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에

얼굴 뵈온 지가  십 수 년이 된 사촌형님이 책을 내셨단다. 흔히 노년기에 혹하기 쉬운 자전적 이야기쯤 이겠거니 했는데 자그마치 단편소설집을 내셨단다.

‘현직 의사의 메디컬 미스터리 단편집’이라는 소개 글이 덧붙여 진 소설 <몽상가의 침묵>을 단숨에 읽었다. 단숨이라고 했지만 내 통상의 독서 속도로 보아 거의 세 배의 시간을 보냈다.

의학적 지식이라고 말할 수도 없는, 사람의 몸에 대한 내 앎의 수준은 오래 전에 돌아가신 내 할아버지만도 못한지라 형님이 꼼꼼히 달아 놓은 주석과 책 뒷장에 덧붙여 놓은 정답 대조표 같은 집필노트를 번갈아 읽어야 했기 때문이다.

허나 비록 유기체로써의 인간 몸에 대한 이해 능력은 떨어지지만, 내 나름의 맘 곧 정신에 대한 깨달음은 나름 자부를 지닌 터(그래서 아직 유년이지만…). 그리 읽다 보니 사람의 몸과 맘이 결코 떨어진 게 아니라는 깨달음은 이 소설에서 얻은 첫 이득.

필시 자전적 이야기인 듯 싶은 ‘몽상가의 침묵’과 ‘오래된 이야기’는 의사로서의 고뇌와 직업에 충실하였던 삶의 자세에 대한 되새김인데 사뭇 처절하게 다가왔다.

이 책의 중심 이야기인 <아폽토시스(apoptosis)>는 그야말로 추리소설이다. 그런데 우리 모두가 지난 몇 년 사이 겪어 낸 이야기다. 하여 단숨에 읽힌다. 아니 겪어 낸 것이 아니라 겪고 있는 사건이다. 나와 아내 그리고 아들이 감염 되었던 그리고 바로 오늘 뒤늦게 딸아이가 감염되어 앓고 있는 코로나 바이러스에 대한 이야기이기에 그렇다.

침묵에 대한 물음은 오늘 내가 마주하고 있는 세상 뉴스에 대한 것이기도 하고, 전염병이 우연과 필연이 맞닿아 일어난다는 사실을 깨우치는 이야기는 가히 종교적이기도 하다.

읽으며 내가 밑줄 쳤던 몇 개 문장들이다.

<풀밭 세상에서는 번식과 죽음의 질서가 존재하고 있었다.>

<동물 세포에 적응 된 바이러스가 우연히 인체 감염에 성공한 후 인간 세포에 적응하게 되면 인간계의 전염병이 되어 사람들끼리 전염이 일어난다.>

<지금은 존재하지 않지만, 과거에도 존재했고 앞으로 존재할 미래가 침묵으로 인해 과거가 반복된다면 그들이 소유한 가치는 무엇이었을까?>

<과거를 기억하는 이유는 과거의 경험을 통해 미래를 예측하는 사고 과정에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인간을 병들게 한 것은 바이러스였지만 도시를 병들게 한 것은 강요된 침묵이었다.>

  • 내가 대학을 입학했던 그 해에 형님은 의대 본과생이었는데, 무슨 소설 이야기를 했었다. 나더러 ‘이런 소설을 써 보라’고 했는지, 아님 당신이 ‘이런 소설을 써 보고 싶다.’고 했는지는 정확치 않다. <몽상가의 침묵>을 읽다가 정확해 진 기억 하나. 개미에 대한 이야기를 했었다. <몽상가의 침묵>속에 전염병의 매개로 개미 이야기가 나온다. 50년이 넘은 옛 적 기억이라 자신은 없다만.
  • 이런저런 이유로 한 해 한 해 미루어 두었던 서울 여행, 올 한 해가 가기 전에 나서 볼 요량이다. 사촌들 얼굴도 보고 그리던 얼굴들도 볼 겸.

*** 이 책의 마지막 문장이다. <확인되지 않은 정보나 근거 없는 소문으로 의사 결정을 하기 보다는 근거중심의 의학적 견해를 찾아 보는 데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나는 이 문장을 오늘날 뉴스들을 바라보는 올바른 지침으로 읽었다. <사실에 근거한 진실을 찾으라.>고.

