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에

엊저녁에 참석했던 온라인 회의에서 있었던 일이다. 내가 어떤 직책에 이름을 걸어 놓은 유일한 단체인 <우리 센터(Woori Center> 정기 이사회 모임이었다. 자칫 딱딱한 분위기가 이어지기 십상인 모임을 부드럽게 하기 위해 참석자들에게 던진 이사장의 첫 물음은 내겐 사뭇 도발적으로 다가왔다. 참석자들의 이즈음 근황을 물으며 던진 질문이었다.

“만일 한 달 여행이 가능하다면 가장 가고 싶은 곳은 어딘가요?”라는 물음이었다.

꿈을 꾸었었고, 꿈이 손에 닿은 듯 했었다. 더 나이 들어 먼 길 다니기 힘들어 지기 전에 아내와 함께 일년에 달 포 정도는 여행을 즐겨보자는 꿈이었다. 수 년 전에 그 꿈의 첫발을 내 디뎠고 몇 차례 여행을 즐기며 ‘다음은 어디, 다음은 어디’하며 꿈을 부풀리다가 부모님들이 눕기 시작하면서 그만 멈추고 말았다.

그렇게 지난 사 오 년 사이 장모, 장인, 어머니 순서로 떠나시고 이젠 아버지 수발로 먼 길 나서는 일은 그저 꿈으로 남았다. 게다가 이어지는 COVID 상황은 꿈이란 그저 품었을 때 아름다운 것일 뿐이라는 자족(自足)을 키워 내었다.

그런 내게 던져진 “만일 한 달 여행이 가능하다면…”이라는 질문은 모처럼 나를 흥분케 하기 충분한 것이었다만, 오늘 세탁소 일을 하며 가라앉힐 만한 크기였다.

며칠 전 아내와 함께  만기가 곧 다가오는 여권용 사진을 찍었다. 십여 년 만에 찍어 본 증명사진이었다. 운전면허용 사진은 디지털화 한지 오래 이고, 인화된 증명 사진은 단지 여권 갱신 때만 필요한 듯 하다. 앞으로 십 년 후는 또 어찌 변할지 모르는 일이고 보면, 살며 이제껏 찍었던 증명사진들만 놓고 보아도 세월의 변화를 가늠할 수 있을게다.

아내는 즉석에서 인화된 사진을 보며 도저히 자기일 수 없다고 몇 차례 놀램과 실망을 털어 놓았지만 아내답게 그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나이에 상관없이 성별을 불문하고 사람은 누구나 자신에 대한 이중 잣대는 사는 한 늘 차고 다니는 법일게다.

십년 만기 여권 갱신 서류들을 챙겨 보내며 내가 맞이 할 새로운 십년에 대한 생각에 빠져 있을 즈음에 맞이한 질문, “만일 한 달 여행이 가능하다면…”에 자칫 혹 할 뻔 하였다.

어느새 여러 해 전이 되어 버린 시간에 맛보았던 환희에 가까운 여행의 맛 하나. 파리 루브르 박물관에서 본 그림들이다. 그림에 대한 지식이나 이해는 거의 문맹에 가까운 내가 그저 가슴으로 느낀 희열이었다. 시대순으로 배열된 그림 속 얼굴들의 변화를 알아 챈 순간이었다. 중세에서 르네쌍스로 접어 들면서 그림 속 사람들의 얼굴엔 웃음기가 돌기 시작하였다. 그 변화는 내게 제법 큰 충격으로 다가왔었다.

그 그림 속 얼굴들의 변화는 종교, 정치, 이념, 신념, 사상 등등 거창한 것들일랑 다 접고 사람 답게 사는 일이란 게 그리 큰 게 아니라는 가르침으로 내게 다가 왔었다.

그저 얼굴에 웃음 그리고 사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는 세상, 그게 바로 사람살이가 나아지는 세상이라는 배움을 얻은 여행이었다.

