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금요일(聖 金曜日) 밤,  다석(多夕) 유영모(柳永模) 선생님의 생각을 꺼내 곱씹다.

‘때’가 이른 것은 ‘때가 왔습니다’할 때가 아니라, ‘이제’의 ‘이’ 소리가 나오는 때입니다. ‘이’라고 할 때도 실상은 과거가 됩니다만, 누가 물어도 대답할 수 없는 것이 ‘이제’입니다.

우리는 이 ‘이제’를 타고 가는 목숨입니다.

이제가 이제, 이제, 이제, 자꾸 계속 되어도 났다 죽었다 하는 이 이제가 영원입니다. 이것이 우리 인생입니다. 그런 뜻으로 보면 우리의 모든 것은 처음이자 마지막인 것입니다. 새로 나오자 마지막이 되는 것입니다.

이제, 지금, 오늘이 귀하고 아름다움에 감사하다.

나의 ‘이제’ 뿐만 아니라 아내와 부모와 자식과 이웃들… 그렇게 귀하고 아름다운  ‘이제’를 누리는 사람들의 지경을 넓혀갈 수만 있다면…

기적처럼 집으로 돌아와 엊그제 생일 케익 앞에 앉으신 어머니와 앞 뜰에 핀 봄이 ‘이제’에 대한 감사를 북돋다.

성 금요일과 부활 아침 사이엔 셀 수 없이 많은 ‘이제’들이 있을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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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나들이

어머니나 장인이나 아직 현실과 꿈 사이를 이따금 오락가락 하시지만 두 분 모두 계셔야 할 곳에 계서 모처럼 마음이 편하다.

어제 한 달 만에 병원에서 집으로 돌아 온 어머니는 ‘얘야, 오이 김치 담궈 줄테니 밥 먹고 가라!’셨다. 아직 밥 두어 술 넘기기도 벅차신 양반이 오이 김치를 잡숫고 싶으셨나 보았다. 엊저녁엔 병원에서 요양시설로 다시 돌아오신 장인 방을 장식할 사진들을 찾아 골랐다.

아침 잠자리에서 뭉개 보기는 참 오랜만이다.

평소 어머니의 바램 대로라면 주일인 오늘 아침, 나는 교회에 나가야 마땅할 일이었다만 필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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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량이 꼬리를 이어 달리는 도시 나들이는 내게 그리 즐거운 일은 아니었지만 다 내 맘 하나 편하자고 나선 길이었다.

<세월호 참사 5주기 – 필라델피아 추모/ 기억 공간>라는 이름으로 모이는 행사에 머리 수 하나라도 채워야 맘이 편할 것 같아서였다. 그리고 그 선택은 옳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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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즈음 한국 소식들 가운데 내 관심을 끈 것들 중 하나는 도올 김용옥이 나서 이끄는 일련의 한국현대사 해석이다. 딱히 김용옥선생이 새롭게 꺼낸 목소리는 아니다. 김용옥선생의 목소리로 하여 조금은 더 넓게 ‘그 때 그 시절의 진실’들이 퍼져 나갈 수 있는 오늘은 ‘그 시절을 그저 기억하고 살아 온’ 이들 때문에 맞이하게 된 것 일게다.  그 생각에 이르러 편해진 마음이다.

어머니는 오락가락 하시는 자신의 모습이 아직은 많이 낯 선 모양이다. 나는 ‘엄마, 다 좋아, 괜찮아, 이젠 넘어지지만 않으면 돼!’를 반복한다.

집에서 낮잠은 정말 오랜만이다. 내 방 창 밖에도 어느새 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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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쩜 내가 사는 오늘이 늘 봄이 아닐까? 감히 역사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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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편지

모처럼 느긋한 주일 아침이다. 내 맘을 아는지 시간조차 느리게 흐른다.  간만에 넉넉한 마음으로 가게 손님들에게 편지를 띄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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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한달 여 긴장 속에서 시간을 보내다  모처럼 아주 느긋하게 여유 있는 일요일 아침을 맞는답니다.

Long term care 시설에 계시는 장인이 병원 응급 환자로 옮기셨다 딱 일주일 만인 엊그제 상태가 좋아져 다시 시설로 돌아 오셨답니다. 어제는 딱 석 주 동안 병원에 입원하셨던 어머니가 일주일 간 의 재활원 생활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 오셨답니다.