나비 몸짓

참 이상한 일이다. 아주 오래된 옛 기억들의 시점은 거의 정확히 꿰곤 하는데 최근 십 수년 이래 일들은 바로 엊그제 같기도 하고 가물가물 옛 일 같기도 하도 때론 기억조차 희미하기 까지 하다. 쯔쯔, 진짜 늘그막인가 보다.

내 늘그막을 확인시켜주는 이즈음의 또 다른 증상 하나, 세상 돌아가는 일에 혀 차는 때가 자꾸 늘어간다는 사실이다.

입추 (立秋) 지나 처서(處暑)가 코 앞인지라 해는 여전히 따갑다만, 이는 마른 바람에 뭉게구름조차 나른하게 낮잠 졸게 딱 맞춤인 날씨다. 하늘보고 날짜 가는 것과 날씨를 가늠했던 옛 노인들의 지혜라니!

장광선 선생님이 떠나신지 벌써 네 해 째를 맞는다 하여 그와 함께 했던 시간들을 기리려고 여남은 벗들이 함께 했다.

살며 만나 반가운 얼굴들과 함께 조촐히 그를 기린 후 돌아 오는 길에 떠오른 장선생님과의 옛 추억 하나.

생전의 그와 나는 논쟁을 몇 차례 했었다.  그 중 하나가 희망에 대한 논쟁이었다. 그는 희망은 약자들의 무기일 뿐 그것은 허망한 것이라고 하였고, 나는 그 무기로 하여 약자들이 승리할 수 있는 때가 오는 것이라고 했었다.

오늘 돌아오는 길, 생전 그가 무시로 넘나들었던 델라웨어 메모리얼 다리를 건너며 깨달은 사실, ‘그가 옳았다’.

그랬다.

자주 민주 민중 평화 통일을 이룬 세상 나아가 사람들이 서로 참 사람 되어 모두가 평등한 사람 사는 세상이라는 꿈은 따지고 보면 그의 희망이나 이상이 아니었다. 차라리 그것들은 그가 이 땅에서 살아 숨 쉬었던 순간 순간 그저 그가 살아갔던 삶의 방식이었다.

우리들의 꿈과 이상과 희망적인 세상과 점점 멀어져가기 만 하는 듯한 이즈음 세상 소식들은 따지고 보면 오늘 우리들이 살아 갈 까닭들을 깨우치고자 할 뿐이다.

장광선선생, 그가 아직 우리 가운데 살아있음이다.

늦저녁,  요 며칠 사이 내 뜰에서 동무가 된 나비 몸짓을 즐기다 떠오른 말, ‘나비 몸짓으로 태풍이 인다’고…

오늘도 함께 나비 몸짓하는 하는 벗들에게 감사를.

장광선선생을 기리며.

8. 13. 23

한恨의 사제(司祭)

이즈음엔 그리 많이 듣지 못하겠다만 내 스물 나이 시절이었던 1970년대엔 한(恨)에 대한 이야기들이 차고 넘쳤었다.

한을 품고 사는 사람들, 맺힌 한을 부둥켜 안고 죽음의 강을 건넌 사람들, 피를 토하며 쌓인 한들을 외치며 하소연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들이 이른바 유언비어(流言蜚語)가 되어 떠돌던 시절이었다.

흘러간 시간들을 돌이켜 따져보니 오늘날 가짜 뉴스들이라고 일컫는 당시의 유언비어들은 거의가 진실이었으며, 그 시절 맺힌 한들을 푸는 일은 여러 갈래 방법으로 오늘도 이어지고 있다.

당시 한에 대한 이야기들은 소설, 시 등의 문학적 방법 뿐만 아니라 사회학의 구조로 또는 철학으로 나아가 신학적 방법으로 이해해 보려는 노력들로 이어졌었다.

그런 이야기를 풀어 냈던 한 사람 가운데 서남동 목사님이 계셨다. 그는 살아 생전 한 맺힌 사람들의 응어리를 풀어 주는 일에 온 힘을 쏟았던 사람이다. 학문적으로도 그렇고 삶 속 행동으로  그를 온전히 실천하며 떠난 사람이었다.

