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남기

1.

지난 주 바이러스 하루 확진자가 천명 가까이에 이르자 주지사는 주민들에게 “집에 머물라(stay-at-home)”는 명령을 재개하였다. 비록 강제 명령이 아닌 권고성이라 할지라도 현재 상황이 얼마나 절박한지를 알 수 있는 소식이다.

백 만명이 사는 지역에서 하루 천명에 가까운 확진자가 늘어난다는 사실은 가히 공포다. 다행히 엊그제 사이 하루 칠백 여 명으로 숫자가 줄기는 하였지만 그 공포의 도가 줄지는 않는다.

그렇다 하여도 도로를 달리는 차량 수를 보면 여느 일상과 전혀 다름없고, 나 역시 아침이면 세탁소 문을 연다. 내 가게 문을 들어서는 손님 숫자는 아직 공포에 이를 만큼 줄지는 않았지만 또 다시 뜸해진 것을 느끼기엔 충분하다.

이즈음 사정을 두루 잘 아는 내 오랜 단골 하나가 지난 주에 내게 건넸던 말이다. ‘사는 놈이 이기는거지! 세탁소를 드나드는 손님들 총량과 빨래감의 총량은 당연히 줄겠지. 그러다보면 하나 둘 문을 닫겠지. 그럼 남는 놈이 줄어든 손님들과 빨래감들을 차지하겠지. 그래 그렇게 사는 놈은 결국 산다니까. 염려말라고 친구!’

나는 그냥 웃었다.

2.

두 주 동안 딸아이는 격리생활에 철저하였다. 두 주 전 맨하턴에서 차 뒷자리에 탄 아이는 내가 마스크를 벗자 아무말 없이 뒷 창문을 열었다. 나는 움칠했었다.

그렇게 아홉 달 만에 집에 돌아온 아이는 집안에서 우리 내외하곤 거의 격리 상태로 지냈다. 나는 아이의 생각에 따랐다.

그리고 오늘 아이와 함께 ‘에고 제 시집가는거 보고 죽으면 다 이룬건데…’ 그 욕심 채우지 못하고 가신 어머님 찾아 뵙다. 어머니 가신 후 딸아이와는 오늘 첫 만남이다.

‘할머니 옆에 내 자리, 그 옆에 네 엄마 자리…’운운하는 내게 아이는 그저 고개를 끄덕인다.

어머니와 장인 장모에게 성탄장식으로 계절을 알리다.

살아남는 것은 내가 아니다. 나를 기억하는 누군가가 살아남는 것이다. 그 역시 시간에 달린 일이지만.

3.

좋은 글들을 만나면 아직은 가슴이 뛴다.

<검찰 독립성의 핵심은 힘 있는 자가  힘을 부당하게 이용하고도 돈과 조직 또는 정치의 보호막 뒤에 숨지 못하도록 하기 위한 것입니다.>

지난 주 대한민국 법무부 장관 추미애가 그의 페북에 올린 글 첫 문장이다. 나는 인류 역사가 진보하는 과정에서 숙성된 오랜 물음에 대한 선언으로 읽었다.

종교, 정치, 경제, 문화 등등 모든 권력과 제도가 마땅히 지켜 나가야 할 저지선을 굳건하게 만들고 지켜 나가는 일이 바로 그저 하루를 작은 욕심을 품고 살아가는 이들을 위한 살아남기 선언일 게다.

4.

오후에 두 시간 반 먼 여행길을 다녀 오다. 한국 EBS 방송 <세계 테마 여행 : 천상의 왕국-부탄>편을 넋 놓고 즐기다.

부족함을 넉넉함으로 느끼며 사는 삶과 넉넉함에 욕심을 더하는 삶을 생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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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에

십 수 년 동안 한국관련 뉴스 하고는 거의 담 쌓고 살던 때가 있었다. 내가 의도했던 바가 전혀 없지는 않았으나, 엄밀하게 말하자면 물리적으로 한국 소식을 접할 기회가 정말 적었으므로 어쩔 수 없이 그리 살 수 밖에 없던 때였다. 컴퓨터니 인터넷이니 하는 물건이나 기능들이 아직 나와는 낯 선 때였고, 한국 소식을 들으려면 필라델피아나 뉴욕 또는 워싱턴 나들이를 해야만 했던 시절이었다.

그렇게 전두환 시대가 끝날 무렵부터 김대중 대통령이 자리에서 물러나실 즈음까지의 한국 소식은 언제나 내겐 낯설다.

