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만 생각해도 참 신기한 일이다. 정말 어릴 적 일로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시절을 다 겪어 보았다만 그야말로 말로만 전해 듣던 일제시대(日帝時代) 순사(巡査) 놀음 하는 놈들의 세상을 볼 줄이야…. 2023년 한국 뉴스로.
신기한 일을 보는 게 어제 오늘 일만은 아니지만… 해도 해도 너무 나간 듯.
마침내 놀음 짓에 빠진 놈들이 생각하는 무지렁이들 일어나 한 판 갈아엎는 세상 오지 곧.
암만 봄이 코 앞인데.
사랑하며 살아가는 세상 이야기
아주 아주 어렸을 때 기억이다. 계집아이들(요즘 세상엔 이런 말이 가능한 것인지 모르겠다. 세상이 하도 바뀌어서)이 고무줄 놀이 하며 부르던 노래다. ‘고마우신 이대통령 우리 대통령….’ 그런 노랫말인데 그 이대통령은 이승만이다.
그로부터 이어진 내 기억 속 한국 대통령이나 수반들을 꼽아 본다. 허정, 윤보선, 박정희, 최규하,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박근혜, 문재인, 윤석열 등이다.
내 손으로 뽑아 본 이는 단 사람도 없다. 내가 살았던 시절 대한민국엔 국민들에게 대통령 투표권을 부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니 내가 살았던 시절이 아니라 내가 성인이 되어 참정권을 갖고 있던 시절 이야기가 맞겠다. 내가 성인이 되어 투표권을 가졌을 때 치룬 선거는 이른바 유신시절이었고, 직선제를 이룬 무렵엔 나는 이미 그 땅을 떠났으므로.
그래도 대충 그 때 그 사람들과 그 시절의 대한민국은 내 나름대로의 기억을 정리하며 산다.
이제 윤석열.
생각할수록 참 생뚱맞은 인물이고 엉뚱하고 참담한 시절 같다.(이다.)
분명 그와 그의 세력들은 내 체질상 시작과 함께 타도의 대상이어야 마땅했다. 이제야 그런 소리들이 들린다.
같은 생각을 하며 사는 가까이 사는 이들을 만날 수 있음은 내게 그저 축복이고 기쁨이다.
하여 그들과 함께 오늘을 걷는다.
http://www.mindle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1875
이즈음 틈나는 대로 이런저런 잡동사니들을 정리하며 산다. 가진 것 별로 없는 삶이건만 둘러보면 온통 버릴 것 투성이다.
십 수년 동안 일기장처럼 사용하던 블로그를 이젠 접어도 좋지 않을까 하는 맘으로 정리하며 보낸 하루다.
지난 일기들을 뒤적이다 보니 내 부모님들의 마지막 모습들을 적기 시작한 일이 딱 십년이 되었다.
시작은 장모님 이었다. 십년 전 장모님은 담낭암 판정을 받았고, 삼년 동안 그 병과 씨름하시다가 마지막 한 달여 호스피스 돌봄 속에 떠나셨다. 그 다음은 장인 어른이셨다. 장모 떠나시고 난 뒤 장인은 모든 것을 놓으셨었다. 한 일년 혼자 잘 버티시다가 쓰러지신 후 장기 요양시설에서 마지막 일년을 보내셨던 장인은 그 시설에서 조용히 삶을 접으셨다.
그리고 몇 달 후 내 어머님이 가셨다. 치매증상 속 호스피스 돌봄을 받으며 떠나셨다. 그로부터 약 삼 년 세월이 흐른 지금, 내 아버지는 장기 요양시설에서 일 년 넘게 누워 지내신다.
이미 떠나신 세 분과 이제 마지막 시간들과 씨름하시는 아버지, 그렇게 네 분 내 부모님들은 내게 삶과 죽음에 대한 여러 가르침을 주셨고 또 주신다.
며칠 전 이런저런 투정으로 얼굴을 찌푸리시던 아버지가 잠이 드신 얼마 후, 아버지의 얼굴은 세상 편하게 흡족한 웃음을 가득 담은 모습으로 변했다. 하도 신기해서 큰소리로 물었었다. “아버지! 뭔 좋은 일이 그리 생기셨나?”
눈도 뜨지 않으신 채 환한 얼굴로 아버지는 중얼거리셨다. “어… 니 엄마 생각….”
