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표 하나

충청북도 보다 조금 작은 면적에 사는 인구수는 백만 명 남짓, 내가 살고 있는 델라웨어 주 개관이다. 삼십 수년 전에 내가 이곳으로 이주했을 당시 인구수가 육십만 남짓이었으니 변화가 더딘 곳이다.

서울내기인 내가 아주 단조로운 삶에 적당히 녹아 들어도 놀랄 것 없는 세월도 흘렀거니와 이 곳의 한결같은 촌스러움이 이젠 내 몸에 온전히 배어 있어 그야말로 나는 가히 델라웨어 사람이다.

이 작은 주에 하루에 백 명 이상의 코로나 바이러스 확진자 소식으로 흉흉해 진지 벌써 사흘 째다. 그 수가 어느새 천명에 육박했다. 주지사가 다음 주 안으로 확진자 삼천 명 운운한 말은 사뭇 과학적 근거를 바탕으로 했나 보다. 이건 인구 대비 대한민국의 열 다섯 배 수치이다.

하루에 몇 차례 알림 속보로 마주하는 바이러스 환경은 그야말로 전쟁터다.

그러다 보게 된 세계 여러 나라들의 바이러스 확진자 추이 비교 도표다. 그야말로 자랑스런 대한민국 아닌가!

그런데 도대체 왜? 대한민국을 깍아 내리는지? 그것도 자국의 언론과 정치꾼들과 미신적 종교에 빠진 얼치기 종교인들과 아직도 삼국시대를 살고 있는 지역 연고 우선인 사람들과…. 암튼 난 대한민국이 자랑스럽다.  21세기 민주주의와 복지 실험을 거쳐가는 모든 나라들 가운데 앞서 가려고 하는 정부를 가진 대한민국의 오늘이 자랑스럽다.

누구나 다 제 생각이 옳다고 믿고 사는 게 사람사는 모습이겠다만, 나는 아무리 생각해도 박정희 전두환 박근혜 이명박으로 이어지는 세력들에게 표를 주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공동체는 이해 불가다.

사월 – 주말편지

너나없이 답답함 안고 사는 이즈음, 손님들에게 위로의 편지를 띄우다. 어쩜 내게 보낸 것일 수도. 봉화 농사꾼인 벗이 찍은 봄소식을 덤으로 얹었다.


한국인들이 쓰는 아침인사말은 ‘좋은 아침’입니다. 영어의 good morning과 똑같은 말입니다. 한국인들이 이 아침 인사말을 쓴지는 그리 오래 되지 않았습니다.

제가 어렸을 때에 한국인들이 주로 쓰던 아침인사말은 ‘밤새 안녕하십니까?’ 또는 ‘아침 드셨나요?’였습니다. ‘밤새 안녕하십니까?’라는 인사말은 한국전쟁을 겪으며 생긴 인사인데 그저 하루 하루 안전하게 살아있는 게 고맙다는 뜻으로 나눈 인사일겝니다. ‘아침 드셨나요’라는 인사는 눈 뜨고 일어나면 그 날의 양식 걱정을 했던 너나없이 가난했던 시절에 나눈 인사였습니다.

이즈음 다시 생각나는 오래 전 제가 쓰던 아침 인사말이랍니다.

거의 매일 한차례 씩은 들려서 인사 드리던 구순 노부모님들께 이즈음은 주에 두차례 그나마 길어야 5분 내외의 짧은 인사만 드리곤 합니다. 노인들에게 가기 전엔 샤워를 하고, 새 옷으로 갈아 입고, 마스크를 쓰고 장갑을 끼고 찾아 뵙는답니다. 만에 하나라도 제가 바이러스를 옮기는 게 아닐까하는 걱정 때문이랍니다.

필라에 사는 아들, 며느리와는 이따금 전화 목소리로 안부를 나눈답니다. 그래도 아들 내외는 부부가 함께 있어 걱정이 덜한 편이랍니다.

