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에

오래 된 친구와 밥 한끼 나누며 그저 그렇게 사는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은 즐겁다. 엊저녁 모처럼 그런 시간을 누렸다.꽉 찬 나이의 아이들 이야기, 어느 날 문득 낯선 모습으로 다가와 어느새 익숙한 모습이 되어버린 노인들 이야기, 그리고 우리들의 은퇴와 노후 문제… 친구부부와 우리 내외는 그저 그렇게 사는 이야기들로 배불렀다.

그리고 빠질 수 없는 한국 뉴스와 이야기들 – 사실 내 기억 속 한국은 이미 외국이다. 그것이 이승만 또는 박정희 시대든 박근혜 또는 문재인 시대든 어쩌면 모두 외국이다. 나는 모든 면에서 내가 살던 때 보다 엄청나게 좋아 진(진보된) 한국이 자랑스럽다.

물론 무엇이라 일컫든 한반도에서 사는 공동체에 대한 인식도 없고 더불어 함께 사는 뜻은 말할 것도 없이 그저 돈에 의해서만 성공이 정의되는 사회로 다가오는 뉴스들도 넘쳐 나지만… 어디 그게 거기 뿐이랴! 그 또한 옛시절 보단 나아진 것이려니. 다만 때론 무도하고 뻔뻔스런 모습들이 도가 지나친 정도가 극에 달했을 지언정. 그 또한 더 큰 진보가 눈 앞에 다가선 징조이려니!

친구가 은퇴 후 남쪽이 어떨까 한다는 말에 나는 손사래 치며 말했다. ‘이 사람아, 너무 멀리 가진 말게나. 그래도 종종 하룻길에 만날 수 있는 거리에서 살자구!’

파란 하늘에 구름들 제 흥에 겨워 노는 일요일,  나는 Pocono 산 속을 거니며 놀았다. 옛날과 오늘, 그리고 내일에 대한 생각들이 뒤섞인 채로.

DSC06912 DSC06925 DSC06940 DSC06942 DSC06946 DSC06949 DSC06960 DSC06965 DSC06969 DSC06975 DSC06982DSC06989 DSC06990 DSC06994 DSC06999

늦은 저녁, 한국에서 방문한 조교수 내외와 와인 한잔 하며 시간을 보내다. 삼십 여 년 전 이 곳에서 그가 공부하던 시절 함께 했던 이야기들과 서로의 이즈음 이야기, 여기서 박사 과정에 들어 선 그의 자식 이야기 등 그렇게 우리들의 어제와 오늘과 내일을 나누며…

하루를 보내며 문득 든 생각 하나.

어느새 내가 뭔가 이뤄야 할 나이가 아니라 그저 음미해야 할 때에 이르렀다는…

어느 소천(召天)

‘손할머님께서 7월 18일 소천하셨습니다.’

오늘 필라델피아에서 세월호를 기억하는 사람들의 모임 대화방에서 본 공지다.

이즈음 나는 노인들의 죽음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며 산다. 노부모들의 이즈음 생활 때문이기도 하거니와,  제 아무리 백세 시대라 하여도 이젠 남 일만이 아닌 가까이 다가오는 내 일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녀의 이름 손정례. 전남 강진 사람. 세월호 참사 이후 그녀를 만났을 때 나이 구십이었다. 필라델피아 인근 한인들 몇몇이 모여 세월호 참사 일주기를 되새기는 날, 그녀는 한풀이 춤을 추었었다.

0416152020

얼핏 얼핏 그녀의 지나온 삶에 대한 이야기를 스치듯 들었다만, 내 기억에 깊이 새겨진 것은 그녀의 춤이었다.

그리고 지난 해 그녀가 병원과 양로원을 오가며 마지막 길에 접어들 무렵 양로원에서 잠시 함께 했던 시간,  그녀의 신산했던 삶을 가늠할 수 있었다. 세월호 가족들의 아픔이 오롯이 그녀의 가슴에 새겨져 춤사위로 풀어낼 수 있었던 까닭일 게다.

phila-Mrs-Shon

기억 또는 기억들.

