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하루

‘오늘 교회하고 예배 어땠어?’ 엊그제 딸아이가 던진 물음이다.

어제 낮에 내 일터로 전화를 한 장인은 말했다. ‘외출하고 돌아오니 뭔가 좀 이상해. 여기 반란이 일어난 거 같아!.’ 장인이 장기 요양원에서 꼼작 않고 누워 계신지는 이미 몇 달이 지났다.

엊저녁엔 일을 마치고 돌아와 귀가 전화 인사를 드리는 내게 어머니가 물었다. ‘너 오늘 일 안나갔었니? 아까 너희 집에 들렸더니 네 차가 집 앞에 있더라.’ 어머니 역시 누군가의 도움없이 집을 나서지 못하신지 여러 달 째이다.

장인이나 어머니나 이즈음 정신이 많이 오락가락 하신다. 때 되어 겪는 수순이다. 아직 정신이 맑으신 아버지도 기분이 크게 오락가락 하시기는 마찬가지다.

이런 저런 연유로 딸 아이에게 한 번 간다 간다 하면서 미루다 큰 맘 먹고 길을 나선 게 엊그제였다. 모처럼 나선 길에 아들 내외가 함께 했다. ‘올라 가마!’라는 내 말에 딸아이가 ‘어디 가고 싶은데 있느냐?’고 물었었다. 나는 아이가 다니는 교회엘 한번 가보고 싶었다.

아들 내외가 다니는 교회엔 가본 적이 있지만 딸아이가 다니는 교회에 대핸 그저 아이의 이야기만 들었을 뿐이었다.

멋진 brunch에 이어진 교회 안내, 예배 후 Brooklyn Bridge 걷기와  인근 상가와 강변 안내 그리고 풍성한 저녁 식탁, 오가는 교통편 까지 딸아이의 준비와 배려는  매우 세심하고 고왔다.

서울내기인 내게 도시는 어느새 낯선 곳이 되었다. 높고 복잡하고 소란스러움 속에서 졸음이 자꾸 밀려왔다.

DSC05815DSC05820DSC05821DSC05822DSC05829DSC05845

DSC05889

사람사는 곳엔 어디나 사람들의 일상이 있고, 그 일상에 녹아 있는 아름다움도 있을 터.

DSC05819DSC05853DSC05866DSC05887DSC05888DSC05892DSC05899DSC05941DSC05944

그 복잡한 도시에서 우리 가족이 저녁상을 함께 나눈 곳은 ‘초당골’이었다. 딸아이는 그 ‘초당골’에서 내게 물었었다. ‘오늘 교회하고 예배 어땠어?’

소주 한 잔에 풀어진 나는 아이들에게 말했었다.

DSC05971

‘오빠 내외가 다니는 교회나 네가 다니는 교회 예배 형식과 분위기는 솔직히 아빠 취향은 아니란다. 그런데 그게 옳고 그름의 문제도 아니고 중요하지도 않다고 생각해. 믿음을 표현하는 방식엔 정말 여러가지 많은 것들이 있겠지. 그 여러가지들을 인정하면서 자유로워지는게 진짜 믿음이라고 아빠는 생각해. 주일 하루 예배가 일주일 동안 너희들이 사는 일에 기쁨이 된다면 좋겠어. 그런 뜻에서 오늘 참 좋았어.’

흔쾌히 하루를 함께 한 아들과 며느리, 딸아이가 고개를 끄덕여 주어서 얼마나 고마웠던지…

DSC05859DSC05964DSC05912DSC05947DSC05797

언제나 그렇듯 웃음은 아내로 부터 이루어졌던 하루를 새기며.

DSC05924

 

 

길 걷기

길을 따라 길을 걷다.

이즈음 틈나면 걷는 길 위에서 얻는 즐거움이 크다. 크다 하지만 뭐 행복 운운할 만큼 대단하지는  않거니와 삶의 뜻을 따질 만큼 깊지도 않다. 그래도 그 즐거움은 여전히 크다. Middle Run Valley 숲길은 그저 길을 따라 걸으며 얻는 즐거움이 아주 크다.

풀숲을 헤집고 걷는 길은 문득 신촌 안산 숲길에 가 닿기도 하고, 아름드리나무들 사이로 스민 오월 햇살에 홀리다 내 스무살 언저리 무주구천동에 이르기도 한다.

즐거움은 그에 그치지 않는다. 우리 부부가 노인들 식당이라고 부르던 Perkins Restaurant 가까이에 이런 깊은 숲길에 있다는 점이다. 올들어 아내와 내가 아침식사를 가장 많이 하는 곳, 바로 Perkins Restaurant이다. 집과 가게를 오가는 길 한 가운데 있는 숲길이다.

