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 그리고 관점(觀點)에

호들갑스런 일기예보가 지나치지 않을 때가 있다. 어제만 해도 늦가을이거니 했는데 기온이 뚝 떨어졌다. 일기예보처럼 오늘 밤엔 얼음이 얼 모양이다. 이번 주말에는 첫 눈도 내릴게란다. 이렇게 계절이 또 바뀐다.

오후에 좀 걸을 요량으로 찾은 Longwood Garden 풍경은 이미 겨울이었다.

곳곳마다 사람 손 닿아 가꾸지 않은 데 없는 정원일지라도 그 역시 계절을 따라가는 법, 자연을 담은 바깥 풍경은 흔히 하곤 하는 말 그대로 춥고 스산하고 을씨년스럽기 까지 하였다.

허나 사람의 욕심이 어디 끝이 있겠나? 실내 정원은 사람들의 손길이 만들어 놓은 꽃들의 세상이었다. 더하여 시간이 아무리 한겨울로 치달아도 그 계절이 주는 희망을 놓치지 않으려는 사람들의 장식으로 화려하게 꾸며져 있었다.

또 한번 이렇게 바뀌는 계절의 길목을 아내와 함께 손잡고 걷는 시간에 대한 감사의 크기라니!


그리고 관점에 대하여.

해마다 이 맘 때면 한번씩 읊조려보는 시 한편,

Shel Silverstein이 고백하는 ‘관점(Point Of View)’이다.

<관점>

추수감사절 만찬은 슬프고 고맙지 않다
성탄절 만찬은 어둡고 슬프다
잠시 생각을 멈추고
칠면조의 관점으로 만찬 식탁을 바라본다면.

주일만찬은 즐겁지 않다
부활절축제도 재수 없을 뿐
닭과 오리의 관점으로
그걸 바라 본다면.

한때 나는 참치 샐러드를 얼마나 좋아 했었던지
돼지고기 가재요리, 양갈비도
잠시  생각을 멈추고 식탁의 관점에서
식탁을 바라보기전까지는.

<Point Of View>

Thanksgiving dinner’s sad and thankless
Christmas dinner’s dark and blue
When you stop and try to see it
From the turkey’s point of view.

Sunday dinner isn’t sunny
Easter feasts are just bad luck
When you see it from the viewpoint

Of a chicken or a duck.
Oh how I once loved tuna salad
Pork and lobsters, lamb chops too‘Til I stopped and looked at dinner
From the dinner’s point of view.


아주 오랜만에 주일예배를 드렸다. 목사님께서 던져 주신 물음 하나, ‘관점’이었다. 사람의 관점이 아닌 하나님의 관점으로 삶을 바라보며 감사를 놓치지 않는 하루 하루를 살 수 있기를 비는 말씀이었다.

‘하나님의 관점’을 곱씹어 내 스스로에게 물어본다. 난 아직 멀었나 보다. 내가 칠면조의 관점으로 사람들의 세상을 이해할 수 없듯, 하나님의 관점으로 세상과 나를 바라보는 잣대는 준비되어 있지도 않고 이번 생에서는 내게 허락치 않은 일일 것 같다.

다만, 내가 신을 고백할 수 있는 ‘관점’ 하나. 사람의 눈으로 사람을 올바르게 바라보는 일, 그것 하나는 이루며 사는 삶이었으면 좋겠다.

그리 보면 칠면조의 관점도 하나님의 관점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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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온 종일 내린 비로 나무들이 겨울 준비를 마친 듯 하다. 떨어져 뒹굴던 나뭇잎들도 때를 아는 듯 스스로 몸을 오물여 움츠린다.

때 맞추어 뜰의 겨울 준비를 하다가, 비 그친 이튿날의 화창함에 넋을 빼앗겨 그저 멍청히 뜰의 풍경을 바라보며 오후 시간을 보냈다.

늦가을 오후 한 때 누린 내 자유(自遊)함에 대한 크나큰 감사를 누구에게 드릴까? 사람, 자연, 시간, 아님 신(神)…

스스로 노닐(自遊) 수 있는 날에 대한 감사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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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

하루 일을 끝내고 돌아오는 길에 동네 어귀 소방서에 차려진 투표장에 들려 투표를 했다. 이 곳 출신 대통령 바이든의 중간 평가 운운들 하지만, 실제 이 곳 델라웨어의 이번 선거는 그야말로 지역을 위한 선거인 셈이다. 연방 차원의 선거는 하원의원 한 명 결정하는 것 뿐이니. 결과 또한 빤히 예측할 수 있는 일이기도 하고.