오늘 밤, 한국 뉴스 한 꼭지를 보다가 <한의 신학>을 설파하셨던 서남동 목사님을 기린다. 그의 목소리와 그의 주창과 그의 신학적 고뇌와 그의 외침이 2023년 오늘, 한반도 남쪽 대한민국 땅에 절절하게 유효하기 때문이다.

<한(恨)이란 눌린 자 약한 자가 불의를 당하고 그 권리가 짓밟혀서 참으로 억울하다고 생각할 때, 그 호소를 들어주는 자도, 풀어 주겠다는 자도 없는 경우에 생기는 감정상태이다. 그러기에 한은 하늘에 호소하는 억울함의 소리, 무명(無名)의 무고(無告)의 민중의 소리 바로 그것이다.>

사람 조국(曺國)을 바라보는 시각들은 실로 다양할게다. 나는 그에게서 한 맺혀 오늘을 사는 반도 남쪽 민중들의 모습을 본다.

그를 다루는 숱한 이야기들 속에서 비겁, 야비, 질투, 시기, 모함, 집단 린치 등등 오늘날 반도 남쪽의 어둡고 음습한 가진 자들의  모습과 할 수 있는 한 그 가진 자들과 함께 해보려는 그저 그런 이들의 모습들을 보곤 한다.

서남동 목사님은 지식인(지식인을 자처 하는 한)은 민중이 결코 될 수 없다는 주창을 종종 하셨다.

나는 사람 조국이 뱉아 낸  단말마(斷末魔)를 통해 그에게서 오늘을 살아가는 민중을 만난다.

그와 그의 가족들의 한풀이가 이루어지는 날을 위하여! 함께 나아가는 이들과 작은 몸짓일지라도 이어갈진저.

*** 어쩌다 이리 무지, 무식에 야비함과 비겁함을 더한 사기, 도둑, 강도떼들의 전성시대가 되었는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믿는 구석 하나. 이 땅엔 언제 어디서나 자신의 한을 풀고 이웃의 한을 풀고자 애쓰며 함께 하는 한의(한풀이) 사제들이 늘 함께 한다는 사실 더하여 진실에 대한 굳건한 믿음으로.

조국 “차라리 옛날처럼 나를 끌고 가서 고문하라” < 사회 < 기사본문 – 세상을 바꾸는 시민언론 민들레 (mindlenews.com)

간밤에

어제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차에 시동을 걸 무렵, 멀쩡하던 하늘이 까맣게 변하더니만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후두둑 차창을 두드리던 빗방울이 순식간에 폭우로 변하더니 하늘 꼭대기에서 쏟아져 내리는 폭포로 변했다. 거센 바람과 번개와 천둥은 운전대를 잡은 내 손과 가히 한 치 앞이 가물가물한 차창 밖을 바라보는 내 두 눈에 온 힘을 모으게 했다.

평소 20분 정도 걸리면 족한 거리를 두 배 넘게 시간을 보내는 동안 비와 바람과 번개와 천둥이 이어졌다. 동네 어귀에 다다르자 커다란 나무가 쓰러져 길을 막고 있었다. 간신히 돌아서 집에 도착하니 내 집은 물론 이웃 집 모두 불빛이 없다.

번쩍하는 번개 빛과 천둥소리 거센 빗소리가 이어졌지만 전기가 나간 집안은 어둡고 고요했다. 무사히 집에 돌아왔다는 안도로 아내와 나는 저녁 식사도 잊은 채 그 어둡고 고요함을 한동안 즐겼다.

전기가 다시 돌아올 기미는 없고 빗줄기가 잠시 잦아 들어, 저녁을 때울 요량으로 뒷뜰에 나가 그릴에 라면을 끓이던 중  구름 사이 지던 해가 반짝이더니만 무지개가 떳다.

허나 전기는 밤새 돌아오지 않았다.

간만에 촛불 속에서 아내와 내가 나눈 뚱딴지 연가(戀歌).

