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도(王道) – 왕국 3

(당신의 천국 – 열 아홉 번 째 이야기)

베냐민 지파에 속한 명문 출신으로서 덕이 출중한 기스(Kish)라는 사람이 살고 있었다. 그에게는 사울이라는 아들이 하나 있었다. 그는 키가 크고 잘 생긴 미남 청년이었다. 더우기 그의 지혜와 총명함은 외모보다 나으면 나았지 결코 못하지 않았다. – (요세푸스 의 유대 고대사 6권 4장에서) 

가문 좋고  키 크고 잘 생긴데다가 지혜와 총명이 출중한 사울은 야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위해 준비한 첫 번 째 왕이었습니다. 성서와 역사가 요세푸스의 기록은 이 점에서 완벽한 일치를 보여 줍니다. 

이즈음처럼 상징조작으로 준비된 대통령상을 만든 것이 아니라 정말로 야훼 하나님께서 미리 준비한 왕의 재목이었다는 말입니다. 

사울의 이야기를 풀어 가기 전에 먼저 생각해 보려는 것들 세가지가 있습니다. 

첫째 왕을 세워 이스라엘 왕국을 건설하기 약 이백 년전에 이미 이스라엘 왕도(王道)에 대해 기록한 성서의 기록을 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왕들은 마땅히 이런한 자격을 갖추어야 하며, 이러 몸가짐을 가져야 한다는 규정들을 이미 정해 놓았다는 말씀입니다. 바로 광야에서 히브리족과 야훼 하나님 사이에 맺은 계율에 그렇게 기록되어 있답니다. 

자! 우리들이 지나왔던 신명기로 잠시 다시 돌아가 봅니다. 신명기 17장 14절에서 20절까지 이스라엘 왕도(王道)에 대한 규정을 다시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야훼 하나님이 앞날을 예견하시고 미리 말씀했다는 것입니다. 너희들이 언젠간 틀림없이 왕을 세울 것인즉 왕은 이러해야 한다라고 명령했다는 말입니다. 

“왕은 반드시 동족이어야 하고, 큰 군대(군마)를 거느려서는 안 되고, 많은 후궁을 두어서도 안되며 재산을 많이 모아도 안된다.  왕이 된 후 반드시 두루마기에  이런 명령들을 적어 놓고 매일 되뇌이며 지켜야 한다. 혼자 힘으로 힘드니 사제가 늘 옆에 있어야 한다.  특히 동족을 얕잡아 보는 일은 절대 금한다.”라는 내용입니다. 

두번 째입니다. 이런 성서(출애굽기에서 열왕기까지) 역사 이야기들의 기록연대입니다. 뭐 물론 그 때 그때 사건이 일어날 때마다 하나님의뜻으로 기록되었다고 믿으셔도 괜찮습니다. 이스라엘의 왕도(王道)를 이백 수십년 전에 하나님께서 미리 예견하시고 말씀하셨다고 믿는 것도 좋다는 말씀입니다. 

제가 저 위에서 인용한 요세푸스라는 유대의 역사가가 유대고대사를 기록한 것은 기원 후 약 95년경의 일입니다. 앞으로 이어질 제 이야기 가운데 신구약 중간사와 예수 시대사는 이 양반의 글이 많이 인용될 것입니다. 

오늘날 성서학자들의 의견들은 이 이야기들(출애굽에서 열왕기까지)의 근간을 이루는 기록들은 남왕국 유대왕 요시아 때를 전후한 기원 600년 경에 이루어졌다는데로 모아져 있습니다. 

사울 왕의 등장이 대략 기원전 1030년에서 1000년 즈음으로  보고 있으므로 이스라엘 왕국이 세워지고 거의 망할 무렵까지 이스라엘 백성들이 원했던 왕도였다는 것입니다. 

제가 기록연대를 한번 생각해 보다는 뜻은 역사를 어떻게 되돌아보고 해석하느냐의 중요성을 되짚어 보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역사적 경험과 사건을 되뇌일 때마다 야훼 하나님과의 관계와 그의 일하심이라는 관점으로  고백하고 기록했다는 것입니다. 

