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들에게

말이 좋아 자영업이지 내 식으로 부르자면 그저 구멍가게 주인으로 한 해를 온전히 마감하는 일은 지난 해 세금보고 양식을 마무리하는 것이다.

해마다 이 맘 때면 느끼는 일이지만 내 삶이 숫자로 정리되는 모습은 늘 초라하다. 그렇다 하여도 물론 내 삶이 결코 초라한 것만은 아니었다. 무릇 삶이란 숫자로 재단되는 것만이 아니므로.

무엇보다 내 삶을 풍성하게 만드는 이들이 있다. 내가 사람임을 늘 깨우치게 하는 이웃들이다. 그저 감사다.

오늘 아침 새까맣게 잊고 사는 월력(月曆)을 일깨워 알려준 보름달처럼 이따금 눈과 마음을 환하게 열어 주는 자연 또는 신(神)에 대한 감사의 크기는 가늠조차 못한다.

하늘에 지는 달과 뜨는 해를 가장 높은 곳에서 맞이하고 보내는 것은 아마 새들일지도 모른다.

때로 새들을 폄하했던 내 우둔함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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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일상에

<어느새 이월 첫 주일. 생각 하나, 가게 손님들과 나누다>


2020년 새해가 시작된 것이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2월이 되었습니다. 저는 하루하루 그저 바쁘기도 하고, 이런 저런 일들이 많아 새해 계획이랄 것도 없이 일월 한 달을 보냈답니다.

모처럼 엊저녁에 조금은 느긋한 마음으로 지난 한 해와 올 한 해에 대한 생각도 해보고, 제가 관심을 갖고 있는 뉴스들도 찾아 보는 시간을 가졌답니다.

그러다 문득 떠오른 재미있는 생각 하나 당신과 함께 나눕니다.

제 세탁소에 들어오는 세탁물 중 가장 많은 숫자의 단일 품목으로는 남성 비지니스 셔츠가 단연 으뜸입니다.

그런데 손님마다 맡기는 셔츠의 모습들이 다르답니다. 남성 비지니스 셔츠에 달린 단추들은 보통 9개에서 15개 정도인데 가장 일반적인 셔츠에는 11-12개 정도의 단추들이 있답니다.

어떤 손님들은 셔츠에 달린 단추들을 모두 잘 채워서 가지고 오시기도 하고 어떤 이들은 단추들을 모두 풀어서 맡기시기도 합니다. 또 어떤 분들은 셔츠 앞 단추 맨 위에 한 두개를 푼 뒤 셔츠를 완전히 뒤집어서 가지고 오시는 분도 계시고, 셔츠 단추를 모두 다 채운 뒤 새 것처럼 잘 접어서 맡기시는 분도 계십니다.

제 입장에서는 단추를 모두 풀어서 가지고 오시는 분이 제일 반갑답니다. 왜냐하면 셔츠를 다릴 때 반드시 단추가 다 풀린 상태라야 하기 때문이지요. 제가 셔츠를 빨기 전에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이 셔츠의 모든 단추를 푸는 일이랍니다. 그러니 만일 셔츠 단추를 모두 채운 셔츠 10장을 세탁하기 위해서는 세탁 전에 단추 100개 이상을 풀어야 하는 것이지요.

그런데 엊저녁에 문득 떠오른 재미있는 생각이란 30년 넘게 세탁소를 해 오면서, 모든 손님들이 셔츠 단추를 모두 풀어서 셔츠를 맡긴 날이 단 하루도 없듯이, 모든 손님들이 모든 셔츠 단추를 다 채워서 셔츠를 맡긴 날 역시 단 하루도 없었다는 사실이랍니다.

대다수의 손님들은 그저 제가 일에 지치지 않을 정도로 목 단추 두 개, 소매 단추 두 개 정도를 제외하곤 다 풀어서 맡기신답니다. 지난 30년 거의 그랬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어진 생각이랍니다. 사는 게 다 그런게 아닐까 하는 것이었답니다. 내가 편하고 좋은 쪽 일들이나, 내가 하기 싫고 불편한 일들이나 모두 늘 일어날 수 밖에 없지만, 그런 일들이 일어나는 확율 보다는 대개 내가 마주치는 일들이란 그저 불평도 만족도 없는 그저 그런 일상들의 연속이 아닐까하는 생각 말입니다.

