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 사는 이야기

  • 하나.

이른 아침 가게로 들어선 Rose씨는 아내 Anita가 떠났다고 했습니다. Rose씨 내외는 서른 해 넘는 우리 가게 오랜 단골입니다. 유태계 은퇴 의사인 Rose씨는 최근 몇 년 사이 걸음걸이가 영 불편합니다. 걷는 모습이 그저 아슬아슬하답니다. 그의 아내 Anita가 그보다는 훨씬 건강했답니다. 한 두해 전부터 이런 저런 병치레로 병원 나들이가 잦던 Anita가 그만 먼저 떠났답니다.

그가 예의 그 아슬아슬한 걸음으로 가게문을 나서면서 울먹이며 제 아내에게 던진 말이랍니다. “Anita가 여기와서 당신하고 얘기하는 걸 참 좋아하고 즐겼었는데….”

한 오륙 년 되었나 봅니다. 해마다 오랜 단골 분들 가운데 몇 몇은 꼭 떠나십니다. 허긴 한 자리에서 한 세대 훌쩍 넘긴 세월을 보냈으니 아주 당연한 일일겝니다.

그런데 참 알 수 없이 이상한 일이 하나 있습니다. 남편을 잃은 할머니들은 대개 덤덤하게 그 일을 전하시는데 비해, 아내를 잃은 할아버지들은 맥없이 슬픈 얼굴이 되곤 한답니다.

혼자되신 할머니들은 제법 오랜 동안 뵐 수도 있거니와 밝은 편인데 비해, 혼자되신 할아버지들은 더는 그리 오래 볼 수 없을 뿐더러 볼 때마다 알 수 없는 안타까움을 남기곤 한답니다.

참 알 수 없는 일이랍니다.

하여 혼자 읊조려보곤 한답니다. ‘언젠가 그때가 되면….내가 먼저….. 아무래도 그게 맞는 일인데…. ‘

해마다 이 맘 때이면 삼 십 수 년 동안 똑같이 겪는 일이 있습니다. 아이들의 입학과 개학 시즌이 되면 교복을 입어야만 하는 학교를 다니는 아이들이 엄마나 할머니와 함께 가게를 찾는 답니다. 교복을 제 몸에 맞게 고치려고 오는 것이지요.

해마다 꼭 겪게 되는 일이란 바로 엄마와 딸 또는 할머니와 손녀가 함께 와서는 교복 치마 길이를 줄일 때 벌어지는 다툼이랍니다.

딸이나 손녀는 할 수 있는 한, 짧게 줄여 달라고 주문을 하고 엄마나 할머니는 될수록 길게 해달라고 요구를 한답니다.  언제나 무릎이 경계이지요. 아이들은 무릎 위 한 뼘쯤 위로 요구를 하고, 어른들은 무릎을 덮을 정도로 주문을 하지요.

그럴 때면 참 여러 서로 다른 다툼들을 보게 되곤 한답니다. 딸과 어머니나 할머니와 심하게 다투는 모습을 볼 때도 있고, 아이들 입이 쉬지 않고 불만을 토해내도 전혀 들은 체하지 않는 어머니를 보기도 하고, 한숨을 푹 내쉬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면서도 ‘어쩌겠수’하는 할머니도 만나게 된답니다.

그런데 또 이런 경우도 있답니다. 아이가 원하는 대로 고개를 끄덕이며 돌아가서는 저희에게 전화를 주는 어른도 있답니다. ‘그래요. 제가 책임질 거고요. 아까 제 아이가 원했던 길이보다 몇 인치 길게 해 주세요.’라고 당부하는 것이지요.

해마다 이 맘 때 겪는 변치 않는 풍경이랍니다.

삼 수 년 전 그 때의 딸이 지금은 엄마 아니 할머니가 되었을 수도 있는데 말이지요. 그 풍경은 전혀 변하지 않는 답니다.

해마다 ‘덥다 더워’, ‘춥다, 추워’를 후렴처럼 중얼거리고 사는데, 꽃들은 저마다 때 맞추어 봉우리를 맺고, 피고, 지곤 하지요. 아무 말없이.

다알리아의 계절입니다. 그도 지고 나면 국화가 제법 속 깊은 모습을 드러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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