걱정에

오늘 아침까지만 해도 내가 사는 동네는 이른바 청정구역이었다. 미 동부 쪽에선 유이하게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자가 없는 주로 메인 주와 델라웨어 주를 꼽고 있었다.

그리고 오늘 오후에 받은 경보 뉴스,  ‘왔다! It’s here.’ 였다. 내가 사는 동네 델라웨어 주에 첫 코로나 바이러스 환자가 나왔다는 뉴스였다. 오후 4시가 조금 지난 시간이었다.

뉴스가 우리 부부를 놀라게 한 것은 감염자의 신분이었다. 그가 50대 델라웨어 대학 교수였기 때문이었다.

내 세탁소는 바로 델라웨어 대학교 바로 코 앞에 있고, 내 가게 손님들의 주 고객들 중 많은 이들이 대학교와 연관된 이들이다.

우리 부부는 이런 저런 염려와 걱정들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곧 이어진 뉴스는 델라웨어 대학이 오늘부터 봄방학을 앞당겨 실시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고작 반시간 정도 지났을까? 내 이웃 가게인  liquor store에 학생 아이들이 줄을 이어 술들을 사가고 있었다.

마침 세탁물을 찾으러 가게로 들어 선 경찰 하나가 한 말, ‘에고, 오늘 밤 애들이 저리 마시면 밤 근무 하는 이(경찰)들이 고생 많겠네!’

그리고 늦은 밤, 필라에 사는 벗이 전해 준 성철 선사의 말씀 하나.

<다들 너무 걱정하지 마라. 걱정할거면   딱 두 가지만 걱정해라.   지금 아픈가?  안 아픈가?   안 아프면 걱정하지 말고, 아프면 두 가지만 걱정해라.   나을 병인가?  안 나을 병인가?   나을 병이면 걱정하지 말고, 안 나을 병이면  두 가지만 걱정해라.   죽을 병인가?  안 죽을 병인가?  안 죽을 병이면  걱정하지 말고 죽을 병이면  두가지만 걱정해라.  천국에 갈 거 같은가?  지옥에 갈 거 같은가?  천국에 갈 거 같으면  걱정하지 말고, 지옥에 갈 거 같으면 지옥 갈 사람이 무슨 걱정이냐?>

축복에

내 삶의 현장인 일터나 살고 있는 동네에서는 전혀 낌새를 느낄 수 없다만, 뉴스와 소문들은 코로나 바이러스로 흉흉하다.

이웃 주들인 뉴저지, 메릴랜드주나 내 아이들이 살고 있는 펜실베니아, 뉴욕 등지에도 바이러스 감염 환자들이 늘어간단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동네 뉴스들이 호들갑스럽지 않다. 여기도 어김없이 손 안에서 깊은 생각없이  쉽게 오가는 스마트 폰을 통한 가짜 뉴스들은 넘쳐나지만, 아직은 비교적 덤덤하다.

저녁나절, 모처럼 반가운 얼굴들을 만나 이런저런 세상 이야기들을 나누며 조촐히 한 잔 했다.

이젠 거나할 정도로 마시지도 못하지만, 몇 잔 술 보다는 진국같은 벗들과 모처럼  나눈 이야기에 취한 저녁이다.

아직 생각이 통하는 친구들과 한 잔 나눌 수 있는 내 삶엔 복(福)이 넘치는게다.

집에 돌아와 낮부터 시작한 사골 곰탕을 마무리 짓다. 치매기 깊어 지시는 내 부모님을 위해.

우리들이 살고 있는 오늘 곧  21세기 들어서 변한 사람살이 이야기란다.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전염병에 의한 사망자가 고령으로 인한 사망자보다 적었고, 기아로 숨진 사람이 비만으로 인한 사망자보다 적었으며, 폭력에 의한 사망자가 사고로 인한 사망자보다 적었다.>-  유발 하라리가 쓴 ‘21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언’에서

그래도 사람 살이엔 여전히 이런저런 두려움들이 가실 날 없고, 그 두려움 사이로 오직 제 배 불리려는 각종 가짜들이 기승을 부리는 법. 종교, 이념. 신념이라는 가짜의 옷들을 입고.