투표를 마치고 밖으로 나오니 구수한 고기 굽는 냄새가 저녁 허기를 부추겼다. 아내도 마찬가지였나 보았다. “먹고 갈까?”

그렇게 나쵸와 햄버거로 저녁을 때우고 돌아왔다. 그랬다. 밥과 국, 찌개 그리고 반찬들이 있어야 저녁상인데 햄버거는 그저 한 끼 때우는 것이었다. 그나마 거의 반 이상을 싸가지고 왔다.

분명 배는 부른데 저녁을 먹은 듯 하기도 하고 안 먹은 것 같기도 하다.

무릇 선거라는 게 그런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보는 저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땅을 사는 시민의 권리이자 의무라는 생각으로.

선거에.

 

놀이

시간이 바뀐 첫 하루는 꽤나 길다. 한 시간이 주는 여유를 만끽하며 놀이에 빠진 하루였다. 일과 놀이가 잘 어우러진 삶은 그야말로 축복이다.

-오전-

어제와 똑같이 눈을 뜨니 아직 새벽 시간이었다. 시간이 바뀐 까닭이다. 그대로 자리에서 일어나 계획했던 놀이를 시작했다.

막 이민을 왔던 무렵이었으니 우리 내외가 아직 풋풋했던 시절이었다. 어느 날 아내가 김치를 담아 보겠노라고 했었다. 아내는 열심히 긴 시간을 부엌에서 보냈다. 그 날이었던가 이튿날이었던가? 내가 아내에게 건넨 말이었다. “앞으로 김치는 사 먹는 것으로…”

그 날 이후 오랜 동안 집에서 김치를 담아 본 적이 없었다. 그러다 세월 흘러 내가 놀이 삼아 김치를 만들어 보곤 했었는데 번번히 실패를 거듭하곤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틈나면 김치를 담곤했다. 어차피 놀이였으므로. 이왕 즐기는 놀이라면 즐거워야 하는 법, 김치 깍두기 총각김치 물김치 갓김치 동치미 등등 흉내 낼 수 있는 일들을 즐겼다. 그러다 보니 어쩌다  제법 그럴듯한 김치를 만드는 일도 일어나곤 했다.

오늘 오전 내 놀이는 조청을 만들고 고추장을 담는 일이었다. 밖에는 추적추적 가을을 밀어내는 비가 추적이고 있어, 내가 놀이를 즐기기엔 마치 주어진 듯 딱 좋은 날이었다.

그렇게 고추장도 담고, 내친김에 거둔 후 어찌할지 모르고 돌보지 않았던 늙은 호박으로 호박조청도 만들고, 덤으로 식혜까지 얻는 즐거움을 누렸다.

이 즐거움을 얻기까지 내가 내 놓아야 했던 대가가 있었으니 점점 가늘게 높아만 가는  내 목소리, 바로 세월.

-오후-

추적이던 비 그치고 가을걷이 끝난 밭들조차 아직은 풍요로와 보이는 가을 오후, 벗의 농장을 찾아 가 한 나절 또 다른 놀이를 즐겼다.

이 나이에 만나서 좋은 친구와 함께 한 잔 술에 좋은 먹거리 더하여 계절을 즐기며 이야기하며 노는 즐거움에 더 할 게 무엇이 있을까?

벗이 잘 키워 넉넉히 넣은 매실로 담근 매실주에 먹거리는 그야말로 우리네 입맛에 달라붙는 내 어릴 적 어머니 맛, 눈으로 즐기는 농장의 가을 정겨운 풍경은 덤으로 누렸던 놀이의 즐거움이라니!

뭐 이야기라야 별게 있어야 하나? 그저 덤덤히 늙어가는 우리들 이야기.

친구 내외와 우리 내외 모두 아직은 일과 놀이를 즐길 수 있어 아직은 청춘. 암만!

세월을 타고 즐기는 놀이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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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러기 소식

1.  아침, 집을 나서는데 낙엽이 수북이 쌓였다. 눈을 들어 나무를 쳐다보니 이젠 힘들어 좀 쉬어야 갰다는 듯 큰 숨 내쉬며 마른 잎 몇 장 붙들고 있었다. 때 아니게 봄날 같은 아침이었지만 이제 곧 서리가 내릴게다.
오후에 낙엽을 긁어 치우다. 내 어릴 적에 낙엽 떨어지는 나무 한 그루, 그 낙엽 받아 안을 마당 한 뼘 없던 시절에 읽었던 피천득 선생의 수필 ‘낙엽을 태우며’였던가? 아마 맞을게다. 아직도 남아있는 그 아련한 부러움.
아하, 그 부러움을 미처 채우지도 못한 채, 어느새 낙엽을 긁으며 그 일이 노동이 되어 버린 때에 이르렀다.