솔직히 이제껏 살아 온 시간들도 돌이켜보니 아는 것 처럼 느낄 뿐인데, 다가와  마주할 내일에 대해서는 아는 바 없다. 내게 여행의 꿈이 이어질런지, 새로 받을 여권에 몇 개의 도장들을 찍을 수 있을런지…

다만, 내 얼굴에 작은 웃음 잃지 않고, 마주 하는 이들에게 웃음기 전하는 시간 여행이라도 즐기며 살 수 있었으면…

여행에.

초대

내 어린 시절 기억들 중 많은 것들이  교회와 함께 한다. 서울 신촌에 있는 대현교회이다. 고등학교 시절까지 교회는 내 삶의 중심에 있었다. 새벽 4시 반에 일어나 새벽기도회에 나가는 일이 그저 당연했던 것으로 생각했던 어린 시절이었다. 그 무렵에 겪은 많은 이야기들은 접자.

새벽기도 대신에 명상과 선(禪)을 탐닉하게 된 것은 머리가 제법 굵어진 이후의 일이다.

이민을 와서 퀘이커 모임이 바로 집 앞에 있었던 까닭도 있었고, 어깨 넘어 함석헌 선생님께 배운 생각들도 있어 그 모임에 한 동안 함께 한 적도 있다.

이쯤해서 되돌아보면 새벽기도나 명상이나 선이나 퀘이커 예배방식이나 모두 신 앞에 홀로 선 나를 만나는 기쁨을 누리는 일이었다.

필라델피아를 중심으로 인근 한인들과 소수민족들의 인권을 위해 노력하는 <우리센터(WOORI CENTER)>가 COVID 팬데믹 상황에서 아직은 불안한 일상을 걱정하는 이들을 위해 작은 기쁨을 찾아 주고자 하는 노력을 보며 내 머리 속에 스쳐가는 지난 시간들이다.

필라델피아에서 내가 아는 유일한 춤꾼 김정웅 선생이 ‘호흡과 명상을 통해 몸과 마음을 돌보는 시간’을 나누고자 한단다.

다음 주 월요일(3월 8일) 부터 4월 12일까지 여섯 번 하루 45분씩 누구나 함께 할 수 있단다. 누구나 각자 자기가 있는 자리에서 그 시간을 함께 할 수 있단다.

눈으로 읽었던 책들을 접고 나도 함께 숨쉬고 움직여 볼란다.

http://bit.ly/breathingbod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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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맞이

눈치우다 보내는 이월을 배웅하고 설렘으로 맞는 삼월을 생각하며 손님들에게 일요일 아침편지를 띄우다.


응달에는 아직 녹지않은 잔설(殘雪)들이 남아 있지만 이제 삼월입니다. 머지않아 파릇한 새 생명들이 움을 트는 봄을 맞는 삼월입니다.

해마다 이 맘 때쯤 떠올려보는 헨리 데이빗 소로우의 말이지요. <초봄에는 가난한 사람들의 집 앞에 눈도 녹는다. 그대가 평온한 마음을 가지기만 한다면, 거기서도 궁전에서처럼 즐겁고 만족스런 삶을 살 수 있으리라.>

어제 주보건국(The Delaware Division of Public Health)에서 보낸 이메일 한 통을 받았답니다. 코로나 바이러스 백신 접종에 대한 안내 였습니다. 제가 백신 접종 신청을 하였지만 아직도 순서를 기다리고 있을 수 밖에 없는 상황에 대한 자세한 설명이었습니다.

현재 65세 이상 접종 신청자 수는 123,000명이고 현재 접종을 마친 사람들 수는 51,000명 정도랍니다. 매주 조금씩 접종자 수를 늘리고는 있으나, 절대적으로 공급물량이 모자라고, 이차 접종과도 맞물려 원래 계획보다 모든 순서들이 늦어지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제 접종 순서가 늦어지는 이유들 가운데 가장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한 부분이랍니다. ‘그 이유 가운데 하나는 당신보다 COVID 상황에 취약한 당신의 이웃들과 벗들을 위해…(서라고 이해해 주십시요.)’