더불어 함께 해야 하는 가족들과 , 만나서 좋은 벗들과,  누구나가 마주칠 수 있는 재해에 앞에서 겸손할 수 있는 이웃들과 함께 할 수 있는 오늘 내가 숨쉬는 세상은 여전히 살만 한 축복 아닐까?

겸허에

오늘 받은 이메일 두 통, 하나는 보건국에서 다른 하나는 노인 보험 관리국에서 온 편지다. 모두 코로나 바이러스 예방과 검사에 대한 안내였다. 이제 코로나 바이러스 뉴스는 대양 건너 먼 곳이 아닌 내 곁에 있다.

신문은 보다 현실적이다.  내가 사는 동네에 보다 급한 문제는 코로나 바이러스보다 사실은 독감이란다. 인구가 고작 백만 미만인 곳에서 올 1, 2월 두 달 사이 독감으로 11명이 생을 마감했단다.

아무튼 주정부는 현재 중국을 다녀 온 13명을 포함 36명에 대해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 여부를 모니터링 하고 있단다. 다행히 현재로선 양성 반응을 보인 이는 없단다.

전하는 뉴스 논조들이 그리 호들갑스럽지 않아 그나마 안심이다.

비교해 따져 보자면 의료시스템 특히 의료 보험 체계는 내가 아는 한 한국은 미국에 비해 천국이다.

뉴스에 이르면 미국도 가짜들이 넘쳐나고 사안에 따라 호들갑 역시 마찬가지지만 한국보다는 아직은 많이 낫다는 생각이다. 이따금 드는 생각이지만 한국 뉴스 매체들은 한국사회가 지금 안고 있는 문제 가운데 가장 큰 골치 덩어리이다.

이어져 떠오른 유발 하라리가 제언하는 더 나은 오늘에 대한 생각들이다.

<지난 수십 년은 인류 역사에서 가장 평화로운 시기였다. 농업사회 초기에는 인간의 폭력으로 인한 사망이 전체 사망률의 15%까지 올라갔지만, 20세기에는 5퍼센트로 낮아졌고 지금은 1%에 불과하다.>

<비록 기술적 도전들이 유례없이 크고 정치적 불일치가 극심하다 해도, 계속해서 우리의 두려움을 조절하고 자신의 견해에 대해 조금씩만 겸허해 진다면 인류는 위기에 대처할 수 있다.>

비단 인간이 인간에게 저지르는 폭력 뿐만 아니라 전염병도 마찬가지일게다. 인류가 진보해 온 모습대로 사람이 사람을 서로 겸손히 대하고, 신과 인간 앞에서 겸허해 지는 이들이 많아지는 내일을 꿈꾸며 살 일이다.

뭐 거창한 일 아니다. 우선 나부터 수시로 손 깨끗이 씻고, 기침 콧물 조심하고, 행여 아프면 집에 있고 의사를 찾고…. 그리 하는 일이 우선 일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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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나리

솔직히 내 나이를 인정하고 살지는 않는 편이다. 스스로 생각해도 좀 우습긴하다만, 내 가게 손님들이 종종 가늠해 주는 나이 쯤이라는 생각으로 산다. 비록 칠십이 손에 잡히는 처지지만 황송하게도 손님들은 오십 줄 운운하곤 한다.  착각하는 내가 나쁘지 그들은 그저 고마울 뿐이다.

그러다 내가 이미 늙고 지극히 보수적인 노인이 되었구나하는 현실을 직시케 해 주는 책 한권을 마주해 읽었다.

시인 허영선이 쓴 <제주 4.3을 묻는 너에게>라는 책이다.