한동안 이런저런 이유로 하루 길 넘는 먼 여행은 나설 형편이 되지 않았다. 그러다  동네 길을 찾아 걷기 시작한 일인데 그 즐거움이 여간하지 않다.

내 생각과 다르게 일상화 된 삶 역시 살만한 것이다. 아무렴!
DSC05655 DSC05656 DSC05657 DSC05659 DSC05665 DSC05673 DSC05676 DSC05681 DSC05687 DSC05688 DSC05694 DSC05695 DSC05696 DSC05697 DSC05699 DSC05701 DSC05706 DSC05713 DSC05716 DSC05719 DSC05720 DSC05722 DSC05724 DSC05740 DSC05741

이따금 산악용 자전거를 타고 길을 달리는 이들과 반려견과 함께 뛰는 젊은이를 만나기도 하고, 옛풍습을 따라 사는 Amish 마을 처자나  늙어가는 남편이 불안한지 잔소리를 이어가는 내 또래일 마나님과 그들 부부의 길을 안내하는 반려견을 만나기도 하며…

연휴에 느긋한 마음이 되어, 길안내 표지를 쳐다보지 않고 그저 길을 따라 숲길을 걸었다.

 

연휴에

어제 한인 모임에 다녀온 아내가 두 식구 먹기엔 과한 양의 오이와 부추를 가져왔다. 몇 봉지 나누어 교회 식구들과 함께 한다고 아내가 나간 후, 나는 오이 소박이를 담다. 모처럼 이런 저런 염려 없는 연휴이므로.

집을 나서 강변 길을 걷다. 미국인들도 Delaware하면 Dela… where?한다는 작은 주의 제일 큰 상업도시 윌밍톤시를 끼고 도는 Christina 강변 산책로를 찾았다.

DSC05516

강변길로 들어서며 만난 기차길에서 엊저녁 찾아 뵌 선배가 떠올라 한참을 서 있었다. 암과 오래 싸워 온 선배는 이젠 그 싸움을 정리하는 듯 담담히 오래 낮은 목소리를 이어 갔었다. 함께 했던 예닐곱 벗들은 나를 제외하곤 선배와 함께 조국의 민주와 통일이라는 생각으로 하나 되어 청년 시절부터 오늘까지 함께 한 이들이다. 어느 사이 삶과 죽음이 하나로 이어지는 삶을 고뇌할 나이에 들어섰다.

DSC05531 DSC05532
산책로 입구에 있는 안내소를 들어서니 박제된 여우가 맞는다. 여우는 내가 사는 동네에 흔한 동물 가운데 하나다. 언젠가 동네 산책 중 모퉁이 길에서 마주친 여우와 내가 서로 기겁을 해 놀라 뒷걸음쳤던 생각이 떠올라 웃다.

DSC05524

숲길이나 강변길이나 새소리는 맑고 경쾌하다. 마주하는 사람들도 여유롭다.
DSC05563DSC05578DSC05607DSC05633DSC05589DSC05628DSC05629DSC05586DSC05603DSC05611DSC05635DSC05636DSC05639
 여름이다. 온 몸을 땀으로 흥건히 적신 후에 집에 돌아오다.

저녁나절, 형제들 모두 함께 모여 아버님 생신 잔치 상 나누다. 노인들 함박 웃음 오래 이어지다.

05261917440526191935b

오늘, 5월 19일

펜주 Kennett Square에 있는 Anson B. Nixon 공원 길을 걷다.

오월 햇살 가득한 숲속 색깔은 참 고았다. 빛과 함께 속삭이는 새소리, 물소리, 이따금 마주하는 얼굴들이 건네는 밝은 목소리에 한 주간 노동의 피로를 씻다.

DSC05402

DSC05419

DSC05420

DSC05421

DSC05424

DSC05453

DSC05454

DSC05408

호수가에서 만난 가족들의 모습은 모두가 정겹다. 이따금 홀로 이고 싶은 충동은 어린 오리에게도 인다.

DSC05427

DSC05440

DSC05488

DSC05490

DSC05504

야외극장에서는 성당 식구들이 드리는 미사가 한창이었다. 야외 행사 안전을 위해 경찰들이 배치되고 구급차도 대기하고 있다. 미사가 진행되는 동안 누군가는 신자들을 위한 먹을 거리와 아이들을 위한 놀이를 준비하고 있었다. 무릇 모든 신앙은 지금을 벗어날 수 없으므로.