그러다 뒤적여 본 지낸 해 이 맘 때에 쓴 제 일기장이랍니다. 작년 이 맘 때만 하여도 우리 주변에 마스크를 쓰고 다니는 사람이 이상하게 보일 정도로 바이러스가 아직 우리들 곁에 가까이 있다는 것을 모르고 살 때였답니다.

그 무렵 제가 읽고 있던 책 가운데 Yuval Noah Harari가 쓴 ’21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언’이라는책에 서 본 글 한 줄을 제 일기장에 남겨 놓았답니다.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전염병에 의한 사망자가 고령으로 인한 사망자보다 적었고, 기아로 숨진 사람이 비만으로 인한 사망자보다 적었으며, 폭력에 의한 사망자가 사고로 인한 사망자보다 적었다.> 그 땐 이 대목이 제게 큰 울림으로 다가왔었는데, 그로부터 일년 사이에 우리들이 경험한 21세기의 한 해는 유발 하라리의 생각도 미처 닿지 못한 시간들이었답니다.

따지고 보면  인류 역사상 COVID는 사람들이 처음 겪어보는 현상일겝니다.  이 독특한 한 해를 잘 견디어 낸 지난 한 해에 대해 감사의 마음을 품어 본답니다.

유발 하라리의 글을 적은 지난 해 일기의 마지막에 제가 남겨놓은 생각이랍니다. <더불어 함께 해야 하는 가족들과 , 만나서 좋은 벗들과,  누구나가 마주칠 수 있는 재해 앞에서 겸손할 수 있는 이웃들과 함께 할 수 있는 오늘 내가 숨쉬는 세상은 여전히 살 만한 축복 아닐까?>

새 봄 , 나아가 다가오는 한 해 내내 당신과 제 세탁소에 드나드는 모든 손님들 나아가 이웃들 모두에게 세상이 살 만한 축복들이 이어지기를 비는 마음으로.

당신의 세탁소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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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 is March now, though we can still see the un-melted lingering snow in the shade. Soon, new green lives will sprout everywhere.

Around this time every year, I always bring to my mind Henry David Thoreau’s words: “… the snow melts before its (poor-house) door as early in the spring. I do not see but a quiet mind may live as contentedly there, and have as cheering thoughts, as in a palace.”

Yesterday, I received an e-mail from the Delaware Division of Public Health. It was about the COVID vaccination. Though I signed up for vaccination, it explained in detail why I had to wait, including the limited supply of vaccine and the progress of vaccination in Delaware.

So far, 123,000 seniors, 65 and over, have signed up for the waiting list, and about 51,000 have been vaccinated. Though the doses which they received have increased somewhat, they said that they haven’t been able to make progress more quickly because of the still limited supply and the obligation to provide second doses to those who received their first dose a month or so ago.

Among the reasons for delaying my turn, I nodded in agreement to this: “part of the reason is because some of your friends and neighbors may be more at-risk for COVID than you are.”

Then, I happened to skim through my diary which I had written around this time last year. It was the time when we had lived normal daily lives without knowing about the virus around us and when people with facial masks looked weird.

From the book, “21 lessons for the 21st Century,” written by Yuval Noah Harari, which I was reading around that time, I wrote down a phrase in my diary: “For the first time in history, more people die today from eating too much than from eating too little; more people die from old age than from infectious diseases; and more people commit suicide than are killed by soldiers, terrorists and criminals combined.”

At that time, it touched me so deeply. During the time since then, one year in the 21st century which we have just gone through seems to be the one which even Harari’s thoughts and insights couldn’t reach.

When boiled down to cold facts, COVID may be the first global phenomenon which humans have never experienced before. I’m trying to hold gratitude for persevering through the past unique year.

On the day when I wrote down Harari’s words in the diary, I also left my brief thought: “The world in which I’m breathing today while I am with my family with whom I live together, friends who are good to see, and neighbors who are humble in front of the disaster which anybody may confront – Isn’t it still a blessing?”

I pray and wish that you, all my customers, and neighbors will continue to be blessed in this spring and all the year round.