그러다 노무현 대통령 시절에 이르러 거의 실시간으로 한국 소식을 접하게 되었다. 그 무렵 내게 다가온 한국은 내 기억 속에 남아 있던 것과는 전혀 다른 세상이었다.

박정희가 피살되어 그의 장례가 있던 날, 광화문 일대를 메우고 통곡하던 국민들이 노무현을 대통령으로 세우는 시민이 되어 내게 다가온 세상은 그야말로 경이로운 새 세상이었다.

세상이 워낙 빠르게 변하다 보니 이젠 내가 서울에 사는 것인지, 미국 촌구석에 사는 것인지 모를 지경에 이르렀다.

내 손 전화 뉴스 알림 기능은 실시간으로 내가 사는 동네 소식부터 우리 주 소식과  미국내 소식 나아가 한국 소식들을 속보로 알려주는 세상이 되었다.

그렇게 내가 실시간으로 소식을 접하기 시작한  그 무렵부터 그렇게 빠르게 변했던 한국의 변화는 더디거나 뒷걸음 치기 일수였다.

빠른 소식으로 변화는 그렇게 너무나 더디어졌다.

오늘 그 더딘 변화에 대한 답답함 끝에서 떠오른 생각 하나.

변화는 언제나 답답한 걸음으로 꾸준히 앞으로 나아가지만, 그 변화를 어떻게 느끼느냐 하는 것은 나에게 달린 것이라는.

내가 한국 소식에 한참 민감했던 십 수 년 전 어느 날,  우연찮게 잠시 마주쳐 인사 나누었던 추미애라는 사람은 나처럼 작고 연약했지만, 그가 가장 어려웠던 시절이었음에도 겸손하고 당당했던 기억으로 남아 있다.

그가 웃음으로 새로운 변화가 이는 한국 소식을 기다리며.

오늘 따라 하늘에 구름이 참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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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맛

이름이 뭐냐고 묻는 손님들에게 하는 내 답은 ‘Young’이다. 내 이름 김영근을 그리 줄인 것이다. Young- keun 이라고 하면 서로 복잡하고 그저 간단히 Young이라고 부르라고 한다. 간혹 ‘Young’이라는 성씨와 헷갈려 성씨 말고 이름이 어떻게 되느냐고 묻는 경우도 있다. 그럴 때면 또 친절히 내 이름을 다시 가르쳐 준다. 내 성씨는 Kim이고 이름은 Young이랍니다. Young, 바로 forever young입죠.

오늘 내 이름을 멋지게 불러준 손님 한 분의 편지를 받고 사는 맛을 즐기다.

매주 일요일 아침 손님들에게 보내는 편지에 지난 주 추수감사절날 내가 느꼈던 몇 가지 생각들을 적어 보냈더니 그 응답으로 보내온 것인데, 자신의 지인들 열 댓 명에게 보낸 편지였다.

<부디 아래에 소개하는 글을 읽어 보시길. 아니, 김영근이 말하는 것을 느껴보시길. 내가 최소한 십여 년 동안 그리했듯이. 내 이메일주소를 그의 리스트에 약 20년 전에 올렸는데, 그는 사진과 자신의 생각을 담은 단체 이메일을 매주 일요일 오전 8시에 정확히 보내고 있지요. 정말이지 그는 그가 할 일에 철저합니다.

그는 또한 생각하고 그 생각을 곱씹는 철학자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 모든 생각들은 “선 (善)”에서 출발합니다. 읽어보면 알게 될 것입니다. 쯔쯔, 아마 원한다면 구글링으로 검색하면 그가 예전에 보냈던 글들을 찾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지금 내가 하려는 것입니다. 당신은 당신이 하고싶은 것을 하시길. 옷장에 오래된 코트가 있는데, 세탁을 해야합니다. 헌데 이 코트 세탁은 내가 절대 할 수 없는, 전문가의 손길이 필요한 것이고, 더구나 단추 하나가 떨어져 나간 상태입니다. 마스크를 쓰고, 이번 주에 그에게 맡기려 합니다. 그의 세탁소 문이 닫혀 있지 않기를 바랍니다.

가게 문 닫을지 말지는 요술 처럼 결정되는 것이 아니지요.(장사란 손해나면 닫는 것이고, 남으면 계속되는 것일 뿐). 모두들 생각할 두뇌가 있을 것이니, 생각들 해보시요.(나는 코트를 들고 가지만 당신도 그에게 들고 갈 세탁물이 있을 터이니.)

