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오월에

저마다 잊지 못하고 기억하는 날들이 있을게다. 자신과 가족들의 기념일부터 자신만의 특별한 경험을 잊지 못하는 날들, 아니면 이런저런 공휴일들까지 평범한 여느 날과는 다른 날들 말이다.

내 경우엔 나와 가족들의 기념일들을 제외하고 남는 특별한 날들로는 오래된 햇수로 따져 , 7월 4일, 10월 17일, 10월 26일, 5월 18일, 4월 16일 그리고 10월 29일 등이다.

1972년 7월 4일, 대학 일학년 첫 방학을 맞은 나는 아버지의 고향인 경기도 용인군 포곡면 유운리 작은 할아버지 댁에서 트랜지스터 라디오를 통해 이른바 7.4 남북 공동선언 소식을 들었었다. 그 무렵부터 내 아버지의 고향에서 전통은 사라지고, 돈(돈錢과 돈豚)이 모두를 삼켜 버렸다.

그해 10월 17일은 박정희 유신이 선포된 날로 당시 대학 일학년 이었던 내게 큰 충격으로 다가왔던 날이었다. 학교 앞은 바리케이드를 치고 기관단총을 앞세운 군인들이 차지하고 있었고 그렇게 내 대학 일년이 끝나던 날이었다.

몇 해가 지난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가 밀실에서 죽고 내 스무 시절 젊은 인생은 또 한번 바뀌었다. 다니던 학교에서 쫓겨나 다소 엉뚱하게 신학 공부를 하며 작은 출판사를 하고 있던 나는 다시 학교로 돌아가 대학 마지막 학년을 시작할 수 있었다.

그리고 80년 5월 18일,  다시 학교로 부터 도망하는 세월이 시작되었고, 그 잊지 못할 오월항쟁과 참사를 건너 건너 그 당시 이른바 유언비어를 통해 들으며 몸을 떨었고, 이내 잊지 못할 치도곤을 당했었다.

한참 후 환갑 지난 나이가 된 2014년 4월 16일, 삼백명이 넘는 시퍼렇게 젊은 아이들이 산 채로 바다에 수장되는 모습을 멀리 이 미국 땅에서 생중계로 바라보는 충격을 겪었다.

지난해 10월 29일은 아무리 생각해도 믿을 수가 없다. 이태원은 내 어릴 적 추억들이 묻혀 있는 곳이다. 한남동 외가와 막내 이모의 신혼방 이태원은 외사촌들과 뛰며 놀던 곳이었다. 참사가 일어난 골목의 면적과 그 안에 있었던 사람들의 숫자는 내가 도저히 이해 불가능한 것이었다.

하여 내가 잊지 못하는 날들이 되었다.

따져보니 내가 한국에서 살았던 날들보다 여기서 산 날들이 훨씬 많다만, 내가 잊지 못하는 날들은 모두 한국에서 있었던 날들이다. 어쩌랴! 점점 더 그리 되는 것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점점 더 이해 불가능한 사회로 빠져드는 듯한 이즈음의 한국사회를 바로 알아보고자 몇 권 읽고 있는 책들 중 하나, 검사 진혜원이 쓴 책 <진실과 정의에 대한 성찰>에서 건진 한마디.

진혜원 역시 인용한 말이다만, ”종교란 인간이 자신의 본성을 반영하는 방법이고, 신은 인간의 자기의식일 뿐”이라는 사회학자 루트비히 포이어마흐의 깨달음.

원컨대 조금씩 조금씩, 한걸음 한걸음씩 만이라도 사람다운 본성을 찾는 믿음과 이념과 시대정신을 갈구하는 사회로 나아가기를, 이왕에 만드는 신이라면 이웃과 더불어 함께 사는 신상을 만드는 사회가 되어지기를 비는 마음으로.

다시 맞는 5월 18일에.

선입견(先入見)에

누구에게나 어느 정도의 선입견(先入見)은 있게 마련이고, 강도의 차이일 뿐 고집 역시 너나 없이 품고 살기 마련이다.

