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표

오늘 아침 일터로 나가던 길에서 본 낯선 모습이었다. 내 세탁소로 진입하는 사거리 한쪽 귀퉁이에 있는 도서관 앞에 사람들이 길게 줄지어 서 있었다.  ‘뭐지?’하는 생각은 잠시였다. 오늘은 선거날 이고 줄지어 서있는 사람들은 투표소 문 열기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지난 이십 년 동안 내가 투표하러 갈 때면 언제나 투표장 종사자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던 기억밖에  없는 내게 이런 풍경은 정말 생소했다.

내가 사는 곳과 가게 동네가 달라 그렇겠거니 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아침 나절에 집 앞 투표장으로 투표하러 갔던 아내가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그냥 돌아 왔단다.

우편투표를 할까하는 생각이 아주 없진 않았지만 워낙 한가했던 투표장 모습에 익숙했던 탓에 그냥 선거 당일 바로 집 앞에 있는 투표장으로 가야겠다는 계획이었는데 상황이 예년과는 좀 다른 모양이었다.

내가 집 앞 투표장을 찾은 것은 오후 두시 쯤, 그냥 여느 때와 전혀 다름없는 풍경이었다. 투표장 안내원들은 나를 기다리고 있었고, 그 너른 투표장 안에 투표하러 온 이는 나 말고 딱 두 사람 뿐이었다.

IMG_20201103_151630175_HDR

저녁 나절 투표장을 다시 찾았던 아내도 나와 같은 경험을 했단다.

이번 선거에 대한 뉴스들과 이런 저런 주장과 견해들은 다 훑어 볼 수 없을 만큼 쏟아지고 있다. 다 저마다 제 시간과 시각에 맞추어 내어 놓는 것들이다.

그저 바라기는 뜻 없는 것들에 애먼 목숨 거는 일들일 랑은 없었으면 …

내년 봄을 준비하며 처음 심어보는 가을구근들에 대해 공부하다.

DSC01282

내일은 모처럼 날이 좋단다.

겨울준비

갑자기 밤이 터무니없이 길어졌다. 시간이 바뀐 탓이다. 달포 전에 주문한 가을구근들을 일요일인 오늘에야 받았다. 시간 바뀌기 전에 심어야겠다고 준비했던 것인데 짧아진 낮시간을 잘 이용해 보라는 깊은 뜻으로 새기며 투덜거림을 멈춘다.

길어진 밤시간을 위해 몇 권의 책들도 주문 하고, 떡을 만들어 보는 시늉도 해 보았다. 오늘은 떡이 물릴 때 먹어 볼 요량으로 식빵을 만들어 보았다.

이즈음은 구글이나 유튜브를 보고 흉내만 내어도 대충 엇비슷한 물건을 만들 수 있는 세상이 되었으니 그저 놀랍다. 어찌어찌 시키는대로 해 보았더니 호두와 클랜베리 들어 간 훌륭한 식빵이 되었다. 맛도 흡족하다.

IMG_20201101_143918563b

올 겨울 긴 밤 보낼 준비는 대충 끝낸 듯 하다.

기도

11월 초하루 아침, 기도 드리듯 손님들에게 편지를 띄우다. 늘 그렇듯 언제나 받는 이는 나일수도….


이즈음엔 제 세탁소를 찾는 일이 아주 드물지만 저희 가게 오랜 단골 중 한 분이 지난 주에 가게문을 열고 들어오셨습니다. 그런데 그 손님이 쓰고 있는 마스크가 매우 독특했답니다. 비닐로 만든 마스크였습니다. 제 아내가 물었답니다. ‘면 마스크가 없으신가요? 숨쉬기가 어렵지 않으세요? 답답해 보이네요.’ 그리고 건네 받은 그녀의 대답이랍니다. ‘답답하기야 하지요. 그런데 내 남편이 귀가 어두워 잘 듣지를 못해요. 내가 말하는 입모양을 보아야 서로 의사소통이 쉽답니다. 그래 이 마스크를 쓰고 있답니다.’