어떤 이들은 이즈음 온라인 소통이 인간적 온기가 없다고들 하지만, 실제로는 꽤 따뜻합니다. 직접적으로 그를 도울 수 없다면, 정말이지 무언가라도 해보시요. 김씨는 당신이 시간을 쓸 가치가 충분한 사람입니다. 영(젊은) 김 (Young Kim).

이제는 아무도 나를 젊은 죠 (Young Joe)라고 부르지 않는데.>

Please read below.  No.  Please feel what Young Kim, who has at least ten years on me, is saying.  I got on his mailing list about two decades ago and every Sunday, at 8 AM, he has sent out a mass email with photos and thoughts.  Duty is key with him.

But the man is also a philosopher; he thinks and feels, and it all originates from a kind of “goodness”.  You’ll see as you read.  Hell, you could probably google his old postings, if you wanted to.

Here’s what I’m going to do.  You do what you want.  But I have an old coat in my closet.  It needs a cleaning (way beyond my capabilities – need expert help here) and it’s missing a button.  Mask wearing, I’m delivering it this week.  I hope his doors are not locked.

There is no magic closing here.  You all have big brains.  Use ’em.

Some people think that electronic communication is cold.  Actually, the wires heat up a bit.  If you can’t help him directly, start a freaking revolution.  Kim would be worth your time.  Young Kim.

Nobody’s calling me Young Joe.

어릴 적 한 때 너무도 흔한 이름 영근을 지어준 아버지를 탄한 적도 있었는데…. 오늘은 아버지께 감사를.

https://conta.cc/2HNGree

일상(日常) 그리고 감사

참 좋은 친구 내외와 우리 내외가 함께 물러가는 가을 길을 걸었다. 이렇게 사람 사이 정(情)을 나누는 일도 조심스런 이즈음이다.

올해 변한 우리들의 일상이다.  일상(日常)!

철학자 강영안은 일상의 삶을 찬찬히 그리고 자세히 곱씹는 행위가 바로 철학이라고 가르친다. 그가 말하는 일상(日常)에 대한 정의다.

<일상은 무엇인가? 일상은 문자 그대로 따라하자면 “늘 같은 하루’이다. “하루하루가 늘 같다”는 말이다. 잠을 자고, 일어나고, 먹고, 일하고, 타인을 만나고, 읽고 생각하고, 기도하고, 예배 드리는 일, 이렇게 동일한 행동이 반복되는 삶. 그러나 그 대부분은 크게 즐거워 할 일도, 크게 슬퍼할 일도 없이, 그저 그렇게 하루하루 지나가는 삶. 그것이 일상이다.

사람이면 누구나 벗어날 수 없고(필연성), 진행되는 일이 이 사람이나 저 사람이나 비슷하고(유사성), 반복되고(반복성), 특별히 두드러진 것이 없으면서(평범성), 어느 하나도 남아 있지 않고 덧없이 지나가는(일시성) 삶. 이것이 일상이요, 일상의 삶이다.> – 강연안 지음 <철학은 어디에 있는가>에서

솔직히 나는 철학이니 종교니 하며 말을 길게 이어갈 만큼 배움이 크지도 않거니와 생각도 깊지 않다.

다만 할 수 있는 한 흉내라도 내보고 살아보자는 생각을 때때로 하며 살기는 했었다. 그나마 그 생각 하나 얻어, 흉내라도 내는 시늉을 할 수 있었던 까닭은 성서 때문이었다는 고백을 하며 산다.

뚱딴지 소리 같은 철학도 종교도 아니고 그저 일상 아니 오늘에 대한 감사로.

20년 가을 끝 무렵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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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수감사절 이야기 셋

  • 하나.

“어제 어떻게 지냈니?” 가게 손님 한 분이 내게 던진 물음이다. “아내와 딸과 함께 아주 조용히… 당신은?”. 내 응답에 그녀의 이어진 질문, “나도 남편과 단 둘이 조용히… 우리 가족들 하고는 Zoom으로 함께 두루 안부를 묻는 시간을 가졌는데… 넌 그렇게 하진 않았니?” 유태계 은퇴 변호사 마나님의 연세는 일흔을 훌쩍 넘긴 나이. 그리고 내 응답, “그랬구나, 우리 가족들도 그렇게 Zoom으로 함께 했단다.”