그 선입견과 고집이 내게 이르면 좀 센 편이다. 그 세기가 점점 강하지는 것을 느낄 때면  이젠 확실히 늙어가는 나를 마주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하곤 한다.

가게 손님 가운데 이따금 내 가게와 가까운 경쟁업소의 흉을 보며 들어서는 이들이 있다. “저 쪽 세탁소에 다녔는데 이런 저런 문제들이 많아서 너희 가게를 찾아왔다”는 등의 수다를 떨며 들어오는 손님들인데, 난 이런 손님들이 참 마뜩잖다.

경험상 이런 류의 손님들은 쉽게 다른 경쟁 업소가 가서 똑같이 내 가게 흉을 볼 확률이 높을 것이라는 내 선입견 탓이다.

오늘 이른 아침에 밀린 한국 뉴스를 보며 떠올려 본 생각이었는데, 일반적으로 내가 잘 알지 못하는 이유로 누군가가 이른바 언론의 뭇매를 맞을 때면 그 뉴스들의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내 잣대는 바로 이런 내 선입견이다.

그런 뉴스들을 판단하는 내 잣대는 그 뭇매를 드는 사람들이 지난 세월에 던졌던 말들과 쌓아 온 행적들을 돌아보는 일이다. 하면, 답은 아주 명쾌 해진다. 내 고집과 선입견이 주는 명쾌함이다.

내가 노무현, 노회찬, 조국 이라는 이름에 애틋함과 함께 그들의 꿈을 이해하는 까닭은 그들에게 뭇매를 가하거나 때론 이용하는 이들의 행적이나 말들이 너무나 비상식적 모습이었음을 느낄 때가 많기 때문이다.

오늘 본 김남국이라는 젊은 정치인의 뉴스 역시 마찬가지다. 나는 그를 잘 모르지만 그에게 뭇매를 가하는 이들과 언론들의 지난 행태를 따져보니 그를 응원해야 마땅할 듯 하다.

물론 내 고집과 선입견 탓이겠지만, 내겐 그게 옳다.

* 어머니 주일, 돌아가신 두 어머니 찾아가 잠시 인사 드리다. 아들 며느리 딸 사위 인사를 받다. 우리 내외 오늘의 삶은 아무런 선입견 없이 그저 행복하다.

**뜰일을 하다가 땀을 식히며 바라보는 뜰 풍경에 느끼는 만족과 행복함이라니!

*** 내 어릴 때 선생님 한 분이 말씀하셨었다. “난 내 집에서 한강을 바라보며 누리는 행복이 참 미안할 때가 많다네….”

  • 삶은 늘 미안함과 아쉬움의 연속이지만 내 선입견과 고집은 날이 갈수록 굳어진다. 하여 내 뜰에 감사를…

기다림

먹고 사는 일과 좋아서 하는 일을 차이는 사뭇 크다. 먹고 사는 일에서 오는 피로는 쉽게 오는 법이지만, 좋아서 하는 일일 땐 그 느낌이 더디거니와 때론 그 피로 조차 좋을 때도 있다.

날 좋은 휴일, 땀 흘리며 뜰 일을 하는 날이면 그렇게 좋을 수가 없다. 한 주 내내 가게 일에 치어 ‘아이고 좀 쉬자!’ 했다가도, 쉬는 날 잔디와 잡풀 깍고 꽃나무 가꾸며 땀 흘리리다 보면 이 나이에 내가 누리는 행복에 그저 감사가 넘쳐나곤 한다.

수선화는 이미 지고 튜립도 끝물이다. 글라디올러스 등 여름 화초들이 꽃망울을 머금고 있다. 어느새 봄이 기울고 여름으로 들어서고 있다.

꽃망울을 한참 들여다보다 떠 오른 말,  ‘기다림’ 이었다.

그리고 보니 ‘미세스 킴 라이락’이라는 이름에 홀려 심었던 라이락 꽃이 올해 활짝 피었다. 아내는 자기 이름에 자신의 성씨인 ‘이(Lee)’을 미들 네임으로 쓴다만, 통상 ‘미세스 킴’으로 불리운다. 삼년 만에 핀 꽃인데 따져보면 큰 기다림도 아니다. 우리들이 살아 온 세월에 비한다면.