그런데 머리 속에 남거나 오래 기억하는 일들이란 아주 좋은 일이나 아주 나쁜 기억들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었지요.

그 끝에 다다른 생각이랍니다. 그저 평범한 하루 하루 일상에 감사하자는 것이지요. 그렇게 세워 본 올 한 해 제 계획이랍니다.

늘 감사가 넘쳐나는 2월 한 달이 되시길 빌며

당신의 세탁소에서


 

It seems like the Year 2020 started just a few days ago, but it is already February. I was simply busy every day and I had to deal with one thing and another. So I spent January without making New Year’s resolutions.

After a while, the other evening, I thought about the past year and this year with a somewhat relaxed mind and even looked for the news in which I was interested.

Then, one interesting thought came across my mind. I’d like to share it with you.

Among the items which were brought into my cleaners, a men’s business shirt is decisively at the top in terms of quantities.

But, the ways in which customers drop them off are various. The men’s business shirt has buttons from 9 to 15, and typically about 11 or 12 buttons.

Some customers bring shirts with all the buttons fastened and some do so completely unbuttoned. Some others bring shirts which are inside out with only one or two front top buttons unfastened. Some fasten all the buttons, fold them well like brand new shirts and drop them off for cleaning.

Those who undo all the buttons are my favorite customers. That’s because buttons must be unfastened in order to press shirts. The first thing that I should do before washing shirts is to undo all the buttons. So, if I process 10 shirts of which all the buttons are fastened, I should have to undo more than 100 buttons.

The interesting thought which had flashed across my mind the other day was that there had never been a day in which all the shirts were unbuttoned and also not a single day in which all the buttons of the shirts were fastened for my thirty-year-long cleaners’ life.

Most customers brought unbuttoned shirts except a few buttons on collars and sleeves, but not enough to make me too tired. It seems that it has been pretty much like that for the past 30 years.

It led me to an idea that life might be like that, too. Though we could face, anytime in life, the things which we feel good and comfortable in doing or the pesky things which we don’t like to do, the things that happen to us most of the time might be a series of simple everyday life events, without complaint or satisfaction.

However, the things which stayed long in our minds and memories might be ones which were extremely good or really bad. Just my thought.

It ultimately led me to the end. I should feel gratitude for simple everyday life. That became my New Year’s resolution.

I wish that you’ll feel overflowing gratitude in February and beyond.

From your cleaners.

사는 맛 – 두가지

돌아볼수록 질척거리며 살아 온 흔적들이 부끄럽지만 내 지난 시간들에 대한 후회는 하지 않는 편이다.

딱히 언제쯤 인지는 모르지만 ‘단 한사람에게 만이라도’라는 말을 되뇌이며 산다. 뭐 거창한 게 아니다. 그저 내 생각 하나, 내 행위 하나가 얼굴 맞대고 살거나 그저 소문으로 닿고 사는 그 누군가 한 사람과 서로 공감할 있는 하루를 산다면 그저 족하다는 맘으로 되뇌이곤 하는 말이다.

말과 생각이 그렇다는 뜻이지 솔직히 내 보통의 하루 하루는 내 만족의 척도에 따라 웃고 울거나 펴지고 찡그리곤 한다.

지난 주말, 멀리 남부 지역에서 세탁소를 하시는 오선생께서 전화를 주셨다. 수 년 만에 듣는 그의 목소리였다. 그는 새로 세탁 기계를 장만하려고 하는데 두 가지 서로 다른 솔벤트를 사용하는 기계들을 놓고 어떤 것으로 바꾸어야 할지 고민 중이라고 하였다. 부인과 함께 고민 하다가 내게 묻고 그 의견에 따르고자 전화를 했다는 것이었다.

