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행하는 사람

<역사는 나선형으로 진행한다. 한 시대가 그 전 시대로, 또는 그 전의 문제로 되돌아가곤 한다는 뜻이다포도주 병의 코르크 마개가 빙글빙글 돌아가면서 천천히 위로 올라가는 것처럼 역사도 이전 시대로 돌아가는듯 하지만 사실은 수준이 점점 올라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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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경영학의 아버지 또는 비지네스맨의 영원한 멘토라고 불리우는 피터 드러커(Peter Ferdinand Drucker)의 말입니다. 어떤 하나의 현상을 보면 마치 역사가 뒷걸음치는 것 같아도 궁극적으로는 앞으로 나아가면서 발전한다는 것이지요.

인생을 아름답다고 고백할 수 있는 사람의 개인사나, 조직의 역동성을 굳게 믿는 단체나 크거나 작은 기업사, 민족의 역량에 대한 신뢰를 가진 민족사 나아가 인류 보편의 자유를 신봉하며 나아가는 세계사는 발전할 수 밖에 없다는 말이겠지요.

<실행을 하는 사람은 자신이 하는 일을 좋아한다. 물론 자신이 하는 일 전부를 좋아한다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조금 다른 문제이다. 모든 사람은 아주 많은 일상적인 일을 해야 한다. 예를 들어 유명한 피아니스트는 매일 3시간씩 연습을 한다. 아무도 그가 연습을 좋아한다고 하지는 않을 것이다. 해야만 하는 것이다. 재미가 없을지라도 40살 이후에도 실력을 향상 시키려면 그것을 즐겨야 한다나는 몇 년 전 한 피아니스트에게서 “나는 내 손가락에 생명이 있는 한 연습을 한다”는 훌륭한 말을 들었다. 단조로운 일상이지만 연습을 즐겨야 한다는 것이다.>

피터 드러커가 그의 책 ‘경영 바이블’에서 한 말입니다.

무릇 직업적인 일이란 대부분 아주 단조로운 일상의 연속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즐길수 있어야합니다. 그 삶이 아름답다고 고백할 수 있어야겠습니다.

우리들 각자의 발전을 위해서 말이지요.

봄엔 꽃이 아니어도 좋아라

봄엔 꽃이 아니어도 좋아라

봄엔

꽃이 아니어도 좋아라

이른 아침

버섯공장 거름냄새

앞뜰

파랗게 물오른 버드나무 아래

차마

견뎌내지 못하고 떨어진 잔가지들

뒤뜰

흐드러진 개나리 사이

겨우내

숨 져 마른 관목

아래

볼품없이 누워있는

내 머리만한

돌멩이 하나

 

봄엔

꽃이 아니어도 좋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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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예수의 죽음이 끝이 아니었듯 부활도 끝이 아닙니다. 문제는 부활이후(以後)입니다. 탐스런 목련, 뒷뜰에  흐드러진 서울 개나리, 하얀 배꽃, 날렵한 더그우드 꽃잎들… 봄 꽃으로 꽉찬 세상만이 봄이 아닙니다.

제 딸년이 코끝에 사래질 치는 버섯공장 거름냄새도 주워 내다 버려야 할 떨어진 버드나무 잔가지들도 앙상히 말라 톱질 기다리는 죽은 나무도 일 년 내내 그 자리에 있어도 눈길 한 번 주어 본 적 없는 못생긴 돌덩어리도 봄입니다. 

 

예루살렘 입성할 때 한 자리 꿈꾸었던 제자들…

부활이후에도 여전히 한자리 한 사람 아무도 없습니다.

첫 증인 막달라 마리아는 예수의 여인이었다는 스캔들이 끊이지 않았으며 베드로는 바울에게 밀려 났고, 야고보, 요한 역시 한 자리 했다는 기록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바울은 뭐 크게 출세했나요. 발품 팔아 돌아 다니며 멍석 짜는 일에서 벗어 나지 못한 삶이었지요. 봄은 그렇게 오는 것이지요. 부활 이후 말입니다.

“위로자로서

화의 축원자로서

삶의 조언자로서…필요한 것을 나누어 주는 자로서”

밥이 된 사내 이야기 9

지난 이야기에서 민감한 부분에 대해 마구 휘둘려 말한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만 어찌하랴 내 뜻을 나타내는 글을 쓰고 있으니 말이다

한 걸음 물러서서 이렇게 이야기하자. 하나님의 나라는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오는 것”이라고 한 내 말에 꼬리를 단다. 사람이 죽은 후 또는 세상이 종말을 맞은 후에 대한 열쇠는 세상 누구도 갖고 있지 않다. 이렇게 말이다. 그것은 오로지 신의 영역이다. 자 이렇게 한 걸음 물러서면 더욱 더 “오는” 하나님의 나라가 나의 관심이 되는 것이다. 

 

일테면 “나”라고 하는 인생을 놓고 보자. “나”는 죽어서가 아니라 살아서도 하루에 열 두 번씩 지옥불에 던지어 진다. 끊이지 않는 탐심(貪心)과 욕심과 음심(淫心) 거기서 끝나기만 한다면야 얼마나 좋으리. 나 하나 세우자고 아니면 조금 편하자고 이어지는 거짓말과 허세 진짜 가도 열 두 번씩 간다. 지옥에. 