산다는 것은 무릇 기다림의 연속 아닐까?

저녁 나절 텔방 친구들의 소식, <친일파 매국노 윤석열 탄핵 촉구>모임 안내였다.  화초나 꽃나무나 텃밭 채마 가꾸는 일은 늘 잡초와의 싸움이 가장 큰 일이다. 그 싸움을 잘 이겨내며 기다리는 일이 사람사는 일이고 역사 아닐까?

‘어쩌다 거의 광기(狂氣)에 사로잡힌 윤석열 무리들이 권력을 행사하는 지경까지 이르렀을까?’하는 물음에 내가 스스로 내려보는 답, “쯔쯔,,, 제 때 잡풀 뽑아내 버리지 못한 까닭…”

허나 사람살이 이어 온 이야기들, 곧 역사를 되돌아 볼 양이면 이내 깨닫게 되는 사실인 동시에 진실 하나, 기다림으로 꽃망울 품고 사는 이들이 꾸는 꿈으로 시간은 이어진다는…

이 나이에 함께 꿈을 꾸는 벗들과 연을 맺고 살 수 있음에 그저 감사하며 <친일파 매국노 윤석열 탄핵 촉구>모임에 함께 할 일이다.

먹고사는 일이 아니라 좋아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이므로.

위로에

*단지 나이 탓으로 돌릴 수 없는 과한 한 주간 노동을 마치고 돌아온 저녁,  ‘아이고! 이젠 진짜 일을 접을 나이???…’라는 생각이 온통 머리 속에 꽉 찬 오늘 저녁, 문득 내 눈에 박힌 창밖 저녁 하늘이 보내던 위로 한마디다.

“에고, 이 사람아! 뭘 또 그리 엄살을… 나를 보게나! 지난 한 주 동안 나의 이런 얼굴 볼 수 없었을 걸. 나도 계속 울상이었지. 비 내리고 구름 끼고. 생각해 보게! 맑은 날 그리 많지 않어! 나를 보고 어께 펴고 큰 숨 한 번 쉬라고!”

** 어제 늦은 밤에 넘겼던 책 갈피 속 이야기 하나.

‘가난이나 굴욕 속에서 삶을 마치는 것 밖에는 다른 기회를 거의 갖지 못하는 민중이 있다. 그 삶의 시작 부터가 운명의 예고를 표시한다.’ – 토마스 페인(Thomas Paine)의 생각을 해설하는 조국 선생의 책 <조국의 법고전 산책> 속 이야기다.

물론 나는 그런 민중과는 거리가 먼 축복된 삶을 누려온 편이다.

다만 민중의 관심에 대한 흉내라도 끊이지 않아야지 하는 생각으로 오늘 밤 토마스 페인의 상식(Common Sens)을 읽다.

그 상식의 첫 머리에 나오는 이야기.

<모든 국가안에 사회적 단계는 축복입니다만 정부는 그렇지 않습니다. 무릇 정부란 그것이 비록 최상의 정부라 할지라도 필요악일 뿐입니다. 정부가 최악일 경우에는 참을 수 없는 존재가 되는 것이 바로 정부입니다. Society in every state is a blessing, but government, even in its best state, is but a necessary evil; in its worst state an intolerable one.>

이즈음 이어지는 참담한 뉴스들에 대한 위로.

*** 사위라는 이름으로 살았던 게 그리 먼 일도 아닌데 어느새 내가 장인으로 불리는 처지가 되었다.

내 사위의 독특한 점 하나, 나이에 걸맞지 않게 필름 카메라 애호가이다.

그가 사진 찍기는 좋아 하지만 찍히기는 몹시 싫어하는 내 모습을 담아 보냈다.

그게 참 좋았다. 크게 고마왔다.

쉽게 잊고 살았던 내 위로의 시간들을 담아 낸 사진이었으므로.

위로에.