30년 전 한참 왕성하게 일하던 오랜 단골들은 이젠 모두 노인이 되었습니다. 제가 처음 세탁소를 시작하던 때가 30대였는데 저 역시 이젠 60대이고 70을 향해 간답니다.

세월은 그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것이기도 하지만, 언제 끝날지 모르는 마스크가 꼭 필요한 이즈음의 일상이 나이 들어 가는 모든 이들에게 불편하기 그지 없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그리고 엊그제 제가 좋아하는 시인 중에 한 분인 황동규 시인이 새 시집을 발간하였다는 소식을 들었답니다. 그는 올해 여든 두 살이랍니다.

거의 60여년을 시인으로 살아온 그의 시들도 세월 따라 많은 변화를 겪어 왔습니다. 특히 지난 20여년 동안 그가 줄기차게 쓰고 있는 시편들은 늙어가는 자신에 대한 노래들입니다.

그의 시와 시어들은 지극히 한국적인 요소들이 강해 번역해 그 뜻을 알리기엔 매우 어려운 일이랍니다.

아무튼 그가 새로 낸 새 시집의 이름이 <오늘 하루만이라도>랍니다. 저는 그 시집의 제목만으로도 그의 시에 빠질 수 있었답니다.

그 시집에 실린 그의 <오늘 하루만이라도>이라는 시의 한 연을 옮겨봅니다.

<이층으로 오르는 층계참 창으로
샛노란 은행잎 하나 날아 들어온다.
은행잎! 할 때 누가 검푸른 잎을 떠올리겠는가?
내가 아는 나무들 가운데 떡갈나무 빼고
나뭇잎은 대개 떨어지기 직전이 결사적으로 아름답다.
내 위층에 사는 남자가 인사를 하며 층계를 오른다.
나보다 발을 더 무겁게 끌면서도
만날 때마다 얼굴에 미소를 잃지 않는 그,
한 발짝 한 발짝 씩 층계를 오른다.
그래, 그나 나나 다 떨어지기 직전의 나뭇잎들!
그의 발걸음이 몇 층 위로 오르길 기다려
오늘 하루만이라도
라벨의 ‘볼레로’가 악기 바꿔가며 반복을 춤추게 하듯
한번은 활기차게 한번은 차근차근
발걸음 바꿔가며 올라가보자.>

11월입니다.

딱히 나이 뿐만이 아니라도 이제 한 해가 저물어가는 무렵에 이르면 너나없이 이런저런 생각이 많아질 때이기도 합니다. 더더군다나 여느 해와 너무나 다른 한 해를 보내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이즈음 이따금 저녁 노을 물드는 하늘을 보며 감사할 때가 있습니다. 지나간 하루보다 다시 맞을 하루에 대한 희망을 전해주는 아름다운 모습으로 새길 때 그 감사는 더욱 커진답니다.

<오늘 하루만이라도> 감사가 이어지는 당신의 11월이 되시길 빕니다.

당신의 세탁소에서

DSC08089

One of my old customers, even though she has rarely visited the cleaners recently, came in last week. She was wearing a very unique mask, which was made of plastic. My wife asked her, “Isn’t it difficult to breathe with that mask on? Don’t you have a cloth mask? It looks stifling.” Her response was: “Of course, it gives me some trouble breathing. But, my husband cannot hear well. My communication with him will be better, when he sees and reads my lips. That’s why I wear this mask.”

My old customers, who had been leading active lives thirty years ago, have become old people now. When I started the cleaners, I was in my thirties. Now I’m in my sixties, and getting closer to seventy.

I know that nobody can go against time. But, current everyday life, in which everybody has to wear a mask until a time which nobody knows, may be more uncomfortable to those who are getting old, I think.

The other day, I heard the news that Dong-gyu Hwang, one of my favorite poets, had published a new book of poems. He is eighty-two years old.

He has been writing poems for almost sixty years and his poems have been undergoing changes over time. Especially his poems in the last 20 years have been songs about himself getting old.

The title is “Even for Just One Day, Today.” The title was attractive enough for me to indulge in this book of poems.

