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날

찌는 더위는 여전하지만, 어제 오늘은 제법 상쾌한 여름날이다. 해는 따갑지만 마른 바람으로 맑은 숨을 쉬는 참 좋은 날들이다.

가게 앞 공사판 일꾼들의 손길들도 어제는 제법 재게 움직였다. 날씨 탓인지 아님 바라보는 내 맘 탓인지는 모르겠다만.

연일 이어지던 비와 후덥지근한 날씨 탓에 부쩍 웃자란 뒷뜰 잡풀들을 베며 땀 흘리는 재미도 제법 쏠쏠하다. 이 또한 숨 들이 내쉬기 좋은 날씨 덕이다.

이런 날에 꽃들이 건네는 인사를 받노라면 세상 시름 잠시 놓게 된다.

한 주 사이에 호박 넝쿨들은 커다란 호박덩이들을 맺었다. 봄에 미처 먹지 못한 알감자 여나무개가 싹을 튀어 텃밭 한 구탱이에  심었었는데 오늘 한 스무 곱은 넘게 거두었다. 조물주의 시간은 늘 같은 걸음이건만 조바심은 늘 내 몫인 듯 하다. 감자와 호박의 가르침이다.

아들 며느리와 함께 저녁식사를 하다. 며늘아이를 위해 꼬리곰탕을 끓이고, 아내는 그 국물로 미역국을 끓이다. 며늘아이가 좋아하는 연어구이도 곁들이다. 고기 좋아하는 아들 녀석을 위해 스테이크와 돼지 등갈비를 굽다. 오늘 새로 시도해 본 등갈비 요리 방식은 아주 성공적이었다. 이 재미의 맛이라니!

저녁식사 중에 아들 녀석이 건넨 말이다. “아빠! 우리 아이 이름 지어 주세요!”

어쩜 올 안에 나도 진짜 할아버지가 될 모양이다.

호랑이를 위하여

오랜만에 소설을 읽었다. 제법 두꺼운 장편소설이었는데, 어제 오후에 첫 장을 넘긴 후 오늘 아침 책장을 덮기까지 손을 놓지 못하고 단숨에 읽어 내린 <작은 땅의 야수들, 영문 원제는 Beasts of a Little Land>이다.

소설의 저자 김주혜(Juhea Kim)는 내 아들 녀석보다 어린 이민 1.5세란다.

책 말미에 남긴 작가의 말이다. <… 아무런 인정이나 대가를 받지도, 기대하지도 않고 오직 조국의 독립에 일조한 나의 할아버지. 그리고 그와 같은 무명의 독립운동가들이 이 책의 시초다.>

소설은 1917년 부터  1964년에 이르는 세월, 일제강점기와 해방 후 박정희 집권 초기에 이르기 까지 혹독한 시절을 야수처럼 살아낸 주인공들의 이야기들을 평양, 경성, 상해, 제주 등을 배경으로 그려내고 있다.

내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겪어 낸 세월이었고, 1964년이면 내가 신문을 읽을 만큼 머리가 굵어졌던 때이기도 하니 오늘에 이르기까지 가히 백 년 넘는 세월을 소설과 함께 하루 밤에 겪어낸 기분이었다.

주인공 옥희의 독백을 통해 만나게 되는 젊은 작가의 삶과 죽음에 대한 시각은 늙막에 내가 겨우 붙든 것이어서 부끄러웠다.

<어쩌면 사람은, 그가 살아 있다고 생각해 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을 때에야 비로소 죽는 것인지도 모른다.>

<삶은 견딜 만한 것이다. 시간이 모든 것을 잊게 해주기 때문에. 그래도 삶은 살아 볼 만한 것이다. 사랑이 모든 것을 기억하게 해주기 때문에.>

소설을 관통하고 있는 거대한 배경은 바로 호랑이다. 작가가 그리고 있는 호랑이의 모습이다.

<우리가 호랑이를 볼 수 있는 건 호랑이가 기꺼이 제 모습을 드러내고 싶어 할 때 뿐이고, 그 이전에는 어림도 없는 소리죠.>

<상처입은 호랑이는 건강한 호랑이보다 훨씬 더 위험하다고요. 호랑이들은 영물이라 복수심을 품을 줄 압니다. 불의와 정의를 기억할 만큼 영리하고, 공격을 받아 다치면 상대를 죽일 기세로 덤빈답니다>

작가가 단 한번도 드러내지 않은 말이다만. 이야기를 읽는 내내 ‘민중’이라는 말이 내 머리 속을 떠나지 않았거니와 바로 호랑이야 말로 민중의 모습이 아닐런지.