2.  아무렴, 그 조차 어떠랴! 여기까지 온 것만 하여도 그저 감사인 것을.
그리고 일터에서 만났던 아침 하늘에 나르던 기러기들을 보며 떠오른 말, 안서(雁書).
안서 – 기러기가 전하는 소식(글), 곧 옛 중국 고사에 나오는 편지를 일컫는 말이다. 어찌 중국 고사 뿐이었겠나? 멀리 떨어진 그리운 사람들끼리 전하는 소식이란 무릇 오랜 시간이 걸렸던 때가 여러 천 년이었다.
그저 같은 시간에 미국에서 한국 사이에 소식 주고 받는 이즈음 같은 세상 열린게 따져보면 몇 년 지나지 않은 일이다.
안서- 그 기러기가 전하는 편지 만큼 절절한 기다림이 담긴 소식 전하고 기다리는 사람들은 누구였을까? 가족 연인 군신관계 등등…
허나, 곰곰 생각해 따져보면 까닭 없이 ‘나라’라는 이름으로 부역 또는 전장에 군사로 끌려간 이들의 소식이 가장 절절하지 않았을까?
사람들의 머리가 깨우쳐 진다는 일이 뭐 별거이겠나? 기러기가 전하는 소식 말고, 사람이 서로 전하는 바른 소식 나누며 사는 세상 만드는 일.
허긴 이즈음엔 기러기 가족들도 많이 있고, 나 역시도 살아오며 한 동안 겪여 보았던 일이지만, 지나보면 다 추억이고 내일에 대한 약도 되는 일일 수 있는 법. 서로 다시 만날 수 있다는 전제 아래.
그러나 어느 날 날벼락 맞은 듯이 기러기도 소식 전하지 못하는 별천지로 서로 갈라진 가족들 소식 들으면 사람으로 아프지 않을 수 있나?
며칠 전 내 가게 손님 한 분이 아내에게 건넨 말이란다. “가족이나 친척 아님 아는 사람은 없지요?”
이태원 참사(이건 윤석열 참사라고 명명하자는 이들의 말이 맞다) 소식에 대해 미국 촌구석인 여기서 우리 내외가 들은 염려다. 이게 인지상정(人之常情) 곧 사람사는 마음이다.
허나 세월호 참사 때도 그러했듯, 사람 같지 않은 아귀들이 판치는 한국 뉴스들은 참 역겹다.
하아 참 쯔쯔쯧! 기괴한 모습의 윤석열과 김건희에게 느끼는 역겨움에 이른바 언론들은 늘 베이킹 소다를 더한다.
3. 그래도 또 나는 감사를 찾는다. 먼 듯 보이지만 어느 날 갑자기 기러기가 물어다 주는 소식, 세 세상이 곧 열릴 것이라는 믿음으로.
아내가 봄부터 노래 부르던 핑크 뮬리 몇 뿌리 뒷뜰 언덕배미에 심은 날에. 반갑게 맞을 기러기 소식 기다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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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에

다큐멘터리 영화 <김복동>을 보고 돌아온 밤, 영화의 마지막 내레이션이 귓가에 맴맴 돌며 떠나질 않는다.

“김복동, 그 이름을 기억해 주시는 사람이 되어 주시겠습니까?”라는 나를 향한 물음이었다.

<기억> – 내가 이해하는 한, 성서를 제대로 꿰뚫는 열쇠가 되는 말이 곧 ‘기억’이다. 다만 성서는 묻지 않고 ‘기억하라!’고 명령한다.

모세의 마지막 말들을 전하는 성서 신명기는 ‘기억의 신학 책’이라 할 만큼 ‘기억하라!와  ’잊지말라!’는 명령을 반복한다.

예수도 마찬가지였다. 바울이 전하는 바에 따르면 예수가 제자들에게 유언처럼 넘긴 말은 바로 ‘기억하라!’였다.

