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아침

가게문을 열고 부산하게 움직이다가 문득 눈에 들어 온 아침 하늘에 빠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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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게 이사 후 첫날 아침, 먼 길 이사 가는 새떼들이 내 생각을 오래 전 내 젊었던 시절로 데려갔다. 이민(移民)후 정말 멋 모르고 시작한 세탁소, 가게 이름을 지을 때였다. ‘나는 김씨고 당신은 이씨니 그냥 K&L로 가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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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시작한 세탁소가 내 평생의 업이 되었다.

그리고 오늘, 새 장소로 이전해 첫 날을 맞았다.

솔직히 이제껏 내 맘과 내 뜻대로 이루어진 일이란 별로 없다. 나는 그게 나에 대한  신의 은총이라고 고백하곤 한다.

새 장소에서도 여전할 것이다.

높이 나는 새들도 있고, 낮게 팔랑이며 나는 새들도 있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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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SC04869김가인 나와 이가인 아내가 같은 생각으로 날고 있으므로.

2019년 3월 11일, 참 좋은 아침에

경칩에

일을 마치고 돌아 오는 길,  동네 약국 체인점에 있는 사진 현상소에 들렸다. 재미 삼아 사진을 찍기 시작한 지 일여 년 만에 어제 밤 처음 사진 현상 주문을 해 보았다.

내일부터 나흘 동안 가게 문을 닫고 새 장소로 이전을 한다. 내가 해야 할 이전 준비들은 거의 끝났고, 장비와 기계 등 큰 이사짐들은 일이 맡겨진 이들의 몫이다.

나는 손님들을 맞는 카운터 공간을 꾸밀 생각으로 사진 현상을 맡겼던 터이다. 내가 찍은 사진 몇 장들과 내가 좋아하는 시 몇 편들을 새긴 판넬로 한 쪽 벽을 장식할 요량이다.

현상되어 나무판에 새겨진 사진들을 찾아와 한참을 들여다 보다 툭 튀어나온 혼잣말, ‘오호 제법인데!’

사진들과 함께 벽을 장식할 시편들을 새긴 판넬들을 찾아 든다. 영역한 이해인님의 시편들과 Thoreau의 생각들, 그리고 내가 참 좋아하는 Shel Silverstein의 관점 (Point Of View)이다.

추수감사절 만찬은 슬프고 고맙지 않다/ 성탄절 만찬은 어둡고 슬프다/ 잠시 생각을 멈추고/ 칠면조의 관점으로 만찬 식탁을 바라본다면.

나는 이즈음 한국(한반도) 뉴스 또는 한국(한반도)에 대한 뉴스들을 보며 Shel Silverstein의 관점 (Point Of View)을 떠올리곤 한다.

개인 사이의 관계, 집단과 집단과의 관계 나아가 나라와 나라 사이의 관계, 또는 나라와 개인 집단과 개인, 나라와 집단 등등 모든 관계들을 바라보는 관점에서 Shel Silverstein의 관점은 신(神)의 관점이다.

바로 약자(弱者)의 관점에서 공감하는 능력이 최적화된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 바로 천국이다.

역사란 사람들이 천천히 정말 천천히 대부분의 사람들이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천천히 그 곳을 향해 나아가는 여정 아닐까?

내 욕심으로 살다 문득 문득 현상된 사진처럼 툭 정신을 차리게 하는 순간들이 있다.

몹시 추운 경칩(驚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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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설瑞雪

얼음비 창문 두드리는 소리에 졸다가 깨다. 책상 앞에 앉아 이런 저런 생각에 빠져 있다 싶었는데 그새 생각이 아니라 잠에 빠졌던 모양이다.

일기예보는 언제나 좀 호들갑이다. 4에서 7인치 정도의 눈과 얼음비가 내린다고 아침부터 요란을 떨었다. 손님들을 초대해 놓고 일기예보에 지친 하루였다.

일기예보는 변덕스런 날씨나 사람들 마음에 비해 비교적 정확한 쪽이다. 오늘도 마찬가지였다. 예보대로 비가 오다가 눈이 내리고 얼음비로 바뀌었다가 지금은 다시 눈이 내리는 밤이다.