비록 한반도에서 더는 볼 수 없다는 호랑이이지만, 정의와 불의를 가늠하고, 더불어 함께 사는 세상에서는 더할 나위없이 온순하지만, 불의를 향해서는 누구도 막지 못할 용맹을 자랑하는 민중의 모습으로 온 세계에 퍼져 사는 사람들에게서 작가는 호랑이를 만난 것은 아닐까?

젊은 작가 김주혜를 통해 나는 역사의 진보를 또 다시 굳게 믿는다.

<나는 마침내 바다와 하나였다.> 소설의 마지막 문장, 주인공 옥희의 말이다.

  • 제주 앞 바다 – 한반도의 열린 미래의 문이 되어야 마땅할 물을 2023년 오늘 더럽히고 있는 놈들에게 한 소리 지르고자  오후에 필라델피아 아트 뮤지엄(Philadelphia Museum of Art) 계단에 서서 외치다. “Stop! Fukushima nuclear wastewater”
  • 그 계단에 서서 또 외치다. “윤석열 탄핵! 김건희 구속!” – ‘참 가지 가지 한다.’는 욕도 아까운 백년 묵은 적폐들을 향하여!
  • 필라 하늘을 가로질러, 태평양과 대서양을 거쳐 한반도에 이르기까지 뜻을 같이 하는 모든 민중들이 포효하는 호랑이 큰 울음으로.

길동무- 그 은총에

생업을 내려놓는 은퇴는 아직 계획에 없다만 사회적 인간관계를 이어가는 쪽으로만 본다면 일찌감치 은퇴한 셈이다.

사람 좋아하고 술 좋아하고 이야기 좋아하고, 이런저런 세상일에 나서기 좋아했던 시절을 마감한 때는 기억이 가물 할 정도로 오래 되었다. 그런 쪽으로 보자면 조기 은퇴한 편이고, 어쩌다 사람들이 제법 모인 곳에 갈라 치면 입 꾹 다물고 있자고 다짐을 놓곤 한다.

이즈음 들어 딱히 한인들을 여럿 만나는 경우라야 필라델피아에 올라가 ‘세월호를 기억하는 필라델피아 사람들’의 모임이나 윤석열 무리들을 몰아내자는 마음으로 모이는 ‘필라 민주 동포 모임’ 뿐이다. 이 모임에서도 그저 머리 수 채우고 박수 칠 뿐이지 내가 하는 일이라고는 없다.

아내는 아직 사회적 인간관계가 나보다는 넓은 편이다. 교회 생활도 꾸준하고 한국학교 선생도 열심이고 아직은 활발히 지내는 편이다.

나는 이런 생활이 두루 편하고 좋다. 아니 편하고 좋다기 보다는 내 나이, 내 수준, 내 형편에 여러모로 내게 걸맞은 생활이라는 생각으로 산다. 비록 시늉 짓일지라도 이런 생활에 감사를 곱씹으려 노력하는 쪽이다.

내 값싼 감사의 댓가로 누리는 신의 은총은 늘 지나치게 크다. 짧은 여행길을 돌아보니 그 은총의 크기는 가히 가늠 못할 만큼 크다.

오랜만에 만나 함께 여행길을 걷고, 더불어 먹고 마시며, 어제 오늘 내일의 이야기들을 서로 고개 끄덕이며 듣고 나눌 수 있는  길동무가 있다는 사실 – 이 나이에 누릴 수 있는 그 보다 큰 은총이 또 있으랴!

그저  감사 또 감사.

-2023 퀘벡 여행 후.

<자연(自然)에>

짧은 여행 후 맞은 일상은 생각보다 분주했다. 그래도 여행을 즐긴 까닭인지 그 분주함 조차 여유로웠다. 주말에는 아들, 딸 내외까지 찾아와 마치 긴 여행이 이어지는 듯한 마음으로 시간의 흐름을 타고 논 듯하다.