(내가 여러분에게 전해 준 것은 주님께로 부터 받은 것입니다. 곧 주 예수께서 잡히시던 날 밤에 빵을 손에 드시고 감사의 기도를 드리신 다음 빵을 떼시고 “이것은 너희들을 위하여 주는 내 몸이니 나를 기억하여 이 예를 행하여라”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고린도전서 11장 23-24절)

성서가 말하는 ‘기억하라!’는 명령은 단지 머리 속에서 떠나지 말게 하라는 뜻이 아닌 ‘삶’속에서 ‘함’을 이루라는 재촉이다.

일테면 ‘김복동을 기억하라!’는 말은 ‘김복동이 못 다 이룬 일을 내 삶 속에서 실천하라!’라는 명령이라는 말이다.

영화 <김복동>이 던져준 마지막 물음이 그렇게 무겁게 다가와 귓가를 떠나지 않는다.

‘세월호를 기억해 주시겠습니까?’, ‘바로 엊그제 이태원에서 일어난 참사를 기억해 주시겠습니까?’라는 물음도 마찬가지이고, 내가 살고 있는 이 땅에서 사람의 존엄을 망가뜨리는 숱한 행위들을 잊지 않고 기억하고 산다는 일 역시 매 한가지일 터.

기억에 대한 물음과 명령은 바로 신 앞에 선 이들에게 던져지는 것, 하여 사람으로 제대로 살게 하는 일.

기억에,

***필라델피아 소녀상 건립 추진 위원회 위원들의 치열한 실천과 도전에 존경을 더해 격려를 드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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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인(異邦人)

때론 뉴스들이 너무 비현실적으로 다가와 믿기 어려울 때가 많다. 종종 내 이해의 한계를 벗어난 한국 뉴스를 접할 때면 이방인이 되어버린 내 처지를 돌아보곤 한다. 가까이는 오십 여년 전 기억이다. 내가 기억하는 유년 시절부터 스물 무렵까지 한남동, 보광동, 이태원동은 외가 식구들이 살던 곳이었다. 혼인 후 한남동 본가를 떠난 이모와 외삼촌은 이웃 보광동, 이태원에 새 살림을 차렸었다. 모두 어머니 손잡고 드나들었고, 조금씩 머리 굵어 가며 사촌들과 뒷골목 누비던 곳이었다.

이즈음 한국 뉴스를 통해 자주 듣는 용산의 어제와 오늘 사이에서 완전히 낯선 이방인이 된 내 모습을 보곤 했다만,  오늘 이태원 참사 뉴스는 내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먼 나라 소식으로 다가와 정말 낯설었다. 그런데 이상도 하지! 왜 이리 아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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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아름다운 가을 하루였다. 아직 철이 덜 들어 하루를 헤아려 살기엔 이른 나이라는 생각으로 산다만, 계절은 세고 살아야겠다는 마음으로  이즈음 가을을 음미하며 산다.

텃밭 가을걷이를 하다가 허리 펴니 눈길 닿는 곳마다 그저 감사가 이어졌다.

그 넉넉함으로 하루 해를 보내고 맞닥뜨린 이태원 참사 뉴스였다.

사정이 어찌되었건 목숨을 잃은 대다수가 젊은이들이었 다니 안타깝기 그지 없는 일이다.

비록 이방인이 되어 산다만, 바라기는 거기나 여기나 편했으면 좋겠다. 두루 제 정신들 차리고.

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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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휴일 하루

지난 여름 내게 눈 호사(豪奢)를 누리게 했던 글라디오스 구근을 거두었다. 참 고맙기도 하여라! 올 봄에 심었던 구근 수에 비해 숱한 종근들은 차치 하고라도 내년 봄에 다시 심을 실한 녀석들을 거의 세배에 달하게 거두어 갑자기 큰 부자가 된 듯 했다.

화단과 뒤뜰 여기저기에 수선화, 무스카리, 아이리스, 튜립 등속의 알뿌리들을 심고 나니 갑자기 짧아진 하루 해가 저물었다.

낮에 호미와 꽃 삽질 하다 문득 바라 본 하늘, 수리 한 마리 나무 꼭대기에서 한참을 두리번 하더니만 솟구쳐 날았다. 먹이 하나 찾았나 보았다.

하! 그 순간 문득 떠오른 후회 하나. “왜 그리 조급 했었을까? 나는…. 그저 한 계절, 아니 한 나절, 어쩜 그도 아닌 한 순간을 준비하지 않고 그 많은 시간들을 다 이룬 양 들떠 살았을까?”

한참을 하늘 바라보다 다시 호미를 들고 감사! 이제라도 이렇게 누리는 시간들에 대해.