DSC05507

DSC05508

DSC05510

DSC05445

저녁 나절엔 필라에서 있은 ‘제 39주년 5.18 민주화 운동 기념식 및 강연회’에 참석하다. 가까이에 이런 행사를 준비하는 이들과 참여하는 이들이 있어 고맙다.

때때로 학자 또는 전문가들의 이야기는 목사님들의 설교 만큼이나 공허할 때가 있다. 허나 그 역시 숲 속 색 고운 빛깔의 하나 일수도 있을 터.

오늘 하루에 감사.

오월 편지

내 가게에서 만나는 이웃들에게 오월 이야기를 전하다.

5-19b

이따금 제가 일요일 아침에 보내 드리는 이메일 편지를 잘 읽고 있다는 인사를 받곤합니다. 이럴 때면 미처 제 속 깊은 감사를 다 드러내지 못하고 그저 감사하다는 말과 함께 수줍게 웃곤 합니다. 이 편지를 쓸 때마다 단 한사람에게 만이라도 일요일 아침에 좋은 기분을 갖게 할 수 있었으면 하는 생각을 한답니다.

오늘은 평소와는 다른 이야기를 하나 드립니다. 살며 누구에게나 아프고 어두운 기억들이 하나 둘 씩은 있을 것입니다. 제게도 아직 깊게 남아 있는 아픈 기억이 있답니다.

제가 이민을 오기 전 한국에서 살았던 1980년 5월의 기억입니다. 당시 한국은 18년 동안  오래 집권했던 박정희 대통령이 암살된 후 정국이 매우 혼란했답니다. 군사 쿠데타로 집권한 박이 죽자, 새로운 군부 쿠데타 세력인 전두환이 집권하기 위해 많은 사람들을 살상한 사건이 일어 났답니다. 한반도 서남쪽에 있는 광주시에서 일어난 사건이었습니다. 한국인들이 광주 민주화 운동이라고 부르는 사건입니다. (The Gwangju Uprising을 클릭하시면 이 사건에 대한 설명이 있습니다.)

저는 당시 학생이었고 광주가 아닌 서울에 살고 있었습니다. 저는 광주 민주화 운동과는 상관없는 학생 시위 사건으로 당시 군대가 장악한 조사기관에 잡혀가 모진 고문을 당했답니다. 저 뿐만 아니라 제 아버지도 체포되었답니다.

국가 또는 체제의 폭력에 대한 쓰리고 아프고 어두운 기억입니다. 이후 저는 미국으로 이민을 왔기에 그 곳에서 살며 민주주의 국가를 이루어 낸 제 친구들에게 늘 미안한 마음이 있답니다.

제가 틈틈이 꺼내 읽고 하는 책 가운데 심리학자이자 인지 과학자인 스티븐 핑커의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라는 책이 있답니다.

그는 여러가지 역사적 자료들을 제시하며 사람사는 세상은 폭력이 감소되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사람들 안에 공존하는 ‘천사’와 ‘악마’의 본성들 중 선한 본성이 악한 본성을 누르고 점차 덜 폭력적인 세상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주장한답니다.

사람마다 다 생각이 다르니 핑커의 주장에 찬반이 있을 수 있을 것입니다. 다만 제가 그의 주장에 100% 동의하며 그렇게 사람들이 노력해야 마땅하다는 것이 있답니다.

<우리가 오늘날 이런 평화를 누리는 까닭은 옛 세대들이 당대의 폭력에 진저리치면서 그것을 줄이려고 노력했기 때문이다.>라는 그의 말입니다.

오늘은 조금은 엉뚱한 편지를 띄웁니다.

메모리얼 데이가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더 좋은 세상을 위해 자신을 희생한 이들을 생각해 보며…

당신의 세탁소에서

DSC05398-5-19

From time to time, I heard from customers that they were enjoyed reading my weekly letters which I had been sending on Sunday morning. Then, I just thanked them with a shy smile without disclosing my deep gratitude fully. When I write the letter, I always wish that it will have the reader, even if only one person, get good feelings on Sunday morning.

I’d like to tell you a story which may be somewhat different from the usual ones. We all may have a few dark and painful memories. I have a painful memory which remains deep in my mind.

It is a memory of May 1980 when I lived in Korea before I came to America. At that time, the political situation was in turmoil, after President Park, who had been in power for 18 years since seizing power in a military coup, was assassinated. Shortly after he died, a grave incident of killing and wounding many people happened in Gwangju, a city in the southwestern region of Korea. It was an incident which Chun Doo-hwan, a new leader in military power group, committed to seize power. It is now called “Gwangju Pro-democracy Movement” by Korean people. (If you click “The Gwangju Uprising,” you’ll find the information of the incident.)