여행 중 찍었던 사진들을 정리하다 절로 읊조려지는 감사, 자연(自然)에 대한 감사다.폭포와 깊은 숲 – 계곡과 물이 만들어 내는 소리와 숲과 물과 구름과 안개가 서로를 품어 만들어 내는 자태에 홀렸던 시간들, 그저 감사다.

<이 대지(大地) 자체인 자연만이 유일한 만병통치약(Nature, the earth herself, is the only panacea>이라는 Henry David Thoreau의 노래가 오늘 내 것이 된 듯.

비록 짧은 시간이었지만 내 몸과 맘을 위한 만병통치약을 흠뻑 들이키며 즐긴 여행길에 다시 감사!

신앙고백

연휴를 맞아 나섰던 나흘 짧은 여행길, 돌아오니 그저 찰나(刹那)였다. 허나 참 좋은 벗 내외와 우리 내외가 함께 했던 그 짧은 시간들을 내가 기억 하기에 따라 내겐 영원(永遠)이 될 수도 있을 터.

함께 느긋하게 먹고, 천천히 걷고, 어제 오늘 그리고 내일을 넘나드는 이야기들을 나누고, 아내들이 쇼핑하는 즐거움을 넉넉한 마음으로 기다리는 시간을 보내고 돌아오는 길, 구름 속에서 만난 신(神)에게 드리는 감사다.

보잘 것 없는 내 삶 뿐만 아니라 내가 함께 하는 가족들과 이웃들 나아가 뉴스 속에서 만나는 모든 사람들의 삶과 함께 하시는 신을 나는 믿는다. 누구에게나 공평하시고 평등하신 은총을 내리시는 신을 믿는다.

오늘 살아 숨쉬는 모든 삶 뿐만 아니라 이미 죽음의 문턱을 넘어 간 이들과 새 생명으로 태어나는 내일의 생명과 함께 하시는 신을 믿는다. 이른바 역사와 함께 하시는 신을 믿는다.

허나 신은 언제나 내가 인식하고 이해하는 방식을 넘어선 손길로 내 개인적 삶과 오늘이라는 시간을 공유하는 사람무리들과 어제와 내일을 아우르는 역사 속에서 일하심을 믿는다.

일테면 내가 생각하는 내 자신이 행한 선과 악의 행태를 가름하는 잣대로 상과 벌을 주시는 일은 절대 않는다는 사실, 또는 도둑놈 강도 나아가 타락하여 저열하고 비겁하고 무자비한 권력자들에게 벼락을 내려 일거에 몰살 시켜 버리는 일은 결코 하지 않으신다는 것을 믿는다.

신은 오직 그만의 깊고 독특한 방법으로 일하심을 믿는다.

때론 엇나간 내 삶을 향해 ‘사람되기’를 촉구하시는 그 방법대로 뉴스 속 답답한 세상사를 향해 신은 오늘도 기다리시며 그의 뜻을 헤아리도록 일깨우시는 일을 쉬지 않고 있음을 믿는다.

‘사람되기’를 일깨우시는 신의 소리를 듣고 사는 순간은 누구에게나 더할 나위 없는 축복이다.

짧은 여행에서 돌아오는 길, 구름 속에서.

오직 감사함으로.

7. 5. 23

세월

아버지날 아버지를 뵙다. 누워지내신 지 두 해 하고도 반년이 지났다. 신기하기도 하지, 욕창 하나 없이 얼굴은 아직도 맑으시다. 다 내 누이들 공덕이다.

“어 왔구나!”. 짧은 인사를 건네시는 아버지 얼굴이 환하다.  드믄드믄 건네시는 말, “이젠 내가 할 일이라고는 즐겁고 감사하게 마지막 시간 기다리는 일….”

그리고 채 십분이 지나지 않아 불편함을 토로하시는 짜증. 아무렴 내 아버지는 아직 건강하게 살아 계시다.

아들과 사위, 딸 며느리의 아버지날 전화 인사를 받다. 두어 주 후에 다들 오겠단다.