역사학자 서중석선생은 이 책의 추천사에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4.3은 시인이 써야겠구나’ ‘시인이나 소설가, 화백이 가슴에 파고드는 진실을 정말 잘 그려냈구나’하는 생각을 몇 번이고 했다. 2만 5000에서 3만을 헤는 4.3희생자의 처절한 모습. 오로지 ‘살암시민 살아진다(살다 보면 살게 된다)며’ 살아 온, 죽음의 문턱에 있었거나 죽음을 지켜봤던 사람들의 심정과 삶은 시인의 마음을 통해야 온전히 그려질 것 같다.>라고 썻다만 내겐 시인이 쓴 역사의 현실이 읽기에 너무나 버거웠다.

바로 나이 들어 늙은 탓이다. 나도 젊어 한 땐 탐닉했던 문체였건만 정말 불편했다.

책장을 처음 열자 마주친 저자인 시인의 자서이다.

<기억하라. 반드시 기억하라는 이 기억의 통꽃.
더 이상 피어날 수 없었던 어린 눈동자를 대신해
살아있는 눈동자들이 봅니다.

수많은 꽃목숨들이 참혹하게 떠났습니다.
잊어라. 지워라, 속솜허라.(‘조용히 해라’라는 제주도 방언)>

그렇게 시작하는 책, 몇 장을 넘기다 그냥 덮어 두었던 책이었다. 책장을 이어 넘기기엔 아팠고 불편했기 때문이었다. 다 내 나이 탓이었다.

그러다 어제 오늘 내 감정을 꾹꾹 눌러가며 일독하였다. 이 책을 읽고 함께 이야기 해 보자는 후배들의 권유가 있었기 때문이다.

책의 끝부분에 인용된 고 노무현 대통령께서 4.3 위령제에서 했다는 추도사의 일부이다.

<국가권력은 어떠한 경우에도 합법적으로 행사되어야 하고, 일탈에 대한 책임은 특별히 무겁게 다뤄져야 합니다. 또한 용서와 화해를 말하기 전에 억울하게 고통받은 분들의 상처를 치유하고 명예를 회복해 주어야 합니다. 이것은 국가가 해야 할 최소한의 도리입니다. 그랬을 때 국가권력에 대한 국민의 신뢰도 확보되고 상생과 통합을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가슴 뛰게 하는 시인의 문체가 아니라도 조곤조곤 나누는 지난 이야기들을 통해 변해가는 세상을 꿈꾸는 내가 늙긴 확실히 늙은게다.

그래 이젠 나도 보수다.

하여, 바라기는 이제껏 보수연하던 세력들이 사라졌으면 좋겠다.

아픈 세월 꾸역꾸역 읽어내는 보수들이 노인 되는 세상을 위하여.

안식에

동네 신문은  Joe Biden이  South Carolina primary에서 기사회생 했다는 기사를 일면 탑에 올려놓았다. 아무렴 이 동네 출신이니 그 정도 호들갑은 눈 감아 주어야겠지만 그저 거기까지 였으면 하는 바램이다.

한국 뉴스는 온통 코로나 바이러스19 소식과 간간히 총선에 얽힌 이야기들이다.

뉴스들을 접고 나를 위한 일요일 안식을 누리다. 하비 콕스 (Harvey Cox)의 ‘신이 된 시장(The Market as God)을 곱씹어 읽고 책을 덮었다.

이 책에서 하비 콕스가 말하고자 하는 주장이 요약된 제 3장의 제목은 <역사: 돈을 쫓다>이다. 그는 돈을 쫓아 이어진 역사, 특히 교회사를 이야기한다. 신학자인 그가 이해하는 근 현대의 자본시장은 바로 이 교회사를 쫓아간 것이다.

“돈” – 오늘의 뉴스들을 이해하는데 가장 중요한 말이다.