어제 추수감사절 오후 한 때, 필라델피아에 아들 내외와 아틀란타에 있는 동생 내외와 조카 조카손주들 그리고  사촌 동생네,  시카고와 워싱톤에 사는 조카들 조카 손주들, 우리 동네에서 함께 사는 누이네들과 조카들 모두 Zoom으로 추수감사절을 함께 했다. 함께 하지 못한 아버지는 늦은 저녁 아이들 전화 인사로 흡족해 하셨다.

지난 일요일 거의 아홉 달 만에 집으로 모셔온 내 딸아이는 거의 상전이다. 뉴욕 맨하턴에서 차를 태운 순간부터 마스크를 써라 창문을 열어라 쉬지 말고 바로 집으로 갔음 좋겠다 등등. 집으로 돌아와서도 따로 밥상 받기, 거리 유지 하기, 마스크 쓰기 등등 까탈스럽기 그지 없다. 재택근무 중인 아이는 연말까지 내 집에 머무를 요량인데 아내와 내게 내리는 명령들이 단호하다. 나는 그런 딸애가 참 좋다.

어제 추수감사절 밥상은 딸아이 혼자  다 차렸다. 고모들네 저녁까지 넉넉히. 아이의 손 솜씨가 제법이었다.

이젠 시집 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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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둘.

추수감사절 앞에 받은 옆서 한 장. 우리 부부에겐 영원한 우체부인 Johnson씨가 보낸 은퇴 인사였다.

내 세탁소 바로 뒤편에 있는 Newark 우체국에서만 만 36년동안 일했던 그가 은퇴한다는 인사 엽서를 보며 한 동안 찡한 생각들이 오고 갔다.

이즈음은 검은 얼굴에 허연 머리털과 풍성하고 흰 수염으로 마치 산타가 다 된 노인이 되었다만 참으로 억척스런 사내다. 나보다 몇 살 아래이긴 하지만 아이들 나이가 서로 비슷해 친구 같은 이다. 한참 아이들 키울 땐 우체국 일이 끝나면 그로서리 생선 가게에서 생선을 다듬는 등 억척스레 애비 노릇을 다했던 사람이다. 보답이랄까? 아이들 모두 정말 잘 컷다.

그가 일을 하며 많은 이들에게 좋은 소식 나쁜 소식들을 전하는 일에 충실했다 했지만, 솔직히  내 입장에서 그는 좋은 소식보다는 귀찮고 듣기 싫은 소식들을 더 많이 전했었다. 내가 가게에서 주로 받는 편지들이란 거의 대부분 각종 공과금 고지서나 공공 기관들에 서 보내온 서류들이 대부분이었다. 허나 따지고 보면 그런 소식들에게 응답했기에 내게 오늘이 있었으므로 그에게 감사로 응답하는 일은 당연할 터.

그의 은퇴에 박수를, 그가 만들어 나갈 새로운 삶을 위해 기도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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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수감사절 아침에 읽은 블룸버그 발 뉴스 하나.  <정말 힘든 시간들- 재택근무 시대가 세탁업을 조이고 있다. ‘Ugly, Ugly Time’: Work-From-Home Era Crushes U.S. Dry Cleaners>라는 제목의 기사다.

팬데믹 이후 자영업들이 겪어 오는 어려움들은 주지의 사실이지만, 백신이 개발되어 공급되고 치료제가 일반화 되면 식당업이나 호텔 여행업 등등은 다시 호황을 맞을 가능성이 있지만, 세탁업은 앞날이 보이지 않는다는 내용이다.

상당 부분 나는 그 기사 내용에 동의한다. 지난 구 개월 사이 6개 중 한개의 세탁소가 문을 닫았다거나 도산하는 업체들이 줄을 이을것이라거나, 여전히 평상시의 반도 못 미치는 매출을 기록하는 업소들이 대부분 이라는 상황 인식에도 동의한다.

오랜 재택근무의 경험들로 사람들의 의복 습관이 달라져 세탁업이 예전으로 돌아가긴 힘들 것이라는 전망에도 동의한다.

그러나 한가지.

추수와 절기는 때가 있듯, 모든 업종 역시 부침의 때가 있겠다만, 감사란 늘 나에게 달린 일.

뉴스가 내 추수감사절을 범하진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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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살며 이따금 짜릿한 즐거움을 맛 보는 순간들이 있다. 가족들로 하여 그 즐거움과 기쁨을 누릴 때 그 맛은 극에 이른다.