잔디를 깍다. 나는 아직도 Riding Lawn Mower가 아닌 내가 밀고 다니는 잔디 깍기 기계를 쓴다. ‘운동 삼아…’하는 내 말은 진심이다. 잔디 깍는 날이면 족히 만보는 걷기 때문이다. 물론 이즈음 잔디 깍는 날이면 ‘Riding Lawn Mower를 사야지…’하는 유혹에 빠지곤 한다. 하여 나는 아직 건강하게 살아있다.

아내에 대한 첫 기억은 내가 고등학교 이학년 때의 일이다. 아내는 중학교 일학년이었다. 물론 그 이전에도 알고는 있었다만 남는 기억은 그 때이다. 그렇게 한 동네, 한 교회에서 자랐다.

그리고 세월 흘러 아내가 한 여자로 내게 다가온 것은 그녀가 대학 삼학년 때였다.  당시 나는 백수(白手)였다.

몇 년, 짧다 할 수 없는 아슬아슬한 연애기간을 거쳐 결혼해 예까지 왔다. 그렇게 결혼 후 쌓인 세월이 또 사십 년이다. 하여 영원할 것 까진 없지만 오늘은 온전한 동지다.

2023년 아버지 날에 내가 누리는 축복이다.

아쉬움을 품지 않고 저무는 삶이 얼마나 되겠느냐만, 이제라도 후회를 되씹어야 하는 시간을 보내지는 말진저.

하여 또 꿈을 꾼다.

그렇게 읊조려보는 정희성의 시 한편.

-한 그리움이 다른 그리움에게-

<어느 날 당신과 내가/ 날과 씨로 만나서/ 하나의 꿈을 엮을 수만 있다면/ 우리들의 꿈이 만나/ 한 폭의 비단이 된다면/ 나는 기다리리,

추운 길목에서/ 오랜 침묵과 외로움 끝에/ 한 슬픔이 다른 슬픔에게 손을 주고/ 한 그리움이 다른 그리움의/ 그윽한 눈을 들여다볼 때/ 어느 겨울인들/ 우리들의 사랑을 춥게 하리/ 외롭고 긴 기다림 끝에/ 어느 날 당신과 내가 만나/ 하나의 꿈을 엮을 수만 있다면>

무릇 부부, 가족, 동지(同志)란 다 그렇지 않을까? 아니 그래야만 하지 않을까?

뒤적여보니 40년 전 우리 내외도 푸르렀었다.

*글라디올러스 꽃망울 맺힌 날에

평화 그리고 말씀에

필라델피아 아트 박물관을 찾은 건 거의 스무 해 만이다.  ‘언제 왔었더라….?’ 그 기억을 되찾는데 한참 걸렸다. 그 때는 박물관 구경이었고, 오늘은 박물관 앞 계단에서 <윤석열 탄핵 촉구>를 외치기 위함이었다.

늘 그렇듯 이민사회에서 이런 모임 머리 수는 늘 소수다. 우리 내외가 아직도 그런 소수들 가운데 하나가 될 수 있어 참 좋다.

간만에 만난 후배가 모처럼 제 자리 찾아가는 듯 했던 <민주평통자문회의>가 다시 보수화 되어가는 상황을 말하며 안타까워 했다.

그 기관에 대한 관심이 애초 없는 편이지만, 그래도 후배들이나 다음 세대들이 보이는 평화와 통일에 대한 관심과 행동에 대해 늘 박수를 아끼지 않는 내게 그의 안타까움이 크게 다가왔다.

그러다 떠올려 본 돌아가신 홍근수 목사님 그리고 그의 말씀 하나.

<“내가 세상에 평화를 주려고 온 줄 생각하지 마라. 평화가 아니라 검을 주려고 왔다.(마태 10: 34)” 다른 곳에서는 칼이라는 말 대신에 ‘불’ 또는 ‘분열’을 일으키려 왔다고(누가 13: 49-51)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칼이나 불이나 분열은 모두 같은 뜻으로 폭력적 분쟁이나 갈등, 또는 전쟁을 의미하는 말들입니다. 예수의 이 선언은 확실히 많은 기독교인들에게 거리낌이 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예수의 말입니다.

