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에

내겐  매우 특별한 저녁이었다.  Delaware Art Museum에서 열린 한국 국악 그룹 Black String 연주회는 분명 내 분에 넘치는 호사였다.

연주회 시작을 알리는 이의 일성은 좀 과하다 싶었다. ‘델라웨어에서 한국의 전통 소리를 듣게 되었습니다.’라는 그의 말이 내겐  ‘이런 시골 델라웨어에서 오랜 전통을 지닌 동양의 소리, 한국의 소리를 듣게 되었습니다.’로 들렸기 때문이었다. 조금 거슬렸던 것은 Korea가 아닌 South Korea라는 지칭이었지만 이내 수긍하였다. 현실이었으므로.

Delaware Art Museum의 메인 홀 150여 좌석을 메운 청중들은 연주회 시작과 동시에 소리에 빠져 들었다.

신기한 것은 다른 청중들이 아니라 내게 일어난 반응이었다. 나는 음악에 대하여는 그야말로 문외한이다. 오늘 같은 행사(내겐 그저 행사일 뿐이었다)는 그저 아내의 채근으로 따라 나섰을 뿐이다. 그런 내가 연주와 함께 내 속의 나와 함께 고개를 까닥이고, 어깨를 들썩이고 발장단을 맞추곤 했던 것이다.

매료!

난 매료라는 말의 진정한 뜻을 오늘 밤 느낌으로 깨달았다. 마지막 연주가 끝나고 청중들의 반응을 보고서였다.

우리 안에 내제된 힘이 비단 소리 뿐은 아닐 듯.

Korea를 다시 생각해 보는 밤에.DSC04709 DSC04710 DSC04715 DSC04718 DSC04720 DSC04760

밥솥

아내가 아마존에서 구입한 전기밥솥은 우리 부부에게 그야말로 안성맞춤이다. 생김새도 앙증맞아 마치 도시락같이 생긴 녀석은 우리 부부 한 끼 식사는 물론이거니와 넉넉한 숭늉도 제공한다. 가격은 단돈 23달러.

이제 겨우 평소 모습에 가까워 지신 장인은 여기 사는 사람들은 다 좋은 사람들 뿐이란다. 장인이 누워 계신 곳은 자그마치 Genesis Healthcare이다. 이름하여 태초의 낙원을 누리는 곳이다. 비록 낮과 밤, 한국과 미국을 헷갈려 하시곤 하시지만, 며칠 전에 비해 많이 나아지신 장인은 요양원에서 일하는 이들이 모두 다 착하고 좋은 사람들이란다.

장인이 병원에서 나와 처음 계시던 곳도 내 집과 가까운 같은 회사 Genesis 요양원이었다. 우리 부부가 일터로 오가는 길목에 있거니와 집에서 채 오분도 걸리지 않는 가까운 곳이어서 선택한 곳이었다. 시설이나 분위기는 그야말로 호텔급이라고 말해도 과하지 않을 만큼 만족했었다. 환자들을 비롯한 시설의 주요 종사자들은 거의 Caucasian, 왈 백인들이었다. 시설 종사자들은 매우 친절했다. 그러나 그 친절함은 매우 사무적이었고 그들이 돌아설 땐 웬지 싸한 느낌이 들곤 했다.

느낌처럼 장인은 그 곳에서 며칠 계시다가 다시 응급환자가 되어 병원으로 되돌아 갔었다.

정신은 여전히 오락가락하셨지만 치료 목적은 달성되었다는 의사 소견에 따라 또 다시 요양원으로 옮겨야 하는 상황에서 우리 부부는 이미 계셨던,  집에서 가까운 Genesis Healthcare로 옮겨 달라고 요청하였다. 그러나 그 곳은 여유 공간이 없었다.

만 하루를 기다린 후, 같은 회사지만 다운 타운에 있는 요양원으로 자리를 옮기셨다. 시설은 전에 있던 곳과 거의 엇비슷했으나, 환자들과 주요 종사자들은 거의 아프리칸 아메리칸 곧 흑인들 일색이었다. 그 곳은 뭔가 어수선하고 시끄러운 분위기였는데 그게 내겐 참 익숙했다.

그리고 오늘, 비교적 말짱하신 장인은 ‘이 곳에 있는 사람들은 다 착하고 좋은 사람들 뿐’이란다.