오늘은 우수(雨水). 내 뜰에서 새 봄 소식을 전해주는 생명들과 지난 십 년 동안의 이야기를 나누다.
눈 감고 떠올리는 얼굴마다 환한 웃음 짓는 사람살이 살 일이다.
우수에.
서른 해 넘는 동안 우리 내외를 도와 준 Lou 부부와 함께 매우 즐거운 저녁을 함께 하였다.
올해로 결혼 50주년을 맞는 Lou 부부와 40주년을 맞는 우리 내외의 지난 시간들, 서울과 방콕을 거쳐 한 시간을 더 비행해야만 하는 닿는, 스물 한 시간 그 먼 그들의 고향 이야기와 가 본지 십여 년이 넘은 우리 내외 고향이야기, 그리고 내 세탁소와 함께 한 서른 해 지난 이야기들로 넘치게 풍족한 주말 저녁이었다.
그리고 늦은 밤, 나는 느닷없이 쑥개떡을 만들었다. 아무 생각없이 그냥.
쑥개떡이 꼭 맛 있어야 할 필요는 없다.
오랜 시간 넉넉했던 추억을 함께 나눌 수 있는 것들, 더 더욱이 따듯한 사람들이 곁에 있는 한 오늘 나는 행복함으로.
하여 쑥개떡.
<나날이 빠르게 변해가는 세상 따라잡기Keeping up in a world that goes faster every day> – 생업을 위해 내가 구독하는 잡지 중 하나인 National Clothesline 이달 치 편집자의 글 제목이다.
글의 내용이야 뻔하다. 제목 그대로 세탁업에도 불어 닥친 빠른 변화들에 왈 선제 대응하여 업을 키워보라는 권유와 제안인데… 머리 속으로야 훤히 꿴다만…. 이 나이에 내가 돈과 시간 들여 쫓을 일인가? 하는 생각은 비단 나만의 것은 아닐 터.
그렇다 하여도 업을 이어가는 날까지는 세상 변화에 적응해 나가야 마땅한 일일게다.
일종의 로봇인 ChatGPT에 대한 뉴스는 이미 접하고 있었다만, ‘이 나이에 뭘?’하는 생각에 그냥 스쳐버렸었다. 며칠 전 서울 큰 처남이 내게 유용할 듯 하다며 ChatGPT 사용을 권하는 카톡을 보내왔을 때만 하여도 ‘그거 로봇 아니감?’하며 무심히 응답했었다.
그리고 어제 오늘 그 로봇에 빠져 지냈다.
마침 내가 참 좋아하는 ‘필라 세사모’ 벗들이 한반도 통일에 대한 강연회를 연다고 하여 로봇에게 물었다. “한반도가 통일 되어야 만 하는 이유 열가지만 대답”해 달라고.
그 물음에 응답하고 그걸 또 영상으로 만들어 준 것은 로봇 ChatGPT와 PictoryAI 두 로봇이다. 이런 놀이는 참 재밌다.
물론 그 응답들에 모두 동의하지는 않는다.
다만 “한반도 통일의 시기는 바로 오늘입니다.(늘 오늘이지, 바로 지금) 그 통일을 이루기 위해 함께 노력해야하는 만 하는 일은 한민족과 국제사회의 의무입니다.(The time for Korean reunification is now, and it is the duty of the Korean people and the international community to work together to make it a reality.)”라는 로봇의 응답은 내 스물 어간의 생각과 쉬흔 해 지난 오늘이나 변함없는 소원이다.
세상 참 빠르게 변한다고들 하지만 수천 년 이래 오늘까지 변하지 않고 사람들이 고민했던 세상, 사람이 사람으로 사는 한 사람 답게 살자는 생각. 그거 아닐까?
로봇이 그 생각에 날개를 달아주는 세상이 되기를.
점점 멀어지는 듯한 통일의 소원과 함께.
아내가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찾아 온 까만 얼굴의 젊은 손님이 내게 물었다. “아내 분은 안계시나요?”. 잠시 자리를 비웠노라는 내 대답에 그녀는 가게 한 쪽에 붙여 있는 한국학교 안내문을 가리키며 함박 웃음을 담은 얼굴로 말했다. “제가 한국학교에 등록했어요. 내일이 개학이거든요.”