From your cleaners.

아침에 일을 나가려다 들려 온 경쾌한 새 소리를 찾아 사방을 훑었다. 앞 뜰 전나무 가장 높은 꼭대기에 앉아 봄을 부르는 작은 새의 노래소리였다.

어제 또 다시 내린 눈을 치우느냐고 밤새 뻐근했던 몸이 날아갈 듯 경쾌해진 밝은 소리였다.

그러고보니 어제 눈 내리는 하늘을 나는 것들도 새였고, 전봇대 꼭대기 앉아 내리는 눈을 즐기던 것들도 새들이었다.

눈과 추위 속에도 가장 높은 곳에 앉아 그 순간을 즐기거나 맘껏 날아다니는 새를 보는 것은 나이고, 하루 새 봄을 알리는 새의 노래소리를 듣는 것 또한 나다.

올 봄엔 새의 노래소리에 한껏 더 귀 기울여야겠다.

내가 누리는 하루의 축복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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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생각

한 이틀 옛날 생각 속에 지냈다. 엊그제 금요일 밤에 참여했던 온라인 줌(zoom) 모임 이후로 오늘 까지다. 마침내 황해도 운율 땅 밟으셨을 백기완 선생을 기리는 해외동포들의 모임이었다. 이젠 웬만하면 먼 거리 모임은 자제하는 편이고, 그건 온라인 모임도 마찬가지지만, 선생의 부음을 듣고 내 머리속에 이어지는 ‘외로움’이라는 느낌을 지우기 위해 참석한 자리였다.

약 120여 명에 달하는 많은 이들이 미국내 각 지역을 비롯해 유럽과 일본 등지에서 함께 한 추모모임 이었다.IE002763838_STD예정된 추모행사에 이어 참석자들이 백기완선생과 만남의 기억들을 나누는 시간에 나는 슬그머니 그 자리를 떳다.

내게 1970년대는 아리고 아픈 세월이기도 했지만, 이제껏 내가 살아 온 시간들 가운데 가장 아름답고 멋지고 더하여 신이 내게 주신 절정의 시간들이기도 했다. 내 나이 스물 무렵이었으므로.

서울 한복판 신문로 뒷골목, 순두부집 등 음식점들과 대포집과 생맥주 가게들이 어지러이 늘어선 그 골목 안 <백범 사상 연구소>를 지키고 계시던 선생은 그 때만 하여도 훤칠한 대장부 청년이셨다. 그 무렵 선생 곁을 지켰던 내 또래들은 이젠 부끄러운 모습으로 변했거나 모습조차 찾을 수 없다. 그렇게 선생과 외로움은 이어진다.

그리고 칠 십년 대 후반 몇 년간 잠시 가르침을 받았던 선생님들은 모두 떠나셨다. 문익환, 문동환, 안병무, 서남동, 김찬국, 송건호, 이우정, 이문영, 박현채 선생님들 모두 떠나시고 이제 백선생님도 가셨다.

해방 이후, 한반도 남쪽에서 통일, 민족, 민중, 민주 그리고 예수를 가르치며 고민하던 첫 세대의 마지막 사람도 이젠 떠났다.

그 선생님들 가운데 유독 ‘외로움’과 연결되어 내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선생이셨다. 백기완 선생님.

어느새 나도 이젠 칠십 대를 코 앞에 둔 나이. 그저 부끄러운 삶을 지우고 지워가며 다다른 1970년대의 삶과 만났던 이틀 동안의 시간들. 아무렴, 그나마 그 때 그 시간들이 그리고 그 선생님들과 만남이 있어, 오늘 요만큼 이라도 여기서 숨 쉬고 있는 것일게다.

<우리의 일상적 주변에서 ‘한’이라는 말의 머리에 있던 ‘원’자가 빠지게 된 것은 ‘원한’이라는 말을 똑바로 쓰기가 어려운 시대의 연속 속에서 원한의 뜻이 축소된 것을 입증하는 것이다.  – 중략- 그런데 내가 주의해서 관찰해 본 것은 이 원한이라는 말에는 반드시 ‘풀이’라는 동명사가 뒤에 붙어 돌아간다는 사실이다.