10인용 압력 보온 밥솥이 우리 부부에게 결코 사치일 수는 없다. 다만 단돈 23달러짜리 2인용 밥솥은 오늘 우리 부부에겐 그저 참 적합할 뿐이다.

장인에겐 지금의 Genesis Healthcare가 천국이다.  그가 그렇게 느낄 수만 있다면….

*** 장인이 병원에 계실 때 일이다. 얼굴 까만 젊은 간호원에게 아내가 말했었다. ‘내 며늘아이도 아프리칸 어메리칸이란다.’ 예쁘장한 간호원은 웃으며 아내에게 답했었다. ‘난 아프리칸 아프리칸이예요.’ 그녀가 환한 웃음을 안고 돌아선 후 우리 부부가 허하게 웃으며 한 말, ‘우리가 코리안 코리안’이라고 한 적이 있었나?’

눈을 치우며

‘이젠 이 집을 떠나야지…’ 눈 치우는 일이 온전히 내 몫인 된 어느 해 겨울부턴가 혼자 중얼거리는 말이다. 다행히 호들갑스런 일기예보와 달리 운동삼아 눈 치우기에 딱 적합할 만큼 내렸다. 집 앞에 쌓인 눈을 치우고 동네 한바퀴를 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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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보다 먼저 이사를 하게 된 곳은 내 가게다. 지난 주에 새 가게 꾸미는 일을 시작하였다. 가게 간판을 주문하면서 많은 생각들이 오갔다.DSC04677정말 막무가내로 시작했던 세탁소였다. 세탁소 일에 대한 경험이라곤 전혀 없었을 뿐만 아니라 세탁소 안에 들어가 구경해 본 적도 없이 시작한 일이었다. 아무리 세탁소 간판만 내걸면 먹고 산다던 호시절 옛일이어도 무모한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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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서른 해가 흘렀다. 그 동안 다섯 군데 세탁소를 운영하기도 했지만, 30년 꾸준히 해 온 곳은 지금의 세탁소 한 곳이다. 한 때 우후 죽순으로 생겨났던 주변 세탁소들이 하나 둘 문을 닫더니 이즈음엔 30년 전으로 돌아간 형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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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탁소, 이젠 일에서 손 놓을 때까지 떠날 수 없는 내 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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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은 나이에 새로 가게를 꾸미면서 혼자 중얼거리는 기도 세 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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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님들이 드나들며 기분 좋은 세탁소로 꾸미기, 우리 부부 일터와 쉼터가 공존할 수 있게 꾸미기, 언제든 손 놓을 때 누군가에게 자신있게 넘길 수 있는 세탁소로 꾸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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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내 욕심이 드러나는 기도임에 틀림없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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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하리, ‘이젠 이 집을 떠나야지…’ 하는 생각보다 어쩌다 한 번 묵어가는 아이들 방을 치울 수는 없다는 생각이 더 큰, 내 본래 모습인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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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라세사모

월요일에 만나는 손님들은 종종 ‘주말 잘 지냈니?’, ‘주말에 뭐했니?’라고 묻는다. 이런 물음에 이즈음 내 대답은 ‘응,걸었어!’이다. 이따금 내 몸보다 족히 두 배가 넘는 이들은 말한다. ‘아니 너처럼 삐쩍 마른 애가 왜 걸어?’ 이럴 때면 나는 그저 빙그레 웃는다. 운동이 아니라 걸으며 나를 만나는 즐거움을 딱히 설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

산책의 즐거움을 깨달은 것은 최근 일이다. 내 삶이 산책길 같았으면…하는 소망을 품은 것도 물론 근자에 이르러서 이다.

산책길 같은 내 삶에서 만난 이들이 있다. 필라 세사모 벗들이다. 세월호 참사 이후에 만난 이들이니 채 오 년이 안되었다.  더러는 그 이전부터 연을 이어온 이들도 있지만  ‘세월호’라는 이름으로 다시 만난 그들은 그 이전과 달랐다.