필라 인근에 살며 세월호에 담긴 아픔들을 잊지 말자며 함께 해 온 이들의 기억 속에  세월호 아픔과 함께 남을 여인 손정례.

그녀의 못다 푼 한들과 지금 살아 기억하는 자들이 풀어야 할 한들이 얽혀 이어지는 우리들의 삶 가운데 그녀의 꿈들이 이어지기를….

 

길을 걸으려 두어 시간 길을 달렸다. 한때 뻔질나게 달렸던 길이다. 신문을 한답시고 뉴욕, 필라, 볼티모어, 워싱턴을 무던히도 돌아다녔었다. 북쪽 길인 뉴욕, 필라는 지금도 여전히 오가곤 하지만 남쪽인 볼티모어나 워싱턴 쪽은 정말 오랜만이었다. 버지니아 쪽 나들이는 거의 십여 년 만이다.

낯익은 표지판 지명들과 함께 떠오르는 많은 얼굴들로 십 수 년 전 세월이 나와 함께 달렸다.

생각할수록 낯 뜨거운 내 치기(稚氣)였다. 이민(移民)과 한반도 그리고 통일과 평화를 운운하며 다녔던 길이었다. 내 치기에 대한 부끄러움은 없다. 다만 그 길을 쉽게 접을 수 밖에 없었던 내 한계에 대한 부끄러움은 여전하기에  분명 치기(稚氣)였다.

옛 생각으로 두어 시간 달려 도착한 곳, 버지니아 Potomac 강변 Great Falls 국립공원이다.

DSC06827 DSC06828 DSC06841 DSC06905

풍광(風光)은 이름처럼 대단했다. 그러나 정작 나를 매료시킨 것은 길이었다.

DSC06835 DSC06850 DSC06881 DSC06895 DSC06898 DSC06902 DSC06903

바위 길, 숲길, 오솔길, 자갈길, 모랫길, 돌길 등 걷는 맛이 정말 쏠쏠한 곳이었다. 바위 길을 걷다  문득 휘어잡은 나무가지가 그리 반들거릴 수가 없었다. 나무는 얼마나 많은 이들에게 손을 빌려 주었을까?

DSC06838

그리고 마주친 사람들과 더불어 함께 숨쉬는 생명들에게 눈인사 건네며 걷는 길에서 느낀 즐거움이라니!

DSC06852 DSC06855 DSC06856 DSC06863 DSC06867 DSC06897

DSC06858 DSC06869 DSC06873 DSC06889 DSC06893 DSC06894 DSC06906

삶은 계란, 사과 몇 쪽, 포도 몇 알과 빵 한 쪽… 그 달콤함을 만끽한 길 걷기였다.

DSC06871

숲길로 들어서서 땀 닦으며 벗은 모자, 평소 모자를 써 본 적 없는 내가 아침에 집을 나서며 옷장에서 눈에 띄어 집어 든 것인데, 집에 돌아와 아내에게 들은 모자의 내력. – 이젠 장성해 서른을 바라보는 처 조카딸 아이가 초등학교 때 잠시 내 집에 머무를 때 쓰던 모자라고…. 무릇 모든 것에 연(緣)이 없는 것은 없을 터이니.

DSC06880

돌아오는 길, 일요일 오후 교통 체증은 두 시간 거리를 세 시간으로 늘여 놓았지만 그 길에서 되짚어 본 생각 하나. 사람 살이는 때론 정말 더디지만 결국 옳은(또는 신의) 길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는 뭐 내 믿음 같은 거.

딱히 통일 평화 운운 하지 않더라도 어디서나 그저 그런 사람들이 더불어 함께 사는 세상으로 나아가는 길.

