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 – 귀환 8

(당신의 천국 – 예순 다섯 번 째 이야기)

다윗은 온 이스라엘의 왕으로서 백성을 공평 무사하게 다스렸다. 군 총사령관에는 스루야의 아들 요압, 공보대신에는 아힐룻의 아들 여호사밧,  사제 일은 아히툽의 아들 사독과 아히멜렉의 아들 에비아달, 비서 일은 스라야,  그렛 외인부대와 벨렛 외인부대의 지휘관에는 여호야다의 아들 브나야. 다윗의 아들들도 사제 일을 보았다. –사무엘하 8 : 15 – 18 

(솔로몬)왕은 요압 대신에 여호야다의 아들 브나야를 군사령관으로 임명하고 에비아달의 자리에 사제 사독을 앉혔다. – 열왕기상 2 : 35 

레위인은 예수아의 일가, 곧 카드미엘과 빈누이와 호다야의 일가 칠십 사 명이었다. – 에스라 2 : 40, 이상 공동번역에서 

그들은 그 동안 경비를 아끼지 않고 하나님께 온전한 번제를 드렸으며 바사(페르시아) 왕의 마음을 움직여 고국으로 돌아오게 하시고 다시 율법을 되찾게 해주신 하나님께 감사의 제사를 드렸다. 이들은 하나님께 넘치는 제사를 드리고 예루살렘에 거주했다. 이들은 귀족정치(aristocracy)에 과두 정치(oligarchy)가 가미된 정부 형태를 취했다. 과두 정치가 가미 되었다는 말은 대제사장이 정부의 수반 역할을 담당했기 때문이다. – 요세푸스 유대고대사 제 11권 4장에서 

우리들이 찾아가는 하나님 나라의 중심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 중심을 바로 알고 이해하려면 예수가 일하고 말했던 당시 사람들의 생각과 삶의 현장에 대한 깊은 이해가 반드시 있어야만 합니다. 

일테면 백 이삼 년 전에 한반도에서 ’양천주(養天主) 곧 우리 안의 하늘을 길러야 한다’고 주장하다 목이 잘린 해월 최시형을 바로 이해하려면 당시 한반도에 살던 사람들의 생각을 알고 있어야 하는 것이거니와, 똑같이 ‘아간의 범죄’ 행위를 인용하였지만 1907년 평양 대부흥 운동을 촉발시켰던 길선주목사의 “내가 아간입니다.”라는 고백과 2013년 그 규모로는 세계적 순위로 꼽히는 순복음교회의 조용기목사가 “나는 아간이 아닙니다.”라는 주장을 펴는 것을 제대로 알려면 당시와 오늘 대한민국에 사는  사람들의 생각들과 형편을  잘 이해해야하는 것과 똑같은 이치입니다. 

약 2,500년 전 바벨론 포로에서 풀려나 팔레스타인 예루살렘으로 돌아 온 사람들을 중심으로 무너진 솔로몬 성전의 재건이 이루어집니다. 

우리들이 성서를 읽다보면 열 두지파, 대제사장, 제사장, 사제 , 레위 등등의 말들을 많이 볼 수가 있습니다. 

자! 이쯤 한번 생각해 보자구요. 이스라엘의 12 부족을 나타내는 12지파 중 레위 지파는 야훼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와 예배를 담당하는 지파였는데 왕국이 망하기 전에 남쪽에 속했을까요? 북쪽에 속했을까요?  남왕국은 유다지파와 베냐민지파  둘이었으까 당연히 북쪽에 속했겠지요. 

남왕국 유다의 전통을 잇는 포로 귀환 후에 역대기 사가들이 생각했을 때 이 레위지파의 위상은 어떠했을까요? 

highpriest

또 한가지 혹시 “사독”이라는 이름 기억나시나요? 

다윗이 왕위에 오르고나서 정권의 요직 개편을 하지요. 사무엘하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다윗왕 밑에 최고 권력자는 군 사령관 요압, 공보대신에 여호사밧, 두 명의 사제장에 사독과 에비아달이라는 이름들이 나옵니다. 권력 순위 3 – 4위에 사독이라는 이름이 나옵니다. 

그러다 솔로몬시대에 이르러 에비아달이 숙청되고 사독이 단독으로 사제장 곧 대제사장 자리를 꿰어찹니다. 

그로부터 남왕국 유다가 멸망할 때까지 사독의 후손들이 대제사장과 제사장 자리들을 독차지합니다. 이 말은 바로 성전을 중심으로 한 권력 곧 신권을 대행하는 권력이 사독 가문에 집중되었다는 말입니다. 

왕국이 망하고 바벨론으로 포로로 끌려간 주된 사람들 역시 이 사독가문의 제사장들이었습니다. 

그렇다면 레위가문과 이들은 어떤 상관관계가 있었을까요? 북왕국 이스라엘에 속했던 레위 가문들 가운데 북왕국이 망하고 남왕국으로 내려 온 많은 레위 가문 사람들이 있었고요. 주로 이들은 산당이라고 하는 지방에 산재된 야훼 하나님을 기리는 예배처소를 담당했을 것이라고들 추정한답니다.

사독가문의 제사장 그룹들은 예루살렘 중심의 예배를 주창한 것이고, 레위 가문은 후예들은 지방 예배처를 관장하고 있었다는 이야기랍니다. 

그런데 유다왕국이 멸망하기 전까지는 이들은 모두 왕 아래에 놓인 계급이었습니다. 

바벨론포로기 이후로부터 하스몬 왕조가 세워지기 전까지 팔레스타인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한 유다에는 약 400년 이상 왕이 없다고 헀습니다. 

왕이 없는 세상에서 최고의 권력자는 누구였을까요? 바로 사독 가문의 대제사장과 제사장 그룹들이었답니다. 신권정치를 움켜 쥔 사람들이었지요. 

그런데 문제는 이게 독립국가가 아니라는 말이지요. 정치적, 군사적으로는 페르시아의 지배를 받는 식민지였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신권정치를 내세우고 권력을 잡은 대제사장과 제사장 그룹들은 어떤 선택을 했을까요?  철저히 친 페르시아 입장에 서서 그들의 정치 군사적 권력 아래 놓이게 된 것이지요. 

솔로몬 제 2성전의 건축은 이런 상황들이 맞물려서 성취된 것입니다. 

사독가문인 대제사장과 제사장 그룹들, 비록 위축된 형편이었지만 명맥을 유지해 오던 레위지파가 페르시아 제국의 힘을 등에 업고 신권정치를 이어간 시대였다는 것입니다. 

그 때 그들의 신앙고백은 성전 중심인 예루살렘의 새 날에 대한 기대였답니다. 구약의 마지막 책 말라기는 그 고백을 축약한 것이고요. 

그로부터 약 오백 년이 흐른 뒤 세상에 오신 예수는 이 역사를 송두리채 뒤집어 엎어 버린답니다. 

이제 구약의 성문서(시편, 잠언, 전도서, 아가, 애가, 에스더..) 이야기로 넘어 갑니다. 

짧게 살피고 신구약 중간시대 이야기로 넘어 가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