어제, 그 벗들과  새해 맞이를 함께 했다. 족히 다섯 시간에 걸친 이야기 마당이었는데 내게는 모처럼 큰 공부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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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사 전체 진행을 맡은 권오달님은 매사 진중하지만 언제나 여유로움을 풍긴다. 어제 행사를 진행하는 그의 머리 속엔 이미 필라세사모의 상반기 계획들이 자리잡았을 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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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칭 ‘그저 평범한 나같은 아줌마들이…’라는 말을 즐겨 사용하는 이현옥님은 필라세사모에서 그 ‘평범한 아줌마의 위력’을 보이는 이다. 그가 정리해 낸 필라세사모가 해 온 일들을 보고 들으며 든 생각 하나. ‘참 꾸준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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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칭 ‘공돌이’인 김태형님은 엉터리 문과 출신인 내게 부끄러움을 안기곤 한다. 다만 마이크를 잡으면 시간 조절이 잘 안되는 흠이 있긴 한데, 어제도 마찬가지였다. 그래도 참 좋았다. 지난 이년 여 짧은 시간동안 벌어졌던 그 엄청난 일들을 쉽게 잊고만 나를 깨우쳤기 때문이다. 한반도를 에워 싼 운기에 대한 설명은 그저 덤이었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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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운으로 말하자면 모임 장소로 흔쾌히 집을 내준 안주인의 장구소리에서 뿜어 나오는 소리와 가락이 으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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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백년을 돌아보며 한반도의 새해를 바라보는 이선아님이 던진 화두는 민중이었다. 나는 그의 말을  3.1 운동에서 오늘에 이르기까지 한반도 공동체가 걸어 온 진보적 걸음의 주인이자 추동력은 바로 밑바닥 민중이다라고 받았다. 그런 뜻으로 그가 던진 그 시대의 만세꾼으로서의 필라세사모를 잠시 생각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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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동작, 손동작에서 머리 회전까지 느려지기 시작한 내게, 이른바 미디어의 변화는 따라잡을 수 없는 세태 변화이다. 비단 나이 탓으로 느려진 나같은 세대 뿐만 아니라 제 고집만으로 좁은 세상에 사는 이들에게 던진 이호정님의 ‘뉴스를 읽는 혜안 찾기’에 대한 이야기는 오늘을 사는 이들에게 모두 유효하다. 어쩜 우리들의 삶이란 귀 쫑긋 세워 참과 거짓 사이 선택을 이어가는 일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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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유일한 초대손님 정성호님은 ‘촛불시위가 한국 민주주의에 어떤 영향을 미첬나?’하는 이야기를 우리에게 던졌다. 그의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조금 삐딱한 마음이 되어 기도를 했다. 이 땅에서 공부하거나 잠시 머무르다 다시 한반도로 돌아가는 이른바 지식인들이 자신의 진정한 삶의 자리에서 함께하는 공동체를 위해 일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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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공부방은 시종 열공 분위기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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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진 그룹 토의는 진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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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 시간 손님들을 위한 밥상 준비에 홀로 애쓰는 안주인에게서 그 순간의 민(民)을 보다. 집 주인 장석근님은 평소 쉽게 드러나지 않는 필라세사모의 든든한 뒷배다.

DSC04674DSC04593걷지 않고 느낀 어제 산책의 즐거움이라니!

어제 그 자리에 반드시 있어야 할 사람 이종국님. 긴급한 가정사로 짧은 일정으로 한국에 나간 그가 전해 온 사진 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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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참여, 연대에 앞장 선 오늘의 만세꾼!

새해에도

보름만에 맑은 정신이 드신 장인을 보다. 그저 무덤덤하게 던지시는 ‘왔어!’라는 인사말에서 평소의 장인을 만나다.

두루 사람들에게 살갑지 못한 내 성격 탓도 있겠지만 장인과 나는 그리 긴 말을 나누고 살지 않았다. 덤덤히 고만한 간격과 거리에서 서로 있는 것만으로 안심하고 살았다.

그런 장인이 보름 전 수술을 받은 후 정신이 다소 오락가락했다. 때론 평소처럼 무덤덤하게 나를 맞기도 했지만 내게 낯설게 긴 말을 건네거나 터무니없이 살갑게 다가 오시기도 했다.

병원에서 nursing home으로 옮겨서는 그 오락가락하는 기미가 조금 더 심해져 아내와 나는 모처럼 진지한 부부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한해 마지막 날에 장인의 오줌을 받아내고, 새해 첫 날 간호원을 도와 장인의 기저귀를 갈며 새삼 사람 사이 관계에 대한 생각에 빠지기도 했다.

새해 첫 날 오후에 nursing home에서 다시 긴급환자가 되어 병원으로 옮기셨던 장인이 만 이틀만에 평소의 그로 돌아왔다.