오늘, 되돌아 부끄럽지만 부끄럽지 않은 길을 걷게 해 준 이길영 선생에게 감사를…

***때론 아내가 동행하지 않는 길이 편할 때도 있다. ‘더불어 함께’란 ‘홀로’를 인정하는 바탕 위에 서 있기에.

 

 

 

아침에

봄,  여름, 가을, 겨울… 해 뜨는 아침이 감사했던 날들은 얼마나 될까?

토요일 아침, 일터 가까이 제약회사 굴뚝 연기 사이로 떠오르는 아침 해를 마주하며.

DSC06799 DSC06802 DSC06803

연습 2 – 여름

폭풍우가 더위를 밀어내는 오후. 빗방울은 늘 순간일 뿐. 그저 스쳐 지나며 잊은 것들은 얼마일까. 이내 더위는 이어지고…. 여름에.

  1. 1. 19

부부

찌는 날씨가 이어진다만 내일이면 어느새 팔월이다. 귀뚜라미 소리 곧 듣게 될 게다.

일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 아내가 묻는다. ‘저녁 뭐 먹을까?’

내 대답 ‘글쎄… 한달 수고했으니… 사먹고 들어가?’

이미 동네 어귀에 다다라 나눈 이야기의 결론.

집 가까이에 있는 닭요리 전문 식당에서 시켜온 닭튀김 몇 쪽과 샐러드…. 그리고 라면 하나 끓여 나누어 먹는 맛도 제법이었나니.

DSC06791

DSC06782 DSC06788 DSC06789
닭튀김 몇 쪽 담아 온 포장 상자에 담긴 가게 홍보 문구에 배부르다.

DSC06795

낯설게 만나 벗이 되고 사랑이 되고 때론 덤덤한 이웃이 되고…. 적이 되기도 하고…. 뗄 수 없는 끈끈한 동지가 되기도 하고….. 다시 벗이 되고 사랑이 되는….. 낯설게 만나….

  1. 31. 19

조화(調和)

들판을 채우는 소리와 나비의 몸짓, 가만히 그 소리와 몸짓에 응답하는 꽃들과 풀잎들 – 산책을 통해 맛보는 조화다. 거기 내 마음도 어우러져.

초보(初步)

참 이상한 일이다. 올들어 몸이 딱 반쪽으로 줄어드신 장인의 얼굴 크기는 예나 다름없다. 반면 한 두어 주 사이에 몸이 쫄아 드신 어머니는 얼굴도 그만큼 작아지셨다. 덩달아 아버지의 등도 딱 고만큼 더 휘어지셨다.

어깨수술 후 운동부족인 아내와 함께 하루 길 거리에 있는 강가 나들이에 나설 요량이었는데 간밤에 자꾸 노인들 모습이 눈에 밟혀 그만 두었다. 아내는 아내대로 두 주나 교회에 못 갔으니 주일예배 참석이 우선이라며 잘 되었단다.

나는 해가 뜨거워지기 전에 길을 좀 걷자는 생각으로 집을 나섰다. DSC06665 DSC06683 DSC06697 DSC06700 DSC06726 DSC06733

쉬는 날, 길을 걸으며 만나는 숲과 나무들, 들꽃과 나비와 새들, 그리고 웃는 얼굴로 인사를 건네며 스치는 사람들과 함께 숨쉬며 눈에 담는 순간들은 이즈음 내가 누리는 축복이다.

DSC06651 DSC06654 DSC06687 DSC06701 DSC06709 DSC06737

오늘은 유독 노란 들꽃들이 눈에 담긴다. 노란색은 돌아가신  장모가 참 좋아하셨다.

DSC06660 DSC06678 DSC06731 DSC06748DSC06676 DSC06680 DSC06712 DSC06716 DSC06738 DSC06741 DSC06751

두어 시간 걸었는데 어느새 해가 몹시 따갑다. 생각해보니 걷다 마주쳤던 이들 거의 모두 모자를 쓰고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스쳐간 생각 하나. ‘난 산책 뿐만 아니라 어쩜 아직 모든 일에 초보가 아닐까?’