하비 콕스가 책을 마무리하는 마지막 페이지에 남긴 말들이다.

<어떤 이들을 움직이는 동기는 단순한 탐욕이다. 그들은 탐욕의 전염병에 감염되었고, 탐욕은 어떤 치료법도 알려지지 않은 질병이다.> ….(정치, 종교 등 제반 분야에서 탐욕의 전염병에 전염된 사람과 세력을 구분할 수 있는 이들이 바로 민중을 넘어 시민이 아닐까? ….뭐 그런 생각도 해 보았다.)

<로마 황제 베스파시아누스는 죽음의 자리에서 한숨을 내쉬면서 말했다고 한다. “아아 슬프도다. 지금 내가 신이 되어야 할 텐데.” 어떤 인간 개인이나 기관도, 심지어 ‘시장’도 신이 되기에 적합하지 않다. 이제 신이 될 필요가 없다면 ‘시장’은 훨씬 더 행복해질 수 있다.>

콕스가 말한 ‘시장(market)’에는 경제는 물론이거니와 교회(종교), 정치, 언론, 문화 등 제반 분야를 포함한다.

아담 스미스를 다시 읽게 하는 콕스의 가르침은 덤이다.

<부자와 권세가에 대해서는 감탄하고 거의 숭배까지 하는 성향, 가난하고 비천한 상태에 있는 사람을 경멸하거나 적어도 무시하는 성향은…. 우리의 모든 도덕 감정을 타락시키는 가장 크고 보편적인 원인이다.> – 아담 스미스의  <도덕 감정론>에서

모처럼 잘 쉬었다. 딱히 뭔지 모를 미안한 미음으로.

겸손에

이즈음 틈틈이 읽고 있는 책들이 있다. 신학자 하비 콕스가 쓴 <신이 된 시장>, 역사학자 유발 하라리의  <21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언> 그리고 정치학자 아이리스 매리언 영의  <차이의 정치와 정의>들이다.

유발 하라리의 책은 재미있어 대충 일독 후 정독 중에 있고, 하비 콕스의 책은 내 이십 대 시절의  생각과 지금의 생각들을 비교하며 읽고 있는 중이고, 아이리스 영의 것은 여러모로 버거워 하며 책장을 넘기고 있다.

나이 들어 좋은 점 하나는 나 혼자 즐길 시간이 늘어가는 것이다.

아직 책들을 완독하지 못했지만 세 권의 책들에서 공통적으로 찾아 낼 수 있는 단어 하나 ‘겸손’이다.

사람살이에 얽혀져 있는 많은 문제들을 해결 할 수 있는 수단이 바로 ‘겸손’이란다.

하여 요 며칠 동안 ‘겸손’을 읊조리고 있던 중이었는데 ‘바로 그거야!’라고 확인해 주는 이메일을 받았다.

호주에 계신 홍목사님의 편지였다. 그는 정기적으로 보내주는 시드니 인문학교실 강의록 외에 은퇴 목회자 주일예배 설교문을 보내 주었는데, 그 설교문에서 그가 확인해 준 사람 답게 사는 해결책 역시 ‘겸손’이었다.

내 삶을 돌아보는 눈은 물론이거니와 이즈음 세상 뉴스들을 바라 보는 올바른 판단의 기준 바로 ‘겸손’ 아닐까? 그것이 신 앞에서건 인간 앞에서건.

부끄러움(염치)와 겸손을 상실한 시대는 늘 이어져 온 것이지만, 그래도 세상은 염치를 알고 겸손이 익은 몸짓으로 살아가는 사람들 역시 끊이지 않았다는 믿음으로.

내 모든 선생님들에게 감사를.

나물무침

어머니는 늘 당신이 내 울타리라고 우기셨고, 내게 어머니는 언제간 반드시 넘어야 할 담이었다. 물론 서로가 그렇게 말해 본 적은 없다. 어머니와 나의 관계는 그렇게 내 나이만큼 이어왔다.