“혹시 한국 나가면 뭐 먹고 싶어?”라고 묻는 아내. 그리고 이어진 내 대답. “글쎄…. 선지 해장국…. 연탄불에 구운 얇게 저민 돼지 갈비….” 그래, 나는 이젠 가 보았자 만날 수 없는 내 고향 신촌을 그리워 하고 있는 것이었다.

오늘 아침까지 전기는 돌아 오지 않았고, 가게로 나가는 길목 곳곳에 엊저녁 빗줄기와 바람과 번개와 천둥과의 싸움에서 산화한 나무들이 길을 막고 누워 있는 까닭에 돌고 돌아 일터에 이르렀다.

만 하루 만에 전기가 돌아왔고, 신문은 하루 사이 변한 이웃들의 소식을 사진으로 전하고 있다.

돌이켜 보면 간밤 사이 참 많은 것들이 변했다. 난 그걸 미처 모른 체 하며 여기까지 왔고…. 쯔쯔쯔.

죽음에

햇살은 여전히 따갑지만 마른 바람 불고 기온도 뚝 떨어져 바깥 일하기 참 좋은 날이었다. 오전에 그리 땀 흘리지도 않고 잔디 깍고 뜰 일을 하였는데 만 이천보를 넘게 걸었노라고 셀폰 앱이 알려준다. 어찌 보면 참 이상한 세상에서 살고 있다.

오후엔 오랜만에 뜰에 나가 앉아 책을 읽었다. 새소리, 바람소리, 요령소리 들으며 책 속에서 노니는 일은 내가 누리는 사치 중 하나이다.

손에 들고 미처 책장을 덮지 못했던 임철규 선생이 쓴 <죽음>이었다. 이 책을 손에 든 계기는 책을 소개하는 글 때문이었다.

<저자 임철규 명예교수가 ‘죽음’이라는 주제로 이 책을 쓰게 된 직접적인 동기는 2009년 5월 23일 대한민국 제16대 대통령이었던 노무현의 자살이었다. 2009년 당시에도 이미 칠순의 나이였던 저자는 봉하마을 영전에서 그를 위한 글을 바치겠노라고 약속하고, 방명록에 “아름다운 죽음”이라는 말을 남겼다고 한다.>

1939년생인 저자가 지금의 내 나이 즈음에 쓴 글이다.

저자가 책머리에 소개한 <나는 이 책에서도 ‘죽음’이라는 주제를 문학, 역사, 신화, 신학, 철학, 정신분석학 등, 여러 영역에서 넓게 조명했다.>는 말처럼 이 책은 죽음에 대해 천착했던 많은 이들의 생각들을 소개하고 있다.

내가 읽으며 가장 많이 밑줄을 그으며 음미했던 곳은 제4장 ‘기억, 망각, 그리고 역사 – 아우슈비츠, 그리고…’이다.

밑줄 그었던 한 대목이다.

<역사는 한때 일어난 사건이다. 기억은 한때 일어난 사건이 현재의 개인이나 집단에 하나의 ‘흔적’으로 남아 있는 것을 말한다. 현재의 개인이나 집단에 일종의 역사의 ‘상처’로 남아 있는 것이 기억의 본질이라면, 깊은 상처로 남아 있는 기억의 ‘흔적’, 그 ‘트라우마’는 어떤 형식으로든 치유되지 않으면 안 된다.>

이즈음 마주하는 뉴스들을 생각하며 곱씹게 된 대목이었다.

그러나 저자가 이 장(章)을 마감하는 마지막 문장은 내가 수긍할 수 없었다.

<치유되지 못한 역사의 비극과 더불어 내면 깊이 자리 잡고 있는 기억의 폭력성은 인간의 역사를 계속 비극으로 끌고 갈 수 밖에 없다. 역사의 카타리시스는 없다.>라는 것이었는데, 저자가 ‘기억’과 ‘망각’을 지나치게 대립적 언어로 이해한 것이 아닐까 하는 의구 때문이었다.

이 책 마지막 문단에 나오는 문장들이다.

