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칙 – 귀환 6

(당신의 천국 – 예순 세 번 째 이야기)

잔뜩 찌푸린 하늘에서 금방이라도 눈이 쏟아질듯한 주일 아침입니다. 미국 전역에 때이른 한파가 몰려왔다는 아침 뉴스가 일요판을 장식하고 있습니다. 워싱톤 타임즈는 눈 구경하기 힘들다는 텍사스등의 남부에 쏟아진 눈소식을 멤피스발로 전하고 있습니다. 

날씨 변화 뿐만 아니라 사람들은 종종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장벽에 부딪히고는 합니다. 이럴 때면 사람들은  그 일을 해결해 줄 어떤 힘을 상상하거나 소망하게 됩니다. 일테면 슈퍼맨이라든지 스파이더맨 같은사람들 말입니다. 이른바 영웅입니다. 

영웅들이 세상을 지배하던 시대가  있었습니다. 오늘날에는 그런 시대가 지났다고들 말합니다. 

그런데 약 백년 전에 이탈리아에 살던 한 사내가 무리지어  움직이는 개미떼를 유심히 관찰하고 있었답니다.  개미들은 자신들이 먹을 양식을 열심히 개미집으로 운반하고 있던 중이었습니다. 당연히 모든 개미들이 열심히 일을 하고 있는 줄 알았는데, 사내가 자세히 들여다보니 단지 20%의 개미들만 열심히 일하고 있었답니다.  일하는 개미떼  20%와 왔다갔다 하면서 놀기만 하는 개미떼 80%로 나누어지더라는 말씀입니다. 사내는 20% 와 80%의 개미떼를 따로 모아서 서로 다른 곳에서 살게하였답니다. 그랬더니 똑같은 현상이 반복되더랍니다. 열심히 일하던 20%들 사이에도, 놀기만 하던 80%들 사이에도,  일하는 20%와 놀기만 하는 80%로 다시 나누어지더라는 말이지요. 

이번엔 벌들이 일하는 모습을 관찰했더니 개미에게 나타난 현상과 똑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더랍니다. 하나 새로운 법칙을 발견한 것입니다. 

이 법칙을 사내의 이름(Vilfredo Pareto)을 따서 파레토의 법칙(Pareto Principle)이라고 부른답니다. 

파레토는 개미와 벌들 뿐만 아니라 사람사는 세상에도 이 법칙이 똑같이 적용된다고 보았답니다. 그리고 20%에 해당하는 그룹에 속한 사람들을 일컬어 엘리트(elite)라고 했답니다. 나아가 그는 역사란 엘리트가 바뀌고 변화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했답니다.  그는 건강한 사회란 엘리트가 제 몫을 잘 해내고 나머지 대중들인 80%가 잘 따라주는 사회라고 이해를 했답니다. 

그럴듯한 내용이지만 신영웅주의라고 할 만한 것이지요.  엘리트그룹에 속한 사람들이 대중 지향적, 곧 전체 그룹인 100%를 생각하며  일한다는 것은 매우 힘들고 드문 일이지요.  뭐 말로써야 할 수는 있겠지만 말입니다. 

longtail

그런데 약 십년 전인 2004년에 영국출신 크리스 앤더슨(Chris Anderson)이란 이가  롱테일(Long Tail)이란 말로써 파레토의 법칙이 통하지 않는 새로운 세상 이야기를 합니다. 

엘리트에 속하는 20%가 아니라 나머지 대중(mass)인 80%의 영향력이 사회의 변화를 주도하는 시대가 되었다는 말이지요. 급격한 기술변화에 따라 바뀐 시대가 만들어 낸 법칙이지요. 이를 롱테일(Long Tail)법칙이라고 하지요. 

인터넷과 디지털 기술의 발달로 인해 생긴 시장과 유통 형식의 변화를 설명하면서 생긴 말이지만 사회구조 변화에도 여전히 적용된다는 것입니다. 

이즈음 한국뉴스에서 많이 볼 수 있는 기사 가운데 하나가 국가기관이 개입한 부정선거 논쟁이지요. 그 핵심이 바로 댓글이라고 말하는 인터넷 여론조작에 국가기관이 주도적으로 개입을 했느냐는 것이지요. 다른 여러가지도 있는 모양이지만 그건 제가 잘 모르는 일이니 접고요. 

엘리트 중심사회로 굳어져 내려왔던 한국 사회체제가 이전에는 전혀 생각해 보지 못했던 일이 한 번 일어난 적이 있었습니다. 바로 노무현 정권의 등장이었습니다. 그가 대통령이 된 원인을 찾으려면 여러 분석들이 가능한 일이지만 그 중 하나가 롱테일법칙이 힘을 발휘했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보는 것이지요. 

그래 엘리트 중심사회로 회귀하려는 집단들이 모든 노력을 기울여 그 동안 해오던 일들이 결집되어 나타난 것이 바로 국정원이라는 기관을 통해 롱테일 법칙이 통하는 사회를 지배하는 일이었다는 것입니다.  

눈 이야기와 날씨 이야기를 하다가보니 여기까지 왔네요. 

무릇 역사란 어떤 독립적인 사건 하나 하나를 이어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전(前)과 후(後)라는 시간의 연속성, 여기 저기라는 공간의 상관성들이 어우러져 일어나는 여러 사건들이 이어져 만들어지는 법이지요. 

그 사건들의 기록이 역사라면 기록을 남기는 사람들의 생각을 사관(史觀)이 되겠습니다. 그 기록을 신, 곧 하나님과의 연관 속에서 바라보면서 남긴 것이 신앙고백이고, 그 신앙고백을 할 수 있도록 인도한 이는 야훼 하나님이시라는 믿음으로 쓰여진 책은 성서가 되겠지요. 

예루살렘 제2성전(제 1성전은 파괴된 솔로몬 성전)의 건축과정과 예루살렘 성의 재건에는  바로 이런 여러 사건들이 어우러져  담겨 있답니다. 

눈발이 날리기 시작합니다. 

2500년전의 이야기는 오후에 잇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