참으로 난감한 전화였다. 나는 솔직히 삼십 년 넘게 세탁소를 해왔지만 솔벤트와 기계에 대한 지식은 거의 무지에 가까운 편이다. 살며, 한 십여 년 가까이 미 전역에 있는 세탁인들과 업에 대한 고민을 함께 나누며 산 일이 있긴 하다만,  솔벤트나 기계에 대한 문제는 내가 입 벌려 뭐라 할 만큼 아는 게 전혀 없다.

오선생은 무조건 내가 하라는 대로 기계를 선택해 사겠노라고 했다. 그의 아내도 전적으로 그렇게 하기로 했다는 말도 덧붙었다.

정말 난감했다. 나는 이틀 말미를 얻어 주말 동안 그가 말한 두가지 솔벤트와 기계 종류에 대한 자료들을 찾아 비교해 도표를 만들어 오늘 아침 그에게 보내 주며 말했다. ‘그저 내가 주어진 시간 안에 살펴 본 자료에 불과한 것이니, 오선생께서 잘 선택하시라. 그리고 돈 잘 버시고 건강하시라.’고

오늘 일을 하며 온 종일 오선생 내외에게 감사한 마음이 그치질 않았다. 벌써 수 년 전에 그만 둔 일이지만, 내가 질척거리며 세탁인들과 함께 보낸 시간들이 결코 헛된 것만은 아니었지 않을까 하는 내 스스로 얻은 위안 때문이었다.

또 언제부턴가 나는 사람 살아 온 일들에 가능하다면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눈을 갖게 되었다. 물론 그 바탕엔 성서로 세상을 바라보자는 내 믿음이 있기 때문이겠지만, 그에 더해 사람 살이 곧 역사 시대를 백년 단위로 끊어 훑거나, 내가 살아 온 세월들을 십 년 단위로 끊어 곱씹어 보며 얻은 내 나름의 깨달음 그 끝에서 얻은 결론 때문이기도 하다.

나야 그저 연緣의 끝자락 붙들고 별 행위도 없이 살곤 있다만, 새 세상 꿈꾸며 사는 이들이 연대를 이루며 사는 소식을 듣고 살 수 있음 만으로도 나는 이미 사는 맛을 느끼며 사는 터.

새해에는 사는 맛 더욱 누리며 살 수 있기를. 단 한사람 만이라도 함께.

설날

오늘 가게 손님 몇이 ‘Happy New Year!’라며 인사를 건넸다. 손님에게 설날 인사를 받는 세월을 누리다니. …세상 참 많이 변했다. 아무렴!

가게 문을 닫고 아내와 함께 지난 주에 장인 장모가 삼 년 만에 다시 만나 쉬시는 묘지를 찾다. 돌아서는 길, ‘모처럼 다시 만나 싸우지들 마세요’  웃으며 말하는 내게 아내가 던진 말. ‘에이 이제 며칠 되었다고,,, 아직은 아니겠지!’

한국식당에 들려 주문한 생선찜과 탕수육을 받아 들고 어머니 아버지를 찾아 뵙다.

이즈음 도통 잡숫지 못하는 어머니는 입맛 없으실 때면 비린 것을 찾곤 하셨다. 그리고 아버지는 늘 특별한 것을 좋아하셨다.

‘엄마! 오늘이 설날이예요!’ 퀭한 눈으로 어머니가 한 대답. ‘설날…???’

아버지는 탕수육 맛이 별나다시며 맛있게 드시고, 어머니는 오랜만에 입맛에 맞아 많이 잡수셨다며 ‘고맙다’를 말씀을 이어갔다.

기실 아버지가 드신 탕수육은 딱 두 점, 어머니는 그저 밥 두어 수저.

우리 내외 또래 한식당 주인 마님은 우리 더러 ‘참 잘 맞는 짝’이라고….

나는 또 웃으며 말했다. ‘육십 년 넘게 함께 살다 간 내 장인 장모나, 칠십 년 넘게 살고 계신 우리 부모나 사십 년 가까이 살고 있는 우리 부부나 싸움 그칠 날 없었다’고

그렇게 또 설날에.

(딸아이가 보낸 꽃은 늘 오래 간다.)