가게 이전을 한 주 앞두고 가족들과 손님들을 초대해 조촐한 잔치를 벌였다. 눈길에 함께 한 가족들과 오랜 친구가 된 내 가게 손님들에게 그저 고마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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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하지 못한 딸아이 대신 잔치 사회를 맡은 며늘아이를 넋 놓고 바라보는 아들녀석 만큼 나 또한 아이가 대견스럽다. 눈길에 빨리 가라고 재촉하는 내게 며늘아이가 물었다. ‘아버님, 저 잘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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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오늘 그 자리는 아버지 어머니를 위한 자리였다. 그 자리가 한번 있어야 맘이 편한 분들이었기에 장로인 매제의 기도와 함께 형제들이 함께 했다. 모두 참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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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눈길을 마다 않고 함께 한 내 손님이자 이젠 모두 머리에 허연 눈들을 이고 사는 인생의 길동무들이 참 고맙다. 이런 길동무들을 이어주는 이는 언제나 내 아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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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치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미끄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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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 내외가 집에 잘 도착했다는 전화를 받고, 부모님에게 감사 전화를 드린 후 밀려든 잠에 그렇게 잠시 빠졌었던 모양이다.

아버님은 서설瑞雪이라고 하셨다.

무릇 세상 일이란 받아 느끼는 사람의 몫일 터이니.

하여 서설瑞雪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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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에

1.

얼마 전 우리 마을 한인회 봉사하는 이들에게서 부탁 메일을 받았다. 그들의 부탁이란 한인회 회칙을 새로 정비해 개정하려 하는데 검토해 달라는 것이었다. 한인회 일을 하는 이들이 대부분 영어가 주언어인 관계로 영문본을 먼저 만들었고, 그를 번역해  한글본을 만들려고 하는데 특히 그 부분에 대한 검토를 부탁하는 것이었다.

짧은 시간 세상 참 많이 바뀌었다. 이십 여 년 전 내가 한인회 봉사를 할 때 가장 큰 일 가운데 하나는 한글을 영어로 번역하는 일이었다. 이젠 그게 바뀐 것이다. 그렇게 한인 사회가 바뀐 것일 게다. 그 바뀜이 참 좋다.

나는 그 부탁에 감사하다는 말을 붙여 거의 내 의견을 덧붙이지 않은 응답으로 대신했다. 솔직히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거기까지 였기 때문이다.

그들이 대견하다고 말할 만큼 늙지는 않았고, 그들과 함께 할 만큼 젊지 않은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큰 일이란 박수 치며 말없이 쫓아가는 것이라는 생각으로…


2.

가게 이전이 코 앞에 다가오자 노 부모님들이 목사님 모시고 개업예배를 드려야 한다고 하신다. 나는 손사래를 쳤다. 거창하게 기복(祈福) 의식에 대한 거부를 내세울 일도 아니었다. 남들은 은퇴를 하는 나이에 가게 옮긴다고 사람들을 불러 모으는 일이 남사스럽기도 하거니와 솔직히 의식에 대한 내 심한 거부증도 한 몫 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노인네들에 대한 미안함은 끝내 가시질 않았다.

그러다 손님 몇 몇이 농으로 우리 부부에게 던진 말, ‘새 장소로 가는데 잔치 안 해?라는 말’이 꽂혀 진담으로 받았다.

하여 가게 손님들 몇 몇에게 조촐히 신장개업 잔치 자리를 열면 오겠느냐고 물었더니  좋다는 이들이 생각보다 많았다.

한국음식 몇 가지 차려 놓고 단골 손님들 몇 십 명 초대해 잔치를 하겠노라는 말에 노 부모님들 얼굴 환해 지셨다.

변화가 두루 모든 이들에게 맞는 일이란 참 어렵다.

철들 나이

시간 또는 숫자란 때론 참으로 뜻 없다. 숫자로 일컬어지는 나이 또는 2019년 모월 모일로 표시되는 시간은 언제든 나와는 무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젠 봄이거니 했는데 눈이 많이 내린 날, 느닷없이 철든 내 생각이다. 허긴 사회 통념상 노인 반열에 이미 올랐건만 그조차 눈치채지 못하고 살았으니 철없기는 참 여전하였다.

손님 하나 없는 가게 밖을 바라보다가 문득  ‘내가 이 자리에서 눈 내리는 풍경을 바라보는 일은 내 평생 오늘이 마지막이구나!’ 하는 생각에 인 생각들이다.

내 아이들을 낳고 키워온 삼십 년을 함께 해 온 가게를 옮기는 준비를 하며 맞는 눈손님에 참 많은 생각들이 오간다.

하여 일찌감치 가게 문닫고 집에 돌아 와 눈 치우며 눈을 느끼다. 시간 또는 숫자를 세며.