At that time, I was a college student and was living in Seoul, not in Gwangju. I got arrested in a student demonstration, which was not related to the “Gwangju Pro-democracy Movement,” and had to suffer from brutal torture by the investigation agency which was under the control of the military power. Even my father was arrested, too.

It was a heartbreaking, painful and dark memory about the violence of the state or system. As I moved to America since then, in my mind there is still lingering a guilty feeling about those friends who stayed there and accomplished the democratization of Korea.

One of the books which I read from time to time is “The Better Angels of Our Nature: Why Violence Has Declined” by Steven Pinker who is a cognitive psychologist, linguist, and popular science author.

Pinker argues that violence has decreased over multiple scales of time and magnitude with a large volume of historical evidence. In his view, human nature comprises inclinations toward violence and those that counteract them, the “better angels of our nature.” With the application of the other better angels of our nature over the former, the world is moving toward a less violent one.

As everyone has their own opinion, there may be disagreement about Pinker’s arguments. But, there is one thing that I agree with him 100% percent. In addition, I think that all of us should do as he said. He said:

“…we enjoy the peace we find today because people in past generations were appalled by the violence in their time and worked to reduce it, and so we should work to reduce the violence that remains in our time.”

Today, I’ve told you a rather unusual story.

Memorial Day is not far from today.

With the thoughts about those who sacrificed for a better world.

From your cleaners.

 

게으른 하루

얼마 만일까? 이 게으름은.

창밖 풍경을 내다 본 일 말고는 한 일이 없다.

낮잠을 탐하거나 먹고자 손을 놀리지도 않은 게으른 하루였다.

늦은 저녁 안부를 묻는 딸아이에게 한 말.

“아빠가 정말 아무 것도 안하고 하루 해를 보냈네.”

딸아이의 응답.

“ Oh So Good!”

숲과 가족

올해 오월은 매우 습하다. 내일은 온 종일 비 소식이다. 일찍 가게 문을 닫은 토요일 오후에 걷는 공원 길에도 비가 오락가락한다.

어제 가게로 배달된 꽃병으로 아내의 기분은 오늘까지 화창하다. 딸아이가 보낸 꽃병은 아내에게 뿐만 아니라 내 어머니에게도 배달되었단다. 어제 모처럼 손녀 딸로 하여 가벼워지신 어머니의 기분도 오늘까진 이어질 터.

DSC05308

나는 그저 내 기분에 취해 토요일 오후 공원길을 걷다.

고등학교 때 세계사를 가르치셨던 선생님 생각이 났다. 그의 이름은 기억나지 않는다. 물론 그의 수업은 젬병이었다. 그 이에 대한 기억은 딱 하나. 아마도 신장 결석이었을 게다. 그렇게 제 몸에서 나온 돌을 사리(舍利)라며 반지로 만들어 끼고 다니며 아이들에게 자랑했던 선생이었다. 이젠 그도 이해할 수 있는 나이가 되었다.

일주일 이상 계속된 통증에도 불구하고 내 속 사리?(舍利)는 나올 생각이 없단다. 소변, X-ray, 초음파 등 검사 결과에 따르면 내 나이에 비해 모든 게 좋단다. 의사는 이번 주말 상태를 보고 ct촬영을 해보잔다. 나는 이쯤 되었다 싶다. 건강한게지 뭐.

어제 딸아이가 고마워 아이에게 전화를 했다. Answering machine 기계음만 들릴 뿐이었다.  이 순간까지 딸아이의 목소리는 못 들었다. 내겐 아주 익숙한 일이다.

길을 걷다가 어렴풋 떠오른 생각하나 있어 집에 돌아와 꺼내 읽다. 헨리 데이빗 소로우(Henry David Thoreau)의 생각이었다.

“그대가 숲 근처로 다가가거나 혹은 숲을 통과하며 산책을 할 때, 나무들에게서 큰 감명을 받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한 그루의 나무에 바싹 다가가보면 놀라운 것들을 발견하게 된다. 이렇게 숲은 대지의 특이한 엄숙함을 더해 주면서 고풍스러움을 풍긴다.”

가족 역시 Thoreau가 말하는 숲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을 터.