무슨 말인가? 원한이란 본래 이를 풀지 않으면  원한일 수가 없다는 뜻이라고 해석된다.> – 백기완 선생 쓰신 <자주 고름 입에 물고 옥색 치마 휘날리며>에서

훨훨. 백기완 선생님이 품고 사셨던 모든 원한들이 풀어지는 그 세상을 꿈꾸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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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바이러스 덕에 아내의 파마(perm) 머리를 말다. 생각보다 덜 다투며 이루어 낸 작업인데… 나름 결과가 나쁘진 않다. 눈 녹는 오후의 공원을 걷다. 눈밭 발자국 찍기 놀이에 신나 하는 아내도 어느새 예순 중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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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지 바른 곳, 햇볕 즐기던 텃새 한 마리 우리 내외 발자국 소리에 놀라 자리를 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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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림

지난 주 내린 눈이 아직 녹지 않은 뜰에 또 다시 눈이 쌓인다. 눈에 더해 밤톨만한 얼음비가 내린다. 이왕 맞이한 한가해진 시간들을 그냥 푹 쉬며 즐기라는 뜻인가 보다. 가게 문 열 엄두를 내지 못하고, 집에서 푹 쉬다.

무우 장아찌도 담고 생강청도 만들고, 내친 김에 버터크림 빵도 만들며 눈구경이나 즐기다. 늦은 오후 두어 시간, 쌓인 눈 치우고 나니 온 몸에 진이 빠진 듯 맥이 풀린다.

‘이 눔아! 누구나 다 지칠 때가 있는 법이여. 다 저녁 이 시간에 용쓰는 내 날개 짓도 힘들어!’ 머리 위로 날아가는 오리 떼들이 내게 던진 말이다.

지난 해 맞은 팬데믹 덕에 난생 처음 경험해 본 텃밭 농사, 올 핸 좀 제대로 해보자고 일찌감치 주문한 씨앗들을 받았다. 덤으로 몇 가지 더 넣었다며 풍성한 결실 맛보라는 종자상의 손편지가 썩 맘에 들었다.

아내의 저녁상을 기다리며 헨리 데이빗 소로우(Henry David Thoreau)의 생각들을 곱씹으며 읽다.

<그대가 나쁜 사람이 아니 듯 삶도 그렇게 나쁘지는 않다. 그대가 가장 풍요로울 때에는 삶은 초라하게만 보인다. 불평쟁이는 낙원에서도 불평만 늘어놓을 것이다. 자신의 삶을 사랑하라. 삶이 아무리 가난하다 해도.>

<황혼의 빛은 부자 집 창문 뿐만 아니라, 가난한 집 창문도 밝게 비춘다. 또한 초봄에는 가난한 자들의 집 앞의 눈도 녹는다.>

<가능한 한 매일 일출과 일몰을 바라보라. 그것을 당신 삶의 묘약으로 삼으라.>

  • 2. 18. 21. 봄을 기다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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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유(治癒)에

1.

이른 아침에 가죽옷 세탁 배달원이 배달을 와서 하는 말. ‘김씨, 난 아직도 도저히 이해를 못하고 있다우…’

‘뭘?’ 내 물음에 이어진 그의 응답이다. ‘왜들 문들을 안 닫고 버티는지? 어떻게들 견디는지? 그게 궁금하다니까? 내가 팬데믹 전에 한주 동안 걷어 들이던 세탁물의 절반을 두 주나 되어야 겨우 채우거나 그도 못하거나 한다우. 어떻게들 견디는지 난 정말 이해를 못한다우.’