2020. 설날 밤에

시간에

초침은 분침이 되고, 분침은 시침이 된 듯한 한주간이다. 시간이 흐르는 속도는 온전히 내 마음에 달렸다.

조금은 더 버틸 듯 하시던 장인 어른이 맥을 완전히 놓아 버린 것은 지난 화요일 밤이었다. 아내와 나는 준비했던 대로 조촐히 그를 떠나 보내는 순서를 진행했다.

생각할수록 죽음은 삶과 닿아 있다.

나는 어제 모처럼 추운 겨울 밤, 함께 했던 이들 앞에서 내 장인 어른을 기렸다.


제가 장인어른에게 받았던 가장 큰 크리스마스 선물 이야기를 함께 나누는 것으로 제 장인 어른의 약력 소개와 추억을 대신 하렵니다.

장인과 사위 사이로 산지 거의 사십년이 다 되어 갑니다. 서로 알만큼 알만한 시간이 흐른 셈입니다. 장인 어른과 제가 닮은 게 딱 한 가지가 있습니다.

이즈음 세상과 달리 아들을 딸보다 귀하게 생각했던 시절에 딸 셋, 아들 하나로 태어나 자랐다는 사실입니다. 게다가 아들 바라기가 심한 부모의 외아들이었습니다.  이쯤 말씀드리면 장인과 제 성격이 닮은 거 빤하게 드러나게 마련이지요. 고집 세고 자기 중심적이고 이기적이고… 서로 마주하면  자기 모습이 빤히 보이는데… 뭐 애틋한 정을 쌓는다는 게  쉽지 않다는 거 이해들 하실겝니다.

물론 장인 어른이 저하고 다르거나 뛰어나신 것들이 많으셨습니다. 우선 제가 감히 범접할 수 없을 만큼 잘 생기셨고, 하나님께 받은 재능들이 참 많으셨던 분이십니다. 특히 예술적인 감각이랄까 이런데 아주 뛰어나신 분이셨습니다. 주색잡기 중에 주색은 모르겠지만 잡기에는 여러모로 뛰어나셨던 분이셨습니다.

그가 Diana 노래를 부를 땐 영락없이  Paul Anka 였고, Green Green Grass Of Home을 부를 땐  Tom Jones 인 듯 할 정도로 노래도 잘 했답니다.

그러다 어르신 떠나 가신 후 어른의 약력을 정리하다가 제 장인에 대한 새로운 것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그 또한 제가 감히 흉내낼 수 없는 삶의 모형이었습니다. 바로 이타심, 이웃에 대한 배려, 약자에 대한 삶의 자세 그런 것들이었지요.

제 장인은 유머에 매우 능했고 이야기 거리가 참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유머가 때론 너무 과해 이른바 블랙 코미디를 즐겨하셔서 함께 있던 이들이 미처 그 웃음 코드를 이해 못해서 종종 난감해 하는 지경에 이르기도  했지만, 그 바탕엔 그저 아이같은 순진함이 깔려 있었답니다. 제 아내가 딱 이런 점을 닮아서 제가 잘 이해를 한답니다. 제 아내가 참 순진하고 착하다는 말씀입니다.

아무튼 장인이 즐겨 하셨던 이야기거리의 두 중심축이 있었습니다. 하나는 18살에 이른바 카투사라는 미군 배속부대 제 1기 로 한국전쟁에 참여하여 지낸 6년여 동안의 군생활 이야기가 하나였답니다. 인천상륙작전에 참여한 공로로 한미 양국에서 무공훈장을 받았으니 그 시절 이야기를 그가 질리도록 하여도 들을만 했답니다.

둘째는 제대 후에 거의 그의 전 생애 황금기를 이룬 시절의 이야기입니다. 바로 소방대장이었습니다. 주한 미군병연내 소방대와 주베트남 미군병영내 소방대장을 비롯해 사우디아라비아 공항소방대장을 보낸 세월 이야기였습니다. 제 장인 어른의 별칭은 이대장이었답니다. 그 호칭을 자랑스러워 하셨고요.