오늘은 델라웨어 한국학교에서 학생들의 한국어 말하기 대회가 열린 날이다. 솔직히 내가 어떤 작은 관심도 기울이지 못한 행사이다. 아내가 한국학교 교사이고 며느리가 학생이긴 하지만 내가 관여할 어떤 틈도 없거니와 그럴만한 여유도 없었다. 오늘 낮에 아내가 보낸 카톡을 받기 직전까지는.

아내가 보낸 카톡엔 내 며늘아이가 대회에 참석해서 이야기를 펼친 녹음파일이 있었다. 듣고나서 아내에게 보낸 내 첫 응답은 아내를 나무라는 말이었다. ‘아니 좀 애 한테 쉬운 말을 쓰게 했어야지, 그렇게 어려운 말들을…’ 늘 그렇듯 내 나무람은 아내에게 닿지 않았다. 언제나 옳은 아내 대답이었다. ‘내가 며늘아이의 선생은 아니지, 그 반 선생님은 따로 계시지. 내가 뭐랄 처지가 아니잖아. 나도 오늘 처음 들었거든.’

저녁 나절에 아들녀석과 며느리가 전한 그간의 이야기를 듣고서야 나는 모두에게 고개를 끄덕일 수 있었다. 며느리를 가르쳐 주신 선생님에게 고맙고, 어눌한 한국말 구사력으로 제 아내를 도운 아들 녀석이 고맙고, 무엇보다 문장 하나 하나에 숫자를 매겨 외우고 또 외었을 며늘아이가 고마웠다.

그 무엇보다도 이젠 모두 떠나신 내 어머니와 장모와 장인까지 추억해 준 며늘아이에 대한 고마움이라니…

내 며늘아이 이름은 ‘론다야 김’.

<가족>- 론다야 김

  1. 가족은 저에게 매우 중요합니다.
  2. 그래서 한국어를 배우는 이유는 바로 가족입니다.
  3. 제가 가족들과 시간을 보낼 때마다, 가족들이 영어로 말하면서 저를 배려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4. 가족들은 제가 이해할 수 있도록 영어로 말한 것을 알려주십니다.
  5. 제 어머님은 한국어로 특정 단어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설명해 주십니다.
  6. 제 아버님은 특정 요리에서 어떤 조미료가 가장 잘 맞는지 설명해 주십니다.
  7. 제 할아버지께서는 군대와 한국사에 대해 알려주시고 할머니들께서는 제가 잘 챙겨 먹었는지 묻곤 하셨습니다.
  8. 저는 그분들의 친절이 감사하고 사랑합니다.
  9. 그러나 저는 그분들에게 특정한 말을 가르쳐야 할 책임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10. 저는 가족과 저의 언어 장벽이 있는 것을 원하지 않기 때문에 가족이 말하는 모국어를 말하고 싶어서 한국어를 배우고 있습니다.

11.저는 함께 저녁 식사를 하면서 가족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습니다.

  1. 몇 마디 말로 가족들 와 진솔한 대화를 나누고 싶었습니다.
  2. 미래의 아이들과 언젠가는 한국어와 문화를 공유하고 싶습니다.
  3. 저는 가족을 사랑하기 때문에 한국어를 배웁니다.
  4. 감사합니다.

뉴스와 삶

화복무문 화불단행(禍福無門 禍不單行)이라 했다던가? 좋은 일 나쁜 일이 내 생각대로 일어나는 일도 없거니와, 아니 일어났으면 좋겠다 싶은 일들이 연이어 일어나기는 십상이다. 화(禍)나 복(福)의 크기는 저마다 다 다를 터이니, 무엇이 좋은 일이고 어떤 게 나쁜 일인지를 내 잣대로만 주장함은 마땅치 않다.

그렇다하여도 점점 심상치 않은 형국으로 빠져드는 이즈음 COVID 펜데믹 파동에 이르면 누구에게나 화불단행(禍不單行)이라 해도 크게 틀리지 않을게다.

세탁소 카운터를 아크릴 판으로 가리고 마스크를 쓰고 6피트 거리를 유지한 채 손님들과 몇 번씩 같은 말을 되풀이 하고서야 의사소통을 이루곤 하는 불편함일지라도 그런 불편함이 자주 있었으면 하는 바럠이 큰 이즈음이다.

