는 경우가 있다해도 우리가 비상한 노력의 과정 속에 있다는 점에 비추어 이해해 달라. 이 모든 점은 우리의 꿈과 우리의 현실을 처음으로 결합시켜 보려는 노력의 일부라 생각하고 이해해 주기를 바란다.>

두어 잔에 취한다. 그렇다 한들 꿈은 버릴 일이 아니다. 아무렴 70년 이어져온 절절한 이들의 꿈인 것을.

시인의 마음

느긋한 안식일 오후. 이 책 저 책 남의 소리에 귀 기울이다가 김남주에게 홀린다. 아마 어제 필라에서 있었던 광주 항쟁 38주년 행사장을 찾았던 탓일게다.

김남주의 시집 <나의 칼 나의 피>는 솔직히 내겐 좀 버겁다. 더더구나 이 나이의 내겐.

그러다 내가 크게 고개 끄덕이는 조선의 마음을 노래한 시 한 편.

<옛 마을을 지나며>

♦ 김남주

찬서리

나무 끝을 날으는 까치를 위해

홍시 하나 남겨 둘 줄 아는

조선의 마음이여

2018년 5월 남북미에 얽힌 뉴스들 위에 겹친 김남주의 시 한편. 부끄러움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