음식 만드는 일에 재미를 붙인 후 새해 첫 날이면 내 손으로 만두 빚어 부모님과 처부모님과 함께 했던 시간들도 있었다. 그러다 한 분 먼저 가시고 한 분은 병원에 누워 계신 올 정월 초하루, 만두 빚을 여유는 없었다.

그러나 아직 맑은 정신으로 무덤덤하게 나를 바라 보시는 내 부모님들을 위해 정월 초하루 아침 아내는 동네 호텔 브런치 모임 자리를 마련했었다. 노인들은 몹시 좋아하셨다.

부모님을 모셔다 드린 후,  장인을 다시 찾았을 때만 하여도 잠에 취해 정신이 오락가락 했었지만 염려할 지경은 아니라 생각했다.

그리고 두어 시간 후 다시 병원을 찾게 된 장인이었다.

오늘, 장인이 무덤덤하게 던지신 ‘왔어!’라는 한마디에 그간에 쌓인 피로가 몰려 왔다.

바라기는 새해에도 내 부모님과 장인 뿐만 아니라 나와 그저 무덤덤하게 눈빛 나누던 모든 이들이 그저 그 자리에서 이제껏 처럼 딱 고만한 간격과 거리에서 있는 것만으로도 좋은 한 해가 되었으면.

시간에

어느새 맞은 올해의 마지막 일요일 밤, 간만에 나와 마주해 앉아 본다.

지난 두어 주 동안 장인 누워 계시는 병원을 오가는 길, 어느 순간 문득 아내에게 던진 말이 있었다. ‘행여 내가 아파 눕거든 당신이나 아이들이나 딱 두 번만 찾아오셔! 병원을 찾는 첫 날과 퇴원하는 날 아니면 그냥 가버린 날, 그렇게 딱 두번 만. 나중에 내가 딴 소리하더라도 듣지말고…’ 이 말은 오래된 내 진심이다. 언젠가 내 아이들에게도 이미 웃으며 던졌던 말이다.

이즈음 시간에 대한 생각이 많다. 장인과 부모님 특히 내 아버님을 보며 드는 생각이다. 게다가 올해가 다 저물어 가는 때이고 보니 그 생각이 더욱 깊어진다.

아내가 주일예배에 참석한 시간, 모처럼 즐긴 산책길에서 떠올린 ‘홍목사의 잡기장’에서 읽었던 글 한 줄. “늙으면 외롭게 사는데 익숙해져야 한다.”

홍목사, 그와 내가 인생 길에서 함께 했던 시간은 고작 채 이년을 채우지 못한 세월이었다만 그는 내 평생 잊지못할 선생 가운데 하나이자 벗이자 감히 말하건대 신앙의 동지이다.

나 보다 무려 열 살이나 위인 그가 연말 소식을 이렇게 전해왔다. “우린 함께 늙어가는 사이가 되었네요….” 그렇게 시작되는 편지였다.

나는 아내에게 웃으며 말했다. “아니, 이 양반이 이젠 나하고 맞먹으실려고 하네! 내가 왜 함께 늙어? 난 아직 청춘인데!”

오늘 산책길에서 마주 친 내게 내가 던진 말, “그래, 이젠 자네도 진짜 익숙해질 나이가 되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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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계상태

모처럼 누린 사흘 연휴도 끝나가는 시간이다. 사흘 동안 한 일이 아무 것도 없는 것 같기도 하고, 생각지도 않았던 많은 일들을 한 것 같기도 하다. 사흘 연휴를 맞아 미리 계획했던 일들은 그저 집적거리만 했을 뿐 마무리된 일들은 하나도 없다. 그러나 연휴를 맞기 직전 맞은 돌발적 상황들에 대해 내가 해야 할 일들은 그럭저럭 잘 해낸 것도 같다.

일테면 장인 어른의 수술과 회복 중에 다시 맞게 된 중환자실 이전 과정이랄지, 이젠 어리광 단계에 들어 선 내 아버님과 함께 한 시간이랄지, 오랜만에 긴 시간을 함께하는 딸아이와의 시간 등을 생각해 보면 참 좋은 연휴를 보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러나 나름 한 해를 정리하는 시간을 보내고자 했던 일들과 코 앞에 다가온 가게 이전에 대한  계획을 마무리 하는 일 등은 관련 자료와 서류 등을 꺼내만 놓은 채 눈길 조차 보내지 못하고 사흘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연휴가 끝나간다는 생각 때문이었는지 피로가 온 몸을 덮쳐 낮에 잠시 졸다가 머리 속에 떠오른 말 ‘임계상태’였다.