불과 일년 전 까지만 하여도 어머니는 내 밥상에 당신의 손길을 올려 놓길 즐겨 하셨다.

십 수년 전 내가 밥을 짓고 음식을 하는 일에서 즐거움을 찾기 시작할 즈음, 어머니는 고개를 가로 저으며 못마땅해 하셨다.

그러시던 어머니가 어느날 부터인가  내가 한 음식이 맛있다고 하셨다.

이제 어머니는 더 이상 밥을 짓거나 음식을 하시지 못하신다. 이즈음  나는 어릴 적 어머니가 내게 해 주신 밥상차림을 생각하며 그 흉내를 내곤 한다. 어머니를 위하여.

어머니가 내 울타리를 포기할 즈음 나도 담을 뛰어 넘을 생각을 접었다.

하여 평안하다.

늦은 밤, 나물을 무치며.

마지막 간 맞춤은 아내에게 맡기다.

  1. 23. 20

가짜에

한국에서 갑자기 확산된 코로나 바이러스와 연계되어 듣게 된 신천지라는 종교집단에 대한 뉴스들을 보다가 다시 손에 든 유발 하라리의 책 <21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언>이다. 내가 이 책을 읽은 까닭은 <더 나은 오늘은 어떻게 가능한가>라는 부제가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저자의 전작들에 대한 믿음도 한 몫 했다.

5부 21장으로 이루어진 책에서 저자는 17장과 20장에서 이즈음 많은 사람들에게 관심을 끌고 있는 거짓 뉴스들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다. 그 중 몇 대목들이다.

<우리는 요즘 ‘탈진실(post-truth)’이라 부르는 새로운 시대에 살고 있다는 말을 반복해서 듣는다. 사방이 거짓말과 허구로 둘러싸인 무서운 시대다. >

<사실 인간은 늘 탈진실의 시대를 살아왔다. 호모 사피엔스야말로 탈진실의 종이다. 호모 사피엔스 특유의 힘은 허구를 만들고 믿는데서 나온다.>

이쯤해서 저자는 종교를  예로 든다.

<1.000명의 사람이 어떤 조작된 이야기를 한 달 동안 믿으면 그것은 가짜 뉴스다. 반면에 10억 명의 사람들이 1,000년 동안 믿으면 그것은 종교다. 하지만 우리는 그것을 ‘가짜뉴스’라 불러서는 안된다는 충고를 들어왔다.>

신천지 뉴스가 다시 이 책을 들게 한 대목이다.

어찌 신천지 뿐이랴! 모든 종교와 이념과 오늘 내 삶 가운데 마주치는 정치 경제 언론 등등 모든 시장의 영역에서 마주치는 문제이다.

유발 하라리가 내어 놓는 가짜로 부터 해방되는 해결책이다.

<모든 가짜 뉴스의 기저에는 진정한 사실과 고통이 존재한다.>

<우주와 삶의 의미, 자신의 정체성에 관한 진실을 알고 싶은가. 가장 좋은 출발점은 먼저 고통을 관찰하고 그것이 무엇인지 탐구하는 것이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그리 어려운 말도 아니다.

종교적으로는 참 평신도가 되는 일이고, 그저 일상에서는 깨어 있는 시민이 되는 일이다.

그저 내 식으로.

봉준호라는 이름으로 하여 고향생각에 젖어 보낸 한주간 생각을 내 가게 손님들과 함께 나누다. 내가 태어난 곳은 부모님의 피난지였던 부산이지만 그 곳에 대한 기억은 없다. 유년의 첫 기억부터 청년의 끝물까지 아련한 세월을 묻어 둔 곳은 신촌이다.