그런데 제가 이번에 새로 알게 된 제 장인의 이력으로 그의 삶을 다시 새겨 보게 되었습니다. 한국전쟁 이전에 그가 공부한 사회사업과 전쟁이후 맹아학교 선생님 이력이었습니다. 그가 꿈꾸었던 삶의 한 단면을 새롭게 느낄 수 있었답니다.

은퇴이후 이곳 윌밍톤시에 사시면서 한 이십여년 동안 영어로 언어 소통이 어려운 이웃들의 일상적인 삶에 작은 도움을 베풀며 사신 삶도 다시 새기는 시간도 가져보았습니다.

장모 먼저 보내고 홀로 사셨던 3년간은 전혀 새로운 모습으로 제게 다가왔었습니다. 특히나 노인시설에서 그저 누어 지내셨어야만 했던 마지막 1년 동안, 그가 그의 삶의 마지막 시간들을 덤덤히 준비하고 맞았던 모습들은 제게 많은 가르침과 깨달음을 안겨 주었습니다.

자! 이제 제게 주신 장인의 큰 크리스마스 선물 이야기입니다.

몇 주 전이었던 크리스마스 이브였습니다. 모처럼 정신이 말짱하셨던 날이었습니다. 아내가 크리스마스 선물로 사가지고 간 셔츠를 입혀드리려고 하니 싫다며 짜증을 부리셨고, 아내는 굳이 입혀 드리려고 애를 썼답니다. 그 때 장인이 제게 하신 말씀. “김서방! 재랑 어떻게 그렇게 오래 살어?’

그리고 잠시 후 아내가 자리를 비운 사이에 장인 어른 웃음 가득한 얼굴로 제게 말씀 하셨답니다. “김서방, 정말 고마워.”

장인과 제가 이 세상에서 마지막 나눈 이야기랍니다.

바로 크리스마스 선물이었지요.

이제 내 장인 어른 영혼의 얼굴에 웃음 꽃이 끊이지 않을 것임을 믿고 기원하며…

일상(日常)에

겨울도 없이 봄이 오는 듯한 날씨에 들판 길을 걸었다. 집에서 반 시간 정도 달려 다다른 펜주 West Chester County의 Stroud Preserve 산책길은 일요일 아침 내 일상을 매우 풍요롭게 채워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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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은 오후에 철학자 강영안 선생이 쓴 <삶과 텍스트 사이에서 생각하기 ; 철학은 어디에 있는가>를 훑어 읽다.

<일상은 무엇인가? 일상(日常)은 문자 그대로 따라 하자면 “늘 같은 하루”이다. ‘하루하루가 늘 같다”는 말이다.

잠을 자고, 일어나고, 먹고, 일하고, 타인을 만나고, 읽고 생각하고, 기도하고, 예배 드리는 일, 이렇게 동일한 행동이 반복되는 삶. 때로는 파안대소할 정도로 즐거운 일이 있는가 하면, 절로 눈물이 나올 정도로 슬픈 일이 있기도 한 삶. 그러나 대부분은 크게 즐거워할 일도 , 크게 슬퍼할 일도 없이 그저 그렇게 하루하루 지나가는 삶. 이것이 일상이다.

사람이면 누구도 벗어날 수 없고(필연성), 진행되는 일이 이 사람이나 저 사람이나 비슷하고(유사성), 반복되고(반복성), 특별히 두드러진 것이 없으면서(평범성), 어느 하나도 영원히 남아 있지 않고 덧없이 지나가는(일시성) 삶. 이것이 일상이요, 일상의 삶이다.

-중략-

눈이 있고 귀가 있고 받아들일 가슴이 있다면 일상은 단순한 반복도, 단순한 필연도, 단순히 평범하기만 한 현실이 아니라 자유를 경험하고 깊은 의미를 체험하는 삶의 장소이다.>

아침 산책길에서 오간 생각들과 강영안 선생의 가르침을 통해 일상으로 이어지는 내 새로운 한해의 꿈을 품다.

저녁길에

매사 그저 덤덤해 지는 일이 많은 것으로 보아 영락없는 노인이다. 성탄, 연말, 연시, 그리고 올해의 마지막 주말 등등 시간을 나누는 일에 그저 덤덤하기에 해 보는 소리다.