뉴욕 맨하턴에 있는 딸아이는 전화 할 때 마다 ‘제발 걱정하지 말라’고 하지만 그게 어디 제 맘대로 되는 일이 아니랍니다. 석 주 전에 재택근무를 하는 딸아이에게 제안을 했었답니다. ‘어차피 재택근무를 하니 델라웨어로 내려 오라. 내가 올라가서 너를 데리고 오마.’ 제 제안에 딸아이는 강력히 거부를 했답니다. 계속되는 제 재촉에 딸아이가 한 대답이랍니다. ‘뉴욕에는 이미 바이러스 확진자가 많이 생겼다. 어쩌면 내가 이미 감염이 되어 있을 수도 있지 않느냐? 행여라도 내가 델라웨어로 가서 엄마 아빠에게 옮기게 되면 어떡하냐. 아파트 안에서 꼼짝않고 지낼 것이고, 먹을 것도 많으니 제발 걱정말라.’ 그만 제가 지고 말았답니다.

엊그제 딸아이는 화상 전화를 해서 자신이 스파게티를  얼마나 맛있게 만들어 먹고 있는지를 보여 주었답니다.

그리고 어제 아침 페이스북 친구가 올린 영상을 보면서 가슴 한 곳이 찡해졌답니다. 코로나 바이러스 전쟁터 최일선에서 일하는 의료진들을 격려하자며 아파트와 집에 갇혀 사는 이들이 보내는 박수와 함성 소리를 담은 영상이었답니다.

마스크를 쓰고, 사람 사이에 거리 두기를 하고 살아야 하는 이즈음이지만 이럴수록 사람과 사람 사이 서로의 이해는 더 넓어지고 서로간 격려의 소리는 더욱 커지는 더하여  평소에 잊고 살았던 가족들과의 사랑이 더욱 깊어지는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사월입니다. 지난 주에 이어 한국에서 농사 짓는 벗이 찍은 봄 소식 함께 나눕니다.

당신의 세탁소에서

*** 어제 CDC(The Centers for Disease Control and Prevention)는 cloth face mask를 쓸 것을 권고하였습니다. 이미 지난 주 이메일을 통해 저희 부부는 수제 면 마스크를 만들어 손님들에게 무료 제공한다고 말씀 드린 바 있습니다. 원하시는 분들에게 무료 제공해 드립니다. 다만 지난 주에 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원하셔서 미처 다 드리지를 못했습니다. 내일(월)은 지난 주에 미처 드리지 못한 분들에게 먼저 제공해 드립니다. 새로 신청하시는 분들에겐 수요일 이후 부터 제공합니다.

https://conta.cc/39I814B

https://www.youtube.com/watch?v=-5XqjyfI68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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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 8

‘주(州) 내 노인 요양원에 코로나 바이러스확산으로 가족들 임종 지키지 못해’ – 오늘자 동네 신문 온라인판에 오래 동안 걸려 있는 머리기사 제목이다.

오늘까지 주내에서 발생한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한 사망자의 절반이 노인 요양원에서 나왔단다. 신문기사는 가족 면회가 차단된 노인 요양원의 현재 모습을 다루고 있다. 임종을 홀로 맞이해야만 하는 노인들의 모습과 빤히 알면서도 가까이 갈 수 없는 가족들의 처지를  꽤나 장문으로 전하고 있다.

노인 요양원에도 여러 등급이 있고, 고급 요양원에서 확진자나 사망자가 발생한 일은 없단다. 비교적 저소득층이 가는 요양원에서 주로 확진자와 사망자가 발생했단다. 기사는 주내 요양원의 실태도 비교적 상세히 다루고 있다.

기사를 읽으며 내 머리속은 여러모로 복잡해졌다. 약 일여 년 넘게 노양원에서 지내시다 지난 정월에 돌아가신 장인 생각과 치매기 날로 깊어지고 쇠해지시는 부모님을 할 수 있는 한 요양원에는 절대 보내지 않겠다는 생각으로 지내는 내 형제들과 가족들 생각 때문이었다.

복잡한 머리 속이 내 맘대로 풀리지는 않을게다. 그저 하루 하루 시간에 감사하며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할 뿐이다. 이미 먼저 가신 장인이나 장모에 대한 기억도 마찬가지다. 그저 모든 것 감사하므로 기억해야 할 터이다. 오늘 하루 내 삶을 감사할 수 있는 맘 하나, 먼저 가신 이들이 키워 준 것이다.