문득 따져보니 신촌 (새마을 , New Village)에서 보낸 세월보다 이 곳 델라웨어 Newark(새 방주, New Ark)에서 세탁소를 하며 지낸 시간들이 더 길어졌다. 그 생각 끝에 편지를 띄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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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 가게 손님 몇 분들이 한국영화 ‘기생충’에 대한 이야기를 건네셨답니다. 그 영화가 올해 4개의 오스카상을 탔기 때문입니다. 물론 한국인들에게는 그 수상 소식이 매우 큰 뉴스였답니다.

영화나 아카데미 영화제에 대한 관심이나 지식이 깊지 않은 제가 영화나 영화제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는 게 아니랍니다.

그 영화 감독인 봉준호라는 이름 때문에 떠올린 제 고향 이야기를 드리려 한답니다.

제 어린 시절과 청년기를 보낸 곳은 대한민국 서울시 신촌이라는 동네입니다. 지금은 시내 한복판이 되었지만,  제가 살 때만 하여도 서울 중심부에서 서쪽 외곽에 떨어져 있는 마을이었습니다. 신촌이라는 동네 이름의 뜻이 새마을이랍니다. 새로 생겨 도시와 시골 분위기가 함께 어우러진 동네였답니다.

누구에게나 그렇듯, 어린 시절을 보낸 고향이야기들을 풀어 놓으면 끝이 없을 것입니다. 저 역시 마찬가지여서 제 블로그에  ‘신촌연가’(신촌을 그리워 하며 부르는 노래)라는 제목으로 연재 글을 올린 적이 있었답니다. 벌써 십 수년이 지난 오래 전 일이랍니다.

연재의 마지막 글에 ‘봉준호’라는 이름으로 댓글이 달렸었답니다. “글을 인상깊게 잘 읽었다. 신촌에 대한 이야기들을 더 듣고 싶다. 당신이 살았던 때의 거리의 풍경, 많이 보던 나무들 등등….”이라는 글과 함께 그의 이메일 주소가 남겨 있었답니다.

저는 그 댓글을 남긴 봉준호라는 이가 영화 기생충의 감독 봉준호와 동일인인지는 알 수 없답니다. 제가 응답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랍니다.  그 이름이 유명한 영화감독 이름인지도 몰랐거니와 알았다한들 역시 응답은 하지 않았을겝니다.

그렇게 지난 주 봉준호라는 이름을 들으며 다시 떠올리게 된 제 고향이랍니다. 이따금 아주 이따금 내 고향 신촌과 함께 떠오르는 얼굴들이 그리울 때가 있답니다. 언젠가 한 번은 가 봐야겠다는 생각 위로 한 해 한 해 세월의 숫자만 쌓여가고 있답니다.

따지고 보니 제가 신촌에서 산 세월보다 Newark에서 세탁소를 하며 보낸 시간들이 더 길답니다. 세탁소는 현재 진행형이고, 언젠간 은퇴할 것이고 이곳에서 노년을 보낼 계획이니 또 다른 고향이 Newark인 셈입니다.

신촌(새마을 , New Village)에서 Newark(새 방주, New Ark)까지의 내 삶을 추억하게 한 지난 주 다시 만난 봉준호라는 이름에 감사하며.

지난 일요일 아침 Newark 저수지 방죽길에서 찍은 내 제2의 고향 Newark 사진 몇 장 함께 나눕니다.

그리워하는 모든 것들로 하여 새 힘이 솟는 시간들이 되시길 빌며…

당신의 세탁소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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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st week, some customers talked to me about the Korean movie, “Parasite.” That was because it won four Oscars this year. Of course, it was very big news to Korean people.

I don’t have much knowledge about movies and Academy Awards, and I’m not trying to talk about them.

The name of the director, Bong Joon-ho, reminded me of my hometown, and I’m going to talk about it.

The place where I spent my childhood and youth was Shinchon in Seoul, South Korea. Now it has become a part of the heart of the Seoul Metropolitan area, but when I lived there, it was like a village distant from the downtown of Seoul. The meaning of “Shinchon” is “new village.” As it was a newly developed village, it had the urban atmosphere alongside the countryside feeling.