오늘 아침 오랜만에 내 세탁소를 찾은 오랜 단골 K씨, 내 또래인데 올들어 부쩍 허리가 휜 친구다. 그는 늘 내 까만 머리칼을 부러워 한다. 도대체 내 나이 하고는 어울리지 않는단다. 그 점은 나도 동의하는 편이다. 일흔을 턱에 건 나이에 난 아직 흰 머리카락은 거의 없는 편이다. 누군가는 머리를 얼마나 안 쓰고 살았으면 그 모양이냐고 우스개 소리를 건네기도 했었다.

모처럼 그와 오랜 시간을 아크릴 판을 사이에 두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정치 이야기까지 이르도록 이어지기 까지는 한가한 가게 형편의 도움이 있었다.

그는 참정권을 가진 나이에 이르러서 부터 오늘까지 영원한 공화당 지지자라고 하였다. 그는 내 가게가 위치한 동네 수준으로 보자면 경제적으로 중상위층에 속하는 아주 전형적인 백인으로 그 역시 칠십이 코 앞인 친구다.

그가 말하길 대통령 선거에서 공화당 후보를 찍지 않은 일은 딱 두 번 있었단다.  첫 번 째는 ‘아버지 부시’라고 일컬어지는 George H. W. Bush였고, 두 번 째는 이번에 트럼프였단다. 아버지 부시는 전쟁을 일으켜서 마음에 안 들었었고,  트럼프는 지난 번에 찍어 준 자기 손가락이 미울 정도로 수준 이하란다. 특히나 펜데믹으로 모두가 힘든 시기에 패배를 인정하지 않고 무슨 게임하듯 제 속만 차리려하는 게 너무 밉단다.

모처럼 신이 난 듯한 그의 일장 연설을 듣고 몇 마디 건넨 내 응답이었다.

‘트럼프나 바이든이나, 공화당 지지자나 민주당 지지자나 뭐 크게 다른 게 있을까? 당신 말대로 전쟁 일으키고,  펜데믹 현상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는 정부에 반대하는 시민들 소리가 커지면 좋은 거 아닐까?’

이건 이즈음 내가 뉴스를 바라보는 시각이다. 미국이나 한국이나 세계 뉴스나 매 한가지로 통하는 프리즘이다.

사람 살이 이어져 온 이야기 속에는 늘 그렇듯 정치도 종교적 신념으로 해석하고 바라보는 사람들이 절대적으로 많다.

그러나 사람살이 이어져 온 이야기 곧 역사에는, 스스로 홀로 서서 경전을 읽고 해석하는 이들이 늘어나는 종교처럼,  세상 정치적 일들을 그리 읽고 해석하고 판단하는 사람들이 늘어가고 있다는 징표들이 넘쳐난다.

그래서 사람 살이는 늘 신비한 지경이다. 화불단행(禍不單行)과 점입가경(漸入佳境)은 늘 닿아 있기 때문이다.

그래, 살아 있는 한 삶은 늘 살 만한 것이다. 그것이 화불단행(禍不單行)이든 점입가경(漸入佳境)이든, 내 스스로 선택할 일이 남아 있는 순간은 언제든…

그렇게 또 추수감사절이 코 앞에 닿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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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험에

새해에는 건강보험 프로그램을 좀 바꾸어 보려는 생각으로 이런저런 정보들을 두루 찾아 보았다. 해마다 느끼는 일이지만 만족한 것을 선택하기란 그리 쉽지 않다. 게다가 나는 노인보험인 메디케어 쪽에서 아내는 아직 일반 보험에서 적당한 것을 찾아야 하니 시간도 제법 쓰인다.

우리 내외의 현재 건강상태에서 보험료는 최소화하되 혜택은 최대로 누릴 수 있는 욕심을 채우는 일이 결코 만만한 작업은 아니다. 그렇게 하루 해를 보내고 내린 선택, 그저 내 만족일지도 모른다. 그야말로 내일 일은 내가 알 수 없는 일이므로.

우리 내외에겐 벅찬 고구마 한 상자를 받아 든 지도 여러 날, 그 동안 찌거나 쪄서 말려 먹기도 했지만 양은 줄진 않는다. 오늘은 고구마 고로케를 만들어 두 누이네와 나누다. 내친 김에 밀가루와 찹쌀가루로 만든 꽈배기가 스스로 대견할 만큼 제 맛을 내었다. 재밌다.

오후에 한인 사회의 내일을 고민하며 행동하는 이들이 함께 하는 온라인 모임에 잠시 얼굴 내밀다. 어느 사회나 변화는 꾸준한 이들에 의해 온다. 그 점에서 나는 언제나 변방이다. 스스로 참 아쉽다.