 

이 어쩔수 없는 “나”는 예수를 기댄다. 예수의 십자가에 기댄다. 그의 십자가를 대신 지기는커녕 그의 십자가의 공로 의지하여 “내가 예수 당신을 믿사오니” 그 말 한마디로 하루 열 두 번씩 지옥불에 던져지는 그 순간 나는 천국열차로 갈아탄다?

 

 

자! 이건 사람의 영역이 아니다. 믿음에 백 제곱을 한다하여도 그건 사람이 판단할 일이 아니다. 그것은 신의 영역이다. 그러니 신께 맡기라고? 예수는 결단코 그렇게 쉬운 하나님의 나라를 말하지 아니하였다.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라는 예수의 선포를 들은 이들은 이 천 년 전 유대 갈릴리 사람들이었다. 그들이 이해하는 하나님의 나라는 어떤 것이었을까?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이 주권을 갖고 통치하는 나라이다. 유대의 역사는 이 전통으로 이어 온 역사이다. “오직 여호와만”이라는 기치 아래 역사를 일구어 온 민족이 그들이다. 다윗의 후예에서 구세주가 나타나 하나님 나라를 건설한다는 믿음으로 지탱해 온 역사이다. “반가와라, 기쁜 소식을 안고 산등성이를 달려오는 저 발길이여! 평화가 왔다고 외치며 희소식을 전하는구나. 구원이 이르렀다고 외치며 너희 하나님께서 왕권을 잡으셨다고 시온을 향해 이르는구나(이사야 52,7)” 유대민족 염원의 소리이다. 하나님이 왕권 곧 주권을 세우는 현실이 바로 하나님의 나라이다. 

 

예수가 살았던 시절은 이 하나님의 주권이 아주 실종된 상황이었다. 유대민족은 로마의 식민이 되어 로마황제의 통치 아래 있었다. 조선총독부 통치 아래 일본의 식민이었던 한민족이었다. 썩을대로 썩은 성전체제는 유대민족에게 이중고(二重苦)를 안겨 주었다. 당시의 성전체제는 엄청난 권력을 행사하였다. (덧글 하나 붙일까? 이즈음 한국에서 “그 때(일제시대)가 좋았다”는 미친 놈들이 널 뛴다고 하더라만, 그게 우리 민족만 그런 게 아니다. 어느 민족, 어느 때건 그런 미친 종자들은 있어 왔다. 더하여 역사는 정말 긴 것이다. 하여 자괴는 금물일진저.)

 

이른바 산헤드린과 성전의 두 권력은 당시 유대인들의 등에 엄청난 짐을 지우는 권력기관이었다. 산헤드린은 유대인들을 대표한 최고의결기관, 오늘로 말하자면 국회쯤 되겠다. 당시 로마제국은 산헤드린에 보내는 공문서에 “정부”, “원로원” 또는 “예루살렘 시민”이라고 호칭했던 것으로 보아 유대민족을 대외적으로 내세우던 기관쯤 될 것이다. 대사제를 중심으로 10명 내외의 제사장으로 구성된 상임집행부에 의해 운영된 성전체제는 그 권한이 막강하였다.

 

일테면 경제발동권이 그것이다. 첫째가 십분의 일세(십일조)를 거두어 드리는 권한이다. 둘째는 예루살렘 성전에만 하나님이 계시다는 신조(이런 것이 바로 정치든 종교든 권력형 사기이다만)를 내세워 모든 유대인들을 최소한 년 1회 예루살렘으로 모이게 하여 돈을 뜯어내는 일이다. 현실이 그러하였다. 만일 십일조를 못 내든가 최소 일 년에 한 번 예루살렘 성전 참배를 못하는 경우, 그들은 죄인이 된다. 

또 하나 성전체제가 당시 유대인들에게 부과한 짐은 이른바 안식일법령과 정결법이다. 안식일법령은 가히 사람을 꽁꽁 얽매는 법령이었던 바 일테면 “안식일에는 이천 걸음 이상 걸어서는 안 된다‘, ”병을 고쳐서는 안 된다“, “두 글자 이상의 글을 써서는 안 된다”, “글자를 고쳐 다시 써서도 안 된다”, “물건을 옮겨서도 안 된다”, “안식일에는 구걸을 해서도 안 된다” 온통 아니된다였다.(이즈음 한국도 이 바람 불었더라. 안 되는 게 점점 많아진다지) 

 

예나 지금이나 있는 분들이야 무슨 고통이 있으리. 다 없는 놈들이 문제지. 신명기법전 곧 여호와를 고백하던 초기 유대인들에게 안식일은 분명 가난한 자들을 쉬게 하려는 정신으로 만들어 진 것이건만 체제화된 성전의 공권력은 가난한 자들을 억누르는 방편으로 안식일을 이용하는 세태이었다.