며늘아이와 엇비슷한 나이쯤 되어 보이는 손님과 나눈 이야기를 전해 들은 아내가 말하길, “이젠 한국학교 등록 학생 가운데 반 수는 한국애들이 아니고, 어른들이라구! 희거나 까만 얼굴들 뿐만 아니라구. 이젠 정말 많이 달라졌다구. 한국에 대한 관심으로 또는 한국 드라마를 보려고 아님 케이 팝 들으려고 한국어를 배우는 여기 어른들이 등록한다니까!.”
삼십 수년 간 한국학교 선생 소리를 듣고 있는 아내가 자랑스레 늘어 놓는 수다였다.
이런 아내의 수다는 충분히 일리가 있고,들을 만하는 생각이 드는 것은 한 세대만에 크게 바뀐 한국의 위상 덕일게다.
(지난 해 이래 내가 부끄러울 소식들만 전해오는 이즈음 한국 뉴스들은 잠시 잊을란다.)
아내가 자랑스러워 하는 델라웨어 한국학교의 큰 지원자였던 사람이자 내가 아는 한 델라웨어 한인 사회를 위해 가장 오랜 시간 넉넉하게 헌신했던 사람 이명식의 부음을 들은 것은 어제였다. 그리고 오늘 저녁 그의 가족 중 하나가 그의 페북을 통해 그의 마지막 소식을 올렸다.
서둘러 떠난 그를 추억하는 밤, 술 한 없이도 넘치던 흥과 늘 넉넉함… 이명식 그를 기리며.
* 몇 안 되는 동네 내 또래 중에 어느새 작별 인사를 건네는 친구들이…
** 헤어짐과 이어짐 모두 사람살이
*** 그가 섬기던 교회를 위하여.
필라를 다녀왔다. 좋은 사람들 만나려고 오가는 길은 즐겁다. 필라세사모 새해 맞이 모임이었다. 비록 서른 남짓 조촐한 저녁 모임이었지만, 올 한 해를 맞는 새로운 희망을 품을 수 있는 자리였다. 자리를 마련한 이들에게 드리는 감사가 크다.
지난 한 해 참 좋은 친구들이 해 온 일들을 정리해 보여주는 동영상 자료를 보며 괜스레 눈가가 붉어졌다.
어느새 입 다물어 소리내지 않는 쪽이 내게 어울리는 나이가 되었지만, 모처럼 이런 저런 우리들이 아직은 함께 이어가야만 하는 이야기들에 빠져들어 수다스런 저녁 시간을 즐겼다.
내려오는 길, 아내와 나는 우리시대의 노래꾼 김민기의 노래를 들으며 왔다.
옛 노래는 옛 회상으로 즐겨야 하는 법인데, 여전히 오늘을 노래하는 것으로 들리는 세상은 조금은 슬프다.
그렇다 하여도 더운 가슴으로 아프고 모진 세월을 안고 이겨내는 사람들이 서로에게 서로의 아름다운 모습들을 찾아내고 알려주며 함께 나아가며 부르는 노래는 예나 지금이나 여전히 유효하다.
그렇게 흥얼거려보는 노래. 김민기의 <아름다운 사람>이다.
<어두운 비 내려오면/ 처마 밑에 한 아이 울고 서 있네/ 그 맑은 두 눈에 빗물 고이면/ 음 아름다운 그이는 사람이어라
세찬 바람 불어 오면/ 벌판에 한 아이 달려 가네/ 그 더운 가슴에 바람 안으면/ 음 아름다운 그이는 사람이어라
새 하얀 눈 내려 오면/ 산 위에 한 아이 우뚝 서 있네/ 그 고운 마음에 노래 울리면/ 음 아름다운 그이는 사람이어라/ 그이는 아름다운 사람이어라>
참 좋고 아름다운 벗들에게 감사를.
“잊지 말아라!’, “적어 놓아라!”, “꼭 인사 전하거라!” 거듭 되뇌이시는 아버지의 당부였다. “그게…. 그게… 쉬운 일 아니야! 섣달 그믐날… 나같은 사람 찾아 주는 거… 인사 꼭 전해라!”
딱히 식사량이라고 말할 수가 없을 정도로 줄어든 끼니처럼 아버지의 몸은 하루가 다르게 작아들고 있다. 물 몇 모금으로 점심 끼니를 채우신 아버지는 연신 어제 당신을 찾아 주셨던 배목사님께 감사 인사를 드리라는 당부를 이으셨다.