얼마 후, 코트  한 벌 맡기고 내 세탁소를 나서며 내게 인사를 건네는 할머니 말씀. ‘참 고맙다우, 문 닫지 않고 이렇게 계속 영업해 주어서…’

그리고 점심 무렵 세탁소 문을 열고 들어선 우리 오랜 단골 Linda가 봉투 하나를 카운터에 놓으며 손가락을 자기 입에 대고 ‘쉬잇’하면서 내게 건넨 말. ‘네가 어제  보낸 주말 편지 읽고, 이건 내가 해야겠다 싶어서… 내가 눈 치우는 거 도와줄게.’ 그는 다시 ‘쉬잇’하면서 내가 말을 하기도 전에 ‘빠이’하며 가게 문을 나섰다. 그가 놓고 간 봉투에는 제법 큰 돈이 들어 있었다.

사연인즉, 습관적으로 매 주일 아침에 손님들에게 보내는 편지가 있는데 어제 아침엔 우리네 명절인 설날 인사와 함께, 올핸 눈이 많이 와서 이런 저런 고민들이 많다는 이야기들도 전했었다. 팬데믹으로 장사도 잘 안되는데 눈이 많이 오면 눈 치우는 경비도 샤핑 센터 입주자들이 1/n로 감당하는 것이라 그도 만만치 않아 걱정을 더한다는 넋두리도 이어 놓았었다.  물론 건물주가 렌트를 삭감해 주어서 견딜 만하다는 이야기와 함께, 필라 인근 한인들을 중심으로 한 설날 치유음악회에 대한 소식도 전했었다.

올 겨울 눈치우는 경비는 충분히 감당할 돈을 놓고 간 Linda에게 전화를 걸어 ‘너의 우정이 너무 고맙긴한데…이건 우리가 받기엔 너무 과하다…’는 아내의 인사에 그녀가 한 말. ‘솔직히 펜데믹 이후에 내 장사가 잘 되고 있단다. 그래서 팬데믹으로 장사가 안되는 이들에겐 늘 미안한 마음도 있고…. 너희 세탁소는 늘 거기 있어야지.’

2.

어제 필라 <우리센터>에서 주관해 이루어진 온라인 줌을 통한 음악회는 새로운 경험이었다. 환경의 변화란 그저 잠시 불편한 장애물에 불과한 것이란 생각도 해보았다. <힐링음악회>라는 이름으로 함께 한 행사였다. 솔직히 나는 힐링(healing)이라는 말엔 그리 호감을 느끼지 못한다. 뜬금없이 유행하여 숱한 이들을 혹하다가 사라져버리는 유행어 같다는 느낌 때문이다.

치유란 결코 호들갑스러운 말이 아니다. 자기를 만나는 일, 삶을 느끼는 일, 이웃을 이해하는 일 사이에서 만나는 감사에서 이루어지는 일이 치유라는 생각이다.

어제 행사는 그래서 좋았다. 우리 소리여서 좋았고, 우리와 다른 공동체들이 녹여온 서로 다른 소리들이 어우러져 내는 소리들이 좋았고, 그 소리와 몸짓을 만들어 낸 이들의 이야기들을 들을 수 있어서 좋았다.

모든 치유란  삶 속에서 ‘육체의 가시’를 고백하고 인정하는 사람들만이 이루어 낼 수 있는 일일 터이니.

3.

어릴 적 내 고향 신촌에서는 억센 황해도 평안도 사투리들을 흔히 들을 수 있었다. 내 또래 친구들 중에도 이북 사투리를 쓰는 친구들도 제법 있었다. 그런 내 친구들의 할머니 할아버지 또는 부모들이 곧 돌아갈 고향을 그리다 이젠 거의 세상을 뜨셨다.

내 피붙이들 가운데도 그렇게 못 다 이룬 귀향의 한을 풀지 못하고 세상 뜨신 이들도 여럿이다.

통일(統一).

일 세대 통일 운동의 선구자들 중 마지막 사람 백기완 선생의 부음에 그를 기리는 소리들이 넘쳐난다.

통일, 농민과 노동자와 빈민와 민중들. 분단으로 잉태되고 이어지는 모든 불의에 온 몸으로 항거했던 맨 사람.

살며 때론 외로웠을 ‘노나메기’  꿈쟁이.

그가 있어 예까지 온 것만이라도 인정하는 산 자들이 되어야.