 

이 위에 정결법은 더욱 가관이었다. 음식 그릇을 씻는 일에서부터 의복, 몸에 대해 어떻게 정결하게 하여야 하느냐를 아주 자세히 규정해 놓은 이 법은 사실 없는 놈들은 거의 지키기 어려운 것들이었다. 이것을 지키지 못하면 다 죄인이 되었다. (오늘날에도 많이 듣는 이야기 아니더냐. 성수주일, 십일조, 거룩 이거 지키지 않으면 지옥행, 오늘도 도처에서 그리 아우성들 치지) 

 

자! 로마에 뜯기고 동족의 성전체제에 뜯기고 죄인중에 큰 죄인이 된 사람들이 기다릴 것이 무엇이었겠나? “저 세상”아니었겠나? 그것이 어떤 곳인가? 하나님의 나라이지. 하나님이 통치하는 나라, 하나님의 세상 곧 우리들의 세상이 꿈 아니었겠나? 물론 그 평온한(?) 세상이 천 년 만 년 가주기를 바라던 세력들도 있었겠지. 로마의 권력과 그에 아부하던 유대족들, 성전체제 아래 배 두드리던 권세가들 그 무리들에게야 바로 그 때가 천국이었겠지. 구태여 일제치하 한민족과 비교 아니하여도 알지 않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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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그 때 갈릴리 바다 바람 맞으며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라고 소리친 것이 예수이다. 몰려 든 사람들은 이리 뜯기고 저리 뜯기다 “행여 하나님의 나라가 오는 것일까?”하는 설레임으로 다가 선 이들이었다. 그들이 바라던 하나님의 나라는 구세주의 왕국 곧 메시아의 나라이었다. 

 

그들이 무엇을 바랐겠는가? 정치적 해방, 경제적 평등, 종교적 자유 그랬겠지. 그 때나 지금이나 원초적인 사람들의 바램, 비나리 뭐 그런 것들을 크게 벗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모여든 사람들과 예수의 생각은 처음부터 달랐다.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생각이 처음부터 달랐다는 말이다. 그런데 예수는 하나님의 나라를 말하였다. 그의 죽음의 서곡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 2013부활주일 아침에…하나님 나라의 오심을 믿고 간구하며

 

아리랑

여러 해 전에 필라에 사시는 지인께서선명회 합창단 공연입장권을 보내 주셔서 가까이 지내는 몇 가정 부부들과 함께 그 저녁 어린 천사들의 화음을 만끽하였던 기억이 있다. 나는 그 밤 동행들에게오랫만에 누린 문화 생활이라고 말하였었고.

천사들이 마지막으로 청중들에게 선사한 노래는 우리 민요 ‘아리랑’이었는데 그 곳에 모인 모든 동포들이 목청 높여 함께 하였던 것이다. 그 밤 그 곳에 모인 모든 동포들이 한 목소리로 불렀던 ‘아리랑’은 우리 민족의 대표적 구전민요이다. 이 아리랑과 뗄 수 없는 말은 ‘한()’이다. 아리랑은 대개의 다른 민요와 더불어 두레노레 곧 ‘노동요(勞動謠:일하면서 부르는 노래)’이었다. 

 

아리랑

어느 누구든 한 평생을 살아가면서 잊혀지지 않는 한의 응어리는 갖고 살게 마련이다. 일테면 가난에서 오는 한, 까닭없이 빼앗긴 것에서 오는 한, 부모를 일찍 여윈 한, 자식을 앞세워 보낸 한, 성차별애서 오는 한, 고부간의 갈등에서 오는 한, 남녀간의 사랑에서 말미암은 응어리진 감정 등등 이런 것들이 집단화 되어 공동의 노래가 된 것 중 하나가 바로아리랑이다.

 

비록 개인적인 넋두리에서 시작되었을지라도 집단화 되어 표현될 때 그것은 이미 직업 또는 사회공동체의 공통적 애환을 담아내는 노래가 되는 것이다. 나아가 ‘아리랑’은 민족이 위기에 처했을 때 민족적 동질성을 지탱하는 가락이기도 하였다.

 

아리랑이 언제 어느 때부터 불리워졌는지, 아리랑의 의미가 무엇인지는 연구하는 학자마다 다 다른 소리를 하므로 바로 이것이다라고 말할 수 없다.

 

나는 사랑하는 님을 떠난다’는 뜻을 갖고 있는 말에서 시작되었다는 아리랑(我離娘)설, 대원군이 경복궁을 중건할 때 민중들이 괴로운 말만 듣게되어 “차라리 귀가 먹었으면 좋겠다.”한 말에서 나왔다는 아이농(我耳聾)설, 밀양 영남루의 아랑낭자의 억울한 죽음을 애도한 노래에서 나왔다는 아랑전설(阿娘傳說), 신라 박혁거세의 아내 알영부인을 찬미한 말에서 나왔다는 알영설(閼英說), 이밖에도 낙랑설, 아라리설, 아린설, 얄리얄리설등 연구하는 이마다 주장이 다르다.

 

그러나 이즈음은 노래의 조율성과 흥을 돋우기 위한 ‘무의미한 후렴소리’로 뜻이 모아지고 있으며, 노래의 기원은 입으로 입으로 전해지다가 구한말 이후 전국적으로 파급되었고 특히 1926년 나운규가 만든 영화 ‘아리랑’ 이후 급속도로 번져 민중의 민요가 되었다는 설이 유력하다.