역시… 난 아직 완벽히 철들 나이는 아닌가 보다.DSC04780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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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떼

아직 차가운 영하의 날씨. 일기예보는 또 한차례 눈 소식. 가게 문 여는 아침, 이미 봄 내음 맡은 새떼들은 북향. 때론 아주 뻔한 자연과 세상의 이치를 깨닫는 능력이 새들 보다도 못하다. –  2/ 16/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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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으름에

이젠 밤운전은 엄두를 못내겠다는 서선생님은 나보다 딱 열살이 많다.

그가 한 십여 년 전에 내게 한 말이다. “내 나이 돼 보라구! 그 전엔 큰 일 날 일도 별거 아냐… 움직이기 귀찮아서 안 움직여도 세상 큰 일 나지 않는다구. 나이 든다는 건 어쩌면 적당한 게으름을 받아 들이는 걸꺼야!”

눈 내리는 아침, 가게 나갈 시간이 훨씬 지났건만 움직이기가 싫었다. 나갈 생각 않고 창문 밖 눈 내리는 풍경만 바라보는 내게 아내가 던진 말, “당신도 이젠 늙나보다.”

  1. 11.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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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심에

새 달부터 새 장소에서 영업을 한다는 이전 안내문을 붙이자 “내가 뭘 도와줄까?’ 묻는 이들이 많다. 직장 일을 쉬더라도 이사 일을 돕겠다는 젊은이도 있고, 교회와 동네에 자원봉사자들을 모으겠다는 이도 있다. 더러는 이전 비용을 염려하며 전보다 더 많은 세탁물을 가져오는 것으로 돕겠다는 이들도 있다.

이즈음 이런 저런 어수선한 마음을 달래주는 고마운 얼굴들 떠올리며 주일 편지를 쓰다.

2-10

지난 주 어느 날인가 네 다섯 살 쯤 되어 보이는 꼬마 아이가 제 아빠 손을 잡고 세탁소에 들어 섰답니다. 아이는 무언가에 아주 토라진 듯 입을 삐죽히 내밀고 있었습니다. 아이 아빠에게 허락을 받고 아이에게 막대사탕 하나를 쥐어 주었답니다. 아이의 얼굴은 이내 세상 다 가진 듯 환하게 바뀌었답니다. 그리곤 그 환한 얼굴로 컨베이어에 걸린 옷들이 돌아가는 모습을 홀린 듯 바라보고 있었답니다.

그런 아이 모습을 바라보며 순간 넋이 나간 저도 잠시 아이가 되었었답니다. 딱 그 꼬마 아이 쯤 나이였을 때 제 아버지의 등에 업혀  잠 들었던 기억이 되살아 났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날 오후 내내 제 생각엔 지난 시간들이 마구 스쳐 지나갔답니다. 잠에 빠진 어린 저를 업고 걸으셨던 아버지는 이제 아흔 중반 나이에 이르셨습니다.

유년이 지나 소년을 거쳐 청년이 되어가며 저는 꿈을 꾸었었답니다. 시를 쓰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꿈이었답니다. 아직 그런 꿈을 버리지 못했을 때에 아내를 만났습니다. 그 시절 아내의 꿈은 노래하고 춤을 추며 사는 것이었답니다.

그리곤 어찌어찌하여 우리 부부는 델라웨어 뉴왁에서 세탁소를 하기 시작했답니다. 딱 30년 전인 1990년 7월이었습니다. 제 성씨인 Kim과 아내의 성씨인 Lee의 첫 글자를 묶어 K&L Cleaners라고 간판을 걸었었답니다.

그 날 밤, 막대사탕 하나로 세상 다 가진 듯 행복한 얼굴이었던 아이를 생각하며 저는 꿈을 꾸었답니다. 시 쓰고, 노래하고 춤추는 것이 결코 대단한 일이 아니고, 그저 살아가면서 느끼고 고백하는 일이라는 생각으로 꿈을 꾸었답니다.

그것이 비록 큰 욕심일지언정 꿈은 아름다운 것이라는 생각으로.

당신의 세탁소에서.

욕심에

얼굴 가득 찡그린 마음 담은 채
제 애비 손 잡고 내 가게 들어 선 꼬마 아이
막대사탕 하나 쥐어 주니
세상 다 가진 얼굴이다

그 모습에 홀려 꿈을 꾼다

먼 훗날 꼬마 아이
이 도시의 거리와 풍경들
가족과 이웃들
사진첩 넘기 듯 옛일 생각할 때
비록 얼핏 스쳐 지나가는 배경일지라도
사람 좋은 얼굴 세탁쟁이로 남을 수 있다면

때론 욕심이어도
꿈은 아름다울 수 있으므로.