혁명(革命)에

사흘 내리 비가 내린다. 그 비 덕에 모처럼 차분하게 바로 앉아 책 한 권에 빠졌다. 종교학자 카렌 암스트롱(Karen Amstrong)이 쓴 <축의 시대>다.

‘위대한 변화(The Great Transformation)’라는 책 제목을 ‘축의 시대(Axial-Age)’로 번역한 역자(譯者)의 생각이 그럴 듯 했다.

인도, 중국, 그리스, 이스라엘, 중동을 오고 가는 약 3600년 전부터 2000년 전(이슬람교 생성까지 조금 다루었으니 서기 600여년 까지 연장 한다면) 아주 오랜 옛날 약 이 천 여년  동안 사람살이 생각의 변화를 이야기 한 책인데 그야말로 흥미진진하다.

그 때로 부터 멀리는 3600년이 지났고 가까이는 1400년이 지난 오늘, 2023년 사람들의 생각이 그 때로 부터 한 치도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하는 책이기도 한데 참 재밌다.

아주 짧게 몇 문장으로 기술(과학)의 혁명을 이야기하는 최근 200년 동안의 변화 곧  ‘제2의 축의 시대’를 소개하는 것을 빼고는 예나 지금이나 사람살이 크게 변한 게 없다는 것을 깨닫게 한 책이다.

그 오래 전에 사람들의 생각(철학, 종교 등)이 사람 답게 바뀌어 사람살이 축을 바뀌게 한 결정적 요인은 바로 “공감” 곧 ‘사람에 대한 공감’, ‘이웃에 대한 공감’ 또는 ‘약자에 대한 공감’이라고 나는 읽었다.

그리고 또 하나는 “기억” 곧 사람살이 되새김 (저자는 ‘자기비판”이라고 명명했다만) 이 오늘을 사는 내게 필요하다는 가르침이다.

무엇보다 책을 읽으며 이즈음 뉴스들에 답답한 가슴을 뻥 뚫리게 하는 시원함을 맛보았다.

사람살이 답답해 보여도 결국 옳은 길로 나아가게 마련이다. 그게 역사, 곧 사람살이다. 그 역사(歷史)를 역사(役事)하는 신을 믿고 살아가는 내 삶을 부추이게 하는 책이었다. 책을 덮으며 기쁜 마음으로 카렌 암스트롱(Karen Amstrong) 그녀의 책 <마음의 진보>를 주문하다.

내리 사흘 내리는 비가 앞 뜰 꽃잎들을 다 떨꾸었다. 꽃을 피우는 나무들은 유세를 떨며 제 존재를 알린다만, 사철 푸른 나무도 조용히 새 순 돋아 옷을 갈아 입는다.

혁명(革命)에.

찔레꽃

노래꾼 장사익이 부르는 소리를 들으며 뜰 일을 하다가 생각났던 내 할아버지 그리고 찔레꽃.

소리꾼 장사익의 노래를 만난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은 아니다. 처음 그의 소리를 듣던 날부터 이제까지 나는 심심찮게 그를 즐기곤 한다.

내 할아버지는 평생 양복이라곤 입어 본 적 없으신 한량이셨다. 겨울철 솜 두둑히 넣은 한복과 두루마기, 여름철 베와 모시 적삼 할아버지의 옷들, 그 수발은 오로지 내 어머니의 몫이었다.

반주(飯酒)로 30도 소주 한 병과 고봉밥을 드셨던 내 할아버지와 어머니는 상극(相剋)이셨다. 아버지는 그 사이에서 늘 어정쩡 하셨다.

내가 머리 굵어진 후 술을 입에 대기 시작할 무렵부터 아버지는 질색을 하셨고, 어머니는 할아버지 꼭 빼 닮은 놈이라고 하셨었다. 할아버지는 ‘넌 누구 닮아 그리 몸이 약하냐?’며 당신과 다른 나를 보며 혀를 차곤 하셨다.

그 할아버지 마지막 여정을 온전히 함께 하셨던 어머니와 아버지, 거의 오십 년 전 일이니 그 때 무슨 노인 시설이나 병원 신세를 꿈이라도 꿀 수 있었겠나? 생각수록 난 어머니 아버지의 흉내 조차 못하고 살아온 것 같다.