우리 세대의 치유를 위하여.


죽은 줄 알았던 내 세탁소 호접란((胡蝶蘭)이 다시 꽃을 피우다.

치유에.

 

설날에

‘눈이 더 왔으면 좋겠는지요?. 일기예보에 따르면 이번 주말부터 앞으로 8일 중6일 동안 눈이 오락가락하는 날씨가 계속 된다네요.’

오늘 자 우리 동네 신문 기사 가운데 일부이다.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이 아니라 내린 눈을 치우다 몸살을 앓기 일보직전이다.

어제 아침만 하여도 눈을 치우고 일을 나가느냐고 보통 출근 시간보다 두 시간이나 늦었다. 좋아서 하는 일과 억지로 하는 일을 이젠 몸이 먼저 알고 반응한다. 두 주 사이 서너 차례 이어진 눈 치우는 삽질로 만사가 귀찮은 지경인데 또 다시 눈이 내린단다.

솔직히 말한다면 이런 날씨를 즐기고 있다는 기분도 있다. 그게 나이에 따른 게으름일지라도 게으름을 즐길 수도 있으므로.

엊그제만 하여도 그랬다. 밤새 눈이 3-6인치가 내려 쌓인다는 일기예보에 ‘흠, 내일 가게 문  열기는 힘들겠군, 열어도 느즈막히 열면 되겠고…’하는 맘에서 시작된 게으름을 맘껏 즐겼다.

넷플릭스 영화 ‘승리호’를 보게 된 까닭이다. 몇 년 전만해도 꿈도 못 꿀 일이었다. 어느 해던가 일 피트 넘는 눈이 내렸던 날에도 나는 가게문을 제 시간에 열었었다. 그 역시 꿈같이 지나간 옛 일이다.

아무튼 영화 ‘승리호’. 내겐 좀 난해한 이즈음 세대의 영화였다. 영화를 보고 난 후 내가 느낀 감상평 세 가지.

헐리우드식 만화적 상상력이 이젠 한국인들의 손에….라는 생각 하나. 내가 참 좋아하는 배우 유해진의 영화에 대한 태도가….둘, 그리고 무엇보다….

영화 미나리에 이어 한국어가 말하고 듣는 이들에게 외국어가 아닌 영화 속 인물들의 말로 확인되고 인정되어 간다는 사실. 그건 아주 중요하고 의미 있다는 마지막 세번 째.

그리고 보니 오늘이 한국 명절 설날이다.

나는 십 수년 전부터 해마다 이 맘 때면 내 가게 손님들에게 한국 명절 설날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 왔다. 음력도 아니고 중국인들만의 춘제도 아니고, 한국인들의 설날 명절이라고.

글쎄… 모를 일이다. 민족이니, 국가니 하는 울타리가 언제까지 이어질지는.

먼 하늘 고향 찾아 떠나는 새떼들을 보며.

2021년 설날 저녁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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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 proposal

Our regional newspaper, The News Journal, made an interesting proposal to the readers.

The pandemic is still showing no signs of ending, though almost a year has passed since the first case in Delaware was reported The newspaper plans to publish readers’ stories which may send messages of hope to neighbors. So, it is asking the readers to submit their stor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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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continue to die of COVID-19, have lost their jobs, and have to take care of their children at home because of closed schools. In a word, our daily lives became chaotic, but we have to adjust ourselves to the abnormal. The News Journal says that it is waiting for the stories to give comfort and hope to other neighbors who may have been struggling through the situation day by day.

The proposal which asks for stories, like about what you have learned or felt anew for the past year, to share with other Delaware neighbors seems to be very interesting to me.

Indeed, all the people who live today had to go through a traumatic new experience in the past year. This new experience is still progressing and nobody knows when it will end.

Under difficult circumstances like this, there are certainly people who always care and think about others, simply because it is a world where people live.

“Woori Center” is a group of such people. It has been trying to promote the rights and interests of the minorities, including Asians and Korean Americans, in Philadelphia and its vicinity, to help build mutual understanding between generations, to serve society, and to live in harmony.