DSC06746

등에 홍건한 땀을 배고 필라 한국식품점으로 달려 올라갔다. 어머니 좋아하시는 각종 젓갈 조금씩 담아 내려온 내게 하신 어머니 말씀. ‘그래 내가 며칠 전부터 짭조름한 게 생각나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들린 장모는 여전히 노란색 꽃에 취해 계셨다.

DSC06773

먼 길 안 나서기 참 잘한 하루였다.

그의 물음

이제 겨울방학을 끝내고 새 학기를 맞아 인문학교실을 다시 여신다는 홍목사님께서 새 학기 첫 시간 강의 내용을 보내 주셨다.

‘우린 일주일에 이틀은 손녀를 봐주고 다른 날은 책 읽고 산책하고 사람들 만나서 수다 떨면서 늙어가면서도 아직은 그런대로 잘 지냅니다.’ – 아직도 추위가 머물고 있다는 호주에서 지내시는 목사님 내외분 일상의 안부만으로도 나는 푸근해진다.

목사님의 인문학 강좌는 아직 늙어 간다기 보다는 나이 들어 간다는 말이 좋은 내게 나이 들어 가기에 느낄 수 있는 삶의 풍요로움을 더해준다.

이번 강의에서 목사님은 인간의 본성과 우리들이 환경인 자본주의에 대해 설명하시곤 이렇게 묻는다.

<우리에게는 이 개인주의적이며 탐욕적 인간의 본성을 극복해 내고 진정 ‘능력에 따라 일하고 필요에 따라 나눌 수 있는’ 아름다운 이상적 세계는 불가능 할까요? 개인의 소유와 자유를 넘어서서 공동체 모두를 행복하게 만들어 주는 것은 불가능한 일일까요? 진정 인간은 인간의 본성을 이겨 낼 수가 없을까요?>

나는 ‘인간’이나 ‘세계’가 버거워 ‘나’와 ‘오늘의 나의 삶’으로 그 말들을 대체해 그 질문을 받는다.

이어지는 목사님의 질문.

<아니 그 정도 까지는 아니라 하더라도 탐욕적이며 야수적 인간성과 천박한 자본주의를 넘어서 우리 모두 더불어 함께 살아가려고 몸부림 쳐온 사람들은 정말 없을까요?>

그리고 목사님 스스로 ‘더불어 함께 살아가려고 몸부림 쳐온 사람들’로 꼽으신 네 사람, 신영복과 막스 베버, 헨리 조지와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가 그들이다.

그 중 눈에 새롭게 확 뜨인 막스 베버의 말이다.

<막스 베버는 인간성 속에 내재되어 있는 자본주의의 부정적 측면인 개인주의와 탐욕과 이기심을 이겨내기 위한 처방을 이렇게 제시합니다 “당신이 갖고 있는 직업은 돈이 목표가 아니라 하느님이 주신 소명입니다. 그러므로 맡겨진 일에 부지런 하십시오. 많이 버십시요 그러나 검소하게 사십시오. 아끼고 절약해서 모은 것은 다른 사람들과 나누십시오”>

많이 버는 것과 나누는 것은 아직도 내 삶과 멀지만 내 직업이 하느님이 주신 소명으로 느끼고 부지런 하는 일과 검소하게 사는 일은 이 나이에 열심히 쫓는 일들이다.

이어진 그이의 물음들, 일테면  ‘함께’ ‘더불어’ ‘손잡고’ ‘소명’ ‘근검’ ‘절약’ ‘나눔’ ‘베품’ ‘필요한 만큼만’ ‘자연’ ‘자족’ 등은 끊임없이 흉내 짓이로라도 응답해야 하는데…

까닭없이 하늘 쳐다보던 날에.

DSC06638 DSC06640 DSC06643

더운 날, 책 한권

올들어 제일 덥단다. 어제 오후 서두르다 가게에 두고 온 것이 생각나 가게에 나가다. 이른 아침 가게 앞 주차장은 밤 사이 차려진 아침 밥상을 즐기는 새들의 잔치 마당이다.