As his poems and poetic words have things very Korean, some of them may be lost in translation. Though I’m afraid to do it, I would like to share with you a stanza of the poem, “Even for Just One Day, Today,” in the book.

<Through the window at the landing of the staircase leading to the second floor
A bright yellow gingko leaf is flying in.
A gingko leaf! Who would imagine a dark green leaf?
Among the trees that I know, except oak trees,
Most leaves are desperately beautiful generally just before falling down.
A man who lives on the upper floor is nodding and climbing up the stairs.
Though he drags his feet heavier than me,
He, who never loses his smile whenever he sees me,
Is climbing up the stairs step by step.
Right, he and I, both are like leaves just before falling down!
After waiting for his climbing up a few floors,
Even for just one day, today,
As Ravel’s Boléro makes dancing repetitions by musical instruments one kind by one kind,
Once briskly, the other calm and orderly,
Let me climb up the stairs step by step.>

It is November now.

At the time when a year is drawing to an end, a flood of thoughts may course through everybody’s mind. This year, it may be even more so, because we all are having a year which is so different from other years.

These days, I so often felt grateful, when I was watching the sky aglow with the sunset. When I saw it as the beautiful scenery which was conveying hope for a new day instead of the past day, the gratitude became even greater.

I wish that gratitude “even for just one day, today” in your life will go on continuously in November and beyond.

From your cleaners.

DSC08123DSC08122DSC08104DSC08096

아내와 단풍놀이 길 나서려 했었다. 오늘 지나면 올 가을도 제 길 찾아 떠나려 할 듯 하여서 였다. 나서려던 길 막은 놈은 갑자기 기온이 뚝 떨어지고 온종일 비가 추적일 것이라고 떠드는  일기예보였다. 때때로 예보는 정확하기도 하다. 먼길 나서지 않길 잘했다는 생각이 드는 날씨였다.

집에 머무는 덕에 모처럼 참 좋은 친구 내외가 방문하여 이 심상찮은 세월에도 감사히 살아가는 일상의 이야기들을 나눌 수 있었다.

어머니는 어쩌다 내가 온종일 집에 있을 때면 부엌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셨다. 고구마를 굽거나 찌기도 하시고, 녹두를 갈아 빈대떡을 부치시기도 하셨고, 쑥 갈아 개떡을 만드시거나 바람 떡을 만드셔 내 입이 심심치 않게 하시곤 했다.

딱하게도 나는 입이 짧았고 성격도 모질었다. 그럴 때마다 내가 어머니께 던졌던 말이다. ‘에고, 제발 그만 두세요.’

어머니 생각하며 떡을 빚어 본 하루다. 팥소와 녹두소 넉넉히 만들어 저장도 하고, 콩가루, 녹두가루도 준비해 두었다. 올 겨울엔 옛 생각나면 떡을 빚어 볼 요량이다.

그렇게 콩가루와 녹두가루 입힌 인절미도 만들고, 녹두와 각종 너트 갈아 넣은 소에 단호박 쪄 넣은 찹쌀떡과 계피가루 입힌 옷에 팥소 넣은 찹쌀떡을 만들어 보았다.

아내가 제법 맛있다며 칭찬을 보탰다.

아버지와 두 누이들에게도 배달해 맛을 보였다.

어머니는 돌아가시 전 일년 여 알츠하이머 병세로 시간을 마음대로 넘나드시곤 하셨다. 그 무렵 종종 어머니는 육이오 전쟁통 피난길에서 떡장사 하셨던 때로 돌아가 계시곤 하셨다. 어머니가 절박한 기억에 휩싸이곤 할 때였다.

어머니 흉내 내며 떡을 빚은 하루. 어머니와 내가 다른 것 하나. 어머니는 절박했고 나는 여유롭다는.

그저 고마움으로, 어머니 덕에.