<지금껏 우리는 ‘죽음’이라는 벅찬 주제를 접근이 가능한 하나의 문제로 다루었다. 하지만 엄밀한 의미에서 죽음은 ‘문제’의 영역에 속하지 않는다. -중략- 죽음은 ‘문제’가 아닌 ‘신비’의 영역에 속한다.  -중략- 죽음은 산 자가 전혀 알 수 없는 불가사의한 ‘신비’ 그 자체다.>

<우리의 직접적인 경험의 대상인 삶에 대해 이야기하고 삶에 대해 생각하는 것이야말로 더 ‘현명한 것’인지 모른다. 삶을 알려고 하는 것만으로도 너무 벅찬 일이 아닌가.>

암만! ‘오늘’인 것을.

좋은 날, 잘 쉬었다. 내일은 월요일, 나는 또 손님들 빨래하러 세탁소로 나간다. 감사함으로.

살며, 기억할 것은 기억하고 잊을 것은 잊으면서.

주말에

폭염 속에서 한 주간을 보냈다. 그래도 감사한 것은 나이에 맞게 내 노동 환경이 놀랄만치 좋아졌다는 사실이다. 해마다 이맘 때이면 온 몸이 소금에 절여진 채로 파죽이 되어 집으로 돌아오곤 했다. 바깥 찌는 열기에 더해 보일러 열로 찜통이 되어버린 내 세탁소의 여름은 늘 그랬었다.

한 오년 되었나보다. 이젠 내 세탁소엔 에어컨이 빵빵 돌아간다. 물론 보일러 열기와 스팀 그 끈끈한 더위를 완전히 식혀줄 만큼 쾌적한 노동 환경은 아니다만, 그래도 땀 흘리며 집으로 돌아오지는 않는다.

한 주간 함께 노동을 끝낸 아내가 물었다. “벌써 한 주가 또 지났네! 뭔 좋은 계획 없으신지?”

“글쎄…필라에 올라가 장(場)도 보고 저녁이나 먹고 옵시다.”하는 내 응답과 함께 나섰던 길이다.

그렇게 장도 보고 우리 동네 음식점에서는 맛볼 수 없는 맛난 한식 한상으로 배 채우고 돌아 오는 길, 하늘이 까매지더니만 폭우가 내려 쏟기 시작했다. 와이퍼를 최대 속도로 올려 차창을 내려치는 빗물을 거두어도 앞이 잘 보이지 않을 지경이었다.

그렇게 한 십 오분 여 운전을 하였을까? 비가 조금 잦아 들더니만 무지개가 눈 앞에 높은 건물에서  저쪽 하늘 끝까지 크게 다리를 놓았다.

그리고 겪은 신기한 경험, 온종일 붉게 달구어진 해가 하루의 마지막 열정으로 쏟아내는 빛으로 내 눈을 가려 선글라스를 끼게 하였는데 비는 여전히 쏟아져 차창 와이퍼는 쉬지 않고 돌아가야만 했던 일이다.

남들 경험이야 모를 일이다만, 내가 운전을 한 이후 처음 겪는 일이었다.  햇살이 부시어 선글라스를 끼었는데   동시에 비가 차창을 가리며 내려 와이퍼를 돌려야 하는 상황이 길게 내게 남았다.

무릇 삶이 그런 것 아닐까 하는 생각으로.

삶에서 새로움을 느끼게 하는 신께 감사를.

좋은 날

찌는 더위는 여전하지만, 어제 오늘은 제법 상쾌한 여름날이다. 해는 따갑지만 마른 바람으로 맑은 숨을 쉬는 참 좋은 날들이다.

가게 앞 공사판 일꾼들의 손길들도 어제는 제법 재게 움직였다. 날씨 탓인지 아님 바라보는 내 맘 탓인지는 모르겠다만.

연일 이어지던 비와 후덥지근한 날씨 탓에 부쩍 웃자란 뒷뜰 잡풀들을 베며 땀 흘리는 재미도 제법 쏠쏠하다. 이 또한 숨 들이 내쉬기 좋은 날씨 덕이다.

이런 날에 꽃들이 건네는 인사를 받노라면 세상 시름 잠시 놓게 된다.