게다가 아시다시피 가게 이전과 마무리를 하느랴고 한 달여 매우 바빳었답니다.

이제 두 노인들도 제 자리를 찾았고, 가게 이전으로 어수선했던 제 일상도 이젠 거의 제자리를 찾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맞는 일요일 아침에 누리는 여유에 정말 감사한답니다.

한 열흘 전 아침, 어머니 병실에서 밤을 지내고 가게 문을 열 때, 문득 눈에 들어 온 하늘을 보며 떠오른 생각들이 있답니다. 삶의 아름다움과 일상에 대해 늘 감사해야겠구나 하는 생각이었답니다.

누구나 살며 아프기도 하고 또 언젠가는 죽음을 맞이하게 마련입니다. 저는 물론이거니와 가족들과 이웃들 모두 겪는 일입니다. 그 모든 삶의 과정들을 아름답다고 새기고 곱씹어 보는 것은 바로 제 자신이라는 생각을 아침 하늘이 제게 가르쳐 주었답니다.

또 다른 생각 하나는 매일 똑같은 생활, 때론 지겹다고 느껴지기도 하는 그 똑같은 일상이 얼마나 감사한 것인지를 생각해 본 것이랍니다.

그날 아침 하늘 풍경에 감사하답니다.

온 천지가 봄입니다.

좋은 계절, 아름답고 감사가 넘쳐나는 하루 하루가 되시길 빕니다.

당신의 세탁소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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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ile I was busy and nervous for about a month, today I’m leisurely greeting Sunday morning with ease.

My father-in-law, who had been staying at a long-term care facility, was taken to the emergency center, was recovered in a week and moved back to the facility the other day. Yesterday, my mother, who had been hospitalized for three weeks, moved back home after a week-long rehab treatment.

Furthermore, I was busy completing moving the store, as you might know.

Now, my mother and my father-in-law are recovered and my everyday life, which was disordered, has almost fallen into place. So, I’m really grateful for the relaxed feeling which I’m enjoying in this Sunday morning.

About ten days ago, when I opened the store and looked at the sky after I had spent the previous night in my mother’s hospital room, a couple of thoughts came across my mind. It was that I should always be grateful for the beauty of life and everyday life.

We all get sick in life and have to face death someday. We also must look at our loved ones’ situations of those kinds. What the morning sky taught me was that it would be me who imprints all the courses of life as beautiful and thinks about them over again.

The other thought was that I should realize how grateful I should be for everyday life, though so often I feel that it seems to be a tedious repetition of the same things over and over again every day.

I’m thankful for the sky that 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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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verything around is shouting that it’s spring.

I wish that you’ll have over-flowing gratitude every day in this pleasant and beautiful season.

From your clean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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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하늘

일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병원에 계신 장인, 재활원에 계신 어머니, 노인 아파트에서 어머니를 기다리시는 아버님 두루 얼굴 뵙고 오는 게 이 번 주 일과이다.

그렇게 집으로 돌아 오던 길, 쉼터를 찾아가는 거위 떼들과 오늘 할 일 마치고 지는 해를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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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 되면 가야 하는데…’를 입에 달고 사시는 세 노인들과 지내는 이즈음 내 생활을 위하여 멀리 호주에 계시는 홍목사님이 보내주신 60여권의 도서 목록을 받다.

도서목록의 이름은 <죽음 앞에서의 삶에 대한 참고 문헌>.

목사님께서 도서목록을 만든 까닭을 설명하는 말이다.

< 이 참고 문헌들은 ‘시드니 은퇴 목회자 모임’에서 하고 있는 ‘죽음 – 제 3의 이민 ’이라는 주제로 진행하는 ‘성서에 나타난 인물들의 죽음’에 관한 설교 자료를 준비하기 위하여 만든 도서목록…>

‘죽음 – 제 3의 이민 ’이라는 말을 곱씹다.

저녁 하늘 지는 해와 쉼터를 찾아가는 거위 떼들이 주는 푸근한 안식처럼 죽음을 바라볼 수 있다면… 삶은 마지막 순간까지 아름다운 것 아닐까?