저녁 나절에 애기처럼 맛나게 드실 어머니 생각하며 우거지 갈비탕 진하게 우려 끓였다. 국을 끓이며 내일을 사는 힘을 얻다.

나는 그저 기억만 할 뿐이지만, 기억함으로 좋은 세상을 바꾸려고 늘 애쓰는 참 좋은 친구들의 삶을 보면 부끄럽기도 하고 그 정열이 부럽기도 하다. 그래도 고맙다. 그들로 하여 내일을 사는 내 힘이 배가되기 때문이다.

그래, 모든 삶은 죽음에 닿아 있지만, 누군가의 죽음은 기억을 통해 영생하는 삶에 닿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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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 7

제 뜻과 제 맘대로 살지 못하기에 사람일게다. 아무렴, 그래야 사람인데 그걸 종종 잊고 산다. 아무리 백세시대라 하여도 나와는 그리 상관 없는 듯 하고, 이쯤 살았으면 많이 걸어 온 듯도 하고, 살며 더는 남에겐 아쉬운 소리는 않고 살겠지 했는데, 그 맘 먹고 산지 겨우 몇 해이건만 그예 깨지고 말았다.

내 가게 건물주에게 새 달 렌트비를 보내며 향후 두 서너달 렌트비를 감면해 주십사하는 편지를 동봉하다. 구걸이 아니라 싸움일 수도 있겠다만, 이 나이에 아니할 수 있었다면 훨 나을게다. 그러나 어쩌겠나, 사람살이인 것을.

채 한 달 만에 주(州)내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자가 삼백이 넘고 사망자가 열명에 이르렀단다. 어제 주지사는 앞으로 두 세주 안에 감염자가 삼천에 이르고 입원 환자는 오 백에 이르러 병실이 없을 것이란다. 동네 농구장과 대학 운동장 등 몇 곳을 정해 임시 병실을 만들 예정이란다.

이게 결코 만만치 않은 숫자다. 한국 감염자 수가 만여명이라지만 오천만 중 만명이다. 여기 삼천 명은 백 만명 중 삼천이다. 0.02% 대 0.3% 곧 한국보다  15배가 넘는 수치다.

여러모로 예견된 일이기도 하다.

그래도 사람사는 세상. 나의 세상 끝. 바로 오늘 내가 만나는 사람들 곧 내 가게 손님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아내는 온종일 손님들에게 나누어 줄 수제 마스크를 만들다.

매 주 일요일 아침, 내 가게 손님들에게 편지를 띄운 지 어느새 십 오륙 년이다. 편지에 대한 손님들의 응답이 지난 두 세주 만큼 열성적인 때는 없었다. 서로의 안녕을 묻고, 함께 이겨 나가자는 격려의 인사들이었다.

어디나 다 사람사는 세상은 엇비슷하다.

이 어려움이 끝나면 세상은 틀림없이 많이 바뀔 것이다.

사람이 더욱 사람다운 사람으로 살아가는 세상으로.

지난 일요일 손님들에게 보내는 편지에 한국 봉화에서 도인(道人)의 자태로 농사짓는 벗이 찍은 봄 사진 몇 장 얹었더니 그걸 또 그리 좋아들 했다.

아무렴, 사람 마음 다 엇비슷하다.

누구에게나 하루가 24시간 인 것 처럼.

a b c

하루 – 6

내 가게가 있는 샤핑센터 입주 업소들 중 지난 화요일 주정부가 내린 명령에 따라 현 상황에서 영업을 지속할 수 업소는 딱 세 군데 뿐이다. 큰 식품 체인점인 ACME 와 주류 판매업소 곧  liquor stores와 세탁업인 내 가게가 그것들이다.

나는 아직 여러모로 헷갈려하며 다음 주부터  당분간 주 사흘간만 하루에 여덟 시간 씩 영업을 하려한다.

오늘은 비록 가게 문을 열지는 않았지만 아내와 함께 가게에서 몇 시간을 보냈다. 아내는 다음  주부터 원하는 손님들에게 무료로 나누어 줄 수제 마스크를 만들었고, 나는 손님들과 우리 부부 사이의 거리를 서로간 모든 가능한 동선에서 일정 간격을 유지할 수 있도록 카운터 언저리를 재배치 하였다.