아내와 함께 해가 지는 공원길을 걷다.

우리 부부는 걷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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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들은 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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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와 풀들은 지는 햇빛을 온 몸으로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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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모두가 일상적인 매 순간 순간들이 엄숙한 시간들인 동시에 덤덤한 시간으로 새길 수 있다면 나이 드는 일이 결코 손해보는 일은 아니다.

또 한 해를 보내는 저녁길에서 곱씹어 보는 감사가 크다.

성탄에

오랜만에 전화 안부 인사를 나눈 캘리포니아 조선생님은 여전히 왕성한 현역이었다. 올해 일흔 고개를 넘어선 그의 새해 포부는 가히 다부지다. 그런 그가 내게 말했다. ‘김선생도 늙어가나 보오.’ 칠십 고개를 향해 올라가는 내 언행에 대한 격려였을 게다.

성탄 이브에 막내 동생이 대가족을 위한 저녁 상을 거하게 차렸다. 그저 바라만 보아도 귀여운 나이들인 조카 손주들 재롱에 내 어머니 총기가 되살아난 저녁이었다. 이즈음 가끔 생각해보는 것이지만 시간이란 참 별거 아니다. 어머니 아버지와 조카 손주들을 번갈아 보고 있노라면 이백년 세월을 능히 가늠케 한다.

하여 오늘 아침 내가 하늘을 담았었나 보다.

먼동 트는 하늘이 그리 멋지게 다가온 까닭은 금새라도 꺼질 듯한 가는 빛으로 떠 있는 그믐달 때문이었기에.

먼동에서 그믐달까지 연이 닿아 함께 세월을 이어가는 모든 것들이 아름답기를.

내 안에  그 맘 하나 들어와 성탄이다.

  1. 24.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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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타의 집

부부가 모두 은퇴한 이후 내 가게 출입이 아주 뜸해진 Gaskin씨가 자기 집에서 여는 성탄 파티에 초대한 것은 몇 주 전 일이었다. 그리고 어제 오후 그는 일부러 내 가게를 찾아와 저녁에 있을 파티 참여를 확인했다. 사실 그 몇 주 사이에 같은 시간에 열리는 다른 송년모임이 생겨 망설이고 있던 터였다.

예전에 비해 거의 발길 끊긴 손님이 파티 준비로 여러모로 바쁠 시간에 구태여 찾아와 함께 하자는 말에 미안함과 고마움이 겹쳐 우리 부부의 발길은  Gaskin씨네로 향했다.

해마다 이맘 때 벌어지는 Gaskin씨네 파티는 동네 사람들은 물론이거니와 두 부부의 직장 동료 및 동호회 모임 식구들에 이르기 까지 많은 이들이 함께 하는 제법 큰 성탄 잔치이다. 우리 부부는 Gaskin씨 부부가 애용하는 세탁소 주인이로서 이 잔치에 여러 해 동안 함께 했었는데, 지난 해는 건너 뛰었다.

부부 모두 이미 은퇴한 후 시간이 흘렀건만 많은 전 직장 동료들을 비롯해 동네 사람들 까지 족히 백여명이 넘는 이들이 엊저녁에도 함께 했다.DSC09270 DSC09289

부부는 현관에서 일일이 손님들을 맞았다. 그리고 먹고 마시고 맘껏 떠들고 노래하고 춤추며 흥겨운 저녁 시간을 함께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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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르간 주자이자 싱어인 산타의 추임새에 따라 신나게 두드리는 드럼 주자, 이어지는 색스폰 주자의 소리와 기타를 이빨로 튕기는 신공을 보여준 기타리스트까지 잔치자리 흥의 중심은 단연코 밴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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밴드 멤버들 가운데 가장 분주한 이는 이 밴드의 트럼펫 주자인Gaskin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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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흥겨운 잔치자리에서 내가 찾아낸 파티의 주인공은 산타들이었다.