과정(過程)

생각해보니 우리 아이들에게 미안하다. 아이들을 키우며 좋은 학군, 좋은 대학, 좋은 직업 등에 대해 우리 부부는 거의 무지, 무관심, 무대화로 일관했었다. 아이들은 그저 제 힘으로 컸고 우리 부부는 두 아이들이 대학을 마칠 때까지 등록금 한 푼 도와 준 적이 없다. 생각할수록 참 미안하다. 더 큰 미안함은 아이들 덕에 이 땅의 교육정책과 교육기관에 대해 조금은 눈을 뜨게 된 것이다.

이 땅의 노인의료에 대한 지식을 얻게 된 것은 모두 우리 부모님들 덕이다. 나도 이젠 법적 노인이므로 알아 두어야 할 지식인데 구태여 배울 것도 없이 몸소 체험으로 깨닫게 해 준 이들이 바로 부모님과 처부모이다.

어머님이 어제 오후 병원에서 퇴원해 단기 재활원으로 옮기시면서 우리 동네 노인 재활원과 양로 시설에 대해서는 거의 꿰차게 되었다. 어머니가 퇴원을 기다리던 오전 시간, 양로 시설에 계시던 장인이 응급환자로 병원에 실려가며 우리 부부는 동네 병원 구조를 훤히 그릴만큼 확실히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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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게 다 과정이다. 그저 때 되면 다 터득하는 삶의 과정이다.

며칠 전 어머니 병상을 지키며 날밤을 지새며 읽었던 호주 홍길복 목사님의 인문학 강의록 스물 두 번 째 들어가는 말이다.

1963년, 제가 대학에 들어간 첫 해 교양과목으로 수강한 ‘문화사 개론’ 첫 시간이었습니다. 대형 계단식 교실에 들어선 30대 초반의 젊은 김동길 선생님은 첫 말문을 이렇게 열었습니다.

‘제 과목에 수강신청을 하고 함께 자리한 여러분 모두를 환영합니다. 인류의 역사는 영원한 자유의 저변 확대사입니다. 이는 철학자 헤겔이 한 말입니다. 역사는 지난 날 오직 한 사람만의 자유에서 출발하여 몇몇 사람들의 자유를 거쳐 마침내는 온 인류의 자유를 향하여 확대 전진되어 왔습니다. 나는 이번 학기 강의를 통하여 인류의 역사란 자유의 저변 확대사라는 입장에서, 역사를 보고, 역사를 이해하고, 또 역사를 풀어가려고 합니다’

반짝이는 눈빛에는 이슬이 서려 있었고 강의는 피를 토해 내는 열변처럼 들렸습니다. 55년 전 대학에 들어가서 처음 들었던 ‘역사는 영원한 자유의 저변 확대사’라는 선생님의 선언은 당시 군부독재가 대학을 비롯하여 온 나라를 얽어 매던 마당에 저 뿐만이 아니라 대부분 젊은이들의 가슴을 뜨겁게 했고 고민하게 했습니다. 그 날 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이 ‘자유’라는 단어는 저의 사유의 틀을 형성시켜 온 중심개념 중 하나가 되어왔습니다.

이제는 90이 넘으셔서 선생님도 예전 같지는 않으시지만 사실 ‘젊은 날에는 진취적이고 혁명적이지 않는 지성인이 어디 있겠으며 늙어서는 보수적이고 사려 깊지 아니한 인생이 어디 있으랴!’ 하는 말을 상기하면서 지금도 가끔은 그 때 그 젊은 시절로 돌아가곤 합니다.

그의 글은 온전히 내 경험이었다. 1972년 봄 문화사(미국사였던 것 같기도 하고?) 개론. 그 강의실 첫 시간 김동길 선생님에게 똑같은 내용의 헤겔을 알게 되었고, 나는 이즈음에도 ‘자유의 저변 확대사’라는 말을 종종 쓰곤 한다. 다만 나는 그날 지각한 학생 하나를 수많은 학생들 앞에서 공개 비난하는 김동길 선생님에 대해 그리 마뜩치 않은 느낌이 있었다.

김동길 선생님과의 연은 좀 남다른 데도 있다. 민청련사건과 긴급조치 7호 사이 잠시 세월 좋았던 1975년 봄에 몇몇 친구들과 함께 김선생님댁에서 Henry David Thoreau의 Civil Disobedience의 특강을 받았던 기억과, 1980년 봄 5.18 직전 선생님 차로 학교를 빠져나와 도피했던 기억이다.

