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음 – 그 날 3

(당신의 천국 – 일흔 일곱 번 째 이야기) 

나 다니엘이 이 환상을 보고 그 뜻을 알고자 할 때에 사람 모양 같은 것이 내 앞에 섰고 내가 들은즉 을래 강 두 언덕 사이에서 사람의 목소리가 있어 외쳐 이르되 가브리엘아 이 환상을 이 사람에게 깨닫게 하라 하더니 그가 내가 선 곳으로 나왔는데 그가 나올 때에 내가 두려워서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리매 그가 내게 이르되 인자야 깨달아 알라 이 환상은 정한 때 끝에 관한 것이니라 그가 내게 말할 때에 내가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리어 깊이 잠들매 그가 나를 어루만져서 일으켜 세우며 이르되 진노하시는 때가 마친 후에 될 일을 내가 네게 알게 하리니 이 환상은 정한 때 끝에 관한 것임이라 – 다니엘 8 : 15 – 19, 공동번역 

제가 고등학교에 들어갔던 해는 1969년이었습니다. 한국 학교교육에 있어 1968년과 1969년 사이에는 아주 큰 차이가 하나있답니다. 우리 세대들이라면  쉽게 기억에 떠올릴 수 있는 문장 하나가 그 차이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민족 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 바로 국민교육헌장입니다. 고등학교 1학년 때, 이 헌장은 달달 외어야 하는 것이었습니다. 시험문제에 나온 것은 물론이거니와 외우지 못하면 체벌을 받기도 했답니다. 

이 헌장이 발표된 것은 1968년 12월 5일이었습니다. 우리가 외어야했던 헌장 전문은 첫 문단인 “우리는 민족 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 조상의 빛난 얼을 오늘에 되살려, 안으로 자주독립의 자세를 확립하고, 밖으로 인류 공영에 이바지할 때다. 이에, 우리의 나아갈 바를 밝혀 교육의 지표로 삼는다.”에서 발표날짜인 1968년 12월 5일과 마지막을 장식한 말, 대통령 박정희까지 틀리지 않게 외어야 100점이었답니다. 

이 국민교육헌장을 비판했다고 대학교수들이 학교에서 내쫓기고 감옥에 갇히기까지 한 일도 있었답니다. 1978년에 있었던 ‘우리의 교육지표’사건이라는 것입니다. 

물론 당시에 국민교육헌장의 가치에 대해 목청 높이는 축들도 있었지요. “국회를 통과한 국민의 뜻을 수렴한, 민족주체성 확립의 핵심”이라며 찬사를 보냈던 조선일보로 대변되는 세력이었답니다. 

이 국민교육헌장은 1890년 일본 천황이 만든 교육칙어(敎育勅語)와  1937년 일제가 조선민들에게 외우기를 강요했던 황국신민서사(皇國臣民誓詞)를 본딴 것이라는 게 정설입니다. 

신민서사

황국신민서사란 일본제국을 위한 맹세로써 성인용과 아동용이 따로 있었고, 내용은  엇비슷한데 아동용이 ”첫째 우리들은 대일본 제국의 신민(臣民)입니다. 둘째 우리들은 마음을 합하여 천황 폐하에게 충의를 다합니다. 세째 우리들은 인고단련(忍苦鍛鍊)하고 훌륭하고 강한 국민이 되겠습니다.”라고 되어있답니다. 

재미있는 사실은 이 황국신민서사를 작성하고 완성한 이들은 모두 조선인들이었답니다. 당시 일본총독 미나미 지로는 단지 재가를 하고 집행만 했다는 것이고요. 

일제 말기 이야기 좀 더 해 볼까요. 황국신민서사를 암송하던 무렵 조선반도에서 일어난 두가지 변화가 더 있지요. 바로 창씨개명과 신사참배입니다. 

우리 속담에 “만일 내가 어떤 일을 하면 성(姓)을 간다.”라는 말이 있듯이 조선인들에게 자신의 성씨란 목숨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실제 1940년 창씨개명이 본격화되자 전남 곡성에 사는  류건영(柳健永)은 반대 항의문과 함께 58세의 나이로 자결을 했고,  전북 고창의 의병출신 설진영(薛鎭永)은 창씨에 불응하면 자녀를 퇴학시키겠다는 학교측의 통보를 받고 결국 자녀를 창씨시킨 다음 자신은 조상 볼 낯이 없다며 돌을 안고 우물로 뛰어들었다는 기록도 남아 있답니다. 

그러나 언제나 그렇듯 ‘때는 이 때다’며 먼저 성과 이름을 일본식으로 바꾼 조선인들도 많았지요. ‘향산광랑(香山光郞)’이 된 소설가 이광수를 비롯한 많은 이들이 있지요. ‘다카키 마사오(高木正雄)’가 된 박정희도 그 중 한 사람이었고요. 물론 김대중도  ‘도요다 다이쥬(豊田大中)’,  김영삼은 ‘가네무라 코유(金村康右)’라는 일본 이름을 지니고 있답니다. 다만 이들이 창씨 개명을 한 나이를 보면 김대중은(1925년생)은 만15세, 김영삼 (1927년생)은 만13세 떄의 일이었고  박정희(1917년생)는 만23세 때의 일이었다는 것이 누가 선택한 것이냐는 다름의 차이가 있는 것이겠지요. 