물도 아니고 수증기도 아닌 상태, 부글부글 뭔가 터질 듯 한데 그냥 이대로 다시 식어 버릴 것 같은 상태, 그렇게 시작된 생각의 연속으로 뜻 맞는 벗들에게 편지 한 장 띄웠다.

비단 내 개인적 삶에서만 느낄 수 있는 ‘임계상태’는 아닐게라는 생각에서였다.

부모님, 아들 며느리, 딸 그리고 형제들과 조카들 올망졸망한 조카손주들 모두 모여 나눈 성탄 만찬은 풍성했다.

먼저 만찬 자리를 뜬 우리 부부는 다시 병원으로 향했다.  단 몇 분 사이에도  80년 넘는 세월을 맘대로 오고 가며 오늘 일인 양 웅얼거리시는 장인을 뵙고 돌아온 늦은 밤, 내 이메일함에 담긴 성탄 카드 한 장.

My dear friend,

As usual, you are “Right On!”

I am thankful for you, the cleaner, who cleans my clothes.

I am thankful for you, the person, and your dear wife, too, for you are good, kind, thoughtful persons, making a better world,…one interaction, one letter,…at a time.

I am thankful for your letters, which make me think and smile, and think again.

Blessings,

가게 손님 한 분이 보낸 메세지에 연휴가 끝났음을 감사한다.

그래, 임계상태란 무릇 일상일지도 모른다.

연휴에

연휴를 맞는 아침은 늘 이르다. 평소보다 일찍 자리에서 일어나는 까닭을 모르겠다. 이른 아침, 가게 손님들에게 편지 한 장 띄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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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탄절이 화요일이어서 많은 생각 끝에 성탄절 이브인 월요일에도 세탁소 문을 닫기로 했답니다. 모처럼 사흘 연휴를 갖게 되었답니다. 그렇다고 특별한 계획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저 이런 저런 걱정이나 잡념없이 쉴 수 있음에 감사하며 시간을 보내려 한답니다.

아내와 나, 아들 며느리와 딸과는 어제 저녁 일찌감치 성탄 기념 저녁식사를  함께 했답니다.

지난 주에 홀로 사시는 장인이 아침에 일어나다 넘어지셔서 응급환자로 병원을 찾게 되었답니다. 크리스티아나 병원에서 수술을 마치고 회복 중이신 장인 병실에서 함께 만난 아이들과 저녁을 함께 하며 제가 했던 말이랍니다.  ‘오늘 저녁식사가 올해 우리 가족 성탄 만찬이다’라고 말입니다.

어제 저녁식사 자리에서 아이들의 이야기들을 들으며 문득 머리 속에 떠오른 생각이랍니다. ‘걱정의 대부분은 그저 내 머리 속 생각 뿐이었군!’

수술 후 회복 중이신 장인이나, 그런 장인 소식을 저희 부부 입을 통해 들으시는 장인보다 더 나이 많으신 제 부모님이나, 그런 할아버지 할머니들을 바라보는 젊디 젊은 내 아이들이나, 누구랄 것도 없이 모두 자기 자리에서 자기 몫을 하며 서로를 생각하는 가족들을 보며 든 제 생각이었답니다.

한 해가 저무는 때입니다.

부질없는 머리 속 걱정을 내려 놓고 감사로 한 해를 정리하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물론 제 스스로에게 던지는 말입니다만 당신에게도 덕이 된다면.

당신의 세탁소에서


 

As Christmas falls on Tuesday this year, after much thought, I’ve decided to close the cleaners on Monday, Christmas Eve. So I could have three days off. Be that as it may, I don’t have any special plans. I intend to spend time with gratitude for taking a rest without this concern or that or distracting thoughts.

My family, my wife, son, daughter-in-law, daughter and I, had an early Christmas dinner together last night.

Last week, my father-in-law, who lives by himself, fell down in the morning and was taken to the hospital as an emergency patient. After visiting him, who was recovering from an operation at the Christiana Hospital, we had dinner together and I told them, “This is our family Christmas dinner this year.”

While I was listening to them at the table, one thought came across my mind: “Most of the concerns were just the thoughts in my mind!”