*** 오늘 동네 뉴스 하나. 우리들 실생활에 직접 다가오는 변화는 대통령 선거보다는 지역사회 일꾼들 선택에서 먼저 온다는 사실. 그리고 그 기사를 마무리하는 말. ‘유권자들은 어차피 지역사회 일꾼들이 내세우는 정책보다 자신들의 선입견이 우선’한다는…

내 책상 위에서 나를 바라보시는 어머니는 오늘도 ‘쯔쯔쯔’와  ‘그래 고맙다’를 반복하신다.DSC01266A

선거에

아침 일 나가던 길에 눈에 들어온 선거용 입간판들,  이즈음 사거리 마다 놓여있는 풍경이다.  이른바 선거철이다.

1

우리 동네에서 대통령 후보들 홍보 입간판을 보기는 그리 쉽지 않다. 주로 연방 의회 의원 및 주지사를 비롯한 주정부 관리와 의회 등에 입후보한 사람들의 홍보 입간판들이 주를 이룬다. 그도 그럴 것이 전통적으로 민주당 강세 지역이기도 하지만 이곳이 민주당 대통령 후보인 죠 바이든의 고향이고 보니 이 곳 판세는 워낙 뻔해서 일게다.

죠 바이든의 집과 내 집과의 거리는 10여분 안팎이다. 왈 동네 사람이다. 이 곳에서 오래 산 한인 치고 그와 악수 한번 해 보지 않은 사람은 거의 없을 정도로 그는 오랜 세월 의원 생활을 하면서 한인행사에 빠지지 않고 참석해 왔다. 나 역시 몇 번 그를 만난 적이 있다. 함께 식사도 하고 걷기도 하고, 한반도에 대한 이야기도 나눈 기억들이 있다. 특히 북한에 대한 관심이 많은 그의 보좌관과 행사를 함께 해 본 경험도 있다.

그러나 나는 그가 대통령 후보로 나선 일이 그리 마뜩잖다. 물론 트럼프는 더더욱 아니다.

엊그제 아내에게 들은 말이다. 내 오랜 단골인 윌리암슨 할머니가 세탁소를 들어섰는데 그녀가 쓴 마스크가 기이했단다. 비닐 마스크 였단다. 아내가 물었단다. ‘천 마스크가 없어요? 그 마스크는 숨 쉬기가 매우 힘들거 같아요.’ 오랜 학교 교직을 생활을 마치고 은퇴한 그녀가 한 대답이란다. ‘에고, 내 남편이 이젠 귀가 어두워 잘 못들어요. 그래 내가 말하는 입 모양을 보고 소통을 한다우. 그래 생각 끝에 이 마스크를 쓴다우.’

좀 거창하게 말하자면 사람살이 시작한 이래 손 꼽아도 좋을 만큼 몇 안되는 큰 변화의 시대를 너나없이 겪어내는 이즈음이 아닐까 싶다.

이런 시절에 바이든과 트럼프를 놓고 선택해야 하는 선거판은 좀 불편하고, 이 시대를 사는 이들에게 불운이기도 하다는 생각이다. 선거란 어차피 차악을 선택하는 것이라는 말에 솔깃해 나도 한 표는 던진다마는 아쉬움은 어쩔 수 없다.

이즈음 한국 뉴스를 보면 한반도 남북문제를 위해서 트럼트가 낫지 않은가 하는 이들의 소리를 듣고는 한다만 그 역시 난 동의할 수 없다. 누가 되어도 마찬가지거니와 대한민국은 이젠 홀로 설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이즈음 뒤뜰에서 저녁 노을이 만들어내는 하늘에 홀려 오래 앉아 있곤 한다. 하늘에 빠져 있다보면 사람살이엔 분명 그 살이를 다스리는 힘이 있는 듯 하다. 그 힘을 무어라 부르든.

DSC0126053

그래 또 사는게다.

2

딱따구리가 내 집 나무에서 노는 걸 보니 나무를 자를 때가 되었나 보다.

막대사탕

내 세탁소 카운터에는 막대사탕을 담은 작은 나무접시가 하나 있다. 나무접시는 족히 30년 넘게 우리 부부와 함께 했다. 나무접시에 담긴 막대사탕을 즐기던 아이들이 이젠 중년이 되어 내 세탁소를 찾기도 한다.