한 주 사이에 호박 넝쿨들은 커다란 호박덩이들을 맺었다. 봄에 미처 먹지 못한 알감자 여나무개가 싹을 튀어 텃밭 한 구탱이에  심었었는데 오늘 한 스무 곱은 넘게 거두었다. 조물주의 시간은 늘 같은 걸음이건만 조바심은 늘 내 몫인 듯 하다. 감자와 호박의 가르침이다.

아들 며느리와 함께 저녁식사를 하다. 며늘아이를 위해 꼬리곰탕을 끓이고, 아내는 그 국물로 미역국을 끓이다. 며늘아이가 좋아하는 연어구이도 곁들이다. 고기 좋아하는 아들 녀석을 위해 스테이크와 돼지 등갈비를 굽다. 오늘 새로 시도해 본 등갈비 요리 방식은 아주 성공적이었다. 이 재미의 맛이라니!

저녁식사 중에 아들 녀석이 건넨 말이다. “아빠! 우리 아이 이름 지어 주세요!”

어쩜 올 안에 나도 진짜 할아버지가 될 모양이다.

호랑이를 위하여

오랜만에 소설을 읽었다. 제법 두꺼운 장편소설이었는데, 어제 오후에 첫 장을 넘긴 후 오늘 아침 책장을 덮기까지 손을 놓지 못하고 단숨에 읽어 내린 <작은 땅의 야수들, 영문 원제는 Beasts of a Little Land>이다.

소설의 저자 김주혜(Juhea Kim)는 내 아들 녀석보다 어린 이민 1.5세란다.

책 말미에 남긴 작가의 말이다. <… 아무런 인정이나 대가를 받지도, 기대하지도 않고 오직 조국의 독립에 일조한 나의 할아버지. 그리고 그와 같은 무명의 독립운동가들이 이 책의 시초다.>

소설은 1917년 부터  1964년에 이르는 세월, 일제강점기와 해방 후 박정희 집권 초기에 이르기 까지 혹독한 시절을 야수처럼 살아낸 주인공들의 이야기들을 평양, 경성, 상해, 제주 등을 배경으로 그려내고 있다.

내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겪어 낸 세월이었고, 1964년이면 내가 신문을 읽을 만큼 머리가 굵어졌던 때이기도 하니 오늘에 이르기까지 가히 백 년 넘는 세월을 소설과 함께 하루 밤에 겪어낸 기분이었다.

주인공 옥희의 독백을 통해 만나게 되는 젊은 작가의 삶과 죽음에 대한 시각은 늙막에 내가 겨우 붙든 것이어서 부끄러웠다.

<어쩌면 사람은, 그가 살아 있다고 생각해 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을 때에야 비로소 죽는 것인지도 모른다.>

<삶은 견딜 만한 것이다. 시간이 모든 것을 잊게 해주기 때문에. 그래도 삶은 살아 볼 만한 것이다. 사랑이 모든 것을 기억하게 해주기 때문에.>

소설을 관통하고 있는 거대한 배경은 바로 호랑이다. 작가가 그리고 있는 호랑이의 모습이다.

<우리가 호랑이를 볼 수 있는 건 호랑이가 기꺼이 제 모습을 드러내고 싶어 할 때 뿐이고, 그 이전에는 어림도 없는 소리죠.>

<상처입은 호랑이는 건강한 호랑이보다 훨씬 더 위험하다고요. 호랑이들은 영물이라 복수심을 품을 줄 압니다. 불의와 정의를 기억할 만큼 영리하고, 공격을 받아 다치면 상대를 죽일 기세로 덤빈답니다>

작가가 단 한번도 드러내지 않은 말이다만. 이야기를 읽는 내내 ‘민중’이라는 말이 내 머리 속을 떠나지 않았거니와 바로 호랑이야 말로 민중의 모습이 아닐런지.

비록 한반도에서 더는 볼 수 없다는 호랑이이지만, 정의와 불의를 가늠하고, 더불어 함께 사는 세상에서는 더할 나위없이 온순하지만, 불의를 향해서는 누구도 막지 못할 용맹을 자랑하는 민중의 모습으로 온 세계에 퍼져 사는 사람들에게서 작가는 호랑이를 만난 것은 아닐까?