My father-in-law, who is recovering from the operation, my parents who are senior to my father-in-law and hear about him from my wife and me, my son, daughter-in-law and daughter who look at their grandparents, every one of them without distinction cares about one another and does their part at their place. That’s a family. The thought came to my mind, while I was looking at my family.

This year is drawing to a close.

I wish that all of us will put futile concerns in our heads aside and close the year with gratitude.

Of course, these are the words which I want to speak to myself. But, I hope that they will be beneficial to you, too.

From your cleaners.

장인의 카드

연말에다가 곧 다가 올 가게 이사 준비 등등, 오늘은 밀린 서류 정리를 해 볼 요량이었다.

이른 아침, 홀로 계시는 장인에게서 온 전화 한 통은 아주 간단했다. ‘넘어졌어. 못 일어나.’

그렇게 우리 부부는 온종일 장인과 함께 했다. 장인은 몇 번이고 내게 말했다. ‘거기 그 봉투 엊저녁에 김서방 줄려고… 잊지 말고 가져 가!’

뭐라고 딱 표현 할 길 없는 어수선한 하루가 저무는 순간, 일상으로 돌아가고자 꺼내 읽은 글 하나. 헨리 데이빗 소로우의 <월든>이다.

최근 몇 년 동안 낚시질 할 때마다 언제나 나는 나 자신을 돌아보았다. 그것은 계속 되풀이되었다. 나는 낚시에 대해선 솜씨도 있고, 또 많은 동료 낚시꾼들처럼 낚시에 대한 본능적인 직관 같은 것이 있어서 때때로 그 본능적인 직관이 되살아나기도 하지만 항상 낚시를 하고 나면 하지 않았더라면 좋았을 걸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내가 잘못 생각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여명의 첫 햇살처럼 넌즈시 계시처럼 다가온다. 내게는 분명 하등동물과 같은 본능적인 직관이 있다. 그러나 해가 거듭될수록 더 인간 답거나 현명해진 것은 아니다. 그러다 보니 나는 낚시꾼에서 멀어져 갔고, 이제는 낚시꾼이 아니다.

I have found repeatedly, of late years, that I cannot fish without falling a little in self-respect. I have tried it again and again. I have skill at it, and, like many of my fellows, a certain instinct for it, which revives from time to time, but always when I have done I feel that it would have been better if I had not fished. I think that I do not mistake. It is a faint intimation, yet so are the first streaks of morning. There is unquestionably this instinct in me which belongs to the lower orders of creation; yet with every year I am less a fisherman, though without more humanity or even wisdom; at present I am no fisherman at all.

그래, 사람은 모두 한땐 솜씨 좋은 낚시꾼이었던 시절이 있을 터이고, 또 언젠가는 낚시질 자체가 허무해 지는 시절을 맞기 마련이다.

시인 강은교의 <월든> 번역은 진짜 월척이다. 세월은 시인에게도 비껴가지 않았을 듯.

이미 낚시꾼이 아니어도 ‘사랑’을 말할 수 있는 장인은 아직 괜찮다. 나이 들어 현명해 지지는 못할 지 언정 사람다움으로.

산책

Newark에서 세탁소를 처음 열던 날, 아버지가 내게 던지셨던 말이다. ‘이 곳 이름이 Newark이니 New Ark이구나. 이 곳이 네 삶의 새 방주가 되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어느새 서른 해 훌쩍 넘긴 저쪽 세월 이야기가 되었다.

이즈음 나는 그 세월 동안 자주 지나치면서도 알지 못했던 이 도시의 아름다움을 찾아 산책을 즐기곤 한다.

평생 운동 이라고는 해 본 적 없는 내가 새삼스레 운동으로 하는 산책은 아니다. 깜작할 사이에 칠십을 바라보는 나이에 서서 지난 시간들을 다시 만나기고 하거니와, 때론 나와의 대화를 나누기도 하고, 다가 올 시간들과 언젠가 만나게 될 미지의 시간들에 대한 생각에 잠기기도 한다.

산책을 하며 만나는 시간들은 아름답고 고요한 풍광들로 하여 감사로 휘감길 때가 많다. 하여 산책은 오늘 내 삶을 기름지게 한다.

오늘 아침, Newark 저수지 길을 걸으며 떠오른 오래 전 아버지의 기원 – 그저 감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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