올들어 역병 탓으로 아이들을 데리고 세탁소를 찾는 이들은 매우 드물다. 그래도 막대사탕을 담은 접시는 금새 비어지곤 한다.  이즈음 막대사탕을 주로 집어가는 이들은 노인들이다. 이따금 나보다 족히 세 배는 됨직한 젊은 친구가 사탕 두세 개를 한 입에 넣어 빠그작 소리를 내며 씹을 때면 그 둔한 몸은 전혀 아니지만 그의 건치(健齒)에 이르면 여간 부러운 것이 아니다.

지난 몇 달 사이 내 눈에 밟힌 노인 손님 한 분이 있다. 평소 내가 카운터를 보는 일은 매우 드물어 오랜 단골 손님들 빼고는 기억하는 손님들이 그리 많지 않다만, 이즈음엔 한가한 탓에 카운터를 차고 앉아 있는 경우가 많다.

노인이라고 했지만 내 또래 거나 몇 년 더 산 정도인 사내는 늘 나만큼 허름한 모습으로 두 주에 한 번 꼴로 내 가게를 찾는다. 들고 오는 빨래거리라고는 언제나 달랑 셔츠 두 장이다. 사내가 눈에 띤 것은 막대사탕 때문이었다. 다른 일을 하다가 그를 맞기 위해 카운터로 다가서는데 그는 흠칫 놀라는 모습이었다. 그 땐 잘 몰랐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는 내 세탁소에 올 때 마다 막대사탕을 한 줌 주머니에 넣곤 하는 것이었다. 한 줌이라고 해 보았자 대 여섯 개 정도일 터이다.

어차피 오는 손님 누구나 원하면 집어 가라고 놓아 둔 것이므로 몇 개를 집어가든 상관할 바 아니데, 문제는 그가 내 눈치를 본다는 것이었다. 그 사실을 알고 난 이후 나는 그가 가게로 들어서면 그를 위한 틈을 만들어 주곤 한다.

모를 일이다. 그가 사탕을 좋아하는지, 병든 아내를 위해 챙기는 것인지, 손주 녀석들 생각으로 그리 하는지, 내가 또 알면 뭐하랴. 사탕 몇 개로 그가 잠시 삶에 단 맛을 얻을 수 있다면 좋은 일일 터.

누군가 접시채로 막대사탕을 다 집어간들 또 다시 채울 수 있는 부요함은 아직 누리고 사니 그저 고마운 오늘이다.

나이든다는 것은 소소한 고마움들이 보이기 시작한다는 뜻일게다.

아내와 함께 가을 길을 걷다. 먼 길 나서지 않아도 우리 내외가 넉넉히 즐길 수 있는 가을 풍경이 놓인 오늘의 삶에 또 고마움이 인다.

곰곰 생각해 보니 늘 허름한 내가 막대사탕 하나를 온전히 다 먹은 기억이……

……없다.

DSC01138 DSC01139 DSC01154 DSC01179 DSC01180 DSC01191 DSC01196 DSC01205 DSC01210 DSC01212 DSC01222 DSC01226 DSC01231 KakaoTalk_20201018_125327983

가을 밤에

세월이 하수상하니 별 일을 다 당한다. 한 두어 달 전부터 이상한 채무 변제를 요구하는 편지를 받았다. 모두 채무 징수 회사로부터 날라온 편지였다. 전조(前兆)는 모두 똑같았다. 신용보고 기관들의 경고 메세지를 받은 후 며칠 후에 편지는 어김없이 날라왔다.

그렇게 받아 든 네 건의 편지들엔 채무에 대한 채권자들이 모두 통신회사들이라는 것과  채무 금액이 천 달러에 조금 못 미치는 금액이라는 공통점이 있었다.

이름은 모두 내 이름인데 사용자의 거주지가 내가 사는 곳이 아닌 서부 캘리포니아이거나 남부 텍사스와 알라바마와 중북부 미시건 등이었다. 누군가들이 내 명의를 도용한 것이었다.

처음엔 많이 당황했으나 그것도 몇 차례 이어지다 보니 이내 이골이 난 듯 수순에 따라 일을 처리한다.

