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안하던 마음이 세상뉴스와 마주하면 뒤죽박죽 엉망이 되곤 한다. 특히나 내가 알고 이해하고 있던 말들이 전혀 다르게 쓰이고 있는 소식들을 듣고 보노라면 참담한 마음으로 뉴스들의 속내를 파보곤 한다.
그런 오늘을 사는 답답한 마음으로 손에 든 책이었다. 독일의 철학자 미하엘 슈미트 살로몬(Michael Schmidt Solomon)이 쓴 <어리석은 자에게 권력을 주지마라>이다.
책장을 넘기자마자 사람에 대한 저자의 사뭇 도전적인 단언적 주장을 만나게 된다.
<우리는 인간의 특별함을 드러내기 위해 우리 자신에게 얼마나 화려한 별칭을 부여했던가. 호모 압스콘디투스Homo absconditus(신비적 인간), 호모 에스테티쿠스Homo aestheticus(미학적 인간), 호모 크레아토르Homo creator(창조적 인간), 호모 이노바토르Homo innovator(독창적 인간), 호모 루덴스Homo ludens(유희적 인간), 그리고 무엇보다도 자화자찬의 절정이자 고상한 우리 인간류를 공식적으로 지칭하는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s(현명한 인간)가 있다. 별로 유감스럽게 여기지 않는다면 호모 사피엔스라는 말은 역사를 통틀어 가장 재미있는 농담일 것이다.>
<인간에게 훨씬 적절한 명칭은 호모 사피엔스보다 호모 데멘스 Homo demes, 즉 광기의 인간이다.>
이어지는 그의 인간의 하찮음을 증명하려는 듯한 이야기들은 조금 불편할 수도 있다. 나처럼 교회 마당에서 뛰놀며 자란 이들에겐 더욱 그러할 듯.
그러나 그가 풀어내는 광기 서린 인간들이 만들어 냈던 지난 사람살이 이야기들에 빠져 들다 보면 밑줄 긋지 않는 문장이 몇 개 되지 않을 정도로 취하게 된다.
그가 광기 서린 인간들의 어리석음으로 사람다움을 잃어버린 분야의 첫 번째로 꼽은 것은 종교다.
그는 신이라는 이름으로 자행되는 악행은 인간이 범하는 온갖 병폐 중에서도 가장 고질적인 망상이라고 단언하다. 그가 예시로 들은 여러 종교적 광기들은 내가 살아오면서 익히 듣고 보고 배운 사실들이다.
그 다음은 경제, 곧 소비지상주의 시대의 권력이 된 자본시장에서 나타나는 인간들의 광기, 곧 어리석음이다.
이어지는 광기서린 인간들의 어리석음은 문화, 교육 분야로 이어진다.
그리고 이런 인간들의 광기, 인간들의 어리석음이 절정을 이루는 곳이 정치라고 그는 말한다.
<우리가 지금까지 관찰했던 모든 형태의 바보 같은 짓, 이를테면 어리석은 종교, 어리석은 생태행위, 어리석은 경제행위가 정치의 영역에서 모든 것을 총망라하는 메가톤급 어리석음, 즉 어리석은 정치 행위로 통합되기 때문이다.>고 한다.
이런 어리석은 정치 행위로 나타나는 결과에 대한 그의 고언이다. <씁쓸한 사실은 민주주의의 모든 권력과 어리석음이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것>이라고.
그러나 그는 결코 희망을 잃지 않는다. 호모 데멘스 Homo demes, 즉 광기의 인간을 벗어나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s 곧 현명한 인간이 되는 길이 있다고 제시한다.
바로 어리석은 자들에게 종교, 경제, 문화 교육, 정치에 이르기까지 권력을 내어 주지 않기 위해서 <도덕적 분개가 아니라 문화적 어리석음으로부터의 탈피>를 외치고 실천하는 일이다.
그는 이런 일들에 대해 낙관하는 이유로 “지성의 목소리는 낮지만, 자신의 목소리를 들어 주는 사람이 나타날 때까지 쉬지 않는다. 수없이 퇴짜를 맞은 뒤, 마침내 지성은 자신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게 하는 데 성공한다. 이것이 인류의 미래를 낙관할 수 있는 몇 가지 이유 중 하나다.”라는 프로이드의 성찰을 소개한다.
또한 <이제는 완전히 어리석은 자에게 조종간을 넘겨주는 행위가 무책임한 일이 될 정도로 인류의 행보는 문화적으로 진보했고, 과학기술과 국제화를 통해 거침없이 나아가고 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어리석은 자들의 권력을 깨뜨릴 수 있는 제반 조건을 마련해야 한다!>라고 권한다.
책을 덮으며 답답했던 마음들이 많이 사라졌다. 살아 숨쉬는 한, 어리석음을 벗어나 사람답게 살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작은 일들이 참 많다는 생각으로.
– *역자인 김현정이 번역한 책들 제목에 혹하여 몇 권을 주문하다.
이른 봄과 늦은 봄 사이를 가르는 비가 온종일 내리는 주일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