주차장에 차량은 평소보다 1/5 수준도 채 안되는 듯 했다. 좀처럼 보기 힘들던 마스크 쓴 샤핑객들을 이젠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아내가 뜬금없는 질문을 던졌다. ‘식품점이야 꼭 필요한 것이고, 세탁소도 어느 정도 이해한다 치자고…. 근데 술 파는 집이 왜 꼭 필요한 업종이 되어야 하지?’… 내 대답, ‘글쎄???’

아내의 물음에 대해 해답을 준 이는 우리 동네 주지사이다. 오늘 동네 신문에 실린 기사 내용이다.

주지사와 일문일답을 하는 질문자가 물었단다. ‘주지사님, 술 판매 업소들은 여전히 영업을 계속하고 있는데, 왜 그 업종이 지금의 상황에서 주민들에게 필수적인 것인지요?’

주지사의 대답이란다. ‘불행하게도 우리 델라웨어 사람들 중에는 약물 중독자들(여기에 많은 알콜 중독자들이 포함 되는 듯) 이 많답니다. 만일 술 판매 업소를 닫아 버린다면, 중독자들이 갈 곳은 딱 한 곳이랍니다. 바로 병원이지요. 지금 이 상황에서 그들이 병실을 차지하기 시작한다면, 지금 이 상황을 제대로 관리할 수가 없기 때문이랍니다.’

이 사회의 바닥 현실을 들여다 볼 수 있는 대답이 아닐까? 그러고보니 술 판매업 영업을 정지시킨 이웃 펜실베니아 거주민들이 아침 일찍 우리 동네 liquor stores 앞에서 길게 줄을 선 뉴스를 본 게 며칠 전이었다.

그래, 모든 일엔 다 까닭이 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이런 저런 하루의 고민과 걱정과 염려를 내려놓고 아내와 함께 오늘의 공원 길을 즐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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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 5

오늘도 낯선 시간 앞에서 엉거주춤한 모습으로 하루를 보내다. 손님들에게 이미 고지한대로 가게 문은 닫았다. 다음 주부터 주 사흘 동안 짧게 라도 영업을 지속하기 위한 준비를 한다. 그래도 여전히 시간은 남아 돈다. 그렇게 빨리 달리던 시간들이었는데 한적한 거리 풍경만큼 더디다.

오후 속보는 주(州)내에서 첫 바이러스 감염 사망자 소식을 전한다. 오늘로 첫 확진자 소식 이후 보름이 지났다. 현재  확진자 수는 143명이란다. 주내 인구라야 아직 백만명에 이르지 못하므로 인구 대비 결코 낮은 수치가 아니다.

신문은 coronavirus pandemic 상황에서 어찌할 바 모르는 이웃들을 위해 서로 위로하는 모습들을 담은 사진들과 글로 오늘을 이겨내는 사람들 소식도 전한다.cec82e34-d943-4d01-a697-73a61516d18f-Jen_5 d8471453-ec20-493d-86dd-9a99da7e063d-Jen._3

그리고 재미있는 기사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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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택근무가 늘어가면서 집안에서 오랜 시간을 함께 하게 된 부부 사이의 갈등 현상과 그 해결 방안들을 제시하는 기사였다.

삼십 년 넘는 세월 동안 거의 24시간을 아내와 함께 하며 살아 온 내 눈을 반짝이게 한 기사였지만,하루에도 열 두 번(아주 최소한으로 잡더라도) 싸우며 무사하게 살아 온 우리 부부에겐 별무 소득이었다.

그러다 손에 든 송기득 선생님 책 ‘인간(그리스도교 인간관에 대한 인간학적 해석)’을 읽다가 내 온 몸과 맘으로 웃는 웃음을 짓다.

“그런데 그때그때의 상황에서 모든 <남>에게 <너>가 되려고 애쓴 예수의 삶은 결국 무엇일까? 그것은 다름 아닌 예수의 <나>의 참된 실현에 지나지 않는다. 그는 끝내 자신의 <참 나>를 살아냈던 것 뿐이다.  ………..