DSC05366DSC05364DSC05355DSC05351DSC05345DSC05344DSC05341DSC05328DSC05323DSC05322

십여 년 전에 결석증으로 크게 고생한 적이 있다. 허리를 가르는 듯한 통증을 견디다 못해 응급 환자로 병원을 찾았었다. 요 며칠 사이 그 당시와 엇비슷한 증상이 몸을 괴롭힌다. 아무래도 내일엔 의사를 만나야 할 것 같다.

아침 나절 한바탕 폭우가 지나가고 비가 오락가락하는 오후에 숲길을 걸었다. 내 가게 오랜 단골이자 벗인 Charlie가 소개해 준 공원 길이다.

지난 주간에 또 한 차례 다리 수술을 받은 Charlie가 십 여년 전 까지  그의 아내와 함께 즐겨 걸었다는 길이다. 그가 이 산책길에 대한 장황한 설명 끝에 덧붙인 말이다. You might like it.

그 길을 걷는 동안에도 통증은 멎지않고 오갔지만 그 길이 내게 준 위안은 매우 크다.

늦은 저녁 노자(老子)의 한마디가 낮에 길에서 얻은 위안을 크게 더하다.

“내게 큰 병(걱정)이 있음은 내게 몸이 있기 때문이다. 몸이 없다면 어찌 병(걱정)이 있으리요. 吾所以有大患者, 爲吾有身. 及吾無身, 吾有何患.”

DSC05247 DSC05249 DSC05252 DSC05253 DSC05258 DSC05259 DSC05263 DSC05267 DSC05281 DSC05282 DSC05286DSC05290 DSC05298

숲길

봄과 여름 사이의 빛깔. 오늘 숲길이 입고 있던 옷 색깔이다. 비록 한 시간 남짓 짧은 시간이지만 아무도 마주치지 않고 홀로 걷는 숲길에서 맛보는 기쁨은 참 크다.

한 주간 쌓인 내 삶의 피로 위에 세상 뉴스들이 얹혀주는 무게를 이고 걷다가 숲의 여린 빛깔과 고목에 깊게 패인 주름이 주는 위안에 내 걸음은 경쾌해 진다.

솔직히 교회에 가거나 내 방에 앉아 기도를 드리는 것보다 숲길을 걸을 때 나는 신에게 더 가깝다.

DSC05194 DSC05196 DSC05197 DSC05205 DSC05206 DSC05211 DSC05214 DSC05218 DSC05222 DSC05225DSC05229 DSC05233

한 걸음만

참 이상하게 시작한 하루였다.

새벽기도회에 갔던 아내에게서 전화가 왔다. 시간되어 들어 오면 되는 일인데… 이럴 땐 좀 불길하다. “동네 입구에서 경찰들이 집엘 못 들어 가게 하네, 어떡하지?” 아내의 뜬금없는 소리에 내 대답은 퉁명스러웠었다. “뭔 소리야? 아침부터… 그냥 가게로 가!, 난 시간되면 나갈게!” 아내의 목소리가 커졌다. “그냥 나와요! 토요일인데… 한 차로 가면 되지!

봄비는 왜 그리 거센지? 이른 아침 우산을 바쳐 쓰고 터덜 터덜 걷는 길, 동네 입구에서 자동소총을 내게 겨눈 경찰을 보며 두 다리가 후들 거린다.  중무장한 경찰이 한둘이 아니다.

경찰 하나가 내게 묻는다. ‘어디서 어디로 가는 길이냐?’고. “조기~ 우리 집에서 나와, 요 입구에서 나를 기다리는 내 마누라에게 가는 길이다. 가게 일 나갈려고…”

그렇게 시작된 아침이었다.

세탁소 경력 30년, 이즈음 내 신조 가운데 하나, ‘손님과는 절대 다투지 않는다’.  아뿔사, 오늘 아침 가게에서 그걸 깨 버렸다.

일이 손에 안 잡히고 답답해, 그냥 가게를 나섰다. 동네 저수지 길을 걸으며 깨닫다.

‘쯔쯔, 그저 한걸음 비껴서서 보면 다르게 보일 일인데…’

DSC05140 DSC05141 DSC05143 DSC05149 DSC05155 DSC05156 DSC05168 DSC05174

가게로 돌아와 뉴스 검색을 해보니 총기 자살을 시도하려는 어느 사내로 하여 내가 사는 평화로운 동네가 어수선 하였단다.

e4503424-3bb1-4029-b46b-6d07a81a34c0-MicrosoftTeams-image_1

577d87bc-ac94-451f-8817-75fd93014d95-MicrosoftTeams-image

‘쯔쯔쯔… 봄인데… 한걸음만…’

DSC05190

DSC05189

DSC051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