One day last week, a child who looked to be four or five years old held his dad’s hand and walked into the cleaners. He pouted his lips, maybe because he was upset about something. With his dad’s permission, I slipped a lollipop into his hand. His face softened into a grin, as if it meant the world to him. Then, with a beaming smile, he looked at the clothes hanging on the moving conveyers with bewitched eyes.

While I was watching the boy, old memories led me to become a child for a moment. That was because he brought to me an old memory that I had fallen into sleep on my father’s back when I was about his age.

Throughout the afternoon that day, a flood of thoughts and memories of the past coursed through my mind. My father, who walked with me on his back, is in his mid-nineties now.

When I became a young man, after going through my infanthood and adolescent period, I had a dream. It was a dream of becoming a poet. Before I gave up the dream, I met my wife. At that time, she dreamed of living her life in singing and dancing.

Then, one thing led to another, and my wife and I began to run the cleaners in Newark, Delaware. It was in July 1990. I named it “K&L Cleaners” after the first letters of my last name “Kim” and my wife’s last name “Lee.”

That night, thinking about the boy who became happy with a lollipop, I dreamed about the thought that writing poems, singing and dancing are not big deals, but they are simply to feel and to express one’s life.

And the thought that dreams are beautiful, though they may be big greed.

From your cleaners.

My Greed

With a face filled with a frowning mind
A little boy who walked into my store holding dad’s hand,
When I slipped a lollipop into his hand,
Changed his face as if he owned the world.

I’m dreaming enchanted by the changes in his face

Some day in the distant future, when the little boy
Will think back, as if leafing through an old picture album, on the past times
Streets and scenery of this town, and
Families and neighbors,
Even as a part of the passing background,
I’d have been remembered as a friendly-looking cleaner.

Sometimes, though greedy,
Dreams can be beautiful.

 

일기에

‘아파요?’ 늦잠에서 깨어 일어난 내게 아내가 물었다. 이젠 몸이 맘을 쫓아가긴 틀린 모양이다. 장기요양원으로 옮기시기로 결정하고 장인의 아파트를 정리하면서 아내는 사람을 부르라고 했었다. 노인네 짐이 뭐가 그리 많을까 싶기도 했고, 들기 버거운 가구나 물건들은 모두 청소하는 이들의 몫으로 남기고, 이제 장인에게 꼭 필요한 물건들만 챙겨 옮기는 일인데 번거롭게 사람을 부를 일은 아니라 우겼었다.

몇 시간 과외 노동에 늦잠을 요구하는 몸을 스스로 다독여 위로하며, 아침 일기를 쓰듯 손님들에게 편지를 띄우다.

1-26

두 어 달 전에 넘어지신 후 수술을 받고 재활원으로 옮겼다가 다시 병원과 재활시설로 오가셨던 장인이 이젠 장기 요양원으로 옮기게 되었답니다.

어제 오후 장인이 사시던 아파트 방을 정리하면서 눈에 뜨인 노트 한 권이 있답니다. 장모의 일기장이었습니다. 2012년에 발견된 담낭암과 싸우셨던 장모는 2016년 12월에 돌아가셨는데 그 기간 동안에 쓰셨던 일기장이었습니다.

매일매일 아주 짧게 두 세 문장 정도로 그날의 일상들을 기록해 놓으셨습니다. 그날 그날 자신의 몸과 마음의 상태, 만난 사람들, 먹은 음식, 가족 이야기 등등 아주 자잘한 일상의 이야기들을 기록해 놓으셨는데, 그 일기의 형식이 매우 독특했답니다.

모든 일기는 대화체로 쓰여져 있었고, 매우 친한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는 듯이 쓰여져 있었답니다. 그리고 모든 일기의 시작은 똑같았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오늘도 참 감사한 하루였답니다.’ 그렇게 시작한 일기는 그날 만난 사람들과 이야기와 음식에 대한 감사로 이어졌습니다. 일기는 돌아가시기 한 달여 전 글씨가 삐뚤빼둘한 모습으로 바뀔 때까지 이어졌습니다.

그런데 일기 속에 나오는 사람들 가운데 ‘밉다’라고 지칭한 유일한 사람이 있었답니다. 바로 장인이었습니다. 그 ‘밉다’라는 표현은 몹시 싫다는 뜻은 아니었고, 철없는 아이를 바라보는 애처로운 심사를 표현한 말이었습니다.