우리는 이따금 우리 둘레에서 자신의 온 삶을 한 이성異性을 위하여 살고 있는 사람을 본다. ….이러한 삶의 자리를 우리는 어떻게 그릴 수 있을까? 아마도 그것은 너를 삶으로서 <나>를 사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으리라. 너를 사는 나, 그것이 곧 나이며 그 밖에 나는 따로 없는 것이다. 나 없는 <너와 나>라고 할까……….

우리는 이러한 자리를 비난하거나 낮게 평가하려는 것이 결코 아니다. 오히려 한없는 찬사를 보내고 싶다. 그러나 한 가지 잊어서는 안될 것이 있다. 그것은 <너>에게  <나를 드림>  이라는 미명으로 하여 자신의 순수한 새 가능성을 억누른다든지, 그와 못지 않은 <나>의 성실을 저버린다든지, 심지어 그것으로 하여 반反너스러운 것의 발현을 위장한다든지, 자기 속임수를 감추려든다든지. 또한 그것이 저만의 희생이라고 하여 자만하거나, 과장한다던지 한다면, 그것은 드디어 <나>도 못살고 <너>도 못살고 마는 자기파멸을 가져 올 것이 뻔하다. 더구나 그러한 <나>로 하여 자신을 쳐다보고 구원을 바라는 그 밖의 사람들을 못 본 채 해서는 더욱 안될 것이다.

그러나 <너>에의 고귀한 삶도 깊이 따지고 보면 결국 <나>를 사는 삶 그것을 넘지 못하리라.”

그래, 무릇 너를 위한 나를 살기 위해 누구 또는 무엇과 싸우더라도 웃으며 살 일이다. 하루를.

하루 – 4

일하지 않는 하루는 여전히 길다. 이른 아침 가게로 나갔다. 당분간 영업은 하지 않기로 했지만, 주정부가 내 업인 세탁업은 영업 가능한 업종으로 분류해 놓은 터라 만일을 대비해 놓자는 심산으로 가게에 나가 앉아 여러 궁리를 해 보았다. 우선 며칠 동안 손님들과 최소 9피트 정도를 유지하면서 영업이 어떻게 가능할지를 생각해 보았다. 향후 며칠 간 그렇게 가게를 꾸며 볼 요량이다.

오후엔 목욕재계하고는 마스크에 장갑을 끼는 중무장 차림으로 노인들을 뵙다. 누군가 말했다지, ‘신은 어느 곳에나 있을 수 없어서 어머니를 만드셨다,’고. 이젠 애기가 되신 어머니는 돌아서는 내 등 뒤에서 읊조리셨다. ‘얘야, 얘야, 그저 조심하거라!’

저녁 나절 읽던 책들을 손에 들었다 놓았다 하다가 신문들을 훑다. 그러다 눈 번쩍 뜨이게 한 컬럼 하나. 코로나 바이러스가 오늘을 사는 사람들에게 주는 교훈을 찾자는 글이다.

<올 가을에 투표할 때, 오늘을 함께 사는 공동체로서 우리는 누구인지 또한 사람들을 서로 돌보고 연결 시키는 이들은 누구인지를 기억합시다. 최근 몇 년 동안 이어진 분열을 거부하고, 모두를 위한 굳건한 내일을 만들어 나가는 정치적 해결책을 찾아 나갑시다.

델라웨어인들은  이 질병이 확산되는 것을 막아내고 우리 공동체가 다시 번영할 수 있도록 내부적 결속과 창조적인 방안을 찾아 함께 나아갑시다.

우리가 올바르게 함께 한다면, 우리가 함께 하는 사람들에게 서로 의지하고 그 연결의 고리를 단단히 한다면, 우리 모두는 오늘의 상황을 이기고 더 강한 사회를 만들어 나갈 것입니다. >

가을 선거를 앞 둔 여기나 채 한 달도 남지 않은 한국 선거나 보다 나은 사회를 만드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아무렴, 이 상황이 끝나면 사람살이는 또 한 발자국 성큼 진보적인 사회로 나아갈 터이니.

이렇게 또 하루에 대한 감사다.