엊그제 아침 한참 일에 빠져 있는데 전화 벨이 울렸다. 수화기를 들어 습관으로 던진 ‘좋은 아침, 세탁소입니다.’라는 인사에 킬킬거리는 웃음이 답으로 온다. 그리고 이어지는 한국말 인사였다. ‘참, 형은 변함없네! 아직도 세탁소 하네! 혹시나 하고 이 전화로 해봤는데… 야… 영원한 해병같은 세탁인이고만…’

두어 해 동안 소식 불통이었던 후배의 안부 전화였다. 어찌 지내느냐는 내 인사에 그가 한 응답이었다.

두 해 전에 신장 수술을 받고 안되겠다 싶어 하던 일들을 접었단다. 그리고 한국엘 나갔었단다. 만만치 않더란다. 다시 이 곳으로 돌아와 노년 계획을 세우는 중이란다. 이 때 쯤이면 나도 은퇴했으리란 생각이 들어 자문도 구할 겸 안부 전화를 했단다.

아직 은퇴계획이 전혀 없는 내가 그에게 건낼 조언일랑은 부질없는 그의 기대였을 뿐이다.

긴 대화 속에서 후배와 내가 한 목소리가 된 순간은 ‘백세시대’라는 말이 결코 우리들에게도 이를 만큼 일반화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이야기를 나누던 때였다.

한 때(그와 그의 직장 모두) 유수한 언론사 워싱톤 특파원으로 제 삶에 대한 자긍이 넘쳐나던 후배나 늘 천방지축이었던 나나 이젠 하루살이가 되어 마땅한 때에 이른 것이다.

늘 흉내내기인 내가 그에게 건넨 말이다. ‘ 하늘소리 사람소리 내 속으로 들으며 하루 살면 고맙지 뭐’

‘형, 암튼 내가 조만간 세탁소로 갈께’ 그의 응답이었는데 그게 또 몇 년 뒤일지는 모를 일이다.

무릇 보험이란 하루살이가 망가질 때를 대비하는 일.

만족은 하루살이를 하는 그날그날 내가 찾아 누릴 몫이다.

해는 짧아도 뜨고 지는 아름다움은 한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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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양에

가을이 떠나기가 아주 서러운 모양이다. 연 이틀 이어진 빗줄기가 그칠 듯 하더니만 아직 흘릴 눈물이 남아있는 모양이다. 가을과 함께 떠날 채비에 바쁜 나무들은 제 옷 벗어 땅들을 노랑과 빨강으로 물들여 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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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게가 한가하여 이른 시간에 보일러를 끄다가 가게 뒷문 사이로 떠나기 서러운 가을을 보았다.

고개 끄덕이며 혼자 소리로 중얼거려 본 말, ‘그래 삶이다’.

처남 아이들 덕에 성경을 펼쳐 곱씹어 보는 저녁이다. 에고 버리지 못하는 내 못된 말본새라니… 아이들이라니… 쯔쯔… 이젠 모두 환갑 줄인 처남들인 것을.

아내는 물론이거니와 두 처남 모두 독특한 재능들을 타고났다.  막내 처남이 기타 치며 혼자 4중창으로 부르는 찬송을 큰 처남이 자신의 페북에 올려 놓았다. 함께 영상을 보던 아내가 한 말, ‘하여간 얘들은 재밌고 참 이상해!’. 나는 차마 입으로는 내지 못하고 속으로만 중얼거렸다. ‘셋 다 독특한데…’

그렇게 읽고 또 읽어 본 성서 시편 136편이다. <하나님께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라는 찬양시는 떠나기 서러운 가을에게도 유효할 게다.

무릇 삶이 하늘과 이웃에 닿아 있는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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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남들에게 고마움을.

구호(口號)에

내가 사는 델라웨어 주는 몇 개의 별칭을 갖고 있다. ‘The First State’, ‘Diamond State’ 또는 ‘Small Wonder’ 등이다. 최초 13개 주들이 미국헌법에 서명을 할 때 델라웨어 대표가 제일 먼저 서명을 했다 해서 생긴 것이 ‘The First State’이고, 토마스 제퍼슨이 미국 동해안의 전략적 요충지가 바로 델라웨어라고 했다는 전설에 따라 전해온 말이 ‘Diamond State’이다. ‘Small Wonder’는 한 때 델라웨어 주가 슬러건으로 사용했던 것인데 미국에서 두 번 째로 작은 주이지만 살 만한 곳이라는 뜻이다. 한국의 충청북도 면적과 엇비슷하니 정말 작은 곳이다. 내 집에서 5분 거리면 펜실베니아 주경계를 넘고, 15분이면 뉴저지에 닿는다. 내 가게에서 5분이면 또 메릴랜드로 이어진다.