안타깝게도 그는 이제 노추(老醜)의 대명사가 되었거니와 나 또한 그와의 인연이 그리 자랑스럽지 않다만, 사실을 말하자면 그는 그제나 이제나 변함이 없다. 그제나 지금이나 그가 이해한 자유의 대상은 매우 한정적이었기 때문이다. ‘저변 확대’의 범위가 지극히 한정적이었다는 말이다. 그 것에 매어 있는 한 나이 들어 노추(老醜)다.

그에 대해 감사한 것 하나는 Henry David Thoreau를 알게 된 것이다. 나는 이즈음도 틈나면 내 가게 손님들에게 미국의 정신인 Henry David Thoreau를 소개하곤 한다.

홍목사님의 글은 헤겔의 변증법과 철학에 대한 설명으로 이어진다.

긴 설명 끝에 그는 내게 이렇게 묻는다.

<자유를 넘어서> – ‘자유’(정치, 사상, 종교, 양심 등)와 ‘평등’(경제, 성, 인종, 문화 등)은 양립할 수 없는 가치일까요?

또 다시 미안하게 나는 건방을 떤다. 십년 선배이자 은퇴 목사이자 내 선생이자 큰 형님이신 홍목사님의 물음에 대한 답이다.

‘아니, 그게 다 과정인 걸 아직도 모르셔요?’

출애굽과 신명기 고백으로 시작된 일찍 깬 인류의 어른들이 바라 본 세상으로 가는 길은 아주 더딘 걸음의 과정이다. 비단 성서적 가르침만이 아니다.

아주 오래 전 어른들의 깨우침을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인류 전체가 이해할 수 있는 날, 바로 하나님의 나라, 자유와 평등이 동시에 더불어 함께 하는 세상은 참으로 더디게 더디게 다가 온다.

우리네 삶이란 그 과정의 아주 작은 계단 하나.

그 것 하나 알고 그 과정에 순응하는 흉내라도 내고 가면 족할 일.  내 건방스럼에 꿀밤 하나  날리실 홍목사님 생각하며, 봄 내린 공원 길을 걷다.DSC049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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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집 뒷 뜰에 내린 봄은 늦저녁에야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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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과정이란….

그저 우린 과정이라는 것을 아는 것?

은총에

누워 계시던 어머니가  만 석 주 만에 의자에 앉으셨다. 어제 밤만 하여도 촛점 없던 눈 빛이 또렷해 지셨다.

나도 어느덧 여러 날 밤 이어진 병원 쪽 잠이 버거운 나이가 되었다.

병원에서 밤을 보내고 난 이른 아침,  가게 문을 열며 바라본 하늘이 내게 준 가르침이다.

하루 하루가 똑같은 지루한 일상이 얼마나 큰 은총인지!

하여,  오늘에 대해 감사와 일상을 잃어 버렸거나 빼앗긴 이웃들을 생각해 볼 수 있는 조금은 부끄러운 넉넉함에 대한 감사까지…

아침 하늘을 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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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5. 19

팥죽

갓 태어난 아이부터 마지막 숨을 내쉬는 이들에 이르기 까지 모든 삶엔 뜻이 있다. 하여 모든 삶은 소중하고 귀하다.

팥죽을 끓여보긴 처음이다. 어머니는 팥밥, 팥떡, 팥죽까지 팥을 참 좋아신다. 내친 김에 좋아 하시는 비린 생선도 굽고 우족과 사골을 푹 고았다. 어머니 덕에 아버지와 장인까지 우족탕과 비린 생선과 팥죽 상을 받으셨다.

어머니 계신 병원에 가면 환자들이 정상이고, 아버지 계신 노인 아파트엔 온통 노인들 뿐이고, 장인 누워 계신 노인 요양원에 가면 기력 쇠한 노인들 세상이다.

모든 삶엔 뜻이 있다는 생각은 아주 오래 전부터 이어 온 것이지만 이즈음에 들어 그 생각을 많이 곱씹는다.

제 삶에 뜻 있음을 알아야 가족과 이웃들 삶에 뜻을 새길 수 있다. 삶에 공감을 이루는 일이다.