남녀노소와 인종을 불문한 수많은 산타들이 어제 잔치 자리에 주인공이 되어 함께 했다.  산타들을 초대한  Mrs. Gaskin에 따르면 그 산타들 역시 하나하나 일일이 초대했다고 한다. 그녀는 알라스카, 플로리다 등지에서  부부가 여행 중에 만난 산타들을 하나하나 모셔 왔다고 친절한 설명을 곁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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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녀에게 말했다. ‘여기는 가히 산타들의 집’이라고.

그리고 오늘, 이즈음 읽고 있던 책 한 권 마무리하며 덮기 직전에 만난 글에서 Gaskin씨 성탄 잔치의 뜻을 곱씹어 보다.

<성서가 말하는 영원한 생명은 죽지 않고 끝없이 연장되는 삶의 시간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믿음과 희망과 사랑 안에서 이루어지는 새로운 삶을 가리킨다. 그것은 시간의 끝없는 연장이 아니라 하나님 안에서 이웃과 교통하며 하나님의 의와 사랑을 세우는 삶의 깊이 내지 ‘삶의 질’을 말한다. …. 이 세상의 연약한 피조물에 대한 사랑 안에서 영원한 생명이 현재적으로 경험된다.>

Gaskin씨 부부와 그들과 늘 함께 사는 산타들이 머무는 집에서 맛 본 사랑을 생각하며.

2019년 성탄의 계절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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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심에

내가 잘하는 것 딱 한 가지, 잠을 참 잘 자는 습관 아님 버릇이다. 통상 밤잠 여섯 시간, 낮잠 삼십 분 , 정말 꿀잠을 잔다. 낮잠이든 밤잠이든 누우면 그만 깊은 잠에 빠져들고 딱 정해진 시간이면 눈을 뜬다. 세상 무너지는 걱정이 코 앞에 있어도 누우면 그냥 잠에 빠져든다.

그런 내가 간밤에 잠을 설쳤다. 깊게 잠들을 시간인 새벽 세시에 눈을 떠 그대로 아침을 맞았다. 그렇게 깨진 리듬으로 하여 뒤숭숭하게 하루 해를 보냈다. 가만히 따져보니 모두 내 욕심 탓이다.

지난 토요일에 찾아 뵌 아버지는 좁은 아파트 방안을 벗어나지 못하는 당신의 삶에 답답함을 토로하셨다. 이젠 그 답답함조차 다 그대로 받아 들이실 나이에 대해 말하는 내 이야기는 아버지에게 뿐만 아니라 내게도 그냥 공허할 뿐이었다.

이튿날, 아내와 함께 Longwood Garden 정원 길을 걸으며 더 늦기 전에 부모님 모시고 화사한 장식으로 꾸며진 이 정원을 함께 즐겨야 하겠다는  생각을 굳혔었다.

그리고 어제 정원이 비교적 한가한 아침 시간에 부모님을 모시고 정원에서 함께 시간을 보냈다. 아버지는 아이처럼 마냥 좋아하셨고, 어머니는 세상 꽃구경 다했노라시며 즐거워 하셨다. 한식당이 좋겠다는 어머니 생각에 따라 나눈 점심 밥상에서 두 분은 평소보다 많은 양의 식사를 하셨고, 그냥 좋다는 말씀을 이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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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 거기까지였다. 어머니의 기억의 방은 그 즐거움을 담긴엔 이미 꽉 채워져 있었고, 아버지의 삶은 지난 토요일 좁은 아파트 방안으로 돌아가 있었다.

어제 늦은 저녁까지 함께 했던 시간들에 대한 기억은 어머니에겐 하나도 남아있지 않다.

어제 밤 내가 잠을 설친 까닭은 그래 모두 내 욕심 탓인게다.

그래도 그저 고마운 것 하나, 어머니가 아직은 아들 며느리 얼굴과 목소리 익히 알고 그저 고맙다는 말씀 이어가는 일.

어제 아내가 어머니를 웃게 했던 한 마디, ‘어머니, 봄에 꽃 필 때 다시 와요!’

늦은 밤,정호승의 시 하나 눈으로 읽다.

<어머니 장독대 위에/ 정한수 한 그룻 떠 놓고 달님에게 빌으시다.>

오늘 밤은 깊게 잠을 잘 수 있을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