경찰에 보고를 하고, 그 보고 리포트를 받고, 해당 회사들에게 사기 피해자임을 증빙하는 서류들을 준비해 보내고 하는 수순들이다.

큰 금전적 피해는 없다고 하지만 겪어보니 꽤나 성가시고 귀찮고 불쾌한 일이다. 복구가 가능한 일이지만 일시적으로 신용점수 하락도 감내해야 하는 일이다.

덕분에 새롭게 배운 것들도 많다.

가을이 깊어 가는 징조인지 하늘은 온종일 스산하다. 저녁 나절부터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내일까지 제법 비가 내린단다. 이 비에 나무들은 새 옷 갈아 입을게다.

그래저래 온종일 집안에서 지낸 하루다.

저녁상 물리고 마틴 아론슨(Martin Aronson)의 <예수와 노자의 대담> 을 머리에 담아 곱씹다.

<우리는 번잡한 일상생활의 강박 속에서 얼마나 정신없이 살아가고 있는가! 우리가 자연의 은총을 더 믿게 되면, 삶의 혼란과 갑작스러운 파괴를 줄일 수 있을 것이다. 아무 것도 하지 않을 때와 해야 할 때를 아는 지혜가 있다. 보다 명상적이고 온유해지면, 상처가 치유되듯이 자연 그 자체가 조화를 이루고 사물도 그 조화로운 이치에 따라 치유될 것이다.>

가을이 깊어 가는 밤에.

기도(祈禱)에

‘부인과 가족 모두 편안 하신지요?’ 이즈음 오랜만에 가게를 찾는 손님들에게 내가 건네는 인사를 받은 Tom은 대답대신 똑같은 질문을 내게 다시 던졌다. ‘네 아내는?’, ‘네 아들과 딸은?’

모두 건강히 잘 지낸다는 내 대답을 들은 그는 그와 나 둘 이외에는 아무도 없는 세탁소 카운터를 휘 돌아보고는 낮고 여린 소리로 내 이름을 불렀다. 그리고 그가 한참을 이어간 이야기다.

그의 맏딸은 올해 마흔, 내 또래인 Tom은 어린 맏딸과 함께 내 세탁소를 찾았던 오래 전 이야기들을 되짚으며 내가 그 아이를 기억해 주기를 바랬다. 당연히 내가 기억한다는 뜻으로 나는 크게 고개를 끄덕여 그의 이야기를 이어가게 했다.

그의 딸과 사위는 제법 반듯한 회사원들로 안정적인 생활을 하고 있고, COVID 상황이 일어난 이후엔 재택근무를 이어가고 있었단다. 둘 사이에서 얻은 Tom의 외손주들은 셋이고 그의 긴 설명이 아니더라도 아이들은 그의 보물임에 틀림없었다.

그 외손들 가운데 하나가 코로나 바이러스에 감염이 되었단다. 나머지 아이들과 딸과 사위도 염려란다.

그의 아내는 딸네 집엘 가봐야겠다고 하지만 딸과 사위가 펄쩍 뛰어 그저 알 수 없는 분노와 함께 걱정 속에 시간을 보내고 있단다.

다른 손님이 가게로 들어 오기까지 나는 그의 긴 이야기들을 그저 고개를 끄덕이며 듣고 있었다.

가게를 떠나며 그가 나직하게 내게 던진 말, ‘기도 좀 해 주렴.’

하루가 지난 저녁, 지는 해와 쉴 곳 찾는 구름과 빠르게 도망치는 비행기와 새들을 넋 놓고 바라보며 그리고 때때로 내 귀를 여는 새소리와 풀벌레 소리를 들으며 하는 혼자 말, ‘젠장, 내 기도 빨에 힘이 있어야지…’

그럼에도 그의 가족들을 위해 기도하는 저녁에.

DSC01099 DSC01107 DSC01108

우정(友情)으로

살며 잠시라도 스쳐 지나간 연이라도 닿았던 이들이 세상 뉴스를 달구는 모습을 보노라면 아무래도 관심을 갖게 마련이다.