 

나는 이십여 년 전에 발표한 정호완의 “아리다, 쓰리다”설에 귀를 귀울인다. 밀양아리랑에서 나오는 ‘아리아리랑, 쓰리쓰리랑’은 고유한 우리 말 ‘아리다’와 ‘쓰리다’에서 나왔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그의 해석을 터로 한다면 “아리랑 고개를 넘는 일’이야말로 ‘아리고 쓰린’ 오늘을 이겨내는 일이며, ‘아리고 쓰린’ 한()을 훌훌 털어 냄 아닌가?

 

저마다의 아픔과 시림의 고개, 이민(移民)의 시림과 아픔의 고개 나아가 민족의 아픔과 시림 곧 조국의 분단 – 그 아리랑고개를 넘어가는 아니 아주 넘어선 후 부르는 <새 아리랑>을 기다린다.

 

새 아리랑은 감상적이고 슬픈 계면조(界面調)가 아니라 평안하고 화평한 평조(平調)에 담아 낼 일이며, 한에 응어리진 소리가 아니라 해원상생(解怨相生:원과 한을 풀고 모두 더불어 함께 사는)의 소리여야 할 일이며, 알량한 주의(主義)나 종파(宗派)가 아니라 ‘시리고 아린’고개를 넘어선 민족의 큰 정신 담아내는 노래라야 할 것이다.

 

그 새 아리랑 소리 높여 부를 날을 꿈꾸며.

 

이즈음 아내는 아리랑을 이용한 생활무용을 통해 한국어와 문화를 알리는 꿈에 젖어 있다.

 

꿈을 꾸는 한 삶은 아름다운 법 아닐까?

 

한과 꿈

얼추 이십년 전에 아버님께서 책을 한 권 펴내신 적이 있다.

일흔 해 이 땅을 살아오시면서 당신께서 겪고 느끼셨던 일들을 담담히 적어 내신 것이었다. 아주 평범하지만 영육간에 건강하게 살아오신 모습대로 책의 내용 역시 지극히 평범하였지만 건강하고 바른 삶을 일깨우게 하는 것이었다. 책 제목이 <한울림>이었는데 나는 내용보다 제목이 너무 무겁다는 생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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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라리 부제로 붙여 논 <하나뿐인 인생을 위하여>가 썩 마음에 들었던 것이다.

하나뿐인 인생, 한 번 가면 다시 오지 않는 세월 – 동서고금의 철인(哲人)이나 현인들의 말씀에서부터 유행가 가사까지 빠지지 않는 단골 메뉴이지만 그게 제 삶에 무르녹아 드러나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그 하나 뿐인 인생을 외길로 걸어 온 이웃들의 모습을 보면 나는 한없는 부러움을 느낀다.  아주 작은 일이지만 뜻을 세우고 그 길을 서두르지 않고 오직 한걸음으로 또박또박 걸어 온 이웃들의 모습을 보노라면 천방지축으로 이리 기웃 저리 기웃 엄벙덤벙 살아 온 내 삶이 부끄럽기까지 하다.  

뭐 대단한 것을 이루어 낸 이들을 말함이 아니다. 이민와서 이삼십 년 때로는 사오십 년 가까이 다운 타운 코너 스토아나 세탁소를 꾸리며 웃음 잃지 않고 자식들 훤출하게 키워 내고 어려운 이웃에게 작은 손길 선뜻 내어 밀지만 결코 내세우지 않는 모습들이 부럽다는 말이다.

 

꿈많던 어린시절이 어찌 나에게만 있었을까 보냐!

품었던 꿈에 소원과 기도와 비나리를 아니 실었던 이가 어디 있겠는가? 한참을 걸어오다 보면 꿈은 그냥 꿈이 되고 꿈조차 꾸지 않았던 모습의 자신을 발견하고는 화들짝 놀라는 일이 나만 겪었던 일은 아니리라. 그랬다. 꿈이 많았다. 이것도 해 보고 싶고, 저것도 해 보고 싶었다. 이런 사람이 되어야지, 저런 사람이 되어야지 그런 꿈도 꾸었다. 어쩌랴! 모두 개꿈이었던 것을.

 

이제 환갑줄이지만 철이 아니 든 나는 아직도 꿈을 꾼다. 

 

스무 살 그 언저리쯤이었다. 나는 <한>이라는 말에 깊이 빠져 들었다. 한,  ,   깊이 천착(穿鑿)하였다고 말할 수는 없지마는 떼어 놓을 수 없는 동무처럼 내 삶의 그림자가 되어 쫓아 다녔다.  

 

신분이 미국시민으로 변신하며 <한>은 더욱 나를 따라 다녔다.

내 자식놈들 특별히 아들녀석에게 미안한 마음을 갖고 있는 것도 이 놈의 <한> 때문이다. 딸아이의 이름 “한나”는 그런대로 넘어 가겠는데 아들 녀석의 이름 “한울”은 아이에게 너무 무거운 짐을 지워 준 것 같다는 생각이다. 아들녀석의 이름은 이제 <한 Han>이 되어 제 친구들이 다 그렇게 부른다. 감사한 일은 녀석의 맘 씀씀이나 이웃에 대한 배려가 크다.