예수가 도대체 무슨 의도에서, 무슨 뜻으로 이렇게 말했는가를 물어 보아야 합니다. 그가 의미하는 것은 분명합니다. 그것은 정의에 근거하지 않는 평화란 정글의 상태일 뿐으로 그러한 상태는 평화라고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구태여 평화라면 가짜 평화일 뿐입니다. 그런 가짜 평화가 지배하는 곳에 예수의 진정한 평화의 복음이 선포될 때 거기에는 필연적으로 분열과 싸움이 일어날 수 밖에 없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정의가 없는 곳에 평화가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자유가 없는 곳에 평화가 없습니다. ………중략…….

법, 질서, 안보라는 이름으로 사람들을 억압하고 착취하면서 불평불만과 저항을 강압적 수단으로 억압하여 사회를 조용하게 만드는 것, 그것을 평화라고 선전하고 있으나 실상 그것은 평화가 아닙니다.

예수의 해방과 정의 복음은 곧 이러한 가짜 평화에 도전합니다. 그리고 이를 위협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의 해방과 정의의 복음, 사랑과 평화의 복음이 처음으로 전파되는 곳마다 칼, 분열, 싸움이 일어났고 혁명이 일어났던 것입니다.>

홍근수 목사- 예수의 복음 위에 굳게 두 발 딛고 서서 통일과 평화 운동 맨 앞 열에 서 계셨던 분. 아마 살아 계셨다면 윤석열 일당을 향해 예수의 검을 내리치셨을 터.

서울 법대 출신인 그를 생각하니 그 학교가 매양 무식, 무지, 무능 위에 비겁, 야비, 파렴치를 겸비한 윤석열 양아치 패거리들만 배출한 것은 아닌 듯.

언제나 굳건히 변함없는 후배를 위하여!

투쟁에

종종 한국뉴스들은 아주 먼 낯선 나라 이야기처럼 다가오곤 한다. 허긴 떠나온 세월이 있으니 어쩌면 그것이 아주 당연한 일일 수도 있겠다.

그 먼 거리의 간격을 좀 좁혀보려는 생각으로 몇 권의 책들을 구해 읽고 있다. 그 중 하나, 시민운동가 안성용이 쓴 <한국에서의 정치 투쟁>이다.

이른바 87년 체제의 시작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대한민국 제 6공화국 시기에 있었던 대선, 총선, 지선 등 모든 선거들의 결과와 선거를 전후한 상황과 민심, 정당과 시민사회 등의 당시 모습들을 잘 정리해 준 책이다. 그가 말하는 정치투쟁이란 곧 선거투쟁이다.

내가 온전히 겪지 않았던  시절들의 이야기라 비록 알고 있던 것이라도 이해의 깊이를 더해 주었고,  특히 교육과 입시제도의 변화에 대한 정리와 소개는 오늘의 한국사회를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뜨문뜨문 접하는 이즈음 한국뉴스들은 87년 체제 곧 제6공화국를 끝낼 때가 되었다는 생각을 굳게 하였었는데 저자 안성용은 이를 강하게 주창하고 있다.

<제7공화국 수립의 때가 왔다. 평등, 평화, 생태가 시대정신이다. 절대다수 대중을 위한 제 7공화국을 세울 때가 됐다. 위기는 새로운 대응을 통해 극복할 수 있다. 새로운 정치가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그는 몇 가지 실천과제들을 제시한다.

그의 꿈들이 이뤄지길 빈다.

다만 체제의 변화, 그것을 혁명이라 부르든 개혁이라 부르든 그 변화의 시작은 정당이나 정치에서 비롯되지는 않는다. 그의 말마따나 “자각한 대중의 투쟁이, 거리에서, 새로운 미래를 여는 일은 자주 일어나지 않지”만 언제나 큰 변혁의 시작은 거리에서 시장에서 광장에서 자각한 대중이 만들어 내는 법이다.

지금이 바로 그럴 때다. 올바른 선거투쟁을 하기 위한 진정한 투쟁의 때이다.

책장을 덮은 오늘이 마침 6월 10일이다.

낯섦에

사흘 째 낯설게 붉은 빛으로 다가오는 아침 해를 마주한다. 그리고 온종일 잿빛 하늘과 때론 타는 냄새와 함께 다가오는 탁한 공기와 함께 지내는 시간이 사흘 째다.

이런 날씨가 하루나 이틀 정도 더 이어질 것이라는 일기 예보다.

캐나다에서 일어난 산불 탓 이라는데, 그 산불의 규모가 가히 한반도 크기를 태우는 정도란다.

