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게문을 매일 열지만 손님은 여전히 뜸하다. 펜데믹 이전에 비하면 고작 1/3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니 가게에서 내가 할 일들이 별로 없다. 하여 아직은 집에서 보내는 시간들이 많다.
나 나름으로 그 넘쳐나는 시간들을 즐긴다. 펜데믹 비상상황이 선포된 이후 씨 뿌려 볼 생각을 한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스스로가 참 기특하다. 그 덕에 누린 지난 석달 간의 즐거움은 이즈음도 변함없이 이어진다.
풋배추와 열무 거두어 김치도 담고, 아욱과 시금치로 국도 끓여 먹고, 상추과 깻잎은 이즈음 우리 부부 밥상에 단골이 되었다. 고추, 오이, 호박 토마토 순을 쳐주고 달린 열매들을 바라보며 느끼는 즐거움은 정말 새로운 것이다. 머지않아 양파도 거두고 대파도 한 동안 사지 않아도 될 것 같다.
며칠 전 부터는 콩나물도 키워본다고 엉성한 시루에 열심히 물을 주고 있다. 틈틈이 방마다 마루도 새로 깔고 있고, 뒤뜰 deck도 새로 꾸며보자는 생각으로 머리속에 열심히 그림을 그리고 있다.
무엇보다 가장 큰 즐거움은 혼자 마음껏 생각의 줄기를 붙들고 노는 것이다.
하늘에 흐르는 구름을 넋 놓고 바라보다가 ‘대망의 70년대’라는 현수막이 거리 곳곳에 걸리고, 라디오에서는 청룡과 맹호부대 군가가 흐르던 내 고등학교 시절에 만났던 선생님들을 떠올린다. 교회 선생님들이다.
‘하나님, 이 아이들이 지금 열심히 공부에 전념할 때입니다. 공부할 시간에 바지 속에 손 넣지 않게 해 주시고….’ 기도하시던 선생님도 생각나고, ‘지금 너희들 나이야말로 그야말로 golden age다. 귀하게 여겨야 한다. 하루 하루 한시 한시가 귀하다는 것 잊지 말길 바란다.’라고 간곡히 부탁했던 선생님도 계셨다.
한강변 절두산이 바라보이는 풍광 좋은 저택에서 사시던 선생님께서 심각하게 말씀하셨던 이야기도 생각난다. ‘이런 시절에 좋은 풍광 바라보며 즐기며 사는 내 삶이 옳은 것인가?하는 고민이 들 때가 있단다.’ 솔직히 당시 그 선생님의 고민을 이해하지 못했었다만 조금 머리 굵어진 이후 선생의 고민을 이해할 수 있었다.
‘고난 받는 예수’를 침 튀기시며 외치시던 목사님도 생각난다.
돌이켜보면 엉뚱하고 나쁘고 못된 짓 많이 저지르며 살았으되 지금 이만한 부끄러움 안고 그래도 하루 하루 감사하며 살 수 있는 것 모두 그 때 그 선생님들의 가르침과 기도 덕이다.
그렇게 생각해 보니 일흔 고개를 바라보고 서 있는 지금 내 하루야말로 내 인생에 있어 황금시대가 아닐까?
혼자를 오롯이 곱씹는 시간을 즐기며, 역사라고 말하기엔 거창하고 그저 흘러간 시대와 내 시간들을 돌아보며 감사에 젖고 오늘을 즐기며, 내게 주어진 가늠할 수 없는 남은 시간들과 내 아이들의 내일을 위해 욕심 없는 기도를 드릴 수 있는 지금이야말로 내가 누리는 황금시대일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