** 씹는 맛의 즐거움 되찾은 날에. 먹는 즐거움이라니. 그저 넉넉한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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옳은 싸움

내 어릴 적 성경을 심히 공박(攻駁)하는 사람들이 ‘모세가 백 이십 살까지 살았다는 게 말이 안된다’며 ‘믿음이라는 게 다 헛것이다’ 라고 하던 말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암만, 당시만 해도 나이 칠십이면 정말 오래 살았다는 소리 듣던 시절이었다. 백세시대라고 하는 이즈음에 나이 백 이십이 전혀 불가능한 일도 아니거니와, 나이 칠십은 노년의 시작일 뿐이라고 말하는 이들도 많다.

허나, 모든 믿음이란 게 각기 제 맘과 제 생각에 달린 일인 것이고, 나이 칠십이면 예나 지금이나  사람이 살만큼 산 것을 깨닫는 나이 아닐까? 어쩜 그게 내 믿음이기도 하고.

사실, 나이가 뭔 상관이랴! 예수처럼 서른 셋을 살든, 모세처럼 백 이십을 살든, 동박삭이처럼 삼천갑자를 살든 제 나름의 뜻에 따라 살다 가면 족한 삶이 아닐런지.

내 어릴 적이나 지금이나 세상 어지럽기는 매양 마찬가지다만,  “내 힘이 닿는데 까지 끝까지 싸우다 갈거야.” – 그 맘과 몸짓으로 살다 가신 어른들 여럿 생각 나고, 오늘도 여전히 그리 사는 이들의 얼굴도 떠오른다.

그들의 싸움은 평화롭게 더불어 함께 살아갈 이웃의 지경을 넓히는 일이었으므로.

오늘도 제 힘 닿는데 까지 작은 싸움들을 이어가는 내 참 좋은 이웃들을 생각하며.

*** 내가 살았던 남쪽을 ‘겨울 공화국’이라고 부르던 시절이 있었다. 내 푸르게 젊었던 날들을 보낸 시절이었다. 이제 노년의 초입에 서서 그 남쪽이 ‘사기(詐欺)단 독재 공화국’으로 변한 모습을 본다.

허나 예나 지금이나 여전히 낙관적이다. “내 힘이 닿는데 까지 끝까지 싸우다 갈거야.”하는 민(民)이 있기 때문이고 그 민이 곧 신(神)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예견했던 일이다만 나도 조만간 이웃 필라 한인 상가 앞에서 촛불과 깃발 들고 싸움에 또 나서야 할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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틀니

길고 힘든 한 주간을 보냈다. 내 생업은 연중 이즈음이 가장 바쁠 때다. 비록 세탁업이 이젠 사양업이라도 하여도 나름 이 때가 되면 여전히 바쁘다.
바쁘면 늘 탈이 따른다. 잘 돌아가던 장비가 까닭 없이 속을 태우고, 도와주는 일손들에게도 개인적 일들이 생겨 자리를 비운다. 그런 일들이 함께 동시에 일어난 한 주간이었다.
그 중 최악은 내 틀니가 두 동강이 난 일이다. 비록 간혹 감기에 걸리기도 하고 코로나를 넘지 못하고 며칠 앓은 적은 있지만, 아직까지 큰 병치레 한 적도 없거니와 복용하는 약 하나 없이 산다. 다만 윗 잇몸이 부실하여 틀니를 사용한지 제법 되었다.
그 틀니가 반쪽으로 딱 쪼개져 치과로 달려갔더니 다시 만드는데 두 주가 걸린단다. 하여 각종 죽 끓여 배 채워가며 종업원 빈 자리 몫 때우며 보낸 한 주간이 내 힘에 매우 부쳤다.
‘뭘 먹지?’하는 생각에 쌓여 하루를 보내던 틀니가 망가졌던 이튿날, 아주 아주 오래전 내가 작은 도움을 주었던 K가 농장에서 사왔다며 사과 한 꾸러미를 놓고 갔다. 아침마다 그 사과를 갈아 먹는데 어찌 그리 달던지!
그 맛을 오래 이어가고 싶은 생각에 길고 길었던 한 주간의 일을 마무리하고 가을걷이 한창인 과수원을 찾았다. 틀니를 다시 찾기까지 내 끼니를 위해 이런 저런 과일과 채소들을 한 아름 안고 돌아왔다.
내 늙어가는 과정을 즐기며.
• 내 텃밭에 무는 튼실하게 크고 있다. 틀니를 찾는 그 날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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