뉴스는 대기 오염 지수가 상당한 오염 단계에 이른다며 특히 노인들,  심장이나 폐질환 환자들은 조심하고 집 안에 머물라고 권고 한다.

제기랄! 딱 나를 두고 하는 말이다. 노인 나이에 심장과 폐에 이상이 있다는 가정의의 소견에 따라 전문의의 처방을 앞두고 있는 내가 무시할 수 없는 권고였다.

흐흐흐… 하며 혼자 작은 웃음을 웃다. 노인, 심장, 폐… 어느날 문득 나와 가깝다며 찾아 온 말들이다.

곰곰 따져보니 살아 온 모든 걸음걸음 마다 만난 것은 낯섦이었다.

그 낯설음을 벗 삼아 여기까지 이른 세월 돌아보면 그저 감사 뿐.

*** 사흘 전 아침 내 뜰에서 노니는 여우와 사슴들을 보며 순간 든 생각이었다. “참 좋다.” 놈들이 망쳐 놓는 내 작은 텃밭의 작물과 화단의 꽃들은 잠시 잊고.

무릇 모든 아침은 낯설어야 좋다.

새 시작

살며 ‘사’짜로 끝나는 직업군들은 만나지 않고 살았으면 하는 소망이 있다. 물론 직업적으로 만나지 않았으면 하는 내 바람일 뿐, 사람 자체를 말하는 것은 아니다. 일테면 판, 검사, 변호사, 의사, 박사, 목사 따위들을 말하는데, 다시 되뇌이지만, 그 직업으로 다가오는 경우를 말하는 것이지  그 직업군에 속한 사람들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판, 검사나 변호사를 일로써 내가 만나게 되는 경우란 없어야만 백 번 좋은 일이다.  물론 소시민적 삶을 사는 내게 해당하는 말이겠다만. 의사도 마찬가지다. 아프지 않으면 만날 필요가 없다. 박사 역시 다를 바 없다. 내가 학문하는 사람이 아닌데 무슨 전문 분야의 박사를 만나 시간을 보낼 특별한 까닭도 없다. 목사 역시 마찬가지다. 머리 굵어 제 생각 가질 나이를 먹은 후 신과 내 사이의 연결 고리로 누군가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버린 지 오래 되었다.

살다보니 내 가까운 가족들 가운데도 그 ‘사’짜 직업군들이 여럿 있게 되었다만 그들 업의 특성 때문에 그들과 이야기 하는 일은 없었으면 하는 바램은 여전하다.

그 바램은 여전하건만, 제 바램 대로 사는 삶이 어디 있겠나?

한 동안 꽤나 피곤 했다. 난 그게 당연한 일로 생각했다. 봄철 이후, 생업의 강도가 생각보다 조금 심했기도 했고, 인력 문제도 있었고, 무엇보다 나이 탓도 있었을 것이다. 하여 그 피로는 아주 당연한 일로 생각했었다.

그러다 달 포 전, 정기 검진을 받으러 간 가정의(醫)로 부터 들은 말이었다. “심장에 좀 문제가 있어요. 정밀진단을 받아야겠어요.”

며칠 전 정밀진단 결과를 알려 주는 가정의의 말이었다. “심장판막에 문제가 생겼어요. 이젠 심장 전문의를 만나셔야겠어요.”

그렇게 심장 전문의와 약속을 잡아 놓고 이틀 여 기분이 영 좋지 않았다.

오늘, 여느 일요일과 다름 없이 잔디를 깍고 물을 주고, 한 주 만에 꽃이 핀 열무를 ‘아뿔사’하며 거두어 김치도 담으며 환한 웃음을 짓다.

“에고, 이 눔아! 나이 따라 가는 게야~ 싫어도 의사 자주 만날 나이가 된게지!” 그 한마디 머리 속에 떠올리며.

곰곰 따져보니, 그저 감사한 일이다. 이 나이 먹도록 상용하는 약 하나 없거니와 그 흔한 바이타민 제대로  먹어 본 일도 없었으니 이젠 의사와 친해져도 불평할 일은 전혀 없어야 마땅할 일.

늦은 밤, 읊조려 보는 말, “그래 이젠 진짜 노년이다. 새로운 시작이다.”

나만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