 

하루 – 3

습관이랄까? 냉장고를 채워 놓고 살지 않는다. 그저 그날 그날 먹을거리를 사다 조리해 먹는 편이다. 노인네들 식사를 해 나르는 형편이 되면서 더욱 냉장고 신세를 지지 않으려 애쓰는 쪽이다. 신선한 게 좋다는 생각 때문이다. 가게 바로 코 앞에 큰 그로서리 체인이 있는 덕분이기도 하다. 이도 저도 하기 싫을 땐 우리 두 내외가 외식을 하는 게 더욱 실리적일 수도 있다.

허나 세월이 하수상하여 간만에 냉장고를 그득 채웠다. 아내와 내가 당분간 장을 안 보아도 몇 주간은 너끈히 지낼 수 있을게다.

오후에 주지사 명령이 떨어졌다는 전화 알람 신호가 왔다. 모레 24일 아침 8시를 기해 전 주민은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곤 집안에 머무르라는 명령이었다. 기간은 5월 15일 또는 지금처럼 공공의 안전이 위협받는 상황이 끝날 때 까지란다. 앞으로 최소 두 달 여, 장기간으로 보자면 가늠할 수 없을 만큼이다.

첨부된 화일에는 이 기간 동안 영업을 할 수 있는 업종과 반드시 영업을 중지하는 업종들을 상세히 분류해 놓았다. 행인지 불행인지 모르지만 내 업종인 세탁업은 삶에 필수적인 업종으로 분류되어 이 기간에도 영업이 가능 하다고 되어 있다.

오늘 아침에 손님들에게  ‘아주 짧은 시간에 우리들의 주변 상황과 일상들이 많이 바뀌었습니다.’라는 인사말을 시작으로 한 편지를 보냈었다. 솔직히 내 평생 이렇게 짧은 시간에 내 주변의 상황들이 바뀐 경험은 처음이다.

한국전쟁 후 모습에 대한 기억들은 어렴풋하지만 엄연히 전후 세대이고, 내가 군에 간 바로 그 시기에 월남전도 끝나서 전쟁에 대한 경험은 전혀 없다. 한국에 살던 젊은 시절엔 누구나 겪었던 만들어진 전쟁 위협 속엔 살았지만 그게 현실적 위협으로 느껴본 적은 거의 없었다. 그저 몇 차례 당시 숱한 젊은이들이 겪었던 것처럼 체포 구금 고문 등의 아픈 기억을 채 지우지 못하고는 있지만, 내 주변이 모두 그 아픔을 함께 했던 것은 아니었다.

미국에 이민 온 이후로는 내가 스스로 만든 어려웠던 상황들이 있긴 하지만 그야말로 개인적 경험에 한한 것이고, 이번처럼 그 누구도 어찌할 수 없게 주변 상황이 빠르게 변한 일은 그야말로 처음이다.

아무튼 아침에 손님들에게 보낸 이메일 편지에 의외로 많은 손님들의 답장을 받았다.

우리 부부의 안녕과 무엇보다 내 세탁소가 동네에 꼭 필요하다는 생각들을 전해 온 답장이었다. 우리 내외가 이런 상황에서 경제적으로 힘들어 세탁소를 접는 일은 없어야 한다며 Landlord에게 한 동안 가게 월세를 면제해야만 한다는 편지를 보내겠다는 열혈 손님도 있었다.

손님들에게 받은 답장들을 읽으며, 오늘 하루 어수선했던 내 마음의 주름이 쫙 펴졌다.

냉장고를 채운 것은 헛 일이었나 보다.

하루의 감사가 이리 큰 것을.

하루 – 2

동네에 첫 확진자 발생 뉴스가 나온 후 일주일이 지났다. 한 주 사이에 많은 것들이 변했다. 오늘 오후 뉴스는 서른 번째 환자 소식을 전했다. 드러난 숫자가 그러할 뿐이지 실제 감염자 수는 얼마나 되는지 가늠하기 어렵다는 해설 기사도 있다.

이런 저런 관련기사들을 훑어 보지만 이 상황을 조속히 종속시킬 마땅한 방안들은 아직은 없는 듯 하다. 그나마 사회적 거리 두기(social distance) 운동이 현재로선 가장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세탁소로 밥 먹고 산지 삼십 여년이 넘도록 이제껏 평일에 세탁소 문을 닫아 본 기억이 없다. 종업원들에게 맡기고 쉴지언정 가게문을 닫은 적은 없었다.