창씨개명과 함께 조선인들에게 새로 부과된 변화는 신사참배였습니다. 특히 이 신사참배란 여호와 하나님 유일신을 믿는 기독교인들에게는 우상 숭배를 하느냐 신앙의 정조를 지키느냐하는 목숨을 건 선택을 강요하는 일이었습니다. 

주기철, 최상림목사 등 신사참배에 반대하다 옥중에서 죽은 이들도 있었지만 천주교, 개신교 가릴 것 없이 결국엔 신앙의 정조를 지키지 못한 역사를 만들었답니다. 

이런 일들 곧 신사참배, 창씨개명, 황국신민서사 등의 일이 일어난 것은 단지 십년이 채 안되는 짧은 시간 동안 있었던 일입니다. 그런데 수많은 조선인들이 마치 완전한 일본시대가 도래한 것 같이 행동했던 것입니다. 

이제 이런 비슷한 경험을 우리 민족보다 수 십배 긴 세월동안 겪어 온 유태인들의 상황을 돌아 보기로 하지요. 

바벨론 포로 이후로 부터 유태인들은 대제국의 식민지 백성이거나 타국으로 피난가서 사는 신세로 약 사 백년의 세월을 이어오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비록 식민지였기는 하지만 민족의 전통과 야훼 하나님 신앙만은 지키고 살 수 있었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런데 기원전 175년경 셀류커스왕조의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왕 시대에 이르러 유태인들은 더 이상 자신들의 전통과 야훼 하나님 신앙을 지켜낼 수가 없는 시대를 맞게 됩니다. 예루살렘 성전에는 제우스 신이 모셔지고, 유대인들의 전통 일테면 할례를 받는다던가 야훼 하나님을 예배한다던가 하면 목숨을 잃게되는 시대를 맞이하게 된 것입니다. 

이런 시대 변화에 잽싸게 영합한 사람들은 예나 지금이나 한반도나 팔레스타인이나 가지고 누린 사람들이었습니다. 빠르게 헬라문명에 적응한 유대인들을 중심으로 이 새로운 변화에 적응한 세력들이 생겨났고, 반면에 이에 대항하는 세력도 생기게 된 것입니다. 우리들이 이미 이야기했던 마카베오 일가는 바로 그 반대 세력의 중심이었던 것입니다. 

이 무렵 그 시대를 이름없이 살아갔던 평범한 유대 백성들 사이에서 떠돌아 다니던 이야기들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이야기들을 기록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의 이야기는 야훼 하나님을 향한 물음으로 시작된 것이었습니다. 

<지난 수백년 동안 우리들의 조상들은 예언자들의 이야기를 듣고, 그들의 전하는 야훼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믿어왔다. 그것은 야훼 하나님과 우리들의 조상은 계약을 맺었다는 사실이다. 야훼 하나님은 애굽의 노예였던 우리 조상들을 해방시켜 주셨고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으로 인도해 주셨다. 이 땅에서 복을 누리며 영원히 행복하게 잘 살 수 있었음에도 우리 조상들은 야훼 하나님과의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야훼 하나님께서는 우리 조상들을 깨우치시려 이방의 침략 같은  고난을 내리셨다. 한 때는 야훼 하나님 눈에 드는 지도자들이 있어 다윗과 솔로몬의 영화를 누리기도 하였다. 그러나 우리 선조들은 틈만 나면 야훼와의 약속을 저버렸다. 마침내 나라까지 없애 버리셨다. 그러나 우리 민족이 회개하고 야훼 하나님께로 돌아가기만 하면 우리 민족에게 새로운 가나안을 열어 주신다. ‘그렇다! 바로 오늘 여기서 우리들의 선택이 중요하다.’라고 믿고 살았는데 이젠 그 근거조차 없어졌다. 

도대체 왜?> 라는 물음이었습니다. 

예언자들의 이야기가 이어져 온 시대에는 오늘의 우리들이 회개하고 야훼 하나님께로 돌아가면 우리들이 또는 우리 후손들이 사는 역사 안에서 새 시대가 열린다는 믿음이 있었는데 이제 그 믿음조차 없어진 시대가 되었다는 말입니다. 

많은 경우 이럴 때 사람들은 변화에 빠르게 적응을 합니다. 창씨개명을 하고, 신사참배를 하고, 신민서사를 외우듯 말입니다. 

그러나 더 먼 내일을 내다보는 사람들은 반드시 이럴 때 나타나는 것입니다. 묵시문학이 일어나게 된 까닭입니다. 

묵시문학, 묵시사상, 묵시적 믿음은 마지막 때라고 믿는 사람들이 내일을 바라보는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야훼 하나님은 이런 국면에서  어떻게 일하느냐를 믿는 것이 바로 묵시 신앙입니다. 

구약성서의 묵시서로는 다니엘을 꼽고, 신약에서는 요한계시록을 꼽습니다. 그러나 엄밀한 의미에서 신약성서 전체가 묵시사상을 기반으로 쓰여진 것이라는 게 제 믿음입니다. 묵시신앙을 빼고는 예수신앙을 말할 수 없거니와,  제가 이야기하려는 하나님 나라도 공허할 뿐입니다. 

자! 이쯤 구약성서 마지막 이야기 다니엘서로 넘어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