아버지를 잠시 뵙고 나오는 길에 노인 아파트에 먼저 온 봄을 만나다. 바람은 아직 찬데 어느새 4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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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을 맞아 분주한 내 참 좋은 벗들이 전하는 소식에 좋은 세상을 그리며, 그저 생각 뿐인 나는 또 부끄럽고 안쓰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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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와 봄

기다리는 모든 것들은 더디 온다. 올 봄도 예외가 아니다. 일력은 3월 24일인데 간밤은 여전히 춥고 길었다.

만 열흘 만에 어머니는 정신이 드셨고 미음 몇 술 넘기셨다. 응급실로 실려 가시고 처음 며칠, 어머니와 헤어질 때가 되었나 싶었다. 의사는 마지막 의료 처방에 대한 가족들의 의견을 구했고, 누나는 그 몫을 내게 맡기려 했다. 나는 그 몫은 아들이 아니라 첫째인 누나 것이라고 양보했다.

그리고 오늘 아침, 어머니는 집에 가야만 한다고 우기셨다. 아버지 진지 차려 드려야 한다며… 오늘은 집에 못 가신다는 내게 어머니는 신신 당부하셨다. ‘아버지 절대 밖에 나가지 못하게 해라! 넘어지시면 큰 일 나신다!’ 아버지가 혼자 바깥 출입을 하신 것은 아주 오래 전 일이다.

갑자기 겨우내 밀린 피로들이 몰려 왔다. 간밤을 병실에서 보낸 탓만이 아니었다. 덕지덕지 마른 피멍들로 무거워진 입술을 달싹이며  아버지 걱정을 하는 어머니의 목소리가  안겨주는 피로였다.

30년 생업을 이어 온 자리, 마지막 정리는 내 손으로 하고 싶었다. 가게 자리를 옮기면서 마지막 빗자루질은 내가 하겠다고 맘 먹었었다. 하지만 나는 손을 빌렸다.

때때로 삶은 내 뜻과 다른 곳에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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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오후, 내 일상의 출퇴근 길 72번 도로는 한가했다. 절로 감기는 눈을 치켜 뜨며 아버지에게 향하다가 생각없이 공원 길로 들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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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곳에서 더디게 오는 봄을 만나다.

어쩜 모든 기다림은 이미 내 발끝에 닿아 있는 지도 모른다.

그리고 참 이상한 일 하나.

이미 홀로 되신 장인이나 어머니 누워 계신 며칠 동안 홀로서기가 낯 선 내 아버지가 왠지 뒷전이어도 전혀 어색하지 않은  이 분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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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아버진데….

무릇 봄은 땅에서 기다림은 맘에서 비롯되나 보다.

아무렴 어머니다.

다시 봄이다.

사랑 이야기

병문안 온 어느 장로가 어머니께 던진 덕담 하나
‘권사님, 집에서 기다리시는 바깥 어른 생각하시고 빨리 일어 나셔야죠! 권사님이 많이 사랑하시잖아요!’

산소 마스크 안에서 웅얼거리는 어머니 응답
‘사랑? 그거 그냥 편안하게 해 주는거야!’

내 어머니께 처음 들은 사랑 이야기

어머니

언제였을까? 기억을 되짚어 본다, 밤은 길고 딱히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기억을 더듬으며 시간을 보낸다, 십 년, 이십 년, 삼십 년, 사십 년 전 까지는 기억이 명료하다. 한 해 한 해 더듬으며 오십 년 저쪽 세월을 더듬는다. 여전히 기억에 남아 있지 않다.

갑자기 미간을 찌푸리시더니 거친 호흡을 내 뱉으신다.

육십 년 전을 더듬어 본다, 역시 없다.

어머니는 어느새 다시 편안하신 얼굴로 깊은 잠을 이어 가신다.

어쩌면 어머니와 단 둘이 한 방에서 밤을 보내는 일은  오늘이 처음 아닐까?

어머니는 깊은 잠속에서 아흔 두 해 세월을 넘나드실게다.

행여 정신 맑아지셔 병원 의자에서 쪽잠 자는 내 모습 보시면 벌떡 일어나서 재촉하실 게다.

‘이 눔아! 어여 일어나 집에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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