If anyone starts to reel off a story about the hometown where he/she grew up, it would be endless. Like anybody else, I have lots of stories and memories about my hometown. I had posted a series of them at my blog site with the title, “Shinchon Yeon-ga (a song for missing Shinchon).” It was more than a decade ago.

At the last post of the series, a comment was written under the name of “Bong Joon-ho.” It said, “I read the series of your posts and was impressed. I’d like to hear more about Shinchon, such as scenes of trees, streets and so on when you lived there…” He also left his e-mail address.

I’m not sure whether the comment writer, “Bong Joon-ho,” and the director of the movie “Parasite” is the same person. That’s because I didn’t respond to the comment. At that time, I didn’t know that it was a famous director’s name. Even if I had known it, I would not have responded.

Like that, when I heard the name, “Bong Joon-ho,” last week, I recalled my hometown. Occasionally, really occasionally, I have missed faces sweeping across my memory along with my hometown. On the thought that I’d visit there sometime, the number of years has been heaping one by one.

After calculation, I realized that the years which I have spent in Newark running a cleaners are longer than ones which I spent in my hometown, “Shinchon.” Furthermore, I’m running a cleaners now, and I’ll retire sometime in the near future and spend the rest of my life here. So, Newark is definitely my second hometown.

Thanking the name, “Bong Joon-ho,” for prompting me to go on a trip down my memory lane from “Shinchon (New Village)” to “Newark (New Ark).”

I’m sharing with you some pictures of my second hometown, Newark, which I took at the causeway of the Newark Reservoir last Sunday morning.

I wish that you will be reinvigorated with thoughts of everything and everyone that you are missing.

From your cleaners.

뉴스와 꿈

내가 사는 곳에서 뉴욕 맨하턴까지 거리는 고작 130마일 정도이다. 교통 사정이 원활하기만 하다면 고작 두어 시간 걸려 닿을 수 있다. 그런데 뉴욕 맨하턴과 유리 동네 유행의 간격간 거리가 반 년이 훨씬 넘었던 시절이 있었다. 그게 아주 먼 옛날 이야기도 아니다.

6,70년 대 돈을 세다가 밤을 지샜다는 전설같은 이야기들을 서슴없이 풀어 놓던 이민 일세대들에게 들은 이야기다. 당시 가발이나 의류, 운동화. 각종 장식들을 팔았던 이들의 이야기에 따르면 뉴욕 맨하턴에서 유행하던 품목들은 한 반년 쯤 지난 후 우리 동네에서 유행했다고 한다. 그 유행의 기간을 잘 맞추어야 한 몫 잡을 수 있었다고들 했다.

모두 옛날 이야기다. 이제는 뉴욕과 우리 동네 뿐만 아니라 서울과 우리 동네가 거의 동시에 함께 돌아간다.

이 촌 동네 작은 내 세탁소에 드나드는 손님들이 한국 영화 기생충을 이야기하고 영화 감독에 대해 묻는다. 물론 우리 동네 신문에도 크게 실렸다.

코로나 바이러스라고 뒤지지 않는다. 바로 내 가게와 한 동네에 있는 대학교에서 바이러스 의심 환자가 발생해 격리 중이라는 기사도 오늘 내 눈길을 뺏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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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와 유행의 간격이 비례했던 시절이나 오늘이나 따지고 보면 사람들의 일상은  크게 변함이 없다.

그저 다 제 식일 뿐이다. 호들갑 또는 덤덤함으로.

하루 일을 마치고 그러저러한 뉴스들을 훑어 보다가 그저 스쳐 지나가며 빌어보는 소원 하나.

한반도 분단 상황을 숙주로 하여 제 배 불리는 모든 기생충들이 박멸되는 세상을 만날 수 있었으면….

꿈을 이어가는 한,  살만한 게 사람살이일 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