 

이 나이에 다시 꿈을 꾼다 하였거니와 그 꿈은 다시 <한>에서 시작한다.

더러는 나더러 장사꾼이라고 말하지만 애시당초 장사와는 연()이 먼 사람이다.

믿거나 말거나 이민을 가꾸는 우리 한인 동포들을 위하여”라는 내 말은 순수하다. 내 거울에 비추어 그렇다는 말이다. 그 맘으로 새롭게 꾸어 보는 꿈.

 

늘 그 꿈으로 산다.

원컨대 기도해 주시기를……

이따금 슬퍼지는 까닭

사랑은 눈물의 씨앗’이라며 목청꺽어 노래한 사람은 나훈아요, ‘사랑사랑 누가 말했나’ 떨리는 고음으로 호소한 이는 남궁옥분이었다. 어디 유행가 뿐이겠나?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노래와 무용, 미술과 건축, 문학 나아가 종교까지 ‘사랑’을 뺀다면  아마 인류사는 적막했을 것이다. 

사랑이 무엇이냐고  묻는 사람은 이미 사랑이 무엇인지 알고 있거나 아무리 사랑이 이것이다고 가르쳐 주어도 모르는 사람이다’ – 기독교 신학자 칼 바르트의 말이다. 사랑에 대해 이보다 뛰어난 해석이 있을까? 사랑이란 말이 머리 속 또는 가슴 속에 있는 바로 그 순간이 사랑일 것이므로. 

그 사랑을 주제로 이 땅을 열심히 살다가 서른 셋의 나이로 육()의 삶을 끝낸 이는 바로 예수다. 그는 ‘나’와 ‘당신’ 그리고 ‘나와 당신’을 묶는 ‘우리’에 대응하는 ‘그들’까지 모두 사랑으로 묶고자 서른 세해를 살다 살다 ‘사는 것’으로 아니되자 자기가 죽음으로 그 본 보이고자 하였다. 

어디 죽음으로 사랑을 이야기한 이들이 예수 뿐이겠나? 서로 사랑하다 하다 미칠 것 같이 사랑하다 끝내 죽은 연인들의 이야기는 부지기수요, 조금 넓게는 제가 사는 마을을 사랑하다 죽은 사람들의 이야기도 널려 있고. 제 민족과 나라를 사랑하여 목숨을 버린 이들의 이야기도 숱하다.  

그들과 예수의 이야기는 무엇이 다를까? 예수는 스스로 신이었고. 그의 사랑은 신의 사랑임을 확신하고 선포한 것이 다르달까? 그러나 어디 스스로 신()임을 자처한 이가 또 예수뿐이겠나? 오늘 이 순간에도 스스로 신이라 칭하는 미치광이들이 널려있거늘. 

예수는 그렇게 많이 배운 사람이 아니었다. 그러므로 그는 쉬운 말을 썼다. 비록 깊은 비유로 숨는 이야기라 할지라도 그가 사용한 말들은 당시 하루 먹고 살기 바빳던 사람들의 일상적 언어였다. 소위 갈릴리 말, 아람어였다.  일테면 요새말로 어려운 신학적 용어, 책에서나 읽을 수 있는 말이 아니라 나와 당신들이 폼 잡지 않고 쓰는 말들을 사용하면서 ‘하나님 나라’와 ‘사랑’을 전했다는 이야기다.    

사랑그가 쉬운 말로 전했던 사랑이야기는 무엇일까?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하는 사람과 자연에 대한 대한 신의 절대적 사랑과, 서로 사랑하라는 인간 사이의 상대적 사랑을 말했다고 믿는다.  

어려운 말 하지말고 쉽게 쓰자. 사람 사이의 사랑이란 상대적이란 말이다. 모든 사람 사이의 사랑이란 절대적일 수 없다는 것이다. 백 퍼센트 전폭적으로 나는 사랑을 베푼 사람이고 너는 그 사랑을 받은 사람이라는 관계는 성립되지 않는다는 말이다. 그것은 오직 신 뿐이란 이야기다. 그것이 예수가 말한 사람 사이의 사랑이야기다. 

행여 “나는 너와 너희를 위해 절대적 사랑을 베풀었건만 너희가 나에게 무엇을 하였는가?” 운운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의 직업이 어떤 것이든 이미 그는 예수의 사랑과는 동떨어져 있다.  

살며 ‘나는 주기만 했고, 너는 받기만 했다.’며 우기는 얼굴들을 보면 왜 이리 슬퍼지는지.

 

집으로

오늘로 열흘째 어머님께서 지내시는 곳은 노인병동입니다. 2 1실인데 그 사이 어머님 옆 침대는 세 분이 들어왔다가 나가셨습니다.

어제 집으로 돌아가신 백인 할머님은 연세가89이셨는데 참 곱게 늙으셨답니다. 다만 치매기가 좀 있으셨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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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께 오후에 병실에 들렸을 때 할머님이 저를 보자 환하게 웃으시며 말씀하셨지요. “Hey baby! I’ll go home tomorrow!” 정말 세상 부러울 것 없는 얼굴이셨답니다.