인류사에 나타난 수많은 족속들 가운데 전민족적으로 수천년을 일관되게 이런 고백으로 역사를 되돌아 본 민족은 유태족이 유일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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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측면에서 이즈음 대한민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역사교과서 문제를 보고 있노라면 측은함이 밀려 들 뿐입니다. 아마 단재(丹齋) 신채호(申采浩) 선생이 지금 대한민국에 살아계셨다면 유영익, 이명희 등을 비롯한 김무성 등등 역사 왜곡론자들을 향해 육혈포를 들이될 의열단 하나 만드시지 않았을까 하는 상상도 해본답니다. 

세번 째입니다. 한국 역사도 제대로 모르면서 왜 유대 역사나 이스라엘 왕조사를 우리가 이야기 해야 하는가 하는 것입니다. 저는 예수쟁이로서 이따금 기독교인들을 비난하거나 비평하는 이들이 하는 이 말 “자기 역사도 제대로 모르는 주제에…”라는 말에 강력히 대응하기 위해서라도 한국역사에 대해서만은 이스라엘 역사 이상으로 잘 알고 해석할 수 있도록 노력을 한답니다. 

아무튼 천국, 하나님 나라 이야기를 하면서 왜 유대사와 구약 성서에 이리 매달리느냐는 것이지요.

그리스도 곧 메시아 예수의 계시와 구원, 부활과 영생, 마침내 하나님 나라를 시간과 공간의 매임없이 전세계 사람들에게 알리는 일에 전생애를 바쳤던 사람 바울, 그의 믿음의 밑바탕에 깔린 의식이 바로 유대사이기 때문입니다. 

이제부터 우리들이 들여다 볼 이스라엘 역사 곧 유대사는 정말 보잘 것 없는 역사입니다.  왕을 세운지 백년만에 나라는 두 동강나고, 남북으로 갈린 두나라가 서로 으르렁거리다 북쪽 이스라엘는 앗시리아에게 남왕국 유다는 바벨론에게 망합니다. 참 보잘 것 없는 역사랍니다. 

왜 하나님의 나라를 찾아가는 제 이야기 속에서 이 보잘 것 없는 유대사가 중요한 것인가 하는 까닭을 말씀드립니다.

바로 바울 사도가 구원의 확신으로 세상사람들을 향해 쏟아내는 말의 기본 정신은 바로 보잘 것 없는 유대사와 그 역사 속에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고백이기 때문입니다. 

<형제 여러분, 여러분이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았을 때의 일을 생각해 보십시오. 세속적인 견지에서 볼 때에 여러분 중에 지혜로운 사람, 유력한 사람, 또는 가문이 좋은 사람이 과연 몇이나 있었습니까?  그런데 하느님께서는 지혜있다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시려고 이 세상의 어리석은 사람들을 택하셨으며, 강하다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시려고 이 세상의 약한 사람들을 택하셨습니다. 또 유력한 자를 무력하게 하시려고 세상에서 보잘것없는 사람들과 멸시받는 사람들, 곧 아무것도 아닌 사람들을 택하셨습니다. 그러니 인간으로서는 아무도 하느님 앞에서 자랑할 수 없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여러분을 그리스도 예수와 한 몸이 되게 하셨습니다. 그리스도는 하느님께서 주신 우리의 지혜이십니다. 그분 덕택으로 우리는 하느님과 올바른 관계에 놓이게 되었고, 하느님의 거룩한 백성이 되었고, 해방을 받았습니다. 이것은 다 하느님께서 하신 일입니다. ( 고린도전서 1: 26-30, 공동번역) 

이제  세가지 곧 내가 누릴 하나님 나라를 찾아가기 위해서 이스라엘이 고백했던 왕도를 근간으로 사울왕부터 이야기 해보도록 하겠습니다.