그리고 내 할아버지. 한 잔 술에 얼큰 하셔서 두루마기 자락 툭툭 어깨 춤 가볍게 덩실 거리시며 한자락 소리 뽑아 내시던 이, 나는 장사익의 소리를 들으면 늘 내 할아버지 생각이 떠오른다.

오늘, 뜰 일을 하며 장사익이 부르는 찔레꽃을 따라 흥얼거렸다.

“하얀꽃 찔레꽃/ 순박한꽃 찔레꽃/ 별처럼 슬픈 찔레꽃/ 달처럼 서러운 찔레꽃/ 찔레꽃 향기는 너무 슬퍼요/ 그래서 울었지 목놓아 울었지/ 찔레꽃 향기는 너무 슬퍼요/ 그래서 울었지 밤새워 울었지

아- 찔레꽃처럼 울었지/ 찔레꽃처럼 노래했지/ 찔레꽃처럼 춤췄지/ 찔레꽃처럼 사랑했지/ 찔레꽃처럼 살았지/ 찔레꽃처럼 울었지/

당신은 찔레꽃/ 찔레꽃처럼 울었지”

내 뜰은 이제 노란색에서 붉은 색으로 옷을 갈아 입는 중이다.

장사익은 찔레꽃을 노래하며 울음을 사랑으로 바꾸어 놓는다.

내 어머니와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더욱 사랑으로 다가오는 밤이다.

오늘은 4월 16일, 아픔을 사랑의 투쟁으로 바꾸며 오늘을 사는 이들을 생각해 보는 밤이다.

내가 참 좋아하는 자연을 노래하는 철인 소로우{Henry David Thoreau)의 혁명적 명성을 일깨워 주는 조국의 <법고전 산책> 몇 장을 넘기며.

찔레꽃에.

4.16.23

*** 처음으로 개나리 꺾꽂이를 하며 깨달은 사실 하나, 개나리 가지속은 대나무처럼 비어 있다는… 도대체 난 뭘 알고 살아 온건지?

봄 밤

돌이켜 보는 봄은 늘 추웠다.  

매캐한 최루 연기와 투석, 내 젊음에 대한 기억은 매우 추웠다.

청년에서 노년에 이르기까지 내 이민의 봄 역시 추위의 연속이었다. 헛헛함에서 오는 추위였다.

이쯤 이르러서야 내 뜰에 찾아 온 봄의 온기를 느끼는 작은 여유를 누린다.

그 한 줌 여유로 오늘도 추위 속에 봄의 온기를 꿈꾸며 사는 뛰어난 사내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밤.

그의 밤에도 결코 춥지 않은 봄이 어서 빨리 오기를 빌며.

그의 생각을 읽는 봄 밤에

4.14.23

사랑 그리고 예수쟁이에

성실한 교인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고 있다만 스스로 예수쟁이라고 여기며 사는 내게 매우 강력한 매혹적 언어로 다가온 책, <포기할 수 없는 약속>을 받아 들고 책장을 넘기는 저녁이다. 사실 원제보다는 부제가 내 맘을 끌었었다. <세월호, 그 곁에 남은 그리스도인들의 이야기>가 그것이다.

34년째 안산 화정교회 목사로 살아오며 4.16목공소에서 세월호 엄마 아빠들과 일하는 것을 좋아한다는 박인환 목사는 ‘하나님이 물으신다면’이라는 글에 이런 경험담을 남기고 있다.

<”목사가 왜 이런 정치적인 일을 하느냐?”며 눈을 부라리는 장로도 만났고, “박목사, 아직도 세월호야? 이거 언제까지 하려고 그래 목사가 목회 해야지”라고 책망하는 선배 목사도 만났다. 서명을 받아 달라는 나의 부탁에 “세월호 가족들이 정치세력과 야합해서 돈을 더 많이 받으려고 그런다는데…”라며 곤란해 하는 후배 목사들도 여럿  보았다.”>

아직도 세월호와 함께 사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몇 번 쯤은 엇비슷한 질문을 받아보지 않았을까?