잠시 후, “내가 집으로 가기 전에 이거 다 부셔버리고 갈거다갑자기 화난 얼굴로 할머님께서 소리치셨답니다.(소리라고 해보았자 모기소리지만….) 환자들이 모두 노인들이다보니 행여 의자나 침대에서 떨어지거나 넘어질까보아 환자가 움직여 침대나 의자바닥과 몸이 밀착되지 않으면 요란한 소리를 내는 방석을 가르키며 하신 말씀이었지요.

집에 돌아가셔보았자 특별히 하실 일도 없을 것이고, 간호할 누군가가 옆에 붙어있지 않으면 안되는 상태이시고, 차라리 병원에계시는 것이 낫지 않을까 하는 상태이셨지만 집으로 가시는 것이 그리 소원이셨던 모양입니다.

오늘, 어머님의 옆침대에는 말씀조차 못하는 거구의 백인 할머님이 새로 들어오셨습니다.

그리고 어머님께서 하신 말씀이었지요.“얘야, 집에 가고 싶다.”

바로 일상이지요. 일상에 대한 감사오늘 어머님이 제게 주신 가르침이랍니다.

솔직함(frankness)과 진정성(authenticity)으로…

벌써 사년 전 일입니다만 당시 USA TODAY는 아메리칸 드림을 안고 살아가는 이민자들의 삶이 날로 힘들어 지고 있다는 기사를 실었습니다.( For immigrants, living the dream is getting tougher)

많은 이민자들이 스물비지네스를 통해 생계를 꾸려가고 있지만 최근 불어닥친 경기침체의 영향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전하며, 이들의 삶이 이민초기의 무일푼의 상태로 되돌아 가고 있다고 보도했습니다.

스몰비지네스국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미국내 약 150만명의 이민자들이 스몰비지네스를 소유하고 있으며 비이민자에 비해 이민자들의 스몰비지네스 창업율이30% 높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About 1.5 million immigrants own U.S. businesses, according to a study for the Small Business Administration by Rob Fairlie, an economics professor at the University of California-Santa Cruz. He found that immigrants are 30% more likely to start a business than non-immigrants.).

미국내 스몰비지네스의 12.5%가 이민자들 소유이며 멕시칸 이민자의 스몰비지네스 소유가 2.22%로 가장 많고 다음이 한인으로 전체의 0.78%를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도표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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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은 남미, 유럽, 아시아 등지에서 이민을 와서 옷가게, 식당, 세탁소, 그로서리등을 운영하며 살아가는 이민자들의 이야기를 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기사는 이렇게 끝납니다.

“내 피와 땀과 눈물을 이 땅에 쏟았습니다. (오늘의 고통은) 실로 슬픔입니다.” (I put my blood, sweat and tears in this place. It’s a sad story.)

한인 이민자들인 우리들의 삶은 어떨까 생각을 해 봅니다. 많은 우리 한인 이민자들이 스몰비지네스에 종사하고 있습니다. 우리들의 모습도 신문이 전하는 이야기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을 듯합니다. 우리들의 착각과 편견을 벗어 내 버리면 말입니다.

다른 통계를 하나 더 말씀드리겠습니다.

<아시안계 대다수가 평균적인 중산층 수입 이하의 소득수준을 보이고, 1가구당 수입이 다른 인종(백인, 흑인, 히스패닉)에 비해 가장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5가구중 1가구가 빈곤선 이하) 게다가 아시안계 가정의 54%가 영어 미숙자로 언어소통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것이다.>(80-20 initiative)

저는 착각과 편견을 이야기했습니다. 많은 한국 이민자들은 아시안계에 속하기를 거부합니다. 특히나 남미나 흑인계 이민들과 비교되는 것들도 꺼립니다. “한국인”을 이야기 하고 높은 학력과 아시아의 유태인으로 견주기를 즐겨합니다. 이 땅의 타 민족 이민자들 보다 비교 우위에 있다는 자부가 매우 강합니다. 그러나 이젠 솔직해 질 필요가 있겠습니다. 위에 통계나 USA TODAY의 기사와 우리 한인 이민자들의 실상은 크게 다르지 않는 것입니다.

“자부”는 지녀야 할 덕목이지만 그 보다 먼저 “솔직”하고 “진정”한 마음으로 우리를 돌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위의 USA TODAY 기사는 1970년대 중반에 그리스에서 이민을 와서 세탁소(Four Seasons Cleaners)를 경영하고 있는Panayiota Koskiniotis 씨의 이야기를 싣고 있습니다. 그는 말합니다. “길게 보면 이 땅은 살 만한 곳이다.”라고.

저 역시 그의 말에 동의를 합니다.

비록 경기침체의 끝은 보이지 않고, 갈수록 스몰 비지네스로 생계를 꾸려가지 힘들만큼 현실의 여건은 어렵더라도 “길게 보면 이 땅은 살 만한 곳입니다.”

언어의 장벽, 문화의 이질감, 터무니 없이 적은 자본능력 등등 현실을 헤쳐 나갈 도구들도 충분치 않지만 여전히 “길게 보면 이 땅은 살 만한 곳입니다.”

“솔직”하고 “진정”한 마음으로 우리를 돌아 볼 수만 있다면 말입니다.

