벗에게

내게도 양복 정장이 몇 벌은 있다만 양복을 입을 기회는 그리 흔치 않다. 물론 한복도 몇 벌이 있다만 그걸 입을 기회는 거의 없다. 그저 늘 캐쥬얼 차림이다.

양복은 거의 사십 년 전에 맞춘 것들이다. 나는 아직도 그 무렵 결혼 예복으로 맞춘 양복을 입는다. 지난해 아내가 큰 맘 먹고 사준 양복 한 벌이 있는데 아직 입어 볼 기회가 없었다.

뭐 내가 검소하다는 이야기를 하려는 게 아니다. 나는 아주 비정상적으로 작고 마른 체구이다. 그 어떤 기성복도 나를 위한 것은 없다. 특히 팔길이도 짧아 어쩌다 몸에 맞는 옷을 찾는다 하여도 아내가 꼭 팔 기장을 줄여 주어야만 한다.

그런 일들이 번거로워 그저 한 번 몸에 익은 옷을 다 떨어질 때까지 입고 산다. 아내는 내가 입는 옷들을 일컬어 제복이라고 부른다.

캐쥬얼 옷들은 비교적 고르기도 편하기도 하고 싸서 좋다. 때론 아동복(?) 코너에 가서 고르면 맞춤 옷 같은 것을 만나기도 한다.

암튼 옷에 대해선 나는 거의 무관심하다.

친구도 마찬가지인 듯 하다.

내 친구들은 거의 모두 오래 전 친구들이다. 물론 얼굴 보거나 만난 지도 몇 십년 된, 그저 그 시절 모습을 기억하고 있는 친구들이다.

내가 딱히 의도한 일도 아닌데 그리 된 것을 보면 다 모자란 내 성격 탓일게다.

이젠 한국에서 산 세월보다 미국에서 산 세월이 더 길어졌지만 여기서 친구라고 부를 사이는 딱히 없다. 하여 때론 슬프다.

이민 초기 몇몇이 있었는데 다들 초라하게 멀어졌다. 이젠 어디 사는 지도 모른다. 나는 그런 이들 하고만 가까이 지냈다. 다 내 탓이다. 그게 또 내겐 이상한 일도 아니다. 모두 내겐 참 좋은 친구들이었다.

그러다 어찌어찌 오늘 옛 친구 P가 소식을 전해왔다. 걸쳐 걸쳐서.

내 어머니 돌아가셨다는 소식 전해 듣고 그가 보내 온 인사 가운데 멋진 가죽 점퍼가 있었다. 도대체 내게 전혀 어울리지 않는 가죽 점퍼라니? 게다가 정말 내게 어울리지 않는 고가의 상품이었다.

전해 전해서 들은 그가 했다는 말이다. ‘이건 딱 맞을거야!’

그랬다. 가죽 점퍼 사이즈는 내게 딱 맞았다. (물론 소매 기장이야 줄여야 하지만… 이건 누구도 맞출 수 없다. 정말 다행인 것은 내 아이들은 나를 닮지 않았다. 그래 또 감사다.)

어머니 돌아가시고 이제야 내가 철드나보다. 느닷없이 눈물 한 줄기 뚝.

내게도 친구가 있었구나. 아! 이 행복이라니.

오늘 밤 P에게 내 행복의 90%는 나누어 주고 싶다. 나도 10%쯤은 간직하고….

벗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