이즘 세상에선 아직 노년이라고 말하기엔 이르고, 그렇다고 중년이라고 말하기엔 겸연쩍은 나이여서 조심스럽다만 이쯤 살다보니 누군가의 삶에 대한 평가나 호불호에 대한 잣대는 굳어진 상태이다.

나는 옛 친구들이 옛날 내가 알고 있는 모습대로 늙어가는 소식을 듣거나 보노라면 참 좋고, 그가 잘 살았다는 느낌을 받는 편이다. 물론 사람 냄새가 나는 옛 추억에 근거해 하는 말이다.

며칠 동안 이일병이라는 이름이 한국뉴스로 내게 다가왔다. 어릴 적 캠퍼스에서 잠시 알고 지낸 친구다. 하여 뉴스들을 두루 훑어 보았다. 그는 옛날 그대로의 모습이었다.

그 때나 지금이나 지극히 자신에게 충실하며 자기가 좋아하는 일에 매달려 사는 소시민이었다. 예나 지금이나. 잘 살아왔고, 잘 살고 있다는 생각이다. 그 답게.

솔직히 그 때나 지금이나 나와는 다른 세상에 살고 있다만, 그게 무슨 문제랴! 그는 그 답게 나는 나 답게 살면 그만인 것을.

내가 기억하는 한 우리들이 어렸던 시절 그는 프로파간다적 행위나 행태들을 매우 싫어했던 매우 자유주의적인 친구였다.

지난 반세기 동안 한국은 놀랄 만한 변화를 겪어왔다. 그 변화에 걸맞게 그저 옛 모습 간직하며 사는 그의 오늘에 화살을 쏘는 이들의 소리를 들으며 나는 좀 불편하다.

그의 노년이 그의 생각대로 이루어지는 시간들이 되길 빌며… 옛 우정으로.

갈등(葛藤)

뒤 뜰 등나무 그늘과 꽃들이 멋지고 고마울 때가 있었다. 겨우내 이젠 죽었다 싶은 모습으로 앙상했던 가지들에 보랏빛 꽃을 피어 내는 봄의 등나무는 한 때  내 뒤뜰의 여왕이었다. 여름이면 등나무 그늘 아래 반가운 사람들과 둘러앉아 우리 동네 명물인 찐 꽃게 까먹던 추억도 새롭다. 무엇보다 아버지가 그 등나무 그늘을 좋아하셔서 어쩌다 내 집에 들리시곤 하면 그 그늘 의자에 오래 앉아 계시곤 했다.

그러다 몇 해 전인가 내 게으름을 틈타 등나무 넝쿨이 라일락 나무를 휘감아 더는 그 향내 못 맡게 하는 사건이 인 후 나는 등나무를 거두어 내기 시작했었다.

그리고 오늘 마침내 등나무의 원뿌리 세 개 중 마지막 제일 큰 놈을 거두었다. 등나무나 라일락이나  모두 한 때 내 뒤뜰의 주인공들이었다만 이젠 없다.

캐낸 등나무 뿌리를 한참이나 쳐다보고 앉아 있다 떠오른 말 ‘갈등’이다. 칡 갈(葛) 등나무 등(藤)이다. 서로 얽히고 설킨 상태로 배배 꼬여 풀 수 없는 상태를 이르는 말이다. 오늘 땀 흘린 생각을 하니 옛사람들이 오늘의 나보다 훨 낫다.

DSC01084 DSC01093

이즈음 세상 소식은 온통 갈등으로 휘감겨 있는 듯 하다.

어찌 보면 사람사는 세상이란 그 갈등을 풀어내는 과정의 연속일 지도 모르겠다.

저녁 나절 모처럼 찾아 온 아들 며느리를 위해 준비한 갈비도 굽고, 삼겹살과 오리도 구워 애비 노릇 해 보았다.

DSC01097DSC01098

이즈음은 그저 서로 조심이 최고라고 아이들은 집안 식탁에서, 우리 부부는 바깥 등나무 식탁에서.

DSC01086

지금 내가 가장 손 쉽게 할 수 있는 일이란 집안 갈등에서 내 휘감기 멈추는 일.

갈등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