젊은 작가 김주혜를 통해 나는 역사의 진보를 또 다시 굳게 믿는다.

<나는 마침내 바다와 하나였다.> 소설의 마지막 문장, 주인공 옥희의 말이다.

  • 제주 앞 바다 – 한반도의 열린 미래의 문이 되어야 마땅할 물을 2023년 오늘 더럽히고 있는 놈들에게 한 소리 지르고자  오후에 필라델피아 아트 뮤지엄(Philadelphia Museum of Art) 계단에 서서 외치다. “Stop! Fukushima nuclear wastewater”
  • 그 계단에 서서 또 외치다. “윤석열 탄핵! 김건희 구속!” – ‘참 가지 가지 한다.’는 욕도 아까운 백년 묵은 적폐들을 향하여!
  • 필라 하늘을 가로질러, 태평양과 대서양을 거쳐 한반도에 이르기까지 뜻을 같이 하는 모든 민중들이 포효하는 호랑이 큰 울음으로.

길동무- 그 은총에

생업을 내려놓는 은퇴는 아직 계획에 없다만 사회적 인간관계를 이어가는 쪽으로만 본다면 일찌감치 은퇴한 셈이다.

사람 좋아하고 술 좋아하고 이야기 좋아하고, 이런저런 세상일에 나서기 좋아했던 시절을 마감한 때는 기억이 가물 할 정도로 오래 되었다. 그런 쪽으로 보자면 조기 은퇴한 편이고, 어쩌다 사람들이 제법 모인 곳에 갈라 치면 입 꾹 다물고 있자고 다짐을 놓곤 한다.

이즈음 들어 딱히 한인들을 여럿 만나는 경우라야 필라델피아에 올라가 ‘세월호를 기억하는 필라델피아 사람들’의 모임이나 윤석열 무리들을 몰아내자는 마음으로 모이는 ‘필라 민주 동포 모임’ 뿐이다. 이 모임에서도 그저 머리 수 채우고 박수 칠 뿐이지 내가 하는 일이라고는 없다.

아내는 아직 사회적 인간관계가 나보다는 넓은 편이다. 교회 생활도 꾸준하고 한국학교 선생도 열심이고 아직은 활발히 지내는 편이다.

나는 이런 생활이 두루 편하고 좋다. 아니 편하고 좋다기 보다는 내 나이, 내 수준, 내 형편에 여러모로 내게 걸맞은 생활이라는 생각으로 산다. 비록 시늉 짓일지라도 이런 생활에 감사를 곱씹으려 노력하는 쪽이다.

내 값싼 감사의 댓가로 누리는 신의 은총은 늘 지나치게 크다. 짧은 여행길을 돌아보니 그 은총의 크기는 가히 가늠 못할 만큼 크다.

오랜만에 만나 함께 여행길을 걷고, 더불어 먹고 마시며, 어제 오늘 내일의 이야기들을 서로 고개 끄덕이며 듣고 나눌 수 있는  길동무가 있다는 사실 – 이 나이에 누릴 수 있는 그 보다 큰 은총이 또 있으랴!

그저  감사 또 감사.

-2023 퀘벡 여행 후.

<자연(自然)에>

짧은 여행 후 맞은 일상은 생각보다 분주했다. 그래도 여행을 즐긴 까닭인지 그 분주함 조차 여유로웠다. 주말에는 아들, 딸 내외까지 찾아와 마치 긴 여행이 이어지는 듯한 마음으로 시간의 흐름을 타고 논 듯하다.

여행 중 찍었던 사진들을 정리하다 절로 읊조려지는 감사, 자연(自然)에 대한 감사다.폭포와 깊은 숲 – 계곡과 물이 만들어 내는 소리와 숲과 물과 구름과 안개가 서로를 품어 만들어 내는 자태에 홀렸던 시간들, 그저 감사다.

<이 대지(大地) 자체인 자연만이 유일한 만병통치약(Nature, the earth herself, is the only panacea>이라는 Henry David Thoreau의 노래가 오늘 내 것이 된 듯.

비록 짧은 시간이었지만 내 몸과 맘을 위한 만병통치약을 흠뻑 들이키며 즐긴 여행길에 다시 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