이번에도 구순 노인들만 아니었다면 어쩌면 나는 가게 문을 계속 열고 있었을 게다. 이런 저런 걱정에 이번 주엔 사흘 가게 문을 닫기로 했는데, 지금 추세로 보니 다음 주엔 완전히 문을 닫아야 할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맞게 된 평일의 휴일은 너무도 길다. 아직 은퇴할 나이는 아닌가 보다. 이 또한 지속된다면 나만의 일상이 그려지겠지만 아직은 낯설다.

오전에 family doctor 사무실에서 보낸 이메일엔 행여 우리 부부에게 이상증세가 나타날 시 우리들이 해야 할 행동수칙들이 열거 되어있었다. 그리고 메일 끝 부분에 이어진 말이다. ‘우리 모두 이 어려운 시기를 잘 이겨냅시다. 집에서 하루를 보내신다면 건강 음식을 만들어 즐기시거나 밖에 나가 걷거나 운동을 하시기를 권합니다.’

오후에 받은 동네 신문 코로나 바이러스에 관련된 최신 뉴스에 덧붙여진 마지막 안내. ‘마지막으로 밝은 소식입니다. 봄이 왔습니다. 밖에 나가 다가오는 봄을 즐기십시오. 주립 공원들은 무료입니다.’

하여 김수미 선생표 장수제비국을  흉내 내어 배를 채운 뒤 아내와 함께 동네 공원에 찾아 든 봄을 맞아 걸었다.

늦은 오후 아이리스 영이 가르쳐 주는 복지 자본주의에 대한 글을 읽다.

오늘 부모님은 누나 당번.

이 이상한 하루들에게 또한 길들여질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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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딱 닷새 사이에 내가 사는 세상이 바뀌었다. 동네에 첫번 째 코로나 바이러스 확진자가 생겼다는 뉴스가 뜬 것은 닷새 전인 지난 수요일, 그리고 오늘까지 일곱 명이란다. 모두 내 가게가 있는 도시에서 일어난 일이다.

뉴스들은 도시가 곧 숨이 넘어 갈 듯 하지만, 겉으로 보기엔 참 평온하다. 사재기로 모든 물품들이 동이 난 듯한 뉴스에 비해 몇 가지 품목들을 제외하고는 일상용품들은 여전히 차고 넘친다.

주정부나 시정부의 대책들도 전례없이 발 빠르다. 이틀 전인 금요일부터 실시된 drive-through  검사를 비롯한 검사기관들의 결과가 내일 모레쯤 부터 나오면 확진자 수는 급증할 수도 있겠다만, 대체로 정부 기관들과 의료기관들이 전하는 뉴스들에 의하면, 사회 안전 시스템은 대체로 잘 돌아가고 있는 듯하다.

딴 거 없다, 그저 나부터 잘하고 볼 일인데…. 이 지점에서 이는 염려와 걱정이 크다.

당장 내 생업인 세탁소 문을 닫아야 하나? 아니면?… 적어도 하루 걸러 한 번은 찾아 뵈야 하는 치매기 깊어가는 구순 노인들에게 가는 길은 어떻해야 할까?

이런 저런 염려들이 바이러스보다 먼저 내 가슴을 답답하게 한다.

하여 오늘 아침 내 가게 손님들에게 내 솔직한 마음을 털어 놓고 설문 조사를 해 보았다. 손님들은 여러 조언들을 보내 왔다. 무엇보다 우리 모두의 안전과 건강을 위한 방법을 선택해야 한다는 점과 지극히 현실적인 문제들 곧 돈에 대한 염려도 함께 보내 왔다. 그저 감사다.

늦은 저녁, 손님들의 의견을 기반으로 하여 내일부터 시작하는 한 주간 영업 시간을 결정해 알림을 띄웠다,

우선 한 주간은 월, 수, 금 사흘간 하루 8시간만 문을 열기로 하고, 상황을 보아가며 문을 닫을 수도 있다는 안내였다.

재택근무 중인 아들 딸과 직장인 학교가 문을 닫아 쉬는 며느리, 아이들에게 ‘이 또한 곧 지나 가리니…’ 목소리 안부 전하며 하루를 맺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