DSC06631

해는 떠오르면서 이글거리기 시작했나보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들른 마트에는 이리 더운 날에도 눈에 늘 익은 일요일 아침 풍경 그대로다. 내 또래 중늙은이 또는 늙은 할배들이 장바구니 들고 물건 몇 가지 담는 모습들, 나도 이미 그 풍경에 잘 어울리는 소재다.

찌는 일요일, 수술후 회복 중인 아내와 함께 시원한 집에서 꼼작 않고 쉬기로 한다.

모처럼 책읽기 좋은 날, <미국 vs 유럽 – 갈등에 관한 보고서>를 재미있게 읽다. 저자 로버트 케이건(Robert Kagan)의 경력에 미 국무부 근무가 있는 것으로 보아 미국, 유럽 운운했지만 아무렴 미국에 치우친 시각으로 접근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으로 책장을 넘기다.

DSC06636

부시 부자와 그 사이에 끼었던 클린턴 시대를 중심으로 미국과 유럽의 역사적 경험들을 되짚거나 내일에 대한 생각들을 펼친 이야기라, 트럼프 시대를 살고 있는 오늘의 관점으로 보면 일견 수긍의 고개 짓과 도리도리 거부의 몸짓이 함께 하였다만 미국과 유럽 사이에서 어느 쪽에 그리 치우치지 않는 관점을 유지한 노력이 매우 돋보인다.

그리고 내가 기억하고 싶은 몇가지 노트들.

<유럽과 미국이 다같이 당면한 과제는 미국이 헤게모니를 장악한 새로운 현실에 다시 적응하는 것이다.>

<영토와 영향력 확대는 미국 역사에서 회피할 수 없는 현실이었다. 우연찮게 이뤄진 일이 아니었다. 세계에서 크나큰 역할을 담당하겠다는 야망은 미국인들의 특성 속에 깊숙이 자리잡고 있다. 독립 이래 아닌 독립 이전부터….>

<미국인들은 언제나 국제주위를 지향했지만 이런 국제주의 또한 항상 내셔널리즘의 부산물이었다. 미국은 어떤 행동을 취할 때 그 정당성을 초국가적인 기구에서 구하는 것이 아니라 미국이 따르는 제반 원칙에서 찾았다. 미국의 이익을 증진시킴으로써 인류 전체의 이익을 향상 시킨다는 점을 수많은 미국인들이 예나 지금이나 매우 쉽게 믿어 버리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다. 벤자민 프랭클린의 표현처럼 ‘미국의 대의가 곧 모든 인류의 대의인 것이다.’>

<한마디로 건국의 주역들이 말한 이른바 ‘타인의 견해에 대한 적절한 존중’에 더 많은 주의를 기울일 수 있다. 이런 점은 언제나 가장 지혜로운 방책이 되었다.>

그리고 또 하나.

<이차 세계대전이 종결된 지 근 60년이 지났음에도 프랑스의 한 관계자는 아직도 이런 조크성 이야기를 입에 담고 있다. “사람들은 ‘독일이 움직이지 않고 있으니 보통 일이 아니다’라고 말한다. 그러면 나는 ‘정말 그럴까?’라고 말한다. 독일이 움직이면 보통 6개월 뒤에는 상젤리제 거리를 행진하고 있을 것이다.>

유럽인들이 느끼는 독일에 대한 공포를 단적으로 설명해 주는 우스개란다. 그 공포를 누르고 있는 것이 미국의 힘이라는 Kagan의 말이고…. 이 대목에서 나는 문득 오늘의 일본과 미국을 떠올리기도 하고.

세월호를 기억하는 이들의 모임에서 만난 후배가 책정리를 한다고 하여 얻은 책, <미국 vs 유럽 – 갈등에 관한 보고서>로 몹시 더운 날 내 생각을 살찌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