성서한국 사회선교사인 박득훈이 소개해 주는 윤후명의 시 <사랑의 길>을 몇 번이나 곱씹으며 읊조려 본다.

<먼 길을 가야만 한다./ 말하자면 어젯밤에도/ 은하수를 건너온 것이다./ 갈 길은 늘 아득하다./ 몸에 별똥별을 맞으며 우주를 건너야 한다./ 그게 사랑이다./ 언젠가 사라질 때까지/ 그게 사랑이다.>

그리고 동혁이 엄마 김성실의 기도다.

<그렇게 살기로 했다./ 인간의 소관이 아닌 일에 자책하며 분노하던 것에서 돌아서/ 그동안 멈췄던 사랑을 다시 해보기로 했다./ 악쓰고 우느라 돌보지 않았던 남은 가족들을 돌보기로 했다./ 여전히 우리는 진실을 알아야 하고 현실은 답답하지만/ 잃었던 웃음을 되찾기로 했다>

그래! 사랑이다.

포기할 수 없는 약속을 믿으며 손 맞잡고 때론 어깨 걸고 울고 웃으며 늘 아득한 먼 길 걸어가는 그게 사랑이다. 가다가 비록 스러지는 별똥별 하나 되더라도.

사랑 그리고 예수쟁이에.

정의에

한때 마이클 센델(Michael sandel)이 쓴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책이 일대 유행을 탓던 시절이 있었다. 그 유행 따라 나도 책을 사서 읽었었다.  그 책은 철저히 미국에 대한 이야기였는데 한국에서 유행했던 일이 조금 이해 되면서도 이해 안되었던 기억이 있다.

그 책의 원제는 <Justice: What’s the Right Thing to Do?>이다.  직역하자면 <정의 : 해야 할 옳은 일은 무엇인가?>이다. 물론 이 책에서 마이클 센델은 정의(正義, Justice)가 무엇인지를 정의(定義, definition)하지 않는다.

다만 그는 책의 말미에서 정의(正義, Justice)를 이해하는 세 가지 접근법을 말하면서 그 중 그가 선호하는 방법으로 이렇게 말하고 있다. “정의란 미덕을 키우고 공동선을 고찰하는 것”이라고.

어제 부활주일 나는 몹시 바쁜 하루를 보냈었다.

철이 철인지라 내 생업이 조금 바빠 이른 아침부터 가게에 나가 밀린 일들을 정리하고 돌아오는 길에 어머니와 장인, 장모 묘소를 잠시 둘러 보며 부활절 인사를 드렸다. 오지랖 넓게 벌려 놓은 집 뜰 흙놀이에 빠졌다가 시간되어 부랴부랴 필라로 올라가 필라델피아 촛불행동 집회에 함께 했다.

어제 함께 했던 스물 남짓한 이들 모두 나와 엇비슷한 일상을 살고 있는 이들일 게다.

너나 없이 먼 거리를 달려와  비록 짧은 시간이나마 함께 모인 까닭은 바로 ‘오늘 공동선(善)을 생각하며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대한  응답을 외쳐 보자는 뜻 때문이었다.

뜻 맞는 이들과 함께 하는 즐거움은 생각보다 늘 크다.

거창하게 ‘정의’ 운운하며 치장하지 않아도 ‘내가 하는 일’에 부끄럼 없이 옳다는 뜻 하나만으로  누리는 기쁨이라니!

정의에.

희열에

달포 전 늘그막 동무가 선사해 주어 심었던 무궁화 묘목에 붉은 꽃망울이 맺혔다.

순간 내 온 몸과 맘으로 느낀 즐거움과 기쁨이라니! 호들갑일 수 없다. 살아 숨 쉬는 것에 대한 감사요, 그저 살아있기에 아름다워야만 하는 오늘에 대한 희열이다.

2023, 부활절 전야에.

** 봄이 떠나기 전에 늘그막 동무와 함께  어릴 적 맘으로 조촐히 한 잔 나누는 즐거움을 누려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