In celebration of the Korean traditional holiday, “Seol-nal (New Year’s Day),” the “Woori Center” will hold a healing concert to send comfort and hope through Korean traditional music and songs to neighbors who may be exhausted by COVID-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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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spired by the interesting proposal by the regional newspaper, I’ve decided to let as many people as possible, know about the healing concert by the “Woori Center” with hopes that even one more person may participate in the concert because of my effort.

First of all, I’ll tell the customers of my cleaners, who are my closest neighbors, about it and my wife will recommend teachers and students at the Delaware Korean School to participate in it.

Those who read this and become interested in the concert may click the link below and RSVP, call the number 267-270-9466, or send an e-mail to [email protected]. Then, the center will send you ZOOM link.

As Dr. Min-sun Lee, a psychologist, will talk about the psychological difficulties which people may suffer from under the COVID-19 environment, I’m also making a proposal to you.

I cordially invite you to a healing concert which “Woori Center” will hold in celebration of New Year’s Day.

https://bit.ly/3aFdmvO

제안提案에

우리 동네 신문인 The News Journal은 독자들에게 재미있는 제안 하나를 던졌다.

델라웨어주 안에서 첫 확진자가 발생한 이후 약 일 년이 지났으나 아직도 대유행은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이웃들에게  희망의 메세지를 전할 독자들의 이야기를 게재하려 하니 많은 응모를 바란다는 제안이다.

COVID -19으로 인해 죽어 가는 사람들은 연일 이어지고 있고, 일자리를 잃거나 비대면 교육 환경에서 아이들을 돌보아야 하는 현실, 나아가 변화된 새로운 환경에서 뒤집힌 일상 등으로 오늘과 어렵게 씨름하며 사는 서로 서로에게 위안과 희망을 주는 이야기들을 기다린단다.

지난 일년 간 새롭게 느끼고 배운 것들은 어떤 것들이 있는지, 더불어 함께 살아가는 델라웨어 이웃 주민들과 나눌 독자들의 이야기들을 보내 달라는 제안은 내게 매우 흥미로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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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일년은 오늘을 살아가는 모든 이들에게 새로운 경험을 안겨 주었다. 이 새로운 경험들은 아직 끝을 알 수 없는 현재진행형이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도 늘 이웃을 생각하며 사는 이들이 있게 마련이다. 사람사는 세상이므로.

필라델피아를 중심으로 인근 주민들 특히 한국인들을 비롯한 아시안계 및 소수 민족의 권익과 세대간의 이해를 돕고 봉사하며 함께 살려고 노력하는 <우리센터 Woori Center>도 그런 이들의 모임 가운데 하나이다.

<우리센터>가 우리 민족 고유의 명절인 설날을 맞아 COVID – 19 상황에 지친 이웃들을 위해 우리 가락 우리 소리를 통해 위로와 희망을 전하는 힐링 콘서트를 연단다.

동네 신문의 흥미로운 제안에 덕에, 나는 <우리센터>가 여는 새해맞이 힐링 콘서트 행사를 이웃들에게 알리고 단 한사람 만이라도 더 이 행사에 참여하도록 권하려 한다.

우선 가장 가까운 내 이웃들인 내 세탁소 손님들에게 이 행사를 알리고, 아내가 시간을 함께 하는 한국학교 선생들과 학생들에게 참여를 권한다.

행여라도 이 글을 읽은 단 한사람이라도 관심있는 사람이라면 아래 링크를 클릭해서 RSVP를 작성해 보내거나, 전화 267-270-9466, 또는 이메일 [email protected]로 문의하면 줌링크를 보낸단다.

심리학자 이민선 선생께서 코로나 환경에서 부닥치는 심리적 어려움에 대한 이야기도 해 주신다니, 나도 이웃들을 향해 제안을 던져 본다.

<우리센터>가 여는 새해맞이 힐링 콘서트 행사에 당신을 초대한다고.

https://bit.ly/3aFdmv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