그리고 또 다른 별칭 하나가 ‘Dela Where?’이다.미국인들도 델라웨어라고 하면 어딘지 잘 모르거니와  ‘아니 그런 주가 다 있어?’ 할 정도로 그리 알려지지 않은 곳이라는 뜻에서 생긴 말일게다. 그게 또 이 곳의 홍보물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그런 델라웨어주가 미국 뿐 아니라 전세계 뉴스의 생산지가 된 며칠 간이었다. 바이든 대통령 당선자 때문이다.

이 곳 신문은 “첫 번 째 주에서 첫 번 째 대통령이 나오다”라는 제목의 들뜬 기사를 비롯하여 전 세계 유수한 신문들이 일면 머리기사로 장식한 바이든 대통령 당선 소식을 전하고 있다. 애석하게도 한국신문은 소개하지 되지 않아 좀 아쉬웠다. 최근 몇 년간 한국 관련뉴스를 종종 비중있게 다룬 것에 비해 그렇다는 말이다. 한국이라는 국가 위상 보다 한국언론은 아직 거기 쫓아가지 못하기 때문이었을까?

아무튼 참 다행이다. 바이든이 당선 되어서가 아니라,  생각보다 빨리 큰 혼란이 없을 정도로 제법 격차를 이루고 드러난 선거 결과 때문에 해보는 말이다.  선거 후 두 후보자들이 내세운 구호들로 하여 자칫 큰 혼란 속으로 빠져들 수도 있었던 상황이었는데, 현재로선 판세가 완전히 기울어 조금은 차분히 선거 후유증을 가라앉힐 가능성이 열려 다행이다.

만일 Count Every Vote와 Stop the Count 라는 구호가 엇비슷한 힘으로 맞붙어 오랜 시간을 끌었다면 그 혼란은 가히 만만치 않았으리라는 걱정을 덜어 정말 다행이다.

가만 돌아보니 셀 수 없이 많은 구호의 시대를 살아왔다. 시대의 권력자들이 만든 구호들이거나 때론 군중들이 만든 구호들도 있었다. 멀리는 ‘반공통일’에서 부터  ‘때려잡자 김일성’, 독재 타도’, ‘선진 조국’ 가까이는 ‘United we stand’, ‘Occupy Wall Street’, ‘Yes we can’,  ‘America great again’ 등등.

구호는 어느 시대 어느 곳에서나 존재하고 그 구호 아래 사람살이는 때론 진보하고 많은 경우 그 시대의 혹독한 시련이 되기도 한다.

편 갈음, 증오, 혐오의 언어보다 치유, 화해, 공감 등등의 언어를 내세운 바이든의 연설은 때에 맞는 듯하여 듣기 좋았다.

허나 트럼프라는 캐릭터와 그가 내세운 구호에 열광하는 사람들은 살며 듣기 좋은 구호만 앞세우는 축들에게 등돌렸던 이들이었을게다.

문제는 누가 내세우는 구호이던 그 구호에 담긴 속내를 곱씹어 꿰뚫어 저항하거나 박수치는 시민들이 주인 되는 세상으로 나아가야하는 것일 게다.

이명박근혜 시대를 겪으며 한국사회가 진일보 했듯, 트럼프시대를 지낸 미국사회도 여러모로 진일보 하는 시대를 맞기를 바란다. 내 아이들을 위하여.

화창한 가을날, 한껏 부지런 떨며 하루해를 바삐 보내다.

일주일치 아침 양식 빵도 굽고, 내년 봄을 맞이할 준비로 튜립, 수선화, 아이리스, 무스카리, 히아신스 등 구근을 심고, 배추 절여 김치를 담그다.

김장 끝나면 어머니는 맛난 배추찜을 상에 올리곤 하셨다.

살며 이런 저런 흉내는 즐기지만 제대로 하는 것 하나 없는 내가 어머니에 이르면 벽이다. 그래도 그 덕에 흉내라도 낼 수 있다는 감사에 배추찜 하나로 아내와 넉넉한 저녁상을 즐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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