“솔직함(frankness)”과 “진정성(authenticity)”이 “이 땅을 살 만한 곳”으로 만드는 도구입니다.

비록 어려운 경제환경과 우리들이 지닌 핸디캡들(언어의 장벽, 문화의 이질감, 터무니 없이 적은 자본능력)에도 불구하고 세탁소를 비롯한 스몰 비지네스로 성공 이민의 꿈을 이루어 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솔직함(frankness)”과 “진정성(authenticity)”으로 내 비지네스를 키우는 방법에 대해 생각해 보려 합니다.

삶의 정치 – 그리고 인생 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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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파와 좌파의 논쟁이 대중들에게 호소력이 없는 까닭은 그들이 삷의 정치를 다루지 않기 때문이다.> 저명한 사회학자인 Anthony Giddens이 그의 저서 <좌파와 우파를 넘어서(Beyond left and right)>에서 갈파한 말이다.

그는 급진과 보수, 좌파와 우파를 넘어서는 정치모델이 필요하고 이는 이미 이행되어 가고 있다고 주창한다. 그의 주장에도 불구하고 정치, 사회, 문화, 교육, 종교 모든 부문에 걸쳐 세계 도처에서 좌파와 우파는 대립과 투쟁과 갈등을 지속하고 있는 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내가 서 있는 자리는 솔직히 좌로 조금 기운다. 지금 일어나고 있는 현상적인 틀(일테면 미국과 세계, 한반도의 남북 또는 남쪽의 상황)을 이해하는 방법이 그렇다는 말이다. 특히 종교적인 입장에서는 좌로 좀 더 기울 것이다. 수년동안 내가 고뇌하고 있는 이민신학(移民神學)은 기실 정치, 해방, 민중신학과 십 수년래 미국에서 풍미한 예수세미나 회원들의 고뇌의 성과물들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고 하겠는데, 이른바 거룩한 보수정통의 입장에서 보면 나의 이해란 예수쟁이와는 거리가 꽤 먼 것으로 비췰 수 밖에 없겠기 때문이다. 일례로 나는 케리그마, 말씀의 선포 곧 설교자들의 설교도 토론이 병행되는 시대가 올 것이라고 믿는 바 이런 생각들은 좌의 끝자리쯤일 것이다. 

이런 내가 아주 꼴통보수우익으로 수성(守城)코자 하는 일이 있으니 바로 찬송가 부르기다. 내 주는 방패되시니’, ‘죄짐맡은 우리구주’, ‘뜻없이 무릎꿇는’같은 고전적인 찬송에는 함께 하다가도 이즈음 유행하는 복음성가에는 도대체 입이 떨어지지 않는 일이다. 특히 이즈음엔 생업(生業)으로 하는 복음성가 가수들도 있어서 어쩌다 그 이들의 노래를 들을라 치면 왠지 노래하는 기교와 가락이 배어 있는 듯하여 내가 좋아하는 노래꾼 김민기보다도 덜 종교적이란 생각이 들곤하는 것이다. 

거의 드문 일이지만 어쩌다 참석한 집회에 찬양과 경배 그런 순서가 있어서 박수치고 율동하고 그러면 참으로 나는 좌불안석이 되곤 한다. 게다가 찬양 인도자가 ‘박수치세요’, ‘율동하세요’, ‘!자 함께 은혜 받아요’ 하기라도 하면 왜 집을 떠났던고, 성경 한 줄 읽고 고민할 걸 가히 후회막급이라! 이 아니 꼴통보수 아니랴! 그러나 교회사에는 피아노도 경망스럽다하여 금기했던 세월도 있었으니 원조보수는 아닌 셈이다. 

그런 나도 이따금 흥얼거리는 복음성가가 하나 있다. 이것 역시 고전이다만, “내 인생 여정 끝내어 강 건너 언덕 이를 때/ 하늘 문 열고 말하리 예수 인도 하셨네…”하는 노래이다. 산다는 것이 다 그렇지 좌편 끝 길을 걸을 때도 있고 우편 끝 모서리에서 뒤뚱거릴 때도 있으며 높은 언덕 꼭대기에 서서 시원한 바람 맞으며 세상 내 손 안에 쥘 때도 있고 시궁창에 빠져 숨조차 내쉬기 힘든 때도 있기 마련이지 어찌 바른 길로만 올곧게 걸을 수 있겠는가? 돌아볼수록 부끄러운 걸음이지, 오직 떳떳함 뿐이로다할 사람 몇이나 있겠는가? 그런데 하늘문 열고 말한다지 않는가? 예수가 여기 인도했노라고 그게 믿음이지, 당당한 믿음이지. 

여기까지 온 것도 예수 인도하신 까닭이요, 피안(彼岸) 저 편에 다달아 예수가 인도하였다는 고백을 하려면 지금 오늘을 예수 안에서 살아야 되는데 거기 무슨 우파와 좌파가 있으랴! 뛰어 넘어야지. 어찌 삶의 정치뿐이겠나? 하여 지금 여기 내 삶의 자리에서 내 인생 여정 끝내어를 노래하는 한 진정 좌파와 우파의 자리는 없다. 