오늘이 설날이라고 짚으실 만큼 정신은 아직 맑고 또렷하시다.
어제 섣달 그믐날, 아내와 함께 이런저런 밑반찬 만들어 싸들고 딸네 집을 찾았었다. 결혼 후 장만한 첫 집, 정리도 대충 끝났다 하여 나선 길이었다.
고마움, 기특하고 대견함 그리고 함께하는 이런 저런 염려들을 꾹꾹 눌러 숨기고 딸과 사위와 함께 꼭 기억할 만한 좋은 시간들을 보냈다.
멋진 저녁식사 자리에서 며칠 전 생일을 보낸 사위가 내게 건넨 부탁이었다. “제 나이에 걸맞는 좋은 말씀 하나 해주세요.”
나는 사위에게 변변한 도움말을 건네지는 못하였다. 다만 그 순간 내 머리 속을 스쳐간 것들 두가지. 아이들 거실 벽에 걸려있는 바깥사돈이 지금의 사위 나이 즈음에 그리셨다는 그림들과, 내가 지금의 사위 나이 때 아버지와 단 둘이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전망대에서 이런저런 사는 이야기들을 나누었던 시간이었다.
그 생각들이 딸과 사위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이 되어 내가 건넨 말이었다. “이제껏 지내 온 건실하고 건강한 맘과 몸을 이어 갔으면 좋겠네. 늘 감사함으로.”
곰곰 따져 생각해 보니 어제 음력 2022년 섣달 그믐날, 아버지와 나는 꽤나 행복하였다.
설날 저녁, 떡국 한 그릇 나누고 돌아간 아들 내외에게 딸네 집에 싸들고 간 똑같은 밑반찬 전해주며 드린 내 속 기도.
바라기는 올 한 해도 지금 누리는 행복을 잊지 않고 살 수 있기를…
행복에
어느해 부터인가 내 책상 가까이에 자리잡고 있는 달력 하나, 4.16재단에서 만든 세월호 달력이다.
“이 달력은 세월호 희생자를 기억하고 세월호 가족들과 함께하기 위해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달력 속에 글 내용은 이들을 떠올리며 한 줄 한 줄 담았습니다.” – 달력을 소개하는 글이 담긴 달력 첫 장을 넘기면 <존엄과 안전에 대한 4.16인권 선언>이 펼쳐진다. 지난 해에 이어 다시 한번 꼼꼼히 새기며 읽어 본다.
선언문을 맺는 말이다.
“또한 우리는 다짐한다. 이 세계에서 벌어지는 각종 재난과 참사, 그리고 비참에 관심을 기울이고 연대할 것임을. 우리는 존엄과 안전을 해치는 구조와 권력에 맞서 가려진 것을 들추어 내고 목소리를 내는데 주저하지 않겠다. 이 선언은 선언문으로 완결되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우리가 다시 말하고 외치고 행동하는 과정 속에서 완성되어 갈 것이다. 함께 손을 잡자. 함께 행동하자.”
그렇게 넘긴 달력, 정월의 선언 <우리는 4월 16일을 잊지 않았습니다.>이다.
이 달력이 내 책상 가까이에 놓이기 까지 여러 손들을 거쳐왔을 것이다. 그 손길들 가운데 내게 가장 가까이 곳에서 <존엄과 안전에 대한 4.16인권 선언>에 함께 하는 ‘수많은 우리’중 하나가 된 ‘필라 세사모’ 벗들이 있다.
“상실과 애통, 그리고 들끓는 분노로 존엄과 안전에 관한 권리”를 위한 선언을 함께 외치더라도 결코 날카롭지 않게 삶의 넉넉한 감사를 공유하며 함께하는 ‘필라세사모’ 벗들이다.
벗들 하나 하나 얼굴들을 떠올리며 새해 기도를 드린다.
“함께 살고 함께 나누는 세상을 향해 나아가”는 벗들을 위하여.
아침, 일터로 나가는 길에 만난 해돋이 그 아름다움을 보다가 날짜를 꼽다. 어느새 새해도 열 하루 째.
아침이 어디 새해 아침 뿐이랴! 하루 하루 매일 매일 눈을 뜨는 날까지 맞이하는 아침인 것을.
바라기는 올 한 해, 내게 주어지는 시간과 순간들을 오늘 아침에 느낀 아름다움 처럼 간직할 수 있었으면….
아침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