이즈음 장인은 그야말로 철없는 아이와 다름없답니다. 게다가 이따금 오락가락하셔서 엉뚱한 말씀을 일삼곤 하신답니다.

장모의 일기장을 훑어 보다가 제 머리 속에 든 생각 하나랍니다. 장모가 살아 계셔 오늘 일기를 쓴다면 그녀는 틀림없이 오늘도 ‘하나님 아버지 오늘도 참 감사한 하루였습니다.’라고 쓸 것이라고 말입니다.

지난간 시간들을 돌이켜 보며 감사한 마음이 들 때 삶은 언제나 살 만한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답니다.

새로운 한 주간 감사함이 매일매일 넘쳐나는 하루하루가 되시길 빕니다.

당신의 세탁소에서


My father-in-law, who fell down about two months ago, underwent a surgical procedure, and then moved back and forth between a rehabilitation center and a hospital, is to move to a long-term care facility.

While I was cleaning up the apartment in which he had been living, I found a notebook. It was my mother-in-law’s diary. It was the record of her life and thoughts during the period from the time when cancer had been found on her gallbladder in 2012 to the time when she had fallen to it in December 2016.

She very briefly wrote about her day in a few sentences every day. While she recorded small stories about everyday life, such as the condition of her body and mind, people who she met, food, and family, her diary had a very unique style.

It was written in the conversational style, as if she had been having a nice chat with a very close friend. And all the beginnings were the same every day: “God, it was a really grateful day today, too.” Then, she continued with gratitude for the people who she had met and food that she had eaten on that day. The diary was written until her handwriting became wobbly, about a month before she passed away.

There was only one person who she said she “hated” in the diary. It was her husband, my father-in-law. Of course, she did not mean that she really hated him, but she expressed it as a wistful and distressful feeling for an immature child.

In these days, my father-in-law has been like an immature child. Furthermore, as his mind often wanders, he strikes false notes frequently.

While I was scanning through my mother-in-law’s diary, one thought came across my mind. It was that if she were alive to write her diary today, she would definitely write, “God, it was a really grateful day today, too.”

I think that life is always worth living, if we feel grateful when we look back on for the past time.

I wish that you’ll have days of overflowing gratitude every day this week and beyond.

From your cleaners.

추운 밤에

밤 사이 기온이 뚝 떨어진다는 예보에 쉬는 날 저녁, 가게에 나갔었다. 날씨 온도 9도에 체감온도 -11도면 섭씨로 영하 12도에 체감온도 영하 24도, 경험상 세탁소 보일러가 얼기 십상인 터라 보일러를 켜 놓고 돌아오는 길, 전에 없이 큰 보름달이 먹구름을 타고 놀았다.

까닭없이 긴 밤에 스티븐 핑커(Steven Pinker)의 책장을 넘기다가 눈에 꽂힌 대목을 곱씹다.

<이데올로기에는 치료약이 없다. 이데올로기는 인간을 똑똑하게 만드는 여러 인지 능력으로부터 생겨나기 때문이다. – 중략 –

이런 능력들이 유해하게 조합될 때, 위험한 이데올로기가 얼마든지 분출한다. 누군가 어떤 집단을 악마화하거나 비인간화한 뒤, 그들만 제거하면 무한한 선을 달성할 수 있다는 이론을 구축할 수 있다. 그와 비슷하게 생각하는 한 줌의 추종자들은 불신자를 처벌하는 방법으로 그 발상을 퍼뜨린다. 무리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그 발상에 휘둘리거나, 일신의 위협을 느껴 별수 없이 지지한다. 회의주의자들은 침묵을 강요 당하거나 고립된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 위주의 논리에 따르기 마련이라, 내면의 현명한 판단에 위배되는 계획을 기꺼이 수행할 수 있다.

온 나라가 유해한 이데올로기에 전염되는 현상을 확실히 막을 방법은 없지만, 예방책은 하나 있다. 바로 열린사회이다.>

치료약이 없는 것은 비단 이데올로기 뿐만이 아닐게다. 일테면 신앙이나 자잘한 일상의 인간 관계에 이르기까지 치료약이 없기는 매양 한가지다.

다만, 천천히 천천히 아주 느린 걸음으로 사람들은 열린사회로 향해 나아가고 있을 뿐. 그것이 역사일 터.

갇힌 존재라는 깨달음을 얻은 이들은 앞서갈 터이고.

때론 쳇바퀴 도는 세상처럼 보여도 사람사는 세상은 늘 어제보다는 조금은 나은 세상으로 나아가고 있지? … !

창문 밖 나무가지 우는 밤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