그래, 봄으로 찾아오는 이 사순절 그렇게 살자. 내 인생 여정 끝내어…

밥과 기쁨 -2

바로 지금 오늘 여기에.

첫 생각을 잃어 버리게 된 것이다. 예수는 분명하나님의 나라를 첫 설교에서 선포하였고 그의 생애를 통해 즐겨 이야기하였는데 그 나라가 어떤 곳이냐하는 물음이 없어진다면 이건 좀 우스운 이야기 아닌가 말이다. 나는 아무래도 그 나라가 어떤 곳이냐하는 물음에 대한 답을 찾아야겠다. 

기록에 의하면 하나님 나라에 대한 일체의 설명없이 예수는 막바로 그 나라가 다가왔다라고 선포하였다. 그 말을 들은 사람들은 이천년 전 유대 갈릴리 사람들이었다. 자 이야기를 이렇게 풀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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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대 중반의 서울, 사람들이 연일 모여 데모를 한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 마이크를 붙들고 “여러분, 마침내 이 땅에 민주화가 가까이 왔습니다”하고 외쳤다. 사람들이 “민주화가 무엇이오?”하고 묻겠는가 아니면 “와”하고 함성을 지르고 박수를 치겠는가? 

또 다른 이야기 하나. 2015년 어느 날, 남북 문제가 아주 잘 풀려서 남북에서 공동성명을 발표하였다 치자. “칠 천만 한민족 동포 여러분! 마침내 통일이 다가왔습니다” 그랬다고 상상이나 한 번 해 보자는 말이다. 그 때 “통일이 무엇이오?”라고 묻겠는가 아니면 “어, 어”하며 설레임과 말 못할 두려움 그런 것들에 휘감기겠는가? 설명이 필요 없다는 말이다. 우리네 역사 경험에서 갖게 된 통일과 민주화에 대한 어떤 표상이나 현실에 대해 구구한 설명이 필요 없다는 말이다. (솔직이 내가 이 글편들을 쓴 것은 몇 년 전 일이다. 한국은 민주화된 나라라는 것이 이 글을 쓸 당시 나의 인식이었다. 헌데 2013년 현재의 한국은 “민주화가 가까이 왔습니다”라는 선포가 여전히 유효한 땅이다. 어쩜 하나님의 나라는 이와 똑 같은 거 아닐까?)  

나는 예수가 선포한 “하나님 나라”에 대한 당시 갈릴리 사람들의 이해가 이와 거의 엇비슷 했을 것이라고 믿는다. 그 나라에 대한 특별한 설명을 하지 않더라도 당시 갈릴리 사람들에게는 그들이 함께 느끼고 있는 하나님 나라에 대한 염원과 그 나라가 온다는 믿음이 밑바닥에 깔려 있었다는 말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예수를 에워싸기 시작했고 예수는 그들이 이해하고 있는 하나님 나라에 대한 생각들과 자신의 생각이 다른 부분들에 대해 말하기 시작하였다. 그게 바로 하나님나라 비유 이야기들이다. 

또 다른 예를 하나 들자. 예수는 기도의 원형을 가르쳐 주었다. 

모이면 외우는 주기도문이 그것이다.

이렇게 시작된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가 임하옵시며…” 나라에 대한 설명은 전혀 없다. 그리고 그 나라는 “임하는” 것이다. “임하다” 곧 “come”이다. 

하나님 나라가 어떤 곳이냐 하는 물음에 대한 답을 찾기 전에 이 이야기를 먼저 해야만 하겠다.

하나님 나라는 “온다”는 것이다. 하나님 나라가 가까웠다는 선포나 나라가 임하소서 하는 기도에서 하나님 나라는 역사 한복판 곧 우리들의 삶의 현장 바로 오늘 여기 오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사실 복음서 어디를 훑어 보아도 한국적 생각과 관습에 젖어 쓰는 “천당”이라는 말에 해당되는 표현은 없다. 더더군다나 “천당에 간다”는 표현도 없다. 다만 주로 마태가 기록한 복음서에 “하늘나라에 들어간다”는 표현들이 있지만 이 말은 우리들이 생각하는 “천당에 간다”는 느낌과는 사뭇 다르다. 마태의 유대교적 전통과 그들의 역사적 관습에 따른 표현 “성전에 들어간다”고 하는 매우 현실적 상황을 나타내는 어법이라는 말인데(이 부분은 슈바이쳐의 해석이다) 또 조금 어렵게 나갔다만 성서의 본뜻은 하나님의 나라는 오는 것이지 우리가 그리로 가는 것은 아니다라는 말이다. 

적어도 예수가 말한 하나님의 나라는 우리가 이승에서 저승으로 가는 뜻의 그런 나라는 아니다. 그 나라는 우리가 살고 있는 삶의 한 복판 바로 여기 지금 오늘 가까이 왔다. 그렇게 온다. 그게 과연 어떤 모습일까? 

<오늘의 사족> : 천국, 가까이 온 하늘나라는  바로 우리들의 구멍가게 바로 그 곳으로 온다. 코너 스토아, 네일가게, 가발 가게, 잡화, 세탁소, 야채가게 등등 바로 오늘 하루를 지지고 볶는 그 곳에…

바로 지금 오늘 여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